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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2 22:11
1. 풋사랑 https://hygall.com/592799472
2. 기억상실 https://hygall.com/593025990
3. 입맞춤 https://hygall.com/593323887








4. 흉터








똑똑-



그 후 각자의 방에서 쉬고 있던 폴이 레토의 방을 찾았어. 레토는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다 폴의 방문에 몸을 일으켰어.



"죄송해요 저 때문에 미라가 떠난 거죠."
"아니야 폴. 너 때문이 아니야. 나 때문이란다... 내가 그녀를 실망시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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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히 피곤해진 레토가 안경을 벗고 눈을 비볐어. 지치고 무기력했고 나약해진 기분에 휩싸였어.

레토는 폴을 지키지 못했고, 평생 가문이 일군 가업도 잃었으며, 이제는 남은 여생을 함께 하기로 마음먹은 미라 또한 잃었어. 모든 게 엉망이었어. 전부 제 탓처럼 느껴졌고 자신이 좀 더 강인했다면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 주지 않았을 거란 의심이 지워지지 않았어. 레토는 스스로 패배한 아들이자 실패한 가장, 낙오자에 불과한 남편이라는 사실을 실감했어.

레토는 깊이 숨을 들이쉬었고 그 순간 울음이 터져 나왔어.

폴은 침대 위로 올라와 레토의 등을 토닥였지만 한번 터진 눈물은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흘렀어. 레토는 폴이 이끄는 데로 폴의 목과 어깨가 이어지는 부분에 이마를 대고 조용히 흐느꼈어. 위로해 주는 폴 옆에서 레토는 완전히 지치고 약해진 채 허물어졌어.

폴은 천천히 레토를 침대에 눕히고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안심시켰어. 그 위로하는 몸짓에 레토의 흐느낌이 서서히 멈추었어.



"...너에게서 그녀의 냄새가 나."
"같은 샤워용품을 사용했을 테니까요. 거의 계속 같이 살다시피 했잖아요."



손등으로 눈을 가린 채 레토가 고개를 가로저었어. 레토는 다른 사람을 느끼고 있었어. 폴에게서 다른 여자를 느끼고 있었고 폴도 그걸 눈치챘지만 오히려 레토의 목 깊숙이 고개 박아 레토가 자신에게서 나는 향을 맡을 수 있게 했어. 레토는 조금씩 따듯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는 걸 느꼈어.

두 사람은 서로 아무 말도 없이 있었어. 폴은 여전히 한 손으로 목을 받치고 있었고 다른 손으로는 레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어. 그러더니 그 부드러운 손이 아직 눈물 자국이 남아있는 레토의 뺨으로 내려와 감싸 고개를 숙여 키스하려 했어.



"하지 마."



레토가 중얼거렸지만 말뿐이었어. 그는 조금도 저항하지 않았고 눈을 감은 채 폴의 키스를 받아들였어. 그리고 그 입맞춤은 순간의 충동이나 굴복이 아니었어. 자신을 바라보는 폴의 눈길에서, 순간적으로 폴의 눈이 감기는 것에서, 애써 턱을 당기며 자제하는 모습에서, 그러다 갑자기 거칠게 자신의 혀를 빨아올리는 것에서 그것이 무의식적인 행동이며 폴이 의도했던 것이 아님을, 하지만 폴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행동임을 알 수 있었어.

폴은 레토의 몸 위로 자연스럽게 몸을 밀착시켜왔고 그 입술이 레토의 목을 따라 내려가 살을 빨아들여 멍자국을 남겼어. 레토의 동의도, 허락도 받을 필요 없는 충격적인 친밀감이었어.

레토는 미세하게 떨리는 자신의 올리브빛 육체 위로 짙은색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서서히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았고 그다음부터 자신의 몸의 감각들 외에는 아무것도 의식할 수 없었어. 폴의 입맞춤은 티셔츠 올라간 목 쇄골 가슴 배 골반 아래로 차근히 내려와 레토의 바지를 아래로 내리고, 마침내 입술을 벌려 레토의 음경을 입안으로 집어넣었어.



"음,"



잠시 레토의 몸이 움찔하고 경직됐지만 거부는 없었어. 폴은 레토가 밀어내지 않는다는 걸 확신하고나자 그의 허벅지에 들어붙어 혀로 맛보며 부드럽게 빨아들였어.

레토는 온몸에 전율이 퍼지는 걸 느꼈어. 손등으로 얼굴을 가린 채 움찔움찔 떨던 레토가 폴의 어깨를 움켜잡자 폴이 힐끗 한번 보고는 더욱 깊이 빨아들였고 레토는 흐느끼듯 우는소리를 냈어.

그러면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이름을 내뱉었어.

영원히 사랑하겠다 맹세한 여자. 죽는 날까지 사랑을 맹세한 여자의 이름.



"하아... 제시카."



그래요. 그러실 줄 알았어요.



폴은 은밀히 미소 지으며 입을 떼고 레토의 골반으로 입술을 옮겼어. 폴의 입술은 마치 입술로 몸의 형상을 새기려는 듯이 고통스럽게 레토의 몸을 타고 올라왔어. 레토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아랫입술을 깨물었고 폴이 레토의 입술을 떼어내며 난폭한 입맞춤으로 방금 레토가 스스로에게 주었던 것보다 더 큰 아픔을 주었어.



'당신은 나를 허락할 거예요.'



폴의 입맞춤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어. 그 생각은 언어가 아니라 근육의 긴장으로, 해야 할 일을 그저 하려는 폴의 의지와 긴장으로 존재했어.



'당신은 나를 허락할 거예요.'



그것은 애원도, 기도도, 요구도 아니었어. 그저 사실의 진술이었어. 레토가 기억하는 과거가, 폴을 잃을뻔했던 기억이 그 진술을 구성하고 있었어. 레토는 분명한 형태를 지녔으면서도 레토의 몸을 채우는 액체이기도 한 폴의 입술을 느끼며 자신의 입속을 유린하는 혀를 받아들였어.



'당신은 나를 허락할 거예요. 우리가, 당신과 내가 이런 존재들이라면. 우리가 단둘만이 세상에 남아있다면. 당신이 다른 것들을 전부 놓쳐버렸고 나마저 놓쳐버릴 수 없다면. 당신은 나를 허락할 거예요.'



폴의 키스에서 희열에 찬 확신을 느껴졌어. 그것은 희망도 믿음도 아니고 단지 폴의 앞에 있는 레토에 대한 숭배 행위였어. 폴의 입맞춤은 입술이 닿는 곳마다 피의 박동으로 느껴졌고, 그의 화답하는 심장박동으로 들리는 듯했어.

폴이 두 팔로 레토의 다리를 안아 들자 레토는 폴이 잡고 벌리는 데로 몸을 축 늘어뜨린 채 무기력하게 손길을 받아들였어. 그리고 폴의 입술이 레토의 목에 닿았을 때 폴이 레토의 안으로 들어왔고 껴안듯 천천히 뿌리 끝까지 한번에 밀어넣자 조용하고 희매해졌던 레토의 표정이 굳으며 잠깐 동안 숨이 막혔어. 그러더니 다시금 폴이 허리를 물렀다 강하게 쳐올리자 레토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옆으로 젖혔어.

처음에는 부드럽게 그러고는 빠른 속도로 점점 더 격렬하게 허리를 쳐올렸어. 자포자기한 사람처럼 늘어져있던 레토의 몸이 몰려오는 뜨거움에 고개를 뒤로 젖히고는 온통 어지럽게 흔들리는 시야에서 유일하게 매달릴 수밖에 없던 폴의 목을 끌어안으며 떨리는 입술을 벌리며 애원했어.



"제발, 아 그만."



레토의 얼굴에 닿는 폴의 숨결이 뜨거웠고 그의 입술 밑에서 레토는 파르르 떨었어. 폴은 다시 그의 위로 다시금 아래로 움직이며 허리짓하고 잡아 벌린 오금을 내리누르며 깊이 더 깊이 파고들었어.
















레토가 눈을 떴을 때 지난밤 기절하듯 잠든 자신의 침대 위였어. 그리고 고개를 돌려 옆을 보자 그 자리에 있어야 할 폴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어. 놀란 레토가 벌떡 일어나 다급하게 주위를 둘러봤고 방과 욕실 거실 부엌 서재를 돌며 폴을 찾아다녔어. 심지어 지하실과 다락방까지 확인해 봤지만 폴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어. 뒤늦게 폴의 부재가 실감한 레토는 의자에 주저앉듯이 앉았어.

그리고 레토는 지난밤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 돌이켜 봤어.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반드시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일, 잡을 수 있었는데 놓친 일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절망감에 빠졌어. 그리고 그때였어.



"저 왔어요."



폴의 목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2층에 있던 레토는 벌떡 일어나 저절로 다리가 움직여 아래로 달려내려갔어.



"폴!"



환히 빛내며 자신을 맞이하는 레토의 얼굴에 폴도 따라 미소 지으려다가 레토가 걱정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는 그럴 엄두를 못 냈어. 폴의 손에 무언가 들려있다는 것도 못본채 레토는 폴을 끌어당겨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내려온 목덜미를 껴안았어. 레토가 조금 떨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폴이 짐짓 애처롭고 깜짝 놀란 얼굴로 고개를 숙였어.



"저는 그냥 잠깐 바람을 쐴 겸 커피를 사온 거예요.. 걱정하시는 그런 일로 사라진 게 아니라."



폴은 레토가 무엇을 걱정했는지 알고 있었어. 그랬어. 그 짧은 시간에 레토는 폴이 죽었다고 생각했어. 항상 불안해하고 걱정했듯이 마침내 그런 일이 벌어지고 만 거라고.

레토는 그게 터무니없는 상상이었다는 걸 알면서도 앞으로 자신이 살아가는 동안 내내 이와 같이 살아가리라는 사실을 깨달았어. 폴이 늦도록 귀가하지 않은 날, 전화를 하지 않을 때, 말없이 친구 집에서 자고 올 때 지금과 같은 공포에 빠져 폴이 죽음의 문턱을 건너고 있을지 모른다는 절망에 빠지리라는 것을.

폴은 아직 떨고 있는 레토를 진정시키려는 듯 부드럽게 등을 쓸어주며 소파로 이끌어 앉혔어. 그리고 레토의 손을 잡아당겨 손등에 한번 다시 손바닥에 한번 입 맞췄어.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레토가 조용히 폴에게 물었어.



"...이거 하나만 알려주렴. 혹시 기억이 돌아온 거니?"



레토는 폴을 또다시 잃었다는 두려움에 빠진 잠깐 동안 지난밤 일을 곱씹다가 자신이 폴을 제시카라 불렀던 게 떠올랐어. 그리고 그때 폴은 놀라거나 당황해하는 대신 예상했다는 듯 반응했고 심지어는 어딘가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어. 하지만 레토의 물음에 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어.



"아뇨. 하지만 곧바로 눈치챘어요."



곧바로라는 단어에 언제 무엇을 이라는 의문이 따를 겨를도 없이 폴이 말을 이었어.



"당신의 눈빛에서도, 집에 돌아온 직후에도, 제 방에 들어섰을 때도, 제 머릴 쓰담아주셨을 때도요.
그리고 저를 제사카로 혼돈했을 때도 그게 제 생모란 걸 곧바로 눈치챘어요."



생모



레토는 눈을 내리깔았어. 폴은 자신이 아버지라는 걸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과하고 그를 안았어.



"하지만 뭐가 다를까요? 제가 기억이 돌아왔어도,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어도, 눈치를 챘어도, 눈치를 못 챘어도, 혹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아니라고 하더라도, 결과는 같았을 거예요. 저는 당신을 원해요 레토. 모든 기억 속에서 당신을 원해요."
"....."
"그리고 당신은 제가 다치지 않기를 원하죠."



폴은 '레토, 당신도 절 사랑하나요?'하고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어. 이미 레토가 폴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그것은 진실 이상의 것이었어.













그 후로 폴은 거의 매일 밤 그를 원했어. 먹고 싶은 음식을 원하듯 필요한 것을 떠올리듯 몸을 눕힐 푹신한 침대를 그리듯 무턱대고 레토를 원했어. 폴은 레토의 친절한 성품과 풍만한 몸매와 윤기나는 피부, 사랑스러운 눈동자 같은 것들을 걸핏하면 찬사로 표현하면서 그러한 말과 사랑을 강조하듯 레토를 쓰다듬고 포옹하고 키스했어.

폴은 레토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연인으로서 레토를 대했고 레토는 폴에게서 흥분을 느껴본 적은 없지만 대체로 눈을 감고 머리를 뒤로 젖힌 채 그를 받아들였어. 그렇게 일을 치르고 나면 레토는 전혀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얼마 동안 생각에 잠기다가도 곧 폴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며 잠들었어. 아들과 몸을 섞고 마치 사랑스럽다는 듯 쳐다보는 아들의 눈을 마주 보고 있으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레토는 후회하지 않았어.

살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을 겪듯 폴이 허리를 붙잡고 박아댈 때면 레토의 얼굴이 붉어졌다가 가끔 아주 창백해지기도 했어. 그리고 언젠가는 그런 일을 마친 다음에 폴은 레토가 일부러 다른 방에 있는 화장실에서 수건을 대고 소리 없이 토하는 걸 눈치채기도 했어.

하지만 폴의 시선이 미치는 곳에서라면 레토는 언제나 상냥하고 잘 웃고 폴이 원하는 대로 순순히 따라줬어.













주말이 되자 기억 되짚기 게임의 관례대로 두 사람만의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어. 일전에 했던 약속대로 매주 일요일마다 찾는 일과였지. 이전보다 인기가 늘어난 식당은 이제 이른 오전에 출발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 지경이었어. 그래서 그날은 분주하게 일찍부터 움직였어.

레토는 지난주 폴이 새로 골라줬던 셔츠를 입은 참이었어. 몰을 돌아다니다 골라준 것으로 평소 레토가 입는 스타일보다 캐주얼한 편이었지만 잘 어울린다는 폴의 칭찬에 미소 지으며 오늘 데이트 때 입겠다고 약속했었지.

부엌으로 들어온 레토는 가위로 손목에 달린 텍을 잘라냈어. 그러다 텍이 떨어진 것을 줍기 위해 몸을 숙였고 구석지기에 무언가 반짝이는 작은 물건이 눈에 들어왔어.



"?"



레토가 허리를 좀 더 숙여 집어 들어보니 커프스 버튼이었어. V자 형태의 금속으로 자주 착용하지 않는 물건이었어.

언제 이게 떨어졌지? 기억이 잘 안 났어. 들어서 자세히 보니 금장 끝에 피 같은 게 조금 묻어 말라비틀어져 있었어.

그리고 그 순간 레토는 불현듯 지난번 자신이 폴의 머리를 잘라줬던 때가 떠올랐어 평소보다 짧게 자른 탓에 항상 머리에 가려져있어서 광대 옆쯤에 몰랐던 작은 흉터 같은 게 보였어. 사고 전에는 본 적 없는 흉터였어.



"그게 뭐니?"
"아 이거요?"



폴은 손끝으로 흉터를 만지작거리며 어쩐지 마음에 든다는 듯한 은밀하면서도 즐거운 표정으로 말했어.



"비밀이에요."



그리고 동시에 레토는 커프스를 마지막으로 착용했던 날이 언제인지 기억났어.

레토가 폴의 뺨을 때렸던 날, 그 잊을 수 없는 절망의 날, 폴의 얼굴이 머리에 가려져 그의 마지막 표정을 살펴보지 못했던 그날 착용한 커프스였어.



"뭐 하고 계세요?"



레토가 나오지 않자 폴이 찾으러 왔고, 커프스단추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채 멍하니 서있던 레토를 발견했어. 폴은 물끄러미 그 단추를 바라보다가 다시 레토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어. 폴의 얼굴은 그 물건이 무엇인지 알지만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는 듯한 얼굴이었어.

레토는 폴의 얼굴을 살폈어. 그 시선이 절벽 끝에 매달려 작은 균열이라도 찾으려고 미친 듯이 더듬는 손과 같았지만 그 절박한 시선은 폴의 얼굴이라는 무결점의 반들거리는 암벽에서 자꾸 미끄러졌어.

폴은 어떠한 개인적인 감정도 없이 오히려 레토에게 자신을 보라고 요구하듯 무표정하면서도 엄격하게 서있을 뿐이었어.



"그날 기억나요? 당신이 처음으로 제게 손찌검했던 날이요."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하는 폴의 모습이 그 말의 뜻을 실감 나게 만들었어. 레토는 '그럴 리가 없어.' 하는 부정의 외마디를 속으로 내지르면서도 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차분히 대답했어.



"그래 기억해."
"원한다면 또다시 그렇게 해도 좋아요."



레토는 폴의 눈빛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어. 오히려 레토가 무슨 대답을 찾고 있는지 알고 있지만 자신의 얼굴에서는 그것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하는 듯한 조롱만이 느껴졌어. 그 단호한 얼굴에 레토는 문득 자신은 폴에게 의문을 제기할 자격도 비난할 권리도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어. 레토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폴을 이해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는 사실을 상기하며 고개를 조금 숙였어.


"그래선 안됐어. 지금도, 앞으로도 마찬가지이고.."



레토는 굴복과 자기 자신을 질책하는 죄책감 담긴 낮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폴이 고개를 저었어.



"아니요, 저는 당신이 그런 생각을 가졌던 것을 잊지 않길 바라요. 과거의 당신은 옳았어요. 당신이 바깥세상에 속하길 원하는 한 나를 파괴해야만 해요. 그리고 지금 당신 앞에 있는 두 갈래 길 중 하나는 당신이 그렇게 해야지만 갈 수 있어요."



레토는 아무 대답 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었어. 그러다 자신의 고뇌와 의문에 필사적으로 저항하듯 고개를 흔들었어. 폴은 레토의 머리카락이 경련하듯 움직이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어.



"당신이 나와있는 이 집이 아니라 바깥의 세상과 함께하길 원한다면 지금 선택해도 좋아요. 하지만 그 의미를 완전히 알고 선택해요."



하지만 뭐가 다를까요? 모든 기억 속에서 당신을 원해요. 그리고 당신은 제가 다치지 않기를 원하죠.


레토는 폴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다시 제 손바닥을 펴봤어. 하지만 막상 다시 그 단추를 보자 더 이상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어. 레토가 그 단추를 통해 들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폴의 마음의 소리뿐이었어. '이것은 내가 갖지 못했던 모든 날에 대한 보상이에요.' 그리고 자신의 대답 또한 들리는 듯했어. '이것은 내가 얻을 모든 날에 대한 대가야.' 그러자 그 단추가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더 이상 의식되지 않게 되었고, 폴이 다쳐서 병원에 누워있었던 그 몇개월의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한 생각만 떠올랐어.

레토는 잠시 두 눈을 감았다가 떴어. 이제 레토의 얼굴에 멍하던 표정이 사라지고 잠시간 비쳤던 진실과 마주하는 두려운 이의 표정도 사라져있었어. 그곳에는 오직 폴이 평생토록 사랑한 얼굴... 주름진 뺨과 이마, 희끗희끗한 머리가 부드럽게 녹아든 레토의 인자하고 평온한 얼굴만이 남아있었어. 레토는 긴장감이 말끔히 사라지고 확신감에 찬 어투로 말했어.



"폴, 나는 너를 사랑해. 너에게 사랑의 표현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하고 설사 그게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방식의 사랑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건 같은 뿌리에서 나온 감정이니까 언제든 변함없이 사랑할 거야. 그러니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너와 나는 서로에게 사랑하는 존재일 거야. 나는 너를 항상 사랑할 테니까."



폴은 진지한 얼굴로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엄숙한 서약이라도 하듯 천천히 물었어.



"저를 용서해 주시겠어요?"



레토는 놀란 표정이 되더니 그 말의 의미를 깨닫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대답했어.



"아니, 용서할 건 없어. 처음부터 죽는 날까지 나는 너의 편일 테니까."



레토는 폴에게 다가가 양손을 잡고는 고개를 조금 들어 가볍게 입을 맞췄는데 두 사람의 과거를 정리하고 봉인하는 의미의 입맞춤이었어. 폴은 레토가 한 행동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속삭였어.



"이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계세요..?"



폴은 레토의 표정을 부드럽게 만든 감정의 정체가 동정심일까 궁금했어. 그것은 미소 같기도, 온화함 같기도, 고통 같기도 하고 그런 것들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드는 더 위대한 감정 같기도 했어.



"그래. 그리고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 또 해줄 수 있어."



그러면서 레토가 폴의 뺨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감싸고 머리를 숙이게 해 이마에 키스했어. 그건 폴의 용서하고 받아들이고 폴의 감정을 완전히 인정해 주는 아버지의 선물이었어.



만약 레토가 폴에게 조금이라도 덜 소중한 존재였다면 폴은 그날 밤 그냥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에게 죄송하다 사과했을 거야. 하지만 그날 아버지에게 뺨을 맞는 순간 아버지가 자신에게 어떤 존재이고 어떤 의미이고 그리고 아버지와의 미래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를 깨달았을 때, 폴이 레토를 떠나 차에 오를 수밖에 없었어. 자신의 인생을 바쳐서, 필요하다면 목숨까지 걸고서라도 폴은 아버지를 구해야만 했어. 아버지가 자신에게 돌아오게 하고 자신과 아버지의 집을 다시 둘만의 집으로 되찾을 수 있도록 해야만 했어. 아버지를 노리는 오염된 안갯속에서 비틀거리며 세월을 낭비하게 내버려 둘 수 없었어. 그래서 폴이 할 수 있는 가장 놀랍고 가장 손쉬운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어. 그것은 자신의 모든것을 거는 거였어.

폴은 레토의 앞에 미끄러져 내려가 그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그의 허리에 얼굴을 묻으며 껴안았어.



"바보 같은 아버지... 당신이 가여워요."



폴이 애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어.

레토는 폴을 자신의 곁으로 일으켜주려 했지만 폴은 그의 허리에 얼굴을 묻고 연민에 가까운 애정을 느끼며 아버지의 품에 매달렸어. 그래서 레토는 폴을 일으키려던 것을 그만두고 폴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줬어. 아기를 품에 안듯 조심스러웠어.

폴은 머리에 레토의 손길을 느끼며 그의 굳건함에 보호받는 기분을 느꼈어. 그 굳건함은 레토가 폴의 고통을 알고 느끼며 이해하고 있다고, 자신이 그의 짐을 덜어주겠다고 말하는 듯했어. 폴은 이것이 진짜 사랑임을 느꼈어. 언제나 나를 보호해 주는 아버지의 진짜 사랑이었어.












듄굗 폴레토 티모시오작 레토텀
2024.05.12 23:3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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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너무 완벽한 작품을 보면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될지 모른다는게 이런거구나..선생님 저한테 무슨 짓을 한건가요 머리 한대 개쎄게 맞고도 정신이 안 돌아올정도임ㅠㅠㅠㅠ

기억이 돌아오든 아니든 뭐가 다르냐는 것과 모든 기억 속에서 ‘지극히 당연하게’ 레토를 원해오는 폴 진짜 개미쳤다 아들의 깊고 진득한 사랑에 어쩔도리도 없이 변함없이 사랑해주고 허락하고 마는 레토 비련하고 처연하고ㅠㅠㅠㅠ폴레토 그 잡채다…와

이 자부는 처음부터 죽는날까지를 넘어서 레토 말대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서로에게 사랑하는 존재일듯..심지어 전혀 다른 시간대에서 태어나도 그럴거 같음 그게 폴레토니까ㅠㅠㅠㅠㅠ어떻게 이런 명작을 쓰셨어요 센세ㅠㅠㅠㅠ센세 쪽으로 절하고 잘께요 내가 사랑해
[Code: dc16]
2024.05.13 00:3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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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센세 4편보고 기쁨의 댄스를 추고있었는데 끝이라고 써져있어서 울면서 아껴보고있어요......둘의 관계성이 진짜 미쳤다....
[Code: 81c4]
2024.05.13 00:5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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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시발....센세.........ㅠ하...시발...센세......아....싀발....센세.......ㅠㅠㅠㅠ하.........센세....내가.....하..센세.......하........센세.....아아이엄청난순애효도를 봐....내가...아..진짜...아...ㅠ...아진짜... 아너무...아..ㅠ...센세......ㅠㅠㅠㅠㅠ........아이 진짜 표현을 어케해야 아 진짜 ㅠ 아!!!!!!!!!!!! 진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센세!!!!!!!!!!!!!!
[Code: e93f]
2024.05.13 01:4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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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내 세상이 무너졌어
[Code: f052]
2024.05.14 23:4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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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 사랑해..
[Code: b44a]
2024.05.14 23:4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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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이 대작을 무료로 봐도 되는건지 ㅠ 우우.. 너무 좋아...움쪽
[Code: b4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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