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인터뷰
“당신도 이상형... 뭐 그런 거 있었습니까?”
이제 제법 자란 머리칼을 만족스럽게 뒤로 넘기며 거울 너머 네잇에게 물었다. 전혀 궁금하지 않은 척, 매우 캐주얼하고 가볍게 질문하는 데 성공했다. 네잇이 뚫어져라 거울 속 브랫의 얼굴을 보고 있었는데, 그게 약간 반한 표정이었다. 왕자병이 있는 건 절대 아닌데, 그 정도로 지금 네잇의 표정이 투명했다. 허파에 바람이 잔뜩 들어간 브랫이 암컷을 유혹하는 오랑우탄처럼 부푼 가슴을 하고 네잇을 돌아봤다.
“응.”
그냥 응, 이러면 어쩌라는 건지. 뺨이 발그레하게 익은 네잇이 여전히 동그랗게 뜬 눈으로 브랫을 쳐다보고 있었다. 방금 한 샤워로 곱슬 머리칼이 탱글하게 말려 이마 위로 늘어졌다. 가져본 적 없던 어린 시절 곱슬머리 인형처럼 생겼다. 어떻게 저렇게 생겼지? 어떻게 저 사람이 불과 몇 달 전까지 한 소대를 살리겠다고 목숨 걸고 뛰던 그 사람이랑 동일인물이란 말인가! 갑자기 벅차오른 브랫이 빗을 내려놓고 네잇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았다.
“나의 에인-”
-절. 단어 하나를 온전히 마무리하기도 전에 정강이를 걷어차인 브랫은 순식간에 욕실에 홀로 남겨졌다. 내가. 무슨. 짓을. 했단. 말인가.
“사람을 외형적으로 판단하는 건 정말 모든 면에서 잘못됐다 할 수 있지. 하지만! 정말 불가피하게 외적인 모습이 나에게 어필된다면 그건... 키가 크고, 다리도 길고, 가슴도 좀 있고, 태닝된 피부가 좋겠어. 곱슬보다는 직모였으면.. 눈은 파란색. 눈 큰 사람이 좋아. 입매도 시원하고.”
뒤쫓아서 찾아가니 의외로 네잇의 입에서 이상형이 술술 나왔는데, 그것도 꽤 디테일하게, 아니 근데 듣고 있으려니,
“정확히 브랫 콜버트네요.”
스물다섯 중위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개졌다.
“여자친구 몇 명이었는데요.”
“남자를 사귈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살면서 해본 제일 나쁜 짓이 뭐였어요?”
브랫의 인터뷰는 이어졌고, 네잇은 면접에 합격하길 원하지 않는 거만한 응시자처럼 모든 질문에 간결하게 대답했다. 문제는, 반격이었다.
“여자 몇 명하고 자봤어?”
“남자랑도 자봤어??”
“살면서 해본 나쁜 짓이 또 뭐 있었어???”
브랫은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아임 쏘리, 써. 따위 말들을 속삭일 수밖에 없었다.
16. 탈룰라
네잇의 대학원 개강이 다가와 둘의 짧은 휴가, 아니 동거가 3주 만에 끝이 났다. 올 때는 지갑에 휴대폰만 챙겨 왔던 네잇이 돌아갈 때는 캐리어 하나 가득 채워 갔다. 그 안에는 브랫과의 추억과 그리움이 가득 차 있었다. 본가에 머물면서 대학가 앞 작은 플랫을 알아보는 등 대학원 준비를 하는 일주일 동안 두 사람은 매일 밤 두 시간 이상씩 통화를 했다. 네 시간의 시차에도 동시간을 사는 것처럼 애틋하게 통화하며 함께 있을 때보다 더 절절하게 사랑을 속삭였다.
개강을 하루 앞두고 브랫이 갑자기 네잇의 플랫 앞에 나타났다. 전날 밤 통화할 때도 온다는 말 한마디 없었는데.
“브랫, 기분파야?”
“싫습니까?”
“아니, 안 왔으면 내가 갔을 거야. 개강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브랫 허리에 다릴 두르고 매달린 채로 문 앞에서 열정적인 키스를 나눴다. 브랫의 다리에 힘이 빠질 때쯤 내려온 네잇이 작은 플랫 구석구석까지 브랫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캘리포니아 브랫의 집에서 가지고 온 물건들이 이곳저곳을 채우고 있었다. 브랫이 붉어진 눈시울로 네잇을 빤히 쳐다보다가 또 갑자기 잡아먹을 듯 입술을 맞부딪혀왔다.
한참을 그렇게 불붙은 듯 소파에서 일을 치르고, 아직 덜 된 정리를 브랫이 돕기 시작했다. 벽에 못을 박고, 책장을 조립하고, 가전제품의 선을 연결하고. 일주일 동안에도 못했던 것들이 브랫이 오자 순식간에 완성되고 있었다. 소파에 오렌지 쿠션을 올려놓는 걸로 마지막을 장식하고 나란히 샤워를 했다. 2미터 육박하는 장정 둘이 함께 하기엔 턱없이 좁은 샤워부스였지만 오히려 좋았다. 머리를 말리고 나온 브랫이 서재에 있는 네잇을 찾아냈다.
“범생이처럼 내일 시간표 책가방 싸는 건 아니겠죠.”
내일 시간표 책가방 싸던 네잇이 가방 안에서 얼굴을 빼내며 문가에 선 브랫을 쳐다봤다.
“역시 최고의 준비된 장교다우십니다.”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브랫이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백팩 안에 내일 필요할 모든 물건이 제대로 있는지 세 번 점검한 네잇이 개운한 미소로 화답하며 가방을 바닥에 내려놨다.
“나가자. 드라이브하고 밥 먹게.”
“차도 있습니까? 제가 맞춰보죠.”
입고 있던 옷에 대강 후디를 걸치며 문밖을 나섰다. 브랫이 플랫 앞 드라이브 웨이에 세워진 차들을 면밀히 탐색했다.
“설마 싸커맘 볼보는 아니겠죠.”
“맞아.”
네잇이 옆옆집 앞에 세워진 차를 향해 키를 누르는데 파란색 볼보에 불이 들어오며 잠금이 풀어지는 소리가 났다. 브랫이 당황한 얼굴을 순식간에 정리하고 조수석의 문을 열었다.
“스웨덴 차 좋죠. 튼튼하고.”
네잇이 코웃음 치며 시동을 걸었다. 그러자 바로 음악이 나왔는데,
“펄 잼이요? 나쁘지 않네요. 팬지애스 대학원생들은 망할 후티 앤 더 블로우 피쉬나 들을 줄 알았는데요.”
“걔네도 좋아해. 공연도 갔었는데.”
“정말 괜찮은 밴드죠. 신실하고.”
차라리 혀를 깨물까, 그럼 입이라도 닥치지. 브랫은 잠시 고민했다.
젠킬 브랫네잇 슼탘
#브랫네잇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