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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1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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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베네딕트 브리저튼은 초조했다.

핸드폰에는 아무런 메시지도 와 있지 않았다. 아니, 몇 개가 있긴 했는데, 명백하게 그가 기다리던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중요하지 않은 몇 개의 알림을 그냥 넘겨버리고 베네딕트 브리저튼은 불만족스럽게 책상을 두드렸다.

왜? 

그 자신도 질문을 던지고 있긴 하지만, 답을 알 것 같기도 하다. 베네딕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크리스마스에 가족모임에 초대하는 건 좀 과했지. 그래도 그때에는 분위기가 꽤 괜찮았단 말이다. 잘 잤고, 잘 먹었고, 질 좋은 휴식을 취한 소피 백은 분명 연휴가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쯤에는 상태가 꽤 좋아 보였다. 가족들하고도 좋은 시간을 보냈던 것 같고… 소피를 집에 되돌려보내면서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예 이렇게까지 없는 사람 취급을 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눈앞에서 영양실조와 과로로 쓰러진 사람을-그것도 호감이 있는 여자를-돌보지 않고 그냥 보내기엔 그의 마음이 불편했다. 게다가 그가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아는 상태에서는, 더더욱.

그러고보니 소피와 그 얘기를 해보지 못했다. 그 얘기 뿐일까? 그와 소피는 한 집에 머물면서도 별 얘기를 나누지 못했다. 그러고보니 그를 피하던 게 분명했는데. 베네딕트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는 베네딕트 브리저튼이다. 무슨 뜻이냐면,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서는 꽤 교활하고, 가진 자원을 잘 활용할 수 있다는 말이지. 베네딕트는 캠퍼스 지리와 인맥과 교내의 소소한 행사 일정을 꼽아본 후에, 소피 백과 마주칠 수 있는 서너 가지의 경로를 떠올려냈다.





16.

그러나 불운하게도, 베네딕트 브리저튼은 근 2주간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했다.




17.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베네딕트 브리저튼의 불만족스러운 속내는 억지로 비집고 들어온 연합 세미나 모임에서 소피 백을 마주하게 되면서 잠잠해졌다.

과연, 보람이 있었다. 




18.

카벤더 무리가 제 버릇 개 못 주고 계속 약을 빨다가 거하게 쫓겨나간 이후로 연합 세미나는 금방이라도 좌초될 위기에 시달렸지만 신묘하게도 겨울이 오기까지 살아남았다. (거기에 누구의 공이 있었는지는, 뭐, 일단은 비밀로 하자.)

본인 자체는 그다지 사교적인 성향이 아니어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소피 백은 모임에서 꽤 많은 인사를 받았다, 베네딕트 브리저튼은 오가는 인사를 주의 깊게 들었다. 장장 2주 만의 캠퍼스 복귀라고 했다. 곧 앞두고 있는 합동 비평과 교수진의 사정으로 소피 백은 2주동안 강의가 없었다. 꽤 오랜만에 본 얼굴은 제법 피곤해 보였다.

모임이 마무리될 즈음 소피 백은 조용히 사라졌다. 주최자들과 시덥잖은 인사를 나누고 베네딕트는 교정의 구석진 곳을 찾아 돌아다녔다. 마침내 들어선 어느 벽돌담 옆 아름드리 나무 밑에서, 소피 백은 또 길게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겨울 날씨 치고 온화한 날이긴 했지만, 가죽 자켓 하나만 걸친 그녀는 못내 위태로워 보였다. 아, 또 시작이다. 베네딕트 브리저튼은 냉소적으로 시작했다. 사실 그녀는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지. 어쩌면 이건 내가 만들어내는 환상일지도.


“이런 말 들어봤어요?‘

No means no, 라고. 소피 백이 비뚜름하게 웃었다.


“진짜 포기를 모르시는 분이네요, 선배는.’
 
혹시 몰라서 말하는데 칭찬 아니에요. 소피 백은 그렇게 말하고서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없네, 확실히.“

베네딕트 브리저튼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디 할 말이 있으면 해보라는 듯, 소피는 담배를 꼬나문 채로 베네딕트를 쳐다보았다.


”구구절절하게 말하진 않을게. 그래도, …“

쓸모 없지는 않았잖아. 그렇지? 베네딕트는 들고 있던 캔커피를 내밀었다.




19.

이왕에 굴러들어온 거, 제대로 활용해 보라는 말이야.

뭐 어때?

그 남자가 남기고 간 말이 자꾸 뒷맛처럼 맴돌아서 소피는 인상을 찌푸렸다. 솔직히 이런 경우가 처음은 아니었다. 관심과 호의를 빙자해서 다가오는 사람들은 많았다. 다만 그녀의 사교성이 떨어지는 건지, 소피는 그런 말들이 내키지 않아서 여태 숨어왔을 뿐이다. 게다가 그녀 같이 오갈 데도 없고 변변한 가족도 없는 젊은 여자애가 어떤 먹잇감으로 비춰질지 잘 알기도 했고.

하지만 그중에 누구도 따뜻한 음료를 쥐어주면서 다가온 적은 없었어서. 소피는 아직 온기가 남은 따뜻한 캔을 살짝 쥐었다. 저 얘기를 좀더 들어보고 싶은 건, 단지 그래서겠지.





노잼… 하 소피 너무 가드 높아서 어렵다 베네딕트야 니가 좀 고생해라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