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OO = 가슴문신
스포주의 빻취주의
"이건 또 뭐지?"
센티넬은 흥미로운 눈으로 고개를 뻣뻣이 쳐든 부역자를 바라보았다. 보란듯이 발을 딛고 일어서, 형형하게 시선을 뻗고 있는 패배자를.
"난 네놈에게 무릎 꿇지 않아."
온몸으로 노골적인 반발심을 표하고 있는 메크는 한때 구역에서 가장 뛰어난 실적을 쌓았던 광부이자 그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D-16. 권위의 상징인 프라임을 동경하던 일개 하급 광부. 주어진 체제에 따르는 법밖에 모르던 순진하고 멍청한 애송이.
그래서 훌륭했고, 그래서 우스웠다. 센티넬은 입가를 끌어올렸다. 그는 여유롭게 D-16을 내려보았다.
"자존심이라도 내세우려는 건가?"
"난 네가 전혀 무섭지 않거든. 그 이유를 알려줄까?"
손에 철퇴가 들려있었더라면 상대를 으스러뜨리고도 남았으리라. D-16은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증오와 울분이 안구의 부품 사이로 그득하고, 진득하게 뒤얽혀있는 눈빛. 비어있던 구멍에 코그를 되찾고 비로소 완전한 트랜스포머가 되었지만 이 딱한 반란 모의자의 내면에 든 것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에게서는 정제되지 않은 분노와 축을 이루지 못하는 신념이 고스란히 읽힐 뿐이었다. 이래서야 어린애 장난질에 장단을 맞춰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센티넬은 그에게로 더 가까이 고개를 기울였다.
"부탁해."
"난 더이상 잃을 게 없거든." D-16이 씹어뱉듯이 읊조렸다. "네놈이 전부 앗아가버렸으니까."
그것은 나무랄 데가 없는 발언이었다. 진실도. 삶도. 목숨도. 그가 손에 거머쥐었고 거머쥘 것이었다. 그보다 더 명료하게 자신과 이 광부의 관계를 요약할 수 있는 문장도 없을 터였다. 센티넬은 증오로 기입된 살해 예고장을 받으며 어렴풋한 희열을 느꼈다. 만족스럽군, 아주 좋아.
센티넬은 흔쾌히 긍정했다. "내가 그랬지."
거대한 소리와 함께 D-16의 동체가 나가떨어졌다. 겁 먹은 광부 하나가 숨을 집어삼키고, 수십의 패잔병들이 일제히 쓰러진 광부를 향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D-16은 묶인 손목을 뒤틀며 신음했다. 까뒤집어진 벌레처럼. 그는 이를 악물고 상체를 일으켜 세우려 했으나 프라임의 심복이 더 빠르게 움직였다. 감시하는 눈으로 머리를 장식한 센티넬의 부관은 한 번의 발짓으로 그의 어깨를 단호하게 바닥에 처박았다. D-16의 시야로 그의 무심한 눈길이 드리웠다.
"아. 어디서 못 보던 스티커를 붙여 왔군, D-16? 메가트로너스 프라임이라."
센티넬은 쓰러진 광부 위로 허리를 숙였다. 그의 손가락은 간단하게 D-16의 어깨에서 형광색의 스티커를 떼어냈다. 에어라크니드의 발밑에 깔린 동체가 격렬하게 요동쳤다. 센티넬은 옛 전사의 가면을 모사한 스티커와 D-16의 격분한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하필이면 메가트로너스라, 그러나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침실에서 마지막으로 자넬 보았을 때 이런 건 어디에도 없었는데. 설마 나 말고도 다른 상급자에게 몸을 내어주는 취미가 있었나? 그렇다면 보상으로 괜찮은 걸 받은 것이로군."
하급 광부의 목에서 짐승처럼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의 주홍색 옵틱이 날카롭게 좁혀들었다. "입 닥쳐."
"왜 그런 눈으로 보나. 자네에게도 자랑스러운 기억일 텐데. 그토록 '존경하고 우러러보던 프라임'과의 영광스러운 독대였잖나? 한 번 여길 써보니 그 뒤부터는 쉬워진 모양이야. 이런 귀해 보이는 물건을 붙이고 다닐 정도면 말이야."
센티넬이 노크하듯 D-16의 밸브 패널을 두들겼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럼 자넨 내게 갚아야 할 빚이 있는 셈이 아닌가? 여길 여는 법은 내가 알려준 것일 텐데. 내 개인실에 처음 찾아왔던 자네는 다리를 열어젖히는 행위조차 서툴렀던 반편이였으니 말이지."
"닥치라고 했을 텐데!"
군더더기 없는 발길질이 수직으로 작렬했다. 금속이 통째로 우그러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천장을 매섭게 들쑤셨다. 에어라크니드의 발은 광부의 어깨를 탈구 직전에 이르기까지 짓밟고 있었다. 센티넬은 느물거리듯 웃으면서 치를 떠는 낯을 내려다보았다.
"이런, 입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내 부관은 몹시 충성스럽거든. 어찌나 충성스러운지, 주인에게 향해지는 질 낮은 모욕들을 좀처럼 넘겨 듣질 못해 말이야."
D-16의 잇새로 고통에 겨운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의 온몸은 통증의 여파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센티넬은 고개를 기울이며 그의 경련을 찬찬히 관찰했다. 언젠가를 기억나게 하는 광경이었다. 그다지 대단할 것이 없었고, 어떤 의미도 이루지 못했으며, 그렇기에 기억 회로 한켠에서 고철 더미처럼 퇴락해가고 있던 기억. 그는 처음으로 그 기억을 쓰레기장에서 집어내 먼지를 털어보았다.
그때와는 눈빛이 달라졌군. 당혹과 순응이 반씩 섞여 있던 황색의 눈동자는 이제 거의 낙조에 가까운 색을 띠고 있었다. 흥미로운 일이었다. 고작 이 세상의 진실을 깨달았다고, 가슴의 구멍에 코그를 박고 돌아왔다고 자신이 뭐라도 된 줄 아는 것일까? 적나라하게 분노를 내보여도 된다고, 투지라는 감정을 감히 품어도 된다고? 그는 프라임이었다. 아이아콘의 유일한 지도자이자 가장 사랑받는 이였으며 시민들을 쿠인테슨으로부터 보호하는 영웅, 전설적인 13 프라임의 후계자였다. 그는 누구도 엄두내지 못할 방식으로 권력을 찬탈했고 50 사이클이라는 세월 동안 이 도시의 기틀을 반석부터 다시 쌓아올려 유지한 자였다. 고작해야 하루아침에 자신이 믿던 것들이 뒤집혔다며 악을 토해내는 얼간이가 눈을 홉뜨고 노려볼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센티넬은 모서리가 닳아떨어진 스티커를 이리저리 의미 없이 기울여 보았다.
"그런데 왜 하필 메가트로너스지? 나도 꽤 괜찮지 않았나? 내 기억 장치에는 자네가 쾌락에 겨워서 엉엉 울던 모습이 선명하게 남아있는데. 그 정도로는 부족했던 모양이군?"
그러고자 마음먹은 것은 변덕에 가까웠다. 센티넬은 바닥에서 헐떡이고 있는 광부에게로 내려갔다. 그는 거의 정중하기까지 한 손동작으로 제 가슴의 패널을 가리켰다. 그의 가슴 중앙에 자리한 채로 끊임없는 투쟁심과 활력을 공급하는 신체 부품이 세상의 빛에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크고, 근사하고, 야성적이고, 강력했던 프라임의 잔재. 센티넬은 기꺼이 D-16에게 자색의 코그를 소개했다.
"어쩌면 자네에게는 희소식일지도 모르겠어." D-16은 포로로 붙잡힌 이래 처음으로 두 눈을 부릅 뜨고 그를 보았다. "지금껏 자네가 안겼던 몸에는 메가트로너스 프라임의 일부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지. 참으로 영광스러운 사실이 아닌가, D-16? 가장 동경하는 프라임 둘에게 동시에 취해진 것이나 다름없잖나."
"감히 너 같은 배반자와 그분을 동격으로 취급하지 마! 죽여버리겠어!"
D-16은 완전히 이성의 고삐가 풀려나간 얼굴이었다. 그는 광인처럼 미친듯이 사지를 휘저어댔다. 두 팔이 자유로웠더라면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잡아 찢어버렸을 듯한 기세였다. 한 발로 제압하는 것이 버거워지자 유능한 부관은 몹시 불쾌한 표정이 되었다. 센티넬은 턱짓으로 그를 물리고 발광하는 광부의 안면을 틀어쥐었다. 짓눌리는 입술 사이로 어휘가 되지 못한 악다구니가 끓어넘치는 것이 들렸다.
"아아, 배운 것 없는 광부 출신이라고 그리 예의 없이 굴면 쓰나. 이 신성한 홀에서 저속한 욕설을 뇌까리려 하다니."
선대 프라임들께서 보시면 참으로 통탄을 금치 못할 광경이겠어, 응? 센티넬은 과장되게 혀를 찼다. 그는 손아귀에 힘을 주어 D-16의 머리통을 바닥에 연이어 내리쳤다. 쾅, 쾅, 쾅, 쾅. 바닥에 골통이 부딪칠 때마다 황금으로 흘러넘치는 벽과 천장이 쩌렁쩌렁하게 울었다. 바닥이 더 약한 재질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금이 가고도 남았을 충격이었다. 센티넬은 손을 뗐다.
반쯤 뒤집어진 광부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브레인 모듈에 일시적인 손상이 왔는지 그는 입을 벌린 채로 발성 회로를 맥없이 진동시키는 소리를 흘려낼 뿐이었다. 센티넬은 그의 가슴에 등급을 매기는 도장처럼 메가트로너스의 스티커를 붙였다. 제 손에 목이 떨어져나간 전사의 얼굴과 무기력한 은빛 동체. 잘 어울리는 그림이었다.
"코그를 받으면서 기억 회로에 손상이 왔나? 아무래도 자네 위치를 잊어버린 모양이야. 참으로 딱할 노릇이군."
저항이 없어진 몸은 뒤집기 쉬웠다. 센티넬은 힘없이 비틀거리는 몸을 끌어당겨 하반신을 치켜들게 만들었다. 코그를 장착한 탓에 덩치가 더 커진 것만 제외하면 자세는 기억 회로에 남아있는 것과 완벽히 동일했다. 그는 한심함이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는 잊어버리지 않도록 도와주지."
정작 기겁하는 목소리는 뒤에서 들려왔다. 충동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메크가 호된 발길질에 걷어차여 바닥으로 나동그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신경에 거슬리는 고함이 들려왔다.
"프라이머스여, 대체 그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그만 둬!"
곁눈질로 본 곳에는 D-16과 함께 잡혀온 노란 광부 봇이 데스 트레커의 발에 짓밟혀 발버둥을 치는 중이었다. 그는 가슴팍이 총구에 짓눌리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를 질러댔다. "디! 정신 차려! 도망가! 여기서 빠져나가! 저 녀석에게 붙들려 있으면 안 돼! 제발, 눈 좀 떠 봐!"
"에어라크니드, 자네가 잡아온 금속 모기가 시끄럽게 울어대는군. 입 좀 닫게 해주겠나?"
"기꺼이요."
주인이 요구하는 바를 아는 부관은 이번에도 역시 정확한 방식으로 명령을 이행했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노란 광부가 머리를 걷어차이고 나자, 좌중은 기이할 정도로 고요해졌다. 센티넬은 그들을 향해 의미심장한 시선을 향하고 있는 패잔병들을 돌아보았다. 뜻밖에도 하이 가드들은 그가 아닌 그의 밑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D-16을, 한낱 의식 없이 늘어진 광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엇에 집중하고 있단 말인가? 뭘 알아보려고 하는 것인가?
물론 그들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프라임과 일개 광부의 위계를 바로잡는 현장에 입회인으로서 동석하는 것, 그뿐이었다. 센티넬은 D-16의 하부 패널을 억지로 열어젖혔다. 강제적인 조작에 반응했는지 광부의 몸체가 미세하게 들썩이는 것이 느껴졌다. 센티넬은 단단히 다물려 있는 틈 사이로 손가락을 비집어 넣었다.
익숙한 자극일수록 몸은 손쉽게 반응을 복기한다. 그는 일부러 과거와 동일한 방식으로 D-16의 밸브를 헤집었다. 억지로 좁은 틈새를 파헤치고, 예민한 노드를 마구잡이로 짓이기는 방식으로. 그 손길이 특정한 지점에 닿자 광부의 무릎이 거세게 바닥을 긁었다. 신체의 기열이 서서히 상승하고 있었다. 곧 있으면 달아오른 동체를 식히기 위한 냉각 팬의 소음이 침묵을 천박한 색조로 물들일 터였다. 센티넬은 입매를 비틀 듯이 끌어올렸다.
"몸은 아직 성실하게 잘 반응하는 것 같군, 안 그런가?"
크고 튼튼하기에, 다소 거친 행위로 접어들더라도 그 충격을 버텨낼 수 있다. 그것이 D-16의 동체가 다른 광부들의 것보다 우수한 지점이었다. 타고난 내구성 뿐만 아니라 주어진 명령을 착실히 이행하려는 특유의 성정도 그러했다. 다리를 벌리고, 스스로 팔을 고정하고, 짓눌리는 무게를 버티고, 관절 가동 범위의 한계까지 꺾인 상태로 흔들려야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한 번이라도 우는 소리가 나왔더라면 센티넬은 금방 그에게 싫증을 느꼈을 터였다. 그러나 어떻게든 그 폭력적인 교접을 버텨내려는 근성. 억눌린 신음을 내지르면서도 명령받은 자세를 기어코 유지하는 맹목성이 그를 만족스럽게 만들었다. 세척액에 뒤섞여 수치와 굴욕과 순종과 모멸을 발하는 눈초리. 그것은 정복욕을 채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풍경이었다.
"이제 번듯한 코그 봇 행세를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창부처럼 구는 건 숨겨야 하지 않겠나. 뭐, 이번만은 예외로 해야겠지만 말이야."
단순히 들썩거리던 움직임에서 밀어내려는 방향성이 더해졌다. 의식적인 반응은 프로세서가 서서히 정상화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D-16의 전신은 그를 뿌리치려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센티넬은 조소하며 그의 하반신을 더욱 가까이 끌어당겼다. 손가락으로 안을 깊이 들쑤시며 우악스럽게 간격을 벌릴 때마다 품 안에 갇힌 몸에서 씨근거리는 소리가 더욱 강해졌다. 기어코 외설적인 신음을 뱉어내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그래봤자 미련한 인내지. 낯익은 침입을 인식한 센서들은 회로를 통해 브레인 모듈로 자극을 전달했으며 내장된 인터페이싱 프로토콜은 동체가 받아들일 삽입에 대비해 밸브 내부에 윤활제를 분비하는 중이었다. 비좁은 틈새를 가르는 손가락이 젖어들자 센티넬은 목을 긁어내듯이 웃음을 흘렸다.
"이런, 평소보다 더 젖어버렸네? 좋다고 물어대니 손으로만 놀아주기가 미안할 노릇이야."
"……당장……, 그 썩을…… 것……, 빼……!"
"여긴 사정이 다른 듯 한데, D-16." 센티넬은 몸부림을 제압하며 젖은 손가락으로 그의 허벅지에 윤활액을 펴발랐다. 기름 특유의 물성으로 은색 표면이 번들거렸다. "새로운 몸을 가졌다고 너무 즐기는 게 아닌가. 고작 이 정도 자극인데. 그리 안달을 내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줄테니, 얌전히 엎드려 있게나."
깨진 음성으로 내지르는 괴성과 함께 밑에 깔린 몸이 치솟았다. 센티넬은 사력을 다해 일어서려는 D-16의 등을 찍어눌렀다. 어차피 이 광부는 신체를 맴도는 연료를 전부 끌어올려도 그들 사이의 압도적인 체격 차를 이겨낼 수 없었다. 센티넬에게는 메가트로너스의 코그가 공급하는 완력이 있었으므로. 그 사실이야말로 우월감의 근원, 정복욕의 발로, 투박한 동체를 억지로 열어젖히고 개처럼 헐떡이게 할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센티넬은 비로소 하반신이 뻐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한 손으로 D-16의 머리를 짓눌렀다. 자신의 스파이크 패널을 열고 그의 밸브에 들이밀기 직전의 그는 완전히 웃고 있었다. 다른 몸을 취하면서 이토록 솟구치는 희열을 감각한 지가 얼마만의 일인가? 순응은 지루했다. 저항은 그에게 힘을, 권위를, 과시와 성취를 가져다주는 가장 원초적인 촉매였다.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면 이번에도 그렇게 말할 텐가? '베풀어주시는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라고!"
삽입은 좁은 내부를 단숨에 관통하면서 이루어졌다. 센티넬은 D-16의 골반을 으스러뜨리듯 움켜쥐면서 스파이크에 밀려드는 압박감을 감내했다. 참으로 빌어먹게 좁아터진 내벽이었다. 마치 밸브 씰도 떼지 못한 미가동품을 억지로 확장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광부는 미가동품처럼 죽어있지 않았다. 그는 어금니로 역류하는 냉각수를 씹어삼키면서 바닥에 어깨를 긁어대고 있었다. 한데 묶여있는 손목이 금방이라도 팔에서 떨어져 나올 듯 팽팽하게 이음매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걸 바랐다. 이것은 미동 없이 누워있는 것이 아니라 과도한 전기 자극을 당한 광란자처럼 날뛰어야 마땅했다. 그리고는 수많은 목격자들 앞에서 억지로 파훼되는 자신의 처지에 끝없이 비참해하고 자괴하며 바닥을 기어야 하는 것이었다.
지지대는 광부의 머리와 가슴이 대신하고 있었으므로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센티넬은 시작부터 거칠게 허릿짓했다. 금속이 카랑카랑하게 마찰하는 소리, 두 대의 동체가 들이받으며 퍼지는 진동에 가까운 굉음이 정적으로 가득 찬 홀에 울려퍼졌다. 스파이크에 밀려드는 열과 자극은 압도적이었다. 광부의 내부 기관은 거칠고 빠른 진입에 끊임없이 반응하고 확장하며 가까스로 길을 열고 있었다. 센티넬은 굴착의 감각이 가져다주는 가학적인 만족감에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그는 반동으로 D-16의 하체가 밀려날 때마다 기열로 끓어넘치는 몸을 더 강하게 끌어당겼다. 동체가 맞물릴 때면 광부의 몸 안에서 냉각 팬이 최고 속력으로 가속하는 프로펠러처럼 격렬히 회전하는 소리를 냈다. 그 소음이야말로 열락의 발산이자 무의식이 내지르는 열성적인 환호성을 증명하는 꼴이 아니던가. 센티넬은 웃음을 터뜨렸다.
"자네도 인정해야 할 거야, 여기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다고!" 그는 걸게 웃으면서 허리를 더 안쪽으로 치받았다. "굴욕적인 자세로 몸을 열면서도, 닳아빠진 구멍처럼 스파이크를 삼키는 재능 말이야! 누가 이걸 두고 새 몸이라고 말하겠나!"
거대한 몸에 박힐 때마다 D-16은 고장난 개폐 장치처럼 컥컥거리는 소리를 내뱉었다. 강제적인 피스톤질을 감당하기 위해 내부 실린더가 목구멍으로 엔진 오일을 밀어내면서 오염 물질을 배출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센티넬은 어느 순간 뒷짐 진 손목을 끌어당겨 D-16의 상체가 휘어지듯 솟구치게 만들었다. 동체의 너비 차이는 그가 광부의 하반신을 밀어붙이는 동시에 손가락으로 입가를 잡아 젖히는 것을 가능케 했다. 손등과 팔뚝을 타고 묽은 오일이 뚝뚝 흘러내렸다.
앞뒤로 벌어져서는 질질 흘리다니, 이렇게 즐겨서야 본보기를 보여주는 의미가 퇴색되어 버리지 않나. 그는 D-16의 가슴 장갑이 바닥에서 떠오를 정도로 손목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한계까지 젖혀진 자세 탓에 스파이크 끄트머리가 밸브의 막다른 구역까지 처박히고 있었다. 판막에 지속적으로 자극이 가해지면 제스테이션 챔버에 이르는 통로가 열릴 테고 광부의 프로세서는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체계만 남기고 완전히 으스러질 터였다. 입가를 벌리는 손가락이 툭툭 D-16의 입술을 쳤다.
"여기까지 들어간 건 처음인가, 응? 이번에는 꽤나 잘 참는군 그래. 칭찬해줄만 해. 처음 삽입될 때는 거슬릴 정도로 떨더니 말이야."
센티넬은 지저분해진 손가락에서 오일을 털어냈다. 한숨을 뱉기 위해 목을 돌리자 부품들이 느슨하게 풀어지며 전신의 감각성 다발들을 환기했다. 그는 고통인지 흥분인지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떨고 있는 D-16의 어깨와 등허리를 내려다보았다.
"정말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딱딱한 반응이었지. 구역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일컬어지는 광부가 제대로 다리를 감는 법도 모르고, 허리를 기분 좋게 움직이는 방법도 전혀 모르는 천치였을 줄은 상상이나 했겠나. 처음 구음을 마치고는 자네가 뭐라고 했었지? '만족하실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프라임'이라고 했었나?"
센티넬은 잔기침을 뱉어내며 입가를 닦아내던 광부의 얼굴을 떠올렸다. 황금색 무릎 사이에 꿇어앉아 수치스러워하던 모습. 그는 상관을 실망시켰다. 그는 진심으로 프라임의 반응에 자괴하고 있었다. 좀 더 잘할 수는 없냐는 물음에 이리저리 방황하던 눈동자가 기억났다. 만족하실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프라임. 물론 그 서투르기 짝이 없는 구음을 하루에 두 번씩이나 받을 생각은 없었다. 그때 센티넬은 자진해서 다시 고개를 기울이려는 광부를 명령으로 멈춰 세우고 다른 행위를 요구했었다…. 그 결과물만큼은 만족스러웠다.
하하. 맞아, 그랬었지. 센티넬은 가슴을 들썩이며 웃었다. "그건 내가 한평생 받아본 것 중에 가장 끔찍한 구음이긴 했어. 빈말로도 칭찬이 나오지 않았을 정도로 형편없었단 말이야! 하지만 여긴,"
그는 맞닿아있는 하체를 느긋하게 쓸어내리며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겨우 제 역할을 다해서 다행이군. 학습력이 좋은 게 자네 장점이었지. 너무 좋다 못해 억지로 범해지는 것까지 즐기게 될 줄은 나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말이야. 앞으로 자네는 무릎을 꿇고 남의 것을 받아내는 걸 삶의 목적으로 해 보는 게 어떻겠나? 지하 50층의 유흥장에는 자네 같은 인재가 필요하거든. 게다가 아주 잘 어울리기도 하고."
대답은 없었다. 치욕스러운 과거의 기억이 저주와 몸부림을 쏟아낼 마지막 기력마저 앗아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센티넬은 손에 든 것을 버리듯 D-16의 상체를 내던졌다. 주변을 살피자 수많은 하이 가드들의 시선 사이로 스타스크림이 그들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센티넬은 그에게로 가볍게 턱짓했다.
"스타스크림. 눈빛이 너무 뜨거운 나머지 내 날개들이 전부 녹아버릴 지경이군. 자네도 합류하겠나? 아이아콘의 가장 높은 곳에서 이만큼 잘 길들여진 몸을 취할 기회는 자주 있는 것이 아니야."
"미친 변태 새끼야, 닥쳐." 스타스크림은 혐오스러움을 숨기지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 "너처럼 사방에 눈이 가득한 장소에서 남을 따먹으면서 즐거워하는 성벽이 어디 흔한 줄 알아? 네 좆만한 스파이크나 내려다 보면서 쪼개."
"말과는 다르게 너무 열렬히 바라보는 게 아닌가 싶네만." 센티넬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해해. 표면에서 너무 오래 욕구를 미뤄두고 살다 보니 본능적으로 흥분한 몸에 동하는 모양이지? 자네 시끄러운 머릿속이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으니 말이야."
그러나 의외로 스타스크림은 우스꽝스럽게 갈라지는 목소리로 비웃음을 쏟아낼 뿐이었다. 그는 50 사이클 이전에는 일상적이었던, 신경을 있는 대로 긁는 어조를 그대로 구사하며 센티넬을 조롱했다.
"흥분'? 그 자식이 흥분한 것처럼 보여? 옵틱이 낡아빠진 나머지 기능에 문제가 생긴 것 아니야? 그놈 얼굴을 다시 보고 같은 말을 지껄여보지 그래."
센티넬은 미간을 좁혔다. 스타스크림이 거만하게 턱을 치켜드는 것은 언쟁에서 우위를 잡을 때 흔히 보이던 습관이었다. 패배의 근거를 전혀 찾을 수 없어서 상대를 한도 끝도 없이 깔볼 수 있는, 자만심을 적나라하게 형상화한 태도였다. 그 짜증나는 언동을 하필 이 장소에서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센티넬은 헛웃음을 지으며 바닥에 쓰러져있는 D-16의 동체를 붙잡았다. 그는 박장대소를 터뜨리기 직전처럼 고조된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봐 봤자 뭐가 달라져 있겠나? 자네야말로 똑똑히 보는 게 좋……"
스타스크림의 도발에 순순히 응하면서도, 센티넬은 자신이 예상한 하급 광부의 모습을 확신하고 있었다. 굴욕과 수치심으로 점철되어 무참히 꺾인 표정. 과거에 리차징 베드 위에서 흔들리던 그대로, 안면을 일그러뜨리고, 세척액을 줄줄 흘리고, 쾌락과 통증을 동시에 호소하면서, 모든 의지를 상실하고 일차원적인 욕구에 몸과 정신을 내어버린 그런 얼굴을.
그러나 아니었다. 센티넬의 손바닥에 이끌려 고개를 돌린 D-16의 주홍색 옵틱은 사뭇 다른 감정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의 밑에서 떨고 있는 몸은 고통이나 두려움, 수치심 때문에 경련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센티넬은 눈꺼풀을 열고 그를 응시하는 시선에서 칼로 새긴 듯이 적확한 감정을 읽어냈다. 그 명백하고 순수한, 용광로처럼 끓고 있는……
살의를.
이름 모를 전율이 센티넬의 등골을 훑고 지나갔다. 그 순간 센티넬은 그들을 둘러싼 하이 가드들의 의미심장한 눈길을 이해했다. 그들은 D-16을 지켜보며 무력한 포로의 패배감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눈앞에서 범해지는 동체에 욕정하고 있는 것도, 위계 질서를 바로잡는 현장에 입회인으로서 동석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탐색하고 있었다. 목격하고 있었다. 기다리고 기대하고 있었다. 체념할 것인가? 인내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 폭력과 억압을 정면으로 직시할 것인가? 꺼지지 않는 분노를 불태울 것인가? 조롱과 굴욕에 맞서서, 너덜거리는 몸으로 다시 한 번 바닥을 딛고 결연히 일어설 것인가?
신념을 보여라. 꺾이지 않는 의지를 보여라. 우리로 하여금 너를 우러러보게 해라. 너는 우리의 구심점이 될 만한 재목인가?
일어나라.
"…내가 너무 무심했군, D-16. 여지껏 자네의 취향을 별로 고려하지 않고 있었으니 말이야."
센티넬은 D-16에게서 빠져나와 그의 몸을 뒤집었다. 그는 D-16의 살의 어린 눈동자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광부의 눈에서 들끓는 증오는 수천 번의 벼락을 받아낸 창끝처럼 벼려져 있었다. 그래, 나를 죽일 텐가? 어떻게 죽일 텐가? 어디에서, 누구의 도움을 받아, 어떤 방식으로? 기껏해야 다른 이로부터 코그를 하나 기증받았을 뿐인, 우매하고, 나약하고, 미숙하고, 하등한, 덜 떨어진 개체인 주제에.
센티넬은 입 안의 혀로 어금니를 쓸었다. 감정에 휩쓸리는 것은 눈앞의 애송이나 저지르는 실수였다. 그는 견고한 쇠창살처럼 두 팔을 내려 D-16을 가뒀다. 그림자가 드리워지자 하급 광부의 옵틱은 적색 거성처럼 이글거렸다. 입가에 오일이 흘러내린 자국만이 남아있는 멀끔한 낯이었다. 멀끔하다 못해 새파랗기까지 한 낯.
"이제야 기억이 나는군. 그러고 보니 자네는 마주보고 하는 것을 더 좋아했었지? 두 눈으로 존경하는 프라임의 존안을 보면서 봉사할 때마다 어김없이 과부하에 도달하지 않았었나."
허벅지를 짓눌러 벌리고 그 안으로 다시 파고들 때까지도 광부의 옵틱은 결코 깜빡이는 일이 없었다. 그 기분 나쁜 한결같음이 센티넬의 내면에 잠들어있던 어떤 기억을 되새기려 하고 있었다. 센티넬은 무의식적으로 험악하게 목소리를 낮췄다.
"지금부터는 기꺼이 자네가 바라는 대로 해주지."
더는 유흥으로 이어가는 행위가 아니었다. 센티넬은 광부의 다리를 잡고 몸이 반으로 접힐 때까지 몰아붙였다. 허리를 내지를 때마다 음성 장치가 틀어막힌 듯이 윽윽거리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그러나 그 새파란 낯짝. 치를 떨지 않고, 쾌락에 흔들리지 않고, 사지의 통제권을 잃어버린 두려움에 휩쓸리지 않는, 빌어먹을 올곧음. 숱한 감정이 일정한 축을 이루어 수렴하는 맹목성. 혐오스러운 광경이었다. 그는 그 얼굴을 이미 알고 있었다.
센티넬은 D-16의 동체를 절단낼 것처럼 폭력적으로 진입했다. 비부에서 윤활제가 마찰하는 소리가 아니라 외장갑이 서로를 찢어버릴듯이 타격하는 소리가 더욱 맹렬하게 치솟을 지경이었다. 반복적인 추삽에서 센티넬은 흥분이 아니라 증오를 느꼈다. 그것은 수 세기 동안 쌓였던 응어리, 한 번 목적성을 잃었다가 현세에서 재조립되고 있는 구체적이고 진저리 나는 감정이었다. 고역스러운 굴종의 기억, 배반의 순간에 스파크의 불길이 사지로 번지는 듯했던 고양감, 그는 영웅들의 심장과 목을 가르고 살아남았다. 그는 쟁취자였다. 굴욕적인 모략과 상납의 역사가 아니라 모두에게 소리내어 부르짖어야하는 진실은 다름 아닌 그것이었다. 이걸 봐라, 나는 신의 은혜를 받은 자손들을 무릎 꿇렸다. 아무도 이 업적에는 감히 범접할 수 없단 말이다! 나는 이 손에 행성의 심장을 틀어쥐었어!
그러니 경외해야 한다. 두려움에 시선을 돌리고 고개를 떨궈야 한다. 그가 이룩해 낸 위업에 모두가 무릎을 꿇고 순종적으로 조아려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한때 프라임의 이름 아래 하나로 결집했던 패잔병들과 이름 없는 광부들은 그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가 새롭게 창조해 낸 세계의 규율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그 몸과 기억에 손수 새겨줄 필요가 있는 것이었다. 그는 손에서 광부의 허벅다리를 떨어뜨렸다.
"그렇게까지 자네의 몸에 과분한 물건을 달고 다닐 필요가 있나, D-16?" 센티넬이 그의 가슴을 움켜쥐며 외쳤다. "내가 도와주지,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말이야!"
그는 D-16의 가슴 장갑을 맨손으로 뜯어냈다. 그 시점에 이르러서는 불가항력이었을 것이다. 홀 전체를 찢어발기는 거대한 비명이 광부의 목에서 뻗쳐 나왔다. 센티넬은 고작해야 두 개의 손가락이 뻑뻑하게 들어가는 코그 홀에 손가락을 박아넣고 한때 어느 프라임의 일부였을 부품을 통째로 끌어냈다. 물론 신체 내부 기관이 제거되는 것을 거부하는 프로세서의 작용 탓에 그것은 쉽사리 뜯겨나오지 않았다. 때문에 가슴에서 코그를 뜯어내려는 시도는 두 손가락으로 D-16의 동체를 끌어올리는 행위로 변질될 뿐이었다. 센티넬은 손가락을 코그 홀에 박아넣은 채로 추삽질을 재개했다. 그 여파로 D-16의 동체가 흔들릴 때마다 코그와 연동된 신경 회로와 전선들이 팽팽하게 잡아당겨졌다. 전선이 불씨를 튀기며 한계에 임박하는 것이 보였다.
끔찍한 비명은 사위를 맴도는 모든 소음을 집어삼켰다. 비명, 그리고 비명, 더 나아가서는 고함에 가까운 성음이었다. 센티넬은 목을 꺾고 새된 비명을 내지르는 D-16의 얼굴을 내려보았다. 그의 일그러진 낯에는 지독스러울 정도로 세척액이 흘러내리려는 징후가 없었다. 언제까지 반항할 셈이냐? 언제까지? 스파크의 빛이 꺼뜨려질 때까지? 센티넬은 어금니를 짓씹었다. 만일 놈이 원하는 것이 그것이라면 얼마든지 그런 최후를 하사해줄 수 있었다. 그러나 다만, 이 하급 광부가 자신의 비참하고 한심스러운 위치를 똑똑히 깨닫고 나서. 이것을 다시 태초의 모습으로, 체념과 굴종밖에 모르던 그 모습으로 되돌린 다음에. 울분으로 흐느끼고 있는 왜소한 몸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처단하리라. 놈은 죽어가는 순간까지 밑바닥을 벗어날 수 없을 터였다. 그러고자 마음 먹었을 때였다. 센티넬은 불현듯 자신의 허리에 무언가 감기는 것을 자각했다.
그것은 D-16의 다리였다. 회로를 타고 과거의 기억이 흘러들기도 전에 강렬한 자극이 브레인 모듈을 덮쳤다. 탄식하듯 숨이 터져나왔다. 밸브가 한계까지 좁혀들며 스파이크를 쥐어짜는 감각과 함께 센티넬은 마침내 과부하에 도달했다.
섬광이 회로 내부에서 간헐적으로 번뜩이며 폭발했다. 센티넬은 자세를 낮춘 채 천천히 헐떡였다. 품 안에서 기열이 비슷한 동체가 거칠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는 팔꿈치로 바닥을 짚고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D-16은 옵틱의 색조가 실금처럼 보일 정도로 가느다랗게 눈을 뜨고 있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그는 표정을 일그렸을지언정 센티넬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여전히.
센티넬은 그에게서 빠져나와 몸을 일으켰다. 인터페이스 패널을 닫고 몸에 튄 액체들을 손가락으로 닦아내자, 그의 청색 동체는 행위에 접어들기 전과 다름없이 멀끔해졌다. 그는 싸늘한 눈으로 발밑에 누워있는 D-16을 바라보았다. D-16이 부들거리면서 바닥에서 어깨를 떨어뜨리는 것이 보였다.
"가만히 누워 있지."
곁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방을 뒤흔드는 비명으로 의식이 돌아온 노란 광부가 나약하게 훌쩍이고 있었다. 그는 푸른 눈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가냘프게 웅얼거렸다. "그냥 누워 있어, 디. 일어서지 마……."
그러나 D-16은 헐겁게 숨을 몰아쉬면서 허리를 세웠다. 외피에 과부하와 격통의 잔여물을 고스란히 두르고서, 그는 무릎으로 바닥을 짚고 전신을 지탱했다. 센티넬은 그를 중심으로 몰려드는 시선의 군집을 느꼈다. 하이 가드들은 가슴의 패널이 뜯기고 덜 닫힌 밸브에서 트랜스플루이드를 흘리는 그를, 비틀거리면서 가까스로 자세를 다잡는 D-16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소리 없는 말들이 센티넬의 청각 장치로 와 닿았다.
다시 일어서려는 것인가?
이 지경이 되어서도?
발이 금빛 표면을 딛었다. D-16은 자리에서 완전히 일어섰다. 그가 등을 곧추세우자, 광부는 센티넬과 마찬가지로 행위에 접어들기 직전과 동일한 모습이 되었다. 다만 그때와 달리 그의 가슴 한복판에는 외부로 드러난 코그가 푸르고 시린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프라임의 잔재. 패배자의 유산.
무릎을 꿇으면 패배한 것인가, 센티넬?
센티넬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헤아리기 어려운 시간의, 녹으로 물든 과거의 편린이 회로를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거부할 새 없이 들이닥치는 의식의 흐름이었다. 기억의 소생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무릎 꿇은 자는 다시 일어서면 되는 것이야.
아아, 그 소리가 우스워서 그자의 무릎을 꿇리고, 다시는 일어설 수 없도록 목을 쳐버렸는데. 입천장으로 불쑥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발끝을 타고 혐오스러운 감각이 촉수처럼 뻗어지르고 있었다. 센티넬은 과거의 잔상에 발이 묶인 채로 D-16의 불그스름한 광학 장치를 노려보았다. 아니, 그는 더이상 일개 하급 광부가 아니었다. 그곳에는 가면을 쓴 거대한 사이버트로니안이 서 있었다. 가장 강대한 프라임은 자신의 키보다 큰 창을 전장에 내리찍으며 엄숙하게 표명했다.
그것이 전사의 자세이며, 승자의 자세다.
센티넬은 진심으로 불쾌해졌다. 그는 자신의 팔을 포신의 형태로 변형시켰다. 더는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안타깝게 되었군. 자넨 참으로 괜찮은 장난감이었는데."
그는 D-16의 안면에 포구를 겨누며 말했다. 이로써 D-16은 공개 처형조차 당하지 못하고 역사에서 그 이름이 지워질 것이었다.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않고, 누구도 그를 기리지 못하리라. 이 미천한 저항은 언젠가 그의 기억 장치에서 내다 버릴 쓰레기, 의미 없는 파편이 될 것이었다. 다른 패배자들의 잔재와 같이. 그것은 이 기분 나쁜 하급 광부에게 있어 합당하고도 남는 결말이었다.
센티넬은 포신을 가동했다. 최후의 순간에 D-16의 옵틱은 포구의 자색 빛을 받아 마치 붉은 색조로 비쳐 보였다. 갑작스럽게 정적을 베어내는 날카로운 외침이 집행되려는 처형을 멈춰 세웠다.
"침입자다, 센티넬 님을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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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로는 순조롭게 센ㅌ/ㅣ넬이 되었다는 이야기
트포원 센디 센메가(트로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