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 Bryant - Headphones 꼭 들어주면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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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카이는 늦은 시간까지 들어오지 않는 허니를 기다렸음.
제작진에게 우연히(정말 우연이었을까?) 허니가 전 남자친구를 만나러 갔다는 말을 듣고 처음 느낀 감정은 불안함이었음.
맥카이는 불안함이나 초조함이라는 감정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고, 명치께에 매달린 이 감정이 영 불편했음.
고작 2주라는 시간 동안 그가 경험해온 이상적인 사랑의 평온함은 이미 틈이 숭숭 나기 시작했음.
어쩌면 이 프로그램에 들어온 것 자체가 그에게는 맞지 않는 일이었을지 모름.
허니가 대문을 열고 정원에 들어서자 맥카이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음.
급하게 들어오며 화장을 수정했지만 여전히 빨갛게 부어있는 눈까지 어쩌지는 못했음.
어두웠음에도 맥카이가 알아보기 쉬울 만큼.
“울었어요?”
허니는 멋쩍게 웃었음.
“많이 티나요?”
“네, 눈이 밤탱이가 되었는데요.”
맥카이가 손을 뻗어 허니의 눈가를 가만히 쓸었음.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요?”
허니가 맥카이를 바라보며 물었음.
그는 한참 고민했음.
맥카이는 다정하고 안락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음.
개천에서 용났다 싶을 만큼 험난한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온 맥카이에게는 먼 꿈이었지만.
사람들이 보기에는 단정한 명문가에서 자라온 자제같았겠지만, 사실 맥카이는 의대 진학 및 졸업까지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만 올라온 사람이었음.
의사 일 이외에 모든 일을 간소화하고 무난하고 평탄한 연애를 해온 것은 그가 그 이외의 것들에 신경쓰기 힘들다는 문제도 있었고, 나아가안정적인 연애로 결혼까지 이어가고 싶다는 꿈도 있었음.
하지만 이런 마음은 맥카이와 가까운 친구들조차도 알지 못했던 마음이었음.
사람들과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미지근한 온도로 교류하는 일이 맥카이에게는 편했음.
일이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일도, 사실은 안전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 털어놓는 일도 모두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음.
“사랑은.. 평화로운 거예요.”
맥카이가 한숨처럼 내뱉었고 허니는 생각에 잠겼음.
“맥카이씨에게는 사랑이 늘 평화로웠나요?”
그는 고개를 저었음.
“사람은 누구나 갖지 못한 것을 희구하게 되니까요. 춥지요? 이만 들어갈까요?”
허니는 묻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 뒤로 밀어넣고 맥카이를 따라 하우스 안으로 들어갔음.
언젠가는 물어볼 기회가 생기겠지, 조급해할 것 없다고 생각하면서.
*
피디는 허니가 해연하우스로 돌아온 직후 자신에게 걸려온 전화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음.
“오늘 찍은 방영분은 편집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사장님께서 따로 지시하신 사항입니다.”
딱딱한 목소리의 비서는 그렇게 말했음.
도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흔쾌히 방영을 허락해주고 카메라 설치까지 너그러이 용인했던 사장의 태도가 180도로 바뀐 것인지.
하지만 피디는 달리 힘이 없었고, 이목을 끌 수도 있다고 내보냈다가 소송이라도 걸리면 프로그램은 끝이었음.
뭘 어쨌는지 보기나 하자, 피디는 받아온 녹화본을 편집실에서 틀었음.
*
맥카이가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고, 허니는 씻고 나와 머리를 말리지 않은 채로 소파에 멍하니 앉아있었음.
이 촬영은 정말 진이 쏙 빠지는 일이었음.
아까 찍은 장면이 방영이 될까.
허니는 완전히 부서져버린 매튜의 얼굴을 떠올렸음.
산산조각난 사랑을 바라보는 기분이었음.
사랑은, 그녀에게 사랑은 거친 것이었음.
사납게 할퀴고, 무너뜨리고, 날 것을 보여주는 일이었음.
평온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동시에 서로를 서로에게 유일무이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이기도 했음.
동시에 아주 자유롭고, 살아있다는 기분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는 것.
냉장고가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들렸음. 누군가가 자다 일어나 물을 따르는 것이겠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편안한 차림의 가렛이 허니의 옆에 앉았음.
“한 잔 할래요?”
가렛이 내민 잔을 받아들자 그가 빙그레 웃었음.
안 마신다고 하면 어쩌나 했어요, 둘 다 내가 마셔야하나.
가렛의 미소에는 상대를 따뜻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무언가가 있었음.
허니는 긴장을 풀고 가렛의 잔에 자신의 잔을 맞부딪혔음.
늦은 밤이었고 사방이 고요해서 맑은 소리가 울렸음.
“그 때 나한테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한테 신경을 써보라고 했었죠?”
허니가 고개를 끄덕였음.
“그래서 곰곰 생각해봤어요.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내 주변에 있는지.”
가렛이 씁쓸하게 웃었고, 그 미소가 잔잔하게 파동을 일으켰음.
“물론 타이밍도 잘 맞고, 마음도 잘 겹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죠. 그런데 어차피 그 이상 넘어가면 다 노력에 달린 거잖아요.”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사랑이 어디있겠어요.
허니가 자신도 모르게 가렛의 투박한 손을 쓰다듬은 것은 그 때였음.
화들짝 놀라 떼어내는 허니의 손을 가렛이 부드럽게, 아무 일도 아닌 듯이 다시 끌어왔음.
“다르게 말해서.. 노력하지 않아도 눈길이 가고, 신경이 쓰이고,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가 있는 걸 알면서도 잘해보고 싶으면. 그러면 충분한거잖아요.”
나한테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허니, 당신이에요.
언뜻 들으면 모순적인 말이었지만 허니는 그 말이 뭔지 정확히 알 수 있었음.
그건 사랑의 양면같은 거였음.
사랑에 빠지는 건 노력 없이도 가능하지만, 그 사랑을 해내는 건 노력이 필요한 일이였고.
그 중 어떤 것에 마음을 쏟을 것인가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선택에 달린 일임을 허니도 가렛도 잘 알고 있었음.
허니는 혼란스러운 기분이 되었음.
앞으로 이 하우스에서 살아야 하는 날들은 2주가 조금 넘게 남았고, 이제는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엮인 모든 남자들이 전 남자친구의 조각을 나누어가졌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음.
맥카이는 그가 관계를 맺는 방식을, 가렛은 그의 조건을, 칼럼은 그의 불안정함을.
결국 어떤 사람을 선택하든 매튜와의 기억에서 온전히 헤어나올 수는 없는 것이었음.
그건 동시에 누구를 선택하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음.
마침내, 이제서야.
허니의 얼굴에 후련한 표정이 떠오르는 걸 보며 가렛은 잘 훈련된 강아지처럼 기다렸음.
“가렛에게 해줄 말이 있어요.”
허니가 말을 고르며 매튜의 이야기를 꺼냈음.
“나는 처음부터 완전히 다시 이 프로그램에 임해볼거예요. 누군가를 선뜻 좋아하는 것도, 그 전 연애에 무언가를 비추어보는 짓도 하지 않을거예요.”
가렛이 조심히 호응했음.
너무 기쁜 티를 내지 않도록, 하지만 동시에 그 결정에 깊이 공감한다는 뜻을 표하며.
허니가 가렛에게 잡힌 손을 물끄러미 바라봤음.
따뜻하고, 다정하고, 커다란 손.
이 손을 선뜻 잡게 될 날이 올까. 허니는 자문했음.
가볍게 빼내자 가렛이 웃으면서 놓아주었고, 허니는 잘 자라고 인사한 뒤 자리를 떴음.
*
다음 날 아침, 해연 하우스에 미션 카드가 배달되었음.
~
오늘 저녁 7시,
진실게임이 진행됩니다.
모든 참가자들은 저녁 시간에 맞춰 귀가해주세요.
~
미션 카드는 칼럼이 훈련을 나가면서 가장 먼저 발견되었음.
“술 잔뜩 사와야지.”
칼럼이 웃으면서 중얼거렸음.
육체적인 훈련을 많이 한 사람의 직감으로 알 수 있었음.
진실게임으로 인해 흔들릴 것이 생각보다 많을 것이라고.
*
피디는 연차를 낸 허니를 호출했음.
감정 소모가 심했는지 처음 입주했을 때보다 살이 내린 듯한 모습이었음.
“많이 힘든가요?”
피디가 물었고,
“이제는 마음 정리가 좀 되어서 괜찮아요.”
허니가 답했음.
“그 동안 저는 아직 정리 안 된 마음을 품고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떤 사랑을 원하는지, 어떤 사람이 나와 잘 맞을지, 마음이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 이런 것들을 한 번도 멀찍이서 떨어져서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지금은 그런 생각들이 조금 정리가 되었나요?”
“꼭 단독 인터뷰 같네요? 혹시 이것도 촬영 중인가요?”
“촬영 중이라면, 대답이 달라질까요?”
“그건 아니지만, 조금 더 정돈된 이야기를 하겠지요.”
피디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음.
“구드 씨가 촬영본을 삭제해달라고 부탁했어요. 아마도 이 이야기는 오프더레코드가 될 거예요. 그러니까 편안하게 이야기하세요.”
“매튜가요?”
“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이 이야기는 우리끼리 비밀로 두는 게 나을 것 같아요. 허니씨가 어떤 사람인지는 녹화본으로 충분히 알았고, 그걸 바탕으로 앞으로 그려나갈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싶으니까요.”
허니가 수긍했음.
“전 사람을 만나기 이전, 그리고 지금까지도 저는 소극적인 부분이 많았어요. 마음을 정한 이후로 그 사람과 잘 되기 위한 노력만을 했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요?”
“누군가를 좋아하는 데에도, 마음을 닫아두는 데에도, 전 사람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제는 아니예요.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시작해보고 싶어요.”
“용감한 선택을 했네요. 연애 프로그램에서 사랑의 방법이나 방향을 바꾸면 리스크가 커요. 시청자들 입장에서도 혼란스럽고, 어쩌면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도 있어요.”
“알아요. 하지만 저는 제가 알게 되어버린 것들을 두고도 같은 선택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피디는 부드럽게 웃었음.
“편집의 힘이 크겠네요.”
지금까지 당신같은 출연자는 없었어요.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보고, 사랑을 하면서 받을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서 좋네요.
완전한 일반인이라 걱정을 좀 했는데, 아니었어요.
피디가 말을 이었음.
궁금해지네요.
어떤 사람을 선택하게 될지.
만약에 아무도 모르겠다 싶으면,
.
.
.
.
나한테 와요. 미혼이니까.
번외.
스완은 편집실에서 살다시피 했음.
그가 일에 미쳐있다는 사실은 방송사의 모두가 알고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승승장구하며 늘 화제 프로그램을 만들어낸다는 것도 공인된 사실이었음.
후줄근한 티셔츠도, 관리할 시간도 없어 대충 볶은 은발의 머리도 그의 일중독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음.
일에 빠져있는 만큼 그는 방송에 대해서는 냉정했고, 그의 감은 언제나 맞았음.
딱 한 번을 제외하고.
그가 처음 시도한 연프가 대성공하고, 시즌 2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허니를 출연시킬 것인가에 대해 의견이 조연출과 크게 충돌한 적이 있었음.
"장난해? 그냥 평범한 회사원이잖아."
"정확히 말하면, 조금 예쁘장한 회사원이죠."
"이 사람을 출연시켜서 뭐하게."
"저번 프로그램에서 아쉬웠던 게 그거잖아요. 다 너무 대단한 스펙의 사람들만 나와서 이입이 잘 안됐다는 댓글. 그 때 동의하셨으면서."
"그래서 이번에는 칼럼을 제외하고 인지도 적은 사람들로 맞췄잖아. 섭외 말고 신청도 받아서."
"그래도 사업가, 의사, 축구선수 말고 정말 평범한 사람이 필요해요."
"안돼. 좀 더 특별한 사람이 필요해."
스완은 고개를 내저으며 프로필을 뒤적였음.
"다른 사람으로 찾아봐. 회사원인 건 괜찮으니까, 마케팅 이런 거 말고 좀 더 궁금해질만한 업무 부서쪽으로."
"만약에, 이 사람이 주목 크게 못 받거나 하면 다음번에는 절대 제 의견 안 내세울게요. 아시잖아요, 저 이런 고집 잘 안 부리는 거. 근데 이번에는 감이 좋다니까요? 이렇게 평범에 딱 들어맞는 사람 찾기도 어려워요."
조연출이 스완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졌음.
"안된다면 안되는 거야. 가서 다른 사람 찾아봐."
하지만 조연출은 포기하지 않았고, 허니에게 몰래 출연 문자를 보냈음.
사고는 나중에 수습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해연 하우스 입주 당일에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된 스완은 당연히, 엄청나게, 크게 화를 냈고 서릿발같은 분노에 조연출은 크게 후회했음.
사직서도 미리 써서 품에 늘 가지고 다녀야 했고.
잘릴 뻔 했지, 잘려도 싸지..
조연출은 후에 이 일을 이렇게 회상했음.
보통 4:4로 이루어지는 연프와 달리 해연하우스 이번 시즌 입주자가 5:5가 된 것은.. 이런 뒷배경이 있었던 것임.
하지만 다행히 스완은 한 번 크게 화를 낸 후에 더이상 이 일을 꺼내지 않았고, 조연출은 사직서를 집에 수납할 수 있었음.
그리고 생각보다 허니에게 매력을 느낀 참가자가 많아지면서 sns에서 허니에 대한 언급이 늘자 스완 역시 자신의 판단 미스를 인정했음.
"그래도 다음부터 상의 없이 이런 짓하면 진짜 자를 줄 알아."
"잘못했습니다, 정말로."
"이제 사과하지 마, 좋은 감 살린 건 잘한 거니까."
조연출은 앞으로 평생동안 스완의 조연출만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음.
방송을 크게 망칠 뻔했는데 잘한 건 잘했다고 칭찬도 해주는 이런 상사가 어딨냔 말임.
연프를 찍다가 사랑에 빠진 걸까.
헤테로인 조연출은 자신이 게이나 바이가 된 건 아닐까 심각해졌음.
평생 충성을 다해야지..
그러거나 말거나 스완은 오늘도 편집실에서 저녁을 먹으며 야근 중이었음.
비서의 연락을 받고 오늘 받아온 녹화본을 폐기할까 하다가 일단 보기나 하자고 틀어본 것은 순전한 호기심이었음.
다소 충동적으로 틀어본 녹화본을 심각한 얼굴로 보던 스완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음.
이 여자 장난 아니구나.
왜 그렇게 화제성이 좋았는지, 남자 셋의 관심 영역에 놓였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음.
스완은 깔끔하게 자신의 감이 틀렸음을 인정했음.
입사 15년 가까이 이런 일은 처음이었음.
이번 시즌은 이 여자 덕분에 성공할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음.
자신의 감이 두 번 틀릴 리는 없었음.
스완은 제작진에게 문자를 돌렸음.
이번 편집 방향을 대대적으로 수정해야겠다고.
그리고, 스완 내면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음.
일이 재밌어서가 아니라 출연하는 사람 자체가 흥미롭다는 기분.
이런 일도 스완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었음.
"단둘이 얘기해봐야겠어."
스완은 다음날 아침 바로 허니를 호출했음.
맥카이너붕붕 가렛너붕붕 칼럼너붕붕 스완너붕붕
이후부터는 제목이 조금 수정될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