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606395776
view 325
2024.09.29 00:55
* 타싸 올린 적 있음.

* 리암노엘(젊럄젊뉄). 우성알파에서 오메가로 변하는 젊뉄. 

* 이 썰은 현대 판타지(5편으로 완결: https://hygall.com/605112624) 썰에 등장했던, 형질이 있는 세계의 럄뉄을 다룸. 현대 판타지 썰을 읽으면 좋지만, 굳이 읽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음..

* 배경: 1995년 8월 초.

----

1.

도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도시의 매력과 관련해 '매직 10(Magic 10)'이라는 개념을 정립했음. 사람을 끌어들이는 열 가지 매력적인 장소. 도시에 사는 사람들 누구나 가고 싶어하고, 그곳을 방문하는 여행자도 기꺼이 가고자 하는 곳이 열 군데는 있어야 한다는 것. 그 장소는 시장일 수도, 식당일 수도, 미술관일 수도, 공원일 수도, 혹은 거리 그 자체일 수도 있음. 어쨌든 다른 나라와 비교해 확연히 사람을 이끌어야 함.


그런 의미에서 런던은 꽤 매력적인 도시임. 템스 강, 테이트 모던, 코벤트 가든, 하이드 파크와 햄스테드 히스는 시민들에게 사랑받고 있으니까. 1997년에 취임하게 될 토니 블레어 총리는 '창조적 영국', '멋진 영국'을 슬로건으로 걸고 영국을 세계의 디자인 공장으로 만들자고 역설했음. 


런던의 매직 10 가운데 하나는 '펍'일 터. 거리 귀퉁이에 하나씩 자리한 펍. 펍의 정식 명칭은 퍼블릭 하우스(Public House)임. 내무장관을 역임했던 윌리엄 하코트는 '펍은 영국 역사에서 하원 역할을 했다'라고 말했음. 최신 뉴스나 소문, 루머, 여론이 생성되고 토론이 벌어지는 정치적 장소로서 펍이 자리매김했기 때문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음. 시민들은 도시가 자신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꿈을 심어 주기를 희망함. 시민들이 도시로 찾아오는 이유가 무엇인가? 생계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살던 곳에서는 이룰 수 없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시민들에게 희망과 영감을 주지 못하는 곳이 도시일 수 없음. 


펍은 대중의 삶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음. 펍에는 이야깃거리가 넘쳤음. 앞서 말한 것처럼 정치적인 의미도 있는 곳이었지만, 추억을 나누고 희망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삶에 대한 넋두리를 털어놓는 곳이기도 했음. 게다가 맛있는 맥주도 마시며 스포츠 경기를 같이 보곤 함. 


넓게 본다면 클럽도 매직 10에 충분히 들어가겠지. 런던이 아니라 맨체스터라면 하시엔다(The Haçienda)가 빠질 수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여기는 런던이었고, 런던의 펍에 갈 수밖에 없었음. 하시엔다 정도로 괜찮은 클럽도 런던에 있었으나 지금은 클럽보다 펍이었음. 왜냐고? 이 따위 몸 상태로 클럽에 가면 큰일이 날 게 뻔했으니까. 술이나 홀짝대며 구석에 앉아 홀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펍이 훨씬 나았음. 


오스카 와일드가 자주 들렀던 런던 코벤트 가든 근처의 펍 '솔즈베리(Salisbury)' 천장에 걸려 있는 나무판에는 맥주를 칭송하는 글귀가 적혀 있음.


Beer! Happy produce of our isle,
우리 섬의 행복한 산물인 맥주,


Can sinewy strength impart.
그 건강한 기쁨을 함께 나눕시다.


And wearied with fatigue and toil,
피곤과 역경이 (우리를) 지치게 만들어도,


Can cheer each manly heart. 
각자 씩씩한 마음으로 건배합시다.


테이블의 나무 의자에 방만한 자세로 걸터앉아 머리를 뒤로 젖힌 노엘은 그 나무판에 걸린 말을 되풀이했음. 피곤과 역경이 지치게 만들어도... 인가. 

이상하게 요즘 머리가 멍했음. 먹구름이 잔뜩 낀 것처럼 머리 한 구석이 혼탁했음. 명민한 기억력을 자랑하는 노엘이었지만 근래 아침에 뭘 먹었는지, 오전에 뭘 했는지, 오후에 뭘 했는지, 잠은 몇 시에 잤는지 기억나지 않았음. 부옇게 녹슨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는 것처럼 흐리멍덩했음.   


1995년은 어떤 해였던가? 오아시스는 2월에 열린 1995 브릿 어워드에서 '최고의 그룹상', '최고의 신인상', '최고의 앨범상', '최고의 싱글상'에 노미네이트 되었지만 '최고의 신인상'만 수상했음. Parklife를 발매한 블러가 나머지 3개의 상을 수상하고, 최고의 뮤직비디오상까지 받아 브릿어워드 4관왕을 차지했음. 이때 데이먼이 오아시스와 이 상을 같이 나눴어야 했다고 말했음. 그게 불씨가 되었음. 


언론은 이 수상 소감을 놓치지 않았음. 오아시스와 블러를 음악적 라이벌로 몰아갔음. 일부러 자극적이고 과열되게 만들어야 대중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거든. 브릿팝 전쟁이라니, 이미 이 세상에 넘치고 넘친 게 전쟁 아닌가? 음악계에서도 전쟁이라는 단어를 기어코 써먹어야겠어? 하여간 저열한 놈들. 신문의 판매 부수를 위해서는 뭐든지 할 수 있다 이거지.


어떤 놈들은 블러의 싱글이 오아시스의 싱글과 같은 날에 발매되었으면 좋겠다고 떠들어댔음.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면 어떨까요? 재밌지 않을까요?


재밌긴 씨발. 언론만 돈벌이할 생각에 신나서 날뛰겠지. 진정으로 이 나라의 음악을 생각하는 언론인은 아무도 없으니까.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길 바랄 뿐이다, 망할. (하지만 노엘의 바람과 달리 얼마 후에 그 일이 8월 14일에 생기고야 말았음...)


어쨌든 노엘은 근래 많이 피곤했음. 블러와의 신경전을 옳다구나 하고 물어뜯는 언론들과, 펍 입구에 당당하게 서 있는 한 무리의 파파라치들도 두통거리였음. 눈치라도 보던가 씨발. 뭐가 그렇게 떳떳해? 남의 사생활을 몰래 찍어서 조각조각 난도질해 팔아치우는 젠장할 새끼들이. 


어이, 난 얌전하게 맥주만 마시고 갈 테니까 서로 못 본 척 하자. 알겠지? 몸 상태가 맛이 갔단 말이야. 두통약을 먹으려고 해도 약을 어디 놔뒀는지 기억나지 않을 지경이라고. 게다가 시도때도 없이 잠이 와서...


노엘의 눈꺼풀이 느릿느릿 움직였음. 하늘색 눈이 서서히 눈꺼풀 밑으로 숨었음. 곧장 잠들어버린 노엘에게서 우성알파가 아니라 오메가의 향이 스멀스멀 흘러나왔음. 작고 동글동글한 머리가 꾸벅거리더니 뒤로 휙 넘어가서 의자 등받이에 턱하니 얹혔음.


꿈에서는 어린 리암이 나왔음. 왜일까. 예전에는 이토록 리암의 꿈을 자주 꾸지 않았는데...

34.PNG
 

(* 출처: http://v.daum.net/v/20240906130142007)
 

노엘은 병원의 창백한 침대에서 태어나면서부터 명백한 우성알파였음. 하지만 리암은 오메가였지. 형질도 없이 지내던 일곱살 리암이 오메가로 발현한 날, 어머니는 노엘을 따로 불러내서 신신당부했음. '나와 네 큰형인 폴은 돈을 벌러 나가야 한다는 걸 알잖니. 노엘, 네가 남아서 리암을 돌봐야만 해. 하나뿐인 네 동생을 부디 잘 아껴주고 사랑해주렴, 나와 폴을 슬프게 만들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리암이 오메가로 발현한 게 너무나도 안타까워... 히트사이클 억제제를 걱정없이 넉넉하게 사줄 수 있는 형편이면 좋았을... 나와 폴은 알파고, 너는 우성알파인데, 왜 리암은... 어째서...' 어머니는 말을 잇지 못하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음. 


여자로 착각할 만큼 고운 외모를 가진, 자신보다 다섯 살 어린 남동생은 하필이면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 태어난 귀여운 오메가'였음. 


노엘은 어머니와 약속했음. 맹세라도 봐도 좋았음. ㅡ저는 신을 믿지 않으니까 제 이름을 걸고 말할게요. 제가 잘 돌볼게요. 리암을  지킬게요, 엄마. 저는 폴처럼 평범한 알파가 아니라 우성알파니까 할 수 있어요. 그깟 억제제보다 우성알파의 향이 효과가 더 좋은 건 어머니도 아시잖아요. 그 말에 어머니는 정말 고맙다며, 그렇게 말해주니 안심이 된다고 노엘을 안아주었음. 어머니의 품에서는 그 냄새가 났음.


그래, 그 냄새. 슬픔의 냄새. 슬픔의 향. 우성알파의 향이나 평범한 알파의 향, 오메가의 향과는 전혀 다른 냄새. 슬픔은 어쩌면 이다지도 명확하게 느껴지는지. 기억을 되짚어보면 기뻤을 때는 아무런 냄새도 맡을 수 없었음. 행복한 기억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으나 그저 안개처럼 희미하고 흐릿하기만 했음. 


그에 비해서 슬픔은 선득하고 날카로우며 난폭한 망나니 주제에 서슴없이 발을 들이밀곤 했음. 나 참, 눈치를 보는 척이라도 해라. '제가 지금 당신의 가슴에 방문해도 될까요? 아, 안된다고요? 실례했습니다, 그러면 다음번에 뵙겠습니다'라고 예의바르게 굴면 안 되나? 언제까지 무례하고 염치없이 굴 건가? 그렇게 명랑하게, 제기랄, 망설이지도 않고 대뜸 문을 열어젖히며 온 가슴을, 온 몸을 축축하게 적셔대면 나더러 어쩌라는 건지. 


노엘은 슬펐음. 같은 방식으로 수십번이나 슬펐음. 어머니의 품은 항상 그 냄새가 났거든. 어머니, 폴, 그리고 이 빌어먹을 집에서는 어딜 가도 이 냄새가 났음. 


삶은 어리다고 봐주는 법이 없었음. 노엘은 돈을 벌기 위해 닥치는대로 일을 하면서도 리암을 열심히 돌봤음.


내가 지킬게. 내가 할게. 어머니와 약속했어. 그러니 우리애야, 안심해. 내 말만 잘 들으면 돼. 그러면 내가 평생 너를 지켜줄게. 나는 평범한 알파가 아니라 우성알파니까 얼마든지 가능해.


꿈에서 어린 리암은 버니지의 집, 그 대문 앞에 홀로 덩그러니 서 있었음. 문을 열고 들어가지도 않음. 그냥 그 앞에 서 있을 뿐. 차마 들어가지도 못하겠어? 네가 대대로 알파로 유명한 '갤러거'라는 성을 달고 있음에도 오메가라서? 그런 게 무슨 상관이야, 너는 내 동생이잖아. 하나뿐인 내 동생이니까 괜찮아. 얼마든지 집에 들어가도 돼.


노엘의 말에도 어린 리암은 발을 움직이지도 않았음. 그게 마냥 안타깝고 슬펐음. 오랫동안 지속된 슬픔의 녹슨 냄새는 강력한 저주라도 되는 것처럼 머리 위를 음울하게 맴돌았음. 노엘은 어린 리암의 손을 잡고 대문을 열려고 했지만 굳게 잠긴 문은 열리지 않았음. 


*


"그만 일어나시죠, 오아시스의 치프?"


솔즈베리 펍의 바텐더가 노엘의 어깨를 쥐고 가만가만 흔들었음. 바 테이블에서 나와 노엘의 테이블까지 직접 걸어온 바텐더는 여전히 잠기운이 가시지 않은 노엘에게 귀엣말을 했음. ㅡ오메가 냄새가 계속 나는데, 대체 누구와 붙어먹어서 그 냄새가 배인 거에요? 그 오메가와는 두 번 다시 잠자리를 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자신의 오메가 향을 허락도 없이 치프에게 스며들게 하다니, 기본적인 예의가 없는 사람이네요. 치프가 우성알파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그 말에 노엘은 하품인지 한숨인지 모를 것을 흘리며 의자에서 일어났음. 지폐 몇 장을 꺼내 값을 치른 노엘은 펍의 문을 열고 나갔음(중간에 잠든 바람에 맥주는 다 마시지도 못했음). 


짜증나는 파파라치들이 미행하는 게 느껴졌음. 하여간 망할 놈들... 쯧 하고 혀를 찬 노엘은 심호흡을 했음. 제발, 좀! 나는 우성알파란 말이야, 내 말을 들어! 멍청한 몸뚱이 같으니라고! 우성알파의 향을 풀면 저 새끼들이 눈물콧물 지리며 도망간단 말이야! 이렇게 간단하고 효과적인 무기가 있는데 왜 내가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거야! 내 몸인데!


지독스럽게 고압적이며 위협적인 향. 그 향을 낼 때면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처럼 동공이 길게 세로로 찢어짐. 향의 농도와 범위를 정밀하게 조절하여 상대방에게 '화학적 폭격'을 가할 수 있는 능력은 우성알파의 특징 중 하나였음.


휴대용 최루탄이라고 하면 되겠지. 대신 원가 제로, 생산비 제로, 내가 원할 때마다 동원할 수 있는 편리한... 아니, 이제는 편리하진 않지. 존나 마음먹고 몇 번이나 시도해야 가능하니까. 


드디어 노엘의 몸에서 우성알파의 향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음. 그 향에 파파라치들만이 아니라 길을 걷는 행인들까지 기겁하고 슬슬 물러나기 시작했음. 노엘의 눈동자가 세로로 길쭉하게 갈라지는 것을 사진으로 찍는 데에 성공한 파파라치 무리들이 우성알파의 향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쳤음. 사진기를 든 마지막 놈까지 시야에서 벗어나자 노엘은 머리를 흔들었음. 진짜 씨발... 좆같은 새끼들. 또 뭐라고 헛소리 섞인 기사를 써댈지(혹은 그런 기자들에게 사진을 팔아치울지) 이제는 알고 싶지도 않다.


노엘은 우성알파의 향을 갈무리한 후에 터벅터벅 걸었음. 런던의 슬로언 스퀘어(Sloane Square)에 구입한 집. 1집 앨범이 끝내주게 잘 팔린 덕분에 런던의 부촌이라 불리는 첼시 지역에 그럴듯한 집을 살 수 있었음. 


펍에서 집으로 가려면 튜브를 타야 했음.

35.PNG
 

튜브에서도 반쯤 졸면서 내렸음. 펍에서도 그렇게 잤는데 말이지... 노엘은 열쇠로 문을 열었음. 꿈에서와 달리 대문은 쉽게 열렸음. 하긴, 여기는 좆같은 버니지가 아니니까. 런던에서 내 명의로, 내가 직접 돈을 주고 산 내 집이니까. 


현관에 들어서자 리암이 기다렸다는 듯 달라붙었음. ㅡ오늘 술 마시고 온다면서? 일찍 왔네? 친구들과 마시는 거 아니었어? 


"그러려고 했는데... 다 귀찮아져서 왔어."


멀쩡한 알파 친구들을 불러놓고 나 혼자 오메가 향을 내면서 잠들면 안 되잖아. 그 말을 삼킨 노엘은 리암의 머리를 슥슥 쓸어주었음. 리암은 노엘의 몸에서 오메가 향이 드문드문 흘러나온다는 걸 아직 몰랐기에, 노엘은 거짓말로 둘러대야 했음. 


그럼. 당연히 몰라야지. 우리애를 지켜야 할 내가 우리애를 도리어 불안하게 만들면 안 되지. 그건 듬직한 형으로서 할 짓이 아니야. 


그런 노엘의 마음을 알기 때문일까? 노엘의 몸은 리암의 앞에서는 어떻게든 오메가 향을 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듯 했음. 리암이 없는 장소에서는 오메가 향이 흘러나오곤 했던 몸뚱이가 리암만 나타났다 하면 꾸역꾸역 우성알파 향을 내려고 했으니까. 우성알파의 향에 떠밀린 오메가 향은 곧 사라졌고.


대체 왜 이렇게 된 건지 이유를 알아야 할 텐데. 우성알파에게서 왜 오메가 향이 나냐? 어? 그동안 엑스를 너무 많이 빨아서 그런가? 코카인 부작용? 씨발 그러면 다른 놈들도 이런 부작용이 나타나야 할 거 아냐. 나만 이러면 억울하지. 언급하기도 싫은 아버지란 놈도 나처럼 우성알파인데 약을 얼마나 빨았는지 알아? 그런데 이따위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내가 아버지보다 못한 게 뭔데? 망할, 내가 아버지와 다른 점이 뭐냐고. 


그런 자신에 비해 리암은 요새 오메가 향이 거의 나지 않았음. 자신의 기억에 의하면 재작년, 리암의 생일이 지난 가을부터. 그때부터 오메가 향을 갈무리하는 데에 상당히 능숙해진 모양이었음. 잘된 일이지. 잘된 일이야. 나만 잘 되면 되는데... 


동생보다 얼간이 같은 형이라니. 제 앞가림도 못하는 형이라니, 씨발.


비참함을 꾸역꾸역 눌러삼킨 노엘은 자신에게 치대는 리암을 받아주었음. 슬픔과 우울함을 마음 깊이 감추고 리암 앞에서 태연한 척하는 건 노엘이 어릴 때부터 익힌 재주였음. 우리애에게 말해봤자 뭐해. 우리애가 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우리애는 아무것도 몰라도 돼. 그냥 행복하게 지내면 돼. 괜히 내 문제로 우리애가 머리 터지게 고민할 필요 없어.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지. 조니에게 형질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의사를 소개받고 예약까지 해놨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그날 노엘은 일찍 씻고 기타 넥을 손에 쥐었음. 슬프거나, 괴롭거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때 기타는 어김없이 좋은 처방전이 되어주었거든. 방에 틀어박혀 머릿속에 떠오른 멜로디를 반복해서 치다 보면 술렁대던 감정과 고민이 차차 가라앉았음. 


버니지와 달리 넓은 방, 침대 하나와 협탁과 옷장을 그럴듯하게 갖춘 방. 침대에 걸터앉은 노엘은 파자마 차림으로 어쿠스틱 기타줄을 튕겼음. 리암이 슬쩍 문을 열고 들어와서 협탁 의자에 앉아 노엘을 빤히 바라보았음. 그 표정은 어릴 때와 달라지지 않았음. 호기심 어린 눈. 대체 우리애는 궁금한 게 뭐가 그렇게 많을까? 노엘은 피식 웃으며 말을 건넸음. 


"우리애, 잠이 안 와? 코코아 타줄까? 아니라고? 내 노래 듣고 싶어서 왔다고? 그래, 뭘 불러줄까? Slide away라고? 알았어. 잠시만 기다려봐..."


곧 노엘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조근조근 이야기하듯 침실을 메웠음.


도망가자, 네가 가진 걸 모두 포기하고 Slide away - and give it all you've got
나는 오늘 정상에서 추락했어 My today - fell in from the top
나는 너를 꿈꿨어, 네가 말한 모든 것들을 I dream of - you and all the things you say
나는 네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 I wonder where you are now


리암은 눈을 지그시 감고 노래하는 노엘을 숨소리도 내지 않고 바라보았음. 단순히 열정적인 관객으로서의 집중력 때문일까? 물론 그것도 맞지만, 그보다 더 내밀한 감정이 들어있음을 노엘은 미처 알지 못했음. 



* 조니: 조니 마(Johnny Marr).
* 썰의 제목: 아래 시에서 차용함.
36.PNG

----

댓글 작성 권한이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