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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5 01:13
보고싶다: https://hygall.com/607842500
비슷한 소재 타컾 쓴 적 있 ㅇㅇ





*
사랑하지 말걸 그랬다
그대 나에게 올 때
외면할 걸 그랬다

용혜원 / 밀려드는 그리움





3.
새하얀 천정이 낯설었다. 주삿바늘이 꽂힌 탓에 묵직한 팔을 보니 아무래도 병원인 듯했다. 아무 생각 없이 몸을 일으키려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파 저도 모르게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

깼어?

아저씨의 목소리가 끝을 모르고 가라앉아 있었다. 네, 짧게 대답하자 화살 같은 말이 날아와 꽂힌다.

거짓말쟁이.

맞는 말인데 왜 서러운 건지, 입술을 꾹 깨물고 불쑥 솟아오르는 눈물을 삼켜 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뭘 잘했다고 울어.

여전히 가시 돋힌 말투에 잘못했단 말이 절로 나왔다.

내가 그딴 말 듣자고 이래?
...
왜 그랬어, 이야기해 봐.
...
통화하면서는 잘 먹고, 잘 잔다 거짓말만 술술 잘 하더니.


유구무언, 고개를 푹 숙인 채 묵비권을 행사하던 조위에게 불호령이 떨어졌다. 당분간 집에 들어와서 지내, 알았어?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들고 아, 아니에요, 잘 먹을게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소심한 반항을 해 보던 조위는 아저씨의 형형한 눈빛에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조위에게는 물론 조위 앞에서마저 화를 거의 내지 않는 아저씨라 저만큼 찌푸려진 미간엔 당해 낼 도리가 없을 터였다.



스케줄이라도 있었다면 좀 나았을까. 휴식기라 안 그래도 뒤죽박죽인 생활 리듬은 아저씨가 해외로 출장을 간 2주 동안 더더욱 엉망이 되었다. 뜨문뜨문 연락이 오는 전화기를 밤새 붙들고 있느라 내내 선잠을 잤고 하루 두 끼는 꼭 챙기기로 아저씨와 약속했던 식사는 거르는 날이 늘어만 갔다.

그 와중에 이리 저리 맛보고 물어 뜯기 좋은 가십 기사가 하나 날아 들었다. 젊은 사업가, 워커홀릭에 사생활이 깨끗하기로 소문난 유건명 회장님이, 미모의 여성과 동반 귀국을 했다고.


누구에요? 무슨 관계에요? 내가 아저씨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사실은 아저씨가 그리워서 밥도 못 먹고 잠도 제대로 못 잔 건데 혼만 내고. 아저씨는 다른 사람이랑 사진이나 찍히고 다니면서. 울지도, 화를 내지도 못 하는 조위의 마음에는 시퍼렇게 멍이 들었고 자학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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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저씨한테 뭐라고, 난 아저씨가 원할 때 몸을 내주기만 하면 되는 걸. 나 같은 게 어디가 예쁘다고 척척 나오는 돈은 전부, 그러라고 아저씨가 내 주시는 거 아닌가? 비죽이 튀어 나온 입술로 부루퉁하게 내뱉는 못난 말과는 달리 몸은 솔직했다. 입에 들어가는 건 삼키는 족족 게워냈고 선잠조차 들지 못하고 하얗게 날밤을 샜다. 아저씨의 귀국 소식을 인터넷에서 본 뒤 3일째. 문자 한 통 없는 아저씨가 너무 너무 미웠고, 그렇게 눈앞이 핑 돌더니 금세 깜깜해졌다.




4.
유건명 회장님 집 2층에서 가장 큰, 창 너머 잘 가꿔진 싱그러운 나뭇잎들이 바람에 살랑거리는 모습이 손에 닿을 듯 가까운 방. 조위가 이 집에 드나들면서부터는 항상 침대 위에 조위에게 꼭 맞는 사이즈의 보드라운 잠옷이 준비되어 있는 방이었다. 괜찮다고, 걸을 수 있다고 뻗대는 조위를 기어이 2층 방까지 달랑 들어 올린 아저씨는 늦으니까 먼저 자, 무뚝뚝한 한 마디를 남기고 여전히 화난 등을 보이며 나가 버렸고,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주방으로 내려가자 여사님께서 늘 그랬듯 따스한 얼굴로 맞아 주었다.


얼굴이 많이 말랐네, 회장님께서 얼마나 걱정하신 줄 알아요?
아저씨가.. 제 걱정을요?
그럼요, 조위 군이 좋아하는 음식 리스트까지 주시던 걸요. 쓰러졌다면서, 집으로 데려올 테니 맛있는 거 많이 만들어 주라고.

...잘 먹겠습니다.

울컥,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바람에 조위는 묵묵히 수저를 놀렸다. 여사님이 저 듣기 좋으라고 말치레를 했든 어쨌든 좋았다. 아저씨가 걱정했다기에.

아저씨의 집은 어느 한 구석, 아저씨의 체향이 숨막히도록 짙게 배어 있지 않은 곳이 없다. 식사를 마치고 올라와 새하얀 베개를 끌어 안고 뒹굴고 있노라니 문득 아저씨와 귀국한 사람이 누구든 상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사님께 맛있는 음식을 주문하도록 만든 사람도, 지금 이 순간 아저씨의 체향에 취해 있는 사람도.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양조위였으니까.




5.
건명은 드물게 여사님께 전화를 걸었다.

좀 먹었나요.

주어 없는 물음에 평소보다 많이 먹고 지금은 푹 잠들었다는 만족스러운 대답이 돌아와 저녁까지 빼곡히 들어찬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아이가 기다리는 제 집으로 돌아왔다. 제 영역 안에서 배불리 먹고 편안하게 잠든 아이가 보고 싶었다.

귀국한 지 3일이나 됐는데도 문자 한 통 안 보내는 아이에게 서운한 것도 잠시, 백지장 같은 얼굴로 쓰러져 있는 아이를 본 순간 아주 오랜만에 심장이 발끝까지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더랬다.


눈에 띄게 살이 내린 아이의 볼에 가만히 손을 가져다 댔더니 반짝 눈을 뜬다. 더 자, 제가 듣기에도 정이 떨어질 만큼무뚝뚝한 목소리를 내고 얼른 손을 거두는데 아이가 건명의 손을 붙들었다. 언제나 따끈한 아이의 손끝이 차기에 속으로 쯧, 혀를 찼다.


보고 싶었어요, 아저씨.

아이가 가끔 이렇게 감정을 부딪혀 오면 건명은 낭패감이 들었다. 가진 거라곤 패기뿐이던 젊은 시절, 겉잡을 수 없이 흘러 넘치던 감정을 들이밀며 왜 답을 해 주지 않느냐 몰아부치던 저를 보면서 양영인도 이런 느낌을 받았을까.

쉬어.

아저씨, 가지 마세요. 응? 안아 주세요..

왜 이래, 양조위. 아저씨 화내서 이래? 아저씨가 짐승이야? 아픈 사람 붙들고 그 짓거리나 하게.

여전히 제 목소리는 다정하지를 못했고 아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흑... 아저씨, 같이 온 사람 누구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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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였구나. 기사가 났다는 보고는 받았지만 신경도 쓰지 않았던 일이었다. 사업 파트너일 뿐이었으니까. 그런데 아이는 이 작은 물음 하나 꺼내지 못 하고 속으로 품고만 있다가 이렇게 아팠던 거였다. 겨우 그깟 일이, 아이에게는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 쓰러질 만큼이나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어이, 양조위. 너한테 난 도대체 뭐냐? 누구냐 무슨 관계냐 물었어야지. 난 그저 네 뒤나 봐 주고 돈이나 대 주는 사람이야? 왜 말을 못 해.


서운함인지 분노인지 모를 감정이 치밀어올랐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노기 띤 건명의 목소리에 아이는 아니에요, 그런 거 다시는 안 물어볼게요.. 잘못했어요, 하며 서럽게 울었다. 건명은 벌떡 일어나 성난 걸음걸이로 문을 박차고 나왔다. 쾅 닫힌 문 너머로 새어 나오는 아이의 울음 소리는 건명의 마음을 온통 새카맣게 태웠다.


건명은 아이를 처음 만났던 날 이후로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던, 서랍 가장 깊숙한 곳에 묻다시피 넣어 둔 사진 한 장을 꺼냈다.


당신 아들이 울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모르겠어..

중얼거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는 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진 속 남자는 그저 해맑게 웃고만 있었다.





아 어나더 노잼의 법칙 아
약건명영인?
[Code: b5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