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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0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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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아웃은 비록 제발로 들어온 디셉티콘의 신입이긴 했으나, 메가트론의 사상에 완벽하게 찬동하는 것은 아니였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벨로시트론에서 즐길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레이싱에 참가해봤고, 벨로시트로니안이 즐길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자극을 즐기고 난 뒤라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때 때맞춰 들려온 사이버트론 출신의 디셉티콘이란 조직이 힘으로 행성들을 평정하기 시작했다는 소문에 흥미가 동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갔다고나 할까. 힘으로 평정하는 평화라니, 그 자체로 이율배반적이지 않은가. 그들은 순수한 힘으로 권력을 추구하며, 순수한 힘으로 평화를 얻어내겠다는 말도 안되는 방법으로 꽤 많은 행성을 그의 아래에 두었다. 누군가에게 메가트론은 평화를 깨고 등장한 폭군이였고 학살자였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에겐 썩어가는 사회를 파괴해준 고마운 구세주였다. 그에 대한 평가는 계층에 따라 천지차이를 오갔다.
자극을 좋아하는 벨로시트론 출신으로서, 그를 재미있어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물론 디셉티콘은 사이버트로니안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조직인데다가, 듣기론 외부메크에겐 꽤나 배척적이라고 들었다. 게다가 우주를 정복하고 다니는 조직이 디셉티콘 모집이라는 포스터를 붙이고 다닐리도 없었으므로, 난 그들의 발자취를 쫒아가는 수 밖에 없었다. 혼자 다니기는 싫어 조수이자 친구인 브레이크다운을 설득해(설득이랄것도 없었다. '나 디셉티콘에 들어갈건데 너도 갈래?' '응.' 이게 대화의 전부였으니까.) 함께 디셉티콘의 발자취를 쫒아다녔다. 그러다가 겨우 그들을 만난 한 행성에서 난 당돌하게도 메가트론에게 날 디셉티콘에 들여보내달라 요청했다.
"저는 벨로시트론의 의사입니다, 메가트론 경. 이쪽은 저의 조수 브레이크다운, 저는 넉아웃이라고 합니다. 저를 공격하시기 전에, 일단은 디셉티콘에 제대로 된 의사가 필요하시지 않습니까?"
난 부상입은 동체 위에 개조를 덧붙여 해결한 듯한 꽤 많은 수의 디셉티콘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에 제대로 된 의사가 있는 줄은 몰랐군."
순식간에 내 실력을 의심받았으나 그 말을 하는 목소리에 비아냥도 조롱의 기색도 없이 순수한 의문만 묻어나 모욕감을 느낄 수도 없었다. 그도 그럴게, 외부인들에게 벨로시트론은 그저 레이싱에 미쳐 모든걸 레이싱으로 결정하는 행성이었다. 뭐, 아주 틀린 사실도 아니지만 내 의학지식은 오랜시간 공들여 쌓아온 것이므로 그가 어떤 선입견이 있든 난 자신이 있었다. 브레이크다운은 의사는 아니었지만 날 보조하기엔 충분했고 게다가 그의 큰 덩치와 힘은 중요한 전력이 아닐 수가 없었다.
"절 들여보내신다면 제 실력을 의심하실 일은 없을 겁니다."
메가트론이 턱짓하자 사운드웨이브가 날 스캔해보고는 "사실 확인." 이라고 짧은 인증을 해주었다. 스타스크림이 "그냥 자기가 그런줄 아는거지 그게 진짜라는 증거는 아니잖아"라고 투덜거렸지만 메가트론은 다행히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우리가 사이버트론의 안위만을 위해 일한다는 것을 알텐데, 외부자가 왜 들어오려고 하는거지?"
그러십니까, 내 눈앞에는 힘에 도취해 우주를 손에 넣고 싶어하는 파괴대제가 보이는데요. 아, 사운드웨이브가 마음을 읽을 수 있으니 이런 속마음은 좀 감춰야겠군.
"벨로시트로니안은 사이버트론과 교류가 끊긴지 시간이 좀 지나긴 했으나 근본적으로 따라가보자면 사이버트론 아래 복속된 행성 중 하나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저도 사이버트로니안인 셈이죠."
메가트론은 순식간에 내 모행성을 가져다 버리는 내 태도를 흥미로워하더니, 날 내려다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허가하마."
"실망시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절대 후회하시지 않을 겁니다."
잔혹한 자이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메크는 흥미로워한다는 이야기가 사실이었는지, 나와 브레이크다운은 그렇게 디셉티콘 최초의 비사이버트론 출신의 디셉티콘이 되었다.
디셉티콘아래 일하는건 꽤 재미있었다. 우리가 아무나 학살하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필요에 따라 앞길을 막는 몇몇의 적과 차지하고자 하는 행성의 수뇌부와 군사력을 해체하여 복속시킬 뿐이었으니까. 어쩌면 나만큼이나 잘못된 사회의 틀에 역겨움을 느끼던 몇몇 이들은 환호할지도 모르지. 브레이크다운과 나는 꽤 좋은 팀을 이뤄 움직였고, 나는 수월하게 위로 올라갔다. 내 뒤로 몇몇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했으나 내 위치를 위협하진 못했다. 이 세상에 의사는 드무니까, 전투능력이 뛰어난 의사는 더욱 더.
디셉티콘은 표면상으론 사이버트론의 평화를 위한다고 했으나 정작 메가트론과 디셉티콘은 사이버트론에 돌아가지 않은지 10 사이클이 넘었다고 했다. 10 사이클이 사이버트로니안들에게 엄청나게 긴 시간은 아니지만, 짧은 시간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벨로시트론이나 카미누스 같은 꽤 오래전에 사이버트론의 식민지가 되었던 행성은 건드리지 않았다. 60 사이클 전 사이버트론에 난변이 생긴 뒤로 거의 독립된 체계로 돌아가고 있긴 했으나, 여전히 그 행성들은 사이버트론의 일부였다. 진정 사이버트론을 위한다면 사이버트론과 제대로 된 교역이 끊긴 이후 엉망진창이 된 식민지 행성부터 평정하는게 낫지 않나 싶었지만, 그는 사이버트론과 관련된 그 어떤 행성에도 발을 들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운드웨이브를 통해 사이버트론의 상황을 꼼꼼히 감시했고, 특히 프라임에 관한 소식은 늘 보고받았다. 몰래 엿들어보니, 소문대로 새 프라임인 옵티머스 프라임이 쓰러진지 꽤 오래되었다는게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사이버트론 행성이 극단적인 기능주의자들에 의해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도.
"이해하기 좀 어렵습니다, 각하. 지금이 사이버트론에 돌아가는게 제일 적절한 때라고 생각됩니다만."
사운드웨이브는 메가트론의 방침에 반발하는 법이 없었지만 10 사이클째 모성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는 것은 그도 의문인 모양이었다.
"기다려라."
그는 언제나 그 말 뿐이었다. 나야 상관없지만. 지루한 사이버트론의 정치에 끼게 되느니 이 행성 저 행성 옮겨다니는게 훨씬 더 재미있으니까.
난 메가트론의 현재를 재미있어 할 뿐 과거의 그의 이야기를 알고 싶었던 것은 아니긴 했으나, 여러 디셉티콘과 어울리며 대화하기도 하다보니 자연스레 그의 과거도 알게 되었다. 원래 광부에서 시작해 사이버트론을 파멸로 몰고간 센티넬이라는 놈을 죽여서 그의 폭정을 끝냈으며 바닥에서 시작해 세상을 뒤엎은 혁명가 어쩌구 저쩌구 하는 영웅서사시에 가까운 이야기 뿐, 내가 흥미로워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딱 한번 디셉티콘의 말단 중 한명이 말실수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프라임과 메가트론이 원래는 친구라는 이야기를 했다. 물론, 그는 말을 내뱉고 나서 엄청난 실수를 한 것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아마 메가트론에게 프라임이란 입에 올리기조차 싫은 존재이거나 혹은 입에 올리기만 해도 그리움이 터져나올만한 존재인 모양이었다. 아니면 둘 다거나.
내가 디셉티콘의 손에 꼽는 전력이 됐을 무렵, 재미있는 상황 변화가 찾아왔다.
디셉티콘의 함선, 네메시스에도 엄밀히 말하자면 회의장이 있었다. 쓸일이 없을 뿐이지. 이 조직에 들어온지 꽤 되었는데도 회의장 의자에 앉게된건 처음이었다. 아주 불편하게도 사운드웨이브 옆에 앉게된게 불안하긴 했지만 별 수 있나, 이 몸이 높은 자리에 빨리 올라간 걸. 사운드웨이브는 분명 나의 불안함을 읽어냈을 텐데도 별 반응이 없었다. 나 정도는 가소롭게 생각하고 있거나, 다른 이들의 속을 읽어내는데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내 속으로 꿍시렁거리는 소리에도 반응이 없는거던가. 대체 무슨 일이 있길래 디셉티콘의 간부만 모아 놓았나 했더니, 새로운 얼굴이 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의 붉은 뿔과 깨진 한쪽 옵틱이 특징인 그 메크는 이 장소를 경멸하는 티를 숨기지 않으며 메가트론의 정 반대쪽 의자에 앉았다.
"프라임은 어떤가, 아직도 그를 잘 보좌하고 있나?"
메가트론이 입꼬리 한쪽을 올리고 비웃는 모습이 어쩐지 무섭긴 커녕 그도 산 메크구나 싶어서 의외로 느껴졌다.
"쓸데없는 눈치싸움은 관두지. 우리 둘 다 그럴 시간 없으니까."
이 녀석은 메가트론에게 겁먹은 기세가 없었다. 좋은 책략이다. 메가트론은 겁을 먹으면 겁을 먹는대로 깔볼거고 거슬리면 거슬리는데로 싫어할테지만, 당당하고 도전정신 있는 메크라면 꽤 마음에 들어 하니까.
"얼마 뒤에 내가 사이버트론에 옵티머스 프라임이 병석에 있다는 공표를 할거다. 그리고 원로원은 그걸 내 승복선언으로 받아들이겠지. 그때 내가 주요 군사력을 아이아콘 밖으로 나가게 할거고, 그리고 그때 아주 우연히 방어 장치가 고장날 계획이야. 그리고 그때를 맞춰 네가 의원회를 제거할거고."
"직접적이여서 편하군. 너 대신 암살을 해달라?"
메가트론은 모욕을 들은 표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오랜만에 재미있는 걸 다 보겠다는 표정이었지.
"물론 디셉티콘에게 모든 죄를 덮어 씌우겠단 소린 아냐. 사이버트론의 법 중에 프라임에 대한 반역을 일으킨 자를 처형 할 수 있는 법이 있다. 센티넬 집권시절 만들어낸 말도 안되는 법이지만 이런 경우엔 유용하게 쓰이겠지. 그래서 이 법을 일부로 폐기시키지 않았고."
"널 위해 더러운짓을 해주고 나가라는건가? 그건 거래가 아니지."
메가트론의 비아냥 거리는 목소리를 봐선 놈의 제안이 꽤 마음에 든 듯 했으나 그는 더 얻어내고 싶은 모양이다.
"오토봇과 시민, 옵티머스는 손대선 안돼. 그게 조건이야."
"내 말을 안듣는군."
"어차피 받아들일 생각이면서 더 얻어내려 꼼수 쓰지마, 추방자 자식아."
추방자라는 단어에 메가트론의 눈썹이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이러다간 함선이 또 반토막 나겠군.
"제가 제안을 하나 해도 될까요?"
갑자기 내가 끼어들자 메가트론과 빨간 뿔 메크가 동시에 날 쳐다봤다. 자 여유롭게 미소짓고 네가 뭐라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거들먹거려. 저런 류의 메크들은 그래야 들으니까. 직접 나와서 하는 말을 보니 적어도 프라임의 오른팔격 존재일테고, 그럼 작전사령관 아니면 사령관, 특수부대 팀장 일텐데... 사령관은 분홍색 메크라고 했으니 아닐테고, 특수부대 팀장은 바이저를 끼고 있다고 했고 꽤 능글맞은 메크라 했으니 태도로 보아 그도 아닐테고, 사법기관에도 관여할 만한 직책의 오른팔이라면 딱 한명, 프라울 뿐이다.
"지금 들어보니, 프라울 보좌관님께선 각하의 추방령을 무효화 할 수 있는 힘이 충분히 있으신것 같습니다만."
"물론 그렇지만-"
"만일 저희가 보좌관님이 원하시는 대로 원로원을 제거하고 나면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간부진과 저희 각하께선 품격을 아시는 분들이라 무작위로 도시를 파괴하진 않겠지만, 나머지 디셉티콘들도 그러리라 기대하시는건 아닐거라 생각합니다. 디셉티콘에게도 암살자 이상의 역할을 주셔야 깔끔한 거래가 되지 않겠습니까?"
"너희가 무죄를 주장하고 나면 나는 어쩔 수 없었다는 듯이 추방령을 무효화 할거야. 그리고... 너희가 죽인 원로원의 의회 공석은 디셉티콘이 가져가게끔 해주지."
내가 말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하는 걸로 봐선, 이미 예상하고 있었나보군.
"네가 무슨 수로?"
"디셉티콘의 다수는 이미 하이가드였지? 찾아보니 하이가드들은 원래 의회 출석 권한이 있더군. 그리고 그 권한을 양도 할 수도 있고... 너희가 그 법을 이용해."
"거래 성립으로 알지."
메가트론이 내가 본 것 이래 가장 만족스럽게 미소지었다. 그런데 그 만족스러운 미소엔 어딘가 섬짓한 구석이 있어서, 프라울이란 녀석은 뒤늦게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건지 얼굴을 구겼다. 나는 메가트론이 쉽게 사이버트론을 정복하려 들지 않고 그저 가만히 기다렸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그는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그의 손 안에 굴러 들어올 것을 애써 탐낼 이유가 없었다. 역시 이 조직에 들어오길 잘했어. 늘 재미있는 걸 선사해준다니까.
난 브레이크다운과 함께 아이아콘을 느긋하게 거닐었다. 전광판에서 방영되는 중인 방송에선 메가트론과 디셉티콘이 사면받는 장면이 방송되었으며, 디셉티콘이 프라임에 대한 반역으로 처벌받은 원로원의 공석을 차지하게 될거란 말들이 나왔다. 토론에선 한쪽은 끔찍한 테러리스트들을 신성한 땅에 들여놨다고 비난했고, 다른 쪽은 원로원이 집권한 이후 점점 잘못되어가던 사회를 디셉티콘이 바로잡은거라 주장했다. 메가트론은 가짜 프라임인 센티넬을 처벌했듯, 이 사회를 어지럽힌 의원을 처벌한거라며 이건 기뻐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방청객들이 여기저기서 옳다는 소리를 외치는 것으로 보아 설령 중심 권력 몇몇의 반발이 있다고 해도 다수의 시민들이 저런 반응이라면 방해될 정도는 아닐 것 같았다.
아직 디셉티콘에 대한 무죄판결과 추방령 무효화 문제로 시끄러운데도 병동으로 가는 날 막아서는 이가 없는 걸로 보아 정말 오토봇을 각 식민행성으로 파견해 흩어놓았던 모양이다. 내가 병동의 지하로 향해서야 흰 복도의 끝에 가만히 앉아있는 한 메크가 보였다. 언뜻보면 그저 작은 메크가 시간을 때우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저 자그마한 노란 메크는 전장에선 잔인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그리고 폭력을 꽤 재미있어하는 성향이기도 해서 저 녀석만큼은 만나지 말라고도 경고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장이 아니고, 난 의사로서 여기 와있었다. 날 눈치챈 그 메크가 곧장 배틀마스크를 쓰고 손에서 칼날을 꺼냈다. 난 외려 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공격 의사가 없다는 표시로 양 손을 들었다. 내가 양 손을 들자, 뒤에 있는 브레이크 다운도 한발 늦게 따라서 손을 들어보였다.
"넉아웃이라고 합니다, 여기 프라임이 계실거라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습니다만..."
"디셉티콘의 메딕이 여긴 왜 왔어?"
"순수하게 도우려고 왔을 뿐입니다. 제가 디셉티콘이긴 하지만, 전 이왕이면 양쪽 다에 가능성을 열여두고 싶거든요. 무슨 뜻인지 이해하시겠다면요. 제가 프라임을 깨울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거짓말."
"전 무기도 없고 공격 의사도 없습니다, 제 뒤의 보조도 마찬가지죠. 딴 속셈이 있었가면 제발로 제일 위험한 전투병을 찾아왔겠습니까?"
내가 손에 작은 푸른 큐브 조각을 보이자, 노란 오토봇이 배틀 마스크를 벗었다. 안에서 대화를 다 듣고 있던 듯한 라쳇이 인상을 구길대로 구기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문을 열어주었다.
"닥터 라쳇, 들은 소문에 의하면 저같은 의사로선 꿈도 꾸지 못할 실력이라들어 언제나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같은 의사로서 뵙게되서 영광입니다."
"글로사에 기름칠이나 하고 거짓말 해. 그냥 들어와."
그리고 듣던대로 성질도 더러우시고.
방의 한 가운데에 누워있는 프라임에겐 부수적인 장치가 이것저것 많이 붙어있었지만 그 모두 검사와, 생체신호 확인, 그리고 동체의 활동력 유지를 위한 장치 뿐이었다. 프라임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휠잭이 내 손에 든 물건을 가로채서 여기저기 살펴봤다.
"올스파크는 어디서 구했어?"
"진짜 올스파크는 아닙니다. 진짜 올스파크는 뭐, 프라임님의 가슴속에 있다든가 하겠죠, 말그대로. 하지만 그건 올스파크를 흉내낸 물건입니다. 진짜처럼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진 않겠지만, 프라임께서 회복하실 정도는 될겁니다."
이건 물론 세사람이서 멋대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오토봇들 전원이 돌아와서 같이 결정하든가 해야겠지만 오토봇들은 각 식민행성으로 파견된 뒤라 돌아오려면 꽤 걸릴테고, 상황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저들에겐 시간이 없다.
"휠잭의 계산으론 반 사이클 뒤면 깨어난다고 했는데 굳이 지금 깨워야 할 이유는 없어."
노란 메크가 라쳇을 붙잡으며 설득하려 했지만 그 노란메크 역시 확신이 없다는 게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디셉티콘이 정당하게 아이아콘의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상태에서 반 사이클이면 이미 사이버트론은 정복당하고 난 뒤겠군요. 메가트론은 아주 쉽게 프라임님의 숨을 끊을거고 그걸 정당화 하실 능력이 있는 분입니다. 정말 그걸 원하십니까?"
"왜 이런 짓을 하지?"
잠든듯한 옵티머스 프라임의 얼굴을 내려다보는 라쳇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절박함은 내 자신감을 키워주기 충분했다.
"말했듯이, 전 제가 도망칠 구석은 만들어두고 싶거든요. 언제나 제 살길을 찾는게 중요한 메크라서요. 만일 디셉티콘이 다시 이 행성에서 추방되는 날이 온다고 해도 제가 한 일을 잊지 않으셨으면 할 뿐이죠."
노란 메크와 휠잭, 라쳇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노란 메크는 괴로운 표정으로 누워있는 프라임을 내려다보더니 조용히 명령했다.
"해."
"절대 후회하시지 않을겁니다."
난 미소와 함께 큐브를 옵티머스의 매트릭스 속으로 떨어트렸다.
프라울이 네메시스를 다녀간 직후의 일이다. 과학장교인 쇼크웨이브가 그의 발명품 하나를 건네 줬는데, 언뜻보면 에너존 큐브와 별 다름없이 보이는 것은 불길한 푸른 빛을 띈 채로 번쩍이고 있었다.
-올스파크를 흉내낸 물건이다. 올스파크와 똑같진 않지만 메크 하나를 일으킬 정도의 효과는 있지. 프라임이 쓰러진 원인은 내 실험 과정에서 매트릭스가 파괴되서인 모양이더군.
-매트릭스는 신의 산물 아닙니까? 그걸 일반 메크의 힘으로 고친다구요? 아니, 과학장교님의 실력을 의심하는게 아니라...
-당연히 고치지 못하지. 이건 프라임을 일어나게만 해 줄 거다.
-그게 단가요? 저희에게 왜 그게 이득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대로 내버려 두면 프라임은 반 사이클 이내에 회복하고 일어날거다. 프라임이 오랫동안 수면에 든건 매트릭스의 회복을 위해서지. 하지만 지금 깨운다면...
-...영원히 수복되지 않겠군요. 그런데 이걸 저한테 주시는 이유가?
-난 이미 오토봇들과 꽤 척을 져서 프라임이 있는 비밀 장소까지 안내받는건 힘들다. 하지만 넌 새 얼굴이니 또 모르지.
그런 이유 아니잖아. 핑크색 총사령관 무서워서 오토봇 심장부에 들어가기 꺼려하는거면서.
-기술개발부의 휠잭과 의사 라쳇이 프라임을 담당하고 있을거다. 아이아콘 중심의 제일 큰 의료센터 지하로 가라. 그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으면 더 좋고.
내가 가짜 올스파크를 떨어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옵티머스 프라임의 푸른 옵틱이 서서히 떠졌다. 곧 노란메크가 프라임의 품에 달려들어가 옵틱에서 세척액을 쏟아냈다.
"비? 왜, 왜 그러는거야? 왜 울어?"
프라임은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우는 노란 메크를 품에 안고 달랬다.
"그냥 기뻐서 그래."
프라임이 비라고 불린 노란 메크를 달래려 애쓰는 사이, 비밀 병실의 문을 박차고 한쪽 몸체가 날아가다시피한 프라울이 등장했다. 난 비라고 불린 오토봇과 마찬가지로 그가 프라임에게 달려가 그를 꼭 껴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그는 감히 그런것은 꿈꾸지도 못하겠다는 듯이 조심스러운 태도로 그에게 다가가 섬세한 손길로 프라임의 얼굴을 한번 쓸어 볼 뿐이었다. 프라임은 프라울의 한쪽 팔이 텅 비어있는 것을 보더니 놀람과 걱정을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생각보다 표정 변화가 많은 것을 보니 새 프라임이 젊은 메크라는건 사실이었나보다.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별거 아니야, 그냥 사고였어. 걱정 안해도 돼. 팔은 붙이면 그만이니까."
놀랍게도 저 메크도 다정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모양이다. 프라임은 슬픈 얼굴로 프라울의 깨진 옵틱 한쪽과 없어진 팔 어깨를 번갈아 보더니 세상을 잃은 것 같은 눈빛을 했다. 저 걱정과 미안함, 슬픔, 죄책감이 담긴 눈빛을 보면 아무리 죄가 없는 이더라도 죄지은 느낌을 받을만도 하건만, 정작 프라울이 변함없이 다정한 표정을 짓는 것이 소름끼쳤다. 프라임은 상상이나 하려나, 자기가 저렇게 걱정하는 이가 자기 안위를 팔아먹었다는 걸?
"프라임께서 무사히 회복되었으니, 전 가보겠습니다."
내가 깍듯하게 인사를 하자 프라임은 좀 더 이야기를 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난 마치 그걸 못본듯이 걸어나갔다.
프라임이 깨어난 후 더 있을 이유도 없겠다, 인사만 하고 브레이크다운과 병실을 나선 나는 누구도 우리 대화를 들을 수 없을 거리에 와서 입을 열었다.
"여기서 배워야 할 점이 하나 있어."
"그래, 날 일깨워줘봐. 뭔데."
"사랑하는 것은 절대 남의 손에 맡기지 말 것."
"무슨 뜻이야 그게?"
"네 순진함이 오히려 내 숨통을 트이게 하는거 알아? 뭐, 중요한건 아니지만."
난 어깨를 으쓱하고 네메시스 함선으로 귀환했다.
메가트론은 아이아콘에서 살짝 떨어진 위치에 네메시스를 띄워놓고 지하에 자리한 아름다운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태껏 메가트론이 정복해온 행성에 비하면 보잘 것 없이 작은 도시다. 그가 재미삼아 제거해버려도 될만큼. 하지만 그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돌아온 이유는 겨우 작은 도시 하나를 가지고 싶어서가 아니니까. 사이버트론에서 프라임은 중요한 위치 정도가 아니다. 그는 사이버트론에 에너존을 흐르게하고 죽음에서도 부활하며, 방황하는 모든 이의 불빛이다. 사이버트론은 프라임 없이는 지속할 수 없으며, 사이버트론에서 프라임이 가지는 신성한 위치는 그 어떤 짓으로도 가져갈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제거해서는 안되는 위치의 존재라면 그 지위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반드시 살아있어야 하는 존재라면 살아 있기만한 존재로 만들면 그만이지.
"메가트론 경, 프라임이 깨어났습니다."
"상태는?"
"깨어는 났지만 매트릭스는 제대로 회복되지 않을 겁니다, 원하시던 대로요."
"잘됐군."
비록 메가트론이 감정이 풍부한 메크는 아니었으나, 디셉티콘의 간부들 모두는 메가트론이 옵티머스에게 집착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내가 심리분석 전문은 아니긴 해도, 메가트론이 그에게 어떠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를 잃고 싶어하지 않는 동시에, 그가 망가지길 원하는 것도. 나는 그 복잡한 감정의 원인을 그의 과거에 대해서 듣기 전까지는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가 과거에 프라임과 어떤 관계였는지 듣고 나니 그림이 조금 그려졌다. 그는 과거의 프라임을 돌려받고 싶은 것이다. 그가 프라임과 과거의 광부에 불과하던 오라이온을 분리해서 생각하고 있냐고? 천만에, 메가트론도 분별력은 있는 메크인데 그런 환상을 품을리가. 그는 단순히 과거를 그리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자신에게 기대지 않으면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도 벅차던 시절의 그를 돌려받는 것이다. 늘 제 손안에 두고 통제 할 수 있으며, 언제나 자기 손을 벗어날 수 없고, 언제나 자기 도움을 받지 않으면 에너존 하나 먹을 수 없던 시절의, 아무리 발버둥쳐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록보관소에 뛰어드는 것 뿐이던 시절의 아름답고 활달하지만 어디까지나 그의 손 아래 있던 시절의 그를 돌려 받는 것. 프라임의 추락은 그저 덤일 뿐이다.
이딴게 사랑이냐고? 당연히 사랑이지! 저렇게 파괴적이고 비뚤어졌고, 타인을 망가트리길 바라고, 구속하고 괴로워하길 바라는 뒤틀린 마음으로 누군가를 몰아갈 수 있는 감정이 사랑이 아니면 달리 뭐 있겠어?
약메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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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아웃은 비록 제발로 들어온 디셉티콘의 신입이긴 했으나, 메가트론의 사상에 완벽하게 찬동하는 것은 아니였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벨로시트론에서 즐길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레이싱에 참가해봤고, 벨로시트로니안이 즐길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자극을 즐기고 난 뒤라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때 때맞춰 들려온 사이버트론 출신의 디셉티콘이란 조직이 힘으로 행성들을 평정하기 시작했다는 소문에 흥미가 동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갔다고나 할까. 힘으로 평정하는 평화라니, 그 자체로 이율배반적이지 않은가. 그들은 순수한 힘으로 권력을 추구하며, 순수한 힘으로 평화를 얻어내겠다는 말도 안되는 방법으로 꽤 많은 행성을 그의 아래에 두었다. 누군가에게 메가트론은 평화를 깨고 등장한 폭군이였고 학살자였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에겐 썩어가는 사회를 파괴해준 고마운 구세주였다. 그에 대한 평가는 계층에 따라 천지차이를 오갔다.
자극을 좋아하는 벨로시트론 출신으로서, 그를 재미있어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물론 디셉티콘은 사이버트로니안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조직인데다가, 듣기론 외부메크에겐 꽤나 배척적이라고 들었다. 게다가 우주를 정복하고 다니는 조직이 디셉티콘 모집이라는 포스터를 붙이고 다닐리도 없었으므로, 난 그들의 발자취를 쫒아가는 수 밖에 없었다. 혼자 다니기는 싫어 조수이자 친구인 브레이크다운을 설득해(설득이랄것도 없었다. '나 디셉티콘에 들어갈건데 너도 갈래?' '응.' 이게 대화의 전부였으니까.) 함께 디셉티콘의 발자취를 쫒아다녔다. 그러다가 겨우 그들을 만난 한 행성에서 난 당돌하게도 메가트론에게 날 디셉티콘에 들여보내달라 요청했다.
"저는 벨로시트론의 의사입니다, 메가트론 경. 이쪽은 저의 조수 브레이크다운, 저는 넉아웃이라고 합니다. 저를 공격하시기 전에, 일단은 디셉티콘에 제대로 된 의사가 필요하시지 않습니까?"
난 부상입은 동체 위에 개조를 덧붙여 해결한 듯한 꽤 많은 수의 디셉티콘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에 제대로 된 의사가 있는 줄은 몰랐군."
순식간에 내 실력을 의심받았으나 그 말을 하는 목소리에 비아냥도 조롱의 기색도 없이 순수한 의문만 묻어나 모욕감을 느낄 수도 없었다. 그도 그럴게, 외부인들에게 벨로시트론은 그저 레이싱에 미쳐 모든걸 레이싱으로 결정하는 행성이었다. 뭐, 아주 틀린 사실도 아니지만 내 의학지식은 오랜시간 공들여 쌓아온 것이므로 그가 어떤 선입견이 있든 난 자신이 있었다. 브레이크다운은 의사는 아니었지만 날 보조하기엔 충분했고 게다가 그의 큰 덩치와 힘은 중요한 전력이 아닐 수가 없었다.
"절 들여보내신다면 제 실력을 의심하실 일은 없을 겁니다."
메가트론이 턱짓하자 사운드웨이브가 날 스캔해보고는 "사실 확인." 이라고 짧은 인증을 해주었다. 스타스크림이 "그냥 자기가 그런줄 아는거지 그게 진짜라는 증거는 아니잖아"라고 투덜거렸지만 메가트론은 다행히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우리가 사이버트론의 안위만을 위해 일한다는 것을 알텐데, 외부자가 왜 들어오려고 하는거지?"
그러십니까, 내 눈앞에는 힘에 도취해 우주를 손에 넣고 싶어하는 파괴대제가 보이는데요. 아, 사운드웨이브가 마음을 읽을 수 있으니 이런 속마음은 좀 감춰야겠군.
"벨로시트로니안은 사이버트론과 교류가 끊긴지 시간이 좀 지나긴 했으나 근본적으로 따라가보자면 사이버트론 아래 복속된 행성 중 하나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저도 사이버트로니안인 셈이죠."
메가트론은 순식간에 내 모행성을 가져다 버리는 내 태도를 흥미로워하더니, 날 내려다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허가하마."
"실망시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절대 후회하시지 않을 겁니다."
잔혹한 자이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메크는 흥미로워한다는 이야기가 사실이었는지, 나와 브레이크다운은 그렇게 디셉티콘 최초의 비사이버트론 출신의 디셉티콘이 되었다.
디셉티콘아래 일하는건 꽤 재미있었다. 우리가 아무나 학살하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필요에 따라 앞길을 막는 몇몇의 적과 차지하고자 하는 행성의 수뇌부와 군사력을 해체하여 복속시킬 뿐이었으니까. 어쩌면 나만큼이나 잘못된 사회의 틀에 역겨움을 느끼던 몇몇 이들은 환호할지도 모르지. 브레이크다운과 나는 꽤 좋은 팀을 이뤄 움직였고, 나는 수월하게 위로 올라갔다. 내 뒤로 몇몇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했으나 내 위치를 위협하진 못했다. 이 세상에 의사는 드무니까, 전투능력이 뛰어난 의사는 더욱 더.
디셉티콘은 표면상으론 사이버트론의 평화를 위한다고 했으나 정작 메가트론과 디셉티콘은 사이버트론에 돌아가지 않은지 10 사이클이 넘었다고 했다. 10 사이클이 사이버트로니안들에게 엄청나게 긴 시간은 아니지만, 짧은 시간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벨로시트론이나 카미누스 같은 꽤 오래전에 사이버트론의 식민지가 되었던 행성은 건드리지 않았다. 60 사이클 전 사이버트론에 난변이 생긴 뒤로 거의 독립된 체계로 돌아가고 있긴 했으나, 여전히 그 행성들은 사이버트론의 일부였다. 진정 사이버트론을 위한다면 사이버트론과 제대로 된 교역이 끊긴 이후 엉망진창이 된 식민지 행성부터 평정하는게 낫지 않나 싶었지만, 그는 사이버트론과 관련된 그 어떤 행성에도 발을 들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운드웨이브를 통해 사이버트론의 상황을 꼼꼼히 감시했고, 특히 프라임에 관한 소식은 늘 보고받았다. 몰래 엿들어보니, 소문대로 새 프라임인 옵티머스 프라임이 쓰러진지 꽤 오래되었다는게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사이버트론 행성이 극단적인 기능주의자들에 의해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도.
"이해하기 좀 어렵습니다, 각하. 지금이 사이버트론에 돌아가는게 제일 적절한 때라고 생각됩니다만."
사운드웨이브는 메가트론의 방침에 반발하는 법이 없었지만 10 사이클째 모성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는 것은 그도 의문인 모양이었다.
"기다려라."
그는 언제나 그 말 뿐이었다. 나야 상관없지만. 지루한 사이버트론의 정치에 끼게 되느니 이 행성 저 행성 옮겨다니는게 훨씬 더 재미있으니까.
난 메가트론의 현재를 재미있어 할 뿐 과거의 그의 이야기를 알고 싶었던 것은 아니긴 했으나, 여러 디셉티콘과 어울리며 대화하기도 하다보니 자연스레 그의 과거도 알게 되었다. 원래 광부에서 시작해 사이버트론을 파멸로 몰고간 센티넬이라는 놈을 죽여서 그의 폭정을 끝냈으며 바닥에서 시작해 세상을 뒤엎은 혁명가 어쩌구 저쩌구 하는 영웅서사시에 가까운 이야기 뿐, 내가 흥미로워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딱 한번 디셉티콘의 말단 중 한명이 말실수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프라임과 메가트론이 원래는 친구라는 이야기를 했다. 물론, 그는 말을 내뱉고 나서 엄청난 실수를 한 것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아마 메가트론에게 프라임이란 입에 올리기조차 싫은 존재이거나 혹은 입에 올리기만 해도 그리움이 터져나올만한 존재인 모양이었다. 아니면 둘 다거나.
내가 디셉티콘의 손에 꼽는 전력이 됐을 무렵, 재미있는 상황 변화가 찾아왔다.
디셉티콘의 함선, 네메시스에도 엄밀히 말하자면 회의장이 있었다. 쓸일이 없을 뿐이지. 이 조직에 들어온지 꽤 되었는데도 회의장 의자에 앉게된건 처음이었다. 아주 불편하게도 사운드웨이브 옆에 앉게된게 불안하긴 했지만 별 수 있나, 이 몸이 높은 자리에 빨리 올라간 걸. 사운드웨이브는 분명 나의 불안함을 읽어냈을 텐데도 별 반응이 없었다. 나 정도는 가소롭게 생각하고 있거나, 다른 이들의 속을 읽어내는데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내 속으로 꿍시렁거리는 소리에도 반응이 없는거던가. 대체 무슨 일이 있길래 디셉티콘의 간부만 모아 놓았나 했더니, 새로운 얼굴이 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의 붉은 뿔과 깨진 한쪽 옵틱이 특징인 그 메크는 이 장소를 경멸하는 티를 숨기지 않으며 메가트론의 정 반대쪽 의자에 앉았다.
"프라임은 어떤가, 아직도 그를 잘 보좌하고 있나?"
메가트론이 입꼬리 한쪽을 올리고 비웃는 모습이 어쩐지 무섭긴 커녕 그도 산 메크구나 싶어서 의외로 느껴졌다.
"쓸데없는 눈치싸움은 관두지. 우리 둘 다 그럴 시간 없으니까."
이 녀석은 메가트론에게 겁먹은 기세가 없었다. 좋은 책략이다. 메가트론은 겁을 먹으면 겁을 먹는대로 깔볼거고 거슬리면 거슬리는데로 싫어할테지만, 당당하고 도전정신 있는 메크라면 꽤 마음에 들어 하니까.
"얼마 뒤에 내가 사이버트론에 옵티머스 프라임이 병석에 있다는 공표를 할거다. 그리고 원로원은 그걸 내 승복선언으로 받아들이겠지. 그때 내가 주요 군사력을 아이아콘 밖으로 나가게 할거고, 그리고 그때 아주 우연히 방어 장치가 고장날 계획이야. 그리고 그때를 맞춰 네가 의원회를 제거할거고."
"직접적이여서 편하군. 너 대신 암살을 해달라?"
메가트론은 모욕을 들은 표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오랜만에 재미있는 걸 다 보겠다는 표정이었지.
"물론 디셉티콘에게 모든 죄를 덮어 씌우겠단 소린 아냐. 사이버트론의 법 중에 프라임에 대한 반역을 일으킨 자를 처형 할 수 있는 법이 있다. 센티넬 집권시절 만들어낸 말도 안되는 법이지만 이런 경우엔 유용하게 쓰이겠지. 그래서 이 법을 일부로 폐기시키지 않았고."
"널 위해 더러운짓을 해주고 나가라는건가? 그건 거래가 아니지."
메가트론의 비아냥 거리는 목소리를 봐선 놈의 제안이 꽤 마음에 든 듯 했으나 그는 더 얻어내고 싶은 모양이다.
"오토봇과 시민, 옵티머스는 손대선 안돼. 그게 조건이야."
"내 말을 안듣는군."
"어차피 받아들일 생각이면서 더 얻어내려 꼼수 쓰지마, 추방자 자식아."
추방자라는 단어에 메가트론의 눈썹이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이러다간 함선이 또 반토막 나겠군.
"제가 제안을 하나 해도 될까요?"
갑자기 내가 끼어들자 메가트론과 빨간 뿔 메크가 동시에 날 쳐다봤다. 자 여유롭게 미소짓고 네가 뭐라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거들먹거려. 저런 류의 메크들은 그래야 들으니까. 직접 나와서 하는 말을 보니 적어도 프라임의 오른팔격 존재일테고, 그럼 작전사령관 아니면 사령관, 특수부대 팀장 일텐데... 사령관은 분홍색 메크라고 했으니 아닐테고, 특수부대 팀장은 바이저를 끼고 있다고 했고 꽤 능글맞은 메크라 했으니 태도로 보아 그도 아닐테고, 사법기관에도 관여할 만한 직책의 오른팔이라면 딱 한명, 프라울 뿐이다.
"지금 들어보니, 프라울 보좌관님께선 각하의 추방령을 무효화 할 수 있는 힘이 충분히 있으신것 같습니다만."
"물론 그렇지만-"
"만일 저희가 보좌관님이 원하시는 대로 원로원을 제거하고 나면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간부진과 저희 각하께선 품격을 아시는 분들이라 무작위로 도시를 파괴하진 않겠지만, 나머지 디셉티콘들도 그러리라 기대하시는건 아닐거라 생각합니다. 디셉티콘에게도 암살자 이상의 역할을 주셔야 깔끔한 거래가 되지 않겠습니까?"
"너희가 무죄를 주장하고 나면 나는 어쩔 수 없었다는 듯이 추방령을 무효화 할거야. 그리고... 너희가 죽인 원로원의 의회 공석은 디셉티콘이 가져가게끔 해주지."
내가 말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하는 걸로 봐선, 이미 예상하고 있었나보군.
"네가 무슨 수로?"
"디셉티콘의 다수는 이미 하이가드였지? 찾아보니 하이가드들은 원래 의회 출석 권한이 있더군. 그리고 그 권한을 양도 할 수도 있고... 너희가 그 법을 이용해."
"거래 성립으로 알지."
메가트론이 내가 본 것 이래 가장 만족스럽게 미소지었다. 그런데 그 만족스러운 미소엔 어딘가 섬짓한 구석이 있어서, 프라울이란 녀석은 뒤늦게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건지 얼굴을 구겼다. 나는 메가트론이 쉽게 사이버트론을 정복하려 들지 않고 그저 가만히 기다렸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그는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그의 손 안에 굴러 들어올 것을 애써 탐낼 이유가 없었다. 역시 이 조직에 들어오길 잘했어. 늘 재미있는 걸 선사해준다니까.
난 브레이크다운과 함께 아이아콘을 느긋하게 거닐었다. 전광판에서 방영되는 중인 방송에선 메가트론과 디셉티콘이 사면받는 장면이 방송되었으며, 디셉티콘이 프라임에 대한 반역으로 처벌받은 원로원의 공석을 차지하게 될거란 말들이 나왔다. 토론에선 한쪽은 끔찍한 테러리스트들을 신성한 땅에 들여놨다고 비난했고, 다른 쪽은 원로원이 집권한 이후 점점 잘못되어가던 사회를 디셉티콘이 바로잡은거라 주장했다. 메가트론은 가짜 프라임인 센티넬을 처벌했듯, 이 사회를 어지럽힌 의원을 처벌한거라며 이건 기뻐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방청객들이 여기저기서 옳다는 소리를 외치는 것으로 보아 설령 중심 권력 몇몇의 반발이 있다고 해도 다수의 시민들이 저런 반응이라면 방해될 정도는 아닐 것 같았다.
아직 디셉티콘에 대한 무죄판결과 추방령 무효화 문제로 시끄러운데도 병동으로 가는 날 막아서는 이가 없는 걸로 보아 정말 오토봇을 각 식민행성으로 파견해 흩어놓았던 모양이다. 내가 병동의 지하로 향해서야 흰 복도의 끝에 가만히 앉아있는 한 메크가 보였다. 언뜻보면 그저 작은 메크가 시간을 때우고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저 자그마한 노란 메크는 전장에선 잔인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그리고 폭력을 꽤 재미있어하는 성향이기도 해서 저 녀석만큼은 만나지 말라고도 경고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장이 아니고, 난 의사로서 여기 와있었다. 날 눈치챈 그 메크가 곧장 배틀마스크를 쓰고 손에서 칼날을 꺼냈다. 난 외려 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공격 의사가 없다는 표시로 양 손을 들었다. 내가 양 손을 들자, 뒤에 있는 브레이크 다운도 한발 늦게 따라서 손을 들어보였다.
"넉아웃이라고 합니다, 여기 프라임이 계실거라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습니다만..."
"디셉티콘의 메딕이 여긴 왜 왔어?"
"순수하게 도우려고 왔을 뿐입니다. 제가 디셉티콘이긴 하지만, 전 이왕이면 양쪽 다에 가능성을 열여두고 싶거든요. 무슨 뜻인지 이해하시겠다면요. 제가 프라임을 깨울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거짓말."
"전 무기도 없고 공격 의사도 없습니다, 제 뒤의 보조도 마찬가지죠. 딴 속셈이 있었가면 제발로 제일 위험한 전투병을 찾아왔겠습니까?"
내가 손에 작은 푸른 큐브 조각을 보이자, 노란 오토봇이 배틀 마스크를 벗었다. 안에서 대화를 다 듣고 있던 듯한 라쳇이 인상을 구길대로 구기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문을 열어주었다.
"닥터 라쳇, 들은 소문에 의하면 저같은 의사로선 꿈도 꾸지 못할 실력이라들어 언제나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같은 의사로서 뵙게되서 영광입니다."
"글로사에 기름칠이나 하고 거짓말 해. 그냥 들어와."
그리고 듣던대로 성질도 더러우시고.
방의 한 가운데에 누워있는 프라임에겐 부수적인 장치가 이것저것 많이 붙어있었지만 그 모두 검사와, 생체신호 확인, 그리고 동체의 활동력 유지를 위한 장치 뿐이었다. 프라임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휠잭이 내 손에 든 물건을 가로채서 여기저기 살펴봤다.
"올스파크는 어디서 구했어?"
"진짜 올스파크는 아닙니다. 진짜 올스파크는 뭐, 프라임님의 가슴속에 있다든가 하겠죠, 말그대로. 하지만 그건 올스파크를 흉내낸 물건입니다. 진짜처럼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진 않겠지만, 프라임께서 회복하실 정도는 될겁니다."
이건 물론 세사람이서 멋대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오토봇들 전원이 돌아와서 같이 결정하든가 해야겠지만 오토봇들은 각 식민행성으로 파견된 뒤라 돌아오려면 꽤 걸릴테고, 상황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저들에겐 시간이 없다.
"휠잭의 계산으론 반 사이클 뒤면 깨어난다고 했는데 굳이 지금 깨워야 할 이유는 없어."
노란 메크가 라쳇을 붙잡으며 설득하려 했지만 그 노란메크 역시 확신이 없다는 게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디셉티콘이 정당하게 아이아콘의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상태에서 반 사이클이면 이미 사이버트론은 정복당하고 난 뒤겠군요. 메가트론은 아주 쉽게 프라임님의 숨을 끊을거고 그걸 정당화 하실 능력이 있는 분입니다. 정말 그걸 원하십니까?"
"왜 이런 짓을 하지?"
잠든듯한 옵티머스 프라임의 얼굴을 내려다보는 라쳇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묻어나는 절박함은 내 자신감을 키워주기 충분했다.
"말했듯이, 전 제가 도망칠 구석은 만들어두고 싶거든요. 언제나 제 살길을 찾는게 중요한 메크라서요. 만일 디셉티콘이 다시 이 행성에서 추방되는 날이 온다고 해도 제가 한 일을 잊지 않으셨으면 할 뿐이죠."
노란 메크와 휠잭, 라쳇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노란 메크는 괴로운 표정으로 누워있는 프라임을 내려다보더니 조용히 명령했다.
"해."
"절대 후회하시지 않을겁니다."
난 미소와 함께 큐브를 옵티머스의 매트릭스 속으로 떨어트렸다.
프라울이 네메시스를 다녀간 직후의 일이다. 과학장교인 쇼크웨이브가 그의 발명품 하나를 건네 줬는데, 언뜻보면 에너존 큐브와 별 다름없이 보이는 것은 불길한 푸른 빛을 띈 채로 번쩍이고 있었다.
-올스파크를 흉내낸 물건이다. 올스파크와 똑같진 않지만 메크 하나를 일으킬 정도의 효과는 있지. 프라임이 쓰러진 원인은 내 실험 과정에서 매트릭스가 파괴되서인 모양이더군.
-매트릭스는 신의 산물 아닙니까? 그걸 일반 메크의 힘으로 고친다구요? 아니, 과학장교님의 실력을 의심하는게 아니라...
-당연히 고치지 못하지. 이건 프라임을 일어나게만 해 줄 거다.
-그게 단가요? 저희에게 왜 그게 이득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대로 내버려 두면 프라임은 반 사이클 이내에 회복하고 일어날거다. 프라임이 오랫동안 수면에 든건 매트릭스의 회복을 위해서지. 하지만 지금 깨운다면...
-...영원히 수복되지 않겠군요. 그런데 이걸 저한테 주시는 이유가?
-난 이미 오토봇들과 꽤 척을 져서 프라임이 있는 비밀 장소까지 안내받는건 힘들다. 하지만 넌 새 얼굴이니 또 모르지.
그런 이유 아니잖아. 핑크색 총사령관 무서워서 오토봇 심장부에 들어가기 꺼려하는거면서.
-기술개발부의 휠잭과 의사 라쳇이 프라임을 담당하고 있을거다. 아이아콘 중심의 제일 큰 의료센터 지하로 가라. 그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으면 더 좋고.
내가 가짜 올스파크를 떨어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옵티머스 프라임의 푸른 옵틱이 서서히 떠졌다. 곧 노란메크가 프라임의 품에 달려들어가 옵틱에서 세척액을 쏟아냈다.
"비? 왜, 왜 그러는거야? 왜 울어?"
프라임은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우는 노란 메크를 품에 안고 달랬다.
"그냥 기뻐서 그래."
프라임이 비라고 불린 노란 메크를 달래려 애쓰는 사이, 비밀 병실의 문을 박차고 한쪽 몸체가 날아가다시피한 프라울이 등장했다. 난 비라고 불린 오토봇과 마찬가지로 그가 프라임에게 달려가 그를 꼭 껴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그는 감히 그런것은 꿈꾸지도 못하겠다는 듯이 조심스러운 태도로 그에게 다가가 섬세한 손길로 프라임의 얼굴을 한번 쓸어 볼 뿐이었다. 프라임은 프라울의 한쪽 팔이 텅 비어있는 것을 보더니 놀람과 걱정을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생각보다 표정 변화가 많은 것을 보니 새 프라임이 젊은 메크라는건 사실이었나보다.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별거 아니야, 그냥 사고였어. 걱정 안해도 돼. 팔은 붙이면 그만이니까."
놀랍게도 저 메크도 다정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모양이다. 프라임은 슬픈 얼굴로 프라울의 깨진 옵틱 한쪽과 없어진 팔 어깨를 번갈아 보더니 세상을 잃은 것 같은 눈빛을 했다. 저 걱정과 미안함, 슬픔, 죄책감이 담긴 눈빛을 보면 아무리 죄가 없는 이더라도 죄지은 느낌을 받을만도 하건만, 정작 프라울이 변함없이 다정한 표정을 짓는 것이 소름끼쳤다. 프라임은 상상이나 하려나, 자기가 저렇게 걱정하는 이가 자기 안위를 팔아먹었다는 걸?
"프라임께서 무사히 회복되었으니, 전 가보겠습니다."
내가 깍듯하게 인사를 하자 프라임은 좀 더 이야기를 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난 마치 그걸 못본듯이 걸어나갔다.
프라임이 깨어난 후 더 있을 이유도 없겠다, 인사만 하고 브레이크다운과 병실을 나선 나는 누구도 우리 대화를 들을 수 없을 거리에 와서 입을 열었다.
"여기서 배워야 할 점이 하나 있어."
"그래, 날 일깨워줘봐. 뭔데."
"사랑하는 것은 절대 남의 손에 맡기지 말 것."
"무슨 뜻이야 그게?"
"네 순진함이 오히려 내 숨통을 트이게 하는거 알아? 뭐, 중요한건 아니지만."
난 어깨를 으쓱하고 네메시스 함선으로 귀환했다.
메가트론은 아이아콘에서 살짝 떨어진 위치에 네메시스를 띄워놓고 지하에 자리한 아름다운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태껏 메가트론이 정복해온 행성에 비하면 보잘 것 없이 작은 도시다. 그가 재미삼아 제거해버려도 될만큼. 하지만 그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돌아온 이유는 겨우 작은 도시 하나를 가지고 싶어서가 아니니까. 사이버트론에서 프라임은 중요한 위치 정도가 아니다. 그는 사이버트론에 에너존을 흐르게하고 죽음에서도 부활하며, 방황하는 모든 이의 불빛이다. 사이버트론은 프라임 없이는 지속할 수 없으며, 사이버트론에서 프라임이 가지는 신성한 위치는 그 어떤 짓으로도 가져갈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제거해서는 안되는 위치의 존재라면 그 지위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반드시 살아있어야 하는 존재라면 살아 있기만한 존재로 만들면 그만이지.
"메가트론 경, 프라임이 깨어났습니다."
"상태는?"
"깨어는 났지만 매트릭스는 제대로 회복되지 않을 겁니다, 원하시던 대로요."
"잘됐군."
비록 메가트론이 감정이 풍부한 메크는 아니었으나, 디셉티콘의 간부들 모두는 메가트론이 옵티머스에게 집착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내가 심리분석 전문은 아니긴 해도, 메가트론이 그에게 어떠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를 잃고 싶어하지 않는 동시에, 그가 망가지길 원하는 것도. 나는 그 복잡한 감정의 원인을 그의 과거에 대해서 듣기 전까지는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가 과거에 프라임과 어떤 관계였는지 듣고 나니 그림이 조금 그려졌다. 그는 과거의 프라임을 돌려받고 싶은 것이다. 그가 프라임과 과거의 광부에 불과하던 오라이온을 분리해서 생각하고 있냐고? 천만에, 메가트론도 분별력은 있는 메크인데 그런 환상을 품을리가. 그는 단순히 과거를 그리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자신에게 기대지 않으면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도 벅차던 시절의 그를 돌려받는 것이다. 늘 제 손안에 두고 통제 할 수 있으며, 언제나 자기 손을 벗어날 수 없고, 언제나 자기 도움을 받지 않으면 에너존 하나 먹을 수 없던 시절의, 아무리 발버둥쳐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록보관소에 뛰어드는 것 뿐이던 시절의 아름답고 활달하지만 어디까지나 그의 손 아래 있던 시절의 그를 돌려 받는 것. 프라임의 추락은 그저 덤일 뿐이다.
이딴게 사랑이냐고? 당연히 사랑이지! 저렇게 파괴적이고 비뚤어졌고, 타인을 망가트리길 바라고, 구속하고 괴로워하길 바라는 뒤틀린 마음으로 누군가를 몰아갈 수 있는 감정이 사랑이 아니면 달리 뭐 있겠어?
약메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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