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보수적인 집안이라 뒷목을 잡고 쓰러지거나 당장 헤어지라고 협박하거나 호적에서 파버릴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하고 입을 여는 행맨이었음 그런데 의외로 담담하게 행맨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부모님임 물론 아들이 처음으로 남자인 애인을 공개하면서 이미 동거까지 하고 있다 허락한다면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는데 놀라지 않을 수는 없었지만 재떨이가 날아다니고 가문변호사들에게 연락해서 유서를 수정하고 그런 난리법석은 아니었던거임 그리고 행맨의 말이 끝나고도 한참동안 아무말 없다가 드디어 꺼내는 첫마디가 


"그래서 걔도 탑건 출신인거냐?"


여서 행맨 허탈해질듯 "아 지금 그게 중요해요 아버지?" 하고 따져드는 행맨한테 "며느리가 남자라고 하면 조건이나 출신배경을 대충 볼거라고 생각한거냐? 도대체 세러신을 뭘로 보고.." 하면서 혀를 차길래 탑건 출신 맞다고 심지어 나처럼 수석이었고 미라클미션 차출되느라 25살 나이에 대위까지 진급한 천재 WSO라고 하니 듣고 있던 시니어세러신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피어오름 1차 관문은 통과했는지 헛기침 한번 한 후에 양친은 모두 건강하시냐면서 에둘러서 슬쩍 밥의 집안배경도 물어봄 행맨이 질린다는 표정으로


"로버트 플로이드라니까요. 걔 아버지가 플로이드 전 대통령이에요."  


라고 대답하는데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세러신 내외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손뼉을 짝짝짝 치겠지 아 그럼 진작 그 얘기부터 하지 뭐하러 사실은 남자를 사랑하니 뭐니 혼자 비장한 척은 다 했냐고 그냥 전 대통령 아들과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있습니다 했으면 이렇게 빙 둘러서 물어볼것도 없지 않았냐고 오히려 역정내는 부모님임 행맨 지금까지 고민한 시간들이 다 부질없었다는 생각에 말문이 막혀서 더이상 반박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다 빨리 상견례 날짜 잡자는 재촉까지 받으면서 세러신 저택을 나왔을듯



그렇게 너무 열려있는건지 너무 속물적인건지 모를 부모님에게 시달린 행맨은 아무튼 원하던 결론이 났으니 조금은 찝찝하지만 기쁜 마음으로 밥에게 집으로 돌아간다는 문자를 보냈음 기다리고 있었는지 밥에게서도 바로 어땠냐는 답장이 돌아왔고 대답 대신 방금 도착한 시니어세러신의 문자를 캡쳐해서 보내줌


[아들, 다음번엔 우리 새아가랑 같이 오너라. 저녁식사 한 끼 같이 하자.]


'새아가'라는게 설마 나를 말하는거냐며 깜짝 놀라는 밥에게 많은 말 대신 그냥 네 얘기를 하니 맘에 들어하셨다고 대충 둘러대는 행맨이겠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니까










행맨밥 파월풀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