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767502
view 674
2024.12.08 10:36
토로비들아 이 시국에 잘지내고있지...?
쫌쫌따리 무순쓴거 올린다ㅠㅠㅠ
나 여기있고 너 거기있지...?
재미없고 지겨운 똥 무순 읽어줘서 고맙ㅠㅠㅠㅠ
3.
보고타의 세간살이 몇개 없는 집은 이미 맷이 정리했을거라 예상했기에 멕시코에서의 거취는 믿을만한 옛 동료 라파엘에게 부탁해 볼 생각이었다. 만약, 제대로 된 거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최악의 경우 다시 콜롬비아의 메데인 카르텔의 도움을 받아야 할 수도 있겠다싶었던 찰나, 허니 비의 예상치 못 한 제안은 알레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그녀는 알레가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했던 검사라는걸 모르는 눈치였고, 앞으로도 그 의사선생에게 알려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러저러한 관계를 다 끊어내더라도 알레는 허니가 원하는 대로 미국으로만 보내주면 될 일이었다.
가끔 두개골이 찢기는 것 과 같은 고통이 찾아왔지만 알레는 자신이 지금 숨 쉬고 움직이는 것 만으로도 감사했다. 혹자는 가족도 직업도 잃은 자신의 인생을 두고 죽는게 나은 인생이라 말 할 수 있겠으나 알레는 그 말에 동의 할 수 없었다. 자살을 하든, 몸이 망가져 객사를 하든 무슨 이유가 되었든 자신의 죽음은 최종 카르텔의 몰락과 그 수괴의 죽음 이후일 것 이다.
허니가 주고 간 휴대전화를 들어 이미 저장되어있는 맷의 전화번호를 찾아 메세지를 보냈다.
'행운을 찾았어.'
- 허니 비?
'누군지 알지?'
- 당연
'들었어?'
- 만날 수 는 없는거지?
'당연'
- 어디에 있으려고
'그녀가 왜 미국으로 못 가고 있는지 좀 알아보고, 같이 넘어갈 수 있게 도와줘'
- 그거면 돼?
'또 있을 수도 있지'
- 몸 조심 해
'자네도'
-
허니는 비교적 깨끗하게 정리 되어 있는 침실 위에서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약 한시간 전 저 멀리 국경사막에서 한차례 총성이 벌어졌지만 휴대폰의 벨소리가 울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는 그렇게 부상자들이 많지 않은 듯 했다. 아마도, 거의 다 죽었거나.
오빠와 함께 살았던 집은 방 세칸에 화장실 두개. 전형적인 멕시코 지역의 중산층 공동주택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허니는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에 눈살을 찌푸리며 일어나 비적거리는 모습으로 침실에서 빠져나왔다. 거실로 나와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어 건조한 공기를 마셨다. 햇볕에 비치는 먼지들을 멍하니 보다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는 생활쓰레기들을 한곳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언제 썼는지 기억도 안나는 청소기를 돌리고, 먼지를 털었다. 냉장고로 걸어가 문을 열고선 아무것도 없이 차가운 냉기만을 내뿜고 있는 안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욕실을 향해 대충 씻은 후 다시 나와 아무렇게나 손에 잡히는 옷을 주워 입었다. 적막한 실내는 허니가 움직이는 소리만이 가득 했다.
시끄럽게 떠드는 음악소리가 가득 한 동네 제일 큰 할인매장에 들어간 허니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사람사는 냄새에 입가에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거의 매일 병원에서 끼니를 해결하던 허니가 타인을 위해 요리라는 걸 해 보는건 오빠가 죽은 후 처음이었다.
아무도 믿을 수 없고, 누구를 마음에 들여서도 안되는 생활을 수십년동안 했기에 허니는 지금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다. 물론 중년의 그를 이성적으로 생각하는건 전혀 아니었다. 멕시코 검사출신의 그가 지금 하려고 하는 일도 알 수 없었고, 그가 어떤 삶을 앞으로 살아갈지도 관심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알레를 통해 자신의 큰 오빠를 보고 있는 스스로의 감정을 인정해야 했다. 지금 소속이 어디든, 알레는 카르텔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카르텔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었다. 최전방에 있던, 비밀리에 움직이던 그건 지금 허니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식자재를 파는 곳으로 천천히 카트를 움직이며 걸어가던 허니는 손에 잡히는대로 각종 야채와 고기를 집어 넣었다. 그리고 자주 먹었던 냉동식품 또한 가득 채웠다. 음료와 각종 주류까지 챙겨 넣던 허니는 문득, 촤판에서 할인을 하고 있는 성인 남성 옷들을 응시했다.
분명 응급실에 들어올 때는 알레 모습은 형편없었다. 입고 나갈 옷이 있을리가 만무했기에 허니는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 사이즈가 가장 큰 것 같은 옷을 직원에게 받은 쇼핑백에 가지런히 담았다.
"손님, 이것도 가져가세요"
"네?"
자신을 부르는 직원 목소리에 허니는 뒤를 돌아보았다. 옷을 사면 사은품으로 남성 속옷을 준다는 것이었다. 겉옷만 생각한 허니는 스스로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미소를 지으며 받아들였다.
"혹시, 정확한 사이즈를 아시나요?"
허니는 지금 그가 속옷을 입고 있는지 순간 생각하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냥.. 좀 큰걸로 주세요"
왠일인지 부끄러웠다.
"선생님, 어제 안계셔서 너무 힘들었어요~ 아니 글쎄."
호들갑을 떨며 자신에게로 걸어오는 응급실 간호사를 보며 허니는 예의가득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물론 저 대신 있었던 전공의들의 상태가 영 녹록치 않았을 것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오프였잖아요~ 오늘 열심히 할게요 선생님."
시간을 보니 알레의 퇴원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선생님, 7-5호 환자분 퇴원수속이 아직 안됐는데 퇴원시킬까요?"
허니는 원무과 직원에게 자신이 하겠다며 말하고는 지역 특성상 제일 윗층에 위치한 병원 수납창구로 갔다.
알레의 병원비는 맷이 입금해주었다. 왜 그의 병원비를 CIA 소속의 사람이 입금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허니는 맷이 입금한 돈을 출금해 수납을 완료했다. 그 금액은 알레가 처음 약속했던 것 처럼 입원비의 5배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보호자 사인엔 허니의 사인이 들어갔다. 병원 내에서는 허니와 7-5호 환자가 깊은 관계가 아닐까 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허니는 개의치않았다. 이 나라에서 나고 자랐지만 허니는 어디에가든 이방인이었다. 그건 외모에서부터 다른 모습이 이유일 수 도 있고, 허니의 아버지 직업 특성상 더 단절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을 수 있다. 그래도 허니는 아버지가 떠나기 전까지 친구들도 곧 잘 사귀었고, 학급에서 나름 쾌활한 학생이었다. 물론 지금은 그 누구보다 혼자 있는 게 더 익숙해 져 버렸지만 말이다. 어제 알레를 위해 산 옷들이 든 가방을 챙겨 수납서와 함께 들고는 병실로 향했다.
"수납확인서예요. 그리고."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써 내려가던 알레는 허니를 올려다 보았다. 안경은 어디서 구했는지 반쯤 걸친 상태로 올려다보는 모습이 생각보다 인간적이었다.
허니는 쭈뼛거리며 손에 뒤고 있던 쇼핑백을 내밀었다. 그리고 자신의 열쇠 두개를 그가 반쯤 앉아있는 침대 위로 무심히 던졌다.
"집키랑 차키예요"
"이건..?"
"퇴원할 때 입을 옷이요"
"아..."
"주소지랑 차량 정보는 문자로 발송 해 놨어요. 집에 가면 입구에서부터 왼쪽에 방이 하나 있어요. 저희 가족 중 한사람이 쓰던 방인데, 거기서 지내시면 될 것 같아요."
"고마워요"
"필요한건 제가 대충 채워 놓긴 했어요. 그 외에 또 있으면 말해주세요"
"알겠어요."
"아, 그리고 이건.. 부탁인데. 저희집은 신발을 벗고 다녀요."
허니는 말을 끝내고 뒤를 돌았다. 그리고 조용히 그의 고맙다는 인사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죄를 지은 것도 없는데, 마주보고 있는 것도 거북스러울 만큼 그의 무게감은 상당했다. 허니는 게계적으로 환자의 빠져버린 팔을 맞추면서 입술을 곱씹었다. 그는 오빠의 사고 후 약 7년동안 허니가 만나 본 사람들 중에 가장 위압감이컸다. 수 많은 카르텔들을 치료하고, 고위 공직자의 부상까지 도맡아서 해 왔던 허니었기에 단련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 앞에서는 그저 다시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것 만 같았다.
-
'냉장고 안에 음식 있어요.'
허니의 문자를 확인 한 알레는 휴대폰을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는 실내를 둘러보았다. 자신이 예전에 살았던 곳과 비슷한 구조의 집이었다. 마당은 없었지만 주방에 있는 그릇들과 집기들은 알레의 아내가 쓰던 것과 같은 제조사의 것이었다. 아내와 함께 있었던 그때와는 다른 거칠고 투박해 진 손 끝으로 집기들을 어루만지던 알레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는 큰 몸을 구겨 넣어 선반에 등을 기댄채 주저 앉았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크게 와 닿았다. 지난 맷과 함께 한 작전 이후로 알레는 심히 동요되어가는 자신이 낯설었지만 억누를 수 없었다. 주저 앉은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숨 죽여 흐느끼기 시작했다.
-
툭.
팔이 빠져 죽어나가던 어린놈의 카르텔 조직원이 이제 살만한지 다른 한손으로 허니의 엉덩이를 주물러댔다. 이런일이 한 두번 아니었기에 허니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자신보다 훨씬 더 어려보이는 남자아이였다.
"몇살이야"
"너보다 많아"
"그 유우명한 허니 선생이 날 치료해준다니까 여기가 서서"
소년은 하체에 제 손을 갖다대었다. 카르텔 안에서는 내가 유명한가보다. 허니는 생각지도 못한 소년의 새롱거림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난 안흘러"
"뭐?"
"넌 서도 난 안흐른다고"
허니의 무덤덤한 말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온 몸에 문신을 두르고 있는 그 소년은 주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씩씩거리며 말했다.
"너, 너네 가족이 어떻게 죽었는지 우리가 모를 거라 생각해?"
"알게뭐야"
"너도 그렇게 해 줄수 있다는거야"
"네가?"
"뭐?"
"네가 그렇게 할 수 있어? 네 힘으로?"
아무말 하지 않았다. 그저 씩씩거리기만 하는 어린 소년의 민 머리를 한손으로 쓰다듬으며 허니는 미소를 지었다.
"팔 빠진거 스스로 끼워 맞추지도 못 하는 네가 어떻게 날 그렇게 만들어 주겠다는거야."
"뭐..?"
"팔 이제 안 아프면 수납하고 나가, 조직원들 데리고."
맷은 잠시 쉬고 있다고 했다. 어디까지 믿어야할지는 가늠이 되지 않았으나 알레는 그가 지금 상부로부터 경질 아닌 경질을 당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특히 알레가 마지막까지 지켜보려고 했던 이사벨라가 미국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있다는 것은 맷이 신시아에게 항명했음을 뜻했다. 정해진 소속 없이 살고 있는 자신과 달리 군인이었을때부터 한 곳에 속해있던 맷이 항명하기란 어려웠을 것 이었다. 알레는 그런 맷이 이번에도 허니를 미국으로 안전하게 데리고 가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자신이 쓰고 있는 방은 아마도, 허니의 큰 오빠이자 수년전에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 J의 방일것이다. 킹 사이즈 침대와 크고 높은 책장, 그리고 책상이 전부인 이 방은 알레가 쓰기에 무난했다. 물론, 오랜만에 보는 멕시코 법과 관련된 책은 알레를 조금 더 심란하게 만들었으나 관계 없었다.
허니는 자신이 했던 말 처럼, 알레가 퇴원한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집으로 오지 않았다. 멕시코 국경에서 응급실 담당의로 사는것은 아마 청렴한 검사의 삶과는 또다른 고충이 있을것이었다. 일이 끝나지 않겠지. 주인없는 집에서 잠을 자려니 몰래 점유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한 늦은 밤, 허니가 사 준 옷을 입고 허니의 차로 외출을 한 알레는 멕시코 국경지역에서 한참을 벗어난 시골마을로 차를 몰았다.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두운 시골길, 밤 11시가 넘은 시간엔 멕시코 국경마을은 물론이거니와 그 주변에 크고 작은 마을까지도 전부 사람들이 문을 걸어 잠근다. 물론 낮이라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지만 어둠이 주는 공포는 그만큼 크고 무거웠다.
"이번엔 정말 유령이 된 것 같군."
"지옥에서 걸어나온 기분이야"
"몬테레이로 와. 내가 자네가 살 곳을 마련해 줄게"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어"
"알레한드로"
"이 친구 가족들 수사 정보 좀 보내줘."
알레는 허니비의 인적사항이 적힌 메모를 라파엘에게 내밀었다.
"이..거,"
"맞아. 비 경위, 누구짓이야?"
"누구? 아빠 아님 아들."
"아들"
"무기 밀매하는 애들이야. 작년에 분해됐어. 그리고."
"그리고?"
"내부에서 새어나갔어. 아직 색출은 못 했지만, 분명해."
"연방경찰이잖아"
"그래서 지금 없어졌잖아.."
"그렇군.."
"아마도, 그때 국경에 있던 동생을 납치하려고 했을거야. 그래서 혼자서 간거고"
알레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예전 자신이 떠올랐다. 만약, 카르텔이 알레의 집이 아닌 다른곳에서의 만남을 원했다면 알레 또한 가족을 지키기위해 홀홀단신으로 죽음의 길을 걸어갔을터였다.
젊은 비 경위는 홀로 국경지대에 가는 도중,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여동생이 혼자 살아갈 미래를 걱정했을까, 아니면 완성하지 못 한 복수의 앙금이 남아있었을까.
알레는 내가 너의 부모와 남동생을 죽인 그들을 찾았고, 바로 죽였어. 라고 소리쳐 말해주고싶을정도였다.
"연방경찰도 지역 경찰이랑 다를게 없군"
"헌병대는 괜찮겠나. 난 시간 문제라고 봐."
어느순간부터 후아레스에서 작전을 할 때, 멕시코 연방경찰은 대동하지않았다. 그저 헌병대만이 경찰이 했던 일을 하는 듯 했다.
어디를 가든 어떤 조직이든 문제는 있다. 그것이 돈을 위한 것이든, 아니면 신시아처럼 국가를 위한것이든. 서로 이해관계가 얽혀있을 수 밖에 없겠지.
"찾아줘. 찾게되면 연락해."
"알레-"
"다음에, 기회되면 몬테레이로 여행이나 한 번 가볼게."
"그래"
"제수씨한테 안부 전해주고, 몸 조심해"
- 알레, 집에 없네요?
허니 비 의 집으로 가는 길. 새벽 2시가 넘은 시간, 알레에게 문자한통이 왔다.
' 가고있어요. 두시간 더 걸릴 것 같은데...'
- 그럼, 저 피곤해서 먼저 잘게요.
이 시간에 집에 어떻게 왔는지, 차로도 위험한 시간인데 혹시 걸어서 온건지. 알레는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허니의 차는 자신이 타고있는데..
알레가 허니의 집에 들어온 이후, 그는 허니에게 자동차 한 대 정도 살만한 돈을 입금했다. 자신은 아직 쫓기는 중 이다보니 좀 불편하더라도 허니가 동산 거래를 하는게 나을것이라 생각했다. 그냥 현금을 통째 허니의 방 안에 놔뒀어야했나. 알레는 까끌거리는 턱을 투박한 손으로 쓸었다.
새로 보이는 차는 없었다. 공동주택에 비어있는자리에 주차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올라가 익숙하게 현관을 열었다. 자고있는지 집안은 조용했다. 다만, 현관에 작은 문수의 허니가 신는 신발과, 거실 한켠에서 열심히 자신의 일을 시작한 가습기와, 주방에서 은은하게 나는 달콤한 생크림 향이 허니의 존재를 알아차리게했다.
알레는 익숙한듯 가지고있는 가방을 (-허니가 사다놓은) 내려놓고, 혹시라도 아이가 잠에서 깰까싶어 조심스레 거실옆 욕실로 향했다.
젠장.
방에 들어가서 갈아입을 옷을 챙겼어야했는데, 머리에 총을 맞아서그런가. 알레는 여기 이 곳에 온 후로 자꾸만 멍청하게 행동하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지난밤 세탁해서 정리해놓은 큰 수건을 꺼내 대충 몸을 닦은 알레는 그 수건을 하체에 걸친채 답지않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욕실 문을 열었다.
"늦었네요"
동시에 맞은편 허니의 방문이 열리고, 눈을 부비며 나오던 허니는 알레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 다시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알레는 빠르게 J가 쓰던 방으로 가 옷을 주워입고 머리카락에 물기를 털었다.
- 똑똑
"빵 다됐는데, 지금 드실래요? 아님. 나중에-"
알레는 방문을 열고 나갔다.
일주일하고도 삼일이 지난 후 본 허니 비 선생은 가운을 입지않아서인지 그 나잇대의 여자로 보였다. 동양인이기에 그보다 조금 더 어려보이기까지했다. 자신에게 허니는 국경에서만난 행운이지만, 허니에게 자신은 행운일까.
맷에게서는 아직 허니를 미국으로 인도할 만한 계획을 듣지못했기에 지난번 일부터 뜻대로 되지않는 현실이 마음에 들지않았다.
미간을 찌푸리고 심드렁하게 자신을 보는 알레에게 또다른 위화감을 느꼈는지 허니는 눈을 도르르 굴리기만했다. 그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허니를 지나쳐 주방한켠에 자리잡은 4인용 식탁에 앉았다. 오빠보다 조금 더 큰 알레의 존재감은 남달랐다. 아직 물기가 남았는지 알레의 큰 족적이 거실을 가로질러 나 있었다. 허니는 아무도 모르게 그 족적을 따라 걸었다.
퇴근하면서 편의점에서 사 온 차가운 우유를 데우고, 달큰한 바닐라 향과 함께 모락모락 연기가 나는 방금 전 다 구워진 파운드 케익을 오븐에서 꺼냈다. 그리고, 아까 알레가 맡은 향의 근원인 생크림을 냉장고에서 꺼냈다.
"도와줄게 있나요?"
"아.. 그럼 생크림 좀 여기 ..이거.. 이걸로."
알레는 익숙한듯 생크림을 케익 위에 판판히 펴 발랐다. 그리고 허니가 꺼내놓은 과일들도 칼로 예쁘게 잘라 생크림 위 보기좋게 올렸다. 나란히 서서 그 모습을 올려다보는 허니와 눈이마주치차 고개를 까딱 거리며 그가 말했다.
"딸아이랑 주말마다 만들어서.."
"아.. 좋은 아빠셨네요."
어깨를 으쓱해보이며 허니가 챙겨주는 포크를 받아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리고 서로 마주앉아 케익을 잘라 앞접시앞에 하나씩 먹기좋게 올렸다.
"오랜만에 만들어서 맛이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맛있네요."
"다행이예요."
허니는 괜스레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오빠같아서. 아님 고등학생때 돌아가신 아빠같아서.. 수년만에 이 집에서 누군가와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고 있다는게 믿기질않았다.
"바쁘지않았어요?"
"음. 오늘은 교통사고가나서 부상자들이 좀 많았어요. 어린아이였는데 늑골이 부러져서 제가 해 줄수 있는거라고는 진통제 투여밖에 없었죠. 마음 아팠어요."
"그렇게 안 보이는데.."
"네? 아, 아이들한텐 너그러워요 저."
5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식어가는 우유를 앞에두고도 둘은 일어나지않았다. 평화와는 동 떨어진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은 타인과 일상을 공유하는 지금 이 순간이 소중했다.
"그런 일이 흔한가요?"
"그럼요. 초반엔 정말 심했어요. 근데 저희 아빠와 오빠가 경찰이었던걸 알게 되서그런지. 그 이후부터는 조금 덜 하더라고요."
"아..그렇겠군요."
"알레도 알죠? 제 가족들."
허니가 말하는 게 그냥 들어 알고 있는건지, 아니면 서로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알레는 먼저 이야기하고싶지않았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고 하잖아요.. 어때요. 알레, 지금은 행복한가요..?"
일상을 이야기할때와는 사뭇, 다른 허니의 시선에 알레는 미간을 찌푸렸다. 맞은편에 앉아있는 작은 동양인 여자는 이제 알레를 보고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 되려, 알레가 그의 시선을 피했다. 언젠가 검경이 같이 수사를 진행하던 그 때, 허니의 부친인 비 경위가 젊었던 알레를 나무라던 그 얼굴이 겹쳐졌다.
"우리 오빠는요, 복수귀 그 자체였어요.. 저한텐 한 없이 다정했지만 전 알고있었어요.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허니."
"당신을 보면, 그때의 우리 오빠가 생각이 나요. 위태로운.."
"그런가요"
"물론, 알레 당신은 그때의 오빠보단 더 깊이 관여된 것 같지만 말이예요."
알레는 다 식은 우유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불편했다. 익숙했던 자신의 고독과 아픔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는 듯 했다. 이사벨라를 살려줄때부터인가. 아니면, 수년만에 처음 했던 수화때문일까. 균열이 점점 커져갔다.
알레는 허니에게 아무런 말을 해 줄 수 없었다. 그리고 허니 또한 알레에게 그 어떤 말도 들으려 하진 않았다.
"언제 출근이예요?"
침묵을 깬건, 알레였다.
"오늘은 오프고, 내일 저녁이예요."
"밤늦게 퇴근할땐 어떻게 왔어요?"
"아, 병동 선생님이 데려다주셨어요."
"다행이네요. 차를 렌트하는게 좋지 않아요?"
알레의 말을 알아들은 허니는 빙긋 웃어보였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희망이 피어난 미소였다.
"여기서 더이상 뭘 늘리고싶지않아요."
허니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리고 손을 뻗어 알레의 크고 두툼한 손 위에 제 손을 포개었다. 따뜻한 알레의 손등을 엄지손가락으로 쓸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여기 이 곳에서의 삶은 이제 곧 끝날거잖아요. 정 걱정되시면 시간 날때. 데리러 와 주세요. 병원으로."
생각지도 못 한 허니의 말에 알레는 얼굴에 심드렁함을 지우고, 못 말린다는 듯 웃어보였다.
"알레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당신을 보면 오빠가 떠올라요. 그래서 알레는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고마워요. 뒷정리는 내가 할테니 먼저 들어가요."
"그럼, 부탁드릴게요. 전 하루종일 잘 예정이거든요."
"푹 쉬어요."
알레는 허니를 방에 들여놓고, 얼굴에 미소를 지우지 못 한 채 주방으로 가 뒷정리를 시작했다.
토로아재너붕붕
토로너붕붕
쫌쫌따리 무순쓴거 올린다ㅠㅠㅠ
나 여기있고 너 거기있지...?
재미없고 지겨운 똥 무순 읽어줘서 고맙ㅠㅠㅠㅠ
3.
보고타의 세간살이 몇개 없는 집은 이미 맷이 정리했을거라 예상했기에 멕시코에서의 거취는 믿을만한 옛 동료 라파엘에게 부탁해 볼 생각이었다. 만약, 제대로 된 거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최악의 경우 다시 콜롬비아의 메데인 카르텔의 도움을 받아야 할 수도 있겠다싶었던 찰나, 허니 비의 예상치 못 한 제안은 알레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그녀는 알레가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했던 검사라는걸 모르는 눈치였고, 앞으로도 그 의사선생에게 알려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러저러한 관계를 다 끊어내더라도 알레는 허니가 원하는 대로 미국으로만 보내주면 될 일이었다.
가끔 두개골이 찢기는 것 과 같은 고통이 찾아왔지만 알레는 자신이 지금 숨 쉬고 움직이는 것 만으로도 감사했다. 혹자는 가족도 직업도 잃은 자신의 인생을 두고 죽는게 나은 인생이라 말 할 수 있겠으나 알레는 그 말에 동의 할 수 없었다. 자살을 하든, 몸이 망가져 객사를 하든 무슨 이유가 되었든 자신의 죽음은 최종 카르텔의 몰락과 그 수괴의 죽음 이후일 것 이다.
허니가 주고 간 휴대전화를 들어 이미 저장되어있는 맷의 전화번호를 찾아 메세지를 보냈다.
'행운을 찾았어.'
- 허니 비?
'누군지 알지?'
- 당연
'들었어?'
- 만날 수 는 없는거지?
'당연'
- 어디에 있으려고
'그녀가 왜 미국으로 못 가고 있는지 좀 알아보고, 같이 넘어갈 수 있게 도와줘'
- 그거면 돼?
'또 있을 수도 있지'
- 몸 조심 해
'자네도'
-
허니는 비교적 깨끗하게 정리 되어 있는 침실 위에서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약 한시간 전 저 멀리 국경사막에서 한차례 총성이 벌어졌지만 휴대폰의 벨소리가 울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는 그렇게 부상자들이 많지 않은 듯 했다. 아마도, 거의 다 죽었거나.
오빠와 함께 살았던 집은 방 세칸에 화장실 두개. 전형적인 멕시코 지역의 중산층 공동주택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허니는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에 눈살을 찌푸리며 일어나 비적거리는 모습으로 침실에서 빠져나왔다. 거실로 나와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어 건조한 공기를 마셨다. 햇볕에 비치는 먼지들을 멍하니 보다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는 생활쓰레기들을 한곳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언제 썼는지 기억도 안나는 청소기를 돌리고, 먼지를 털었다. 냉장고로 걸어가 문을 열고선 아무것도 없이 차가운 냉기만을 내뿜고 있는 안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욕실을 향해 대충 씻은 후 다시 나와 아무렇게나 손에 잡히는 옷을 주워 입었다. 적막한 실내는 허니가 움직이는 소리만이 가득 했다.
시끄럽게 떠드는 음악소리가 가득 한 동네 제일 큰 할인매장에 들어간 허니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사람사는 냄새에 입가에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거의 매일 병원에서 끼니를 해결하던 허니가 타인을 위해 요리라는 걸 해 보는건 오빠가 죽은 후 처음이었다.
아무도 믿을 수 없고, 누구를 마음에 들여서도 안되는 생활을 수십년동안 했기에 허니는 지금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다. 물론 중년의 그를 이성적으로 생각하는건 전혀 아니었다. 멕시코 검사출신의 그가 지금 하려고 하는 일도 알 수 없었고, 그가 어떤 삶을 앞으로 살아갈지도 관심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알레를 통해 자신의 큰 오빠를 보고 있는 스스로의 감정을 인정해야 했다. 지금 소속이 어디든, 알레는 카르텔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카르텔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었다. 최전방에 있던, 비밀리에 움직이던 그건 지금 허니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식자재를 파는 곳으로 천천히 카트를 움직이며 걸어가던 허니는 손에 잡히는대로 각종 야채와 고기를 집어 넣었다. 그리고 자주 먹었던 냉동식품 또한 가득 채웠다. 음료와 각종 주류까지 챙겨 넣던 허니는 문득, 촤판에서 할인을 하고 있는 성인 남성 옷들을 응시했다.
분명 응급실에 들어올 때는 알레 모습은 형편없었다. 입고 나갈 옷이 있을리가 만무했기에 허니는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 사이즈가 가장 큰 것 같은 옷을 직원에게 받은 쇼핑백에 가지런히 담았다.
"손님, 이것도 가져가세요"
"네?"
자신을 부르는 직원 목소리에 허니는 뒤를 돌아보았다. 옷을 사면 사은품으로 남성 속옷을 준다는 것이었다. 겉옷만 생각한 허니는 스스로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미소를 지으며 받아들였다.
"혹시, 정확한 사이즈를 아시나요?"
허니는 지금 그가 속옷을 입고 있는지 순간 생각하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냥.. 좀 큰걸로 주세요"
왠일인지 부끄러웠다.
"선생님, 어제 안계셔서 너무 힘들었어요~ 아니 글쎄."
호들갑을 떨며 자신에게로 걸어오는 응급실 간호사를 보며 허니는 예의가득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물론 저 대신 있었던 전공의들의 상태가 영 녹록치 않았을 것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오프였잖아요~ 오늘 열심히 할게요 선생님."
시간을 보니 알레의 퇴원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선생님, 7-5호 환자분 퇴원수속이 아직 안됐는데 퇴원시킬까요?"
허니는 원무과 직원에게 자신이 하겠다며 말하고는 지역 특성상 제일 윗층에 위치한 병원 수납창구로 갔다.
알레의 병원비는 맷이 입금해주었다. 왜 그의 병원비를 CIA 소속의 사람이 입금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허니는 맷이 입금한 돈을 출금해 수납을 완료했다. 그 금액은 알레가 처음 약속했던 것 처럼 입원비의 5배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보호자 사인엔 허니의 사인이 들어갔다. 병원 내에서는 허니와 7-5호 환자가 깊은 관계가 아닐까 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허니는 개의치않았다. 이 나라에서 나고 자랐지만 허니는 어디에가든 이방인이었다. 그건 외모에서부터 다른 모습이 이유일 수 도 있고, 허니의 아버지 직업 특성상 더 단절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을 수 있다. 그래도 허니는 아버지가 떠나기 전까지 친구들도 곧 잘 사귀었고, 학급에서 나름 쾌활한 학생이었다. 물론 지금은 그 누구보다 혼자 있는 게 더 익숙해 져 버렸지만 말이다. 어제 알레를 위해 산 옷들이 든 가방을 챙겨 수납서와 함께 들고는 병실로 향했다.
"수납확인서예요. 그리고."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써 내려가던 알레는 허니를 올려다 보았다. 안경은 어디서 구했는지 반쯤 걸친 상태로 올려다보는 모습이 생각보다 인간적이었다.
허니는 쭈뼛거리며 손에 뒤고 있던 쇼핑백을 내밀었다. 그리고 자신의 열쇠 두개를 그가 반쯤 앉아있는 침대 위로 무심히 던졌다.
"집키랑 차키예요"
"이건..?"
"퇴원할 때 입을 옷이요"
"아..."
"주소지랑 차량 정보는 문자로 발송 해 놨어요. 집에 가면 입구에서부터 왼쪽에 방이 하나 있어요. 저희 가족 중 한사람이 쓰던 방인데, 거기서 지내시면 될 것 같아요."
"고마워요"
"필요한건 제가 대충 채워 놓긴 했어요. 그 외에 또 있으면 말해주세요"
"알겠어요."
"아, 그리고 이건.. 부탁인데. 저희집은 신발을 벗고 다녀요."
허니는 말을 끝내고 뒤를 돌았다. 그리고 조용히 그의 고맙다는 인사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죄를 지은 것도 없는데, 마주보고 있는 것도 거북스러울 만큼 그의 무게감은 상당했다. 허니는 게계적으로 환자의 빠져버린 팔을 맞추면서 입술을 곱씹었다. 그는 오빠의 사고 후 약 7년동안 허니가 만나 본 사람들 중에 가장 위압감이컸다. 수 많은 카르텔들을 치료하고, 고위 공직자의 부상까지 도맡아서 해 왔던 허니었기에 단련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 앞에서는 그저 다시 고등학생으로 돌아간 것 만 같았다.
-
'냉장고 안에 음식 있어요.'
허니의 문자를 확인 한 알레는 휴대폰을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는 실내를 둘러보았다. 자신이 예전에 살았던 곳과 비슷한 구조의 집이었다. 마당은 없었지만 주방에 있는 그릇들과 집기들은 알레의 아내가 쓰던 것과 같은 제조사의 것이었다. 아내와 함께 있었던 그때와는 다른 거칠고 투박해 진 손 끝으로 집기들을 어루만지던 알레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는 큰 몸을 구겨 넣어 선반에 등을 기댄채 주저 앉았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크게 와 닿았다. 지난 맷과 함께 한 작전 이후로 알레는 심히 동요되어가는 자신이 낯설었지만 억누를 수 없었다. 주저 앉은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숨 죽여 흐느끼기 시작했다.
-
툭.
팔이 빠져 죽어나가던 어린놈의 카르텔 조직원이 이제 살만한지 다른 한손으로 허니의 엉덩이를 주물러댔다. 이런일이 한 두번 아니었기에 허니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자신보다 훨씬 더 어려보이는 남자아이였다.
"몇살이야"
"너보다 많아"
"그 유우명한 허니 선생이 날 치료해준다니까 여기가 서서"
소년은 하체에 제 손을 갖다대었다. 카르텔 안에서는 내가 유명한가보다. 허니는 생각지도 못한 소년의 새롱거림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난 안흘러"
"뭐?"
"넌 서도 난 안흐른다고"
허니의 무덤덤한 말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온 몸에 문신을 두르고 있는 그 소년은 주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씩씩거리며 말했다.
"너, 너네 가족이 어떻게 죽었는지 우리가 모를 거라 생각해?"
"알게뭐야"
"너도 그렇게 해 줄수 있다는거야"
"네가?"
"뭐?"
"네가 그렇게 할 수 있어? 네 힘으로?"
아무말 하지 않았다. 그저 씩씩거리기만 하는 어린 소년의 민 머리를 한손으로 쓰다듬으며 허니는 미소를 지었다.
"팔 빠진거 스스로 끼워 맞추지도 못 하는 네가 어떻게 날 그렇게 만들어 주겠다는거야."
"뭐..?"
"팔 이제 안 아프면 수납하고 나가, 조직원들 데리고."
맷은 잠시 쉬고 있다고 했다. 어디까지 믿어야할지는 가늠이 되지 않았으나 알레는 그가 지금 상부로부터 경질 아닌 경질을 당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특히 알레가 마지막까지 지켜보려고 했던 이사벨라가 미국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있다는 것은 맷이 신시아에게 항명했음을 뜻했다. 정해진 소속 없이 살고 있는 자신과 달리 군인이었을때부터 한 곳에 속해있던 맷이 항명하기란 어려웠을 것 이었다. 알레는 그런 맷이 이번에도 허니를 미국으로 안전하게 데리고 가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자신이 쓰고 있는 방은 아마도, 허니의 큰 오빠이자 수년전에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 J의 방일것이다. 킹 사이즈 침대와 크고 높은 책장, 그리고 책상이 전부인 이 방은 알레가 쓰기에 무난했다. 물론, 오랜만에 보는 멕시코 법과 관련된 책은 알레를 조금 더 심란하게 만들었으나 관계 없었다.
허니는 자신이 했던 말 처럼, 알레가 퇴원한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집으로 오지 않았다. 멕시코 국경에서 응급실 담당의로 사는것은 아마 청렴한 검사의 삶과는 또다른 고충이 있을것이었다. 일이 끝나지 않겠지. 주인없는 집에서 잠을 자려니 몰래 점유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한 늦은 밤, 허니가 사 준 옷을 입고 허니의 차로 외출을 한 알레는 멕시코 국경지역에서 한참을 벗어난 시골마을로 차를 몰았다.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두운 시골길, 밤 11시가 넘은 시간엔 멕시코 국경마을은 물론이거니와 그 주변에 크고 작은 마을까지도 전부 사람들이 문을 걸어 잠근다. 물론 낮이라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지만 어둠이 주는 공포는 그만큼 크고 무거웠다.
"이번엔 정말 유령이 된 것 같군."
"지옥에서 걸어나온 기분이야"
"몬테레이로 와. 내가 자네가 살 곳을 마련해 줄게"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어"
"알레한드로"
"이 친구 가족들 수사 정보 좀 보내줘."
알레는 허니비의 인적사항이 적힌 메모를 라파엘에게 내밀었다.
"이..거,"
"맞아. 비 경위, 누구짓이야?"
"누구? 아빠 아님 아들."
"아들"
"무기 밀매하는 애들이야. 작년에 분해됐어. 그리고."
"그리고?"
"내부에서 새어나갔어. 아직 색출은 못 했지만, 분명해."
"연방경찰이잖아"
"그래서 지금 없어졌잖아.."
"그렇군.."
"아마도, 그때 국경에 있던 동생을 납치하려고 했을거야. 그래서 혼자서 간거고"
알레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예전 자신이 떠올랐다. 만약, 카르텔이 알레의 집이 아닌 다른곳에서의 만남을 원했다면 알레 또한 가족을 지키기위해 홀홀단신으로 죽음의 길을 걸어갔을터였다.
젊은 비 경위는 홀로 국경지대에 가는 도중,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여동생이 혼자 살아갈 미래를 걱정했을까, 아니면 완성하지 못 한 복수의 앙금이 남아있었을까.
알레는 내가 너의 부모와 남동생을 죽인 그들을 찾았고, 바로 죽였어. 라고 소리쳐 말해주고싶을정도였다.
"연방경찰도 지역 경찰이랑 다를게 없군"
"헌병대는 괜찮겠나. 난 시간 문제라고 봐."
어느순간부터 후아레스에서 작전을 할 때, 멕시코 연방경찰은 대동하지않았다. 그저 헌병대만이 경찰이 했던 일을 하는 듯 했다.
어디를 가든 어떤 조직이든 문제는 있다. 그것이 돈을 위한 것이든, 아니면 신시아처럼 국가를 위한것이든. 서로 이해관계가 얽혀있을 수 밖에 없겠지.
"찾아줘. 찾게되면 연락해."
"알레-"
"다음에, 기회되면 몬테레이로 여행이나 한 번 가볼게."
"그래"
"제수씨한테 안부 전해주고, 몸 조심해"
- 알레, 집에 없네요?
허니 비 의 집으로 가는 길. 새벽 2시가 넘은 시간, 알레에게 문자한통이 왔다.
' 가고있어요. 두시간 더 걸릴 것 같은데...'
- 그럼, 저 피곤해서 먼저 잘게요.
이 시간에 집에 어떻게 왔는지, 차로도 위험한 시간인데 혹시 걸어서 온건지. 알레는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허니의 차는 자신이 타고있는데..
알레가 허니의 집에 들어온 이후, 그는 허니에게 자동차 한 대 정도 살만한 돈을 입금했다. 자신은 아직 쫓기는 중 이다보니 좀 불편하더라도 허니가 동산 거래를 하는게 나을것이라 생각했다. 그냥 현금을 통째 허니의 방 안에 놔뒀어야했나. 알레는 까끌거리는 턱을 투박한 손으로 쓸었다.
새로 보이는 차는 없었다. 공동주택에 비어있는자리에 주차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올라가 익숙하게 현관을 열었다. 자고있는지 집안은 조용했다. 다만, 현관에 작은 문수의 허니가 신는 신발과, 거실 한켠에서 열심히 자신의 일을 시작한 가습기와, 주방에서 은은하게 나는 달콤한 생크림 향이 허니의 존재를 알아차리게했다.
알레는 익숙한듯 가지고있는 가방을 (-허니가 사다놓은) 내려놓고, 혹시라도 아이가 잠에서 깰까싶어 조심스레 거실옆 욕실로 향했다.
젠장.
방에 들어가서 갈아입을 옷을 챙겼어야했는데, 머리에 총을 맞아서그런가. 알레는 여기 이 곳에 온 후로 자꾸만 멍청하게 행동하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지난밤 세탁해서 정리해놓은 큰 수건을 꺼내 대충 몸을 닦은 알레는 그 수건을 하체에 걸친채 답지않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욕실 문을 열었다.
"늦었네요"
동시에 맞은편 허니의 방문이 열리고, 눈을 부비며 나오던 허니는 알레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 다시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알레는 빠르게 J가 쓰던 방으로 가 옷을 주워입고 머리카락에 물기를 털었다.
- 똑똑
"빵 다됐는데, 지금 드실래요? 아님. 나중에-"
알레는 방문을 열고 나갔다.
일주일하고도 삼일이 지난 후 본 허니 비 선생은 가운을 입지않아서인지 그 나잇대의 여자로 보였다. 동양인이기에 그보다 조금 더 어려보이기까지했다. 자신에게 허니는 국경에서만난 행운이지만, 허니에게 자신은 행운일까.
맷에게서는 아직 허니를 미국으로 인도할 만한 계획을 듣지못했기에 지난번 일부터 뜻대로 되지않는 현실이 마음에 들지않았다.
미간을 찌푸리고 심드렁하게 자신을 보는 알레에게 또다른 위화감을 느꼈는지 허니는 눈을 도르르 굴리기만했다. 그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허니를 지나쳐 주방한켠에 자리잡은 4인용 식탁에 앉았다. 오빠보다 조금 더 큰 알레의 존재감은 남달랐다. 아직 물기가 남았는지 알레의 큰 족적이 거실을 가로질러 나 있었다. 허니는 아무도 모르게 그 족적을 따라 걸었다.
퇴근하면서 편의점에서 사 온 차가운 우유를 데우고, 달큰한 바닐라 향과 함께 모락모락 연기가 나는 방금 전 다 구워진 파운드 케익을 오븐에서 꺼냈다. 그리고, 아까 알레가 맡은 향의 근원인 생크림을 냉장고에서 꺼냈다.
"도와줄게 있나요?"
"아.. 그럼 생크림 좀 여기 ..이거.. 이걸로."
알레는 익숙한듯 생크림을 케익 위에 판판히 펴 발랐다. 그리고 허니가 꺼내놓은 과일들도 칼로 예쁘게 잘라 생크림 위 보기좋게 올렸다. 나란히 서서 그 모습을 올려다보는 허니와 눈이마주치차 고개를 까딱 거리며 그가 말했다.
"딸아이랑 주말마다 만들어서.."
"아.. 좋은 아빠셨네요."
어깨를 으쓱해보이며 허니가 챙겨주는 포크를 받아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리고 서로 마주앉아 케익을 잘라 앞접시앞에 하나씩 먹기좋게 올렸다.
"오랜만에 만들어서 맛이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맛있네요."
"다행이예요."
허니는 괜스레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오빠같아서. 아님 고등학생때 돌아가신 아빠같아서.. 수년만에 이 집에서 누군가와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고 있다는게 믿기질않았다.
"바쁘지않았어요?"
"음. 오늘은 교통사고가나서 부상자들이 좀 많았어요. 어린아이였는데 늑골이 부러져서 제가 해 줄수 있는거라고는 진통제 투여밖에 없었죠. 마음 아팠어요."
"그렇게 안 보이는데.."
"네? 아, 아이들한텐 너그러워요 저."
5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식어가는 우유를 앞에두고도 둘은 일어나지않았다. 평화와는 동 떨어진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은 타인과 일상을 공유하는 지금 이 순간이 소중했다.
"그런 일이 흔한가요?"
"그럼요. 초반엔 정말 심했어요. 근데 저희 아빠와 오빠가 경찰이었던걸 알게 되서그런지. 그 이후부터는 조금 덜 하더라고요."
"아..그렇겠군요."
"알레도 알죠? 제 가족들."
허니가 말하는 게 그냥 들어 알고 있는건지, 아니면 서로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알레는 먼저 이야기하고싶지않았다.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고 하잖아요.. 어때요. 알레, 지금은 행복한가요..?"
일상을 이야기할때와는 사뭇, 다른 허니의 시선에 알레는 미간을 찌푸렸다. 맞은편에 앉아있는 작은 동양인 여자는 이제 알레를 보고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 되려, 알레가 그의 시선을 피했다. 언젠가 검경이 같이 수사를 진행하던 그 때, 허니의 부친인 비 경위가 젊었던 알레를 나무라던 그 얼굴이 겹쳐졌다.
"우리 오빠는요, 복수귀 그 자체였어요.. 저한텐 한 없이 다정했지만 전 알고있었어요.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허니."
"당신을 보면, 그때의 우리 오빠가 생각이 나요. 위태로운.."
"그런가요"
"물론, 알레 당신은 그때의 오빠보단 더 깊이 관여된 것 같지만 말이예요."
알레는 다 식은 우유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불편했다. 익숙했던 자신의 고독과 아픔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는 듯 했다. 이사벨라를 살려줄때부터인가. 아니면, 수년만에 처음 했던 수화때문일까. 균열이 점점 커져갔다.
알레는 허니에게 아무런 말을 해 줄 수 없었다. 그리고 허니 또한 알레에게 그 어떤 말도 들으려 하진 않았다.
"언제 출근이예요?"
침묵을 깬건, 알레였다.
"오늘은 오프고, 내일 저녁이예요."
"밤늦게 퇴근할땐 어떻게 왔어요?"
"아, 병동 선생님이 데려다주셨어요."
"다행이네요. 차를 렌트하는게 좋지 않아요?"
알레의 말을 알아들은 허니는 빙긋 웃어보였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희망이 피어난 미소였다.
"여기서 더이상 뭘 늘리고싶지않아요."
허니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리고 손을 뻗어 알레의 크고 두툼한 손 위에 제 손을 포개었다. 따뜻한 알레의 손등을 엄지손가락으로 쓸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여기 이 곳에서의 삶은 이제 곧 끝날거잖아요. 정 걱정되시면 시간 날때. 데리러 와 주세요. 병원으로."
생각지도 못 한 허니의 말에 알레는 얼굴에 심드렁함을 지우고, 못 말린다는 듯 웃어보였다.
"알레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당신을 보면 오빠가 떠올라요. 그래서 알레는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고마워요. 뒷정리는 내가 할테니 먼저 들어가요."
"그럼, 부탁드릴게요. 전 하루종일 잘 예정이거든요."
"푹 쉬어요."
알레는 허니를 방에 들여놓고, 얼굴에 미소를 지우지 못 한 채 주방으로 가 뒷정리를 시작했다.
토로아재너붕붕
토로너붕붕
[Code: 08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