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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1 18:48

"처음 뵙겠습니다 프라임. 이번에 하이가드로 임명받은 디 식스틴이라고 합니다."


디는 문앞에 굳어서 거의 덜덜 떨고 있었음. 다들 괜찮을 거라고 말했지만 긴장 되는 건 어쩔 수 없었지. 무려 사이버트론의 최고 통치자 중 한명이잖아. 저 굳센 뒷모습을 봐. 여기까지 프라임의 위엄이 느껴져. 디는 책상에 앉아 무언가에 골몰하던 프라임이 천천히 의자를 돌리자 에너존 펌프가 터질 것 같았지.

억겁 같은 찰나가 지나고 마침내 프라임의 시선이 디에게 닿았음. 그리고 활짝 웃었어.


"내 이름은 오라이온 팍스야. 편하게 불러 아직 프라임도 아닌데."


긴장을 못풀어낸 디는 프라임의 명령은 뭐든지 따르겠다는 다짐이 단 몇초만에 흔들리자 사고 회로 사이에 혼선이 생겼음. 방금 뭐라고 하신 거지? 편하게 말하라고? 명령을 따라야 하나? 하지만 내가 어떻게 감히? 하지만 내가 어떻게 감히 프라임의 명령에 반발을 할 수가?

오라이온은 제 말 한마디에 혼란에 빠져버린 여유라곤 조금도 없는 어린 가드를 바라보다가 의자에서 일어나 다가올 거임.


"근데 넌 몇살이야?"
"가..가동된 후 nn 사이클 지났습니다."
"와 대단하네! 나랑 비슷한 나인데 벌써 하이가드야?"


오라이온의 옵틱이 존경심을 담아 반짝거렸지. 디는 차마 프라임의 옵틱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어 필사적으로 시선을 돌렸음.


"아닙니다. 저랑 비슷한 나이에 프라임으로 선택된 프라임께서 더...."
"뭐? 하하 아니야. 난, 내가 노력한 건 아무것도 없잖아. 내가 왜 선택 받았는지도 모르겠어. 그에 반해 너는..."


오라이온이 완전히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자 디는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간신히 오라이온을 쳐다볼 수 있었지. 그 옵틱엔 어떤 거짓이나 기만도 없었음. 순수한 동경 뿐.


"정말 대단해."


디는 사고 회로의 모든 것이 하얗게 변하는 걸 느꼈음. 마치 누군가 스파크를 빼앗아간 기분이었지. 프라임께서 첫만남에 날 대단하다고 해주시다니..! 자신이 선 채로 죽은 것은 아닐까 의심까지 들던 차에 오라이온이 디의 손을 덥석 잡았음. 디는 동체에 전기가 흐르기라도 한 것처럼 펄쩍 뛰었음.


"프,프라임?"
"오라이온이라니까. 뭐 그건 나중에 하고.. 넌 내 편이지?"
"물론이죠!"


지금까지 쭈뼛거리던 디가 처음으로 즉답한 순간이었음. 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프라임을 지킬 거야. 그게 자신의 임무이자 숙명이자 목적이자 신념이자 그리고.. 그리고...

그순간 오라이온이 씨익 웃었지.무례한 생각이라고 아무리 회로를 조정해봐도 그 미소는 프라임이라기 보단 악동에 가까웠음. 디는 갑자기 척추를 타고 이상한 예감이 스쳐지나갔지. 하이가드로서 훈련받으며 벼려왔던 직감이 위험에 날카롭게 반응했음. 하지만 갑자기 어디서 위험이 닥친단 말이지?

디가 주변을 경계하며 잠깐 방심한 사이 오라이온이 디를 잡아당기더니 문을 닫고 잠궈버릴 거임.


"그럼 내가 잠깐 자리를 비워도 아무한테도 말 안 할 거지?"
"예?"


자신 앞의 프라임 후보가 바로 그 위험요소라는 걸 못알아채고 얼빠지게 반응한 그 잠깐 사이에 오라이온은 쏜살같이 달려가 테이블을 밟더니 창문을 열었지. 실로 하이가드의 반응속도를 뛰어넘는 자연스러운 도주였음.


"잠깐만 다녀올게! 그동안 센티넬 좀 부탁해!"
"예??"


오라이온은 디를 남겨두고 창문을 넘었음. 여기가 몇층인데!! 디가 놀라서 창문으로 달려옴. 적어도 사전에 들은 바로는 오라이온의 알트 모드는 비행형이 아니었음. 테이블 위에 올라와 창밖을 내려다보니 오라이온은 벽을 타고 지붕을 밟으며 유유히 멀어지고 있을 거임. 디는 안도로 긴장이 풀렸다가 회로가 또 엉키기 시작했지.

프라임을 따라가야 하나, 아니면 프라임의 명령대로 여길 지키고 있어야 하나. 고민으로 끙끙 앓던 디는 오라이온이 더이상 보이지 않아서 어차피 추적할 수 없게 된 다음에야 자신이 감히 프라임의 책상을 밟고 있다는 걸 알았지. 급하게 뛰어오르다 보니 책상 위에 있던 물건들이 떨어지고 밟혀서 엉망임. 디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헤드를 감쌌음. 첫날부터 망했다.








"디 식스틴."
"네.."
"내가 분명 오라이온을 잘 부탁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디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이 시간을 감내했음. 스타스크림의 손에 붙들려 있는 오라이온이 센티넬에게 대신 항의했지.


"걔는 잘못 없어 센티넬! 내가 멋대로 나가서..!"
"물론 그렇겠죠. 하지만 그걸 다 포함해서 잘 부탁한다고 한 겁니다."


그럼 좀 자세하게 설명해주지. 디는 저도 모르게 속으로 궁시렁거렸다가 삼켰음.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프라임을 막지도 못하고 따라가지도 못한 가드가 무슨 할말이 있겠어.


"하이가드에게 프라임의 명령이 절대적인 건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디. 팍스는 아직 프라임이 아니고 난 그를 가르치는 입장이지. 내가 내 역할을 다 할 때까진 내 지시를 좀 더 우선시했으면 좋겠군."


센티넬의 말에 디는 고개를 들고 명심하겠다며 굳은 다짐을 담아 전했음. 센티넬의 표정은 언제 굳어있었냐는 듯 금방 풀릴 거임.


"자네에겐 기대가 커. 잘할 거라 믿고 있다네."


디의 어깨를 툭툭 두들긴 센티넬이 오라이온을 데리고 사라졌어. 복도엔 스타스크림과 디만 남았지. 스타스크림은 센티넬의 뒤통수를 노려보다가 고개를 저었음.


"대충 흘려들어. 가만 보면 지가 프라임인 줄 안다니까."
"아.."


디가 옵틱을 꿈뻑거리자 스타스크림이 어리버리한 신병을 놀리듯 거만하게 입꼬리를 올렸지.


"네가 맡은 임무는 하이가드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어려운 임무일 거야. 하필 오라이온을 맡게 되다니."
"...평소에도 저러시나요?"
"이것보다 심하면 심했지."


디는 하이가드로서의 앞날이 여러가지로 깜깜해지는 걸 느낄 거임. 센티넬이 제게 준 임무를 완벽히 수행하는 게 가능하긴 할까. 스타스크림은 디의 고뇌를 느꼈는지 손가락으로 딱딱 소리를 내며 자신을 보게 했음.


"쓸데없는 놈 때문에 쓸데없는 생각하지마. 네가 할일은 단 하나야. 프라임을 지키는 거."
"하지만.."
"대답!"
"넵!"


좋아. 스타스크림은 디의 대답을 만족스러워 하며 그곳을 떠났음. 디는 멀어져가는 스타스크림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졌지. 프라임을 지키는 것...








"거기서 뭐해?"
"다음에는 못 빠져나가실 겁니다."


오라이온은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어졌음. 책상 위치가 바뀌었어. 이젠 벽을 보고 있음. 창문 쪽엔 디가 서있었지. 어떤 결의에 찬 표정으로.

방 안을 잠깐 살펴보던 오라이온이 키득거렸음.


"그래도 넌 관대하네. 센티넬은 창문을 봉쇄하려고 했는데."
"...창문은 있어야죠."
"센티넬은 이해를 못하거든. 자기 방엔 말도 안되게 화려한 유리창이 있으면서."


오라이온은 가볍게 투덜거리더니 책상에 앉아 데이터 패드를 열고 무언가를 열람하기 시작했음. 얼핏 본 바로는 사이버트론의 역사로 보임. 그래도 제대로 공부하시는 구나. 디는 의외라고 생각했지. 듣던 거랑 달리 생각보다 진득하게 책상에 붙어있음.


"디. 혹시 배고프지 않아? 잠깐 배급소에 다녀오지 않을래?"


음, 취소. 디는 히죽거리고 있는 오라이온을 향해 살면서 만들어 본 것중에 가장 단호한 표정을 지었음.


"안됩니다. 연료가 부족하신 거라면 다른 메크에게 가져오라고 시키겠습니다."


오라이온은 어제와 달리 완고하게 나오는 디를 바라보더니 옵틱이 장난스럽게 가늘어질 거야.


"내 말을 안 듣겠다는 거야? 하이가드가 그래도 돼?"
"네. 당신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디도 마찬가지로 옵틱을 가늘게 뜨고 오라이온과 대치했음. 어젠 한마디 할 때마다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더니 그새 적응했나봄. 오라이온은 디 쪽으로 몸을 돌려 책상에 턱을 괴었지.


"내 안전이라니. 잠깐 나갔다 오는 걸론 아무 일도 안 생겨."
"확신해요? 쿠인테슨이 쳐들어오지 않을 거란 보장이 있나요? 암살자라도 갑자기 나타나면 어떡해요? 그렇게 지붕 위를 뛰어다니는 것도 발만 잠깐 헛디디면 떨어질 수도 있고.."
"오. 내기할래?"


디의 말을 덥썩 낚아챈 오라이온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오자 디는 휘말렸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음. 아예 말을 섞어선 안됐는데..! 디가 후회하든 말든 가까이 다가온 오라이온은 창문을 열었음. 어제처럼 또 뛰쳐나갈까봐 긴장하고 있었지만 오라이온은 디를 바라보며 히죽댈 뿐임.


"저기 건물 보여? 저기까지 누가 먼저 가는지 내기하자."
"제가 왜요?"
"하이가드인 널 따돌리고 먼저 도착할 수 있을 정도라면 내가 여기서 떨어져 다칠 일 없다는 건 증명되는 거잖아. 내가 이긴다면 이제 내가 외출하는 걸 막지마. 하지만 만약 네가 이긴다면.. 이제 더이상 이런 짓 하지 않고 얌전히 네 말 들을게."


오라이온의 표정에 도발이 기운이 가득했음. 여기 말리면 지는 거다. 말리면 안돼.. 라고 생각하지만 조금 솔깃한 건 어쩔 수 없음. 솔직히 말해서 질 거라곤 생각되지 않음. 말마따나 오라이온은 아직 프라임 후보고 자신은 하이가드임. 전투 특화란 말이야. 알트 모드가 탱크라서 기동성은 좀 떨어지지만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 지붕 위라는 특성까지 고려하면 알트 모드 때문에 불리할 일은 없다고 봐야지. 이번 한번만 옵틱 딱 감고 경주한다면 앞으로 오라이온의 안전은 보장되는 셈이야.


"....약속 지키는 겁니다?"
"당연하지."


디는 창틀 위로 훌쩍 올라가 오라이온에게 손을 내밀었음. 오라이온은 기꺼이 그 손을 잡았어.












졌다. 디는 절망에 빠져 엎드렸음. 이럴 수가. 내가. 내가 졌다고? 스피드가 장점인 메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직 프라임이 되기 전인 일반 메크 정도는 이길 자신이 있었음.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디는 솟구치는 좌절감을 이길 수 없었지. 진 것만으로도 충격인데 이제 오라이온의 외출을 막을 명분이 없다는 것도 큰일임. 감히 차기 프라임과 내기하고 약속해놓고 없던 일로 할 수도 없고. 디는 정말 울고 싶었지.


"너... 진짜 빠르다."


옆에 주저앉아 있는 오라이온은 엔진 과열 때문에 내부의 팬이란 팬은 전부 가동시켜 동체를 식히고 있었음. 에너존이 너무 빠르게 순환하여 브레인 모듈이 점멸될 지경임.


"넌 안 힘들어?"
"괜찮습니다..."
"진짜 대단하네. 역시 하이가드야."
"그럼 뭘해요. 졌는데.."
"정말 한끝 차이였잖아."
"그래봤자 졌잖아요.."


예상은 했지만 네거티브한 편이구만. 오라이온은 상쾌하게 기지개를 켠 후 뒤로 발라당 누웠음.


"괜찮아. 무승부로 하자."


엎드려서 좌절을 만끽하던 디가 살짝 성질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지.


"동정은 필요 없어요."
"그런 거 아니야. 사실 이번 내기는 나한테 너무 유리했으니까."


디가 무슨 소리냐는 듯이 쳐다봤음. 오라이온은 손가락을 대충 휘휘 돌리며 이 장소 전체를 가리켰음.


"여기 어딘지 알아?"
"기록보관소잖아요."
"나 예전에 여기서 일했어."


디는 그 말에 기록보관소를 두리번 거렸음. 그렇게 돌아다니길 좋아하면서 기록보관소에서 일했다고?


"지각할 때마다 어떻게든 단축해보려고 매일같이 뛰어다닌 길이거든. 내가 더 빠르게 도착한 게 당연하지."


오라이온은 지각해서 개고생하다가 혼났던 일을 회상하면서도 음성은 추억에 잔뜩 젖어있었음. 디는 어째 들어선 안 될 걸 들은 기분이었지. 이 앞으로 한발자국 더 나아간다면 결코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기분.


"이렇게 누구랑 같이 뛰어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 하이가드는 비행형 알트 모드가 많으니까."


디는 오라이온의 얼굴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음. 왜 불은 위험한 걸 알면서도 매료되는 걸까.


"여기가 그리워요?"
"엄청."


오라이온은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음. 여기서 멈춰야 했는데 디는 묻는 걸 멈출 수 없었음. 이해할 수 없었거든.


"어차피 거기서나 여기서나 데이터만 읽는 건 똑같잖아요."
"알고 싶은 거랑 알아야 하는 건 다른 문제잖아."


다른가? 디는 곰곰히 생각해봤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음. 문학이라면 디도 꽤 좋아했지만...


"읽고 싶은 게 있는 거라면 제가 가져다 드릴 수 있어요."


오라이온은 디를 바라보며 말없이 빙긋 웃었음. 그게 아닌가 봄. 디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지만 단 한가지만 확실히 이해했음. 오라이온이 저런 표정을 하는 게 싫다는 거.











그후로도 디는 오라이온의 외출을 막았지만 시시콜콜한 잡담은 자주 나누게 되었음. 보면 볼수록 오라이온은 제 또래의 평범한 메크와 같았지. 대체 처음 볼 때 느꼈던 위엄과 권위는 어디로 간 건지. 디는 자신이 오라이온에게 그렇게 쩔쩔맸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음. 차기 프라임을 앞에 두고 다소 건방진 생각이었지만 생각을 막을 수는 없잖아.


"잠깐 거기서 비켜봐. 너도 한 곳에 계속 서있으려니 지루하잖아."
"안된다구요. 차라리 절 밟고 가세요."
"오. 발판이 되어주는 거야?"
"아니야!"


...그러니 이런 일이 생겨나는 건 거의 필연이었단 말이지. 씩씩대던 디는 동그랗게 떠진 오라이온의 옵틱을 보며 스파크가 철렁 내려앉았음. 내가 방금 무슨 말을? 디는 입을 달싹거리며 변명 혹은 사죄의 말을 찾고 찾았지만 사고 회로가 마비되어 마땅히 떠오르는 말이 없었음. 마비에서 깨어난 건 오라이온의 쾌활한 웃음소리를 듣고 나서였지. 오라이온은 한참 웃다가 디를 보며 예의 그 악동 같은 미소를 지었음.


"이거 비밀로 해줄 테니까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협박이잖아. 디는 옵틱을 질끈 감았음. 이 문제가 알려져서 징계 받는다고 해도 그래도 난 여기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나랑 있을 땐 반말해."


여러가지를 각오하고 있던 디는 감았던 옵틱을 슬며시 떴음. 오라이온의 장난기 어린 미소는 어느 새 살짝 쓸쓸해져 있었지. 또 그 표정이야. 디는 스파크 챔버가 좁아진 것마냥 스파크가 아팠어. 자신이 감히 프라임께 말을 놔서는 안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저 표정에 대고 안된다고 하는 방법 따위도 몰라.

오라이온은 머뭇거리는 디를 보며 그만 괴롭혀야겠다 싶어 농담이라며 웃어넘기려 했지. 하지만 그것보다 빠르게, 디가 한숨을 내쉬며 말할 거임.


"알았어."


이번엔 오라이온이 멍해질 차례였음. 디는 팔짱을 낀 채로 한참 버벅이더니 큰 각오와 함께 입을 열었지.


"오,오라이온."


오라이온이 반응하지 않자 디는 서서히 불안해질 거임. 혹시 일종의 테스트였나? 반역의 싹이 보이는지? 절대 그런 건 아니었는데. 디는 불안에 떨면서도 이걸 취소하고 싶지는 않았음. 그냥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윽고 오라이온이 환한 미소로 답하고 나서야 디는 잔뜩 굳은 어깨 관절을 풀 수 있었지.


"그래. 디."
"..응."
"친구가 된 기념으로 같이 나가지 않을래?"
"안된다고!"


















오라이온과 같이 지내며 요즘 좀 기강이 해이해져 있던 디는 오랜만에 바짝 긴장하여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차렷자세를 유지했음. 메가트로너스는 하이가드의 그런 반응이 익숙한 듯 편하게 있으라 말했지만 디는 긴장감에 움직일 수조차 없었음.


"그 애는 잘 적응하고 있나?"
"네! 괜찮으십니다!"


오라이온의 상태를 보면 객관적으로 괜찮다고 봐도 되겠지? 아닌가? 어제 잠깐 얼굴을 찌푸린 적이 있는데 그럼 잘 지내지 못하는 건가? 디는 긴장감의 해일 속에 표류하며 길을 잃고 있었음.


"다행이군. 센티넬의 말대로 하길 잘했어."


너그러운 말에 위압감이 살짝 누그러졌지. 센티넬? 디의 얼굴에 숨기지 못한 궁금증이 드러나자 메가트로너스는 가볍게 긍정했음.


"그 애에게 비슷한 나이의 가드를 붙여주는 게 어떻냐고 제안한 게 센티넬이었다."


디는 짐작가는 바가 있었음. 처음에 보좌관이 지시를 내릴 때 내게 딱 맞는 임무라고 하긴 했지. 디는 오라이온과 말 놓고 지내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죄책감이 살짝 줄어들었음. 어쩌면 오라이온과 자신이 처음부터 이렇게 지내길 바란 걸지도.

오라이온의 말만 들었을 땐 굉장히 엄해보였는데 생각해주고 있긴 했구나. 디는 센티넬에 대한 평가를 조금 수정했음.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어. 디는 가장 존경하는 프라임을 앞에 둔 긴장감으로 시야가 어지러울 지경이었지만 묻지 않을 수 없었음.


"메가트로너스 프라임. 질문 하나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메가트로너스가 디를 바라봤음. 무언의 긍정이겠지. 디는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음.


"왜 오라.. 크흠, 그분이 선택되신 건가요? 그분은 프라임이 되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였어요."


게다가 메가트로너스 프라임의 말씀을 들어보니 그 사실을 다른 분들도 다 알고 계셨던 뉘앙스임. 그렇게 프라임이 되고 싶지 않다고 온 몸으로 표현을 하는데 따로 하이가드를 붙여서까지...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새로운 프라임이 꼭 필요한가요? 열세분의 프라임께서 아직 건재하시잖아요?"


어느 새 디는 긴장하고 있지 않았음. 자신의 보호대상을 지키기 위해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 자세. 메가트로너스는 그 어설프던 훈련생이 어느 새 제대로 된 한명의 하이가드로서 각성했다는 사실이 참으로 대견하면서도 비통할 거임.


"그 애가 선택된 건 프라이머스의 의지다. 우리가 그분의 뜻을 전부 알 수는 없지. 하지만 오라이온이 선택된 것엔 분명히 이유가 있어."
"하지만..."
"그 운명에서 결코 자유로울 순 없다. 오라이온은 물론이고 우리 역시도."


메가트로너스의 음성은 씁쓸함이 묻어나왔지만 모든 걸 받아들인 것처럼 담담했음. 가면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는 그의 얼굴도 아마 비슷한 애석함과 각오를 담고 있겠지.

하지만 모든 걸 받아들일 준비가 된 프라임과 달리 아직 어린 하이가드는 슬슬 이해할 수 없다는 영역을 넘어서 이해하고 싶지 않다는 불손함의 영역에 닿기 시작했어.


대체 어째서... 프라이머스시여. 오라이온을 놓아주시면 안되는 겁니까?




디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