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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1 23:34
전편 : https://hygall.com/605946426
당신 지금 선 넘는 거요.
오비완의 목에 무언가 턱. 하고 걸린다.
기껏해야 시정 잡배나 다름없을 자의 으름장이 통한 것은 아니다. 고작 저런 말에 흔들리기엔 오비완은 자신이 한 행동의 무게를 안다. 그래, 이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보다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다. 이 시점에서 제다이로서 나선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말 이게 제다이로서 나서는 것이 맞긴 한가. 자신의 임무는 자바 더 헛을 구슬리는 것이지 그를 제 앞에 무릎 꿇리는 것이 아니었다. 안타까운 노예들을 구원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오비완이 진정 제다이 다우려 했다면 침묵을 지켰어야 했다. 자바 더 헛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말을 고르고 또 돌려가며 말이다. 그래서 섵불리 행동하지 못했다. 아니, 행동하지 않았다. 이 전쟁의 끝을 조금이라도 당기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아마도 더 큰 정의를 위해서. 그것이 바로 자신이 바라고, 추구하는 것이어야 했다.
그럼에도 제다이는 사람이어서.
'안 돼!'
절박한 외침이었다.
포스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니 그 순간 자리에 있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무시하지 못할 처절하고 절망적인 외마디가 오비완의 머릿속에에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오비완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가 향한 방향으로 자신의 힘을 펼쳤다. 텅- 무형의 힘에 무언가 거세게 부딪혀 튕겨나갔다. 거대한 쇠촛대. 저게 왜 저곳에 있을까. 자신의 포스로도 느끼지 못했다. 왜? 당장 며칠 전만 해도 날아오는 블라스터의 총알을 모조리 감지하며 전장을 지휘했던 장군의 얼굴에 의문이 서렸다. 손 끝에서 어떤 직감 -일종의 동물적 감각 같은 것- 이 어룽지며 신경줄을 긁는 것이 느껴진다. 이 기분은 뭘까. 오비완은 오래지 않아 그 불쾌감의 정체를 알아냈다. 자신이 더 이상 계획의 설계자가 아닌 장기말로 전락하는 감각. 그 소름끼치는 감각이 발 끝에서부터 천천히 자신의 등허리를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그저 기우면 좋으련만, 이미 일이 틀어졌군.
오비완은 어느새 앞으로 나서있는 제 두 발을 보며 침음을 삼켰다.
'다행이다... 살아있어.'
'당신이 그녀를 살렸어.'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러웠다.
단지 제 머릿속을 울리는 물기어린 목소리가 비탄과 원망으로 물들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말이다. 놀랍게도 오비완은 그 순간을 정확히 기억하진 못한다. 일순 몸이 앞으로 튀어나갔고, 광선검을 들었고, 아나킨의 앞에 섰다. 그리곤 제 손으로 임무를 망쳤다. 오비완은, 그 제다이는 자바 더 헛이 이죽이며 자신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밀어댈 때 까지도 자신의 행동을 자각하지 못한 채 본능적으로 행동했다. 본능과 제다이라니, 이렇게 안 어울리는 말이 또 있을까. 그럼에도 오비완은 제멋대로 마음을 따라간 몸이 원망스럽진 않았다. 다만 놀랐다. 평생 몸과 정신을 수련하여 이성의 아래에 두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아왔는데. 고요한 수면 위로, 물을 더하지도 빼지도 말고. 그저 자신을 끊임없이 비추면서. 그저 그렇게. 그런데 연못에 못에 물이 들어찬다. 오비완 케노비는 그제야 바닥에 쓰러진 여자의 인영과 그 곁에서 눈물로 범벅된 얼굴을 비비는 아이의 모습을 보았다.
'결국 정의감도 아니었나.'
오비완의 얼굴이 옅은 수치심으로 물들었다.
그래, 처음 자신의 행동을 깨달았을 때 오비완은 부끄러웠다. 이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빨리 패를 보였다. 이렇게 되면 자바 더 헛은 제게 우호적으로 나오지 않을테고, 거래자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것이다. 그 뿐일까. 아마 카운슬이 클론 전쟁의 배후를 캐고 있다는 사실도 새어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 작자는 어둠 속으로 더 깊이 숨겠지. 저에게 신신당부하던 카운슬의 면면들, 이번 임무의 중요성, 신음하는 공화국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성급했고, 어리석었다. 감정에 휘둘려 일을 망치다니. 파다완들도 하지 않을 실수였다. 그렇지만, 그건 정말 실수였을 때의 이야기. 오비완은 시간을 돌린다 해도 다른 선택을 할 자신이 없었다. 아니,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어쩌면 이제 더 이상 전과 같은 고요한 호수는 없을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후회가 되진 않는다.
감.. 감사해요... 정말로....
아나킨의 얼굴이... 마치 타오르는 용암에서 건져진 것 같았으니까.
자신이 아밀의 어머니를 구하지 않았더라면 아나킨은 이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다. 아밀의 어머니, 아나킨, 어쩌면 아밀이라는 그 아이까지. 세 구의 시신이 거적에 싸여 저잣거리로 던져지겠지. 사연도, 이름도 알려지지 못한 채 그저 연회에서 한 노예가 미쳐버렸다더라. 하던 뜬소문으로나마 남으면 다행일까. 어쩌면 시체마저 참혹한 꼴을 당했을지도. 이런 상상만으로도 마음 한켠이 서늘해진다. 아나킨이 사라진다는 가정만으로도. 그리고, 오비완은 그것을 막아냈다. 평생을 누군가의 도움을 바랬을 어린 이의 외침에 자신이 처음으로 응답했다. 늦지 않았다. 단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제 성급함이 퍽 기꺼웠다. 무엇보다 너의, 아나킨의 외침을 자신만 들었다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아 마침내 네가 웃는다.
당신 덕분이에요. 마스터 케노비.
'미쳤군.'
티낼 수 없는 치졸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또한 솔직한 욕망이기도 했다. 그리고 의외로 제다이 마스터 오비완 케노비는, 남을 위해 제 욕망을 굽혀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원하는 것을 뺏길 지언정 스스로 없애버리고, 남들에게 양보하기 보단 남을 이끌고, 거스르는 자가 있으면 제 주제를 알도록 해주는 것이 그의 천성이었다. 그리고 그게 만약 악하고 무능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더더욱. 협상가이자, 장군이자, 제다이이자, 또 오비완 케노비인 남자는 그런 사람이었다. 한 수 앞선 자. 이미 정해진 경로에선 벗어났다. 그렇다면 왔던 길을 되돌아 가야할까? 그건 늘상 한 치 앞에서 남을 우롱하길 즐기는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그러니 다른 길을 찾아야겠지. 다행히 오비완은 아는 길이 아주 많았다. 기만 전술로 위명을 떨치는 제너럴 케노비가 사냥덫을 하나만 팔 리가. 다만 저가 조금 번거롭겠으나, 자신의 수고와 아나킨의 목숨이라면 이보다 분명한 선택지는 없었다.
'이참에 타투인의 불법적인 짓을 아예 뿌리 뽑는 것도 나쁘지 않지.'
죄, 죄송해요... 저 때문에....
일렁이던 포스가 다시 서늘히 가라앉는다.
오비완은 차분히 새로운 계획을 되짚으면서도 조심스레 아나킨을 부축했다. 냉정을 찾는 속도는 빨랐다. 다만 분에 못 이겨 자리를 뜬 자바 더 헛과 달리 오비완은 그를, 나아가 멍청한 악당을 앞세워 이 전쟁을 일으킨 악인을 끝까지 노려보고 있었을 뿐이다. 이렇 듯 정작 일을 저지른 사람의 머리는 빠르게 식어 금세 눈 앞의 상대에게 이를 박아넣을 때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어린 노예 청년는 그저 이 상황이 걱정스럽고 두려울 터였다. 그 마음을 대변하듯, 제 팔에서 전해져 오는 손끝의 떨림이 잦아들지 않았다. 오비완도 제법 감탄할 만큼 영특했으며 자신이 여기 온 속셈도 알고 있으니, 지금 이 상황에 자신이 나서면 일이 꼬인다는 것을 짐작한 거겠지. 뭐가 그리 미안한지 연신 죄송하다는 말 뿐이다. 금세 입맛이 씁쓸해졌다. 멋대로 나선 것도 저고, 멋대로 일을 망친 것도 전데, 떠는 건 왜 저자의 몫일까.
얼른 손부터 치료해요....
아니면, 단순히 내 손에 난 피가 걱정인 걸까.
어느쪽이든 참 무르고, 모질지 못한 성정이었다. 그리고 저 다정이 본인도 살리고 다른 노예들도 살렸다는 걸, 아나킨은 아마 평생 모르겠지. 비록 죄책감과 복수심에 잠겨 스스로 깨닫진 못한 듯 싶지만, 참 많은 이들을 구했을 다정이었다. 비록 그 다정을 본인이 끔찍하게 싫어할지라도, 그 다정 때문에 상처받고 아팠을 지라도, 설령 그래서 비정한 사람이 되려 했을지라도. 아나킨의 다정은 그렇게 무 자르듯 잘라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남 위에 서고 싶어하는 천성을 버릴 수 없듯이. 그건 아나킨의 천성이었으니까. 더 긴 세월을 살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난 현명한 제다이에겐 그러한 아나킨의 천성 덕에 살았을 수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지금도 보라, 제 모포를 벗어다 아이와 어미에게 씌워 일으킨다. 마른몸으로 그들을 제 뒤에 숨긴다. 저런사람이, 제 다정을 증오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니.
문득 참 잔인한 우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왜 이지경까지 내몰린거지?'
그리고 자연스레, 이렇게 다정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살심을 품을 정도로 몰아붙여졌던 상황에 대해 의문이 일었다. 왜 아밀의 어머니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 아나킨이 이성을 잃었을까. 노예 생활을 하며 이것보다 더 한 일도 제법 보았을텐데. 그렇게 철저히 계획한 복수인 만큼, 어지간한 일엔 때를 기다렸을텐데. 한 번 시작된 의문은 서서히 크기를 키워갔다. 그러고 보니 그는 어떻게 성노가 되었지? 성노는 마땅한 재주가 없는 선택하는 최후의 수단 아니었나? 아나킨은, 기계를 만지는 실력이 특출나 보였지. 그럼 그는 성노가 되기 전엔 기계를 만졌을까. 어쩐지, 이 의문을 여기서 잘라내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나킨은 여전히 절 보지 않고 있다.
아나킨.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비완은 손에 힘을 주어 아나킨을 단단히 붙들고 저를 바라보도록 만들었다. 허튼생각은 더 이상 하지 말라는 듯이. 안다. 저가 뭐라고 충고할 주제가 되겠는가. 하지만 이런 제멋대로인 간섭이라도 오비완은 자신의 존재가 아나킨을 더 오래, 더 강하게 이 삶에 붙잡아 둘 수 있기를 바랬다.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이 아나킨을 구하는데, 그가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랬다. 마치 온 세상이 아나킨을 죽음으로 떠미는 것 같은 불합리 속에서, 미력한 힘이라도 되길 바랬다. 그래서 오비완은 아나킨을 조용히 제 숙소로 이끌었다. 속내를 털어놓기 위해선 믿을 만한 사람과 조용한 공간이 필요한 법이었다.
그리곤 아나킨을 향해 물었다.
그때 왜 냉정을 잃었습니까.
어쩌다 성노까지 되었던 거에요.
유능한 장군이자 사원의 학구자는 필요한 질문을 망설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 그래서 더 흥분했던 것 같아요. 아밀의 어머니가 꼭 제 어머니 같았거든요.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맞아떨어지는 걸까.
노예 아이와 노예 어미. 폭력. 둔기. 눈앞에서 절명하는 여인. 그리고 그걸 바로 눈 앞에서 목격하게 된 아나킨까지. 우연이라기엔 너무 겹치는 부분이 많았고, 또한 아나킨에게 너무 잔인했다. 마치 누군가 실로 하나하나 엮어놓은 그물에 걸린 듯 한 기분까지 들었다. 그래, 어딘가의 행성에서 절대자마냥 그들을 내려다보고 이 비명 가득한 전쟁을 손에 쥐고 흔드는 그자처럼. 물론 그저 우연이 겹쳤을 가능성도 있다. 안타깝게도 노예들의 인생이란 대체로 엇비슷한 비극이었으니까. 하지만, 가장 치명적일 타이밍에 정확히 재생되는 과거의 비극은 극본 없이란 불가능한 것이었다. 다행이 아나킨은 아직 거기까진 생각이 닿지 않은 듯 했지만, 그런데, 그렇다면 정말로.
달그락-
오비완의 시선이 널브러진 촛대에 가 닿는다. 잠시 스쳐 지나간 위화감의 원인. 총알도 감지하던 제 포스가 눈치채지 못했던 흉기. 아나킨의 외침이 아니었으면 아마도, 오늘 아밀의 어머니를 죽였을 도구. 그리고 그 촛대의 끝에, 작게 매달린 기계장치가 보인다. 포스 차단기? 광선검도 아닌 쇠촛대에 저게 왜 필요한가. 조심스레 손 안에서 기계를 굴리던 오비완의 얼굴이 서서히 굳는다. 뒷목이 뻐근히 당겨오며 진득한 진실이 살갗을 파고든다. 그래, 쇠촛대에겐 쓸모가 없겠지. 하지만 자신에게라면.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남을 지킬 수 있을만큼의 포스를 사용할 수 있는 자신이, 잠시 저 촛대의 움직임을 쫓지 못할 순간이 필요했던 거라면. 그렇게 아밀의 어머니를 죽이고 아나킨의 복수에 불을 붙이고, 마침내 그의 눈을 노랗게 물들여서-
.... 시스로써 죽여 버리려던 거라면?
오비완의 등골을 따라 소름이 돋는다. 부정하고 싶지만, 이것이 자신이 찾은 정답이었다.
이 우주 어딘가에, 아나킨의 죽음을 바라는 이가 있다.
그것도 가장 불명예스러운 방법으로.
드디어 오비완이 아나킨의 복수 너머에 팰가놈의 배후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음.... 그리고 사실 아밀의 어머니를 구할 수 있었던 건 아나킨이 그녀를 위해서 소리쳤기 때문임 전편에서 아나킨은 자기가 아무것도 못하고, 오비완이 아밀의 어머니를 구해준 줄 알지만, 이번 편에서 오비완이 말했듯이 비록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었을 지라도 아나킨의 다정이 오늘 또 한명을 살렸다는 걸 오비완은 알겠지. 정작 아나킨은 모르는데.
오늘은 쪼금 길다 다음편은 좀 금방 올라올 것 같음 ㅇㅇ
별전쟁 유안헤이든
당신 지금 선 넘는 거요.
오비완의 목에 무언가 턱. 하고 걸린다.
기껏해야 시정 잡배나 다름없을 자의 으름장이 통한 것은 아니다. 고작 저런 말에 흔들리기엔 오비완은 자신이 한 행동의 무게를 안다. 그래, 이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보다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다. 이 시점에서 제다이로서 나선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말 이게 제다이로서 나서는 것이 맞긴 한가. 자신의 임무는 자바 더 헛을 구슬리는 것이지 그를 제 앞에 무릎 꿇리는 것이 아니었다. 안타까운 노예들을 구원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오비완이 진정 제다이 다우려 했다면 침묵을 지켰어야 했다. 자바 더 헛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말을 고르고 또 돌려가며 말이다. 그래서 섵불리 행동하지 못했다. 아니, 행동하지 않았다. 이 전쟁의 끝을 조금이라도 당기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아마도 더 큰 정의를 위해서. 그것이 바로 자신이 바라고, 추구하는 것이어야 했다.
그럼에도 제다이는 사람이어서.
'안 돼!'
절박한 외침이었다.
포스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니 그 순간 자리에 있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무시하지 못할 처절하고 절망적인 외마디가 오비완의 머릿속에에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오비완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가 향한 방향으로 자신의 힘을 펼쳤다. 텅- 무형의 힘에 무언가 거세게 부딪혀 튕겨나갔다. 거대한 쇠촛대. 저게 왜 저곳에 있을까. 자신의 포스로도 느끼지 못했다. 왜? 당장 며칠 전만 해도 날아오는 블라스터의 총알을 모조리 감지하며 전장을 지휘했던 장군의 얼굴에 의문이 서렸다. 손 끝에서 어떤 직감 -일종의 동물적 감각 같은 것- 이 어룽지며 신경줄을 긁는 것이 느껴진다. 이 기분은 뭘까. 오비완은 오래지 않아 그 불쾌감의 정체를 알아냈다. 자신이 더 이상 계획의 설계자가 아닌 장기말로 전락하는 감각. 그 소름끼치는 감각이 발 끝에서부터 천천히 자신의 등허리를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그저 기우면 좋으련만, 이미 일이 틀어졌군.
오비완은 어느새 앞으로 나서있는 제 두 발을 보며 침음을 삼켰다.
'다행이다... 살아있어.'
'당신이 그녀를 살렸어.'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러웠다.
단지 제 머릿속을 울리는 물기어린 목소리가 비탄과 원망으로 물들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말이다. 놀랍게도 오비완은 그 순간을 정확히 기억하진 못한다. 일순 몸이 앞으로 튀어나갔고, 광선검을 들었고, 아나킨의 앞에 섰다. 그리곤 제 손으로 임무를 망쳤다. 오비완은, 그 제다이는 자바 더 헛이 이죽이며 자신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밀어댈 때 까지도 자신의 행동을 자각하지 못한 채 본능적으로 행동했다. 본능과 제다이라니, 이렇게 안 어울리는 말이 또 있을까. 그럼에도 오비완은 제멋대로 마음을 따라간 몸이 원망스럽진 않았다. 다만 놀랐다. 평생 몸과 정신을 수련하여 이성의 아래에 두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아왔는데. 고요한 수면 위로, 물을 더하지도 빼지도 말고. 그저 자신을 끊임없이 비추면서. 그저 그렇게. 그런데 연못에 못에 물이 들어찬다. 오비완 케노비는 그제야 바닥에 쓰러진 여자의 인영과 그 곁에서 눈물로 범벅된 얼굴을 비비는 아이의 모습을 보았다.
'결국 정의감도 아니었나.'
오비완의 얼굴이 옅은 수치심으로 물들었다.
그래, 처음 자신의 행동을 깨달았을 때 오비완은 부끄러웠다. 이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빨리 패를 보였다. 이렇게 되면 자바 더 헛은 제게 우호적으로 나오지 않을테고, 거래자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것이다. 그 뿐일까. 아마 카운슬이 클론 전쟁의 배후를 캐고 있다는 사실도 새어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 작자는 어둠 속으로 더 깊이 숨겠지. 저에게 신신당부하던 카운슬의 면면들, 이번 임무의 중요성, 신음하는 공화국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성급했고, 어리석었다. 감정에 휘둘려 일을 망치다니. 파다완들도 하지 않을 실수였다. 그렇지만, 그건 정말 실수였을 때의 이야기. 오비완은 시간을 돌린다 해도 다른 선택을 할 자신이 없었다. 아니,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어쩌면 이제 더 이상 전과 같은 고요한 호수는 없을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후회가 되진 않는다.
감.. 감사해요... 정말로....
아나킨의 얼굴이... 마치 타오르는 용암에서 건져진 것 같았으니까.
자신이 아밀의 어머니를 구하지 않았더라면 아나킨은 이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다. 아밀의 어머니, 아나킨, 어쩌면 아밀이라는 그 아이까지. 세 구의 시신이 거적에 싸여 저잣거리로 던져지겠지. 사연도, 이름도 알려지지 못한 채 그저 연회에서 한 노예가 미쳐버렸다더라. 하던 뜬소문으로나마 남으면 다행일까. 어쩌면 시체마저 참혹한 꼴을 당했을지도. 이런 상상만으로도 마음 한켠이 서늘해진다. 아나킨이 사라진다는 가정만으로도. 그리고, 오비완은 그것을 막아냈다. 평생을 누군가의 도움을 바랬을 어린 이의 외침에 자신이 처음으로 응답했다. 늦지 않았다. 단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제 성급함이 퍽 기꺼웠다. 무엇보다 너의, 아나킨의 외침을 자신만 들었다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아 마침내 네가 웃는다.
당신 덕분이에요. 마스터 케노비.
'미쳤군.'
티낼 수 없는 치졸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또한 솔직한 욕망이기도 했다. 그리고 의외로 제다이 마스터 오비완 케노비는, 남을 위해 제 욕망을 굽혀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원하는 것을 뺏길 지언정 스스로 없애버리고, 남들에게 양보하기 보단 남을 이끌고, 거스르는 자가 있으면 제 주제를 알도록 해주는 것이 그의 천성이었다. 그리고 그게 만약 악하고 무능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더더욱. 협상가이자, 장군이자, 제다이이자, 또 오비완 케노비인 남자는 그런 사람이었다. 한 수 앞선 자. 이미 정해진 경로에선 벗어났다. 그렇다면 왔던 길을 되돌아 가야할까? 그건 늘상 한 치 앞에서 남을 우롱하길 즐기는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그러니 다른 길을 찾아야겠지. 다행히 오비완은 아는 길이 아주 많았다. 기만 전술로 위명을 떨치는 제너럴 케노비가 사냥덫을 하나만 팔 리가. 다만 저가 조금 번거롭겠으나, 자신의 수고와 아나킨의 목숨이라면 이보다 분명한 선택지는 없었다.
'이참에 타투인의 불법적인 짓을 아예 뿌리 뽑는 것도 나쁘지 않지.'
죄, 죄송해요... 저 때문에....
일렁이던 포스가 다시 서늘히 가라앉는다.
오비완은 차분히 새로운 계획을 되짚으면서도 조심스레 아나킨을 부축했다. 냉정을 찾는 속도는 빨랐다. 다만 분에 못 이겨 자리를 뜬 자바 더 헛과 달리 오비완은 그를, 나아가 멍청한 악당을 앞세워 이 전쟁을 일으킨 악인을 끝까지 노려보고 있었을 뿐이다. 이렇 듯 정작 일을 저지른 사람의 머리는 빠르게 식어 금세 눈 앞의 상대에게 이를 박아넣을 때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어린 노예 청년는 그저 이 상황이 걱정스럽고 두려울 터였다. 그 마음을 대변하듯, 제 팔에서 전해져 오는 손끝의 떨림이 잦아들지 않았다. 오비완도 제법 감탄할 만큼 영특했으며 자신이 여기 온 속셈도 알고 있으니, 지금 이 상황에 자신이 나서면 일이 꼬인다는 것을 짐작한 거겠지. 뭐가 그리 미안한지 연신 죄송하다는 말 뿐이다. 금세 입맛이 씁쓸해졌다. 멋대로 나선 것도 저고, 멋대로 일을 망친 것도 전데, 떠는 건 왜 저자의 몫일까.
얼른 손부터 치료해요....
아니면, 단순히 내 손에 난 피가 걱정인 걸까.
어느쪽이든 참 무르고, 모질지 못한 성정이었다. 그리고 저 다정이 본인도 살리고 다른 노예들도 살렸다는 걸, 아나킨은 아마 평생 모르겠지. 비록 죄책감과 복수심에 잠겨 스스로 깨닫진 못한 듯 싶지만, 참 많은 이들을 구했을 다정이었다. 비록 그 다정을 본인이 끔찍하게 싫어할지라도, 그 다정 때문에 상처받고 아팠을 지라도, 설령 그래서 비정한 사람이 되려 했을지라도. 아나킨의 다정은 그렇게 무 자르듯 잘라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남 위에 서고 싶어하는 천성을 버릴 수 없듯이. 그건 아나킨의 천성이었으니까. 더 긴 세월을 살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난 현명한 제다이에겐 그러한 아나킨의 천성 덕에 살았을 수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지금도 보라, 제 모포를 벗어다 아이와 어미에게 씌워 일으킨다. 마른몸으로 그들을 제 뒤에 숨긴다. 저런사람이, 제 다정을 증오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니.
문득 참 잔인한 우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왜 이지경까지 내몰린거지?'
그리고 자연스레, 이렇게 다정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살심을 품을 정도로 몰아붙여졌던 상황에 대해 의문이 일었다. 왜 아밀의 어머니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 아나킨이 이성을 잃었을까. 노예 생활을 하며 이것보다 더 한 일도 제법 보았을텐데. 그렇게 철저히 계획한 복수인 만큼, 어지간한 일엔 때를 기다렸을텐데. 한 번 시작된 의문은 서서히 크기를 키워갔다. 그러고 보니 그는 어떻게 성노가 되었지? 성노는 마땅한 재주가 없는 선택하는 최후의 수단 아니었나? 아나킨은, 기계를 만지는 실력이 특출나 보였지. 그럼 그는 성노가 되기 전엔 기계를 만졌을까. 어쩐지, 이 의문을 여기서 잘라내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나킨은 여전히 절 보지 않고 있다.
아나킨.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비완은 손에 힘을 주어 아나킨을 단단히 붙들고 저를 바라보도록 만들었다. 허튼생각은 더 이상 하지 말라는 듯이. 안다. 저가 뭐라고 충고할 주제가 되겠는가. 하지만 이런 제멋대로인 간섭이라도 오비완은 자신의 존재가 아나킨을 더 오래, 더 강하게 이 삶에 붙잡아 둘 수 있기를 바랬다.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이 아나킨을 구하는데, 그가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랬다. 마치 온 세상이 아나킨을 죽음으로 떠미는 것 같은 불합리 속에서, 미력한 힘이라도 되길 바랬다. 그래서 오비완은 아나킨을 조용히 제 숙소로 이끌었다. 속내를 털어놓기 위해선 믿을 만한 사람과 조용한 공간이 필요한 법이었다.
그리곤 아나킨을 향해 물었다.
그때 왜 냉정을 잃었습니까.
어쩌다 성노까지 되었던 거에요.
유능한 장군이자 사원의 학구자는 필요한 질문을 망설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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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더 흥분했던 것 같아요. 아밀의 어머니가 꼭 제 어머니 같았거든요.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맞아떨어지는 걸까.
노예 아이와 노예 어미. 폭력. 둔기. 눈앞에서 절명하는 여인. 그리고 그걸 바로 눈 앞에서 목격하게 된 아나킨까지. 우연이라기엔 너무 겹치는 부분이 많았고, 또한 아나킨에게 너무 잔인했다. 마치 누군가 실로 하나하나 엮어놓은 그물에 걸린 듯 한 기분까지 들었다. 그래, 어딘가의 행성에서 절대자마냥 그들을 내려다보고 이 비명 가득한 전쟁을 손에 쥐고 흔드는 그자처럼. 물론 그저 우연이 겹쳤을 가능성도 있다. 안타깝게도 노예들의 인생이란 대체로 엇비슷한 비극이었으니까. 하지만, 가장 치명적일 타이밍에 정확히 재생되는 과거의 비극은 극본 없이란 불가능한 것이었다. 다행이 아나킨은 아직 거기까진 생각이 닿지 않은 듯 했지만, 그런데, 그렇다면 정말로.
달그락-
오비완의 시선이 널브러진 촛대에 가 닿는다. 잠시 스쳐 지나간 위화감의 원인. 총알도 감지하던 제 포스가 눈치채지 못했던 흉기. 아나킨의 외침이 아니었으면 아마도, 오늘 아밀의 어머니를 죽였을 도구. 그리고 그 촛대의 끝에, 작게 매달린 기계장치가 보인다. 포스 차단기? 광선검도 아닌 쇠촛대에 저게 왜 필요한가. 조심스레 손 안에서 기계를 굴리던 오비완의 얼굴이 서서히 굳는다. 뒷목이 뻐근히 당겨오며 진득한 진실이 살갗을 파고든다. 그래, 쇠촛대에겐 쓸모가 없겠지. 하지만 자신에게라면.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남을 지킬 수 있을만큼의 포스를 사용할 수 있는 자신이, 잠시 저 촛대의 움직임을 쫓지 못할 순간이 필요했던 거라면. 그렇게 아밀의 어머니를 죽이고 아나킨의 복수에 불을 붙이고, 마침내 그의 눈을 노랗게 물들여서-
.... 시스로써 죽여 버리려던 거라면?
오비완의 등골을 따라 소름이 돋는다. 부정하고 싶지만, 이것이 자신이 찾은 정답이었다.
이 우주 어딘가에, 아나킨의 죽음을 바라는 이가 있다.
그것도 가장 불명예스러운 방법으로.
드디어 오비완이 아나킨의 복수 너머에 팰가놈의 배후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음.... 그리고 사실 아밀의 어머니를 구할 수 있었던 건 아나킨이 그녀를 위해서 소리쳤기 때문임 전편에서 아나킨은 자기가 아무것도 못하고, 오비완이 아밀의 어머니를 구해준 줄 알지만, 이번 편에서 오비완이 말했듯이 비록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었을 지라도 아나킨의 다정이 오늘 또 한명을 살렸다는 걸 오비완은 알겠지. 정작 아나킨은 모르는데.
오늘은 쪼금 길다 다음편은 좀 금방 올라올 것 같음 ㅇㅇ
별전쟁 유안헤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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