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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8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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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법, 의술 알못 ㅈㅇ






너붕은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지.





왕이 특별히 보내준 대학사 오릴과 올드타운의 시타델에서 바리바리 보낸 학사들이 쉬지않고 너붕을 치료했지만 차도가 없었어. 대학사가 어렵게 입을 뗐지. 최선을 다했으나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고.

라에니라는 겨우 붙들고있던 정신을 놓고 무너져내렸어.
자신의 첫 자식, 유일한 딸, 후계자. 너붕이 라에니라에게 가지는 의미는 이루 말할 수 없었지. 
그녀는 대학사의 멱살을 잡고 칠왕국의 후계자를 당장 살려내라고 협박하고, 욕하며 울부짖었지만 대학사의 말은 바뀌지 않았어.


레이노르는 딸의 손을 붙잡고 기도했어. 오래된 신, 새로운 신, 발라리아의 신들에게도 기도했지. 할 수 있는 다른 게 없으니까.

레이노르의 연인인 칼 경이 조금 쉬라고했지만 그는 고개만 끄덕이고 딸의 침대 곁을 떠나지 않았어.


너붕의 상태가 위중하여 이동할 수 없어서 너붕의 가족들은 모두 드리프트마크에 남아있었어.

아에몬드도 대학사의 치료를 받아야하니까 드리프트마크에 남았지. 다친 아들을 적의 소굴에 혼자 남겨둘 수 없었던 왕비도 같이 남아있었어.

아에곤이 자기도 남겠다고 발악해서 킹스가드들이 납치하듯이 왕자를 끌고 수도로 떠난지 벌써 일주일이 넘었어.

아에몬드는 너붕의 곁에 가서 간병하겠다고 했지만 왕비가 절대 안된다고 아들을 거의 감금시켰지.

알리센트는 이 바다뱀의 소굴에서 과연 자신과 아들이 살아나갈 수 있을까 걱정됐어. 숨막히는 압박감에 질식할 것만 같았지.

라에니라와 레이노르는 장녀의 부상이 아에몬드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듯했어. 가끔 복도를 유령처럼 거니는 둘을 마주쳤을때 그들은 왕비를 당장이라도 불살라 버릴 것 같았지.

다에몬은 아주 당당하게 드리프트마크 성 안을 누비며 왕비와 그의 조카를 살기 어린 눈으로 노려봤지.

존재 자체가 위협인 왕제와 너붕의 부모와 조부모까지. 알리센트의 손톱은 피가 마를 날이 없었어.


너붕의 동생들과 타르가르옌 쌍둥이들이 너붕을 누가 밀쳤는지 모르겠다고 답한 것이 그들 모자의 목숨줄을 겨우 연명해주고 있었어.

너붕이 깨어나서 아에몬드가 밀었다고 증언하면 아에몬드와 알리센트는 다크시스터나 드래곤(무려 다섯 마리가 순번 뽑고 기다리고있을거야)에 의해 명을 달리하게 될거야. 어떤 죽음이 그나마 덜 고통스러울까 잠 못드는 밤에 고민해본적도 있었지.

왕비는 차라리 너붕이 이대로 깨어나지 않았으면, 몰래 바랐어. 이런 걸 바라는 자신이 끔찍했지만 너붕이 죽으면 상황이 한결 나아질 거거든.

우선 이 터무니없는 약혼도 없던 일이 되어버릴것이고, 아에몬드는 증언이나 증거가 없으니까 너붕의 죽음에 공식적으로 처벌받지 못할거야.


하지만 너붕의 죽음을 바라는 이는 알리센트 단 한명 뿐이었어.

심지어 그녀의 아버지 오토 하이타워조차 너붕이 살아남길 바랐지.
철왕좌의 후계자와 아에몬드의 약혼은 그의 욕망에 딱 들어맞았거든.
그래서 자신의 형에게 올드타운에서 학사들을 보내달라고 특별히 부탁까지했지.

처음에는 너붕과 아에곤이 결혼하길 바랐었지만 너붕이 카니발을 길들인 이상 그를 감당할 수 있는 건 바가르 뿐이었어.


오토는 아에곤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있었어. 
하지만 정말 만약의 경우를 가정해서, 라에니라가 여왕이 된다고해도 후계자는 너붕이고 너붕의 남편은 자신의 손주니까 오토가 손을 뻗칠 수 있는 상황은 열려있을거야.

너붕이 여왕이되고 아에몬드가 여왕의 부군이 되면, 너붕에게 정신적문제가 있다는 핑계를 대고 정치적으로 고립시킬 수 있었어.
너붕은 카니발과 유대해서 소문이 안 좋고, 머리에 심각한 부상까지 입었으니 충분히 가능성 있었지.
아무리 너붕이 반항해도 남편이 바가르의 라이더이니까 물리적으로도 제압할 수 있었어.


그러면 자신의 손주는 여왕의 배우자(King Consort)가 아닌 왕(King)이 될 거야.


너붕이 아에몬드가 자신을 밀었다고 주장해도 머리를 심하게 다쳐서 기억이 왜곡됐다고 주장하면 됐어.


너붕이 눈을 뜨기만하면 자신이 너붕을 끌고서라도 결혼식장에 세울 거라고 다짐했지.



왕의 병환을 더이상 방치할수없는 대학사는 드리프트마트에 온지 2주가 지났을때 수도로 돌아가겠다고 왕비의 침소에 찾아왔어.

어머니와 같이 아침식사를 하던 아에몬드는 그 말을 듣자마자 안된다고 소리 질렀지.

너붕이 저렇게 누워있는데 그냥 도망치는 거냐고. 그러면서도 대학사냐고, 체인 벗으라고 폭언을 퍼부었어.

알리센트가 엄하게 아들을 말렸지만 아에몬드의 필터 터진 입은 왕비에게까지 향했지.


"아주 기쁘시겠어요, 어머니!"


놀라서 굳은 알리센트를 냅두고 아에몬드는 너붕의 침실에 쳐들어감.

마지막으로 너붕을 봤을때, 너붕은 홀의 차가운 돌바닥에 쓰러져있었어. 그리고 그 주변을 피가 물들고 있었지. 너붕이 쓰러졌을때 아에몬드는 자신의 부상도 잊어버리고 너붕을 향해 뛰쳐나갔었어. 그리고 마주한 끔찍한 광경에 무릎에 힘이 풀려 너붕 옆에 주저앉았지. 떨리는 손은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방황했지.
아에몬드 옆에 주저앉은 자신의 형도 하얗게 질려서 너붕의 머리를 쓸었다가 묻어나오는 피를 보고 충격으로 말도 제대로 못했어. 떨리는 목소리로 안된다고 중얼거리면서 제발 일어나달라고 애원했었지.
그 날 이복누나가 지른 비명소리는 매일밤 아에몬드의 악몽에 방문했지. 

너붕이 그렇게 시체처럼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받은 충격은 아에몬드가 눈을 잃었을때보다 더했어.


시간이 지나 다시 마주한 너붕은 시체보다는 인형같았지. 생기 없이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아에몬드는 눈물이 터져나왔어. 다 자신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지.

바가르를 클레임한 것, 제이스와 루크를 도발한 것, 이성을 잃고 제이스에게 덤벼든 것.

죄책감을 못이기고 아에몬드는 침대 옆에 쓰러져서 너붕의 손을 붙잡고 자신의 얼굴에 대었어.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제발 일어나라고 빌었지.


"내가 드래곤 클레임하면 가장 먼저 태워준다고 했잖아. 네가 못타면 앞으로 아무도 못 타. 일어나서 나랑 같이 바가르 타줘."


아에몬드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있는지조차 몰랐어. 아이처럼 되도 않는 말을 하면서 애원했지.

옆에서 자신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제이스는 보이지도 않았어.

본인의 눈물로 축축해진 너붕의 손을 꼭붙잡고 주문처럼 일어나라고 되뇌이고 있었을때, 돌연 너붕이 아에몬드의 손을 잡아주는 느낌이 들었음.
너붕이 손을 움찔거리는 건 몰랐는데 자신을 위로해주듯 너붕이 맞잡아주자 아에몬드는 그제야 번쩍 고개를 들음.

축축하게 젖은 얼굴을 드니까, 너붕이 희미하게 눈을 뜨고 자신을 바라보고있는게 보였음.

아에몬드의 놀란 숨소리에 제이스도 그제야 너붕이 눈을 떴다는 걸 알게 됨. 제이스는 황급하게 부모님과 학사를 부르러 복도에 뛰쳐나갔지.
아에몬드는 굳어서 너붕만 바라보고 있었어. 이게 꿈이면 어떡하지. 걱정하고 있었지.

너붕이 마른 입술을 뻐끔거리자 아에몬드가 귀를 가까이 댐. 너붕은 아주 희미한 목소리로 아에몬드에게 같이 바가르 타러가자고했지.

아에몬드는 눈물 주륵주륵 흘리면서 고개를 열심히 끄덕임.

그리고 너붕의 부모가 침실에 뛰어들어왔어.
라에니라와 레이노르는 눈을 뜬 딸의 모습에 울음을 터뜨렸어. 신께 감사인사를 올리며 너붕을 안았지.


학사들이 너붕 몸을 한참을 살피더니 공주의 귀에 속삭였어.
다리가 마비되었다고. 평생 회복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라에니라는 숨이 턱 막혔어. 딸이 깨어나기만하면 무엇이든 괜찮다고 신에게 기도했는데 그 대가가 이것인가.

다리가 아프다고 신음소리를 내는 딸의 손을 붙잡고 라에니라는 레이노르 빼고 모두 방 밖으로 나가달라고했지.

그리고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딸에게 고백했어.


너붕은 어머니의 말을 믿을 수 없었어. 다리를 평생 못 쓸 수도 있다니.
그러면 어떻게 걷지.
어떻게 뛰지.
어떻게 드래곤을 타지.

너무나도 혼란스러워서 끔찍한 두통이 찾아왔지. 너붕이 머리를 붙잡고 신음소리를 내자 라에니라가 양귀비즙을 먹이려고했어.

너붕은 싫다고 소리쳤어. 양귀비즙도 쳐내고, 너붕을 안정시키려는 부모님의 손길도 거부했지.

싫다, 나가달라.
이 말만 무한반복하며 소리지르니까 결국 공주 부부도 침실 밖을 나갔지.

혼자 남은 너붕은 흐느끼며 자신의 다리를 만져봤어. 이렇게 멀쩡해보이는데 믿을 수가 없었지. 하지만 다리의 신경을 타고 올라와 뇌를 자극하는 고통은 어머니의 말이 사실이라고 소리치는 듯했지.


방 밖에까지 너붕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자 아에몬드는 심장이 가라앉는 것 같았어. 

너붕이 깨어나기만하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는데. 무언가 안 좋은 일이 벌어진 게 분명했어.

복도에서 불안하게 서성이던 아에몬드를 왕비가 자기 침실로 끌고 간 탓에 아에몬드는 너붕이 앞으로 못 걸을 수 있다는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됐어.


아에몬드는 이틀 후 어두운 밤에 경비가 없는 틈을 타서 너붕의 침실에 들어갔어. 너붕은 양귀비즙을 거부해서 고통때문에 쉽게 잠들 수 없었지. 아에몬드가 부르는 소리에 너붕은 금방 눈을 떴어.


"바가르 타러 갈래?"


이 시간에 남의 침실에 무단침입해서 하는 뜬금없는 소리에 너붕은 이 상황이 그냥 꿈처럼 느껴졌어. 그래서 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였지.

아에몬드는 뒤돌아서 자신의 등을 너붕에게 향했어. 너붕이 망설이자 아에몬드가 재촉했지. 너붕은 천천히 자신의 팔을 아에몬드의 목에 걸었어.

아에몬드가 너붕의 허벅지 뒤를 단단하게 붙잡고 안정적으로 일어났어. 오랜 훈련으로 생긴 근육으로 너붕의 무게 정도는 버틸 수 있었지.

그렇게 둘은 모두가 잠든 드리프트마크 성을 빠져나가 모래사장까지 갔어. 라이더가 오는 것을 감지한 바가르가 둘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어. 아에몬드는 너붕이 그랬던것처럼 발라리아 언어로 자신의 드래곤에게 너붕을 소개했지. 바가르는 카니발보다 얌전한 반응으로 너붕의 인사를 받았지.

너붕을 업고 바가르 등 위로 올라가는 게 정말 고난이었어. 너붕이 돌아가자고 말하기도 했는데 아에몬드는 포기하지 않았지. 그렇게 겨우 바가르의 안장에 올라서 너붕의 허리를 사슬로 자신과 꽉 묶었어. 너붕이 아에몬드의 허리를 껴안자 아에몬드가 바가르에게 날자고했지.

너붕이 카니발을 태워줬을때만큼 흥분되고 즐겁지는 않았어. 밤하늘을 가로지르고 얼마지나지 않아 아에몬드는 자신의 목 뒤가 축축하게 젖어가는 걸 느꼈어. 너붕의 몸도 떨리고 있었지.

아에몬드는 미안하다는 말도, 괜찮을 거라는 말도 하지 않았어. 모두 너붕에게는 의미없는 말이었지. 대신 자신의 허리를 꽉껴안고있는 너붕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어. 튼튼한 로프처럼 서로의 손가락이 단단하게 얽혔지.


"너의 미래 남편으로서, 네가 가고싶은 곳은 어디든 데려다줄게. 내가 네 다리가 되어줄게."


신에게 맹세하듯 결연한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울렸어. 너붕은 눈물로 젖은 얼굴을 아에몬드 목에 묻은 채로 끄덕였어.


많은 사람이 예상했듯 너붕은 아에곤과 결혼하고 싶었어. 아에곤도 너붕과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한순간에 왕이 정해버린 혼사에 꿈꾸던 미래는 바뀌어버렸어.

아에몬드도 괜찮은 상대야. 너붕과 아에몬드는 오래 봐왔고 친했으니까. 그렇게 스스로 다짐하듯 되뇌었지.

그래도 정말 가까이에 닿을듯하던 설레는 미래가 사라져버린 것에 대한 상실감은 가슴에 큰 상처로 남았어. 아에몬드가 이런 너붕의 모습을 지금 보지못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


다음 날 수도로 돌아가기 위해 바가르에 오르기 전에 아에몬드는 너붕의 침실에 들려서 작별인사를 했어. 어젯밤에 했던 약속은 진심이었다고. 빠른 시일내에 다시 만나길 바란다고. 말하고는 뺨에 키스를 했지.


아에몬드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벨라리온 가족들과 타르가르옌 부녀도(몸이 안좋은 친척을 도와주고싶다는 이유로) 배에 올라 드래곤스톤에 도착했어. 그리고 너붕은 본격적으로 재활치료에 들어갔어. 

매일매일 땀에 푹 젖었고 신음소리가 입에서 절로 흘러나왔지. 가만히 있어도 고통스러운 다리였는데 무리하게 움직이니까 더 괴로웠지. 감각이 둔해지면 안된다고 학사는 진통제 섭취를 금지했어.


저녁식사 시간에 너붕이 초췌한 안색으로 겨우 몇 입 먹고 기사를 불러 나가려는데 레이노르가 잠시 남아있으라고했음. 다른 애들은 너붕의 눈치를 살피다가 자리에서 일어났지. 테이블에는 세 어른과 너붕만 남음.

무거운 침묵 속에서 먼저 입을 뗀 건 라에니라였어. 뭐 치료 상황 같은 자질구레한 거 묻다가 본론으로 들어갔지.


"그 날 기억은 얼마나 돌아왔니?"


너붕은 홀에 있었던 언쟁 전까지는 대부분 기억한다고 답했지. 공주 부부는 서로 시선을 교환하다가 레이노르가 조심스럽게 물었어.


"그럼... 어떻게 다쳤는지도 기억나니?"


"대충은요."

너붕은 앞에 있는 디저트를 뒤적거리며 대답했어.


"누가 밀었는지도 기억나니?"


너붕은 시선을 들어 부모의 긴장한 얼굴을 봤지.


"대충은요."

너붕은 방금전과 같은 대답을 했어. 포크가 그릇에 긁혀 날카로운 소음이 났지.


모호한 대답에 공주 부부의 속은 타들어갔지. 다에몬은 날카로운 눈으로 너붕을 보며 침묵을 유지하다가 처음으로 입을 뗌.


"이 혼사는 너에게 도움이 안 돼. 그 사고의 책임자가 네 삼촌이라고 증언하면 왕께서도 약혼을 재고할 수 밖에 없을 거야."


"그러면 나머지 눈 한쪽도 빼내시게요?"

너붕은 헛웃음 짓고 날카롭게 비꼬았어.


"네 삼촌과 친하다는 거 잘 알지만 사안이 심각하단다. 그를 보호해줄 필요 없어."


"그런 거 아니에요."


단호한 너붕의 태도에 답답해진 레이노르가 너붕의 이름을 부름.


"진실을 원하세요, 평화를 원하세요? 둘 다 가지실 수는 없거든요."

너붕의 목소리에는 빈정거림이 가득했어.


"나는 복수를 원해. 내 딸이 부러진 채로 뱀의 소굴에 팔려가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

라에니라가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불길로 타오르고 있었어.


"서로 한명씩 불구로 만들어놨으니 적당히 복수했다고 생각하세요."

너붕은 부상 이후로는 처음으로 와인을 입에 댔어. 도저히 맨정신으로 이 대화를 이어나갈 수 없었지.


"상속받을 게 아무것도 없는 망할 하이타워 애새끼의 눈깔 한짝은 칠왕국 후계자의 손끝과도 비교가 안 되지."

다에몬이 독을 뿜듯이 말을 내뱉었어.


"하지만 그 눈 한짝이 제 결혼을 정할만큼의 가치는 있었죠."

너붕이 빈정거렸어.

다에몬은 시선을 와인잔으로 옮겼어.

"내 형은 어리석은 집착에 시달리고 있어."


"이 모든 건 내 동생(라에니라가 이 단어를 욕하듯이 내뱉었어)의 책임이야. 바가르를 클레임하겠다고 성급하게 나서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일은 없었을 거야. 그 애는 책임을 져야해."

라에니라는 마지막 문장을 무슨 서약을 하듯 말했지.

너붕이 말없이 와인만 들이키니까 라에니라가 덧붙였어.

"그 애가 얼마나 끔찍한 말을 했는지 아니? 루크 그 어린 아이에게 네 아버지처럼 불에 타 죽을 거라고 말했다더라."


"그래서 루크가 휘두른 단검으로 우리 모두 행복한 결말을 맞이했죠."

정말 간신히 참아왔던 동생을 향한 원망이 새어나왔지.


"네 동생들은 서로를 지켜주려고했던 것 뿐이야."

레이노르가 너붕을 달래듯 말했어.

동생들을 변호하는 말에 너붕의 분노가 폭발했어.

"저도 지금 그들을 지켜주고 있잖아요! 입 다무는 거로요!"


너붕은 앞에있던 그릇을 세게 바닥으로 밀어버렸지. 그릇과 잔이 깨지는 소리, 커틀러리가 바닥에 나뒹구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어.


"복수를 원하신다고요? 정확하게 누구한테 해야할까요. 아에몬드 탓이라고하면 좆같은 하이타워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요? 아예 5명 다 불러와서 일렬로 세워놓고 재판이라도 열자고 하겠죠. 무슨 말이 오갈지 참 볼만하겠어요."

연거푸 들이마신 와인으로 혀의 필터 풀려서 앞뒤 가리지 않는 말들이 나왔어.


"거기다 재판 결과로 달콤한 복수를 얻을 가능성이 몇이나 될까요. 1명보다는 4명이 더 가능성 높지 않나요. 제 사고의 책임이 아에몬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면 어떡하실건가요."


너붕은 우선 제 부모를 살펴봤어. "당신의 아들들," 그리고 다에몬으로 시선을 돌렸어. "당신의 딸들," 와인으로 목을 축이고 말을 이었어. "그 넷 중 하나로 판명나면 어머니께서 어떤 복수를 요구하실지 궁금하네요."

끔찍한 가정에 테이블 주변으로 짙은 침묵이 가라앉았어. 그들이 애써 외면했던 생각을 정면으로 마주하자 얼굴이 당황으로 굳었지.

너붕은 그들의 표정을 살피다가 이제 지쳐서 얼굴을 손에 묻고 한숨을 내쉬었어.


"...그냥 입 다무는 게 최선이에요." 패배감 짙은 목소리가 손 사이로 흘러나왔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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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노르는 죄책감에 시달렸어. 만약 자신이 정신차리고 그 날 밤에 너붕 곁에 있었더라면. 칼의 품에서 슬픔에 허덕이지 않고 아이들이 있는 9인의 홀에 갔었더라면 너붕의 부상을 미리 알아챌 수 있었을텐데. 레이노르는 항상 너붕을 먼저 살폈거든. 어쩔 수 없는 본능이었어. 하지만 자신이 나약하게 무너져있었을때 자신의 딸은 끔찍한 부상을 입고 스트레인저(죽음의 신)의 자비를 구걸하고 있었지. 레이노르의 죄책감이 그를 채찍질하였어.


"내가 거기 있었어야 하는데..."

레이노르는 울면서 의식 잃은 너붕의 곁에 주저앉았었지. 


레이노르는 너붕의 치료과정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했어. 재활 훈련을 할때마다 거의 옆에 있었고 뭉친 근육도 직접 주물러줘서 풀어주고 식단까지 직접 주방장에게 지시할 정도로 제일 열정적이었어. 너붕의 보조장치도 자기가 직접 드래곤 타고 섬 밖으로 나가서 구해왔었지. 너붕이 악몽에 괴로워할때면 어떻게 알았는지 너붕의 침실에 들어와서 달래준 밤도 많았어.

딸이 고통으로 울면 안아주면서 몰래 눈물 훔친 날도 빈번했어. 너붕만큼이나 레이노르도 점차 심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했어.

그래서 라에니라가 비밀스러운 제안을 해왔을때 그는 바로 거절하지 못했지. 너붕이 어느정도 괜찮아지면 생각해보겠다고했어.

그리고 너붕의 피나는 노력으로 이제 많이 회복되어 보조장치같은 것에 기대서 몇 걸음 떼는 게 가능해졌어. 학사는 놀라운 얼굴로 너붕을 바라보며 어려서 그런지 빠르다고 감탄했어. 레이노르는 심각한 표정으로 학사의 말을 경청했어.

너붕이 제일 먼저 걸어서 향한 곳은 카니발이었지. 이 거대한 드래곤은 자기가 직접 다가갔다가 너붕을 뭉개버릴까 걱정해서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었거든. 오랜만에 닿는 라이더의 접촉에 카니발은 만족스러운 울음소리를 내었어. 너붕은 온 몸을 드래곤에 기댔지. 온 몸으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에 너붕은 처음 클레임하던 날처럼 감격에 찼어.

이제 땅을 발로 디디는 게 가능해지니까 회복 속도가 점차 빨라졌어. 처음으로 보조장치 없이 몇 발자국 걸은 너붕을 레이노르가 꽉 안아주었지. 너붕이 아기때 처음으로 걸음마했을때보다 훨씬 감격에 젖었지. 너붕의 부모는 너붕의 말림에도 불구하고 가족끼리 연회를 열었지. 어색하게 축하한다고 인사하는 너붕의 동생들과 사촌들을 보며 고맙다고 웅얼거렸지.

어느날 너붕은 잠이 안 오는 밤에 혼자 근육 풀어주며 운동하다가 혹시 싶어서 걸어보았어. 그리고 아무도 없는 복도로 나가보았지. 이상한 자신감이 솟았어. 너붕은 천천히 벽 옆을 걸어보았어.(혹시 힘풀리면 벽 붙잡아야하니까) 그런데 한번도 다리에 힘이 안풀리는 거야.

드래곤스톤의 성은 무척이나 거대했어. 아이들이 종횡무진하여 뛰어다녀도 될만큼 복도도 길었지. 워낙에 성이 크니까 가족들의 침실도 넓직하게 멀리 떨어져있었어. 너붕은 천천히 복도를 걸어나갔어. 원래 목적지가 없었는데 걷는 도중에 아버지의 침소로 향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 깜짝 놀래켜줄 생각에 너붕은 혼자 미소지었어. 레이노르가 어떻게 혼자 여기까지 걸어왔냐고 놀랄 얼굴이 눈에 선했지.

너붕은 흥분한 탓에 노크도 잊어버리고 그냥 레이노르의 침소에 들이닥쳤어.


"아버지! 이것보세요. 제가 혼자 여기까지 걸어왔,"


하지만 너붕이 발견한 건 감격한 레이노르의 얼굴이 아니라, 놀라서 굳은 레이노르였지. 안 좋은 의미로 말이야.

레이노르는 낡은 망토를 걸치고 있었어. 그리고 머리는 싹 밀려있었지. 그 옆에 서있던 칼 경도 놀란 얼굴로 너붕을 돌아보았어. 그도 레이노르와 비슷한 차림새였지. 둘은 너붕을 보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지.

너붕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둘을 살폈어.

몰래 마을에 갔다왔다고 하기에는 둘다 술은 입에도 안 댄 것 같았어. 그리고 둘의 태도도 너무 비장했지.

몰래 전장에 나가는 건가. 너붕은 레이노르의 전장을 향한 염원을 알고있었어. 하지만 갑옷이 없었어.

도대체 뭐때문에 아버지가 은빛 머리를 한 올도 남겨놓지 않고 다 밀어버린 건지 이유를 알 수 없었지.

하지만 레이노르가 죄책감 가득한 얼굴로 너붕을 불렀을 때, 너붕은 깨달았지.


아버지가 자신을 버려두고 떠나련다는 것을.


너붕은 떨리는 목소리로 아버지를 불렀어.

"어디 가시는 거예요?"


레이노르는 대답하지 못하고 입만 달싹였어.  문장이 되지 못한 말들이 새어나왔지. 내 바다드래곤, 딸아, 나는...


너붕이 레이노르를 노려보았어.


"떠나시는거에요?"


무거운 침묵이 너붕의 질문에 답했지.

무리한 너붕의 다리가 떨려왔어. 아니, 온몸이 떨려왔지. 너붕이 안 울려고 노력하는데 멍청한 눈물은 금세 눈가에 맺히기 시작했지. 약한 모습 보여주기 싫어서 너붕은 시선을 바닥으로 향했어.


"나때문에 그런거죠?"

떨리는 목소리가 신음처럼 새어나왔어.

레이노르가 성큼 너붕에게 다가왔지.


"당신의 유일한 친자식이 실패작이라서 떠나는 거죠? 수치스러우니까."


너붕을 좀먹고있던 어두운 자괴감이 흘러나왔어. 입밖으로 내뱉고 나니까 더 설득감있게 느껴졌지.

애들이 밀어서 한번 넘어졌다고 죽을뻔하고 장애가 생기다니. 이렇게 나약한게 어떻게 철왕좌에 앉을 수 있으며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딸이 될 수 있겠어.

아버지가 나를 버리고 어머니가 후계를 동생으로 바꾸려는 게 당연해.

너붕은 이제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어. 돌바닥이 너붕의 눈물에 짙게 물들었지.

다급하게 다가온 레이노르가 너붕의 뺨을 쓸었지만 너붕이 날카롭게 쳐냈어. 그리고 레이노르를 노려보았지. 촛불에 비친 너붕의 눈이 이글거렸어.

레이노르는 고개를 저었어.


"넌 절대 실패작이 아니야. 내가 너를 실망시켰지. 너를 지켜주지 못했어. 나는...,"


레이노르는 마른침을 삼키고 너붕의 팔을 붙잡았어.


"나는 너에게 많이 부족한 아버지야. 너에겐 더 나은 사람이 필요해. 너를 지켜주고 지지해줄 수 있는 사람. 너를 도와주고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


너붕은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면서 레이노르의 소매를 붙잡았어.


"아빠, 당신이 그렇잖아요. 당신이 제게 그런 사람이에요."


레이노르는 고개를 저으며 너붕을 끌어안았어.


"아니, 내가 너를 실망시켰다. 난 실패한 아버지야. 넌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을 가질 자격이 있어. 내가 없는 게 나아."


너붕은 아버지의 낡은 망토에 얼굴을 묻고있다가 레이노르를 세게 밀어냈어.

레이노르의 말은 하나도 이해가 안 됐지. 아버지가 없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어. 아버지 신 그 자체가 와도 레이노르와 바꿀 수 없었어.

하지만 결심어린 레이노르의 눈을 보니 너붕은 레이노르를 붙잡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


"그냥 가세요. 저한테 아버지는 이제 죽은 사람이에요."


너붕은 사실 가지 말라고 애원하고싶었어. 무릎 꿇고라도 빌고 싶었지. 그의 망토자락을 붙잡고 떠나지 말라고 애처럼 울면서 매달리고 싶었어.

하지만 쓸데없는 자존심과 고집이 너붕을 막아세우고 혀만 날카롭게 만들었어.


원망 넘치는 너붕 말에 레이노르가 다시 너붕을 이해시키려고하는데 칼 경이 이제 가야한다고 재촉했어. 그도 너붕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지만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난 상황이야. 레이노르의 시체가 이제 사람들의 눈앞에 놓일텐데 살아있는 레이노르가 다시 나타나면 재앙 그 자체가 되겠지. 그리고 다시는 기회가 없을 거야.


레이노르는 너붕에게 할 말을 찾지 못했어. 딸에게 마지막으로 인사할 수 있는 기회였지만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막상 입 밖에 내지는 못했지. 시간은 촉박했고 너붕은 이제 레이노르에게 등을 돌린 상태였어.


"내 용감한 바다드래곤, 너는 언제나 내 자랑이고 나의 모든 것 이상이야."

레이노르가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했어. 자신의 진심이 조금이라도 너붕에게 닿았으면 싶었어.


"너를 매우 사랑한단다. 그리고,"


그는 마른침을 삼켰어.


"미안하단다."


레이노르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방 밖으로 나가버렸어. 이제 영영 가버린거지. 너붕이 그걸 깨닫기까지는 매우 오래걸렸어. 오랜 침묵을 견딘 끝에 너붕이 다시 레이노르를 불러봤지.


"아버지?"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어.


"아빠?"


믿기지가 않아서 다시 불러봐도 침묵만이 답했지. 너붕은 뒤롤 돌아서 빈 방을 바라볼 자신이 없었어. 그냥 그 자리에서 소리내 흐느끼며 쓰러졌지. 견딜 수 없는 고독이 너붕을 덮쳤어.

준비된 시체를 발견한 하인이 지르는 비명이 들릴때까지 너붕은 차가운 바닥 위에 누워있었어.







너붕이 험난한 사춘기를 보내는 게 보고싶었음.
2024.06.28 22:0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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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우리 바다드래곤이 겪는 일은 사춘기 그 이상 아니야? 다리 마비 돼서 못 걸을 지도 모른다는 선고 들어 약혼자는 자신의 원했던 사람은 아니고,, 죽을 힘을 다해 재활해서 두발로 제대로 걸을 수 있게 되니 친아빠는 떠나가고ㅠㅠ 우리 바다드래곤 곁에 있는 사람들 좀 이기적이라고 느껴질 정도임ㅠㅜㅠ 바다드래곤아 너가 짱이야 최고라고 카니발을 클레임한 너가 웨스트로스 최고의 왕이자 드래곤라이더가 될거야!!!!!!!!!
[Code: b5f0]
2024.06.28 23:3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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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멘붕이겠다 ㅠㅠㅠㅠㅠㅠ
[Code: a17d]
2024.06.29 09:4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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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바다드래곤을 세상이 억까한다.....
[Code: 7130]
2024.06.29 11:5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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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바다드래곤을 억까한다....ㅠㅠ
[Code: 0e80]
2024.06.29 15:0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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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슬퍼 센세ㅠㅠㅠㅠㅠㅠ
[Code: 10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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