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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6 21:22
주4일제 왜 영원하지 않은 거야


Baldur's Gate 3_20240414112255.png



자헤이라와 민스크의 대사는 효도더지 오린전 후 컷씬을 참고함

동료퀘 엔딩 ㅅㅍㅈ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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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 나는 왔는가? 그건 아직도 하나의 물음.

여기까지 온 나의 길, 이 길을 나는 나도 모르게 왔고

오늘 이제 그리고 여기 천국처럼 즐거운 날에

고통과 즐거움이 친구처럼 서로 만난다.

둘이 합하면, 오 감미로운 행복이어라!

혼자인데, 누가 웃고 싶으랴, 누가 울고 싶으랴?

 

-괴테, <성찰의 서> 中

 

 

 

 

 

 

 

"나 말이야, 비록 짧았지만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었어. 너희 덕분에 마지막으로 엄청나게 즐거운 모험을 할 수 있었다고. 그러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마."

 

 

카를라크는 물질계에서 더는 버틸 수 없는 심장을 끌어안고 산화했다. 넝마가 된 도시에 부는 바람이 한때 그의 육신이었던 재를 영원한 여로로 실어날랐다. 그의 웃음소리는 오로지 그를 사랑했고 그가 사랑했던 동료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걱정할 필요 없어. 샤 신도의 낡아빠진 잔재주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아니까. 게다가 그들의 뻔한 계획을 알려줄 친구가 내부에 있으면 더욱 그렇지. 그래도 네 말대로 최대한 몸 조심하며 지내볼게."

 

 

섀도하트는 샤 신도들의 끈질긴 추격 끝에 이름 없는 땅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샤의 추종자들이 그의 친우가 가진 기억을 지우고 사냥에 가담하게 했다. 셀루네의 표식이 그려진 비석과 신성한 유물이 그가 남긴 유일한 유산이 되었다.

 

 

"나는 혜성이다. 블라키스를 불태워 잿더미로 만들고, 그의 성구를 산산조각낼 때까지 난 쉬지 않아. 내 종족은 비로소 자유로워지리라!"

 

 

레이젤은 오르페우스의 의지를 이어 영계의 바다를 향해 날아갔다. 그의 은검은 불멸의 왕을 참수할 때까지 철혈을 흘리길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의 앞길에는 종족의 자유를 탈환할 전장에서의 무한한 사투가 놓여있다.

 

 

"발더스 게이트의 재건은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어. 도시의 변화가 궁금하거든 언제든지 와도 좋아. 대공의 친구로서 누릴 수 있는 온갖 환대와 특혜가 너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야. 이크, 내가 이런 말을 했다는 건 비밀로 해주고!"

 

 

윌은 검은 태양의 해에 그가 사랑하는 도시의 일부와 함께 숨이 끊어졌다. 그는 마지막까지 저주의 근원을 파괴하기 위해 고투했으나 그의 육신을 부스러뜨리는 파멸의 시간이 너무 이르게 찾아왔다. 미조라가 그의 시신을 거두어 변경의 검을 기리는 묘지를 만들고 지옥으로 돌아갔다.

 

 

 

절망은 없다. 파멸만이 있을 뿐.

 

 

 

"애송이 위저드, 이게 네 대답인가?"

 

 

자헤이라는 너를 명확한 시선으로 응시하고 있다. 한 세기가 넘는 세월을 살아온 현자는 기만의 가면을 능숙하게 투시해 네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시선이 적을 관통하는 창처럼 날카롭게 벼려져 있다. 그는 악으로부터 도시를 수도 없이 구한 영웅이다. 그가 너를 바라보는 눈동자에서 작금의 네 위치를 체감할 수 있다: 너는 사냥해 마땅한 시민 학살자이자 괴물이라는 것을. 네가 게걸스럽게 먹어치운 영혼들이 네 목숨을 연장한 이상, 너는 그러한 명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것은 너와 네 연인만이 공유하는 비밀임에도 불구하고 너는 그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것이 네가 아직 잃어버리지 않은 인간으로서의 일면이라 생각한다.

 

 

"늙은 하퍼. 지금쯤이면 내 궁전을 찾아오리라 예상했지."

 

 

침묵하는 너 대신 아스타리온이 그의 질문을 가로챈다. 그는 지루한 수업을 듣는 학생처럼 교차한 다리 끝을 까딱거리고 있다. "옛 동료를 찾아온 것 치고는 너무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같지만 말이야. 뒤에 데려온 것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줄 선물인가? 쓸데없이 과한 친절에 몸둘 바를 모르겠는데."

 

 

자헤이라가 가볍게 코웃음 친다. "아스타리온.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우리에게 놓인 과제가 전부 해결된 후에는 내가 직접 참견쟁이 이웃이 되어주겠다고 말이야. 해묵은 잔소리를 늘어놓기에는 오늘이 적시일 것 같더군."

 

 

"아, 그 말을 들은 날부터 오늘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지. 우리 모두에게 감개무량한 순간이군." 아스타리온의 손이 눈앞에 활자들을 늘여놓듯이 움직인다. "'현명한 자헤이라가 기나긴 인생에서 가장 멍청하기 짝이 없는 선택을 저지른 날'. 기념일의 이름은 이걸로 정하면 딱이겠어. 내 아이들에게 영웅의 얼굴을 본딴 가면을 씌우고, 그들이 죽어가는 순간을 재연하는 극을 올리라고 해야겠군."

 

 

"여전히 혀가 잘 돌아가서 다행이군. 충분히 떠들도록 해.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영원히 침묵하게 될 테니."

 

 

자헤이라의 등 뒤에서 하퍼들이 전투를 개시할 자세를 다잡는다. 그들은 자헤이라의 명령이 떨어지면 적을 향해 쇄도할 검의 비들이다. 그들의 후열에 선 드루이드들은 그 비를 더욱 치명적인 속도로 날려보낼 돌풍이나 다름없다. 하퍼와 드루이드 결사단. 그들은 검은 태양이 하늘을 차지한 이래 선홍빛 궁전에 네 번째로 침입한 이들이다. 도시를 되찾으려 했던 불주먹 용병대와 아홉손가락 킨의 길드, 마지막 남은 거르족 사냥꾼들이 차례로 이 궁전에서 최후를 맞이했고 이제 그들의 임종사를 낭독할 차례가 온 것이다.

 

 

너는 결사단의 선두에 서 있는 할신을 본다. 그의 자세는 과거와 다름없이 곧고 점잖은 위용으로 다듬어져 있다. 그러나 너를 응시하는 눈동자는 서글픈 분노를 호소하고 있다: 왜 우리가 이리 되었소. 왜 옛 동료들이 서로에게 무기를 휘두르지 않으면 안 된단 말이오. 꼭 그리 해야 하오?

 

 

너는 그리 해야한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네 사랑이 그것을 바라기 때문에. 

 

 

"우린 왕들을 죽였어. 신도 죽였고. 한 번은 거인도 죽였지!"

 

 

자헤이라의 왼팔처럼 서 있던 민스크가 극적으로 목청을 높인다. 그러나 이어지는 그의 말은 순수한 슬픔에 사무친 것처럼 들린다. "그렇지만 친구는 죽인 적이 없어. 단 한 번도."

 

 

"내 질문은 아직 주인을 찾지 못했어, 애송이 위저드. 자의식까지 빼앗긴 꼭두각시 놀음 중에 있는 건 아닌 것 같으니, 스스로 대답할 수 있을 테지." 

 

 

자헤이라는 옥좌 옆의 너를 가리킨다. 너는 영원을 살아내더라도 그가 겨냥하는 손가락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무고한 시민들이 죽고, 태양이 사라졌다. 발더스 게이트는 언데드들의 도시가 되었고 말이야. 넌 어떻게 할 셈이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여전히 아스타리온의 편에 설 텐가? 아니면 그로부터 벗어나 다시 한 번 이 도시를 구하겠나?"

 

 

너는 네 사랑을 본다. 아스타리온이 너를 가만히 돌아보고 있다. 선홍빛 궁전에서 적과의 전투를 목전에 두고 있을 적에, 그는 늘 그런 눈으로 너를 깊이 응시한다. 그 시선이 마치 이렇게 묻고 있는 듯하다: 날 버리고 저들의 곁에 서겠어, 자기야?

 

 

아니. 그는 있을 수 없는 가정을 눈에 담고 있다. 네 심장과 영혼, 네 위대한 재능을 걸고 맹세하건대 결코 그에게서 등을 돌리지 않으리라. 그가 네 배신을 상정하는 말을 백만 번 표한다면, 너는 그러지 않으리라고 백만 번 하고도 한 번을 더 단언하면 되는 것이다. 네 사랑에게는 너밖에 없다. 이 세계가 전부 그의 적으로 돌아선다 할지라도 너는 그의 곁에 서리라 맹세했다. 그의 편이 되리라. 그가 산다면 함께 살고 그가 죽는다면 함께 죽으리라. 그것이 네가 그를 지키는 방식이고, 그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너는 그 방법밖에 모른다.

 

 

아스타리온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자, 네가 사랑하는 이의 혼이 그 안에 잠들어 있다. 그는 변했을지언정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이 너의 의지이자 믿음이 되어준다. 너는 그가 안심할 수 있도록 미소를 짓는다. "부디 의심하지 마, 내 사랑. 난 세상의 끝이 올 때까지 너와 함께할 거야. 알고 있잖아."

 

 

그 과정에 일종의 규칙이 안배된 것처럼 이어지는 광경은 늘 동일하다. 찰나의 정적이 지난 다음 아스타리온의 입술이 부드럽게 호선을 그린다. 이윽고 시선이 네게서 떨어져 나간다. 그는 옥좌에서 몸을 일으켜 계단의 끝으로 나아간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승리는 우리의 것이겠네."

 

 

아스타리온은 노래하듯 승리를 입에 담는다. 그가 쥐고 있는 재난에는 무한한 어둠의 시작이 걸려있다. 재난의 끝을 바닥에 내리기 직전, 그가 계단 아래 포진한 필멸자들을 가만히 내려다보는 것이 마지막 신호다. 너는 지팡이를 고쳐잡고 위브의 폭풍우를 불러일으킬 준비를 마친다.

 

 

"그게 네 대답이라는 소리군."

 

 

자헤이라는 네 자세의 의미를 꿰뚫어본다. 그는 두 눈을 내려감지만, 차분히 감긴 눈꺼풀은 그의 짙은 실망을 감춰내지 못한다. 늙은 현자는 그 순간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것인지도 모른다. 짧은 침묵 속에서 무참히 도륙된 전사자들과 저주에 침식당해 쓰러지는 부상자들, 후퇴를 외치며 절박하게 도주하는 생존자들의 모습이 어떤 예지처럼 스쳐지나갔으리라.

 

 

영웅은 죽음의 공포를 모른다. 그는 검집에서 두 자루의 검을 꺼내들고 선인의 편에 서길 자처한 동료들과, 그를 에워싼 전사들을 향해 비장하게 외친다.

 

 

"하퍼 결사, 전투 준비! 늘 그랬듯이 우리는 이 도시를 지킨다. 저들의 손에서 태양을 탈환하라!"

 

 

아스타리온의 재난이 바닥을 치자 세계가 암전된다. 암흑 사이로 수십의 붉은 광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어둠은 그들의 자궁이요, 고향이며 쉼터이자 앞뜰이다. 적들은 인간의 몸으로 바다에서 아가미를 달고 있는 수생 생물들과 대적하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궁의 전역에 어둠이 내려앉고 몇 초가 지나지 않아 종복들이 살점을 물어뜯는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한다. 비명과 고함이, 전진과 저항이, 선혈과 살육이 난무한다. 네가 주문을 외자 화염벽에 타들어가는 살갗의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산 자들은 여기서 죽음을 맞이하리라. 그러지 못하더라도 안개에 깃들어있는 저주가 그들의 무릎을 거꾸러뜨리리라. 빛을 갈구하는 자들은 파멸하리라…….

 

 

홀의 전투가 끝나고 네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위저드의 시신을 주워 회랑에 내거는 것이다. 너는 사지가 떨어져나가고 목이 반 이상 뜯긴 그의 얼굴을 네 것으로 바꾸어놓는다. 

 

 

또 한 명의 '게일'이 여기서 죽음을 맞이했군. 너는 거기서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

 

 

워터딥의 게일은 제 안의 오만함을 죽이며 사라졌다. 게일 데카리오스는 심장에 수서나무 말뚝을 관통당해 숨이 끊어졌다. 이 자리에 있는 너는 워터딥의 게일도, 게일 데카리오스도 아닌 그저 게일이다. 네 사랑의 곁을 지키기로 맹세한 게일. 세간이 말하길 검은 위저드. 그는 뱀파이어 초월체를 추종하며 그를 위해 용사들을 학살하고 위브의 노래로 어둠에 양분을 주는 자다. 그것이 너다.

 

 

네가 한 번의 죽음을 경험한 후로 일상의 풍경은 현저히 뒤바뀐다. 네 안전을 위해 너는 탑 밖의 세상으로부터 격리된다. 너는 오롯이 네 공간으로 안배된 탑에서 집무를 보고, 전술을 공부하고, 책을 읽고, 신비를 연구하고, 그림을 그리고, 뜨개질을 하고, 글을 쓰고, 요리를 하고, 때로는 네 종과 랜스보드를 둔다. 방 안에 만발한 수서꽃이 네 안의 마력을 흡수해 일상적으로 위브를 조작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없는 것이 유일한 아쉬움이다. 미스트라에게 버림받아 네 탑에서 비참히 은거하던 때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단 둘, 네 심장에 더는 도시를 날려버릴 폭탄이 없고, 또한 네 사랑이 언제나 네게로 찾아온다는 것이다. 네게 되돌아오는 그를 볼 때마다 너는 고독이라는 단어가 한없이 의미를 잃고 퇴색하는 것을 느낀다.

 

 

네가 필요해. 그가 그렇게 말하기에 너는 지팡이를 잡는다. 네가 하루 중 탑을 벗어나는 것은 그 시간이 유일하다. 너는 수서꽃의 효과가 몸 안에서 사라지는 동안 네 종의 도움을 받아 무구를 걸치고, 네가 시전할 주문을 외운다. 신원을 가리는 가면을 쓰는 것은 네 사랑의 제안이었다. 필멸자들에게 영웅이 어떤 존재인지 알잖아. 그들이 그걸 기리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인간은 죽어 영웅이 되거나, 오래 살아 악인이 되는가. 때때로 너는 적들의 틈에서 익숙한 얼굴들을 발견할 때마다 그의 배려에 감사를 느끼게 된다. 그들은 너를 알아보지 못하기에 동요할 수 없다. 네 동요 또한 가면 바깥으로 나가지 않기에 너는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 전장의 너는 네더브레인으로부터 도시를 구한 영웅이 아니다. 네가 스스로를 그들과 일면식이 없는 일개 주문 시전자라고 정의하면 그후에 벌어지는 행위들을 받아들이기가 더욱 수월해진다. 연이어 들이닥치는 전투는 한편으로 네 사랑과 함께하던 모험의 연장선이라 해도 좋다. 그 시기에도 너는 너와 동료들의 생존을 가로막는 적들을 처치하며 살아가지 않았던가. 그러나 오늘 벌어졌던 전투는. 

 

 

너는 가면을 내려놓고 창 밖을 본다. 옛 동료의 품에서 건져낸 하퍼 핀이 네 손 근처에서 희미한 은빛을 발하고 있다. 핀의 주인은 자헤이라였나, 민스크였나? 너는 그것을 목이 달아난 시신에서 집어올렸을 뿐이다. 시신이 걸친 무장의 생김새가 너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주인마님? 방금 돌아오신 겁니까?"

 

 

네 종이 방문을 두들기고 건너편에서 묻는다. 시길은 방금 끓인 차를 쟁반에 들고 네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가까이 오라는 네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문 앞에서 결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너는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의 인내가 등 뒤에서 명확하게 느껴지는데도 그렇다.

 

 

"오늘 전투는 오래 걸렸군요? 주인마님께서 다치지 않으셔서 다행입니다. 듣자하니 주인님께서 전투에 참가한 스폰들을 원없이 포식하게 해주셨다죠. 하퍼와 드루이드들의 피에서는 어떤 맛이 났을지 모르겠네요."

 

 

시길이 들뜬 목소리로 재잘거린다. 아스타리온은 스폰들이 지성체의 피를 마시는 것을 엄격하게 금했던 카사도어와 정반대로 행동한다. 그는 자신을 섬기는 스폰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내리고, 그로 하여금 종복들의 충성심을 더욱 강화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는 한때 카사도어에게 '축복'을 받길 바라는 종자들을 혐오했으나 이제는 그에게서 불멸성을 나눠받길 원하는 이들이 그의 발치에 꿇어앉아 축복을 간청할 따름이다. 그는 급속도로 군세를 불리며, 그가 선택한 스폰들로 도시를 재건하고, 발더스 게이트를 흡혈귀들이 전유하는 완전한 사회로 만들기 위해 그가 지닌 초월체로서의 재능을 남김없이 발휘한다. 

 

 

이 도시는 그의 궁전이고 그의 요새다. 끊임없이 들이닥치는 적들에게서 최적의 방위선을 구축할 수 있는 천혜의 요새. 잃어버린 고향을 되찾고, 신을 저버린 불경한 자들을 벌하고, 언데드들을 사냥하고, 죽어간 이들의 복수를 위해 궁전으로 찾아드는 적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강력해진다. 언제쯤이면 이 방어전의 빈도수가 낮아지기 시작할 것인가. 너는 오른손에 얼굴을 묻는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핏물이 네 뺨에 고스란히 묻어있다.

 

 

"주인마님? 어디 편찮으신지요?"

 

 

시길이 한풀 꺾인 음성으로 물음을 던진다. 너는 여전히 독특한 호칭을 고집하는 그의 성미에서 유쾌함을 느낄 만한 작은 실마리를 잡아낸다. "시길, 언제까지 그런 말도 안 되는 호칭으로 날 부를 셈이야? 그냥 '게일'이라고 편히 부르라고 했잖아." 너는 웃음을 흘리지만, 그것은 힘없이 입술 사이로 흘러나갈 뿐이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해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냥…," 시길은 한참을 어물거리다가 뒷말을 잇는다. "괜찮으세요? 오늘따라 피곤해보이십니다. 아주 많이요."

 

 

너는 괜찮다. 늘 그렇듯이. 그러나 오늘만큼은…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 너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천천히 문지르고는 그에게 답한다. 평소처럼 웃어보일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럴지도 모르겠어." 아니, 그런 것 같아. 전혀 괜찮지가 않군. 

 

 

너는 손을 떨어뜨리고 창공을 불사르는 검은 해를 말없이 응시한다. 네가 그를 두고 죽어버리는 실수를 저지르지만 않았더라면 너와 아스타리온은 아직도 세상을 여행하고 있었을 것이다. 혹은, 오랜 세월에 걸쳐 이 도시를 손에 넣겠다는 그의 계획이 암암리에 실행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더라면 이토록 많은 피가 흐를 일은 없었겠지. 아스타리온은 너를 위해 평화를 희생했다. 그의 사랑이 저토록 가시적인 모양으로 하늘에 자리잡고 있는 한, 너는 네 과오를 만회해야 한다.

 

 

네 안에서 각오가 다시 새로이 자리잡는다. 네 사랑을 그들이 죽이기 전에, 너는 그들을 죽여야 한다.

 

 

 

 

 


아스게일 블러드위브
2024.05.16 22:4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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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센세 아니 아니 진짜센세 진짜 와 아니 센세 사랑해
[Code: b0b6]
2024.05.16 22:5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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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둬놓고 글만 쓰게 하고 싶다 센세 로또1등돼서 글만쓰게해주세요
[Code: 9e37]
2024.05.16 23:5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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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진심 미치겠다...
[Code: 8f74]
2024.05.19 05:3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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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잼
[Code: 6d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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