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611435007
view 7621
2024.11.16 00:05
보고싶다 - https://hygall.com/610245641 (안봐도됨)
-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허니는 테이블 위에 코스터를 깔고 커피가 담긴 잔을 조심스레 놓았다. 남자는 읽고 있던 신문을 접으며 허니가 편하게 서빙할 수 있게 도왔고 허니는 작은 목소리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고, 서빙을 마친 허니는 카운터 뒤로 갔다.
- 허니. 넌 겁도 없다.
- 겁 먹을 게 뭐 있어요.
동료의 말에 허니는 웃고선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허니가 일하는 카페는 낙후되고 범죄가 끊이지 않는 슬럼가에서 제대로 된 커피를 파는 유일한 가게였다. 오래된 가구와 기기들 덕분에 자연스레 빈티지한 매력을 갖춘 이 카페에는 몇 달째 늘 정해진 시간마다 찾아오는 단골 손님이 있었다. 몇달전이었다면 허니는 그가 말수가 적고 슬럼가 사람답지 않게 팁을 잘 챙겨주시는 평범한 손님이라고 생각했었다.
- 허니. 너 저 사람 누군지 몰라?
- 누구? 단골손님이요?
- 그래! 저 단골손님! 오스카 아이작이잖아.
- 그게... 누군데요?
맹한 얼굴로 되물어보는 허니를 보며 동료는 이마를 짚고선 이 슬럼가과 오스카 아이작의 관계에 대해 허니에게 설명했다.
- 그러니까 이 동네에서 오스카 아이작의 땅을 밟지 않고선 외출할 수가 없다고.
- 그런 돈도 많고 힘도 있는 사람이 왜 여기에 사는 거에요?
- 여긴 경찰들도 피하는 도시잖아. 이 구역에서 저 남자를 건들 수 있는 사람은 없어.
- 아...
- 어휴, 아무 생각없이 웃으면서 서빙할 때부터 알아봤다. 하긴, 너도 여기 온 지 얼마 안됐으니 몰랐겠지.
- 하하
동료의 말에 허니는 웃었다. 허니가 어렸을 때부터 편찮았던 어머니가 긴 투병생활 끝에 눈을 감자 허니에게 남은 건 막대한 빚으로 변해버린 병원비였다. 어머니와 같이 살던 집을 팔았지만 절반 밖에 충당되지 않았고 이자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허니는 이 슬럼가에 맨 몸으로 들어와 고군분투하는 중이었다. 갱단보다 빚독촉 편지가 무서웠던 허니는 그래서 손님이 팁을 두둑하게 주셨구나 하는 생각만 할 뿐이었다.
- 허니.
- 네? 아, 제가 주문받으러 갈게요.
문제의 그 단골손님, 오스카 아이작이 호출하자 허니는 손의 물기를 앞치마에 닦고선 주문지를 챙겨 그의 테이블로 다가갔다.
- 에스프레소 한 잔.
- 에스프레소 한 잔. 알겠습니다. 곧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주문을 확인한 허니는 습관적으로 미소지었고 오스카는 시선을 내린 채 고개만 끄덕였다. 주문을 받고 돌아가는 허니는 알 수 없었다. 그녀의 발걸음을 반박자 늦게 따라가고 있는 손님의 시선을.
- 아...!
바닥에 떨어지며 하나둘씩 깨진 접시들의 파열음이 들렸을 때 허니는 양 팔을 바닥에 짚고서 넘어진 상태였다. 허니는 눈을 몇번 깜빡이고선 주변에 엉망으로 튄 음식과 접시의 조각들을 봤고 무릎과 손목에서 천천히 올라오는 통증을 느꼈다. 잠깐 몸에 힘이 빠진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균형을 잃고 처참히 넘어진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 허니, 괜찮아?
- 괜찮아요. 그냥 넘어졌어요. 죄송합니다.
카운터 쪽에서 그녀를 걱정하는 동료의 목소리에 허니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몸은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엉망이 된 바닥은 괜찮치 않아 치우는데 고생하겠다고 생각했다. 이래서 야간 연장근무를 서는 게 아니었는데. 허니는 오후 6시 카페 근무가 끝나면 8시부터 호텔에서 4시간짜리 파트타임을 뛰었다. 어제 달랐던 점은 일을 끝내기 전 호텔 매니저가 그녀에게 연장근무를 요청했고 늦게 일을 마친 허니는 집에서 3시간도 자지 못하고서 카페에 나와 일을 하던 중이었다. 몇푼 더 벌자고 이렇게 크게 사고를 치다니 허니의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언제까지 바닥에 누워있을 순 없었기에 피곤한 몸을 일으키려는데 누군가가 허니에게 손을 내밀었다.
- 위험하니까 내 손 잡고 일어나요.
바로 옆에서 차를 커피를 마시던 오스카가 언제 다가왔는지 허니에게 손을 내밀었다. 허니가 오스카의 손을 잡자 오스카는 허니의 팔을 잡고 그녀를 일으켜세웠다.
- 감사합니다.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얼른 치워드리... 어?
허니의 시선이 오스카의 발 쪽을 향했고 오스카도 그녀를 따라 시선을 따라가다 자신의 바지에 튄 커피얼룩을 발견했다.
- 넘어지면서 튀었나봐요. 제가 어떻게든 변상할게요. 죄송합니다.
- 옷은 신경쓰지 말아요.
- 제가 실수해서 옷을 버리셨는데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당황한 듯 허니의 얼굴은 점점 붉어졌고, 허니는 오스카와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선 죄송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 허니
-네, 네?
- 옷은. 신경쓰지 않아도 돼요. 나에게 더이상 사과하지도 말고. 당신이 날 불편하게 여기면 이 카페에서 내 주문을 받아줄 사람도 없으니까.
- 하지만...
- 당신이 나에게 어떤 미안함이나 부담감을 가지지 않았으면 해요.
눈을 맞추며 느리고 부드럽게 말해오는 오스카를 보며 허니는 제멋대로 뛰는 가슴을 조금씩 진정시킬 수 있었다.
- 그러면 제가 커피 한 잔은 대접할 수 있게 해주세요, 늘 드시던 에스프레소로 준비할 테니까. 이거라도 받아주시면 제가 편할 것 같아요.
- 좋아요.
오스카의 승낙이 떨어지자 허니는 잠시만 기다려달란 말과 함께 웃어보이고선 커피를 내리기 위해 카운터로 향했다.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동안 허니는 단골손님이 남을 배려하고 친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따로 말을 섞어본 적이 없어 허니에게 무관심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었단 사실에 조금은 가까워진 것 같았다.
오스카가 카페에서 나와 건물 모퉁이를 돌자 그를 기다리던 수행원과 차가 보였다. 수행원이 문을 열자 오스카는 뒷좌석에 앉았고 차는 부드럽게 출발했다.
- 세탁을 맡겨야겠어. 얼룩이 안지워지면... 똑같은 옷으로 구해놔.
-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여기.
앞좌석의 수행원이 몸을 돌려 오스카에게 서류봉투를 하나 건넸고, 오스카는 서류봉투에서 서류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서류의 위에는 신원확인결과란 말이 쓰여있었고 아래줄에는 허니 비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서류로 정리된 허니의 길지 않은 인생은 흔한 슬럼가의 사람들과 다를 게 없었다. 그마나 있던 재산은 어머니의 간병비로 쏟아붓고 기댈 곳 하나 없이 이 마을에 정착한 어린 여자. 생활비와 빚의 이자만 꼬박꼬박 갚는데 그녀의 인생이 소비되고 있었다. 몇년, 몇십년이 흘러도 그녀의 인생은 지금과 똑같을 것이다.
- 맛있게 드세요. 그리고 이건... 제가 드리는 서비스에요.
하지만 허니는 보고서에 쓰여진 빚을 갚느라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어린 여자와 다른 사람같았다. 허니는 그녀의 상황에 대해 초연해보였다. 얼굴에는 음울한 그림자 대신 이른 봄의 햇빛같은 웃음이 서려있었고 특유의 음율이 느껴지는 그녀의 말소리에는 묘한 안정감이 있어 그녀가 딛고 있는 주변은 단단하고 평화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오스카는 그녀의 영역 안에 머물고 싶었다.
오스카는 인정하기로 했다. 허니에 대한 감정이 호감이든, 사랑이든, 집착이든 간에 그녀를 원하고 있음을. 허니가 그의 인생에 단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평온을 가져올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 안에 오스카를 위한 자리가 있을까. 같은 도시에 살고 있지만 오스카와 허니는 너무나도 다른 부류의 사람이었다. 오스카 아이작은 갱단이고, 범법자고, 이 더럽고 비참한 영혼들만 몰려드는 지옥 같은 슬럼가의 주인이었다. 허니가 왜 아이작을 사랑해야하지? 그를 사랑할 이유는 없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정해진 결말에 오스카는 슬퍼하고 하루에도 몇번씩 치밀어오르는 자기혐오에 괴로워했지만 그 순간에도 허니를 찾게 되어 오스카가 허니 곁을 맴도는 시간은 늘어만 갔다.
- 사람을 잘못보신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지금 하신 말씀은 못들은 걸로 할게요.
- ......
한번도 본 적 없는, 경멸스럽다는 표정을 지은 허니는 오스카의 희망을 짓밟고선 돌아섰다. 오스카는 허니에게 거부당했다. 오스카는 멀어져가는 허니를 잡지도, 따라가지도 못한 채 가만히 서서 허니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어쩌면 그녀가 승낙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허니는 어제 한차례 빚독촉을 받았고, 호텔에서 밤을 새우며 연장근무를 했으며, 이른 새벽 길거리에서 오스카와 마주쳤을 때 반가운 듯 웃어보였으니까. 조금 잠긴 목소리로 반갑게 인사하는 허니를 봤을 때 오스카는 예정에 없던 제안을 했다. 흔히 슬럼가에서 돈있고 힘있는 사람들이 붙어먹고 싶은 상대에게 할 법한 제안을. 그건 순전히 충동적이었다. 오스카는 허니와 같이 하고 싶었고 허니가 고생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으며 오스카에겐 그럴 힘과 재력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제안을 들은 허니는 처음에 혼란스러워보였고 조금은 슬퍼했으며 곧 분노하며 오스카를 떠나갔다.
그럼에도 오스카는 허니가 밉다거나 싫어지진 않았다. 그저 자신이 성급하게 움직여서 그런거라고 생각했다. 이 더러운 골목에서 일하면서 제안이라면 수백번, 수천번씩한 그였는데 미숙한 실수를 하다니. 오스카는 실패를 인정하고 계획을 짜기로 했다. 그가 잘하는 방식으로, 그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금요일 오후 3시. 허니는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오후 3시의 집은 이렇게 조용하고 평화롭다는 걸 허니는 처음 알았다. 슬럼가에 온 이후로 허니는 시간이 남는대로 일을 하러 다녔고 해가 떠있을 때 그녀는 항상 집 밖에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허니의 휴대폰에 찍힌 가장 최근의 메시지는 그녀가 일을 다녔던 호텔과 카페에서 온 해고 문자였다. 그리고 4시간 전에는 계약 때 얼굴 한번 본 게 다였던 집주인이 찾아와 일주일 안에 집을 비워달라고 했다. 허니는 집주인의 주장이 부당하다고 했지만 슬럼가에서 권리와 부당함을 논하는 사람은 허니 밖에 없을 거라며 집주인은 코웃음을 치고 사라졌다. 그래서 지금 허니는 모든 걸 포기한 채 침대에 누워있다.
- 오스카 아이작.
그녀는 동료의 말을 들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오스카의 눈에 띄지 말아야 했고 그를 경계하고 무서워해야만 했다. 눈물이 나오진 않았다. 받아들이기엔 영화같은 일들이 허니에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종일 누워있던 허니는 몸을 일으켰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이자를 납부해야할 기일이 다가오고 있었고 이 동네에서 그녀가 일을 해서 돈을 벌긴 어려워 보였다. 오스카의 땅을 밟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이 동네를 떠나야 했다. 그래서 허니는 오랫동안 처박아뒀던 캐리어를 꺼내고선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둘씩 넣기 시작했다.
허리 높이까지 오는 캐리어를 끌고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허니는 간판에 쓰여진 여러 행선지를 보았다. 그래도 슬럼가에서 버틴 경험이 생긴 덕분인지 어디로 가도 괜찮을 것 같았기에 허니는 창구로 가서 생소한 도시의 이름을 말했다.
표를 구해서 버스에 올랐지만 허니는 도시를 떠나지 못했다. 출발예정시간이 지나 나타난 버스기사가 허니의 표에 문제가 있어 버스를 탈 수 없다고 말했고, 그녀의 캐리어는 버스짐칸에서 꺼내져 플랫폼 위에 덩그러니 놓여져있었다. 허니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버스의 문은 닫혔고 예정된 행선지로 떠나갔다.
- 발권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여기 표값을 환불해드리겠습니다.
창구로 돌아가자 접수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허니의 돈을 돌려줬다.
- 그럼 다른 버스표를 살게요. 20분 뒤에 출발하는...
- 죄송하지만 손님께는 표를 판매할 수 없습니다.
- ...왜요?
- 죄송합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 일 뿐이었다. 접수원은 허니를 더 상대하지 않겠다는 듯 허니의 뒤에 있던 손님을 불렀고 허니는 옆으로 비켜서서 뒷사람이 버스표를 구입하는 것을 바라봤다. 표는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허니였다. 이 우중충한 도시는, 오스카 아이작은 허니가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허탈해진 허니는 캐리어를 끌고 벤치에 앉았다. 이미 시간이 늦어 행선지의 마지막 버스들이 출발하기 시작했고 버스터미널의 조명도 하나둘씩 꺼져갔다. 그렇게 이 도시를 벗어나려는 그녀의 의지도 하나둘씩 사라져갔다. 버스터미널의 마지막 조명이 꺼지고 나서야 허니는 캐리어를 끌고 집으로 향했다.
다시는 올 일이 없을 것 같던 아파트의 계단을 올라 잠긴 현관문을 열자 주인없는 집 안에 조명들이 환하게 켜져있었다. 어쩌면 이 아파트도 오스카 아이작의 땅 위에 올라가 있는지도 모르지. 허니는 캐리어를 옆에 두고선 안 쪽으로 걸어갔고 곧 거실 소파에 있는 오스카와 만날 수 있었다.
- 생각보다 늦어서 걱정했어요. 밖의 날씨가 추웠을텐데.
- 제가 어디서 뭘 하는지 다 알잖아요.
- 다 알죠. 이 도시 안에서라면.
- 저한테 왜이러는 거에요?
- 당신한테 관심이 있는데 내가 아는 방법이 이 것밖에 없어서.
-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어도 몸을 팔진 않아요.
- 그냥 옆에 있어달라는 거에요.
- 그냥 옆에만 있는데 그 돈을 주겠다구요? 날 바보취급하지 말아요!
허니의 입에서 큰 소리가 나왔고 그녀의 몸은 분노로 조금씩 떨렸다.
- 내가 당신을 바보취급을 하든 안하든 달라질 게 뭐가 있죠?
그리고 허니의 반대편에는 메마른 목소리의 오스카가 서 있었다.
- 허니, 납부일이 다가오고 있어요. 이번에 어떻게 잘 넘긴다고 해도 한달 뒤면? 또 납부일이죠.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버틸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늘 스스로에게 물어봤을 질문이니까 답을 알잖아요.
- ....
허를 찌르는 오스카의 말에 허니는 입을 뗄 수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심장을 뜯으며 자리를 지켜왔던 오스카에게 아직 어리고 연약한 허니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날 사랑하는 척이라도... 하다못해 날 불쌍하다고 동정이라도 하면 이 지옥같은 도시에서 당신 하나만은 구원받을 수 있겠죠. 그것마저 못 견딜 정도로 내가 싫은 건가요?
- ......
- 난 허니를 바보취급한 적 없어요. 이 바보같고 멍청한 계약서를 만들어서라도 당신과 엮이고 싶어서 안달난 미친놈은 나니까.
차분하고 이성적인 목소리와 다르게 오스카의 눈에는 눈물이 차올라 하나둘씩 그의 볼을 타고 떨어지기 시작했다. 허니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눈물을 닦으려 했지만 곧 손을 등 뒤로 감추었다.
- 그래도 망설여진다면 내가 결정하기 쉽게 만들어줄게요.
오스카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고선 차분하게 말했다.
- 당신이 5분 내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지 않는다면 한 시간 뒤 이 아파트에서는 화재가 날 거에요. 이파트의 모든 걸 태우고 화재가 진화될 무렵 이 곳에는 당신과 비슷한 체형의 불에 탄 시신 한구만 놓여있겠죠. 사망처리는 생각보다 간단하니까.
- 날 어떻게 할 셈이죠?
- 글쎄요, 내 집은 넓고, 방이 많고, 누구도 쉽게 들어올 수 없으니까. 여자 한명 늘어난다고 해도 신경쓸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요.
- ......
- 당신 옆에 나밖에 없다면... 당신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 또한 나밖에 없다는 걸 깨닫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오스카는 여태껏 자신이 무너뜨렸던 상대에게 했던 것처럼 여유있게 웃어보이려 했지만 허니 앞에서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억지로 올린 입꼬리와 달리 다시 나오려는 눈물을 참기 위해 그는 이를 깨물어야했다. 오스카 아이작은 허니 비를 갖게 되겠지만 허니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것처럼 그를 미워하고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오스카는 후회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가 살아온 방식이고, 자신을 제발 사랑해달라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는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으니까.
자낮한 오작이 너~~무 맛있다!
오작너붕붕
-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허니는 테이블 위에 코스터를 깔고 커피가 담긴 잔을 조심스레 놓았다. 남자는 읽고 있던 신문을 접으며 허니가 편하게 서빙할 수 있게 도왔고 허니는 작은 목소리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고, 서빙을 마친 허니는 카운터 뒤로 갔다.
- 허니. 넌 겁도 없다.
- 겁 먹을 게 뭐 있어요.
동료의 말에 허니는 웃고선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허니가 일하는 카페는 낙후되고 범죄가 끊이지 않는 슬럼가에서 제대로 된 커피를 파는 유일한 가게였다. 오래된 가구와 기기들 덕분에 자연스레 빈티지한 매력을 갖춘 이 카페에는 몇 달째 늘 정해진 시간마다 찾아오는 단골 손님이 있었다. 몇달전이었다면 허니는 그가 말수가 적고 슬럼가 사람답지 않게 팁을 잘 챙겨주시는 평범한 손님이라고 생각했었다.
- 허니. 너 저 사람 누군지 몰라?
- 누구? 단골손님이요?
- 그래! 저 단골손님! 오스카 아이작이잖아.
- 그게... 누군데요?
맹한 얼굴로 되물어보는 허니를 보며 동료는 이마를 짚고선 이 슬럼가과 오스카 아이작의 관계에 대해 허니에게 설명했다.
- 그러니까 이 동네에서 오스카 아이작의 땅을 밟지 않고선 외출할 수가 없다고.
- 그런 돈도 많고 힘도 있는 사람이 왜 여기에 사는 거에요?
- 여긴 경찰들도 피하는 도시잖아. 이 구역에서 저 남자를 건들 수 있는 사람은 없어.
- 아...
- 어휴, 아무 생각없이 웃으면서 서빙할 때부터 알아봤다. 하긴, 너도 여기 온 지 얼마 안됐으니 몰랐겠지.
- 하하
동료의 말에 허니는 웃었다. 허니가 어렸을 때부터 편찮았던 어머니가 긴 투병생활 끝에 눈을 감자 허니에게 남은 건 막대한 빚으로 변해버린 병원비였다. 어머니와 같이 살던 집을 팔았지만 절반 밖에 충당되지 않았고 이자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허니는 이 슬럼가에 맨 몸으로 들어와 고군분투하는 중이었다. 갱단보다 빚독촉 편지가 무서웠던 허니는 그래서 손님이 팁을 두둑하게 주셨구나 하는 생각만 할 뿐이었다.
- 허니.
- 네? 아, 제가 주문받으러 갈게요.
문제의 그 단골손님, 오스카 아이작이 호출하자 허니는 손의 물기를 앞치마에 닦고선 주문지를 챙겨 그의 테이블로 다가갔다.
- 에스프레소 한 잔.
- 에스프레소 한 잔. 알겠습니다. 곧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주문을 확인한 허니는 습관적으로 미소지었고 오스카는 시선을 내린 채 고개만 끄덕였다. 주문을 받고 돌아가는 허니는 알 수 없었다. 그녀의 발걸음을 반박자 늦게 따라가고 있는 손님의 시선을.
- 아...!
바닥에 떨어지며 하나둘씩 깨진 접시들의 파열음이 들렸을 때 허니는 양 팔을 바닥에 짚고서 넘어진 상태였다. 허니는 눈을 몇번 깜빡이고선 주변에 엉망으로 튄 음식과 접시의 조각들을 봤고 무릎과 손목에서 천천히 올라오는 통증을 느꼈다. 잠깐 몸에 힘이 빠진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균형을 잃고 처참히 넘어진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 허니, 괜찮아?
- 괜찮아요. 그냥 넘어졌어요. 죄송합니다.
카운터 쪽에서 그녀를 걱정하는 동료의 목소리에 허니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몸은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엉망이 된 바닥은 괜찮치 않아 치우는데 고생하겠다고 생각했다. 이래서 야간 연장근무를 서는 게 아니었는데. 허니는 오후 6시 카페 근무가 끝나면 8시부터 호텔에서 4시간짜리 파트타임을 뛰었다. 어제 달랐던 점은 일을 끝내기 전 호텔 매니저가 그녀에게 연장근무를 요청했고 늦게 일을 마친 허니는 집에서 3시간도 자지 못하고서 카페에 나와 일을 하던 중이었다. 몇푼 더 벌자고 이렇게 크게 사고를 치다니 허니의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언제까지 바닥에 누워있을 순 없었기에 피곤한 몸을 일으키려는데 누군가가 허니에게 손을 내밀었다.
- 위험하니까 내 손 잡고 일어나요.
바로 옆에서 차를 커피를 마시던 오스카가 언제 다가왔는지 허니에게 손을 내밀었다. 허니가 오스카의 손을 잡자 오스카는 허니의 팔을 잡고 그녀를 일으켜세웠다.
- 감사합니다.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얼른 치워드리... 어?
허니의 시선이 오스카의 발 쪽을 향했고 오스카도 그녀를 따라 시선을 따라가다 자신의 바지에 튄 커피얼룩을 발견했다.
- 넘어지면서 튀었나봐요. 제가 어떻게든 변상할게요. 죄송합니다.
- 옷은 신경쓰지 말아요.
- 제가 실수해서 옷을 버리셨는데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당황한 듯 허니의 얼굴은 점점 붉어졌고, 허니는 오스카와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선 죄송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 허니
-네, 네?
- 옷은. 신경쓰지 않아도 돼요. 나에게 더이상 사과하지도 말고. 당신이 날 불편하게 여기면 이 카페에서 내 주문을 받아줄 사람도 없으니까.
- 하지만...
- 당신이 나에게 어떤 미안함이나 부담감을 가지지 않았으면 해요.
눈을 맞추며 느리고 부드럽게 말해오는 오스카를 보며 허니는 제멋대로 뛰는 가슴을 조금씩 진정시킬 수 있었다.
- 그러면 제가 커피 한 잔은 대접할 수 있게 해주세요, 늘 드시던 에스프레소로 준비할 테니까. 이거라도 받아주시면 제가 편할 것 같아요.
- 좋아요.
오스카의 승낙이 떨어지자 허니는 잠시만 기다려달란 말과 함께 웃어보이고선 커피를 내리기 위해 카운터로 향했다.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동안 허니는 단골손님이 남을 배려하고 친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따로 말을 섞어본 적이 없어 허니에게 무관심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었단 사실에 조금은 가까워진 것 같았다.
오스카가 카페에서 나와 건물 모퉁이를 돌자 그를 기다리던 수행원과 차가 보였다. 수행원이 문을 열자 오스카는 뒷좌석에 앉았고 차는 부드럽게 출발했다.
- 세탁을 맡겨야겠어. 얼룩이 안지워지면... 똑같은 옷으로 구해놔.
-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여기.
앞좌석의 수행원이 몸을 돌려 오스카에게 서류봉투를 하나 건넸고, 오스카는 서류봉투에서 서류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서류의 위에는 신원확인결과란 말이 쓰여있었고 아래줄에는 허니 비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서류로 정리된 허니의 길지 않은 인생은 흔한 슬럼가의 사람들과 다를 게 없었다. 그마나 있던 재산은 어머니의 간병비로 쏟아붓고 기댈 곳 하나 없이 이 마을에 정착한 어린 여자. 생활비와 빚의 이자만 꼬박꼬박 갚는데 그녀의 인생이 소비되고 있었다. 몇년, 몇십년이 흘러도 그녀의 인생은 지금과 똑같을 것이다.
- 맛있게 드세요. 그리고 이건... 제가 드리는 서비스에요.
하지만 허니는 보고서에 쓰여진 빚을 갚느라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어린 여자와 다른 사람같았다. 허니는 그녀의 상황에 대해 초연해보였다. 얼굴에는 음울한 그림자 대신 이른 봄의 햇빛같은 웃음이 서려있었고 특유의 음율이 느껴지는 그녀의 말소리에는 묘한 안정감이 있어 그녀가 딛고 있는 주변은 단단하고 평화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오스카는 그녀의 영역 안에 머물고 싶었다.
오스카는 인정하기로 했다. 허니에 대한 감정이 호감이든, 사랑이든, 집착이든 간에 그녀를 원하고 있음을. 허니가 그의 인생에 단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평온을 가져올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 안에 오스카를 위한 자리가 있을까. 같은 도시에 살고 있지만 오스카와 허니는 너무나도 다른 부류의 사람이었다. 오스카 아이작은 갱단이고, 범법자고, 이 더럽고 비참한 영혼들만 몰려드는 지옥 같은 슬럼가의 주인이었다. 허니가 왜 아이작을 사랑해야하지? 그를 사랑할 이유는 없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정해진 결말에 오스카는 슬퍼하고 하루에도 몇번씩 치밀어오르는 자기혐오에 괴로워했지만 그 순간에도 허니를 찾게 되어 오스카가 허니 곁을 맴도는 시간은 늘어만 갔다.
- 사람을 잘못보신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지금 하신 말씀은 못들은 걸로 할게요.
- ......
한번도 본 적 없는, 경멸스럽다는 표정을 지은 허니는 오스카의 희망을 짓밟고선 돌아섰다. 오스카는 허니에게 거부당했다. 오스카는 멀어져가는 허니를 잡지도, 따라가지도 못한 채 가만히 서서 허니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어쩌면 그녀가 승낙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허니는 어제 한차례 빚독촉을 받았고, 호텔에서 밤을 새우며 연장근무를 했으며, 이른 새벽 길거리에서 오스카와 마주쳤을 때 반가운 듯 웃어보였으니까. 조금 잠긴 목소리로 반갑게 인사하는 허니를 봤을 때 오스카는 예정에 없던 제안을 했다. 흔히 슬럼가에서 돈있고 힘있는 사람들이 붙어먹고 싶은 상대에게 할 법한 제안을. 그건 순전히 충동적이었다. 오스카는 허니와 같이 하고 싶었고 허니가 고생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으며 오스카에겐 그럴 힘과 재력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제안을 들은 허니는 처음에 혼란스러워보였고 조금은 슬퍼했으며 곧 분노하며 오스카를 떠나갔다.
그럼에도 오스카는 허니가 밉다거나 싫어지진 않았다. 그저 자신이 성급하게 움직여서 그런거라고 생각했다. 이 더러운 골목에서 일하면서 제안이라면 수백번, 수천번씩한 그였는데 미숙한 실수를 하다니. 오스카는 실패를 인정하고 계획을 짜기로 했다. 그가 잘하는 방식으로, 그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금요일 오후 3시. 허니는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오후 3시의 집은 이렇게 조용하고 평화롭다는 걸 허니는 처음 알았다. 슬럼가에 온 이후로 허니는 시간이 남는대로 일을 하러 다녔고 해가 떠있을 때 그녀는 항상 집 밖에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허니의 휴대폰에 찍힌 가장 최근의 메시지는 그녀가 일을 다녔던 호텔과 카페에서 온 해고 문자였다. 그리고 4시간 전에는 계약 때 얼굴 한번 본 게 다였던 집주인이 찾아와 일주일 안에 집을 비워달라고 했다. 허니는 집주인의 주장이 부당하다고 했지만 슬럼가에서 권리와 부당함을 논하는 사람은 허니 밖에 없을 거라며 집주인은 코웃음을 치고 사라졌다. 그래서 지금 허니는 모든 걸 포기한 채 침대에 누워있다.
- 오스카 아이작.
그녀는 동료의 말을 들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오스카의 눈에 띄지 말아야 했고 그를 경계하고 무서워해야만 했다. 눈물이 나오진 않았다. 받아들이기엔 영화같은 일들이 허니에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종일 누워있던 허니는 몸을 일으켰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이자를 납부해야할 기일이 다가오고 있었고 이 동네에서 그녀가 일을 해서 돈을 벌긴 어려워 보였다. 오스카의 땅을 밟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이 동네를 떠나야 했다. 그래서 허니는 오랫동안 처박아뒀던 캐리어를 꺼내고선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둘씩 넣기 시작했다.
허리 높이까지 오는 캐리어를 끌고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허니는 간판에 쓰여진 여러 행선지를 보았다. 그래도 슬럼가에서 버틴 경험이 생긴 덕분인지 어디로 가도 괜찮을 것 같았기에 허니는 창구로 가서 생소한 도시의 이름을 말했다.
표를 구해서 버스에 올랐지만 허니는 도시를 떠나지 못했다. 출발예정시간이 지나 나타난 버스기사가 허니의 표에 문제가 있어 버스를 탈 수 없다고 말했고, 그녀의 캐리어는 버스짐칸에서 꺼내져 플랫폼 위에 덩그러니 놓여져있었다. 허니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버스의 문은 닫혔고 예정된 행선지로 떠나갔다.
- 발권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여기 표값을 환불해드리겠습니다.
창구로 돌아가자 접수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허니의 돈을 돌려줬다.
- 그럼 다른 버스표를 살게요. 20분 뒤에 출발하는...
- 죄송하지만 손님께는 표를 판매할 수 없습니다.
- ...왜요?
- 죄송합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 일 뿐이었다. 접수원은 허니를 더 상대하지 않겠다는 듯 허니의 뒤에 있던 손님을 불렀고 허니는 옆으로 비켜서서 뒷사람이 버스표를 구입하는 것을 바라봤다. 표는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허니였다. 이 우중충한 도시는, 오스카 아이작은 허니가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허탈해진 허니는 캐리어를 끌고 벤치에 앉았다. 이미 시간이 늦어 행선지의 마지막 버스들이 출발하기 시작했고 버스터미널의 조명도 하나둘씩 꺼져갔다. 그렇게 이 도시를 벗어나려는 그녀의 의지도 하나둘씩 사라져갔다. 버스터미널의 마지막 조명이 꺼지고 나서야 허니는 캐리어를 끌고 집으로 향했다.
다시는 올 일이 없을 것 같던 아파트의 계단을 올라 잠긴 현관문을 열자 주인없는 집 안에 조명들이 환하게 켜져있었다. 어쩌면 이 아파트도 오스카 아이작의 땅 위에 올라가 있는지도 모르지. 허니는 캐리어를 옆에 두고선 안 쪽으로 걸어갔고 곧 거실 소파에 있는 오스카와 만날 수 있었다.
- 생각보다 늦어서 걱정했어요. 밖의 날씨가 추웠을텐데.
- 제가 어디서 뭘 하는지 다 알잖아요.
- 다 알죠. 이 도시 안에서라면.
- 저한테 왜이러는 거에요?
- 당신한테 관심이 있는데 내가 아는 방법이 이 것밖에 없어서.
- 아무리 먹고 살기 힘들어도 몸을 팔진 않아요.
- 그냥 옆에 있어달라는 거에요.
- 그냥 옆에만 있는데 그 돈을 주겠다구요? 날 바보취급하지 말아요!
허니의 입에서 큰 소리가 나왔고 그녀의 몸은 분노로 조금씩 떨렸다.
- 내가 당신을 바보취급을 하든 안하든 달라질 게 뭐가 있죠?
그리고 허니의 반대편에는 메마른 목소리의 오스카가 서 있었다.
- 허니, 납부일이 다가오고 있어요. 이번에 어떻게 잘 넘긴다고 해도 한달 뒤면? 또 납부일이죠.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버틸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늘 스스로에게 물어봤을 질문이니까 답을 알잖아요.
- ....
허를 찌르는 오스카의 말에 허니는 입을 뗄 수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심장을 뜯으며 자리를 지켜왔던 오스카에게 아직 어리고 연약한 허니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날 사랑하는 척이라도... 하다못해 날 불쌍하다고 동정이라도 하면 이 지옥같은 도시에서 당신 하나만은 구원받을 수 있겠죠. 그것마저 못 견딜 정도로 내가 싫은 건가요?
- ......
- 난 허니를 바보취급한 적 없어요. 이 바보같고 멍청한 계약서를 만들어서라도 당신과 엮이고 싶어서 안달난 미친놈은 나니까.
차분하고 이성적인 목소리와 다르게 오스카의 눈에는 눈물이 차올라 하나둘씩 그의 볼을 타고 떨어지기 시작했다. 허니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눈물을 닦으려 했지만 곧 손을 등 뒤로 감추었다.
- 그래도 망설여진다면 내가 결정하기 쉽게 만들어줄게요.
오스카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고선 차분하게 말했다.
- 당신이 5분 내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지 않는다면 한 시간 뒤 이 아파트에서는 화재가 날 거에요. 이파트의 모든 걸 태우고 화재가 진화될 무렵 이 곳에는 당신과 비슷한 체형의 불에 탄 시신 한구만 놓여있겠죠. 사망처리는 생각보다 간단하니까.
- 날 어떻게 할 셈이죠?
- 글쎄요, 내 집은 넓고, 방이 많고, 누구도 쉽게 들어올 수 없으니까. 여자 한명 늘어난다고 해도 신경쓸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요.
- ......
- 당신 옆에 나밖에 없다면... 당신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 또한 나밖에 없다는 걸 깨닫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오스카는 여태껏 자신이 무너뜨렸던 상대에게 했던 것처럼 여유있게 웃어보이려 했지만 허니 앞에서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억지로 올린 입꼬리와 달리 다시 나오려는 눈물을 참기 위해 그는 이를 깨물어야했다. 오스카 아이작은 허니 비를 갖게 되겠지만 허니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것처럼 그를 미워하고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오스카는 후회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가 살아온 방식이고, 자신을 제발 사랑해달라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는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으니까.
자낮한 오작이 너~~무 맛있다!
오작너붕붕
https://hygall.com/611435007
[Code: d5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