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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 - 그 후의 이야기



 아침이 밝았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에 나는 그대로 잠에서 깨어났다.
 
 
“우욱…”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어제 무리를 한 탓인지, 아까부터 헛구역질이 멈추질 않는다.

어젯 밤 전야제를 위하여, 정령들은 특별히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성으로 가득 가져다 주었다.

그들은 내 앞에 쭉 줄을 서고, 내가 그것들을 다 먹을 때까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때문인가, 밤새 속이 안 좋았다.

 
 
 
 침대에서 내려와 거울 앞으로 힘들게 발걸음을 옮겼다. 
 
 
“뭐야, 이건?”
 
 
난 놀란 얼굴로 거울을 들여다봤다. 

온 얼굴과 머리카락은 낙서와 그림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이마 위에는 엄청나게 큰 하트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 안에 쓰여진 글씨가 더 가관이었다.
 
 
‘저 결혼해요!’
 
“미치겠네…. 도대체 언제…. 이러고 밤새 돌아다녔단 말이야?”
 
 
나는 한숨을 쉬며 근처에 있는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았다. 

그리고 머리 위에 헝클어진 꽃잎과 줄기들을 털어냈다.
 
 
 
 어젯 밤은 결혼 전야제로 온 왕궁이 떠들썩했다. 

물론 로키와 나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한 전야제였다. 결혼식의 주인공이 나인 만큼, 정령들은 정령의 방식대로 축제를 즐기길 원했다. 

레아와 자매들이 며칠 전 찾아와 내게 ‘그렇게 해도 되냐’고 물었을 때, 나는 별생각 없이 ‘그렇게 해도 된다.’라고 대답했고, 자매들은 기뻐했다.
 
 
“왕궁이 이렇게 활기가 넘친 게 얼마 만인지!”
 
 
여러 신들이 말했다.
 
 
“정령들은 대단하네요. 조그마한 몸에서 저런 흥이 어디서 나오는 거죠?”
 
“노랫소리는 또 어찌나 아름다운지….”
 
“축하해요, 허니.”
 
 
신들은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정령들은 25번째 ‘허니의 송가’를 읊고 있었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황급히 잔으로 얼굴을 가렸다.
 
 
 
 
 나는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창틀에 앉아있던 하얀 새 무리가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그들의 날갯짓을 따라 시선을 돌리니 오딘의 숲이 한눈에 들어왔다. 

요툰헤임의 공격과 나의 부재로 힘을 잃었던 숲은 이제 다시 활기를 되찾고 과거의 영광 그대로의 모습을 되찾았다.
 
물론 복구 작업이 쉽지는 않았다. 

내가 아스가르드로 돌아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신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의를 열었다.
 




“폐하의 숲이 엉망이 되었으니 이를 어쩌면 좋을까요?”
 
 
왕비님께서 먼저 안건을 내놓으셨다.
 

Thranduil Thron Gif 
“대지의 여신께서 제자리로 돌아오셨으니, 곧 그 문제는 해결될 겁니다. 하지만 여신의 힘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으니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죠.”
 
 
풍요의 신이 부드럽게 말했다. 

프레이님의 말처럼 내가 나서서 숲을 치료할 수도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힘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탓에 나 스스로도 그건 무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여 그의 의견에 감사를 표했다.
 
 
“애초에 요툰헤임이 아니었다면 아스가르드 땅이 망가지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그러니 북쪽의 거인들이 숲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전쟁의 신, 티르가 불같은 성격을 누르지 못하고 소리쳤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책임이라면 정확히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이오?”
 
 
풍요의 신이 모두를 대신하여 물었다. 

전쟁의 신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글쎄요…. 적어도 나무라도 함께 심어야죠.”
 
“이봐요, 티르. 폐하의 숲을 복구하는데 그런 물리적인 힘은 필요 없다고요. 지금 우리에겐 대지를 소생시킬 마법이 필요한 거예요, ‘마법’!”
 
 
아스가르드에서 가장 용감한 헤르모드가 나서며 말했다. 

티르는 헤르모드의 말에 반박하기 위해 입을 벌렸지만, 딱히 할 말이 없었는지 이내 입을 다물었다.
 
 

끔찍한 침묵이 신들 사이로 지나다니는 걸 느끼며, 왠지 모를 죄책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힘이 빨리 돌아온다면 좋을 텐데….
 
 
“너무 상심하지 말아요, 허니.”
 

지혜의 신, 크바시르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지금은 허니의 회복이 우선이니까요. 숲의 복구는 그 다음의 일이죠. 아무리 급하다 해도, 허니의 머리카락을 대신 심을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그가 미소를 지었다. 

나 또한 그를 따라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머리카락…. 머리카락이라….
 
 
 
 회의가 끝나고 나는 전력 질주를 하며 정원을 향해 달려갔다. 

아스가르드와 헬헤임의 전쟁에 참여했던 북쪽의 거인 일부가 그곳에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왕궁 안에서 머물러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성 안이 아닌 내 방 근처 정원에 누워있기를 원했다.
 
 
“애들아!”
 
 
나는 손을 흔들며 거인들에게 달려갔다. 

거인들은 모두 분수에 코를 박고 물을 마시고 있었다.
 
 
“가짜 프레이야가 우리를 향해 온다!”
 
 
유독 더 진한 얼굴색의 거인이 나를 가리키며 친구들에게 말했다. 

그 소리에 거인 모두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을 들고 나를 쳐다봤다.
 
 
“무슨 일이야, 가짜 프레이야! 북쪽 늑대라도 나타난 거야?”
 
“우리는 스림의 명령대로 가짜 프레이야를 지켜야 해. 가짜 프레이야는 곧 요툰헤임의 왕비가 될 거니까.”
 
“맞아. 맞아.”
 
 
나는 숨을 헐떡이며 그들의 말에 손사래를 쳤다.
 
 
“북쪽 늑대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 너희들 도움이 좀 필요해.”
 
“왕비님을 도와드리는 것도 우리의 의무야.”
 
 
거인들은 신나서 만세를 불렀다.
 
 
“우리가 뭘 도와주면 되는데?”
 
“예전에 잘라갔던 내 머리카락!”
 
 
나는 노란 눈의 거인을 향해 소리쳤다. 

요툰헤임의 포로로 잡혀갔을 때, 감옥에서 내 머리카락을 뎅강 잘라버렸던 그 거인이었다.
 
 
“그 머리카락이 필요해!”
 
 
노란 눈의 거인은 놀란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내가 손을 들어 얼른 달라는 표정을 짓자, 거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주머니에서 밤색 머리카락 뭉치를 꺼내기 시작했다. 

가지런히 모여있는 머리카락은 꽃다발처럼 빨간 리본으로 묶여 있었다. 


거인은 내 손바닥 위로 그것을 떨어뜨리고 잔뜩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나중에 내 후손에게 물려줄 가보였는데….”
 
 
거인들은 일제히 노란 눈의 거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나는 리본을 풀고 내 머리카락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거면 될 거야!”
 
 
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거인들에게 소리쳤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거인들을 데리고 오딘의 숲으로 향했다. 

나는 거인들에게 머리카락을 한 올씩 나눠주며, 숲 곳곳에 심어달라 부탁했다. 

거인들은 그 일을 하기에 아주 적합한 친구들이었고, 그들은 남들보다 더 길고 큰 다리와 함께 숲을 뛰어다니며 내 머리카락을 심었다.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아침이 밝자, 오딘의 숲은 황금과 에메랄드 빛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숲으로 돌아와 있었고, 신들 모두가 그 사실에 기뻐했다.

 

 요툰헤임의 공격으로 파괴된 아스가르드는 그렇게 조금씩 옛 모습을 되찾아 갔다. 

요툰헤임 또한 다른 세계의 지원군과 북쪽의 거인들의 힘으로 예전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그 소식이 가장 기쁜 이유는, 그들을 이끄는 자가 바로 로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를 요툰헤임 복구 작업의 지휘관으로 보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로키… 정말 이럴 거야? 폐하께서 이미 요툰헤임으로 갈 자재와 인력들을 다 준비하셨단 말이야. 스림이 그러는데, 늦어도 내일은 북쪽으로 떠나야 한대.”
 


AVENGER X READER - Loki x Reader | Loki, The dark world, Tom hiddleston 
로키는 여유롭게 앉아 독서를 하며 내 말을 무시했다. 

나는 그의 무릎 위에 턱을 괸 채 말했다.
 
 
“스림이 오늘 아침에 와서 이야기했잖아. 로키, 네가 함께 가줬으면 한다고. 이건 스림뿐만이 아니라 왕비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어. ‘대관식 이전에 요툰헤임의 백성들에게 새로운 왕의 존재를 각인시킬 좋은 기회가 될 것 같구나.’라고 하시면서… 너도 그 자리에 같이 있었잖아!”

“그게 불만이라는 거야.”
 
 
로키가 신경질적으로 책을 덮으며 말했다.
 
 
“새로운 왕뿐만 아니라 새로운 왕비의 존재도 각인시켜야 하는 것 아니냐고.”
 
 
 
결국은 그런 문제였던 거냐.
 

 
“물론… 나도 너와 함께 북쪽으로 가고 싶지. 하지만 난 여기 남아서 숲을 복구해야 하고…”
 
“요툰헤임에도 고쳐야 할 숲은 많아.”
 
“그렇긴 하지…. 하지만 내 힘은 본래 오딘의 숲에 속해있고, 너는 그러니까… 엄밀히 따지자면 요툰헤임에 속해있으니까… 내 말은… 나는 아스가르드, 너는 요툰헤임의 복구 작업을 돕는 게 일이 더 빨리 끝날 거라는 이야기야. 지금은 무엇보다 전쟁의 상처를 치료하고 사람들을 위로하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
 
“멋진 연설 잘 들었어. 감동적이네.”
 
 
로키는 다시 책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나는 로키를 째려보며 저런 고집불통을 새 왕으로 맞이할 요툰헤임의 백성들을 잠시 애도하였다.

 
저절로 긴 한숨이 쉬어졌다.
 
 
“알았어. 그럼 스림을 지휘관으로 세워서 보내던가 해.”
 
 
로키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대충 ‘알았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나는 로키의 발치에 앉아 그의 다리를 껴안았다. 우아하게 꼰 다리에 매달린 나 자신을 보고 있자니 왠지 힘이 빠졌다.
 

내가 말했다.
 
 
“그러면 요툰헤임의 대관식도 어쩔 수 없이 미뤄지겠네. 폐하께서 피해 지역이 다 복구되고 난 뒤에 식을 치르는 게 좋겠다고 하셨으니까.”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우리 결혼식도 미뤄지는 거고….”

“무슨 소리야, 그게?”
 
 
로키가 책을 떨어뜨리며 물었다. 

내가 대답했다.
 
 
“무슨 소리냐니… 저번에 아스가르드와 새로운 동맹협정을 맺으면서 이야기 나눈 거잖아. 협정은 로키, 네가 정식으로 요툰헤임의 왕으로 임명되는 대관식 이후부터 효력이 발생하는데, 네가 결혼식이 더 중요하다고 하는 바람에 결혼식과 대관식을 함께 치르기로 했잖아. 설마 잊어버린 거야?”
 
 
내 말에, 로키는 아까보다 더 끔찍한 표정을 지었다.
 
  
왜 저래….
 
 
“아무튼, 내일부터 요툰헤임의 복구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라고 스림에게 말하고, 우리도 내일부터는 숲의 새로운 나무를 심을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 그럼 내년 여름 이전에는 모든 게 끝나겠지… 듣고 있어?”
 
 
로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무리와 함께 북쪽으로 떠나는 로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로키와 떨어져 있는 한 계절 동안 나는 아스가르드에서 가장 빠른 슬레이프니르를 통하여 로키와 소식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나는 가끔 헤임달을 찾아가 로키를 염탐하기도 했는데, 그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복구 작업에 힘쓰느라 인력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북쪽을 가득 매우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슬프지만 그 덕분에 요툰헤임은 예전의 모습을 거의 되찾았고, 대관 및 결혼식 날짜도 정해지게 되었다. 나는 그 소식을 로키에게 알렸고, 로키는 단 한 문장으로 답장을 보내왔다.
 
 
‘대관식은 모르겠고, 결혼 준비나 잘 해.’
 
 
나는 로키의 편지를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전쟁이 끝난 이후로 이렇듯 많은 일이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이 되었다.
 
나는 저 멀리 있는 바이프로스트를 바라보았다.
 
 
 
로키는 언제쯤 오려나….
 
 
‘똑똑똑-’
 
 
누군가 방문을 두들겼다.
 
 
“올 사람이 없는데…”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서둘러 방문을 열었다. 

손님이 누군지 확인하기도 전에, 어여쁜 고양이 두 마리가 문 틈새로 재빠르게 들어왔다. 고양이들은 ‘야옹’하며 내 다리에 기분 좋게 몸을 비비더니 침대 위로 뛰어올라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고양이가 들어 온 문 앞에는 아름다운 브리싱즈와 깃털 망토를 두른 고귀한 프레이야가 서 있었다.
 

나는 환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숙여 여신에게 예의를 표했다.
 

we love period drama | Diane kruger, Helen of troy, Royalty aesthetic
“혼례 준비로 많이 바쁘죠?”
 
 
여신이 내게 자상하게 물었다. 
 
 
“아니요. 너무 한가해서 지루하던 참이에요. 어서 들어오세요!”
 
 
프레이야는 나의 환대에 기분 좋은 미소로 보답하며 안으로 들어왔다. 

여신이 의자에 앉자, 침대 위를 활보하던 고양이들이 주인에게로 달려와 무릎 위로 뛰어오르며 애교를 부렸다.
 

나는 여신에게 차를 대접했고, 우리 둘은 잠시 차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한참 후, 프레이야가 주제를 바꾸며 말했다.
 
 
“내가 온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사실 허니에게 할 말이 있어서 왔어요.”
 
“목걸이라면 괜찮아요, 프레이야님. 저는 정말 괜찮아요.”
 
 
나는 브리싱즈를 향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프레이야는 당황한 얼굴로 ‘네?’라며 반문했다. 하지만 나는 다 안다는 표정과 말투로 차를 마시며 말했다.
 
 
“이번에도 브리싱즈를 빌려주러 오신 걸 알고 있어요. 이미 한번 이런 상황이 있었잖아요. 저는 결혼이 두렵고, 모든 걸 잃을까 무섭다고 했죠. 내 모습은 왕족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불평불만을 듣고, 친절한 프레이야님께선 제게 브리싱즈를 빌려주셨고요. 그 덕분에 엄청난 모험을 했고, 거기서 깨달음을 좀 얻었죠.”
 
“예를 들면 어떤 거요?”
 
“말하자면 길지만…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중요한 건 겉모습이 아니라는 거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 정령치고는 꽤 강한 편이니까요. 게다가 로키도 여전히 제 곁에 있고... 그러니까 이번엔 제가 사양할게요. 무척 아름다운 보물이지만… 브리싱즈 덕에 제 머리카락이 고생을 좀 해가지고요.”
 
 
나는 어깨 위로 잘려나간 머리카락을 가리켰다. 

프레이야는 내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여신은 사랑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행이에요. 하지만 이거 어쩌죠. 저는 브리싱즈를 빌려주러 온 게 아닌데.”
 
“네? 그럼 하실 말씀이라는 게 뭐에요?”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여신은 내게 손짓으로 가까이 오라고 말했다. 

나는 찻잔을 입에 갖다 댄 채 몸을 움직여 프레이야에게 다가갔고, 프레이야는 제 입을 내 귀에 가까이 댄 채 속삭이기 시작했다.
 
 
여신이 곧장 속삭이는 말에도 나는 한동안 그 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프레이야가 말을 끝마친 뒤 조용히 나의 반응을 기다리던 그 순간까지도 나는 여신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저 그 자세로 가만히 앉아있었다.
 

나는 찻잔을 내려놓고 순진하게 눈을 깜빡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프레이야는 그런 나를 보며 사랑스럽다는 듯 자상한 미소를 지었다.
 
 
“축하해요, 허니.”
 
 
 
 그 순간, 우레와 같은 소리와 함께 창 너머로 무지갯빛 섬광이 일렁거렸다. 

프레이야의 무릎 위에서 단잠을 자던 고양이들이 귀를 쫑긋거리며 ‘야옹’소리를 내었다. 

창밖으로 바이프로스트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똑똑똑-’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리더니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를 돌보는 시종 중 한 명이었는데, 그 시종은 수줍은 얼굴을 내밀고는 내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왕자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나는 바이프로스트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뒤에서 시종들이 조심하라며 내게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대충 치마의 끝자락을 움켜쥐기만 한 뒤 그들에게 괜찮다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바이프로스트로 이어지는 다리 위에는 평소와 다르게 굉장히 분주했다. 

거인들은 요툰헤임으로 가져갔던 아스가르드의 물건들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짐을 나르고 있었고, 아스가르드 일꾼들은 결혼식에 사용될 법한 식탁보와 꽃들을 조심스레 나르고 있었다.
 
그리고 스림은 가장 높은 곳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며 손에 든 종이에 글을 쓰고 있었다.
 
   
“스림!”
 
 
내가 손을 흔들자, 스림은 주변을 확인하더니 곧 나를 발견하고 함께 손을 흔들어 주었다.



stuart-townsend — Tom Hardy as Eddie Brock in Venom (2018) dir....
“왕비님께서 이렇게 뛰어다니시면 곤란한데요.”
 
“아직 대관식 전이잖아. 뭐, 어때. 그리고 너도 그 징그러운 존댓말 좀 어떻게 해 봐. 내가 어색하다고 했잖아.”
 
 
내 말에, 스림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성격은 여전하네.”
 
“정령들은 원래 한결같거든.”
 
 
내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스림은 ‘그래, 어련하시겠어.’라고 중얼댔다. 

그러다가 마침 엉뚱한 곳으로 물건을 옮기는 거인을 발견하고는, 그와 큰소리로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스림에게 속삭였다.
 
 
“다들 표정이 안 좋네.”
 
“한 계절 동안 굉장히 힘들었거든. 어떤 분이 하루라도 빨리 복구 작업을 끝내야 한다고 쉬지도 못 하게 해서 말이야.”
 
“미안해, 내 정혼자가 공감 능력이 좀 떨어져.”
 
 
스림은 내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효과는 있었어.”
 
 
그러더니 거인은 주머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보였다. 

그것은 투명하게 빛나는 짧은 가지였는데, 그 위로 눈송이가 잔뜩 매달려 있었다.
 
 
“전하의 방에 있던 겨울나무 가지야. 힘을 되찾았지.”
 
“우와!”
 
 
나는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분명 마지막으로 보았을 땐, 헬의 여왕이 쏘아올린 불로인해 대부분 손을 쓸 수도 없는 상태였다.
 


 “아무래도 새로운 전하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야.”
 
 
스림은 그 말과 함께 미소를 지었다. 

그를 따라 내 입가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요툰헤임의 모두가 로키를 좋아한다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림!”
 
 
거인 무리가 스림에게 다가왔다. 

그들은 나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스림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요툰헤임에서 가져 온 선물들은 부탁했던 자리에 갖다 놓았어.”
 
“아, 그래? 수고했어.”
 
 
스림은 거인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에게서 보기 드문 환한 표정을 지었다. 

거인들이 물러가자, 나는 스림에게 궁금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요툰헤임에서 가져 온 선물이라니?”
 
“백성들이 새로운 왕과 왕비님께 드리는 선물을 성으로 잔뜩 보내왔거든.”
 
 
스림이 대답했다. 


"다 대관식과 결혼식을 위한 것이니, 여기로 가져오는 게 나을 것 같았어. 너도 선물 많이 받으면 기분 좋잖아."


그의 말에, 나는 감동에 찬 눈망울로 스림을 바라봤다.


"나 때문에 그걸 다 가지고 온 거야?"

"뭐, 겸사겸사."


그는 들고 있던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는 거의 다 옮겨진 짐꾸러미들을 바라보며 내게 가자는 손짓을 보였다.
 

“따라 와.”
 
 
스림은 나를 데리고 아스가르드 왕궁으로 향했다. 
 
나는 익숙한 복도와 계단을 지나치며 설마 했지만, 그가 멈춰선 곳은 다름 아닌 내 방 앞이었다. 

그 앞에는 내 정원에서 시간을 보내던 거인들이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스림!”
 
 
모두가 반가운 얼굴로 스림의 이름을 불렀다. 

그들은 모두 스림과 악수를 했는데, 마지막 거인은 스림이 너무 반가웠던 나머지 그를 끌어안고 공중에 빙빙 돌리기까지 했다. 

혼혈이라 그들보다 덩치가 훨씬 작았던 스림은 공중에 뜬 채로 정중하게 내려달라며 거인에게 부탁했다.
 
 
“미안해, 스림. 반가워서 그만….”
 
 
거인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우리는 여기 앉아서 가짜 프레이야에게 줄 소중한 물건을 지키고 있었어.”


그의 말에, 내가 웃으며 물었다.

 
“아, 백성들이 준비한 결혼 선물 말이야? 너희들이 친절하게 내 방까지 가져다줬구나, 고마워.”

"응? 아니야. 그것들은 홀에다가 가져다놨어."


거인들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뭐? 그럼 내게 줄 소중한 물건이 뭔데?"
 
 
내가 눈이 휘둥그레져 물었다. 

그 거인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응! 그게 뭐냐면…”
 
 
그러자 다른 거인들이 일제히 그의 옆구리를 찔렀고, 그 거인은 ‘흡!’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나는 눈썹을 찌푸리며 그들을 쳐다봤다.
 
 
“왜들 그래?”
 
“흠, 들어가 보면 알게 될 거야.”
 
 
스림이 유별난 기침 소리를 내며 말했다. 

거인들도 내 눈치를 살피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문을 열어주고, 길을 터주며 내 등을 떠밀었다. 

나는 시종일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거인들을 바라봤지만, 누구 하나 속 시원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없었다.
 
 
“도대체 방 안에 뭐가 있길래…”
 
 
나는 중얼대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평소와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 낯선 느낌이 들었다. 

아스가르드의 여름 날에선 절대 느낄 수 없는, 그것은 초겨울 날 창문을 열면 느껴지는 기분 좋은 겨울 냄새였다.
 
 
“스림!”
 

나는 놀라움에 얼굴을 감싸며 소리쳤다.
 
눈 앞에는 눈송이와 겨울의 마법으로 만든 아름다운 드레스가 있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드레스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눈송이가 맺힌 원단을 보니 실제로 드레스 위로 눈이 내리는 듯 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왕비님께 드리는 결혼 선물이야.” 

 
스림이 내 곁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어때?”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스림. 이건 정말 아름다워.”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말투로 말했다. 

스림은 내 반응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니다벨리르의 난쟁이들이 만든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지?”
 
 
스림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 드레스는 우리 어머니의 유품이야.”
 
“뭐?”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작게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오히려 스림은 뭐가 문제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내가 곧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어머니의 유품이라니! 그 소중한 걸… 아니야, 아니야… 난 받을 수 없어!”
 
 
나는 드레스에게서 더 멀리 떨어졌다. 그러자 스림은 팔짱을 끼던 손을 풀고, 내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내가 주는 선물이라니까.”
 
“하지만 이건 돌아가신 네 어머니의… 네겐 엄청나게 소중한 물건일텐데, 그런 걸 내가 어떻게 받겠어?”
 
“그러니까. 너니까 받을 수 있는 거라고.”
 
 
스림이 내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너는 목숨을 바쳐 요툰헤임을 구했어. 너랑은 전혀 상관없는 거인들을 위해서 말이야. 마치 그 옛날 목숨을 바쳐 날 구하셨던, 우리 어머니처럼... 흠, 게다가 나중에 어머니만큼 소중한 사람이 생겼을 때 누구에게든 주려고 했던 물건이니까... 너 가져도 돼.”
 
 

눈앞이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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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림은 어색한 공기를 깨려는 듯 일부러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뭐, 그렇다고 내가 너를 좋아했던 건 아니니까 오해는 하지…”
 
 
나는 그대로 스림을 껴안았다. 스림은 깜짝 놀라 몸을 뒤로 뺐다. 

그는 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당황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의 목과 어깨가 긴장한 듯 잔뜩 움츠러들었지만,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았다. 

스림은 내 등을 살짝 토닥였다.


다시 바라본 거인의 얼굴은 아까보다는 확연히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스림. 소중하게 간직할게.”
 
 
스림 또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손을 맞잡았고 위아래로 크게 흔들었다. 

눈송이가 아름답게 빛나며 우리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어느덧 서쪽 하늘 위로 석양이 물들고 있었다. 

그동안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난 탓에, 나는 시간이 그렇게 가버린 것도 모르고 있었다.

 
스림이 준 드레스를 입고 나오니, 거인들은 모두 환호하며 휘파람을 불었고, 스림은 내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곧 바로 나의 결혼 단장을 돕기 위해 레아와 자매들이 도착했다. 자매들은 내 드레스를 보고는 너무 아름답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스림이 준 선물이라 말해주었고, 정령들은 모두 부러운 눈길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중에서도 레아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는데, 그녀는 계속해서 내 옆에 서 있는 스림을 곁눈질로 쳐다봤다. 

그리고 스림이 잠시 자리를 비우자, 내게 그에 대한 질문을 엄청나게 쏟아내기 시작했다. 

결국, 그 질문 세례는 스림이 다시 방으로 돌아올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너무 아름다우세요, 여신님!”
 
 
모든 단장이 끝나자 자매들은 만족스러운 얼굴과 미소로 말했다.

나는 거울을 들고 모습을 확인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밤색 머리카락은 별처럼 반짝였고, 그 위로 다람쥐들이 선물로 가져온 호박 빛의 보석이 우아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정령들이 만든 부케를 손에 쥐었다.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었다.
 
 
“저희가 괜히 설레네요!”
 
 
자매들은 반짝이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그들은 모두 감동의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심지어 그 중 몇 명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정령들이 모두 떠날 시간이 되자, 갑자기 말 한 마디 없던 레아가 불쑥 앞으로 튀어 나왔다.
 
 
“결혼식까지 시간이 좀 남았는데, 제가 숲을 구경시켜드려도 괜찮을까요?”
 
 
레아가 스림을 보며 물었다. 

그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크게 당황하며 망설였다. 하지만 스림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레아는 거인의 팔을 덥석 잡고는 문 쪽으로 끌어당겼다.
 
 
“자, 어서 가요!”
 
 
스림은 속절없이 정령에게 끌려가며 나를 바라봤다. 

사실 나는 스림이 그렇게 바보같이 끌려가는 것보다 레아의 힘에 더 경이로움을 느꼈다.
 
 
“다들 이따 만나.”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 후로도 많은 방문객을 맞이하느라 굉장히 바쁜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처럼 우리를 돌봐주신 장로님과 함께 강과 바다의 장로들이 찾아와 나를 축하해 주었다. 게다가 에시르 신과 바니르 신이 나를 찾아왔고, 모두가 나의 아름다움을 칭찬했다.

토르 왕자님의 절친한 친구인 아스가르드의 세 전사도 나를 찾아왔는데, 펜드랄은 나를 보고 눈을 비비더니 ‘로키 왕자님이 이렇게 부러웠던 적이 없네요. 지금이라도 어떻게 저한테 오시면…’이라고 하다가 그대로 끌려나가 버렸다.
 
 
정신없지만, 굉장히 유쾌한 시간이었다.
 
 


  나는 그 시간까지 로키를 만날 수 없었다. 

아마 그는 나보다 더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혼례 연회에 초대받은 손님들이 성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 상황이 점점 실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런 걸 상상이라도 했느냐.”
 
 
나는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신들의 왕이자, 아스가르드의 주인인 오딘께서 그곳에 서 있었다. 

나는 예를 표하기 위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폐하께선 사양의 의미로 손을 내저었다.
 
 
“어찌 상상할 수 있었겠습니까, 폐하. 저는 고작 폐하의 숲에 살던 작은 정령이었는걸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여전히 저는, 이 모든 것이 제게 너무 과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령이었을 때도, 여신이 되었을 때도… 저는 그저 어머니의 반만이라도 따라가자는 마음으로 살았거든요. 하지만 제 능력에 비해, 이 자리는 너무 많은 걸 제게 요구했고, 한때는 그게 너무 두려웠습니다. 솔직히 도망치고 싶었어요.”
 
“그런데 왜 그러지 않았지?”
 
 
그의 물음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번 사건을 겪고 교훈을 좀 얻었거든요. 제가 도망침으로써 당장 눈 앞에 닥친 일은 피할 수 있겠지만, 그러다 그보다 더 큰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걸요.”


나는 굳센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 다시 한번 씩씩하게 살아보려고요."
 
 
폐하께선 웃음을 터뜨렸다. 
 
 
“네 천진난만한 그 자세를 로키도 좀 배우면 좋겠구나.”
 
 
하지만 그 말을 하는 그의 얼굴은 어딘가 어두워 보였다.
 
 
“로키에 대한 짐의 행동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좋은 관계처럼 보이진 않지. 게다가 이번엔 정치적인 문제로 아들의 정혼자를 북쪽의 포로로 넘겨주기까지 했다. 아마 그 아이는 평생 나를 용서하지 않을 거다.”
 
“폐하…”
 
“너한테도 미안하구나.”
 
 
그의 말에, 나는 손사래를 치며 소리쳤다.
 
 
“괜찮습니다, 폐하. 폐하께서 하시는 일엔 모두 다 뜻이 있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는걸요.”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유가 조금은 궁금했다.
 

“그래도 폐하께서만 허락하신다면 이유를 여쭤보고 싶은데요.”
 
“프레이야 대신 너를 북쪽에 남겨둔 이유를 말이냐?”
 
 
오딘은 한쪽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아홉 세계 어딘가에서 느껴졌던 불길한 기운, 그게 요툰헤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 만약 그대로 프레이야를 북쪽으로 보냈다면, 이미 헬라가 요툰헤임을 점령한 상태였으니, 프레이야도 그 힘에 잠식되고 말았겠지. 나는 요툰헤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확신이 필요했다."

"제가 그것을 알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셨군요?" 

 
오딘께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어머니가 폐하께서 하시는 일을 모두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를 알겠네요. ...머리가 아파요.”
 
“모두가 그렇게 말하곤 하지.”
 
 
왕은 낮게 웃으며 말했다.
 
 
“내 생각엔 이것도 로키가 나를 싫어하는 이유 중에 들어가는 것 같구나.”
 
“로키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폐하께서 결혼 허락을 내려주신 것만으로도, 지난 오 천년의 서운함은 풀렸을 테니까요.”
 
“정말 그렇다면 좋겠구나.”
 
 
나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가끔 로키에게 작은 칭찬이라도 해주시면 좋겠어요. 티는 안 내지만, 늘 아버지의 인정을 바라고 있거든요.”
 
“그 녀석 성격상 너무 많은 칭찬은 오히려 독이 될 거다.”


그 말에, 정령들에게 둘러싸여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 로키의 모습을 떠올려보니 맞는 말씀 같았다.

그래도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제 말은, 로키는 폐하를 친아버지처럼 사랑한다는 뜻이였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폐하께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 아니겠어요?"
 
 
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난 그의 얼굴만 봐도 느낄 수 있었다. 폐하께서 로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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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로키도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도했다.
 
 
 
  어느덧 석양이 붉은빛을 머금고 대지에 내려앉았다. 

밤하늘의 별이 하나둘 떠오르고 아홉 세계와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은하를 이루었다.

 
창밖은 조용했다.

 
불빛은 오로지 연회장으로 가는 길목만을 비추었다. 그 빛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연회장 안으로 사람들의 목소리와 음악 소리가 들렸다.

 
나는 거울 앞에 섰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연회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며 그와 동시에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며 들어왔다. 

그 곳에는 연회복 차림의 토르 왕자님께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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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셔 다가갈 수가 없군.”
 
 
그러면서 내게 진심 어린 농담을 던졌다. 

그의 앞에 서자, 천둥의 신은 내 손등에 입을 맞추며 예의를 표했다. 그는 곧 팔을 곱게 구부리며 내가 팔짱을 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모두가 그대를 기다리고 있소. 로키도 함께.”
 
 
그는 내게 윙크하며 손을 들어 길을 안내했다. 

나는 토르 왕자님과 함께 천천히 연회장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연회장으로 가는 복도는 온통 에메랄드빛의 아름다운 휘장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휘장은 꼭 동화책에 그려진 삽화같은 무늬를 하고 있었다. 


"너도밤나무네요."
 
 
나는 휘장 위에 그려진 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것은 나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내가 저렇게 컸었나?”
 
“저 때는 그랬지. 지금은 난쟁이처럼 작지만 말이야.”
 
“로키…”
 
 
나는 한숨을 쉬며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로키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내게로 다가왔다.
 

“왜, 맞잖아. 묠니르가 내 머리 위로 떨어진다 해도 당신보다는 클걸.”
 
“들으셨죠, 왕자님? 로키가 묠니르로 얻어맞는 게 소원이라는데, 결혼 선물로 들어주시는 건 어때요?”
 
“결혼 선물이라면 이미 받았어.”
 
“그럼 제 결혼 선물로 해주세요.”
 
 
로키는 불만스럽게 입술을 비틀었다. 

토르 왕자님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로키, 늘 말하지만… 여성을 그렇게 대하면 안 된다. 장난도 상황을 봐가면서 하거라.”
 
“그래, 봐가면서 ‘하거라’.”
 
 
나는 토르 왕자님의 팔을 좀 더 세게 끌어안으며 그의 말투를 따라 했다. 그리고는 서로 바라보며 키득거리며 웃었다. 

로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우리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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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합이 아주 잘 맞네.”
 
“그러게요. 저도 몰랐는데, 로키 말대로 저랑 왕자님이랑 합이 좀 잘 맞는 것 같아요.”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왕자님께서 뿌듯한 표정과 함께 내 어깨를 두드렸다.
 
 
“물론이오. 게다가 그대는 묠니르를 들어 헬의 여왕과 싸우지 않았소. 이 묠니르를 든 사람들끼리는 보이지 않는 유대가 생기는 법이지.”
 
“그래, 충분히 알아들었으니까 그 손 좀 놓고 말해.”
 
 
로키는 내 팔을 꼭 쥐고 있는 토르의 손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제야 우리 두 사람은 로키가 불만으로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Thor Y Loki Gifs 
“흠… 기분 나빠하지 말 거라, 로키. 난 바빠 보이는 네 녀석을 대신해 왕자로서 존경심을 가지고 여신을 잠시 모신 것뿐이다. 이건 왕실의 전통이오.”
 
 
토르 왕자님은 나를 바라보며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기분이 나쁜 건 내가 아니라 시프인 것 같은데.”
 
 
우리는 로키를 쳐다봤다. 

로키의 말은 불손했지만, 그의 얼굴은 무척이나 이 상황이 애석하다는 눈치였다.
 
 
“아, 별 건 아니고… 레이디 시프가 연회장에 아까부터 쭉 혼자 있더라고.”

“이런! 시프를 깜빡했군!”
 
 
왕자님이 천둥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편 로키가 더 애석한 표정으로 말했다.
 
 
“시프가 나한테 ‘토르는 어디 있냐.’고 물어보길래, ‘글쎄요. 어딘가에서 술이나 먹고 있겠죠.’라고 했더니 잔뜩 실망해서 사라져 버렸어. 본인 결혼식은 엉망으로 끝이 났는데, 정혼자라는 사람은 술이나 먹고 있다니... 이거, 어디 가서 울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시프가 어디로 갔는지 아느냐, 로키?”
 
 
토르 왕자님은 당황하며 로키에게 물었다. 

로키는 어깨를 으쓱하며 반대쪽 복도를 가리켰다.
 
 
“저쪽이던가.”
 
“고맙다, 로키.”
 
 
토르 왕자님은 로키에게 고맙다며 어깨를 두드리고는, 내게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표했다. 

나도 그에게 예의를 표하며 고개를 숙였는데, 그는 이미 사라지고 난 후였다.
 
 
“시프님을 꼭 찾으셔야 할 텐데….”
 
 
나는 죄책감을 느끼며 로키에게 말했다.
 
 
“나 때문인 것 같아서 마음이 안 좋네. 여신께선 괜찮으시겠지?”
 
“괜찮아. 시프는 손님맞이 하느라 바쁘거든.”
 
 
응…?
 
 
나는 고개를 돌려 로키를 쳐다봤다. 

로키는 눈썹을 올리며 ‘뭘 그렇게 보냐’는 눈빛을 보냈다.
 
 
“거짓말한 거야?”
 
 
내가 묻자, 로키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의 팔을 툭 치며 조용하게 소리쳤다.
 
 
“왜 그랬어?”

“이 몸이 그렇게 안 했으면 그 눈치 없는 천둥의 신이 당신 옆에 계속 들러붙어 있었을 것 아냐.”
 
 
로키가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형이랑 마주할 날은 앞으로 오 천년쯤은 더 남아 있지만, 당신과 이런 식으로 마주할 날은 절대 없을 테니까.”
 
 
그럼 그냥 자리를 비켜달라고 부탁하면 되지.
 
 
방법은 마음에 안 들지만, 어쨌든 나는 로키를 이해해주기로 했다. 

나는 슬며시 로키의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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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의 신은 여전히 언짢은 표정이었지만, 나를 흘긋 보고는 자신의 손을 잡는 것을 허락해주었다.
 
 
“엊그제처럼 느껴져.”
 
 
나는 우리 앞에 놓인 휘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로키도 그것을 바라보았다.
 
 
“저 때만 해도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나는 알고 있었어.”
 
 
나는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어 로키를 쳐다보았다. 
 
 
“내가 나무였을 때부터, 나랑 결혼할 생각을 했단 말이지?”
 
 
나는 음흉하다는 눈빛을 쏘며 말했다.

 
“왕자님께서 어려서부터 포부가 남달랐네.”
 
“그런 말을 들어도 놀랍지 않아. 나와는 달리 당신은 약혼 후에도 결혼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로키가 볼멘소리로 말했다. 
 
 
얘는 왜 다 지난 이야기를….
 
 
나는 어색한 기침을 내뱉었다.

로키가 그런 나를 흘긋 보더니,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처음엔 화가 났어. 내겐 당신이 전부인데, 나는 당신의 전부가 아닌 것 같았거든. 뭐, 그건 모든 생명을 지켜야하는 네겐 지금도 어려운 일이겠지.”
 
“로키, 나는…”
 
“억겹의 시간이 흐르더라도, 내 마음은 변함이 없을 거야.”
 
 
로키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그러니 당신의 옆에서, 네 소중한 모든 것을 함께 지켜줄게."


그는 내 손을 부드럽게 들어 올리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왕자가 말했다.
 
 
“내 전부인, 당신을 위해서 말이야.”
 
 
 
그리고 그는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어딘가 그리움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그 순간만큼은 마치 옛날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나무의 모습으로 어린 로키를 처음 만난 그때 그 순간으로 말이다. 


난 그 아이의 미소를 정말로 사랑했다. 

그리고 로키는 여전히 그 미소를 간직하고 있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
 
 
 
“너, 너도 참...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꼭 못된 사람이 된 것 같잖아.”
 
 
나는 붉어진 뺨을 감추며 얼른 고개를 돌렸다. 

어느 정도 심장 소리가 수그러들자, 나는 크게 기침을 내뱉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대지 위의 모든 생명도 물론 중요하지만, 누가 뭐래도 역시 로키, 너랑 우리 아기가 나한테는 제일 중요하다고.”
 
 
내 말에, 로키는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Loki In Thor 1 gifs 1/4 – @tomlokixarianastanx93 on Tumblr
“그래,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 아니, 잠깐만…”
 
    
순간 로키가 멈칫했다. 

그 때까지 무엇이 잘못됐는지 몰랐던 나 또한 ‘아차!’ 싶어 입을 틀어막았다. 

나는 경직된 표정으로 로키를 응시했고, 나의 행동을 본 로키의 안색은 점점 더 하얘지기 시작했다.
 

“당신, 그게 무슨… 말이야? 아기라니?”
 
 
로키가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그 순간 휘장이 걷어지고 연회장으로 연결되는 커다란 문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 문은 현재 우리가 어떤 상태인지는 관심도 없는지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며 천천히 옆으로 갈라졌다.
 
연회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로키와 나를 보며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로키는 여전히 창백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나 역시 여전히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모두가 소리쳤다.
 
 
“새로운 요툰헤임의 왕과 왕비님께 축복을 보냅니다! 만세!”
 
 

 
  잠시 후, 우리는 연회장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함께 올라갔다. 

그 곳에는 신들의 왕인 오딘이 우리를 바라보고 서 있었고, 그의 왕비이자 로키의 어머니인 프리가님은 우리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짓고 계셨다. 

토르 왕자님과 그의 정혼자인 레이디 시프 또한, 그들의 곁에서 우리에게 박수를 보내주었다.


 
사랑의 여신, 프레이야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프레이야의 이름으로, 죽음이 그대들을 갈라놓을 때까지 영원한 사랑이 그대들과 함께하기를 축복합니다.”
 
 
프레이야가 우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성혼 선언과 함께 사람들의 함성이 온 연회장에 울려 퍼졌다. 

정령들은 손을 맞잡고 원을 그리며 춤을 췄고, 어린 다람쥐들은 그들의 머리 위에서 만세를 불렀다. 

거인들은 옆에서 박수를 치며 환호했는데,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귀가 아플 정도였다.
 
 
연회는 밤새도록 이어졌다.
 
 
 
  
 
  모든 이들의 축하 인사를 받다 지친 나는, 잠시 한적한 복도로 피신했다. 

어느새 은하수가 머리 위로 보일 정도로 밤은 깊어 있었다. 

유성이 긴 꼬리를 그리며, 하나 둘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허니!”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흠칫 놀란 내가 뒤를 돌아봤다. 

로키가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아까보다는 많이 괜찮아졌지만, 여전히 사색이였다.
 
 
“로키? 넌 연회장에 있어야지! 우리 둘 다 사라지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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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 좀 하자니까, 인사 핑계로 계속 도망만 친 건 당신이잖아.”
 
 
로키가 얼굴을 찡그렸다.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다시 밖을 내다보았다. 


로키가 나를 따라 창가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이제 제대로 말해 봐.”
 
“아, 뭐를?”
 
 
내가 짜증을 내자, 로키는 답답하다는 말투로 다시 물었다.
 
 
“아기 말이야. 당신이 분명 ’아기‘라고 했잖아. …거짓말은 나한테 안 통해.”
 

 
세상에, 도망갈 구멍이 없군.
 
 
 
“나도 오늘 안 거야.”
 
 
나는 한숨을 쉬며 마지못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며칠 전부터 몸이 안 좋았는데… 아, 이거는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고… 아무튼, 프레이야님이 할 말이 있다고 오늘 찾아오셨는데 다짜고짜 ’축하해요, 허니. 대대로 어두운 겨울밤을 밝힐 아이에요.‘ 라고 하셨어. 그러니까… 아이가 생겼다고. 너랑… 나….”
 
 
내 말을 들은 로키는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버렸다.
 
 
“로키?”
 
 
나는 그의 어깨를 살짝 건드렸다. 

그러자 로키가 그대로 바닥에 주저 앉아 버렸다.
 
 
“로키! 왜 그래? 괜찮은 거야?” 
 
“괜찮아. 그냥… 난…”
 
 
로키가 손을 저으며 나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곧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도대체 언제…?”
 
 
나는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순간적으로 내 표정을 읽은 로키는, 곧 모든 걸 깨달은 듯 내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오, 그 날이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로키는 복도 벽에 기대어 앉아 눈을 지그시 감았다. 온 몸에 힘이 풀린 것 같이 보였다.
 
 
그가 작은 실소를 터뜨렸다.
 
로키의 웃음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살짝 무거워졌다.
 
 
“로키, 네가 혼란스러운 건 이해해.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나는 어느 정도 마음이 정리됐어. 사실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아직도 걱정은 되지만… 그런 것보다 기쁜 마음이 더 커. 그러니까 로키, 너도 시간을 갖고 마음의 정리를…”
 
“무슨 정리?”
 

그의 물음에, 내가 대답했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빠르잖아. 네가 당황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고. 그러니까 시간을 갖고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라는 거지. 두려운 마음은 이 상황에 별로 도움이…”

“내가 언제 두렵다고 했어?”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로키를 바라봤다.
 
 
“지금 두려운 거 아니었어? 아이가 갑자기 생겼잖아! 당연히 두려워야지!”
 
“그러니까 그게 왜 '두려운' 일인데?”
 
 
로키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당황하며 대답했다.
 
 
“처음 가진 아이잖아! 앞으로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당연히 두렵지!”
 
“그 아이의 아버지가 요툰헤임의 왕이고, 또 아스가르드의 왕자야.”
 
 
로키가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게다가 그 두 나라는 아홉 세계 중 가장 위대한 곳이라고. 지금 내가 유일하게 두려운 것이라고는, 우리 아이가 갖게 될 사회적 지위와 계층 구조에 대해 불만을 품고 아우성칠 하등 종족들의 울음소리뿐이야. …아니 잠깐, 그런 놈들이 있다면 그냥 처리하면 그만이지. 짠, 방금 내 안의 두려움이 사라졌어.”
 
 
 
언제는 뭐, 나를 위해 모든 생명을 지키겠다더니….
 
 
“그럼 왜 이렇게 힘 빼고 앉아 있는 건데?”
 
 
내가 시큰둥하게 물었다. 
 
 
“우리 아이가 어떤 모습일지 생각 좀 했어.”
 
 
로키는 싱긋 웃으며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침착해보여서 다행이었다.



 나는 조심스레 로키의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내가 물었다.
 

“로키, 넌 왕자와 공주 중에 어느 쪽이었음 좋겠어?”

"뭐?"


로키가 나를 바라봤다.

내가 다시 말했다.


"말 그대로, 우리 아기가 왕자랑 공주 중에 어느 쪽이면 좋겠냐고."

“상관없어.”
 
 
로키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대답했다.

그는 설렘이 가득한 얼굴로 미소를 띄며 말을 이었다.


“왕자라면 나를 닮아서 완벽할 테고, 공주라면…”
 
 
그러더니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나도 로키를 바라봤다. 

그는 내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Tom Hiddleston GIF Hunt | Thor loki, Tom hiddleston loki, Loki marvel 
“공주라면 또 역시 나를 닮아서 완벽할 테니까.”
 
“아, 그래.”
 
 
나는 그의 대답에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아기가 저 왕자병만 안 닮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로키는 내 어깨를 당겨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그 순간까지도 많은 유성이 밤하늘 위를 아름답게 수놓으며 우리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걸 보고 있자니, 유성에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너무 신기해서 로키에게 뛰어가 말해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로키는 그저 시시한 미신이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땐 나도 그 말에 동의했지만, 사실은 매번 유성이 떨어질 때마다 로키 몰래 소원을 빌었다. 

언제나 똑같은 소원이었다.

 
로키와 함께하는 이 순간이, 언제까지나 영원하게 해달라고.
 
 

 -끝-
 





***
우왕 이제 진짜 완결이다! 10년이 넘은 로키 덕질동안 끄적였던 글인데, 그동안 댓글 + 추천 + 읽어 준 히들러들아 정말 고마워어어. 사실 아빠가 된 로키가 어떤 사건으로 허니를 잃고, 인간으로 환생한 허니의 기억을 되돌리기 위해 미드가르드에서 우당쿵탕하는 시즌 3까지 조금 써놨는데,,, 그냥 남은 인생동안 끄적이다가 다 쓰게 되면 다시 여기다가 올려볼게.

그러니 이 타임라인에 살고 있는 우리 로키를 잊지 말아줘.

모두 행복해야해! 안녕!

 
2024.05.18 16:3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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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했어~!!너무재밌게 잘봤어ㅠ2세라니ㅠ행복해보여서 좋다ㅠㅜ
[Code: d131]
2024.05.19 00:57
ㅇㅇ
모바일
세상에 너무너무 잘 읽었어 센세....♡
[Code: 017c]
2024.05.19 08:2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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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다 역시 역시 문학이야 으아아아아아아아앙 시즌3 존버할게 꼭 돌아와줘ㅠㅠㅠㅠㅠㅠ
[Code: 2e99]
2024.05.24 22:15
ㅇㅇ
와 개재밌어 어나더 백나더 만나더
[Code: 73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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