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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9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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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건물을 뒤로하고 얼마를 걸었을까, 어느정도 체력을 회복한 웨이드가 내려달라며 작게 발버둥을 치는 동안에도 로건은 앞만을 보며 걸었다. 대로변이 보이기 시작하자 웨이드의 반항은 더 거세졌다. 내려놓으라며 그 긴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움직이는데 결국 대문자 Z로 걷기 시작한 로건이 그를 땅에 내려놓았다.
- 언제까지 그렇게 안고 갈 생각이었어. 집에 가기 전에 쪽팔려서 뒤지라고 일부러 그랬지
그저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아무말 하지 못하는 로건을 보고는 어이가 없다는듯 짧게 숨을 뱉고는 그대로 앞서 걸어나간다. 안겨 있어서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다시 느껴지기 시작한다. 속은 울렁거리고 아래에서는 계속해서 이물질을 뱉어낸다. 썩 기분이 좋지 못한 웨이드는 그냥 참고 걸었다. 지금 해결할 수 있는 건 없었으니까. 허벅지 안쪽으로 흘러내리는 통에 바지가 달라붙어 끈적거려도 그냥 이를 물고 걸었다.
제 뒤로 걸어오는 저 녀석의 머리통이 석유 시추라도 하는듯 아주 땅을 파고 들어가는 걸 알았기에 내색하지 않았을 뿐이다. 축 쳐진 어깨를 보기 싫은 것도 있었다. 지금이라도 잔소리를 퍼부어 저 잘난 얼굴을 들고 멋지게 걸어나가길 바랬지만 저녀석이 원하지 않을 것이다. 분명히 그럴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냥 걸었다. 아무렇지도 않은듯이.
아래가 울컥하는 느낌에 잠시 인상을 찡그리고 멈춰섰다. 안쪽 근육이 움찔거리며 멈추지 못하고 계속 뱉어낸다.
- 시발
고개를 숙이고 저를 따라오던 녀석과 작게 충돌한다. 화들짝 놀라며 발걸음을 물리는 녀석을 뒤돌아 보고는 쓰게 웃었다.
- 미안
- 오늘 미안한 일 많이 하네. 자기 천국은 못 가겠다.

뭐 죽지도 않으니까 어딜가겠냐만은 하며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얼굴과 목을 조이는 마스크가 답답하다고 느껴진 적이 있던가. 제 몸을 감싸고 있는 모든 게 불편하고 짜증이 났다. 하지만 얼굴은 보이지 않으니까. 다행이었다.

­- 집까지 경주야. 늦게 오는 사람이 이번주 청소 담당이야!
하고 쌩하니 달려나간다. 마지못해 로건도 바쁜척 발걸음을 움직여본다. 하지만 결과는 정해져 있다는 걸 웨이드는 알고 있었다. 저녀석은 당분간 저에게 필사적으로 져줄테니까. 그치 로건?


벅찬 숨을 몰아쉬며 문을 열고는 그대로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녀석은 한참 뒤에나 올 것이다.
마스크를 벗기는 손이 자꾸만 엇나갔다. 잡아뜯듯 겨우 끌어올린 마스크 사이로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으로 축축히 젖은 얼굴이 드러난다. 축축해져 울퉁불퉁한 얼굴이 불어터져 매끈해진 것 같은 착각마저든다. 웨이드는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까의 난장판이 그대로 남아있던 흔적이 얼굴로 이동된다. 쿰쿰한 먼지와 시멘트 냄새가 제 얼굴을 곧 뒤덮는다. 최악이야.

더러워진 손으로 눈을 덮어 가린다.
눈뜨면 다 꿈이었으면 좋겠어. 네가 나를 보고 웃어주지는 못하더라도 예전처럼 욕이라도 해줬으면하는데
당분간은 힘들겠지. 힘내 데드풀 넌 할 수 있어. 온 우주의 기운을 끌어모아보는 거야 혹시 알아 불쌍하다고 닥터가 타임스톤이라도 제 손에 쥐어줄지.

문고리를 틀어쥐는 소리가 들려 급히 양팔을 들어 얼굴을 가려본다.
멈칫거리며 신발이 끌리는 소리가 곧이어 들리고
- 치미창가 사올게. 조금만 기다려

다시 문이 닫힌다. 얼굴을 가린 팔이 힘없이 떨어진다.
- 내가 이 대사를 할줄은 몰랐어. 다른 의미로 말이야.
­
- 이런 기분이었구나... 이런 거였어. 진짜 별로야 별로라고.



찝찝한 몸을 씻으면 좀 나아지겠지하며 다리에 힘을 줘 일어난다. 끈적하게 젖어 잘 벗어지지 않는 옷을 벗어내고는 거울 앞에 선다. 역시나, 불어터진 얼굴이 저를 맞이한다. 넌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그렇게 울상이야. 좀 웃어봐- 하고는 손가락을 들어 제 입가를 눌러 쭉 끌어올려본다.
- 웃지 마. 뭐가 좋다고 웃어.
거울을 향해 주먹을 뻗으려다 다시금 제 입가를 손으로 잡아당긴다. 입을 크게 벌려 웃어보다가 손을 떼고 다시 웃어보인다. 경련이 온듯 입가가 바들바들 떨린다. 기분이 아주 A부터 Z까지 제멋대로다.
어디서 주워들었는데 우울은 수용성이랬다. 물을 좀 맞으면 나아질 거야. 하고 샤워기를 들어 고정시키고는 물을 틀어 머리부터 흠뻑 젖게한다. 세찬 물소리에 다시 정신이 땅으로 처박힌다.

주저 앉아 하수구로 들어가는 물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흙과 피가 섞여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아까의 기억에 다시 속이 울렁거려 입을 틀어막는다. 제 안에 아직도 가득찬 것이 간헐적으로 울컥이며 흘러나온다. 그녀석이 오기전에 처리해야했다. 아무런 흔적없이 다시 만나 아무일도 없다는듯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급해진 마음에 무릎을 꿇고 무작정 손가락을 넣어 휘젓는다. 잠깐사이 빠듯하게 조여진 몸이 다시 열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내 피가 웨이드의 손을 타고 흐른다. 선홍색 피가 물에 흐려져 보이지 않을 때쯤 몸 안에 고여있던 것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안쪽까지 손을 뻗어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때까지 훑어낸다. 입술이 새하얗게 될 때까지 꾹 다물고는 고통을 참아낸다. 겨우 모든 것을 빼낸 웨이드는 그대로 주저앉아 몸을 웅크린다. 더 이상 몸에서는 나올 게 없는데 했더니 이젠 눈가가 화끈거려 눈물이 차오른다.
- 뒤처리해놨더니 이젠 눈알이 말썽이네
얼굴을 벅벅 문질러 닦아낸다. 진짜 고장이라도 난 건지 계속해 눈물이 흐른다.
- 난 울기 싫다고. 이거 왜 자꾸 나오는 건데. 어이 거기 듣고 있어? 이번엔 안과에 좀 전화해줄래? 진짜로 고장난 거 같은데-


대답을 듣기를 포기한듯 천장을 바라보다 이내 다시 몸을 둥글게 말아 웅크린다. 떨어지는 물줄기가 등을 스치고는 파편이 되어 흩어진다.
피어나는 수증기 사이로 몸을 숨겨보지만 숨겨질리 없다.
혹시나 로건이 돌아올까 소리내어 울지도 못하는 불쌍한 웨이드 윌슨은 중얼거리며 멍하니 눈물만 흘러보낸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욕실을 벗어나며 맨몸으로 나온 웨이드는 으슬한 찬 공기에 몸을 떨었다. 다행히 로건은 아직인 모양이고.
아무렇게나 떨어진 옷을 주워입고는 그대로 소파에 기대 앉았다.
스프링이 빠진 건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몸이 파묻힌다.
그리고 동시에 로건이 돌아왔다. 자, 웨이드 연습했잖아.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를 향해 웨이드는 최대한의 미소를 입에 걸고는 돌아봤다. 정확히는 그가 아닌 그의 손에 들린 치미창가를.

- 치미창가! 오 내 사랑, 저 고약한 울버린에게서 당신을 구해줄게. 데드풀이 왔어 안심하라고!




로건덷풀 풀버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