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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2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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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사 앞에 선 빌리가 주먹으로 입을 가리고 흠흠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하사님 계십니까?"



아, 빌리!

당연히 다임에게 잘보이기 위함은 아니다. 기대했던 반가운 말소리에 이어서 허니가 입구의 천막을 젖히고 빌리와 마주선다. 유달리 찌는듯한 날씨에 허니의 얼굴도 벌겋게 익었다. 다임이 잠깐 자리를 비웠는데 기다리겠냐는 물음에 빌리는 잠시 뒤 다시 돌아와도 되지만 이왕이면 막사에서 기다리기로 결정한다.
털썩 자리에 앉는 허니는 빌리에게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날씨에 대해 토로하다가, 부채질도 지쳤는지 팔을 축 늘어뜨리고 고개를 뒤로 젖힌다. 붉으스름한 뺨과 턱 끝을 땀방울이 타고 흐른다. 



보통 사람하고는 뭐가 좀 다르냐? 가이드면 말야
글쎄, 똑같은 것 같은데



얼마전 맹고와 나눈 대화가 불식간에 빌리의 머릿속에 튀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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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향수를 쓰시나요?"


아아아! 이 등신! 
그런걸 물을 생각은 없었다. 어떻게 물어도 수상쩍고 멍청해보일 질문이다. 이라크에 누가 향수를 들고 오겠으며, 뿌렸다한들 어느 저질스러운 놈이 그런걸 물어보겠는가. 충동적으로 튀어나간 질문을 어떻게 해볼 새도 없이 빌리의 말을 들은 허니의 얼굴이 순식간에 이전 보다도 더 붉게 달아오른다.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것 처럼 입술을 뻐끔거리더니 벌떡 일어나 빌리에게서 뒤로 몇 걸음 물러선다. 얼굴이 수치와 당혹으로 물들어있다.

이런, 맙소사,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본능적인 방어자세로 가슴께에 팔을 모으고 선 허니가 나즈막히 입을 연다.




"무슨, 나, 지금, 혹시... 나한테 냄새나요?"


"아뇨, 아뇨! 전혀요! "

빌리는 제자리에서 튀어오를듯 부정한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존재만으로 불쾌한 호르몬 냄새를 내뿜으며, 땀이라도 흘리는 날에는 코를 마비시키고 싶어질 정도의 냄새근원지가 되는 부대원들 사이에서. 땀방울을 뚝뚝 흘리면서도 허니는 체취조차 맡기 어려웠다. 빌리는 그게 혹시 일반인과 구분되는 가이드의 특이점은 아닐까 싶었고, 전달방법의 미숙함으로 인해 모욕적인 방식으로 와전된 것이다.

이라크는 덥고, 모두가 땀을 흘리는데, 허니의 막사 근처에서는 늘 좋은 향기가 나서 물었다고-,
빌리는 최대한 저질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전달하려 애쓴다.
볼품없는 해명의 시간동안 허니의 눈에 담긴 의아함과 미심쩍음에, 빌리는 사막 저편으로 달음박질을 치고픈 충동과도 정신없이 싸운다.
그 말의 진위여부가 여즉 의심스러운 허니는 티셔츠 목깃을 들어 코를 박는다. 빌리는 근처로 다임이 돌아오고 있진 않은지 휙휙 주위를 둘러보고는 자신없는 목소리로 덧붙인다.




"꼭 라벤더 같은····."


고개를 들면 빌리가 쭈뼛대며 서있다. 아마 로션이나 비누일 것이라며 대답하며 허니가 빌리에게 재차 확인한다.

날 위해 거짓말하는거 아니죠, 빌리.
정말이에요? 사실대로 말해줘요. 우리 우정을 보고요.

빌리가 책임감 있는 태도로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우정. 그 단어가 이후 며칠동안을 빌리의 가슴에 남아 그의 연약한 심장을 죽죽 찢어놓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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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오신겁니까? 제말은, 이라크에요"




빌리는 될 수 있는한 자연스럽고 조심스러운 톤으로 말했지만 '이라크'라는 단어에서 만큼은 억눌러지지 않은 황당함이 묻어난다.

케르베로스같은 다임하사를 제외하면 허니와 교류라고 부를만한 무언가가 있는 인물은 빌리뿐이다. 부대원들은 이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여전히 빌리의 옆구리를 찔러대며 다임의 가이드에 관해 물어댔다.

빌리는 이 센티넬과 가이드 사이라는걸 이해하기 어렵다. 
잘은 모르지만 만약 센티넬과 가이드의 관계가 연인과 비슷한 종류라면, 그리고 그녀가 제 연인이었다면 자신은 허니를 이런곳에 절대, 절대 데려오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 역시 도무지 '전장을 따라올 만큼 열성적인 연인'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빌리에게 주어진 관찰시간이 몹시 한정적임을 감안하더라도. 항상 눈으로 상대를 찾고, 곁에서는 항상 들떠있고, 둘만의 시간을 원하는 모습 같은건 적어도 허니에게는 없었다. 


때문에 대체 왜? 라는 질문은 대원들 몫을 제외한 빌리의 몫만으로도 제법 큼직하다.




다임에게 주어진 휴가는 원래라면 2주였고, 2주 뒤 이라크로 복귀해 3주째에 다음 캠프에서 합류하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라크에서의 '예정'이란 높으신 분의 즉흥적인 변덕을 고상하게 포장한 말로써, 언제나 그렇듯 이라크의 일정은 강한 유동성을 선보인다. 
그렇게 다음 캠프에서 합류하기로 한 일정은 한 주 이르게 당겨졌고, 다임의 휴가는 반으로 줄어든다. 
이후 6개월여는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으므로, 그녀가 대신 캠프에 머무르기로 결정했다.

그 뒤로도 이어질 말을 기다리던 빌리는 허니가 이야기를 마쳤다는걸 깨닫고 조용히 충격에 잠겼다

그게 다야? 그냥 같이 있어주려고, 여기에? 이라크에?
대체 누가 휴가를 같이 보내주려고 전장에 온다는 말인가. 빌리는 처음으로 허니가 어딘가에서 나사가 빠진 사람은 아닐지 고심한다. 차라리 그녀가 전쟁광이라는 편이 더 설득력있다. 스너프필름 같은걸 즐기는 부류도 있다고 들었고 실제로 이라크에서는 길거리 노점에서도.... 속이 울렁거린다.





"캠프는 안전하다고 하던데, 아닌가요?" 빌리가 사념에서 깨어난다. 

"캠프가 공격받을 확률은 아주 적습니다"

총기난사가 발생한 학교에서 캐비넷 안이 안전한 것과 비슷하다. 안전하기는 했다, 상대적으로. 빌리가 마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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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래도, 오고 싶으셨습니까?"


더이상 표정을 가다듬을 의지가 없는 빌리가 미간을 좁힌채 이해가 가지 않는 목소리로 묻는다. 부대원들을 모아놓고 이 중 이라크에 오고싶었던 사람 있냐고 묻는다면 폭소가 터질 것이다. 간이의자 등받이에 깊숙히 몸을 기대며 허니가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빌리가 계속해서 대답을 기다리자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입을 연다.


"아뇨"

"그럼 왜...."

"빌리는요?"

그럴리가요. 빌리도 마찬가지로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젓는다. 


"그런데 빌리도 나도 여기 있죠"



여전히 반문하고 싶은건 많지만 어렴풋이 이해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게다가 계속 묻는다고 해서 빌리가 생각했던 것 만큼 극적인 대답이 있을 것 같지는 않고.




"언제 떠나십니까?"


닷새 뒤. 
젠장, 빌리가 급격하게 침울해지는 동안 허니도 생각에 잠긴 것 처럼 시선이 허공에 향한다. 허니가 기지를 떠난다는 말은 곧 브라보 부대도 기지를 떠난다는 이야기다.

허니가 빌리에게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지는 않은지를 묻는다. 
집에는 언제나 돌아가고 싶다. 여지없는 사실이다. 다만 빌리는 만약 분대원들이 총을 맞는다면 그 현장에 같이 있고 싶다고 대답한다. 빌리는 자신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진지해서 스스로도 깜짝 놀란다.

대화 내내 차분함을 유지하던 그녀의 얼굴이 일순 괴로운듯 일그러진다. 옆으로 고개를 돌린 채 입술을 여러차례 베어무는 얼굴에서 새어나오는 감정은 슬픔이다. 
빌리의 가슴이 동요한다. 스토벌의 누나가 떠오른다.
그녀를 끌어안고 위로하고픈 충동에 사로잡힌다. 
지금 허니의 어깨를 끌어안고 품에 몸을 기댄다면 그녀도 자신을 마주 안아줄 것이다. 목숨이 간당간당한 열아홉에게 뭔들 못해주겠는가. 그러나 빌리는 한 번 저 품에 몸을 기대면 처음처럼 두 발을 딛고 서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예감이 스친다.


그래, 그녀는 반전주의자다. 이쯤되면 빌리도 눈치챘다.
전장의 반전주의자라는 말은 처음에야 퍽 모순되는 것 같겠지만 따지자면 빌리도 온 부대원들도 반전주의자다. 모두들 이 엿같은걸 그만두고 싶어하니까. 오히려 전장에서 희귀한건 전쟁주의자다. 대게는 높으신 의자에서 졸들을 부리기에 바쁘시므로. 

서있을 때에는 모르다가 자신이 선 자리를 들여다볼 때 찾아오는 비참함이 있다. 빌리의 위치는 말단 중의 말단인 보병대 졸병이며 상관의 가이드를 짝사랑하는 사병이다. 빌리는 이럴 줄 알았다면 여러가지를 묻지 말 것을 후회하며 주먹을 꽉 말아쥔채 서있다. 누구도 섣불리 서로를 위로하지 못한다.









*



빌리는 스스로에게 결코 심각한 감정은 아니라고 되뇌인다. 만약 그녀가 제게 입맞추고, 저를 끌어안고, 본국으로 돌아가 함께 결혼하자 제안한다면 마다할 생각은 없지만, 아무튼 심각한건 아니었다. 실제 부대 안에서 허니와 한 마디 인사도 나눠본 적 없는 대원들도 그녀에게 지대한 관심이 있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더불어, 허니의 복귀일이 다가올 수록 다임은 제 가이드 주위를 상어처럼 멤돈다. 빌리도 이전처럼 그녀와 대화하는 일이 손에 꼽게 줄어들었고 이대로 마무리되는 편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복귀 전 일 빌리가 막사 뒷편에서 혼자 담요를 정리중인 허니와 맞닥뜨린다. 빌리를 올려다보는 시선에 반가움이 담긴다.



"허니,"


빌리가 무심결에 허니를 붙잡았다. 내일이 지나면 자신을 부르는 말소리도, 작고 편안한 농담도, 친밀함이 담긴 눈맞춤도 영영 떠날 것이다. 당연한 사실이 갑자기 처음 듣는 것 처럼 새롭게 느껴진다. 그동안 한없이 압축되었던 감정이 드디어 빌리의 지배에서 벗어나 뛰쳐나가려 발버둥친다. 
열아홉 빌리 린 상병의 긴장한 얼굴이 전력질주라도 한 것 처럼 붉게 달아오르고, 그에 맞춰 심장은 포탄이 터지는 것 처럼 큰 소리를 내며 박동한다. 어찌할 바 모르겠는 팔과 다리는 떨리는 모습을 감추려고 한껏 경직되어있다.


" 할 말이···, 그러니까····· 그동안,"





맙소사, 빌리가 이게 멍청한 생각이었다는걸 깨닫는다.
이쯤 되어서는 허니도 빌리가 할 말이 어떤 종류인지 알아챘고, 빌리도 그녀가 알게 됐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빌리가 목이 메이는 것을 참으려 몇 번이나 침을 삼키고 간신히 입을 연다.



"아쉽습니다. 떠나신다고 하니까요."




겁쟁이. 
빌리가 모래바닥을 향해 고개를 떨군다. 남은건 자기비하의 시간이다. '내 감정을 밝혀야지' 라니. 이라크 전 후를 통틀어 스스로 저지른 가장 한심하고 멍청한 행동이었다고 되뇌이며 비참한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허니가 제 얼굴을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느새 훌쩍 다가온 허니의 손이 빌리의 팔에 얹어진다. 어느때보다도 가까운 거리에서 눈을 마주친 그녀가 까치발을 들어 빌리의 뺨에 입을 맞추고 멀어진다. 

다정한 거절. 빌리의 보름짜리 짝사랑이 종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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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리시점이다보니까 내용이 갈수록 빌리한테 너무 잔인하게 느껴져서;; 점점 다임분량이 줄어들게 됐음.. 걀국엔 빌리너붕붕되버려서 제목 머슥..하지만 아직도 가렛다임너붕붕 마즘....

원작 참고 진짜 많이했음. 각 캐릭터 성격도 최대한 그대로 가져오고 싶었다. 그래서 원작 인용한 대사도 많고 글 형식, 폰트같은것도 원작 본땄음

막나더 처음 써보는데 졸라 홀가분하다 같이 봐줘서 진짜 고마움

빌리시점 너붕붕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