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드리트마크는 도화선이었다.


슬픔과 기만이 가득했던 장례식에서 아에몬드는 우물쭈물 서 있었다. 용을 타고온 형과 누이는 이미 와인과 벌레에 정신이 팔려있어 그를 신경쓰지 않았다. 그만이 어머니와 배를 타고 들어왔기에 격식에 맞춘 옷을 입었고 녹빛 망토는 바닥에 끌려 불편했다. 하지만 축축한 공기가 더 답답했다. 왕비와 공주 사이에 숨막히는 긴장이 가려질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질 무렵, 허니 로이스가 도착했다. 

허니 로이스는 독특한 인물이었다.

아에몬드는 첫 만남에서 그것을 느꼈다. 사람들은 마치 무덤에서 부활한 기사를 보는것 마냥 그녀를 관찰했고 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긴 침묵을 깨고 나타난 소녀는 자신을 주의깊게 응시하는 다에몬 왕제를 무시한 채 베일의 기사들에게 둘러쌓여 냉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멀찍이 서 있는 부녀는 닮은 듯 닮지 않았다. 아버지인 다에몬 왕제의 보라빛 눈동자는 그들의 형제를 볼때마다 추악한 혐오로 물들었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왕제와 달리 비웃음으로 차 있지 않았으며, 안달족으로부터 물려받은 따뜻한 브루넷 머리칼이 턱선을 감싸고 있었다. 키는 아에몬드보다 컸지만 몸체는 가냘펐고 얼굴은 창백해 보호욕구를 불러일으켰다.


"또다른 왕재수"

아에곤이 와인잔을 돌리며 뭉개진 발음으로 말하자 어머니가 재빨리 팔을 낚아챘다.


이전부터 궁중은 그녀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에몬드의 관심은 좀더 주관적이었다. 현세대, 유일하게 용이 없는 왕족 중 하나. 그녀와 자신 사이에 보이지 않는 유대감이 있었다고 말하기엔 부끄러울 정도로 둘은 만나본적도, 대화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의무를 중요시 여기는 왕족이라는 점에서 아에몬드는 그녀에게 은밀한 동질감을 느꼈다.


가엾은 아이라고 왕은 말했다.

나쁘지 않다, 라고 할아버지는 말했다. 

그 말은 분명히 의도를 가지고 있었기에 영민했던 아에몬드는 그것을 눈치챘다.



그녀가 왕에게 경의를 표하자 그 다음 고귀한 지위를 지녔던 벨라리온 공이 나섰다. 주변을 주의깊게 둘러보던 그녀와 눈이 마주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아에몬드는 조금 긴장했다. 하지만 착각인듯 그녀는 벨라리온 공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아에몬드는 왠지 초조함을 느꼈다. 꽃과 조의, 고인의 아름다움은 그녀의 관심사가 아니었고 벨라리온 공은 그녀의 대화에서 놀라움을 느끼고 있는 듯 보였다. 베일의 남자들이 그녀를 지지했던 이유가 카락세스의 화염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었지만 베일에 대한 기묘한 증오를 가진 삼촌을 아는 왕족들은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았다.


진실은, 아린의 가주가 그녀의 통치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허니 로이스의 통치가 합당했기 떄문에.


정말이지 안타까운 일이다. 아에몬드는 속으로 생각했다. 태어날 떄부터 아버지에게 외면당하고, 홀로 영지를 지켜냈지만 아버지의 둘째 부인의 장례식에 참여한다는 것은 어떤 굴욕인지.

적법한 친자인 자신보다 라에니라가 낳은 부도덕한 사생아들 사이에 서있는 아버지를 보며, 그녀가 수치심에 얼굴을 붉힐 거라고 상상했다면 아에몬드는 왕자답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했다.

아에몬드는 내심 그랬으면 했다.


그랬다면 말을 걸 수 있었을텐데.


*




[아에곤 1세는 아린, 스타크, 라니스터 세 왕에게 충성맹세를 받았으며, 호어왕가를 멸망시켰다. 그에겐 3마리의 용과 1600명 남짓의 보잘것 없는 병력뿐이었지만 용의 막강한 힘과 공포로서 웨스트로스의 영주들을 무릎꿇렸다]


촛불이 한 밤중에 일렁거렸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아에몬드 타르가르옌은 역사서를 읽고 있었다. 잃어버린 눈구멍이 쑤시는 것을 애써 무시했다. 어린시절부터 읽었던 책이라 이미 외울수 있을 정도였지만 선조의 위대함과 강력함을 흠모했던 소년은 자신이 강인해야만 할때 이 책을 읽곤 했다. 


오늘의 검술 수업은 아에곤이 함께 했다. 무슨 바람이 불어 참석했는지 모르겠지만 좋은 의도가 없었던 것은 알 수 있었다. 라에니라는 장례식 이후 왕제와 함께 드래곤스톤으로 떠났고 형은 자신을 흠모하던 사생아들의 부재에 심사가 뒤틀려 있었다. 

늘 그랬듯이 아에몬드는 좋은 먹잇감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에몬드에게는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새끼용보다 더 강력한 용을 주장 할 것이라는 다짐, 한쪽눈이 없어지기 전보다 지금이 더 나은 것처럼 고개를 쳐들고 있는 것은 버거울 떄가 있었다. 하지만 노력해야 한다. 상속할 재산도 명예도 없는 차남은 쓸모가 없다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오래전에 꺠달았다. 결국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 그만큼 합당한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안타까워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아에곤은 왕이 될 것이다. 할아버지는 늘 그렇게 가르쳤다.  아에곤은 자격이 없지만 장자로 태어나 아에몬드가 노력해야만 간신히 얻을 수 있는 인정과 기대에 절여졌다. 그 부스러기에 허덕이는 아에몬드를 눈치채기엔 지나치게 오만하겠지. 헬레나, 다정한 누이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았지만 결국 형의 아내가 될 것이고 다에론은 형제라기보다는 지나치게 먼 타인이나 다름없었다.


 몇달 전, 왕은 그를 불러 새로운 타이틀을 내려주었다.


[ lady of the moonstone honorable consort* (문스톤 여영주 약혼자), 아에몬드는 내 형제의 딸과 결혼할거요. 왕가는 이 혼사를 통해 더욱 번창하겠지.]


기분좋게 말하는 왕의 말에 어머니가 어떤 거부도 하지 않았기에 아에몬드는 이것이 정치적 협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왕은 이 혼사를 통해 다에몬 왕제부부와 어머니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키길 기대했다.

왕은 라에니라가 아에몬드를 보며  잃어버린 동생을 되찾은 것처럼 감격하길 기대한걸까.

언제나 그랬듯 무관심 속에 세워진 낙관주의에 아에몬드는 조금 구역질이 났다. 


그리고 왕의 손인 할아버지는 더 많은 것을 원했다.


[눈 하나를 잃고 용과 베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지. 레이디 로이스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미 아에몬드는 가족을 실망시켰다-

그는 그것을 분명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눈빛과 태도에서 질책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바가르를 원했다.


[충동적인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조금은 배웠길 바란다.]


 나가보라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얼굴에 맞지 않는 안대를 보며 속살거리길 좋아하는 하인들의 비웃음이 들렸다. 아에몬드는 주먹을 말아쥐었다. 그들은 한 걸음을 더 나아가 왕비가 부정한 짓을 저질러 낳은 사생아이기 떄문에 아에몬드가 용을 길들일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몰론 저런 천한 하인들의 귓속말들은 왕자를 두렵게 만들 수 없다. 아에몬드는 어리지만 그 '누구보다' 적합한 왕자임을 부인할 수 없게 만들것이다.



나는 다에몬 타르가르옌과 달라.

아에몬드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다른 문이 열린다고 합니다. 비록 다른이들이 왕자님을 비웃고 그 상처를 자신의 즐거움으로 삼으려 하지만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사람들은 마음을 추스르고 패배감에 복수하고 말지요. 그것을 우리는 위대함이라고 부릅니다.]


아에몬드는 편지와 함께 전설적인 맹인기사의 일대기를 소중히 책상 아래에 숨겨두었다. 석화된 알이 담긴 상자 속이었다.


그는 잘 할 수 있다. 불미스러웠던 만남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아내는 적어도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푸른빛이 감돌만치 가까웠던 눈동자가 떠올랐다.

만약 이 미약한 신뢰가 보답받을 수 있다면 그는 아에곤이나 라에니라처럼 방종하게 색을 탐하거나 다에몬처럼 미래의 아내를 수치스럽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방을 정리한 후 아에몬드는 목검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결국 그는 약한 것이 싫었다.


*



너붕붕은 안녕이라는 말로 시작해서 아락스의 삐뚤뺴둘한 그림으로 끝나는 루체리스의 편지를 보고 시시덕 거렸음. 정말 별거아닌 안부 편지라 마음이 푸근했지만 사촌언니의 오랜 스파르타로 다져진 안테나가 심상치 않게 움찔거리고 있었음

뭐지

 나붕 뭔가 심각하게 놓치고 있는게 있나...?

성에 거주하는 셉타가 은근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자 너붕붕은 일단 기도나 하라고 내쫒았음.

드리트마크의 사랑둥이로 자라나 애 답게 편지에는 그 나이 또래에 오타가 가득했고 가끔 잉크(이 시대에 질 좋은 잉크란 거의 없다!) 로 쫙쫙 그은 자국까지 있었음.

[저번에 구해줘(오타 고침줄) 서 고마워요. 놀라 가두 되나요? 바엘라와 레아나는 누나가 보고싶데요!]

응 안돼. 

가뜩이나 눈치보이는데 네가 오면 예술적인 내 고무줄타기가 팅팅 끊겨버린다고. 

그래도 매번 편지에 일과표 보내는 헤르미몬드 보단 편지같은지라 오랜만에 너붕붕은 웃었음. 아 이게 청량이지.

그러고보니 얘한테 답장을 핑계로 바다뱀에게 무역 꿀팁좀 부탁해볼까? 생물학적 애비가 공주와 결혼하는 바람에 지금은 공주와 사이가 서먹할 텐데.

너붕붕은 좋은 생각이라고 무릎을 쳤음



*





*여왕의 배우자 , 남편을 칭하지만 여기서 너붕붕이 영지와 타이틀을 가진 로드이므로... 대강 넘어가주셈

참고로 과거 다에몬은 저기서 honorable이 빠졌는데 실제 약혼자가 아니라 정식 남편이었기 때문임.

* 너붕붕은 편지 쓰기가 귀찮아서 멋져보이는 노래가사를 가져다썼음
* 꼬마 아에몬드의 자존감은 바가르 할머니가 가져갔으니 안심하라굿




 
2024.06.26 21:2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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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미몬드ㅋㅋㅋㅋㅋ 잘못 읽은 줄 알고 다시 확인했네ㅋㅋㅋㅋ 아에몬드 시점에선 시리어스했는데 허니 시점으로 오니까 와장창인 거 너무 웃겨요 센세ㅋㅋㅋㅋㅋㅋㅋ 아니 근데 타인 시점에선 허니가 차가운 베일 여자로 보였구나.... 속은 깨발랄 그 자체인데
[Code: dfa5]
2024.06.26 21:2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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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와줬구나ㅠㅜㅜㅜㅜㅠ 하오드시즌2 시작하고나서 센세 글 정주행 했었는데 와주다니 너무 고마워ㅠㅜㅠ 루크 단 몇줄만의 편지만으로도 귀엽다ㅋ큐ㅜㅠ 허니야 오토가 너를 노린다 정신줄 꽉 잡아!
[Code: a4f2]
2024.06.26 22:2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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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당신만을 기다렸어., ㅠㅠ
[Code: 2b6a]
2024.06.26 22:2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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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헉 센세 아에몬드랑 허니 시점 분위기차이 미쳤다! 어나더!
[Code: d5d5]
2024.06.27 01:2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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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제목 보자마자 오마이갓 외치며 들어왔어!!!! 아에몬드 시점으로 보니까 되게 새롭다 ㅠㅠㅠㅠ 센세 제발 어나더를
[Code: e4fa]
2024.06.28 11:4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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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기다리느라죽는줄알았어와줘서고맙고우리평생함께하자보자마자읽고또정독했어남의시선으로보는허니정말멋지구나센세가최고야항상사랑해
[Code: a6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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