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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9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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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아래에서 유난히 반짝이는 녹안이었다. 가벼운 바람에 금빛 머리카락 몇 가닥이 흔들렸다. 쭉 뻗은 콧날 아래로 시원한 입매가 자리했다. 아직 묘하게 어린 티를 벗지 못한 얼굴이었지만 간혹 음식을 씹는 모습에 남성적인 턱선이 드러나기도 했다. 잔디밭에 누워 햇살을 즐기는 여유가 누구보다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 모습을 조금 더 오래 지켜볼 수 있게 아무도 그를 방해하지 않았으면 싶었다.
 
 
 
"플로이드."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에 로버트는 화들짝 잠에서 깼다. 꿈속에서 몰래 지켜보던 얼굴이 코 앞에 다가와 있었다. 야한 꿈을 꾼 것도 아닌데 로버트는 괜히 민망해 눈을 피했다. 쓸데없이  잘생겨서는, 왜 사람 꿈에 나오고 난리야. 들리지 않을 원망을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내 이름은 로버트야. 플로이드가 아니라."
 
 
책상 위에 흩어진 종이들을 정리하며 로버트가 부산스레 움직였다. 뼈대가 다부진 손이 로버트를 도와 책을 쌓아 올렸다.
 
 
"알고 있어."
 
고개를 들자 푸른 녹안이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로버트는 정리한 책과 종이를 들고 애써 그 눈을 무시한 채 그를 지나쳤다. 제이크는 말없이 로버트의 뒤를 따라 걸었다.
 
 
 
오래된 도서관 건물을 벗어나자 상쾌한 바깥공기가 느껴졌다. 어딘가 쿰쿰한 책 냄새가 몸에 밴 것 같아 로버트는 팔을 들어 후드티의 냄새를 맡았다.
 
 
"오늘 브런치 메뉴는 뭐야?"
 
 
어느새 뒤에 선 제이크가 로버트의 책을 나눠 들었다. 로버트는 거절하지 않고 가장 무거운 책을 턱 하니 제이크의 손 위로 얹었다.
 
 
"오늘은 모임이 없을 예정이야. 시험 기간이잖아."
 
"뭐야, 그런 건 좀 미리 공지해줄 수 없는 거야?"
 
 
톡 쏘아붙이곤 앞장서 캠퍼스를 가로지르는 로버트의 발걸음이 느긋했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공부하느라 실내에 박혀있는 게 억울한 탓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바깥 공기를 즐겨야지.
 
 
"그래서 말해주러 온건데."
 
 
로버트의 보폭에 맞춰 옆에서 느긋하게 걷는 제이크를 힐끗 쳐다봤다. 꿈속에서 본 것처럼 햇빛 아래에서 녹안이 빛나고 있었다. 봄을 닮은 눈이었다.
 
 
"귀하신 세러신께서 친히 오실 것까진 없었는데. 스마트폰이라는 걸 이용할 생각은 없어?"
 
비꼬는 말투에 제이크가 속없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웃음소리가 바람이 되어 로버트의 뒷덜미를 간지럽히는 느낌이었다.
 
 
"다음엔 이용해 볼게, 플로이드."
 
달갑지 않은 호칭에 제이크를 모난 눈으로 째려본 로버트는 조금 더 빠르게 걸었다. 제이크는 개의치 않고 여전히 느린 걸음으로 로버트를 뒤따라 걸었다.
 
 
"점심 같이 먹자."
 
불쑥 들려오는 말에 로버트가 우뚝 멈춰섰다. 제이크가 부지런히 간격을 좁혀 로버트의 옆에 나란히 섰다.
 
 
 
 
 
로버트가 제이크 세러신을 처음 만난 건 반년 전 지난 학기, 이 학교로 전학을 오면서였다. 엄마의 재혼 덕에 새로운 성을 갖게 된 로버트는 그 성에 걸맞는 새로운 인생을 선물 받았다. 물론 엄마는 선물이라고 표현했지만, 로버트는 여전히 강요받았다고 믿고 있었다.
 
새아버지는 유서 깊은 정치가 집안의 반항아였다. 유구한 역사에 걸맞게 보수 진영의 대표격이었던 집안에서 유일한 진보계 인사였으며, 집안의 극렬한 반대에도 기어코 서민 출신의 로버트의 엄마와 재혼을 강행했다. 여기까지가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였다.
 
로버트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로버트는 제 새아버지가 ‘반항아’로 불리기 원하는 완벽한 전통주의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로버트가 반드시 ‘플로이드’이라는 이름을 대내외적으로 자랑스럽게 여기길 바랐으며, 그에 부응하는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덕분에 로버트는 졸업을 한 학년 남기고 굳이 이 유명한 사립학교에 반강제로 전학을 와야했다.
 
 
엘리트들이 다니는 학교라고 뭐가 다르겠냐는 마음으로 발을 들인 로버트는 첫 주부터 자신이 완벽히 틀렸음을 알 수 있었다. 단정한 교복을 갖춰 입은 이 학교 학생들은 로버트가 자기소개를 하기도 전에 이미 로버트의 이름과 그의 가족들에 대해 로버트 자신보다도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잘못 떨어진 부유물이 된 기분으로 교정을 걸어다니던 일주일째에 로버트의 룸메이트는 그의 소모임에 초대하였다. 친구가 간절한 성격은 아니었으나, 어쨌든 남은 일 년동안 매일 동물원 원숭이 취급을 받고 싶지도 않았던 로버트는 대충 아무 그룹에라도 소속되는게 낫지 않을까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그 초대를 덥석 받아들였다. 그리고 ‘토요일 브런치 클럽’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의심 없이 클럽 소유의 방문을 열었다.
 
 
‘플로이드.’
 
 
방문을 열고 들어선 곳에서 로버트는 제이크를 처음 봤고, 제이크는 그 잘생긴 얼굴로 여유 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악수를 청하는 손을 대충 잡고 흔든 로버트는 어쩐지 그 녹안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했다.
 
 
‘기다리고 있었어, 플로이드.’
 
 
 
언제부터, 대체 무슨 이유로 그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건지 의문이 들면서도 마치 그 기다림을 알고 응한 사람처럼 로버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토요일 브런치 클럽은 사실상 브런치가 주제가 아니었다. 브런치는 핑계일 뿐, 이 학교에서도 가장 유명한 집안의 자재들이 모여 주말 아침을 낭비하는 게 주목적이었다. 로버트는 소중한 주말 아침을 이런 멍청한 모임에 낭비할 수는 없다며 매번 툴툴댔지만, 매번 룸메이트 루이의 손에 끌려 모임에 참석했다.
 
 
클럽은 단연 제이크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본인은 입으로 굳이 리더이길 자청하진 않았지만, 누가 봐도 제이크는 모두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를 보고 있자면 어쩌면 계층이란 것은 타고나길 DNA에 적혀있는 무엇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세러신이라는 이름에서부터 그는 이미 모두를 압도하는 존재였지만, 그 이름을 가리고 보아도 숨겨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제이크의 여유로운 말투엔 언제나 설득력이 있었고,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제이크의 주변으로는 사람이 모였다. 제이크는 자연스럽게 그 위에서 군림하길 즐겼다. 적어도 로버트의 눈에는 그래 보였다.
 
 
로버트는 훌륭하신 미래의 지도자들이 토요일 아침마다 요상한 게임이나 크리켓 경기 따위로 시간을 낭비하는 걸 한심하게 여기면서도 특유의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가 좋았다. 내일에 대한 걱정이 없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로움이였다. 그 속에서 로버트는 자신이 영 다른 존재라는 걸 생생히 느끼다가도 어느새 그들과 같은 농담에 웃는 스스로가 놀라웠다.
 
로버트와 제이크 사이에는 이상하리만치 직접적인 교류가 거의 없었다. 제이크는 매번 처음 본 그 날처럼 로버트를 맞이했고, 로버트는 차츰 그 인사에 익숙해져갔다. 그러나 그 이상의 대화가 오가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두 사람은 시끌벅적한 모임 속에서 종종 눈이 마주치곤 했다. 그럴 때면 마치 누가 먼저 피하는지 대결이라도 하는 듯이 한참 동안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러다가 두 사람의 침묵이 너무 노골적으로 느껴질 즈음 먼저 고개를 돌리면 로버트는 괜히 진 느낌이 들어 분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오늘처럼 브런치 모임이 없는 주말 오전에 제이크 세러신이 도서관에서 졸고 있는 로버트 플로이드를 깨우러 온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네가 자꾸 플로이드라고 부르니까 다들 그렇게 부르잖아."
 
"왜 나 때문이라고 생각해?"
 
"네 말이 곧 규칙이니까."
 
"난 강요한 적 없어."
 
"암묵적인 룰 같은 거잖아. 제이크 세러신의 방식을 따를 것."
 
"플로이드가 왜 싫은데?"
 
"엄밀히 말하자면 난 플로이드가 된지 이제 겨우 세 달 남짓 됐으니까. 누가 플로이드라고 외치면 그게 날 부르는건지 알아차리는 데 한참 걸리는 수준이라고."


로버트의 뚱한 대답에 제이크가 발걸음을 멈추고 빙긋 웃었다. 덩달아 걸음을 멈춘 로버트는 그 재수없는 (사실 매우 매력적인) 그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표정으로 강력히 표현했다.

"잘 어울려."

"뭐가?"

"플로이드. 넌 플로이드인 게 잘 어울린다고."

"글쎄, 넌 세러신인 게 아주 잘 어울려."

미약한 빈정거림에도 제이크는 마치 유쾌한 농담을 들은 것처럼 웃고는 다시 앞서 걷기 시작했다.








행맨밥 파월풀먼
2024.04.19 05:5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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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ㅊ 분위기 존나 취직
[Code: 1709]
2024.04.19 05:5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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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진짜 행맨밥 하이틴은 뭐라 형용할 수 없다 존나 잘 어울리고 재밌어 눈앞에 막 그려짐
[Code: cde4]
2024.04.19 07:50
ㅇㅇ
모바일
이 하이틴 분위기 미쳤다 제이크는 왜 로버트를 꼬박꼬박 플로이드라고 부르는걸까?! 로버트 제이크 좋아하면서 더 틱틱거리는거 존커ㅋㅋㅋㅋㅋ 제이크 분위기가 아주 아슬아슬한데 저러다 한 입에 먹히는거 아니냐고
[Code: 5001]
2024.04.19 07:5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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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진짜 너무 좋아요 센세 제발 어나더 ㅠㅠㅠㅠㅠ
[Code: 5001]
2024.04.19 08:55
ㅇㅇ
아니 내가 지금 읽고 있는게 문학맞지? 와 미쳤다 와........
[Code: 3bba]
2024.04.19 08:57
ㅇㅇ
첫문단부터 로버트가 묘사하는 제이크 모습 미쳤다고 그리고 <그 모습을 조금 더 오래 지켜볼 수 있게 아무도 그를 방해하지 않았으면 싶었다.> 이 문장ㅠㅠㅠㅠㅠㅠㅠㅠㅠ 로버트는 제이크의 웃음을 재수없다고 하지만 사실은 아주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것처럼 그가 자연스럽게 무리의 위에서 군림하는걸 빈정거리면서도 그누구보다 제이크한테 끌리고 있는거 같아 제이크도 유독 로버트를 더 챙기고 무르게 구는것 같고ㅠㅠㅠㅠ
[Code: 3bba]
2024.04.19 08:58
ㅇㅇ
그렇게 플로이드인게 맘에 들지 않는다면 세러신으로 성을 바꿔보는건 어떠니 로버트야... 센세 이거 개존잼 대작의 서막맞죠? 나 여기 누워서 어나더 기다리면 되는거 맞죠?ㅠㅠㅠㅠㅠㅠㅠ
[Code: 3bba]
2024.04.19 09:1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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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분위기 미쳤다 대작의시작 ㅠㅠ
[Code: feb9]
2024.04.19 10:0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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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이에서 둘이 눈 마주치고 한참 있는거 개좋다....행맨밥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Code: acc1]
2024.04.19 10:5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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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엄청난 대작의 기운이 밀려온다 설마 남들이 로버트라고 부르며 어설프게 친한척하는게 싫어서 본인부터 플로이드라고 격차리는 거라면 니는 진ㅉ짜 세러신이 맞구나 저러다가 내꺼싶 하면 와악 덥치는 거 꼭 보여주시리라 믿쑴다 센세
[Code: d9d4]
2024.04.19 13:1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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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을 뵈옵니다ㅠㅠㅠㅜ
[Code: 2280]
2024.04.19 13:1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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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하고 서늘한 봄하늘 같은 무순 뭔데요ㅠㅠㅠ
[Code: 2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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