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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1 23:25
그런 유니버스의 로건너붕붕
여느 때와 다름 없이 밤낮 없는 삶이다. 로건은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며 하루의 첫 호흡을 시작했다. 들이마시고, 내쉬고.
먹구름같은 연기가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걸 무감하게 바라봤다. 전날 좀 무리해서 일을 했나. 뻐근한 어깨를 돌리다가도 금세 나을 몸인데 뭐,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샤워를 끝마치고 옷을 입고 집을 나선다. 차문을 열고 시동을 건다. 목적지 없는 차를 운행한다. 그것이 반복되는 그의 하루다.
아끼는 것 없고 가까운 사람도 없다. 오랜 세월 살다 보니 그런 게 다 부질없다 느껴졌다. 한 몸 뉘일 집이랑 여차하면 움직일 수 있는 차만 한 대 있으면 된다. 여의치 않으면 새로운 거주지를 찾으면 되니까.
거주지는 몇 년을 주기로 바뀐다. 오랫동안 한 동네에 있으면 아는 체를 해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귀찮다. 관계라는 건. 그는 죽지 못하니 살았고 숨을 쉬니 움직일 뿐이다. 이상의 목표는 없었으며 감정에 대한 관심 역시 현저히 떨어졌다.
하루는 이게 그 우울증인가 싶어 남는 돈으로 상담이나 받아볼까 하다가 관뒀다. 사연이 너무 비현실적이니까. 사실대로 말했다간 의사가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을 시킬지도 모른다. 그럼 귀찮아지지. 귀찮은 게 싫다. 이를 테면 하지 않아도 되는 감정을 낭비하거나 체력을 요하는 것.
거센 파도 위에서도 살아봤으니 이제 더 이상의 스릴은 필요치 않다.
"백, 백이십오번가..."
"......"
백미러에 비치는 여성은 뭐가 그리 두려운지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었다. 주소지도 제대로 말하지 못해 로건은 답지 않은 인내심을 발휘해야 했다.
시간은 새벽 2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여긴 소위 말하는 정키들을 들끓는 곳이다.
약이라도 했나? 아니면 헤어짐에 앙심을 품은 남자친구가 쫓아오기라도 했나.
혀를 한 번 차다가 로건이 무심히 말했다.
"목적지는 어디인지 말해야 출발을 하지."
"어, 죄송해요. 제가 지금..."
"이봐요. 약 했어요? 그건 내가 어떻게 해결해 줄 수 없으니 다른 택시를 타는 게 좋겠네."
아예 나가서 문을 열어 버릴까 하다가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겠나 싶어 로건은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리고 마주한 건 눈물범벅이 된 여자의 얼굴이다.
여자건, 남자건 타인의 눈물에 별로 자극받는 편은 아니다. 측은함을 크게 느끼는 것도 아니고. 우는 사람을 한 두 번 본 것도 아니니.
그래도 구별 정도는 할 수 있다. 숨소리도 제대로 못 내고 이를 악 문 채 최소한의 소음으로 엄청난 양의 눈물을 쏟아내고 있는 여자가 꽤 내몰린 상태라는 걸.
주변을 느슨하게 바라보다 결국 악셀을 밟았다.
불쌍해 보인다는 단순한 동정심이 아니다. 저 정도로 내몰려봤기 때문에 상대해주는 것이다.
로건은 느리게 주변 시내를 돌았고 그 동안 여자는 울음을 멈췄다. 억지로 삼켰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지만 로건은 손수건을 내어주는 매너를 발휘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목적지 없이 택시를 몰아주는 게 그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번화가에 차를 세운 로건이 고개를 까닥였다.
"내려요. 요금은 안 받을 테니까."
"아니, 아니에요. 로건. 여기요. 여기 낼게요."
"......"
"...요금이 모자란가요?"
"......"
빨개진 눈가로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를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던 로건의 눈에 살기가 비쳤다. 그의 울퉁불퉁한 손목에서 단단한 클로가 튀어나왔다.
"당신 누구야?"
클로를 본 여자는 예상 외로 침착했다. 울지도, 소리 지르지도 않았다.
그저 설명이 필요한 것 같다며 짧게 답했을 뿐이다. 둘만 있을 수 있는 장소가 있느냐 물었고 로건은 자신의 집으로 차를 몰았다.
여차하면 시체를 처리하기에 자신의 집이 수월하니까.
"손님이 아니니 내어줄 것 따위 없어."
의자를 내어준 것이 자신의 최선이라는 듯 앞에 선 로건이 팔짱을 낀 채 으르렁거렸다. 여자는 눈을 내리 깐 채 고개를 끄덕이다 천천히 집 안을 훑었다.
"대화에 집중 하지?"
클로가 테이블 윗쪽에 꽂혔다. 기이할 정도로 요동 없는 여자는 클로를 한 번 바라보다 로건에게 시선을 맞췄다.
"다른 우주가 있다고 하면 믿나요?"
"뭐?"
"이 우주가 아닌 또 다른 우주에, 여러 로건이 존재한다면. 믿어요?"
"뭔 개소리야?"
역시 약쟁이였나 싶어 로건이 비웃음을 흘렸다. 시간 낭비. 그가 싫어하는 요소 중 하나를 여자가 해냈다.
"내가 사는 우주에도 당신이 있었고. 당신과 내가 연인이었고. 당신이 나를 구하다 죽었다면, 믿어요?"
"내가? 내가 왜?"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죽다니. 그것보다 본인은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몸이 아니던가.
"그럴싸한 연극이었어. 지루한 스토리 다 끝난 거면 나가지? 알다시피 여긴 내 집이라."
"힐링 팩터를 가진 사람이 죽다니. 아이러니하죠. 그 곳에서 당신은 뮤턴트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에게 핍박받고, 함부로 외출할 수 없었는데. 여기서는 자유로워보여서 좋네요."
"그만!"
이번에는 의자를 날려 먹었다. 나름 아끼던 거였는데. 빈티지 시장에서 몇 달러를 주고 샀더라.
괴팍하다 싶을 정도의 비명을 내지르며 의자 하나를 부숴먹었는데도 여자는 꼿꼿히 허리를 펴고 있다. 처참하게 울고 있던 여자는 다른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살아 있는 모습 보고 싶어 왔다느니 그딴 진부한 말은 안 할게. 어차피 안 통하잖아."
"......"
"얼굴 보니 나도 마음이 확실히 정리 되네."
여자가 웃으며 일어났다. 비틀린 입매가 서늘하여 로건은 잠시 몸을 머뭇거렸다. 위협이 되지는 않았지만 묘하게 거슬렸다.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절대로 죽지 말라고. 절대로."
충혈된 눈으로 자신을 노려다 보는 여자의 눈에서 무언가가 거세게 휘몰아쳤다. 이쯤 되니 이 여자의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으면서도, 동시에 억울했다.
이 여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한 짓' 이 아닌 거잖아. 왜 책임을 내게 묻고 있는 거지?
뭐가 됐건 위험하다는 생각에 여자를 내보내기 위해 팔을 뻗으면 어느새 소총을 제 목에 가져다 대고 있는 여자였다.
"당신이 알려줬어. 정말, 제대로 죽고 싶으면 입을 벌리고 거기에 총을 쏘라고."
"무슨,"
여자는 말리기도 전에 장전된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나뒹굴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낡은 바닥 위로 엎어졌고 탄알은 로건의 오른팔을 관통했다.
"제기랄!"
힐링팩터가 있다고 해서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는 피가 터져 나오는 부위를 반대쪽 손으로 누르며 여자를 형형히 노려봤다.
"다른 유니버스건 뭐건 알게 뭐야! 그까짓게 다 나랑 무슨 상관인데?! 죽고 싶으면 내 집에서 나가서 죽어! 젠장, 왜 여기서 지랄을."
"똑같네."
"뭐? 남의 집에서 총질을 해놓고 뭐라는,"
"사람 죽는 거 못 보는 건 똑같아. 입만 걸걸하고."
바닥에 나뒹군 그 자세 그대로, 여자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저 여자의 뒷덜미를 잡아 채서 집 밖으로 걷어 차 버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무슨 짓을 할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저 여자가 이 집 외에서 무슨 짓을 하건 자신과는 전혀 상관 없지만 이상하게 완전히 외면할 수가 없었다.
"로건."
"......"
"로건."
"......"
"마음에 안 들면 대답 안 하는 것도 똑같아."
"다시 한 번 말해주지. 네 그 빌어먹을 로건과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니까 같은 놈 취급하지 마."
몸에서 튕겨져 나오는 탄알과 재생되는 피부를 보며 로건이 일갈했다.
듣는 둥 마는 둥 대답 없이 천장만 바라보던 여자가 자신의 배를 매만지며 로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배고프지 않아?"
"허?"
"나 당신 죽자마자 눈깔 돌아서 아무 우주나 온 거거든. 돌아가는 방법도 몰라. 내가 죽는 거에 협조할 거 아니면..."
"......"
"일단 뭐 좀 먹자."
벌떡 상체를 일으킨 여자가 이번에는 배시시 웃었다. 만난 지 몇 시간 만에 처음으로, 정상적이고 진심 담긴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이 몹시 이상해서 로건은 다른 말을 잇지 못했다.
맨중맨너붕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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