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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9 20:12
https://hygall.com/602674105 <옆집에 이 남자가 사는데
https://hygall.com/612289814 <그 남자랑 원나잇한 후기
팀 동료들이랑 점심 식사를 하고, 사무실로 돌아갔다가. 나 포함 네 명이 오후에 외근이 생겨서 나갔어.
별로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일이 생각보다 더 빨리 끝났어.
나랑 동료들은 카페에 들러서 커피나 한 잔씩 하면서 한숨을 돌리기로 함. 그 정도 시간 여유는 충분히 있었음.
...그런 일이 될 줄 알았으면 나 혼자서라도 회사로 복귀했을 텐데.
심지어 우리는 카페 안 쪽에 앉은 것도 아니고 카페 테라스 자리에 자리를 잡았어.
“아- 시원해. 회사 밖은 이렇게 쾌적한 걸. 그쵸?“
테라스에 앉자던 건 나랑 같이 카페에 간 동료 중 한 명의 제안이었음. 이 사람을 임시로 A라고 지칭할게. A는 나보다 열 살 정도 많고 쾌활한데 업무 능력도 베테랑이야.
오늘 일도 사실은 이 분 덕분에 빨리 끝났다고 봐야지.
“업무 시간에는 매연을 맡아도 맑지 않아요? 업무 시간에 밖에서 마시는 커피는 또 왜 이렇게 맛있는 걸까요.”
여기는 나보다 네 살인가 어리고 나보다 팀에 늦게 들어온 남직원 B. 우리 팀 막내야. 동료들도 잘 챙기고 살가운 성격이라 다들 좋아해.
“그러니까요. 매일 이랬으면 좋겠다.“
이번엔 아마 나랑 나이가 같거나 많아야 두어 살 차이날 것 같은 내 또래 직원 C. 내가 부서 옮겨올 때 같은 성별에 비슷한 나이라고 반겨줬어.
여러 도움도 많이 받았고 지금은 꽤 친해졌지만 사적으로 연락하거나 만나는 친구 사이는 아님.
“..벌써 복귀해서 일하기 싫어지는데 어쩌죠.”
이건 나. 밖에 나오니까 일하기 싫었음.
맞장구 치는 사람들 따라 웃으면서 해맑기만 했지.
다들 그랬으면서 정작 한숨들 돌리고 나서는 곧바로 일 얘기를 하기 시작했어. 오늘 오전 업무, 외근, 이따 다시 돌아가면 해야 할 일.
그러다 주말에 뭐하면서 시간을 보낼지, 누구를 만날 건지 하는 얘기도 잠깐 함. A는 남자친구 만날 거라고 했고, B는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 만나러. C는 주말 내내 기필코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안 나가고 잠만 잘 거라고 했어.
난 친구랑 약속이 있긴 한데 친구가 바빠서 취소될 수도 있는 약속이라 보류 상태라는 걸 말해줬지.
그리고 그 타이밍쯤 이 사람들한테 내가 사는 동네에 대해 물어볼까, 엄청 고민함.
카를로스 아저씨가 그랬잖아. 누구한테든 물어보라고.
내가 알기로 B는 잘 모르겠지만 A랑 C는 근처 지역에 꽤 오래 있던 사람들이거든. 이 사람들도 내가 사는 동네에 대해 알고 있을까?
사실 난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 가기 전까지는 거기 이름도 들어본 적 없었음. 회사에서 친해진 사람들한테도 들어본 적 없음.
그래서 내심 아무도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중심가도 아니고 큰 건물이나 큰 상권이나 뭔가 사람들이 굳이 찾아갈 만큼 특색있는 게 없는 동네니까.
안다고 해도 이름 정도나 들어봤을 것 같은 정도?
만약 내가 우리 동네 이름을 들어봤냐고 물었을 때 아무도 모르거나, 이름만 안다고들 답할 수도 있잖아. 그리고 왜 묻냐는 말도 따르겠지.
그럼 난 내가 거기에 산다는 것도 말해야 할 텐데. 그래도 되나? 카를로스 아저씨는 그냥 동네에 대해서만 물어보라고 했잖아.
동네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하면 내 머리에...
다른 말은 안 해도 내가 산다는 말 정도는 해도 되는 건가?
도통 감이 안 잡혀서 망설이기만 했음.
뭔가 들으면 안 될 이야기를 듣게 될까 봐 무서운 마음도 없지않아 있었을 거임.
그러다 보니 선뜻 동네 얘기는 못 꺼내고 전혀 다른 주제들만 떠들고 맞장구 쳤어.
우연히 B가 지금 사는 곳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지역이나 동네에 대한 화제로 옮겨갔을 때도 그 얘기를 꺼내지는 못 했음.
혹시 사람들 입에서 내가 사는 동네 이름이 나오지는 않을까 해서 귀를 기울이긴 했지. 별 소득은 없었음.
화제는 또 금세 다른 쪽으로 옮겨갔고, 다들 커피를 반쯤 비워냈을 때였음.
“···저 쪽에 서있는 남자 말이에요.”
“남자?”
여러 사람이 모여 있어도 잠깐 대화가 끊기고 정적이 흐르는 순간이 있잖아.
다들 그 때 커피를 한 모금씩 마시는 참이었는데 문득 C가 몸을 숙이더니 은밀한 목소리로 그러는 거야.
얼떨결에 A도 B도 나도 C를 따라 몸을 약간 숙이고 귀를 기울였음. 대개 이런 분위기에서는 흥미로운 비밀 이야기같은 게 나오는 법이잖아.
딱 그 분위기였어.
C는 우리가 따라 몸을 숙이는 걸 보더니 눈만 굴려서 어딘가를 한 번 쳐다본 후 다시 돌아와서 입을 열었음.
“이 카페 옆 건물 쪽에. 남자들이 몇 명 서있거든요?“
”그런데요?“
”근데 그 중에 한 명이 진짜..“
”진짜...?“
”잘생겼어.“
”뭐? 나도 볼래.“
”잠깐, 잠깐. 잠깐. 잠깐!!“
C가 갑자기 어디에 잘생긴 남자가 있다는 말을 하자마자 A가 바로 보겠다고 대답함. C가 다급하게 손을 뻗어서 말렸어.
자리 구조상 C가 말한 남자는 본인이 앉은 자리에서 바로 보이는 곳에 있었나봄. 그 말은 마주앉은 A가 몸을 완전히 반대로 돌려야 보이는 곳에 있다는 거지.
이 카페 옆 건물이면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닌데 그럼 이목을 끌어버릴 수도 있잖아.
그 쪽에는 실례가 될 수도 있고.
A도 그걸 모르는 건 아니라 고개나 몸을 돌리지는 않고 꾹 참았어.
나도 궁금했지만 같이 참음. 내 자리에서는 고개를 반쯤 돌려야 했거든. A만큼은 아니지만 내가 쳐다보는 것도 이목을 끌게 될 가능성이 있었지.
C 옆 자리에 앉은 B는 남자,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이성애자임에도 호기심을 참을 수가 없었나 봐.
게다가 B는 충분히 티나지 않게 C의 시야를 훔쳐볼 수 있는 위치였으니까. 고개를 살짝 들고 눈동자를 굴려서 C가 눈짓하는 방향을 확인함.
“와..”
“그 정도야?”
B가 바로 입을 벌리고 감탄사를 뱉자마자 A는 애가 타는지 테이블까지 가볍게 내려쳤다니까.
나도 B반응에 더 궁금해졌는데 B는 A 물음을 듣자마자 곧바로 살짝 고개를 가로저었어.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아 물론 누구 말하는 건지 바로 보일 정도로 잘생기긴 했어요. 근데...“
“근데? 다른 게 부족해 보여? 키? 몸매?“
”아뇨. 그... 저 쪽 일 하는 사람 같지 않아요?“
저 쪽 일 하는 사람? A랑 나는 그 말이 언뜻 이해가 안 가서 C쪽으로 고개를 돌렸어.
“장난해요? 백퍼. 그러니까 더 미치게 하는 거지. 위험하게 잘생긴 남자는 그냥 잘생긴 남자보다 상위 계급이라고요.“
“저 쪽 일이라는 게 그 쪽이야? 나 진짜 궁금해 미치겠어요. 제발 내가 지금 고개 돌려서 확인해도 된다고 말해주면 안 돼요?”
“안 돼요! 위치상 쳐다보는 거 바로 알 거예요. 조금 기다려요. 내가 볼 만한 타이밍 알려줄 테니까.“
“몸은? 몸매도 좋아요?”
“키도 크고 몸은, 옷 때문에 잘 안 보이지만 분명히 몸매도 좋아요.“
한 눈에 봐도 저 쪽 일 할 것 같이 생겨서 위험하게 잘생겼고 키도 크고 몸매도 좋은 남자..?
내가 아는 남자 중에도 그런 사람이 하나 있긴 한데.
동일 인물일 리는 없겠지. 그 남자가 여기 있는 건 왠지 상상이 안 되거든.
그것도 카페 근처 건물에 사람들이랑 모여서, 누군가에게 잔뜩 시선을 받고 있는 모습은 더더욱 상상이 안 감.
시선을 끄는 광경은 상상이 간다 쳐도 당연히 그 남자는 아니겠지. 세상에 그런 남자가 한 명만 있을 리가 없잖아.
”그치만, 그래도 좀.. 무섭지 않아요? 얼굴보다 저 튀는 타투가 먼저 보이는데.“
음... 튀는 타투라고? 세상에 튀는 타투를 하고 다니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지.
”B는 남자 눈이라 그런가? 물론 타투도 보이긴 하죠. 근데... 봐요. 저 쪽 건물에 들어가는 여자들. 저 사람들도 힐끔거리는 거 보이죠?“
”진짜네. 이게 메이저한 취향이라고요? 여자들 저런 남자 좋아해요?“
“좋아하냐고? 환장하죠. 저런 남자랑 더럽고 질척하게 한 번만 엮일 수 있으면 이번 생은 여한이 없겠어요.“
”저런 남자랑 엮였다가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요.“
”그러니까 한 번만이라고 했잖아요. 누가 뭐 결혼이라도 하겠대?“
”그 한 번이 어떤 일로 이어질지 모른다니까요. 예전에 제가 건너 건너 알던 지인 따님이 어디 갱단 말단 양아치한테 잘못 걸린 적이 있거든요. 그 얘기 들으니까 내가 다 오싹하던데.“
”헤에,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뻔하죠. 그 말단 양아치가 약 팔던 놈이라 중독자 되고, 몸 팔게 되고.. 자세한 사정은 끔찍해서 듣는 것도 괴로웠어요.“
”세상에. 그래서 그 여자애는 어떻게 됐대요?”
“그 여자애는-”
“어? 담배 꺼낸다. A. 지금. 지금 봐도 돼요.”
C가 퍼뜩 고개 들고 중얼거리기 전까지는 분명히 세 사람 다 B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음.
다들 고개를 끄덕이면서 연민과 더불어 공포심마저 느끼고 있었지. 나도 마찬가지였어.
근데 C가 그 말을 하자마자 A는 당장 몸이랑 고개를 뒤로 돌렸어. B는 말하려던 입을 다물고 한숨을 쉬었음.
“...지금 이 이야기를 듣고도 저 남자 얼굴이 그렇게 궁금해요?”
“저렇게 생긴 남자가 담뱃불을 붙이는데 어떻게 안 쳐다봐요. 그쵸. A?“
B가 무슨 말을 하든 말든 A는 고개를 돌리고 한참이나 그 문제의 남자를 구경했음.
난 그동안에도 B를 보고 있었어. 왜냐면 난 C가 말한 위험한 남자의 얼굴보다 B가 말하던 양아치한테 잘못 걸린 여자의 결말이 더 궁금했거든.
물론 그 문제의 남자 얼굴이 안 궁금했던 건 아니지. 궁금했어.
누가 또 그렇게 위험하게 생긴 사람이 있나. 그래도 난 B의 이야기를 꿋꿋하게 기다렸는데 말이지.
“남자가 봐도 여자라면 한 번 엮여보고 싶게.. 생기긴 했네요.”
근데 A도 C도, 심지어 B도 그 문제의 남자를 보느라 정신이 없더라.
하는 수 없지. 나도 그 남자 얼굴을 확인해야 이 대화에 낄 수 있을 거 아님?
A에 살짝 가려지는 시야를 피해서 몸을 약간 뒤로 당겼음. 덕분에 확실하게 그 위험하게 생겼다는 남자의 실물을 확인할 수 있었어.
···이런. 진짜 위험하게 생겼네.
젠장. 그럼 그렇지.
온몸으로 자신이 위험인물이라는 경고라도 울리는 것처럼 생긴 남자가 흔할 리 없잖아.
혹시나? 역시나 옆집남자였음.
밝은 대낮에 동네 밖에서 봐도 진짜 위험하게 잘도 생겼네. 심지어 같이 서있는 남자들도 덩치는 비슷한데 혼자 제일 위험하게 생겼어.
다른 사람들은 어디 가서 인상 쓰면 좀 위협적이겠다 싶은데, 옆집남자는 한눈에 봐도 아. 이 사람은 그냥 피해가야겠다. 싶게 생김.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그렇게 말했잖아. 내 착각이 아니라 누가 봐도 그렇게 생겼다는 거지.
그나저나 난 처음 보는 얼굴도 아닌데 왜 이렇게 한참 살펴보게 되지.
신기하긴 했음. 뭔가 이 시간에 동네도 아닌 곳에서 옆집남자를 마주치게 될 거라는 상상은 안 해봤거든.
“잠깐, 다들 그만 좀 쳐다봐요.”
“C가 말한 거 진짜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쵸? 그쵸?”
어차피 눈을 못 떼고 있는 게 나만은 아니었음.
B가 작은 목소리로 말려봤지만 A도 C도 옆집남자가 담배 연기 뱉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어.
게다가 진짜 건너 편 다른 가게 앞에 있는 여자들도 가게 안 들어가고 그거 보고 있더라. 슬쩍 확인하니까 우리랑 같은 카페 테라스에 앉은 사람들도 힐끔대고 있음.
뭐임. 뭐 연예인임?
잘생긴 남자가 멸종위기인 세상인 건 사실이지만, 보통 이렇게까지 대놓고들 힐끔대지는 않잖아.
그 시선들이 뭔지는 아마 내가 제일 잘 알 거야. 단순히 잘생겨서 힐끔거리게 되는 건 아니거든.
그럼 왜 자꾸 힐끔거리게 되냐고? 솔직히 자세히 설명하라고 하면 나도 못 함.
뭐랄까.. 그냥?
그냥 한 번쯤 더. 한 번만 더. 조금만 더 보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단 말이지.
곧바로 시선을 돌려버리면 아쉬울 것 같고.
그보다 이 정도면 시선이 느껴질 법도 할 텐데.
옆집남자는 눈치가 빠르잖아. 그러니까 여기저기서 본인을 힐끔대고 있는 것도 알았겠지.
시선을 받는 게 익숙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늘 달고 사는 말처럼 누가 보든 말든 상관 없어서?
“아니 진짜로 이제 그ㅁ, 아.”
“앗.”
아무리 그래도 너무 쳐다봤지.
내가 아니라 A가 너무 티나게 보고 있었어. 아예 몸을 돌리고 있었으니까.
C가 다급하게 손을 뻗어봤지만 A가 당황한 나머지 미처 몸을 제자리로 돌리기 전에 옆집남자가 카페 쪽으로 고개를 돌렸음.
입에 담배를 문 채로 미간은 잔뜩 구겨서는.
우리랑 같이 힐끔대던 옆 테이블 사람들은 급하게 아무 일도 없었던 척 고개를 숙이고 음료를 들이켬.
얼음 밖에 안 남은 음료도 있는데 뭘 자꾸 마시더라.
A는 의자 뒤로 몸을 돌려 스트레칭 하는 자세로 전환함.
“어우, 피곤해.”
누구 들으라는 건지 모를 말을 중얼거리면서 말이야.
“A, 그만. 그만..! 차라리 그냥 눈 깔아요..! (나) 는 굳, 굳은 거 아니죠? B. (나) 좀 찔러봐요.“
C가 A와 나를 향해 다급하게 중얼거리는 걸 들었어. 들었는데, 옆집남자가 날 발견한 것 같았음. 그래서 나도 모르게 더 보고 있었어.
그도 그럴 게 맨날 태연한 사람이. 드물게 약간 놀란 것 같았거든.
처음에는 담배 물고 인상 쓰고 힐끔대는 사람들 훑어보고 일행 쪽으로 고개를 돌렸음.
고개 돌리고 잠깐 멈칫 하는 것 같더니 다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거임?
뭐 못 볼 거라도 본 사람처럼.
뭐야. 당황스럽긴 나도 마찬가지거든?
얼떨결에 눈 마주친 그대로 옆집남자는 제 눈이 의심스러운 것처럼 눈을 한 번 깜빡임.
나도 눈을 깜빡여봄.
“그만, 그만 봐요..!”
이번엔 A가 내 팔을 살짝 건드림.
옆집남자는 눈가가 약간 구겨지더니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손으로 내리더라.
“돌 된 거 아니죠..?”
B가 불안한 목소리로 내 팔을 톡톡 건드렸을 때.
“어? 뭐, 뭐야?”
C가 작게 중얼거려서 호기심을 참지 못한 A가 또 몸을 살짝 돌렸음.
A가 눈을 굴려 옆집남자를 찾아냈을 때는 이미 옆집남자도 다시 일행 쪽으로 고개를 돌린 다음이었어.
“뭐야. 뭐였는데요?”
“아니 그게.. 혹시 아는 사이..? 는 아니죠?”
난 옆집남자가 일행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일행 중 한 명이 내 쪽을 살짝 쳐다보고. 그 다음 입 모양으로 추측했을 때 아는 사이냐고 묻는 듯한 말을 하는 걸 확인했음.
옆집남자는 금세 평소랑 다를 것 없는 얼굴로 담배를 입가로 가져갔어.
담배가 입에 물리기 전에 아니. 하고 언뜻 고개를 까딱였음.
그것까지 보고 나도 내 일행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
무슨 일이었는지 물어보던 A도, 나한테 혹시 아는 사이냐고 물은 C도.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B도 날 보고 있었음.
“..그럴 리가요.“
내 대답에 C는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좀 놀랐다고 대답했어. A는 왜 그러냐고 다시 물었음.
”당장이라도 우리 테이블 쪽에 뭘 보냐고 시비라도 걸어올 것 같이 생긴 남자가, 웃잖아요. 인상쓰던 눈가는 가늘어지고 입꼬리까지 사근사근 풀어지게.“
“진짜? 저 얼굴이 웃는 게 상상이 안 가는데. 나도 그냥 계속 볼 걸.“
“근데 냉하고 위험하게 생긴 남자가 웃는 얼굴은 진짜 반칙이다. 그쵸? 정면에서 본 소감이 어땠어요?“
“...잘생겼던데요.”
“뭐야, 나도 궁금해-”
C가 A한테 설명해주려고 애쓰는데 B는 걱정스럽게 날 보고 있더라. 그러더니 의자째로 들고 내 옆으로 약간 옮겨옴.
“(나) 한테 관심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런가보다. (나) 보고 웃은 거잖아.“
그리고 B가 말하자마자 C가 덧붙이고 A는 같이 눈을 빛냈음.
“에이. 아닐 걸요.“
”어떻게 확신해요? 나였어도 (나) 가 날 그렇게 보고 있었으면 다시 돌아봤을 거예요.”
”뭐? B 뭐야- 은근슬쩍 본인이 고백하는 거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라. 충분히 있을 법하다는 거죠. 이 쪽으로 좀 와요. 나랑 친한 척이라도 해요.“
“이거 봐. B가 수상한데?“
“아니라니까요.”
B는 내 쪽으로 더 가까이 앉아서 나랑 유독 친한 것처럼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기까지 했어.
어차피 옆집남자는 이제 이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데. 난 그냥 웃어 넘겨봄.
사실 속으로는 옆집남자 때문에 싱숭생숭 했지.
그렇게 겉으로는 티 안 내려고 노력하는 타이밍에 누가 카페에서 나왔어.
카페에 드나드는 사람이 여럿이라 딱히 인식도 못 했지만 그 사람이 우리 테이블에 가볍게 부딪혀서 알아채게 됨.
우리 테이블에 있던 티스푼 하나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큰 소리가 울렸어.
A,B,C, 그리고 나만이 아니라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소음을 일으킨 사람을 돌아봤음.
거의 백색에 가까운 금빛에 짧은 단발 머리를 한 여자였어. 나랑 눈이 마주쳤는데 눈동자가 엷은 하늘색이라 나도 모르게 잠깐 그 눈을 보고 있기만 했음.
“이런, 미안해요. 달링. 혹시 음료 튀었어요?”
심지어 목소리는 얼굴에서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도 듣기 좋았어. 여자치고는 약간 낮은 편에 부드러운 말투까지 하마터면 홀릴 뻔 했다니까.
대답해야 하는 것도 잊었다가 곧바로 정신을 차려야 했음.
여자는 손에 커피를 들고 있었고, 음료가 튄 건 우리가 아니라 여자였어.
여자 몸보다 넉넉한 사이즈의 흰 셔츠에 커피 얼룩이 튀어 있더라고.
“아뇨. 저희는 괜찮아요.“
거의 반사적으로 내 가방에 있던 손수건을 꺼내서 내밀었어.
이미 스며들어서 별 소용 없을 것 같았지만 조금이라도 더 스미기 전에 닦아내라고 말이야.
여자는 고맙다고 짧게 인사하면서 손수건을 받아 들었어. 본인 셔츠를 내려다 보고 커피 얼룩 위를 손수건으로 눌러봤지만 역시나 큰 소용은 없었음.
“이미 물들었나봐요. 괜히 손수건만 버렸어요.”
여자가 셔츠에서 손수건을 떼어내는 찰나에 젖은 셔츠 부분으로 얼핏 그 너머의 피부가 보였어.
셔츠 사이즈가 넉넉한 덕분에 금세 피부랑 멀어져서 보이지 않게 됐지만.
모양까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쇄골 근처에 타투가 있었던 것 같음.
절대 훔쳐보려던 건 아님. 그냥 나도 모르게 저절로 보인 걸 어캄.
누구 때문에 다른 사람 타투를 주의 깊게 보는 습관이 생긴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여자는 미안한 얼굴로 몸을 살짝 숙이며 손수건을 다시 나한테 내밀었어.
“괜찮아요. 혹시.. 도중에라도 얼룩 닦을 기회가 생기면 그거 쓰세요.“
내 손수건을 도로 내가 거절했을 때 여자는 의아한 얼굴이었지만 여자끼리는 대충 알지 않아? 여자는 겉옷도 안 입고 있었는데 흰 셔츠가 젖은 데다 커피 얼룩이잖아.
“정말 고마워요. 그럼 잠깐.. 여기 더 있을 거죠? 바로 일어날 거 아니죠?”
“네?”
“잠깐 기다려요.”
여자는 별안간 다시 카페로 들어감.
얼떨결에 뒷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키가 꽤 크더라고. 검은 슬랙스가 신발 위를 덮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신발 굽도 높았나 봐.
그나저나 기다리라는 건 무슨 소리지?
다시 앞을 보니까 우리 테이블 사람들은 어디서 태풍이라도 맞은 것처럼 얼떨떨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음.
나도 모르게 힐끗 옆 쪽을 확인했는데 옆집남자가 비스듬하게 서서 이 쪽을 보고 있었음. 물론 담배도 물고 있었어.
언제까지고 보고 있을 수는 없어서 슬쩍 테이블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는데 발 소리가 들림.
고개 돌리니까 방금 그 여자가 손에 들고 있던 걸 우리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 거임.
“이거 드세요. 답례라고 하기에는 약소하지만.”
테이블 위에 내려진 건 쿠키 상자였음. 아까 카페 안에서 선물용 쿠키를 파는 걸 봤는데 그거랑 똑같은 상자였어.
굳이 들어가서 사왔나 봐. 답례를 바란 건 아니었는데 말이지.
“근데 혹시- 우리 어디서 본 적 없어요?“
이미 받은 걸 어카겠음? 고맙다고 대답하려는데 여자가 살짝 흘러내린 머리를 귀에 꽂고 물었어.
본 적이 있을 리가.
같은 여자고 이성애자라 해도 이렇게 생긴 여자를 마주치고도 잊기는 쉽지 않은 법이지.
“아뇨, 아마.. 없는 것 같은데요.“
”그쵸? 너무 고맙고 반가워서 벌써 머리에 각인 됐나.“
별로 큰 도움을 준 것도 아닌데. 뭐라고 대답하기 애매해서 살짝 웃었는데 여자는 마주 웃어 보이기만 하고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함.
”아, 쿠키. 잘 먹을게요.“
고맙단 말을 제대로 못해서 다급하게 외쳤을 때 여자는 이미 우리 테이블이랑 두어 걸음쯤 멀어져 있었어.
그래도 내 말을 들은 여자는 몸을 반쯤 돌려서 살짝 웃고 손수건을 흔들어 보였음.
그리고 커피에 꽂힌 빨대를 입에 물고 가던 길로 걸어갔어.
옆집남자가 서있는 곳까지 걸어감.
설마.. 저 쪽 일행이었나?
”우와. 무슨 일이야. 쿠키 먹어봐도 돼요?“
멍하니 그 쪽을 보는데 C가 말을 걸어와서 곧바로 고개를 돌렸음.
“그럼요. 여기서 다같이 먹고 가요.”
난 곧바로 쿠키 상자를 풀어냈지.
다들 쿠키를 한 입씩 베어물고 맛에 대해 극찬을 하는데 B가 그러고 보니 잊은 게 있는 것 같다며 업무 얘기를 꺼냈어.
난 쿠키 하나를 입에 물고 다른 데에 정신이 팔렸지. 우리 테이블 대화는 대충 흘려 들었음.
“···어?”
“왜. (나) 도 뭐 빠트린 거 있어요?”
“아뇨, 아니에요.”
그러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니까 세 사람 시선이 나한테 옮겨왔음.
곧바로 고개를 앞으로 돌렸지만 B랑 C가 내 시선이 있던 방향을 살폈어.
“그럼 뭐. 아는 사람이라도 봤어요?”
다행히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았음. 설령 없었다고 해도 나랑은 전혀 다른 세상에 살 것 같은 남자랑 내가 아는 사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겠지.
“그-건 아니고. 진짜 별 거 아니에요. 잠깐 딴 생각 하다가.“
”뭐야. 아까 거기 뭐 두고 오기라도 했나 했네.“
세 사람은 다시 업무 얘기로 돌아갔고, 난 가볍게 맞장구를 치며 그 대화를 들었어.
근데 무슨 말이 오가고 있는지는 전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음.
커피를 든 여자가 옆집남자 일행 쪽에 서서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것까지 봤거든.
그 다음에 고개를 돌렸을 땐 뭐라고 대화를 나누던 여자가 옆집남자 팔에 손을 끼워 넣었음.
옆집남자는 손에 든 담배를 반대쪽으로 옮기고, 여자가 붙잡은 쪽 손을 주머니에 넣었어.
이어서 여자는 옆집남자 어깨에 머리를 가볍게 기댔음.
옆집남자는 다른 손으로 담배를 가져다 입에 물었고, 여자는 남은 손으로 커피 빨대를 가져다 입에 물었지.
두 사람의 뒷모습이 어땠냐면 말이야.
“방금 그 사람 저 남자 여자친구였나 봐요?“
”그러게요. 엄청 잘 어울려.“
”근데 또 저런 남자가 알고 보면 은근히 순정파야.“
”저것만 보고 저 남자가 순정파인지는 어떻게 알아요.“
”B는 남자라서 뭘 모르는 거라니까.“
맞아. 잘 어울렸어. 그냥도 아니고 엄청 잘 어울렸음.
만약 내가 옆집남자 옆에 나란히 서있으면 진짜 안 어울렸을 거임. 단 둘이 거울 앞에 서본 적은 없지만 안 봐도 알만 하지 않음?
외형이나 스타일링의 문제가 아니라 뭐랄까 표정도 분위기도 자세도 하는 짓도. 뭐 하나 어우러질 것 같은 게 없단 말임.
정확하게 표현해 보자면, 옆집남자랑 난 서로의 삶에 아주 작은 교차점 하나도 없을 것처럼 생겼음.
나도 알아. 실제로도 썩 틀린 말은 아니라는 거.
심지어 옆집남자랑 내가 어울리든 말든 전혀 상관 없는 문제라는 것도 잘 알고 있음.
그치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말이야. 알고 있다고 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잖아.
내가 느끼는 마음조차 얼토당토 않다는 걸 알면서도 속이 상한단 말이지.
속이...
잠깐. 마음이 아니라 진짜 속이 아픈 것 같은데.
“어디 아파요?“
“왜? 무슨 일이에요? 체했어요?“
몸을 약간 숙이니까 옆에 앉아있던 B가 알아채고 말을 걸어왔어. 뭔가 열띈 토론을 벌이고 있던 A랑 C도 바로 날 쳐다봄.
괜히 소란 일으켜서 시선 끌기 싫은데. 옆집남자까지 쳐다보면 어캄.
내 속은 나만 아는 거고 딱히 남이 봐서 이상한 상황은 아닌데 괜히 창피했음.
“괜찮아요. 잠깐 위가 좀.. 괜찮아졌어요.“
”일어나기 전에 약이라도 사올까요? 소화제? 위염? 위통?”
“아니, 진짜 괜찮아요. 슬슬 일어날까요?“
차라리 자리를 벗어나는 게 낫지.
가방을 챙겨 드니까 B가 붙잡고 일어나라고 팔을 내밀었어. 덕분에 편하게 일어나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자리를 간단히 정리한 다음 곧바로 카페 테라스를 벗어남.
다행히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옆집남자가 서있는 곳이랑 반대 방향이었음.
난 사람들이랑 자연스럽게 걸어가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지.
차라리 그 날 저녁 때 옆집남자를 다시 마주쳤다면 금세 털어버릴 수 있었을까?
아니면 그냥 일어날 일이 며칠 당겨지고 미뤄지는 정도였을까.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실 관계만 보자면. 그 날 저녁, 그 주 주말에도 옆집남자랑 마주치는 일은 없었음.
난 그 며칠 동안 내내 이틀간 벌어졌던 일들을 곱씹었어.
알아. 잊어야 하는 기억들을 되풀이 하는 건 멍청한 짓이지. 그치만 어떤 때는 잊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억일 수록 선명해지잖아.
이미 한 번 마주쳤던 변태로부터 달아나던 일. 태어나 처음, 의도적으로 사람을 다치게 한 일. 그 뒤에 옆집남자가 태연하게 벌인 일. 그리고.. 밤.
하필 그 다음 날 동네 밖에서 옆집남자를 마주친 것까지.
주말에 다른 기억으로 덮어볼까 했는데 친구가 일이 생겼다고 해서 못 만났어.
결국 나 혼자 집에 남아서 밀린 청소며 빨래며 처리하다가 멍 때리고. 잠깐 편의점에 가서 떨어진 생필품이나 몇 개 사옴.
그 외에는 음침하고 우울한 주말을 보냈지.
주말이 지나 출퇴근을 두어 번 더 반복한 다음에야.
다시 옆집남자를 마주쳤어.
어디서? 역 앞 퇴근길에서.
얄미울 정도로 태연하고 한결같다고 해야 하나.
왜 데리러 왔다가 안 왔다가 하면서 사람 마음을 가지고 노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입 열어봤자 내가 들어도 구차한 말이나 할 것 같아서 그냥 입 다물고 걸었음. 옆집남자도 별 말 없이 조금 떨어진 옆에서 걸었어.
나보다 약간 앞에서 걸어갔는데 보이는 건 담배 연기랑, 담배 연기랑..
손이랑 팔.
그러고 보니까 옆집남자랑 내가 이 길을 같이 걸어간 게 몇 번이나 될까?
그동안 난 한 번도 저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집에 가는 길까지 걷는다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음.
근데 누군가는 그런 행동이 엄청 자연스러운 걸 보니까 갑자기 좀 억울해짐.
내가 갑자기 팔짱을 끼워 잡아도 옆집남자는 늘 그렇듯 신경도 안 쓰고 내버려 둘까?
어떤 여자든? 남자여도?
내가 다른 모든 사람들과 똑같이 상관없는 존재인 게 나을까 아니면 나만 유독 그 이상 친한 척 하지 말라는 말을 듣는 존재인 게 나을까?
뭐가 나은지는 모르겠고 그 생각을 할 때쯤부터 속에 뭔가 쌓이기 시작했던 것 같음.
“여자친구 없는 거 맞아?”
쿨하지도 않고 구차하기까지 하다고? 알아. 나도 뱉어놓고 후회함.
심지어 집 앞이었어. 옆집남자도 나도 본인 집 문을 열고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음.
근데 별안간, 아니 별안간은 아님. 옆집남자가 내 말을 무시하고 들어갈까 봐 옆집 문도 손으로 살짝 막고 물어봄.
옆집남자는 내 쪽으로 돌아서 꽤 짧아진 담배를 물고 집까지 들어가려다 손으로 옮겨 들었어.
...그게 다였음.
사람 말을 들었으면 대답을 해야 할 거 아님?
아무래도 기왕 시작한 거 밀어붙여야겠지?
“..없다고 했잖아.”
강하게 밀어붙일 자신이 있다고는 안 했음. 목소리도 자신감도 한 풀 꺾이긴 했지만 다시 물어봤다는 게 중요한 거지.
“없어.”
다행히도 심장이고 간이고 쪼그라들어서 사라지기 전에 대답을 들을 수 있었음.
근데 들었으면 된 건가?
뭐가 이렇게 찝찝하지.
찝찝하긴 한데 뭐라고 물어야 할지는 모르겠음. 뭘 물어도 이상하지 않아?
그 때 같이 있던 여자는 누구냐고 물어 볼 수도 없는 거잖아. 내가 뭔데?
그게 누구든 옆집남자 인생에 나보다는 중요한 사람이겠지.
“그럼 혹시,“
”내가 여자친구가 있든 와이프가 있든 상관 있어?“
“ㅁ-“
할 말을 잃는다는 건 바로 이럴 때 쓰는 표현이지. 맞지?
고개도 들었고 입도 열었는데 순간 머릿속이 하얘짐. 옆집남자는 담배 물었다가 내 얼굴 근처로 연기를 뱉었어.
짧아진 담배는 바닥으로 버리고 본인 집 문 쪽으로 몸을 돌렸어.
그게 다야? 그게 지금 할 말의 끝이냐고?
문 못 열게 꾹 누르고 걸음까지 옮겨서 문 앞으로 약간 가까워졌음.
이번엔 고개만 내 쪽으로 돌아왔어.
“··· ···결혼했어?”
그렇게 개무시를 당하고 물어보고 싶은 게 그것 밖에 없었냐고? 아니 묻고 싶은 건 많았지.
근데 그게 당장 제일 중요한 문제기는 했음.
만약 여자친구가 없다는 게 진짜 여자친구만 없을 뿐 사실은 와이프가 있다는 말이면 어떡하냐고.
그럼 난, 내가 뭐가 됨?
“무슨 상관인데.”
“진짜 결혼 했냐니까?”
지금까지 반지같은 건 본 적이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 자리에서 왼손도 확인함.
혹시나 해서 오른손도 확인함.
다시 왼손을 또 확인함.
약지 손가락에 혹시 반지 자국이라도 있는지 살펴봄.
아무 것도 없는데. 그냥 하는 말인가? 아니면 진짜..?
“...무슨 상관이냐니까.“
”진짜 결혼한 건지 아니면, 아무튼 그것부터 대답해. 진짜야?“
”...“
불안하게 왜 아무 대답도 안 하는데?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하고 너무 속 터져서 왼손 잡아다가 직접 살펴봄.
반지 자국도 없는 거 확실히 맞지? 맞잖아. 이거 그냥 일부러 나 괴롭히려고, 아니면 상처 주려고 거짓말 하는 거지?
내가 손을 가져가도 내버려 두고, 놔도 내버려 두기만 하면서.
그냥 나 혼자 안절부절 못 하는 거 보고 비웃는 거잖아.
“무슨 상관이냐고? 내가 그냥 어디 사는 양아치 새끼랑 하루 뒹군 건 내 실수고, 나만 멍청한 짓이지. 설령 그 일에서 상처 받는 사람이 생겨도 나 하나라고. 근데 만약 네가 상처주는 사람이 나 하나가 아니었던 거면.. 나까지 누군가한테 상처주는 짓을 한 거잖아. 그럼 내가 너무,“
”상처를 왜 받아.“
”상처를 왜 받냐고? 그럴 거면 연애를 왜 하고 결혼을 왜 하는데? 그런 일이 있는 걸 알게 되면 당연히,“
”아니. 있지도 않은 내 와이프 말고 너 말이야.”
“...결혼한 거 아니라는 거야?”
“나한테 상처를 왜 받냐고.“
진짠가? 결혼 안 했다는 건 진짜겠지?
하여간 왜 매번 말이 저따위야. 사람 속을 들었다 놨다. 뒤집었다가 던졌다가 밀었다가 당겼다가.
인간 저글링을 당해도 이것보다는 덜 어지럽겠음. 하여튼 결혼한 게 아니라는 건 맞지?
”네가.. 상처를 주고 있잖아.“
결혼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또 갑자기 기운 빠짐.
역시 쿨한 척 하는 건 내 능력 밖의 일이었음.
순간 흥분했던 숨 고르는데 그림자가 가까워졌어. 고개 들면 한결같은 표정이 날 보고 있음.
“난 상관없는데.”
“남이야 상처를 받든 말든 상관없으니까. 그러니까 상처를 주겠지.“
”난 네가 애인이 있든 남편이 있든 상관없다고.“
”···그러시겠지.“
옆집남자한테 그런 도덕성을 기대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음?
옆집남자를 오늘 하루, 얼핏 멀리서 본 게 다인 내 회사 동료들도 그런 기대는 안 할 걸.
“다행이지.”
근데 또 뭐가 다행이라는 거야?
저 평온한 얼굴 너머에 무슨 생각이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있어야지.
다음 말이 궁금해서 가만히 서있었더니 그림자가 더 가까워짐. 한 손은 내 팔을 타고 오르고 있었고, 한 손은 내 집 문을 가볍게 한 번 두드렸어.
문을 돌아보고 다시 옆집남자를 돌아보면 커다란 손 안에 내 얼굴이 담기는 구조였음.
몸은 내 쪽으로 약간 기울고, 귓가에 가까워진 입술은 비밀 이야기라도 하는 것처럼 낮게 소근거림.
“이 집에 네 남편이 있었으면, 진작 머리에 구멍 나서 어디 버려졌을 거 아니야.“
난 소근거리는 방향으로 슬며시 고개를 틀었고, 옆집남자도 내 쪽으로 시선이 닿도록 고개를 기울였어.
옆집남자가 아무렇지 않게 누군가의 머리에 구멍을 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건 사실이겠지.
그치만 그게 내 가상의 남편이라는 건 그냥 눈속임이잖아. 일어나지도 않을 일로 대충 날 달래는 것 뿐이잖아.
설령 그것까지 진심이라 해도 그 말이 날 원한다는 말이 되는 건 아니지.
옆집남자는 여자 하나 하루 갖고 놀겠다고 누군가의 인생에 구멍을 뚫어버릴 수도 있는 인간일 테니까.
적어도 내가 지금 느끼는 감상은 그래.
“... ....그 말이 더 나빠.“
”그래? 남편이 없어서 그런가. 남편 있는 여자들은 좋아하던데.”
그래서. 옆집남자가 하는 말들은 대체 뭐가 농담이고 뭐가 진심인 거야?
진짜 평소에 남편 있는 여자한테 이런 말을 써먹어 봤을까?
아니지. 벌써 다른 건 다 까먹고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는 것부터 옆집남자 말에 또 넘어간 거지.
아무리 내가 눈을 찌푸리면 뭐 함. 결혼을 했네 안 했네 따지면 뭐 하냐고.
어차피 내 고개는 그 손이 이끄는 대로 돌아가고, 채근하는 입술에 입을 열고, 혀를 물고. 그리고···
“자고 갈래?”
온몸으로 끌어안고, 망설임도 없는 손이 멋대로 몸을 만지게 내버려두고.
“오늘은 진짜 살살 할게.”
속삭이는 대로 속절없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아. 참고로.
... .....마지막 말은 오늘도 전혀 안 지켰
어.
🔫맥카이너붕붕🔓
https://hygall.com/613472605 <옆집에 또 들어가서...
https://hygall.com/612289814 <그 남자랑 원나잇한 후기
팀 동료들이랑 점심 식사를 하고, 사무실로 돌아갔다가. 나 포함 네 명이 오후에 외근이 생겨서 나갔어.
별로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일이 생각보다 더 빨리 끝났어.
나랑 동료들은 카페에 들러서 커피나 한 잔씩 하면서 한숨을 돌리기로 함. 그 정도 시간 여유는 충분히 있었음.
...그런 일이 될 줄 알았으면 나 혼자서라도 회사로 복귀했을 텐데.
심지어 우리는 카페 안 쪽에 앉은 것도 아니고 카페 테라스 자리에 자리를 잡았어.
“아- 시원해. 회사 밖은 이렇게 쾌적한 걸. 그쵸?“
테라스에 앉자던 건 나랑 같이 카페에 간 동료 중 한 명의 제안이었음. 이 사람을 임시로 A라고 지칭할게. A는 나보다 열 살 정도 많고 쾌활한데 업무 능력도 베테랑이야.
오늘 일도 사실은 이 분 덕분에 빨리 끝났다고 봐야지.
“업무 시간에는 매연을 맡아도 맑지 않아요? 업무 시간에 밖에서 마시는 커피는 또 왜 이렇게 맛있는 걸까요.”
여기는 나보다 네 살인가 어리고 나보다 팀에 늦게 들어온 남직원 B. 우리 팀 막내야. 동료들도 잘 챙기고 살가운 성격이라 다들 좋아해.
“그러니까요. 매일 이랬으면 좋겠다.“
이번엔 아마 나랑 나이가 같거나 많아야 두어 살 차이날 것 같은 내 또래 직원 C. 내가 부서 옮겨올 때 같은 성별에 비슷한 나이라고 반겨줬어.
여러 도움도 많이 받았고 지금은 꽤 친해졌지만 사적으로 연락하거나 만나는 친구 사이는 아님.
“..벌써 복귀해서 일하기 싫어지는데 어쩌죠.”
이건 나. 밖에 나오니까 일하기 싫었음.
맞장구 치는 사람들 따라 웃으면서 해맑기만 했지.
다들 그랬으면서 정작 한숨들 돌리고 나서는 곧바로 일 얘기를 하기 시작했어. 오늘 오전 업무, 외근, 이따 다시 돌아가면 해야 할 일.
그러다 주말에 뭐하면서 시간을 보낼지, 누구를 만날 건지 하는 얘기도 잠깐 함. A는 남자친구 만날 거라고 했고, B는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 만나러. C는 주말 내내 기필코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안 나가고 잠만 잘 거라고 했어.
난 친구랑 약속이 있긴 한데 친구가 바빠서 취소될 수도 있는 약속이라 보류 상태라는 걸 말해줬지.
그리고 그 타이밍쯤 이 사람들한테 내가 사는 동네에 대해 물어볼까, 엄청 고민함.
카를로스 아저씨가 그랬잖아. 누구한테든 물어보라고.
내가 알기로 B는 잘 모르겠지만 A랑 C는 근처 지역에 꽤 오래 있던 사람들이거든. 이 사람들도 내가 사는 동네에 대해 알고 있을까?
사실 난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 가기 전까지는 거기 이름도 들어본 적 없었음. 회사에서 친해진 사람들한테도 들어본 적 없음.
그래서 내심 아무도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중심가도 아니고 큰 건물이나 큰 상권이나 뭔가 사람들이 굳이 찾아갈 만큼 특색있는 게 없는 동네니까.
안다고 해도 이름 정도나 들어봤을 것 같은 정도?
만약 내가 우리 동네 이름을 들어봤냐고 물었을 때 아무도 모르거나, 이름만 안다고들 답할 수도 있잖아. 그리고 왜 묻냐는 말도 따르겠지.
그럼 난 내가 거기에 산다는 것도 말해야 할 텐데. 그래도 되나? 카를로스 아저씨는 그냥 동네에 대해서만 물어보라고 했잖아.
동네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하면 내 머리에...
다른 말은 안 해도 내가 산다는 말 정도는 해도 되는 건가?
도통 감이 안 잡혀서 망설이기만 했음.
뭔가 들으면 안 될 이야기를 듣게 될까 봐 무서운 마음도 없지않아 있었을 거임.
그러다 보니 선뜻 동네 얘기는 못 꺼내고 전혀 다른 주제들만 떠들고 맞장구 쳤어.
우연히 B가 지금 사는 곳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지역이나 동네에 대한 화제로 옮겨갔을 때도 그 얘기를 꺼내지는 못 했음.
혹시 사람들 입에서 내가 사는 동네 이름이 나오지는 않을까 해서 귀를 기울이긴 했지. 별 소득은 없었음.
화제는 또 금세 다른 쪽으로 옮겨갔고, 다들 커피를 반쯤 비워냈을 때였음.
“···저 쪽에 서있는 남자 말이에요.”
“남자?”
여러 사람이 모여 있어도 잠깐 대화가 끊기고 정적이 흐르는 순간이 있잖아.
다들 그 때 커피를 한 모금씩 마시는 참이었는데 문득 C가 몸을 숙이더니 은밀한 목소리로 그러는 거야.
얼떨결에 A도 B도 나도 C를 따라 몸을 약간 숙이고 귀를 기울였음. 대개 이런 분위기에서는 흥미로운 비밀 이야기같은 게 나오는 법이잖아.
딱 그 분위기였어.
C는 우리가 따라 몸을 숙이는 걸 보더니 눈만 굴려서 어딘가를 한 번 쳐다본 후 다시 돌아와서 입을 열었음.
“이 카페 옆 건물 쪽에. 남자들이 몇 명 서있거든요?“
”그런데요?“
”근데 그 중에 한 명이 진짜..“
”진짜...?“
”잘생겼어.“
”뭐? 나도 볼래.“
”잠깐, 잠깐. 잠깐. 잠깐!!“
C가 갑자기 어디에 잘생긴 남자가 있다는 말을 하자마자 A가 바로 보겠다고 대답함. C가 다급하게 손을 뻗어서 말렸어.
자리 구조상 C가 말한 남자는 본인이 앉은 자리에서 바로 보이는 곳에 있었나봄. 그 말은 마주앉은 A가 몸을 완전히 반대로 돌려야 보이는 곳에 있다는 거지.
이 카페 옆 건물이면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닌데 그럼 이목을 끌어버릴 수도 있잖아.
그 쪽에는 실례가 될 수도 있고.
A도 그걸 모르는 건 아니라 고개나 몸을 돌리지는 않고 꾹 참았어.
나도 궁금했지만 같이 참음. 내 자리에서는 고개를 반쯤 돌려야 했거든. A만큼은 아니지만 내가 쳐다보는 것도 이목을 끌게 될 가능성이 있었지.
C 옆 자리에 앉은 B는 남자,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이성애자임에도 호기심을 참을 수가 없었나 봐.
게다가 B는 충분히 티나지 않게 C의 시야를 훔쳐볼 수 있는 위치였으니까. 고개를 살짝 들고 눈동자를 굴려서 C가 눈짓하는 방향을 확인함.
“와..”
“그 정도야?”
B가 바로 입을 벌리고 감탄사를 뱉자마자 A는 애가 타는지 테이블까지 가볍게 내려쳤다니까.
나도 B반응에 더 궁금해졌는데 B는 A 물음을 듣자마자 곧바로 살짝 고개를 가로저었어.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아 물론 누구 말하는 건지 바로 보일 정도로 잘생기긴 했어요. 근데...“
“근데? 다른 게 부족해 보여? 키? 몸매?“
”아뇨. 그... 저 쪽 일 하는 사람 같지 않아요?“
저 쪽 일 하는 사람? A랑 나는 그 말이 언뜻 이해가 안 가서 C쪽으로 고개를 돌렸어.
“장난해요? 백퍼. 그러니까 더 미치게 하는 거지. 위험하게 잘생긴 남자는 그냥 잘생긴 남자보다 상위 계급이라고요.“
“저 쪽 일이라는 게 그 쪽이야? 나 진짜 궁금해 미치겠어요. 제발 내가 지금 고개 돌려서 확인해도 된다고 말해주면 안 돼요?”
“안 돼요! 위치상 쳐다보는 거 바로 알 거예요. 조금 기다려요. 내가 볼 만한 타이밍 알려줄 테니까.“
“몸은? 몸매도 좋아요?”
“키도 크고 몸은, 옷 때문에 잘 안 보이지만 분명히 몸매도 좋아요.“
한 눈에 봐도 저 쪽 일 할 것 같이 생겨서 위험하게 잘생겼고 키도 크고 몸매도 좋은 남자..?
내가 아는 남자 중에도 그런 사람이 하나 있긴 한데.
동일 인물일 리는 없겠지. 그 남자가 여기 있는 건 왠지 상상이 안 되거든.
그것도 카페 근처 건물에 사람들이랑 모여서, 누군가에게 잔뜩 시선을 받고 있는 모습은 더더욱 상상이 안 감.
시선을 끄는 광경은 상상이 간다 쳐도 당연히 그 남자는 아니겠지. 세상에 그런 남자가 한 명만 있을 리가 없잖아.
”그치만, 그래도 좀.. 무섭지 않아요? 얼굴보다 저 튀는 타투가 먼저 보이는데.“
음... 튀는 타투라고? 세상에 튀는 타투를 하고 다니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지.
”B는 남자 눈이라 그런가? 물론 타투도 보이긴 하죠. 근데... 봐요. 저 쪽 건물에 들어가는 여자들. 저 사람들도 힐끔거리는 거 보이죠?“
”진짜네. 이게 메이저한 취향이라고요? 여자들 저런 남자 좋아해요?“
“좋아하냐고? 환장하죠. 저런 남자랑 더럽고 질척하게 한 번만 엮일 수 있으면 이번 생은 여한이 없겠어요.“
”저런 남자랑 엮였다가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요.“
”그러니까 한 번만이라고 했잖아요. 누가 뭐 결혼이라도 하겠대?“
”그 한 번이 어떤 일로 이어질지 모른다니까요. 예전에 제가 건너 건너 알던 지인 따님이 어디 갱단 말단 양아치한테 잘못 걸린 적이 있거든요. 그 얘기 들으니까 내가 다 오싹하던데.“
”헤에,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뻔하죠. 그 말단 양아치가 약 팔던 놈이라 중독자 되고, 몸 팔게 되고.. 자세한 사정은 끔찍해서 듣는 것도 괴로웠어요.“
”세상에. 그래서 그 여자애는 어떻게 됐대요?”
“그 여자애는-”
“어? 담배 꺼낸다. A. 지금. 지금 봐도 돼요.”
C가 퍼뜩 고개 들고 중얼거리기 전까지는 분명히 세 사람 다 B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음.
다들 고개를 끄덕이면서 연민과 더불어 공포심마저 느끼고 있었지. 나도 마찬가지였어.
근데 C가 그 말을 하자마자 A는 당장 몸이랑 고개를 뒤로 돌렸어. B는 말하려던 입을 다물고 한숨을 쉬었음.
“...지금 이 이야기를 듣고도 저 남자 얼굴이 그렇게 궁금해요?”
“저렇게 생긴 남자가 담뱃불을 붙이는데 어떻게 안 쳐다봐요. 그쵸. A?“
B가 무슨 말을 하든 말든 A는 고개를 돌리고 한참이나 그 문제의 남자를 구경했음.
난 그동안에도 B를 보고 있었어. 왜냐면 난 C가 말한 위험한 남자의 얼굴보다 B가 말하던 양아치한테 잘못 걸린 여자의 결말이 더 궁금했거든.
물론 그 문제의 남자 얼굴이 안 궁금했던 건 아니지. 궁금했어.
누가 또 그렇게 위험하게 생긴 사람이 있나. 그래도 난 B의 이야기를 꿋꿋하게 기다렸는데 말이지.
“남자가 봐도 여자라면 한 번 엮여보고 싶게.. 생기긴 했네요.”
근데 A도 C도, 심지어 B도 그 문제의 남자를 보느라 정신이 없더라.
하는 수 없지. 나도 그 남자 얼굴을 확인해야 이 대화에 낄 수 있을 거 아님?
A에 살짝 가려지는 시야를 피해서 몸을 약간 뒤로 당겼음. 덕분에 확실하게 그 위험하게 생겼다는 남자의 실물을 확인할 수 있었어.
···이런. 진짜 위험하게 생겼네.
젠장. 그럼 그렇지.
온몸으로 자신이 위험인물이라는 경고라도 울리는 것처럼 생긴 남자가 흔할 리 없잖아.
혹시나? 역시나 옆집남자였음.
밝은 대낮에 동네 밖에서 봐도 진짜 위험하게 잘도 생겼네. 심지어 같이 서있는 남자들도 덩치는 비슷한데 혼자 제일 위험하게 생겼어.
다른 사람들은 어디 가서 인상 쓰면 좀 위협적이겠다 싶은데, 옆집남자는 한눈에 봐도 아. 이 사람은 그냥 피해가야겠다. 싶게 생김.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그렇게 말했잖아. 내 착각이 아니라 누가 봐도 그렇게 생겼다는 거지.
그나저나 난 처음 보는 얼굴도 아닌데 왜 이렇게 한참 살펴보게 되지.
신기하긴 했음. 뭔가 이 시간에 동네도 아닌 곳에서 옆집남자를 마주치게 될 거라는 상상은 안 해봤거든.
“잠깐, 다들 그만 좀 쳐다봐요.”
“C가 말한 거 진짜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쵸? 그쵸?”
어차피 눈을 못 떼고 있는 게 나만은 아니었음.
B가 작은 목소리로 말려봤지만 A도 C도 옆집남자가 담배 연기 뱉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어.
게다가 진짜 건너 편 다른 가게 앞에 있는 여자들도 가게 안 들어가고 그거 보고 있더라. 슬쩍 확인하니까 우리랑 같은 카페 테라스에 앉은 사람들도 힐끔대고 있음.
뭐임. 뭐 연예인임?
잘생긴 남자가 멸종위기인 세상인 건 사실이지만, 보통 이렇게까지 대놓고들 힐끔대지는 않잖아.
그 시선들이 뭔지는 아마 내가 제일 잘 알 거야. 단순히 잘생겨서 힐끔거리게 되는 건 아니거든.
그럼 왜 자꾸 힐끔거리게 되냐고? 솔직히 자세히 설명하라고 하면 나도 못 함.
뭐랄까.. 그냥?
그냥 한 번쯤 더. 한 번만 더. 조금만 더 보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단 말이지.
곧바로 시선을 돌려버리면 아쉬울 것 같고.
그보다 이 정도면 시선이 느껴질 법도 할 텐데.
옆집남자는 눈치가 빠르잖아. 그러니까 여기저기서 본인을 힐끔대고 있는 것도 알았겠지.
시선을 받는 게 익숙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늘 달고 사는 말처럼 누가 보든 말든 상관 없어서?
“아니 진짜로 이제 그ㅁ, 아.”
“앗.”
아무리 그래도 너무 쳐다봤지.
내가 아니라 A가 너무 티나게 보고 있었어. 아예 몸을 돌리고 있었으니까.
C가 다급하게 손을 뻗어봤지만 A가 당황한 나머지 미처 몸을 제자리로 돌리기 전에 옆집남자가 카페 쪽으로 고개를 돌렸음.
입에 담배를 문 채로 미간은 잔뜩 구겨서는.
우리랑 같이 힐끔대던 옆 테이블 사람들은 급하게 아무 일도 없었던 척 고개를 숙이고 음료를 들이켬.
얼음 밖에 안 남은 음료도 있는데 뭘 자꾸 마시더라.
A는 의자 뒤로 몸을 돌려 스트레칭 하는 자세로 전환함.
“어우, 피곤해.”
누구 들으라는 건지 모를 말을 중얼거리면서 말이야.
“A, 그만. 그만..! 차라리 그냥 눈 깔아요..! (나) 는 굳, 굳은 거 아니죠? B. (나) 좀 찔러봐요.“
C가 A와 나를 향해 다급하게 중얼거리는 걸 들었어. 들었는데, 옆집남자가 날 발견한 것 같았음. 그래서 나도 모르게 더 보고 있었어.
그도 그럴 게 맨날 태연한 사람이. 드물게 약간 놀란 것 같았거든.
처음에는 담배 물고 인상 쓰고 힐끔대는 사람들 훑어보고 일행 쪽으로 고개를 돌렸음.
고개 돌리고 잠깐 멈칫 하는 것 같더니 다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거임?
뭐 못 볼 거라도 본 사람처럼.
뭐야. 당황스럽긴 나도 마찬가지거든?
얼떨결에 눈 마주친 그대로 옆집남자는 제 눈이 의심스러운 것처럼 눈을 한 번 깜빡임.
나도 눈을 깜빡여봄.
“그만, 그만 봐요..!”
이번엔 A가 내 팔을 살짝 건드림.
옆집남자는 눈가가 약간 구겨지더니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손으로 내리더라.
“돌 된 거 아니죠..?”
B가 불안한 목소리로 내 팔을 톡톡 건드렸을 때.
“어? 뭐, 뭐야?”
C가 작게 중얼거려서 호기심을 참지 못한 A가 또 몸을 살짝 돌렸음.
A가 눈을 굴려 옆집남자를 찾아냈을 때는 이미 옆집남자도 다시 일행 쪽으로 고개를 돌린 다음이었어.
“뭐야. 뭐였는데요?”
“아니 그게.. 혹시 아는 사이..? 는 아니죠?”
난 옆집남자가 일행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일행 중 한 명이 내 쪽을 살짝 쳐다보고. 그 다음 입 모양으로 추측했을 때 아는 사이냐고 묻는 듯한 말을 하는 걸 확인했음.
옆집남자는 금세 평소랑 다를 것 없는 얼굴로 담배를 입가로 가져갔어.
담배가 입에 물리기 전에 아니. 하고 언뜻 고개를 까딱였음.
그것까지 보고 나도 내 일행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
무슨 일이었는지 물어보던 A도, 나한테 혹시 아는 사이냐고 물은 C도.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B도 날 보고 있었음.
“..그럴 리가요.“
내 대답에 C는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좀 놀랐다고 대답했어. A는 왜 그러냐고 다시 물었음.
”당장이라도 우리 테이블 쪽에 뭘 보냐고 시비라도 걸어올 것 같이 생긴 남자가, 웃잖아요. 인상쓰던 눈가는 가늘어지고 입꼬리까지 사근사근 풀어지게.“
“진짜? 저 얼굴이 웃는 게 상상이 안 가는데. 나도 그냥 계속 볼 걸.“
“근데 냉하고 위험하게 생긴 남자가 웃는 얼굴은 진짜 반칙이다. 그쵸? 정면에서 본 소감이 어땠어요?“
“...잘생겼던데요.”
“뭐야, 나도 궁금해-”
C가 A한테 설명해주려고 애쓰는데 B는 걱정스럽게 날 보고 있더라. 그러더니 의자째로 들고 내 옆으로 약간 옮겨옴.
“(나) 한테 관심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런가보다. (나) 보고 웃은 거잖아.“
그리고 B가 말하자마자 C가 덧붙이고 A는 같이 눈을 빛냈음.
“에이. 아닐 걸요.“
”어떻게 확신해요? 나였어도 (나) 가 날 그렇게 보고 있었으면 다시 돌아봤을 거예요.”
”뭐? B 뭐야- 은근슬쩍 본인이 고백하는 거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라. 충분히 있을 법하다는 거죠. 이 쪽으로 좀 와요. 나랑 친한 척이라도 해요.“
“이거 봐. B가 수상한데?“
“아니라니까요.”
B는 내 쪽으로 더 가까이 앉아서 나랑 유독 친한 것처럼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기까지 했어.
어차피 옆집남자는 이제 이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데. 난 그냥 웃어 넘겨봄.
사실 속으로는 옆집남자 때문에 싱숭생숭 했지.
그렇게 겉으로는 티 안 내려고 노력하는 타이밍에 누가 카페에서 나왔어.
카페에 드나드는 사람이 여럿이라 딱히 인식도 못 했지만 그 사람이 우리 테이블에 가볍게 부딪혀서 알아채게 됨.
우리 테이블에 있던 티스푼 하나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큰 소리가 울렸어.
A,B,C, 그리고 나만이 아니라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소음을 일으킨 사람을 돌아봤음.
거의 백색에 가까운 금빛에 짧은 단발 머리를 한 여자였어. 나랑 눈이 마주쳤는데 눈동자가 엷은 하늘색이라 나도 모르게 잠깐 그 눈을 보고 있기만 했음.
“이런, 미안해요. 달링. 혹시 음료 튀었어요?”
심지어 목소리는 얼굴에서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도 듣기 좋았어. 여자치고는 약간 낮은 편에 부드러운 말투까지 하마터면 홀릴 뻔 했다니까.
대답해야 하는 것도 잊었다가 곧바로 정신을 차려야 했음.
여자는 손에 커피를 들고 있었고, 음료가 튄 건 우리가 아니라 여자였어.
여자 몸보다 넉넉한 사이즈의 흰 셔츠에 커피 얼룩이 튀어 있더라고.
“아뇨. 저희는 괜찮아요.“
거의 반사적으로 내 가방에 있던 손수건을 꺼내서 내밀었어.
이미 스며들어서 별 소용 없을 것 같았지만 조금이라도 더 스미기 전에 닦아내라고 말이야.
여자는 고맙다고 짧게 인사하면서 손수건을 받아 들었어. 본인 셔츠를 내려다 보고 커피 얼룩 위를 손수건으로 눌러봤지만 역시나 큰 소용은 없었음.
“이미 물들었나봐요. 괜히 손수건만 버렸어요.”
여자가 셔츠에서 손수건을 떼어내는 찰나에 젖은 셔츠 부분으로 얼핏 그 너머의 피부가 보였어.
셔츠 사이즈가 넉넉한 덕분에 금세 피부랑 멀어져서 보이지 않게 됐지만.
모양까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쇄골 근처에 타투가 있었던 것 같음.
절대 훔쳐보려던 건 아님. 그냥 나도 모르게 저절로 보인 걸 어캄.
누구 때문에 다른 사람 타투를 주의 깊게 보는 습관이 생긴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여자는 미안한 얼굴로 몸을 살짝 숙이며 손수건을 다시 나한테 내밀었어.
“괜찮아요. 혹시.. 도중에라도 얼룩 닦을 기회가 생기면 그거 쓰세요.“
내 손수건을 도로 내가 거절했을 때 여자는 의아한 얼굴이었지만 여자끼리는 대충 알지 않아? 여자는 겉옷도 안 입고 있었는데 흰 셔츠가 젖은 데다 커피 얼룩이잖아.
“정말 고마워요. 그럼 잠깐.. 여기 더 있을 거죠? 바로 일어날 거 아니죠?”
“네?”
“잠깐 기다려요.”
여자는 별안간 다시 카페로 들어감.
얼떨결에 뒷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키가 꽤 크더라고. 검은 슬랙스가 신발 위를 덮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신발 굽도 높았나 봐.
그나저나 기다리라는 건 무슨 소리지?
다시 앞을 보니까 우리 테이블 사람들은 어디서 태풍이라도 맞은 것처럼 얼떨떨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음.
나도 모르게 힐끗 옆 쪽을 확인했는데 옆집남자가 비스듬하게 서서 이 쪽을 보고 있었음. 물론 담배도 물고 있었어.
언제까지고 보고 있을 수는 없어서 슬쩍 테이블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는데 발 소리가 들림.
고개 돌리니까 방금 그 여자가 손에 들고 있던 걸 우리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 거임.
“이거 드세요. 답례라고 하기에는 약소하지만.”
테이블 위에 내려진 건 쿠키 상자였음. 아까 카페 안에서 선물용 쿠키를 파는 걸 봤는데 그거랑 똑같은 상자였어.
굳이 들어가서 사왔나 봐. 답례를 바란 건 아니었는데 말이지.
“근데 혹시- 우리 어디서 본 적 없어요?“
이미 받은 걸 어카겠음? 고맙다고 대답하려는데 여자가 살짝 흘러내린 머리를 귀에 꽂고 물었어.
본 적이 있을 리가.
같은 여자고 이성애자라 해도 이렇게 생긴 여자를 마주치고도 잊기는 쉽지 않은 법이지.
“아뇨, 아마.. 없는 것 같은데요.“
”그쵸? 너무 고맙고 반가워서 벌써 머리에 각인 됐나.“
별로 큰 도움을 준 것도 아닌데. 뭐라고 대답하기 애매해서 살짝 웃었는데 여자는 마주 웃어 보이기만 하고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함.
”아, 쿠키. 잘 먹을게요.“
고맙단 말을 제대로 못해서 다급하게 외쳤을 때 여자는 이미 우리 테이블이랑 두어 걸음쯤 멀어져 있었어.
그래도 내 말을 들은 여자는 몸을 반쯤 돌려서 살짝 웃고 손수건을 흔들어 보였음.
그리고 커피에 꽂힌 빨대를 입에 물고 가던 길로 걸어갔어.
옆집남자가 서있는 곳까지 걸어감.
설마.. 저 쪽 일행이었나?
”우와. 무슨 일이야. 쿠키 먹어봐도 돼요?“
멍하니 그 쪽을 보는데 C가 말을 걸어와서 곧바로 고개를 돌렸음.
“그럼요. 여기서 다같이 먹고 가요.”
난 곧바로 쿠키 상자를 풀어냈지.
다들 쿠키를 한 입씩 베어물고 맛에 대해 극찬을 하는데 B가 그러고 보니 잊은 게 있는 것 같다며 업무 얘기를 꺼냈어.
난 쿠키 하나를 입에 물고 다른 데에 정신이 팔렸지. 우리 테이블 대화는 대충 흘려 들었음.
“···어?”
“왜. (나) 도 뭐 빠트린 거 있어요?”
“아뇨, 아니에요.”
그러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니까 세 사람 시선이 나한테 옮겨왔음.
곧바로 고개를 앞으로 돌렸지만 B랑 C가 내 시선이 있던 방향을 살폈어.
“그럼 뭐. 아는 사람이라도 봤어요?”
다행히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았음. 설령 없었다고 해도 나랑은 전혀 다른 세상에 살 것 같은 남자랑 내가 아는 사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겠지.
“그-건 아니고. 진짜 별 거 아니에요. 잠깐 딴 생각 하다가.“
”뭐야. 아까 거기 뭐 두고 오기라도 했나 했네.“
세 사람은 다시 업무 얘기로 돌아갔고, 난 가볍게 맞장구를 치며 그 대화를 들었어.
근데 무슨 말이 오가고 있는지는 전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음.
커피를 든 여자가 옆집남자 일행 쪽에 서서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것까지 봤거든.
그 다음에 고개를 돌렸을 땐 뭐라고 대화를 나누던 여자가 옆집남자 팔에 손을 끼워 넣었음.
옆집남자는 손에 든 담배를 반대쪽으로 옮기고, 여자가 붙잡은 쪽 손을 주머니에 넣었어.
이어서 여자는 옆집남자 어깨에 머리를 가볍게 기댔음.
옆집남자는 다른 손으로 담배를 가져다 입에 물었고, 여자는 남은 손으로 커피 빨대를 가져다 입에 물었지.
두 사람의 뒷모습이 어땠냐면 말이야.
“방금 그 사람 저 남자 여자친구였나 봐요?“
”그러게요. 엄청 잘 어울려.“
”근데 또 저런 남자가 알고 보면 은근히 순정파야.“
”저것만 보고 저 남자가 순정파인지는 어떻게 알아요.“
”B는 남자라서 뭘 모르는 거라니까.“
맞아. 잘 어울렸어. 그냥도 아니고 엄청 잘 어울렸음.
만약 내가 옆집남자 옆에 나란히 서있으면 진짜 안 어울렸을 거임. 단 둘이 거울 앞에 서본 적은 없지만 안 봐도 알만 하지 않음?
외형이나 스타일링의 문제가 아니라 뭐랄까 표정도 분위기도 자세도 하는 짓도. 뭐 하나 어우러질 것 같은 게 없단 말임.
정확하게 표현해 보자면, 옆집남자랑 난 서로의 삶에 아주 작은 교차점 하나도 없을 것처럼 생겼음.
나도 알아. 실제로도 썩 틀린 말은 아니라는 거.
심지어 옆집남자랑 내가 어울리든 말든 전혀 상관 없는 문제라는 것도 잘 알고 있음.
그치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말이야. 알고 있다고 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잖아.
내가 느끼는 마음조차 얼토당토 않다는 걸 알면서도 속이 상한단 말이지.
속이...
잠깐. 마음이 아니라 진짜 속이 아픈 것 같은데.
“어디 아파요?“
“왜? 무슨 일이에요? 체했어요?“
몸을 약간 숙이니까 옆에 앉아있던 B가 알아채고 말을 걸어왔어. 뭔가 열띈 토론을 벌이고 있던 A랑 C도 바로 날 쳐다봄.
괜히 소란 일으켜서 시선 끌기 싫은데. 옆집남자까지 쳐다보면 어캄.
내 속은 나만 아는 거고 딱히 남이 봐서 이상한 상황은 아닌데 괜히 창피했음.
“괜찮아요. 잠깐 위가 좀.. 괜찮아졌어요.“
”일어나기 전에 약이라도 사올까요? 소화제? 위염? 위통?”
“아니, 진짜 괜찮아요. 슬슬 일어날까요?“
차라리 자리를 벗어나는 게 낫지.
가방을 챙겨 드니까 B가 붙잡고 일어나라고 팔을 내밀었어. 덕분에 편하게 일어나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자리를 간단히 정리한 다음 곧바로 카페 테라스를 벗어남.
다행히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옆집남자가 서있는 곳이랑 반대 방향이었음.
난 사람들이랑 자연스럽게 걸어가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지.
차라리 그 날 저녁 때 옆집남자를 다시 마주쳤다면 금세 털어버릴 수 있었을까?
아니면 그냥 일어날 일이 며칠 당겨지고 미뤄지는 정도였을까.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실 관계만 보자면. 그 날 저녁, 그 주 주말에도 옆집남자랑 마주치는 일은 없었음.
난 그 며칠 동안 내내 이틀간 벌어졌던 일들을 곱씹었어.
알아. 잊어야 하는 기억들을 되풀이 하는 건 멍청한 짓이지. 그치만 어떤 때는 잊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억일 수록 선명해지잖아.
이미 한 번 마주쳤던 변태로부터 달아나던 일. 태어나 처음, 의도적으로 사람을 다치게 한 일. 그 뒤에 옆집남자가 태연하게 벌인 일. 그리고.. 밤.
하필 그 다음 날 동네 밖에서 옆집남자를 마주친 것까지.
주말에 다른 기억으로 덮어볼까 했는데 친구가 일이 생겼다고 해서 못 만났어.
결국 나 혼자 집에 남아서 밀린 청소며 빨래며 처리하다가 멍 때리고. 잠깐 편의점에 가서 떨어진 생필품이나 몇 개 사옴.
그 외에는 음침하고 우울한 주말을 보냈지.
주말이 지나 출퇴근을 두어 번 더 반복한 다음에야.
다시 옆집남자를 마주쳤어.
어디서? 역 앞 퇴근길에서.
얄미울 정도로 태연하고 한결같다고 해야 하나.
왜 데리러 왔다가 안 왔다가 하면서 사람 마음을 가지고 노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입 열어봤자 내가 들어도 구차한 말이나 할 것 같아서 그냥 입 다물고 걸었음. 옆집남자도 별 말 없이 조금 떨어진 옆에서 걸었어.
나보다 약간 앞에서 걸어갔는데 보이는 건 담배 연기랑, 담배 연기랑..
손이랑 팔.
그러고 보니까 옆집남자랑 내가 이 길을 같이 걸어간 게 몇 번이나 될까?
그동안 난 한 번도 저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집에 가는 길까지 걷는다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음.
근데 누군가는 그런 행동이 엄청 자연스러운 걸 보니까 갑자기 좀 억울해짐.
내가 갑자기 팔짱을 끼워 잡아도 옆집남자는 늘 그렇듯 신경도 안 쓰고 내버려 둘까?
어떤 여자든? 남자여도?
내가 다른 모든 사람들과 똑같이 상관없는 존재인 게 나을까 아니면 나만 유독 그 이상 친한 척 하지 말라는 말을 듣는 존재인 게 나을까?
뭐가 나은지는 모르겠고 그 생각을 할 때쯤부터 속에 뭔가 쌓이기 시작했던 것 같음.
“여자친구 없는 거 맞아?”
쿨하지도 않고 구차하기까지 하다고? 알아. 나도 뱉어놓고 후회함.
심지어 집 앞이었어. 옆집남자도 나도 본인 집 문을 열고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음.
근데 별안간, 아니 별안간은 아님. 옆집남자가 내 말을 무시하고 들어갈까 봐 옆집 문도 손으로 살짝 막고 물어봄.
옆집남자는 내 쪽으로 돌아서 꽤 짧아진 담배를 물고 집까지 들어가려다 손으로 옮겨 들었어.
...그게 다였음.
사람 말을 들었으면 대답을 해야 할 거 아님?
아무래도 기왕 시작한 거 밀어붙여야겠지?
“..없다고 했잖아.”
강하게 밀어붙일 자신이 있다고는 안 했음. 목소리도 자신감도 한 풀 꺾이긴 했지만 다시 물어봤다는 게 중요한 거지.
“없어.”
다행히도 심장이고 간이고 쪼그라들어서 사라지기 전에 대답을 들을 수 있었음.
근데 들었으면 된 건가?
뭐가 이렇게 찝찝하지.
찝찝하긴 한데 뭐라고 물어야 할지는 모르겠음. 뭘 물어도 이상하지 않아?
그 때 같이 있던 여자는 누구냐고 물어 볼 수도 없는 거잖아. 내가 뭔데?
그게 누구든 옆집남자 인생에 나보다는 중요한 사람이겠지.
“그럼 혹시,“
”내가 여자친구가 있든 와이프가 있든 상관 있어?“
“ㅁ-“
할 말을 잃는다는 건 바로 이럴 때 쓰는 표현이지. 맞지?
고개도 들었고 입도 열었는데 순간 머릿속이 하얘짐. 옆집남자는 담배 물었다가 내 얼굴 근처로 연기를 뱉었어.
짧아진 담배는 바닥으로 버리고 본인 집 문 쪽으로 몸을 돌렸어.
그게 다야? 그게 지금 할 말의 끝이냐고?
문 못 열게 꾹 누르고 걸음까지 옮겨서 문 앞으로 약간 가까워졌음.
이번엔 고개만 내 쪽으로 돌아왔어.
“··· ···결혼했어?”
그렇게 개무시를 당하고 물어보고 싶은 게 그것 밖에 없었냐고? 아니 묻고 싶은 건 많았지.
근데 그게 당장 제일 중요한 문제기는 했음.
만약 여자친구가 없다는 게 진짜 여자친구만 없을 뿐 사실은 와이프가 있다는 말이면 어떡하냐고.
그럼 난, 내가 뭐가 됨?
“무슨 상관인데.”
“진짜 결혼 했냐니까?”
지금까지 반지같은 건 본 적이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 자리에서 왼손도 확인함.
혹시나 해서 오른손도 확인함.
다시 왼손을 또 확인함.
약지 손가락에 혹시 반지 자국이라도 있는지 살펴봄.
아무 것도 없는데. 그냥 하는 말인가? 아니면 진짜..?
“...무슨 상관이냐니까.“
”진짜 결혼한 건지 아니면, 아무튼 그것부터 대답해. 진짜야?“
”...“
불안하게 왜 아무 대답도 안 하는데?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하고 너무 속 터져서 왼손 잡아다가 직접 살펴봄.
반지 자국도 없는 거 확실히 맞지? 맞잖아. 이거 그냥 일부러 나 괴롭히려고, 아니면 상처 주려고 거짓말 하는 거지?
내가 손을 가져가도 내버려 두고, 놔도 내버려 두기만 하면서.
그냥 나 혼자 안절부절 못 하는 거 보고 비웃는 거잖아.
“무슨 상관이냐고? 내가 그냥 어디 사는 양아치 새끼랑 하루 뒹군 건 내 실수고, 나만 멍청한 짓이지. 설령 그 일에서 상처 받는 사람이 생겨도 나 하나라고. 근데 만약 네가 상처주는 사람이 나 하나가 아니었던 거면.. 나까지 누군가한테 상처주는 짓을 한 거잖아. 그럼 내가 너무,“
”상처를 왜 받아.“
”상처를 왜 받냐고? 그럴 거면 연애를 왜 하고 결혼을 왜 하는데? 그런 일이 있는 걸 알게 되면 당연히,“
”아니. 있지도 않은 내 와이프 말고 너 말이야.”
“...결혼한 거 아니라는 거야?”
“나한테 상처를 왜 받냐고.“
진짠가? 결혼 안 했다는 건 진짜겠지?
하여간 왜 매번 말이 저따위야. 사람 속을 들었다 놨다. 뒤집었다가 던졌다가 밀었다가 당겼다가.
인간 저글링을 당해도 이것보다는 덜 어지럽겠음. 하여튼 결혼한 게 아니라는 건 맞지?
”네가.. 상처를 주고 있잖아.“
결혼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또 갑자기 기운 빠짐.
역시 쿨한 척 하는 건 내 능력 밖의 일이었음.
순간 흥분했던 숨 고르는데 그림자가 가까워졌어. 고개 들면 한결같은 표정이 날 보고 있음.
“난 상관없는데.”
“남이야 상처를 받든 말든 상관없으니까. 그러니까 상처를 주겠지.“
”난 네가 애인이 있든 남편이 있든 상관없다고.“
”···그러시겠지.“
옆집남자한테 그런 도덕성을 기대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음?
옆집남자를 오늘 하루, 얼핏 멀리서 본 게 다인 내 회사 동료들도 그런 기대는 안 할 걸.
“다행이지.”
근데 또 뭐가 다행이라는 거야?
저 평온한 얼굴 너머에 무슨 생각이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있어야지.
다음 말이 궁금해서 가만히 서있었더니 그림자가 더 가까워짐. 한 손은 내 팔을 타고 오르고 있었고, 한 손은 내 집 문을 가볍게 한 번 두드렸어.
문을 돌아보고 다시 옆집남자를 돌아보면 커다란 손 안에 내 얼굴이 담기는 구조였음.
몸은 내 쪽으로 약간 기울고, 귓가에 가까워진 입술은 비밀 이야기라도 하는 것처럼 낮게 소근거림.
“이 집에 네 남편이 있었으면, 진작 머리에 구멍 나서 어디 버려졌을 거 아니야.“
난 소근거리는 방향으로 슬며시 고개를 틀었고, 옆집남자도 내 쪽으로 시선이 닿도록 고개를 기울였어.
옆집남자가 아무렇지 않게 누군가의 머리에 구멍을 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건 사실이겠지.
그치만 그게 내 가상의 남편이라는 건 그냥 눈속임이잖아. 일어나지도 않을 일로 대충 날 달래는 것 뿐이잖아.
설령 그것까지 진심이라 해도 그 말이 날 원한다는 말이 되는 건 아니지.
옆집남자는 여자 하나 하루 갖고 놀겠다고 누군가의 인생에 구멍을 뚫어버릴 수도 있는 인간일 테니까.
적어도 내가 지금 느끼는 감상은 그래.
“... ....그 말이 더 나빠.“
”그래? 남편이 없어서 그런가. 남편 있는 여자들은 좋아하던데.”
그래서. 옆집남자가 하는 말들은 대체 뭐가 농담이고 뭐가 진심인 거야?
진짜 평소에 남편 있는 여자한테 이런 말을 써먹어 봤을까?
아니지. 벌써 다른 건 다 까먹고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는 것부터 옆집남자 말에 또 넘어간 거지.
아무리 내가 눈을 찌푸리면 뭐 함. 결혼을 했네 안 했네 따지면 뭐 하냐고.
어차피 내 고개는 그 손이 이끄는 대로 돌아가고, 채근하는 입술에 입을 열고, 혀를 물고. 그리고···
“자고 갈래?”
온몸으로 끌어안고, 망설임도 없는 손이 멋대로 몸을 만지게 내버려두고.
“오늘은 진짜 살살 할게.”
속삭이는 대로 속절없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아. 참고로.
... .....마지막 말은 오늘도 전혀 안 지켰
어.
🔫맥카이너붕붕🔓
https://hygall.com/613472605 <옆집에 또 들어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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