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612377622
view 926
2024.11.25 14:18
22.5 레오나르도 오스본은 꿈을 꾼다
색색으로 물든 나무들이 질세라 자신의 자태를 뽐내고, 티 없이 푸른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양 떼처럼 무리 지어 떠다녔다. 후텁지근해서 들이마실 때마다 폐부를 무겁게 짓누르던 공기는 어느새 기분 좋은 청량함으로 가득했다. 레오는 익숙하게 마당에 쌓인 낙엽을 쓸며 콧노래를 불렀다. 그가 이 오두막에서 맞는 두 번째 가을이 깊어 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배워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첫해와는 달리 가벼운 여유가 그의 몸에 배어 만사가 편안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빗자루와 함께 왈츠를 추면 그의 발밑에서 낙엽들이 하늘하늘 떠다녔다.
낙엽 군단을 이끌고 마당 구석으로 향하면 이미 산처럼 가득 쌓인 나뭇잎의 산 앞에 크리스가 서 있었다. 레오의 경쾌한 콧노래에 웃음을 터트린 그가 뒤돌아 레오를 마주 보았다. 왜 이렇게 신이 났어요? 음, 글쎄. 크리스가 너무 예뻐서? 능글맞은 답변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단풍잎처럼 붉게 물든 크리스의 뺨이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레오는 마지막 낙오병들을 낙엽 더미에 밀어 넣고 빗자루를 기대어 놓은 뒤 크리스를 한아름 끌어안았다. 크리스 얼굴이 너무 빨개서 낙엽이랑 구분이 안 되네. 큰일 났어요. 갑작스럽게 덮쳐온 성인 남자의 몸무게에 버티지 못한 크리스가 위태위태하게 비틀거리다가 낙엽 침대 위로 쓰러졌다.
기껏 아침 내내 정리해놓은 것이 모두 허사가 되었지만 둘 다 그런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레오는 바스락거리는 이불 위에서 크리스의 얼굴에 키스를 퍼부었다. 깃털 같은 감촉에 크리스의 입에서 다시 웃음이 터졌다. 레오! 레오! 그만둬요. 간지러워요. 하지만 어린 연인의 장난기는 크리스의 가벼운 만류 정도로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머리가 온통 흐트러지고, 옷에 낙엽이 잔뜩 붙고 나서야 서로 떨어져 하늘을 마주 보고 나란히 누웠다. 너무 깔깔댔더니 숨이 차 폐부가 아파져 올 정도였다. 한참 동안 푸른 허공을 응시하며 숨을 고르던 크리스와 레오는 한 줌 남은 따스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 옆자리의 온기를 즐겼다. 평온한 고요를 깬 것은 둘 중 누구의 배에서 났는지 모를 배곪는 소리였다.
음, 우리 간식 먹을까요? 크리스의 제안을 거절할 리 없는 레오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잇값 못하는 어른 둘은 그제야 비척비척 일어나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안에서 고구마 가져올 테니까 나뭇잎이랑 나뭇가지 좀 저기 가운데 모아줘요. 크리스가 종종걸음으로 오두막에 다녀오는 사이 레오는 명령받은 바에 따라 작은 모닥불을 만들었다. 나뭇가지 안의 수분이 날아가는 소리가 정겹게 들려왔다. 크리스가 호일에 싼 고구마 여러 개를 들고나오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느새 간식을 예감한 바비가 크리스 뒤에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왔다. 그 꼴이 정답고 우스워 레오의 입가에는 어느새 호선이 떠올라 있었다.
바비, 너 고구마 너무 많이 먹어서 살쪘어. 다이어트 좀 해야 해. 레오의 악의 없는 잔소리에 바비는 억울하다는 듯 컹컹 소리를 내며 짖었다. 그게 마치 나름의 논리를 가진 항의처럼 들린다면 너무 오랜 시간을 사회와 떨어져 지낸 탓일까? 크리스는 바비를 달래듯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괜찮아 바비. 내가 레오 몰래 몇 조각 줄게. 크리스, 그러니까 애 버릇이 나빠지는 거예요. 레오와 크리스는 투덕거리며 모닥불 안에 고구마를 던져 넣었다. 열기에 붉게 달아오르는 은박지, 얼굴을 달아오르게 하는 온기, 주고받는 농담 속의 애정. 크리스의 얼굴에 아롱이던 행복.
레오는 서늘한 추위에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두껍게 내린 커튼 사이로 빛이 새어들고 있었다. 넓고 삭막한 방에 긴 그림자가 드리웠다. 꿈이다. 차라리 다시 그 아름다운 환상 속으로 돌아가고 싶어 눈을 감았던 레오는 얼마 후 그 노력이 부질없음을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에 다가갔다. 긴 천을 걷으니 오스본가의 잘 관리된 정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몇 명의 정원사가 수목을 다듬고 땅에 떨어진 낙엽들을 치우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충동이 레오나르도 안에 치밀었다. 그는 급하게 옷을 차려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평소에 발을 들이지 않던 주방에 고개를 들이미니 사용인들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여기 혹시 고구마 있어요? 호일도 같이 필요한데. 사용인들은 멍하니 레오를 쳐다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고구마와 호일을 레오의 품에 안겨주었다. 고마워요. 무엇이 그리 급한지 바람처럼 사라져버린 레오의 등 뒤에서 누군가가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방금 레오 도련님이 우리에게 높임말 쓰신 거야? 모두 긴 실종 이후 그가 변했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이를 직접 경험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라 넋이 나가는 것이 당연했다. 사람들이 놀라건 말건, 레오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를 만류하는 정원사들로부터 갈퀴와 빗자루를 뺏어 들고 정원 한편 외딴곳에 모닥불을 피웠다. 그리고….
그러니까 형은 지금 군고구마나 같이 먹자고 우리를 불러낸 거야? 화를 내야 할지, 걱정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목소리로 뉴트가 아연하게 물었다. 해리는 그 옆에서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모닥불을 낯선 이물질처럼 바라보는 중이었다. 너희들도 해본 적 없잖아. 뭐 어때. 오래 걸리는 일도 아닌데. 나직하되 능청스러운 레오의 말에 두 동생이 한숨을 공유했다. 그들은 서로를 긴 시간 동안 마주 보더니 포기했다는 듯 모닥불 주변에 앉았다. 결벽증이 있는 해리가 터 잡기 전에 세심하게 자리를 고르는 꼴이 제법 우스웠다.
군고구마가 구워지는 동안 세 형제는 딱히 긴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저 간혹 생각나는 주제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나누고, 나머지 시간 동안에는 그저 나란히 타오르는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검게 사그라드는 장작 위에 춤추는 형형색색의 불꽃을 보고 있자니 시간은 금세 어깨 너머로 스쳐 지나갔다. 낯설고 기묘하게 친숙한 시간이었다. 충분히 기다렸다 싶어진 레오는 긴 꼬챙이로 고구마를 한 번씩 찔러 익었는지를 확인하고 경건하게 이를 반으로 갈라 해리와 뉴트에게 배분했다. 처음에는 너무 뜨겁다. 지나치게 탔다. 이게 뭐냐며 투덜거리던 그들은 이내 입을 다물고 군고구마를 호호 불며 씹어먹기에 바빴다. 지나가던 행인이 봤으면 그 오스본가 사람들이 이럴 리 없다고 기함할만한 풍경이었다. 레오는 뉴트와 해리를 바라보며 자신도 고구마를 한입 베어물었다. 어쩐지 목이 메었으나 고구마가 지나치게 뻑뻑했던 탓이리라.
배가 어느 정도 채워지자 따스한 온기에 취한 형제들 사이에 하품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셋이 이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 본 적이 있던가? 여태까지 안 해봤던 일이라고 해서 꼭 나쁜 것만을 아니라고, 그런 느른한 생각이 세 사람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언제나 바쁜 해리가 먼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잘 먹었어. 근데 곧 회의가 있어서 나가봐야겠다. 원래라면 분 단위, 초 단위로 짜여 있는 해리의 일정을 잘 아는 다른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에 유독 바쁘네. 아직 세상 물정에 어두운 레오가 묻자 해리는 짜증을 내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곧 주 대법원 판사 선거가 있잖아. 아버지가 이번에야말로 제레미 베일을 쫓아내고야 말겠다고 칼을 갈고 계셔.
제레미 베일, 법조 명문가인 베일가의 가주이자 14년째 주 대법원 판사로 재임 중인 거물. 그 정도는 레오도 알고 있었다. 성격이 대쪽 같고 엄정하기로 유명해 오스코프의 덤핑이나 반독점법 위반에 대해 상당한 과징금을 부과했던 사실이 가물가물 기억났다. 그때 늙은이 성질머리가 장난 아니었지. 딱히 유쾌한 기억은 아니었던 지라 레오는 떠오르는 이미지를 빠르게 머리에서 지워버렸다.
그리고 형, 그것과 관련해서…. 슬슬 형이 사교계에 나가줘야 할 것 같아. 망설임이 한 줌 담긴 해리의 말에 레오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헤아려보면 벌써 반년 넘게 칩거 중이었으니 생각보다 오래 쉬게 해준 축에 속했다. 오스본가의 규칙은 냉혹했다. 그 이름을 지고 태어난 이상, 주어진 소임을 다해야 했다. 주 대법원 판사 선거에는 많은 로비와 협잡이 필요할 것이 자명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런 뒷수작의 연막을 담당해온 것이 레오가 아니었던가? 현재 뉴트가 어느 정도 그의 역할을 대신해주고 있다고 해도 레오나르도 오스본이 지닌 특유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알았어. 준비할게. 군고구마의 단맛이 남아있음에도 어쩐지 씁쓸해진 입안에 레오는 해리, 뉴트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제들을 먼저 집안으로 들여보내고 자신도 발걸음을 옮기려던 레오는 잠시 멈춰서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는 거의 사그라들어 가는 연기만을 피워올리는 잿더미가 시야에 박혔다.
크리스. 이제는 입 밖으로 내기도 조심스러운 이름을 천천히 곱씹는다. 그 기세를 줄일 줄 모르는 그리움이 심장 한구석을 잔불처럼 태우고 있었다. 이지러진 꿈처럼 감히 잡을 수 없는 추억. 레오는 울컥 치밀어오르는 마음을 삼키고 의식적으로 저택으로 향했다.
세상이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은 레오가 아닌, 레오나르도 오스본이었으므로.
레오베일 #레오나르도오스본은죽기로했다
어, 격조했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찾아와서 미안해.
햎에게도 나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다. 일단 현생 바쁨이 마무리 될 기미가 아직은 보이지 않아서 자주 찾아오지는 못할 것 같아.
그래도 전에 약속했던 것처럼 완결까지는 꼭 달려볼게. 레일비들 모두 좋은 하루 되고, 따스한 가을과 겨울 되길 바라.
색색으로 물든 나무들이 질세라 자신의 자태를 뽐내고, 티 없이 푸른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양 떼처럼 무리 지어 떠다녔다. 후텁지근해서 들이마실 때마다 폐부를 무겁게 짓누르던 공기는 어느새 기분 좋은 청량함으로 가득했다. 레오는 익숙하게 마당에 쌓인 낙엽을 쓸며 콧노래를 불렀다. 그가 이 오두막에서 맞는 두 번째 가을이 깊어 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배워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첫해와는 달리 가벼운 여유가 그의 몸에 배어 만사가 편안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빗자루와 함께 왈츠를 추면 그의 발밑에서 낙엽들이 하늘하늘 떠다녔다.
낙엽 군단을 이끌고 마당 구석으로 향하면 이미 산처럼 가득 쌓인 나뭇잎의 산 앞에 크리스가 서 있었다. 레오의 경쾌한 콧노래에 웃음을 터트린 그가 뒤돌아 레오를 마주 보았다. 왜 이렇게 신이 났어요? 음, 글쎄. 크리스가 너무 예뻐서? 능글맞은 답변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단풍잎처럼 붉게 물든 크리스의 뺨이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레오는 마지막 낙오병들을 낙엽 더미에 밀어 넣고 빗자루를 기대어 놓은 뒤 크리스를 한아름 끌어안았다. 크리스 얼굴이 너무 빨개서 낙엽이랑 구분이 안 되네. 큰일 났어요. 갑작스럽게 덮쳐온 성인 남자의 몸무게에 버티지 못한 크리스가 위태위태하게 비틀거리다가 낙엽 침대 위로 쓰러졌다.
기껏 아침 내내 정리해놓은 것이 모두 허사가 되었지만 둘 다 그런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레오는 바스락거리는 이불 위에서 크리스의 얼굴에 키스를 퍼부었다. 깃털 같은 감촉에 크리스의 입에서 다시 웃음이 터졌다. 레오! 레오! 그만둬요. 간지러워요. 하지만 어린 연인의 장난기는 크리스의 가벼운 만류 정도로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머리가 온통 흐트러지고, 옷에 낙엽이 잔뜩 붙고 나서야 서로 떨어져 하늘을 마주 보고 나란히 누웠다. 너무 깔깔댔더니 숨이 차 폐부가 아파져 올 정도였다. 한참 동안 푸른 허공을 응시하며 숨을 고르던 크리스와 레오는 한 줌 남은 따스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 옆자리의 온기를 즐겼다. 평온한 고요를 깬 것은 둘 중 누구의 배에서 났는지 모를 배곪는 소리였다.
음, 우리 간식 먹을까요? 크리스의 제안을 거절할 리 없는 레오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잇값 못하는 어른 둘은 그제야 비척비척 일어나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안에서 고구마 가져올 테니까 나뭇잎이랑 나뭇가지 좀 저기 가운데 모아줘요. 크리스가 종종걸음으로 오두막에 다녀오는 사이 레오는 명령받은 바에 따라 작은 모닥불을 만들었다. 나뭇가지 안의 수분이 날아가는 소리가 정겹게 들려왔다. 크리스가 호일에 싼 고구마 여러 개를 들고나오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느새 간식을 예감한 바비가 크리스 뒤에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왔다. 그 꼴이 정답고 우스워 레오의 입가에는 어느새 호선이 떠올라 있었다.
바비, 너 고구마 너무 많이 먹어서 살쪘어. 다이어트 좀 해야 해. 레오의 악의 없는 잔소리에 바비는 억울하다는 듯 컹컹 소리를 내며 짖었다. 그게 마치 나름의 논리를 가진 항의처럼 들린다면 너무 오랜 시간을 사회와 떨어져 지낸 탓일까? 크리스는 바비를 달래듯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괜찮아 바비. 내가 레오 몰래 몇 조각 줄게. 크리스, 그러니까 애 버릇이 나빠지는 거예요. 레오와 크리스는 투덕거리며 모닥불 안에 고구마를 던져 넣었다. 열기에 붉게 달아오르는 은박지, 얼굴을 달아오르게 하는 온기, 주고받는 농담 속의 애정. 크리스의 얼굴에 아롱이던 행복.
레오는 서늘한 추위에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두껍게 내린 커튼 사이로 빛이 새어들고 있었다. 넓고 삭막한 방에 긴 그림자가 드리웠다. 꿈이다. 차라리 다시 그 아름다운 환상 속으로 돌아가고 싶어 눈을 감았던 레오는 얼마 후 그 노력이 부질없음을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에 다가갔다. 긴 천을 걷으니 오스본가의 잘 관리된 정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몇 명의 정원사가 수목을 다듬고 땅에 떨어진 낙엽들을 치우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충동이 레오나르도 안에 치밀었다. 그는 급하게 옷을 차려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평소에 발을 들이지 않던 주방에 고개를 들이미니 사용인들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여기 혹시 고구마 있어요? 호일도 같이 필요한데. 사용인들은 멍하니 레오를 쳐다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고구마와 호일을 레오의 품에 안겨주었다. 고마워요. 무엇이 그리 급한지 바람처럼 사라져버린 레오의 등 뒤에서 누군가가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방금 레오 도련님이 우리에게 높임말 쓰신 거야? 모두 긴 실종 이후 그가 변했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이를 직접 경험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라 넋이 나가는 것이 당연했다. 사람들이 놀라건 말건, 레오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를 만류하는 정원사들로부터 갈퀴와 빗자루를 뺏어 들고 정원 한편 외딴곳에 모닥불을 피웠다. 그리고….
그러니까 형은 지금 군고구마나 같이 먹자고 우리를 불러낸 거야? 화를 내야 할지, 걱정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목소리로 뉴트가 아연하게 물었다. 해리는 그 옆에서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모닥불을 낯선 이물질처럼 바라보는 중이었다. 너희들도 해본 적 없잖아. 뭐 어때. 오래 걸리는 일도 아닌데. 나직하되 능청스러운 레오의 말에 두 동생이 한숨을 공유했다. 그들은 서로를 긴 시간 동안 마주 보더니 포기했다는 듯 모닥불 주변에 앉았다. 결벽증이 있는 해리가 터 잡기 전에 세심하게 자리를 고르는 꼴이 제법 우스웠다.
군고구마가 구워지는 동안 세 형제는 딱히 긴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저 간혹 생각나는 주제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나누고, 나머지 시간 동안에는 그저 나란히 타오르는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검게 사그라드는 장작 위에 춤추는 형형색색의 불꽃을 보고 있자니 시간은 금세 어깨 너머로 스쳐 지나갔다. 낯설고 기묘하게 친숙한 시간이었다. 충분히 기다렸다 싶어진 레오는 긴 꼬챙이로 고구마를 한 번씩 찔러 익었는지를 확인하고 경건하게 이를 반으로 갈라 해리와 뉴트에게 배분했다. 처음에는 너무 뜨겁다. 지나치게 탔다. 이게 뭐냐며 투덜거리던 그들은 이내 입을 다물고 군고구마를 호호 불며 씹어먹기에 바빴다. 지나가던 행인이 봤으면 그 오스본가 사람들이 이럴 리 없다고 기함할만한 풍경이었다. 레오는 뉴트와 해리를 바라보며 자신도 고구마를 한입 베어물었다. 어쩐지 목이 메었으나 고구마가 지나치게 뻑뻑했던 탓이리라.
배가 어느 정도 채워지자 따스한 온기에 취한 형제들 사이에 하품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셋이 이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 본 적이 있던가? 여태까지 안 해봤던 일이라고 해서 꼭 나쁜 것만을 아니라고, 그런 느른한 생각이 세 사람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언제나 바쁜 해리가 먼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잘 먹었어. 근데 곧 회의가 있어서 나가봐야겠다. 원래라면 분 단위, 초 단위로 짜여 있는 해리의 일정을 잘 아는 다른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에 유독 바쁘네. 아직 세상 물정에 어두운 레오가 묻자 해리는 짜증을 내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곧 주 대법원 판사 선거가 있잖아. 아버지가 이번에야말로 제레미 베일을 쫓아내고야 말겠다고 칼을 갈고 계셔.
제레미 베일, 법조 명문가인 베일가의 가주이자 14년째 주 대법원 판사로 재임 중인 거물. 그 정도는 레오도 알고 있었다. 성격이 대쪽 같고 엄정하기로 유명해 오스코프의 덤핑이나 반독점법 위반에 대해 상당한 과징금을 부과했던 사실이 가물가물 기억났다. 그때 늙은이 성질머리가 장난 아니었지. 딱히 유쾌한 기억은 아니었던 지라 레오는 떠오르는 이미지를 빠르게 머리에서 지워버렸다.
그리고 형, 그것과 관련해서…. 슬슬 형이 사교계에 나가줘야 할 것 같아. 망설임이 한 줌 담긴 해리의 말에 레오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헤아려보면 벌써 반년 넘게 칩거 중이었으니 생각보다 오래 쉬게 해준 축에 속했다. 오스본가의 규칙은 냉혹했다. 그 이름을 지고 태어난 이상, 주어진 소임을 다해야 했다. 주 대법원 판사 선거에는 많은 로비와 협잡이 필요할 것이 자명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런 뒷수작의 연막을 담당해온 것이 레오가 아니었던가? 현재 뉴트가 어느 정도 그의 역할을 대신해주고 있다고 해도 레오나르도 오스본이 지닌 특유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알았어. 준비할게. 군고구마의 단맛이 남아있음에도 어쩐지 씁쓸해진 입안에 레오는 해리, 뉴트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제들을 먼저 집안으로 들여보내고 자신도 발걸음을 옮기려던 레오는 잠시 멈춰서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는 거의 사그라들어 가는 연기만을 피워올리는 잿더미가 시야에 박혔다.
크리스. 이제는 입 밖으로 내기도 조심스러운 이름을 천천히 곱씹는다. 그 기세를 줄일 줄 모르는 그리움이 심장 한구석을 잔불처럼 태우고 있었다. 이지러진 꿈처럼 감히 잡을 수 없는 추억. 레오는 울컥 치밀어오르는 마음을 삼키고 의식적으로 저택으로 향했다.
세상이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은 레오가 아닌, 레오나르도 오스본이었으므로.
레오베일 #레오나르도오스본은죽기로했다
어, 격조했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찾아와서 미안해.
햎에게도 나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다. 일단 현생 바쁨이 마무리 될 기미가 아직은 보이지 않아서 자주 찾아오지는 못할 것 같아.
그래도 전에 약속했던 것처럼 완결까지는 꼭 달려볼게. 레일비들 모두 좋은 하루 되고, 따스한 가을과 겨울 되길 바라.
https://hygall.com/612377622
[Code: 18bb]
2024.11.25 17:21
ㅇㅇ
센세 와서 너무 좋아 ㅠㅠㅠㅠ 이 가슴벅찬 설렘ㅠㅠ차라리 다시 그 아름다운 환상 속으로 돌아가고 싶어 눈을 감았던 레오는 얼마 후 그 노력이 부질없음을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에 다가갔다.<이거 너무 이해가 잘가서 심란해져버림... 행복하고 소중했던 추억 꿈으로 꾸다가 깨면 다시 꾸고 싶어서 눈감고 다시 떠올리고ㅠㅠㅠㅠㅠ 레오도 계속 크리스와의 시간 회상하는거 넘 가슴 아프다ㅠㅠㅠ 그러다 고용인들 대라는 태도 달라져서 사람들 웅성웅성 하는거 웃김ㅠㅠㅠㅋㅋㅋㅋㅋ 금쪽이 치료사 크리스한테서 단단히 사랑받고 치료된 레오ㅋㅋㅋㅋㅋ
[Code: a783]
댓글 작성 권한이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