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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4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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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어느덧 스크럼이 끝난지도 40분이 훌쩍 넘어가는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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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

정말이지 딱 죽을 맛이었다.

모두가 떠나고 텅 비어버린 테이블에 꼼짝도 못 하고 발이 묶여있기 때문이었는데. 그 이유는 찰리가 저-쪽, 나와 멀리 떨어진 테이블 끄트머리에 앉아 허공의 한 점을 멍하니 응시한 채로 요지부동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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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상태로 핸드폰도 뭣도 없이 꼬박 40분이나 흐르다니. 차라리 가이딩을 받지 않겠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거나 뭐라 투정이라도 부렸으면 모르겠는데 인상은 박박 쓴 채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치만 보여 담이라도 걸릴 것만 같았다.

게다가 그는 평소에도 말수가 적어서 말을 걸기가 쉽지 않은 편이었는데 눈 앞에서 흡사 피의 난투극(아님)을 보고 나니 간이 떨려서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연유로 영락없이 이곳에 발이 묶인 신세가 되어버렸다.

팀장님 시발 진짜 저한테 왜 그러세요 진짜.

찰리와 단 둘이 남게 한 가렛이 한 없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지금쯤 팀장님은 폰도 하고 편하게 누워서 야한 망상이나 하고 있겠지?(아님) 하... 둘의 싸움에 말려들었다는 느낌을 씻을 수 없었다. 운도 지지리도 없지...! 아침부터...!

자꾸만 터져나오려는 한숨을 못내 삼켜냈다.




"가이딩..."


얼마나 더 지났을까. 뇌에 힘 풀고 멍 하니 앉아있는데 헛기침과 함께 조그만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그가 입을 연 것이었다. 내 쪽은 죽어도 보지 않겠다는듯이 사선으로 등을 진 채 였지만.



"...네?"
"가이딩. 안할거야?"


찰리는 흘러내린 앞머리를 느릿하게 쓸어올리며 말했다. 언뜻 보이는 그의 표정이 날카로웠다. 가이딩 지금 할까요?반가운 소리에 얼른 벌떡 일어나 되묻자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대신 찰리는 자신의 소매를 천천히 접어올렸다. 사각사각 옷감이 스치는 소리가 대답을 대신하고 있었다. 난 눈치껏 기민하게 자리를 그의 앞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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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만 잡고 가이딩 할 건가 보네.
그러기엔 가이딩 수치가 좋지 않을텐데...

그가 소매를 걷는 것을 얌전히 기다리며 생각했다.

그의 수치로 말할 것 같으면 팀에서 가장 최악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조금 과장해서 당장 폭주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앉아있을 수 있다는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손만 잡고 가이딩을 한다고? 그 정도의 몸 상태라면 할 수 있는 수위 높은 가이딩은 모두 진행하는 것 맞는 절차였다.

진지하게 사심 빼고. 진짜로...!

가이딩은 오롯이 센티넬을 위한 것이었으니.

일반적으로 내가 겪은 센티넬들은 자신의 몸상태보다 더 과한 가이딩을 요구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방사나 손을 잡는 간단한 접촉으로는 만족을 못 하고 대뜸 입술을 들이밀거나 가이드에게 달려드는 일이 허다했다. 물론 팀가이드가 아닌 이상 공공가이드는 센터의 관리 아래 있기에 불상사가 일어나기 전, 사전에 차단되지만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보니 센티넬을 무서워하는 공공가이드들도 꽤나 있는 편이었다.

그런데 센티넬인 찰리는 가이딩을 최소한으로 받으려고만 하고 있다. 아니, 이 팀의 모든 사람들이 가이딩을 썩 원하지 않고 있었다.

가이딩을 거부하는 센티넬들.

폭주 위험을 감수하면서 까지 가이딩을 받지 않는 센티넬들은 만나본 적이 없었는데.

그만큼 전임자의 가이딩이 좋았던걸까? 아니면 전 가이드와 그들 사이의 유대감이 특별하게 돈독했던걸까? 다른 사람에게 가이딩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이렇게 낙심할만큼 말이다.

아니면 그냥 내가 싫은건가...?

맞은편에 앉은 찰리를 보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손 닦았어?"
"...네?"


그러다 툭 던져진 그의 질문에 퍼특 정신이 현실세계로 돌아왔다. 손 닦았냐고. 그가 답답하다는듯 대답을 재촉했고 나는 얼 빠진 얼굴로 기계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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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씻고 와."



하지만 찰리는 미심쩍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갔다 오라는듯 턱끝을 까딱였다. 앗, 넵. 나는 그의 고개짓에 재깍 자리에서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불만이 없는건 아니었지만 토를 달자니 그가 주는 위압감이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손을 씻고 오라니. 가이딩 인생 4년 차에 처음 들어보는 주문이었다.





"씻고 왔습니다."



손을 씻고 돌아오니 찰리는 단정하게 소매를 접고선 얌전히 테이블 위로 양손을 올려두고 있었다. 손 마디가 굵고 결이 거칠어 보이긴 해도 그는 의외로 길고 예쁜 손을 가지고 있었다. 슬그머니 자리에 앉아 그를 마주보자 그가 눈에 띄게 내 손을 훑어보며 물었다.


"비누로 씻었지?"
"넵. 두 번 씻었습니다."
"손가락 사이 사이?"
"네...!"
"손톱 밑까지?"
"네......!"


흡사 청결검사를 받는 유치원생이 된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그는 깐깐한 유치원 교사가 되려나. 내가 증명이라도 하듯 손을 펼쳐들자 그가 유심히 내 손을 살펴보았다. 그걸 본다고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보이는건 아닐텐데. 그럼에도 살펴보는 그의 눈매가 퍽 진지해서 슬며시 웃음이 났다. 희희. 소리 없이 웃는데 내 손을 뜯어보던 그가 눈썹을 휘어트리며 나를 흘겨봤다. 얼른 올라간 입꼬리를 끌어내렸다. 그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지만 그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 가이딩...시작 할까요?"



검사도 끝났겠다, 그를 향해 손을 스윽 내밀며 운을 뗐다. 이제는 정말 가이딩을 시작할 때였다. 그가 테이블 가운데로 들이밀어진 내 양손을 보자 혀를 내어 입술을 축였다. 곧이어 찰리는 꾸욱 입술을 감쳐물고서는 불안한듯 덜덜덜, 다리를 떨기 시작했고 급기야 제 손을 몇번이나 쥐었다 풀기를 반복했다. 그의 손끝이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 주먹을 쥐었다 펼 때 마다 그의 손바닥에 핏기가 사라졌다. 굳은 그의 표정에서는 극도의 긴장감이 묻어 나왔고 목이 타는지 연신 큼큼거렸다.

알 수 없는 그의 이상행동에 나는 눈치만 슬금슬금 보며 그가 손을 잡기를 끈기있게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나 긴장하는거지. 괜시리 나까지 긴장이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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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이윽고 천천히 그의 큰 손이 내 손 위로 포개어 올라왔다. 손이 맞붙고 온기가 서로를 더 따뜻하게 덥히는 감각이 손바닥에서 느껴졌다. 찰리의 손은 체온이 높고 살짝 축축했는데 그게 찝찝하진 않았다.

나는 천천히 찰리의 손가락 사이로 내 손가락을 얽혀 맞잡았다. 그의 뼈대가 커서 손가락 사이로 빠듯하게 들어찼다. 손바닥이 더욱 깊게 맞물리자 닿이는 피부결 사이 사이에 가이딩 기운이 무서운 속도로 흡수되었다. 잠깐 사이 가벼운 현기증이 핑 돌 정도의 양이었다. 가렛과 벤의 상태와 비교할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가이딩을 한명 한명 할 수록 연신 최고 기록을 갱신하는게, 대체 무슨 팀이 이런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특히나 찰리는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띵 할 정도인데 점막 가이딩이라도 하게 됐다면 하루 이틀은 내리 잠만 잘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기분은 좀 괜찮으세요?"



급하게 넘어가는 가이딩의 감각이 어느정도 익숙해지자 그를 살필 여유가 생겼다. 시작 전부터 긴장을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 이 참에 대화라도 나누면서 그를 조금 더 편하게 만들 요량이었다.



"으..."
"괜찮...으세요?"


하지만 그의 안색은 급격하게 파리해져 가고 있었다. 분명 가이딩 기운이 잘 들어가고 있는데 마치 내가 그의 기운을 앗아가는듯 그의 표정이 서서히 구겨지는 것이었다. 으으... 앓는 소리까지 내기 시작하자 나는 여지없이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주, 중령님 괜찮으세요? 걱정되는 마음에 맞잡은 손까지 흔들어가며 재차 물었다. 그는 대답도 못 하고서 손을 덜덜 떨었고 얼마 안가 온 몸을 떨기 시작했다.

왜, 왜 이래!

슬슬 나도 무서워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폭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짧은 그 찰나에 비상본부에 연락을 해야할지 혼자 가이딩을 시도해야할지 고민하고 있는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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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 웁, 더러워! 난 못 해!"


그가 헛구역질을 하며 내 손을 파드득 털어냈다...?


하하, 시팔. 무슨 경우지 이건?









14.

개같은 구토사건이 있고 난 후, 나는 수소문 끝에 몇 가지 내가 몰랐던 사실들을 알아낼 수 있었다.




먼저, S팀은 가이딩을 거부하는 센티넬들이 모인 팀이라는 것이었고

두번째, 예로 부터 한명, 한명 가이딩을 극단적으로 거부한 유구한 역사가 깃들어 있었으며

세번째, 유일하게 팀가이드, 그러니까 내 전임자만이 그들을 가이딩 할 수 있었다는 것과

네번째, 그 가이드가 하필 6개월 전 맡았던 임무에서 사고에 휘말려 현재 가이드 연구소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놀라운 것은 이 정보를 얻는 것이 까먹은 계정 비밀번호 보다 알아내기 쉬웠다는 것이었고 알고 보니 나 빼고 센터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환경미화원 윌 아저씨도 알고 계셨다.

그걸 나만 몰랐던 거고.

가이딩을 거부하는 것 같다는 내 생각은 예감이 아니었고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었다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니 이상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가이딩을 받는데 긴장을 하는 것도 가이딩 받으라 했다고 하극상을 부리는 것도 가이딩 한다고 패대기를 치는 것도 그리고 헛구역질까지(딥빡)

아무튼 요점은 그들의 이런 문제행동은 나라서 생긴 행동들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각자만의 이유로 가이딩을 싫어하게 된 것 같았다.

그 이유는 자세히 모르지만 소문에 의하면, 가렛은 가이딩이 받기 싫어 장교인 아버지의 힘을 빌려 팀을 만들었고, 찰리는 센터에 왔을 때 부터 결벽이 심해 가이딩을 할라 치면 발작을 하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결국 가렛이 그를 섭외해 갔다는 후문까지. 그리고 벤은 어릴 때 부터 센터에 자라서 예전엔 괜찮았는데 어느 순간 가이드 자체를 싫어하게 되었다고 한다. 마지막 파월은 특이하게도 가이드들과 많은 스캔들에 연루 될 정도로 센터 내의 유명한 바람둥이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모든 걸 정리하고 가이딩도 거부하더니 자진해서 팀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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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시이팔. 이게 뭔 구전설화도 아니고."




앞으로가 막막했다. 내가 잘 하던 공공가이드를 때려치고 팀가이드를 하겠다고 덥썩 제의를 받아들인 것은-물론 상부의 압박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별다른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내가 '낯'을 좀 가린 탓이랄까.


사실 A급 공공가이드의 삶은 생각보다 안락했다. 월급도 쏠쏠했고 복지도 좋았고 워라밸은 최상. 어디 적진에 나가 총 맞거나 죽을 일도 없었고 괜히 엄한 팀에 들어가 속된 말로 성노리개가 될 만한 일도 드물었다. 보통 팀이 꾸려졌다는 것은 최정예라는 의미였고 그 말은 즉, 팀원 대부분이 S급, 간혹 한 두명 정도만 A급 센티넬로 이루어져 있었다. 때문에 그들 모두를 케어하기 위해서는 S급 가이드가 최우선으로 선점되어야만 했다. 생태가 그렇다보니 팀가이드로서 기회가 올 일은 거의 없었다. 나도 바라지도 않았지만. 그저 센터에서 그날 그날 배정해준 센티넬들과 적정거리를 유지하고 부대끼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나름대로 A급으로서 공공가이드 생활을 만족하고 있었다는 뜻?




'나 정도면 잘생긴 편 아닌가?'
'손 주세요.'
'평균 이상은 되지?'
'가이딩 시작하겠습니다.'
'솔직히 내가 사귀자고 하면 사귈거잖아.'
'아니오. 당신의 의견에 반대합니다.'




음, 나름대로..? 약간의 문제가 있다면, 굳이 하나 꼽자면 못생김이랄까, 하하. 참... 원래 나도 이렇게 사람 외모로 판단하는 사람이 아닌데 말이지. 오해마시길.

일종의 직업병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래도 가이딩이라는게 스킨쉽은 필수이다 보니 관점이 좀 변했다고 할까. 공공가이드 라는게 보통은 손을 잡는 걸로 끝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분명히 존재했다. 센터에서는 방문한 센티넬의 수치에 따라 필요한 가이딩의 수위를 정해서 공공가이드에게 지령을 내려준다. 그러면 가이드는 선택권이 없었다. 센티넬이 진상을 부리지 않는 한, 가이드는 센터에서 키스 하라하면 해야했고 까라하면 까야하는 것이 조건이었기에. 물론 나는 아직 공공가이딩으로 끝을 본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종종 손 잡는 것 이상의 스킨쉽이 존재했고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특히 나도 눈이란게 있는데 적어도 '키스'를 하고 싶다고 느껴지는 사람과 하고 싶은게 사람 마음 아니겠냐고... 현실은 생각보다 무참했고 미디어 속 잘 생기고 몸 좋은 센티넬들은 허상이었다.

그렇기에 팀가이드 제의를 받는 자리에서 무심코 프로필 파일을 연 내가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은 불가항력이었다.

사전조사 하고 고심 할 만한 그런 얼굴들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후우..."



그럼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

미남들과 스킨쉽 좀 해보겠다고 들어온건 맞지만 그렇다고 가이드로서 사명감이 없는 쓰레기는 아니었다. 내가 3개월을 참다 참다 가렛의 사무실에 쳐들어간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정말 이대로 가다간 누구 하나 사달이 날 것 같아서. A급인 내가 방사를 한다고 해서 S급 4명한테 씨알이나 먹히겠냐고. 당연히 아니었다. 현 시점에서는 삼일 밤낮 가이딩을 들이부어서라도 채워야할 만큼 시급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가렛은 무슨 이유에선지는 몰라도 가이딩을 받아줬다지만 나머지는 어찌해야할 지. 어제 있었던 가렛의 으름장에도 다른 팀원들은 감감무소식이었고 손 잡았다고 헛구역질 하는 S급 센티넬을 어떻게 가이딩을 해줘야 할지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구토를 하든 주먹이 날아오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밀고 나가야 할까.

피멍이 빠지지 않은 팔뚝을 매만졌다. 조금 괜찮아졌나 싶었는데 손으로 누르면 아직도 통증이 뭉근하게 느껴졌다.

그렇지, 그들은 센티넬이지.

정말 가이딩한다고 덮치면 저들이 죽기 전에 내가 죽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걱정과 근심에 뒷골이 뻐근하다.






"미남...공략작전?"



그때, 머리 위로 들리는 낮은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경련을 하듯 펄쩍 뛰어올랐다.



"왁! 깜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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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건?"


파월이었다. 파월은 내가 방금까지 끄적거리던 이면지를 들어올리며 웃고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할 때 하는 습관같은 거였다. 그가 키득키득 웃으며 내가 끄적이던 종이를 읽어내렸다.



"아, 진짜 심장 튀어나오는줄 알았네. 별거 아니에요. 주세요."


나는 얼른 그가 들고 있는 종이를 낚아채 책상 위에 덮어두었다. 별로 중요한 건 아니었지만 뇌를 거치지 않고 써내린 것 들이라 민망할 뿐이었다. 그런데 지나쳐 갈줄 알았던 그가 의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내 옆자리에 아무렇지 않게 털썩 자리를 잡고 앉았다. 꿈벅 꿈벅 눈을 깜박이며 쳐다보자 파월은 뭐가 문제냐는듯 나를 보며 싱긋 웃어보였다.

처음이었다. 그가 먼저 다가온 것은.



"그래서 미남이 누군데?"




그는 몸을 내 쪽으로 틀어두고선 한손으로 테이블을 피아노 치듯 토도독 두드렸다. 이렇듯 언제나 그는 특유의 여유로움이 묻어있는 사람이었다.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저 웃음기 어린 표정이 크게 바뀌는 법이 없었다. 그는 분위기를 살피고 관찰하는 위치를 고수했다. 그 자리에서 뭔가를 더 가하지도 감하지도 않고 상황을 지켜보곤 했다. 그런 사람이 어제부터 뭐가 그리도 즐거운건지 평소보다 들떠보이는 것은 기분 탓은 아닌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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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여간 여기 사람들은 하나같이 특이하다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있어요. 그런게."
"혹시, 나야?"
"......"
"아님 말고."


파월은 어깨를 으쓱였다. 사실 미남 중 하나가 그가 맞아서 대답을 못한 것 뿐이었지만 그는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럼 '구토씨발사건'은 무슨 사건이야?"
"앗."


그것까지 읽었다니. 그 짧은 순간에 빨리도 훑어본 그였다. 파월은 내 대답을 기다렸다. 정말 궁금하다는듯 눈을 반짝이면서. 이걸 말을 해도 되는건지 잠시 고민했다. 비밀로 해야할까? 근데 찰리의 그런 성향을 센터 환경미화원도 아는 마당에 팀원들이야 모를리 없을테고, 또 한지붕 아래 살고 있으니 언젠가는 다들 알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터놓고 말할 사람이 필요하기도 했고.

이게 또 크게 비밀로 할 일은 아니니까.

짧은 고민 끝에 나 역시 자세를 고쳐앉아 몸을 그의 쪽으로 틀었다.



"그게, 어제 팀장님이 허냄 중령님 보고 가이딩 받으라고 하셨잖아요..."
"아~"


그러자 파월은 알만 하다는듯 웃었다. 역시 다들 아는구나. 그의 이름만으로도 충분한 설명이 된 것 같았다.



"설마 너한테 다 토했어?"
"아뇨, 사실 정말 토를 한건 아니고 헛구역질을 조금..."
"손만 잡고 했지? 얼마나 잡고 있었는데?"
"한 30초쯤...?"
"오."


나쁘지 않은데? 그의 눈썹이 소폭 올라갔다. 의외의 반응에 내 눈썹도 그를 따라 상승했다.



"나쁘지 않은 건가요?"
"그 정도면 양호하지. 손이 닿기도 전에 눈 돌아간 적도 많은걸."


헉...! 내가 숨을 들이키자 파월은 잘게 웃음을 흘렸다. 그럼 헛구역질 정도는 많이 봐준건가? 기분이 좋아야 할지 나빠야 할지 모르겠다. 토도독 토도독 톡. 경쾌하게 책상을 두드리던 파월의 손가락 소리가 멈춰졌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지 작전 세우는 중? 미남들 '공략' 하려고?"
"악! 쫌 조용히 좀 말해요!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네."
"왜? 난 본대로 말한건데. 일명 미남공략작전."
"으악! 쉿! 쉬이-"
"미!남!공-"


재빨리 손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자 그는 그걸 또 몸을 슉슉 기울여 피했다. 하하하! 하고 호탕한 웃음 소리가 울려퍼졌다. 파월의 눈매가 반으로 접히며 보기 좋게 휘어졌다. 원래 이렇게 개구진 성격인가? 평소에도 잘 웃는 편인 것 같긴 했지만 그건 다른 팀원들한테만 그렇고 보통은 나와 일절 말을 섞지 않았어서 잘 모르겠다. 무신경한 그의 모습이 내겐 더 익숙해서 이런 면이 의아하면서도 조금 낯설다.

싫진 않은 느낌.

조금은 팀원으로서 받아들여 주는 걸까 하는 기대감이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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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줄까?"
"...예?"
"도와줄게, 내가."



그러던 그가 비밀 얘기 하듯 목소리를 과장되게 낮췄다. 그의 표정에는 여전히 장난끼가 가득했다. 조력자 필요하지 않아? 물어오는 그가 코를 살짝 찡그러트린다. 잘 뻗은 콧대가 일그러졌다 다시 반듯하게 뻗어 내렸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헷갈려서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는 내가 못 미더워서 그런다고 생각했는지 맹세라도 하듯 주먹으로 제 가슴께를 가볍게 두드려 보이기까지 했다.


"티 안나게 밀어줄게. 맡겨봐."
"음..."
"하나 보단 둘이 낫지 않겠어?"



그가 짐짓 진지한 표정을 그려보였다. 그야 하나 보단 둘이 나을테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한테는 그가 큰 도움이 되긴 할텐데... 나는 내 앞에 나타난 그를 진중히 바라보았다. 도무지 어떤 의도를 가진 것 같진 않았다. 그저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즐거워 보인다는 것 정도?


"근데 왜요?"
"응?"
"왜 도와주시려는 거에요. 갑자기?"


그럼에도 엄밀히 말하면 작전의 타겟이기도 한 그가 갑자기 나타나 팀원들이 가이딩을 받도록 도와준다는게 이해가 되진 않았다. 솔직히 냉정하게 말해서 이제껏 나랑 대화도 해본 적 없는데...?

갑자기 왜? 무슨 심경변화가 있어서?

음...그는 내 질문에 뭔가를 곰곰히 생각한다. 신중히 말을 고르는 것 같기도 하고 뜸을 들이는 것 같기도 하다.



"음, 다들 가이딩은 받아야지 않겠나 싶어서. 위험하잖아."
"그렇긴 하죠."
"그리고 재밌어 보이기도 하고."
"재미...요?"


그러니까 대체 어느 부분이? 지금 나는 누구 하나 잘못될까 두려운데 재미란다. 방싯 웃는 그의 얼굴을 어이없이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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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잘생겼다.
뭐랄까, 얼굴에 설득력이 있어.

그래, 그럴 수 있지. 나도 모르게 납득이 간다. 그리고 그가 도와준다 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나는 얼굴에 설득되어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 또 하나.
꼭 넘겨짚어야 하는 것이 있었다.



"근데요."
"응?"
"그거 아시죠?"
"뭐를?"
"님도 가이딩 받으셔야 하는거요."


그러자 그가 곤란하다는듯 눈을 굴렸다. 가이딩이라...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다시 그의 손가락들이 바쁘게 테이블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토도독 토도독.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그 소리가 톡 하고 멈춰졌다.


"좋아."
"뭐가요?"
"가이딩."
"에?"
"까짓거 받지 뭐."
"오 진짜요?"


내가 반색하자 그가 악수를 권하듯 손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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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나는 손잡는 것 까지만 하면 안될까?"


그가 사정을 하듯 눈썹을 늘어트린다. 그의 손이 우리 둘 사이에 둥 떠있었다. 딜을 하자는 건가. 생각해보니 파월은 다른 팀원들에 비해 수치가 양호한 편이기는 했다. 그래받자 이 안에서 비교한 것 뿐 어디 내놓으면 시한폭탄 센티넬이란 소리 듣기 십상이겠지만.

그럼에도 나쁘지 않는 제안이라고 생각한다. 자주 오래 손을 잡고 있으면 될 일이니까. 그리고 손을 잡다보면 어떤 기회가 올지 모를 일이니까. 후후.

근데 이거 아무리 봐도 나만 좋은 조건 같은데, 괜찮나?

내밀어진 손과 그를 번갈아서 바라봤다. 그는 사람 좋게 웃으며 어서 잡으라는듯 손을 더 바짝 내밀었다.

뭐, 모두가 폭주위험대상에서 해방된다면야 꼭 나만 좋은거라곤 볼 순 없나.



"그러죠."


결국 그의 손을 맞잡았다. 단단하게 쥐어지는 적당한 악력이 손아귀에서 느껴졌다. 가이딩 기운이 손 안에서 멤돌다 흩어지는 것도. 역시나 기운을 빨아들이는 속도가 어마어마했다.

그럼에도 파월은 표정변화 없이 잡은 손을 아래 위로 가볍게 흔들 뿐이었다.









클리셰 클리셰 신나는 노래

가렛너붕붕
훈남너붕붕
벤반스너붕붕

파월너붕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