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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2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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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은 집안 소유의 추모공원 내 구석진 곳에 묻혔다.
사람들과 떨어져 뒤쪽에 서있던 교주는 이곳에 모인 사람들을 살펴봤다.
부모님을 포함한 여러 명의 형제자매들과 조문객 중 누구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래도 한 명은 울어야 하는 거 아닌가?
자연스레 시선이 허니 비에게 옮겨갔다.
오랜 시간 결혼을 약속했던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는데도 의외로 여자는 울지 않았다.
오히려 덤덤해 보일 정도였다.
아직 실감이 나질 않아서일까?
아니면 상실감과 슬픔이 너무 커서?
어쩌면 두 가지 다 일지도 모르지.
스산한 초겨울 바람이 불었다.
말라비틀어진 낙엽들이 이리저리 흩날리다 바람을 타고 하늘로 날았다.
그때 허니 비의 시선이 낙엽을 따라 움직이는 게 보였다.
여기저기로 한동안 흔들리던 시선이 천천히 교주에게로 내려왔다.
둘은 시커먼 구덩이로 사라지는 동생의 관을 사이에 두고 잠시 동안 서로를 마주 보았다.
장례식이 끝나자 줄지어 선 검은 차량들이 하나 둘 사라졌다.
흙이 덮이는 걸 끝까지 지켜본 건 홀로 선 허니뿐이었다.
그리고 멀리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교주.
둘만 남았다.
한참 후 뒤돌아 서던 허니는 저 멀리 교주가 서있는 걸 보고 놀랐다.
이미 떠났을 줄 알았는데.
혹시 내가 눈물을 흘리는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은 걸까.
울지 않았다고 손가락질이라도 하려고?
아깐 결혼도 안한 주제에 무슨 자격으로 왔냐고 따졌으면서.
어느 쪽도 아프다.
양손을 코트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로 그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던 허니는 그대로 교주를 스쳐 지나갔다.
지금은 그의 비난을 견뎌낼 힘이 없었다.
“이제 두 번 다시 볼일 없겠죠?”
기어코 등 뒤로 날아든 날붙이 같은 말에 허니의 발이 저절로 멈췄다.
머릿속으로 그의 질문을 되새겨 보며 천천히 돌아섰다.
강한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머리끈에서 빠져나온 머리칼이 마구 휘날리며 그녀의 얼굴을 가려댔다.
교주는 단 세 걸음만으로 둘의 간격을 좁혔다.
갑작스럽게 훅 다가선 커다란 인영에 놀란 허니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다 살짝 비틀거렸다.
그녀를 잡아주려 순식간에 뻗어낸 교주의 손이 닿기 전에 얼른 중심을 잡았다.
깜짝이야.
허니는 순간 자신이 맹수 앞에 놓인 초식동물 같았단 생각을 했다.
맹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에 눌려 옴짝달싹 못하고 겨우 버티고 선 초식동물.
아 맞네. 예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랬던 거네.
그래서 저 사람이 지금처럼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면 꼼짝을 못 했던 거네.
“오늘이 마지막 맞습니까?”
딴 데 팔렸던 정신을 코앞으로 끌고 오는 질문이 다시 떨어졌다.
기어이 확답을 받고야 말겠다는 듯 다시 묻는 교주를 보니 허니는 가슴이 꽉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
다시는 눈에 띄지 말라는 얘길 이렇게 하는구나.
서글픈 한숨이 짧게 새어 나오고 말았다.
이 정도인가? 내가 이 정도로 싫다고?
그래서 허니는 그가 원하는 답을 주었다.
“네. 저도 그러길 바라요.“
교주의 미간이 또 살짝 찌푸려졌다.
좀 전에 장례식장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
원하는 대답을 들었을 텐데도 그는 말이 없었다.
그저 맹수처럼 빛나는 두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허니를 응시하고 있었다.
“안녕히 가세요.“
견디지 못한 허니가 먼저 인사를 건네고 뒤돌았다.
후들거리지 않으려고 두발에 힘을 주며 걸었다.
코트 주머니 속 꽉 쥔 두 손이 시렸다.
짧은 특별 휴가가 끝나가고 있었다.
본가에서 지내라는 부모님의 권유에도 교주는 호텔을 잡았다.
진심없는 배려는 부담스러울 뿐더러 따로 지내는게 서로 편하다.
군에 돌아가면 쓰려고 구매한 몇가지 물품들을 가방 속에 정리하고 침대에 누우니 사방이 고요했다.
동생은 허니 비가 자신과 같은 반푼이라며 조소했지만 교주가 볼 때 둘은 달랐다.
동생이 마치 자신의 존재를 알아 달라는 듯 온갖 관종짓을 해댔다면 반대로 허니 비는 자신의 존재감을 지우기 위해 애쓰는 걸로 보였다.
최대한 몸을 숙이고 부모 뜻에 맞춰 사는 소심하고 조용한 아이.
그 집안에는 반푼이는 절대 남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는 규칙이라도 있었는지 몰라도 누가 먼저 발견하기 전까진 먼저 나서는 법도 말을 거는 법도 거의 없었다.
그렇게 정반대의 사람들이라 오히려 서로에게 끌렸을까?
그런 점 때문에 동생을 사랑한 걸까.
잡생각을 끊어내준 건 문자 알림음이었다.
복귀 전날은 반드시 본가로 와서 저녁 식사에 참석하라는 부모님의 문자.
장례식 이후 수시로 보내는 문자는 맘에 들지 않았지만 머릿속을 환기시키기엔 좋은 타이밍이었다.
사용인이 열어준 문을 지나 다이닝으로 들어서던 교주의 걸음이 느려졌다.
테이블에는 예상치 못한 손님이 있었다.
다시는 볼 일이 없을 거라던 허니 비가 앉아있었다.
교주의 눈썹이 크게 움직였다.
그날 불었던 바람만큼이나 냉랭하게 돌아서던 여자가 왜 여기에 다시 나타났을까.
“와서 앉아라.“
부모의 재촉에 교주는 테이블로 다가와 의자에 앉을 때까지 허니 비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때가 마지막인 줄 알았습니다만.”
“…“
“이렇게 빨리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입꼬리가 비틀어지며 비아냥댔지만 허니는 포크질 하는 시늉만 하고 있었다.
“회장님과는 얘기가 다 됐다.“
늘 하고 싶은 말만 하시는 아버지가 끼어들었다.
“무슨 얘기 말씀이십니까?“
“너희 둘. 결혼시키기로 했다.“
콰앙!!!
얼마 간의 정적 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교주 때문에 날아간 의자가 대리석 바닥에 부딪히며 큰소리를 냈다.
마주 앉아 있던 허니가 깜짝 놀라 어깨를 움찔했다.
교주는 아버지를 노려봤다.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 하십니까?“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음절 하나 하나에 실린 분노가 허니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허니는 테이블 밑으로 손을 내려 손끝을 뜯었다.
“당신도 동의했습니까?“
이젠 허니의 차례인가 보다.
“당신도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동의했냐고 묻는 겁니다.“
낮게 깔린 음성이 소리 지르는 것보다 훨씬 무섭게 느껴졌다.
허니가 대답을 머뭇거리자 교주가 답을 재촉했다.
“뭐라고 말 좀…”
“너희 같은 것들 동의 따위는 필요 없다!!“
아버지가 테이블을 내려치며 소리 질렀다.
그 모습에 할 말을 잃은 교주의 입에서 황당한 헛웃음이 터졌다.
점점 커지던 웃음소리가 곧 홀 전체를 채웠다.
아 맞다.
잊고 있었네.
나도 반푼이었는데.
클리셰 좋아
동생은 집안 소유의 추모공원 내 구석진 곳에 묻혔다.
사람들과 떨어져 뒤쪽에 서있던 교주는 이곳에 모인 사람들을 살펴봤다.
부모님을 포함한 여러 명의 형제자매들과 조문객 중 누구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래도 한 명은 울어야 하는 거 아닌가?
자연스레 시선이 허니 비에게 옮겨갔다.
오랜 시간 결혼을 약속했던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는데도 의외로 여자는 울지 않았다.
오히려 덤덤해 보일 정도였다.
아직 실감이 나질 않아서일까?
아니면 상실감과 슬픔이 너무 커서?
어쩌면 두 가지 다 일지도 모르지.
스산한 초겨울 바람이 불었다.
말라비틀어진 낙엽들이 이리저리 흩날리다 바람을 타고 하늘로 날았다.
그때 허니 비의 시선이 낙엽을 따라 움직이는 게 보였다.
여기저기로 한동안 흔들리던 시선이 천천히 교주에게로 내려왔다.
둘은 시커먼 구덩이로 사라지는 동생의 관을 사이에 두고 잠시 동안 서로를 마주 보았다.
장례식이 끝나자 줄지어 선 검은 차량들이 하나 둘 사라졌다.
흙이 덮이는 걸 끝까지 지켜본 건 홀로 선 허니뿐이었다.
그리고 멀리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교주.
둘만 남았다.
한참 후 뒤돌아 서던 허니는 저 멀리 교주가 서있는 걸 보고 놀랐다.
이미 떠났을 줄 알았는데.
혹시 내가 눈물을 흘리는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은 걸까.
울지 않았다고 손가락질이라도 하려고?
아깐 결혼도 안한 주제에 무슨 자격으로 왔냐고 따졌으면서.
어느 쪽도 아프다.
양손을 코트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로 그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던 허니는 그대로 교주를 스쳐 지나갔다.
지금은 그의 비난을 견뎌낼 힘이 없었다.
“이제 두 번 다시 볼일 없겠죠?”
기어코 등 뒤로 날아든 날붙이 같은 말에 허니의 발이 저절로 멈췄다.
머릿속으로 그의 질문을 되새겨 보며 천천히 돌아섰다.
강한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머리끈에서 빠져나온 머리칼이 마구 휘날리며 그녀의 얼굴을 가려댔다.
교주는 단 세 걸음만으로 둘의 간격을 좁혔다.
갑작스럽게 훅 다가선 커다란 인영에 놀란 허니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다 살짝 비틀거렸다.
그녀를 잡아주려 순식간에 뻗어낸 교주의 손이 닿기 전에 얼른 중심을 잡았다.
깜짝이야.
허니는 순간 자신이 맹수 앞에 놓인 초식동물 같았단 생각을 했다.
맹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에 눌려 옴짝달싹 못하고 겨우 버티고 선 초식동물.
아 맞네. 예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랬던 거네.
그래서 저 사람이 지금처럼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면 꼼짝을 못 했던 거네.
“오늘이 마지막 맞습니까?”
딴 데 팔렸던 정신을 코앞으로 끌고 오는 질문이 다시 떨어졌다.
기어이 확답을 받고야 말겠다는 듯 다시 묻는 교주를 보니 허니는 가슴이 꽉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
다시는 눈에 띄지 말라는 얘길 이렇게 하는구나.
서글픈 한숨이 짧게 새어 나오고 말았다.
이 정도인가? 내가 이 정도로 싫다고?
그래서 허니는 그가 원하는 답을 주었다.
“네. 저도 그러길 바라요.“
교주의 미간이 또 살짝 찌푸려졌다.
좀 전에 장례식장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
원하는 대답을 들었을 텐데도 그는 말이 없었다.
그저 맹수처럼 빛나는 두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허니를 응시하고 있었다.
“안녕히 가세요.“
견디지 못한 허니가 먼저 인사를 건네고 뒤돌았다.
후들거리지 않으려고 두발에 힘을 주며 걸었다.
코트 주머니 속 꽉 쥔 두 손이 시렸다.
짧은 특별 휴가가 끝나가고 있었다.
본가에서 지내라는 부모님의 권유에도 교주는 호텔을 잡았다.
진심없는 배려는 부담스러울 뿐더러 따로 지내는게 서로 편하다.
군에 돌아가면 쓰려고 구매한 몇가지 물품들을 가방 속에 정리하고 침대에 누우니 사방이 고요했다.
동생은 허니 비가 자신과 같은 반푼이라며 조소했지만 교주가 볼 때 둘은 달랐다.
동생이 마치 자신의 존재를 알아 달라는 듯 온갖 관종짓을 해댔다면 반대로 허니 비는 자신의 존재감을 지우기 위해 애쓰는 걸로 보였다.
최대한 몸을 숙이고 부모 뜻에 맞춰 사는 소심하고 조용한 아이.
그 집안에는 반푼이는 절대 남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는 규칙이라도 있었는지 몰라도 누가 먼저 발견하기 전까진 먼저 나서는 법도 말을 거는 법도 거의 없었다.
그렇게 정반대의 사람들이라 오히려 서로에게 끌렸을까?
그런 점 때문에 동생을 사랑한 걸까.
잡생각을 끊어내준 건 문자 알림음이었다.
복귀 전날은 반드시 본가로 와서 저녁 식사에 참석하라는 부모님의 문자.
장례식 이후 수시로 보내는 문자는 맘에 들지 않았지만 머릿속을 환기시키기엔 좋은 타이밍이었다.
사용인이 열어준 문을 지나 다이닝으로 들어서던 교주의 걸음이 느려졌다.
테이블에는 예상치 못한 손님이 있었다.
다시는 볼 일이 없을 거라던 허니 비가 앉아있었다.
교주의 눈썹이 크게 움직였다.
그날 불었던 바람만큼이나 냉랭하게 돌아서던 여자가 왜 여기에 다시 나타났을까.
“와서 앉아라.“
부모의 재촉에 교주는 테이블로 다가와 의자에 앉을 때까지 허니 비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때가 마지막인 줄 알았습니다만.”
“…“
“이렇게 빨리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입꼬리가 비틀어지며 비아냥댔지만 허니는 포크질 하는 시늉만 하고 있었다.
“회장님과는 얘기가 다 됐다.“
늘 하고 싶은 말만 하시는 아버지가 끼어들었다.
“무슨 얘기 말씀이십니까?“
“너희 둘. 결혼시키기로 했다.“
콰앙!!!
얼마 간의 정적 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교주 때문에 날아간 의자가 대리석 바닥에 부딪히며 큰소리를 냈다.
마주 앉아 있던 허니가 깜짝 놀라 어깨를 움찔했다.
교주는 아버지를 노려봤다.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 하십니까?“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음절 하나 하나에 실린 분노가 허니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허니는 테이블 밑으로 손을 내려 손끝을 뜯었다.
“당신도 동의했습니까?“
이젠 허니의 차례인가 보다.
“당신도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동의했냐고 묻는 겁니다.“
낮게 깔린 음성이 소리 지르는 것보다 훨씬 무섭게 느껴졌다.
허니가 대답을 머뭇거리자 교주가 답을 재촉했다.
“뭐라고 말 좀…”
“너희 같은 것들 동의 따위는 필요 없다!!“
아버지가 테이블을 내려치며 소리 질렀다.
그 모습에 할 말을 잃은 교주의 입에서 황당한 헛웃음이 터졌다.
점점 커지던 웃음소리가 곧 홀 전체를 채웠다.
아 맞다.
잊고 있었네.
나도 반푼이었는데.
클리셰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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