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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2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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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반 반장은 늘 깔끔하게 입었다. 우리 지역 공립학교는 거기서 거기였으므로, 그 애는 중고등학교를 나와 함께 다녔다. 아시안들에 대한 편견에 아주 적합하게도 그 애는 공부를 잘했다. 성격이 좋았고, 늘 향기가 좋았다. 그 애는 매해 누군가의 첫사랑이곤 했다. 밝은 성격에, 웃을 때 살풋 휘어지는 눈꼬리에- 캐나다 억양이 기본적으로 있었지만, 우리에게서 옮은 더비 억양이 섞여 있어 독특한 말투가 기억에 남는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그 애가 수학시간에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었다. 아버지가 수학선생님이라 우리가 배우는 교과과정을 이미 1-2년씩 먼저 끝내버린 그 애는, 수학선생님이 준 학습지를 10분만에 풀어버리고 멍하니 앉아있다가, 팔을 괴고 졸았다. 여자치고는 큰 편이라 강제로 뒤쪽에 앉아 동그란 안경을 쓰고 있는 걸 보면, 또래 여자애들에 비해 한없이 어려보여 저 애가 여기 있어도 되나-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렇게나 세세하게 기억하는 걸 보면, 첫 여자친구보다는 그 애가 첫사랑이었던 게 아닐까 싶긴 했다. 방송에서 누군가 첫사랑을 물어보면 나는 그 애를 떠올리면서 셔츠가 잘 어울리던 같은 반 여자애라고 말했다. 그때마다 같이 다니는 무리가 달라서 너에게 더 다가가지 못했음을 후회했다. 연극부를 같이 했음에도 너는 연출이고, 나는 배우여서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아도 말을 많이 섞지는 못했다.



"... 미첼?"



그랬던 너를 대본 리딩 현장에서 마주쳤을 때 내 기분을 네가 알까. 너는 조감독이라고 하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여전히 내 어깨를 조금 넘는 키에, 깔끔한 옷차림이 반가울 정도라 나는 네 손을 잡고 못 놓을 정도였다. 촬영현장에서도 너는 수많은 스텝들 가운데 단연 눈에 띄었다. 물론 아시안이 적은 편이긴 했지만, 매일 아침 젖은 곱슬머리를 털며 촬영장에 들어와 내게 손을 붕붕 흔들어보였으니까, 나는 네 옷차림을 기억하고 하루종일 눈으로 너만 좇았으니까.



"안 피곤해? 괜찮아?"



촬영이 끝나고 슬쩍 네 쪽으로 붙으면, 너는 나를 올려다보며 물어봤다. 종종 너는 주머니에서 레몬사탕 같은 걸 꺼내주곤 했다. 어린 출연진들을 위해서 챙겨다닌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걸 모른 체 받아먹곤 했다. 십대 때보다는 여유로워진 탓에 나는 네게 더 가까워질 수 있었지만, 가끔 네가 내 어깨에 머리를 툭 기대거나 지나치면서 반가움의 표시로 내 팔을 살짝 잡고 지나가면- 또 네가 그때처럼 눈꼬리를 휘며 내게 웃어주면 속수무책으로 심장이 뛰어댔다.


배우들 사이에서 종종 네 이름이 언급되면, 나도 같이 언급되곤 했다. 둘이 중고등학교 내내 같은 반이었고, 연극부도 같이 했다는 이야기에 우리 둘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예민한 촬영 현장에서도 누구에게나 친절한 네 성격 탓인지 너를 좋게 생각했고, 나이가 많은 배우들 중에는 너를 향한 내 감정을 눈치챘는지 잘해보라고 슬쩍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진짜 죽여줘..."



밤새 회의를 하느라 세시간밖에 못 잤다며, 그와중에도 씻었는지 젖은 머리인 채로 너는 나를 보더니 가슴팍에 이마를 콩 박았다. 가볍게 어깨를 안아주고 등을 토닥여주면, 우는 소리를 하며 내 허리를 안았다. 너는 이와중에 왜 이렇게 말랐냐며 밥 좀 많이 먹으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며 금세 풀어내긴 했지만, 다크써클 보라며 얼굴을 들이밀면 그게 또 반가워서 나는 웃으며 들여다보는 척을 하곤 했다.


예뻐예뻐, 피부 너무 좋아. 다크서클이 보이지도 않는데 무슨 소리야. 하며 너스레를 떨고 나는 엄지로 네 눈밑을 살살 문질러주었다. 새로 알게 된 건 네가 친한 사람들에게는 투정이 많다는 거였다. 꽤나 프로페셔널하면서도 나랑 눈이 마주치면 입꼬리를 축 내리면서 눈을 질끈 감아보이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내 상태를 체크했다. 



"둘은 어릴 때부터 같은 반 친구였다더니, 진짜 편하게 잘 지낸다. 엄청 친해보여."


"아, 이렇게까지 친해진지는 얼마 안 됐어요. 제가 이완 어려워해서 말도 많이 못 시키고..."


"왜? 저렇게 다정한 애를?"


"저 잘생긴 사람 어려워해요. 그래서 제가 감독님 편하게 대하잖아요."



너는 너스레를 떨더니 내 소매 끝자락을 잡았다. 다 이완이 잘해줘서 그렇죠, 뭐. 말을 이어나가는 내내 잡힌 소매가 어찌나 신경이 쓰이던지, 나는 재잘거리는 너를 내려다보다가 헝클어진 머리를 빗어주다가 귓등으로 넘겨주었고, 너는 자연스럽게 손을 탔다. 



"조감독님이 형 좋아하잖아요."


"어?"



말도 안되는 소리에 눈이 커다래졌다. 형도 조감독님 좋아하잖아요. 재밌어서 지켜봤는데 둘이 이어질 생각을 안하더라고요. 촬영이 마무리되어가면서 나는 고민에 휩싸이고 있었는데, 저 말에 심장이 쿵쾅댔다. 나는 네가 나를 좋아할 거라곤 상상조차 안해봤다.



"왜 고백 안해요? 오래된 친구라서? 형 예전에 인터뷰에서 말한 첫사랑 조감독님 아니에요? 긴가민가 했는데, 날씨 추워지니까 셔츠 주구장창 입으시는 거 보고 알았잖아요. 나 말고도 아는 사람 많을 거 같은데."



우물쭈물하다가 나는 저쪽에서 카메라를 심각하게 들여다보며 감독님 이야기를 듣는 너를 힐끔 바라봤다. 너는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내 쪽을 바라보더니 싱긋 웃고 손을 흔들어보였다. 네가 날 좋아할 리가 없는데. 너는 누구에게나 다정한데.



"조감독님 지난번에 남자 소개시켜준다니까 거절하던데."



쟤가 누군가랑 끌어안고, 키스하는 걸 봐도 괜찮을까? 그걸 생각하니 어딘가 쿵, 하고 내려앉고 손끝이 찡하니 아파오는 듯했다. 나는 너를 다시 만나게 된 이후로 나를 종잡을 수가 없었다. 촬영을 쉬는 날이면 너랑 있고 싶었고, 어쩌다 스텝들과 섞여서 식사를 할 때면 자연스럽게 머리를 묶는 너를 지켜봤고, 네 손을 잡고 걷고 싶었다.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는데 그 곳에 네가 그 곳에서 숨쉬고 같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해서- 나를 보면 웃어준다는 게 못 견디게 좋아서.





나는 말도 안되는 이 타이밍에, 너에게 뱉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주말에도 편집을 같이 하니까... 일주일 내내 네 얼굴을 보고 있네. 우리 엄마 아들보다 너를 올해 더 많이 봤어."


"그래서 싫어...?"



"아니, 이렇게 될 줄 몰랐는데- 자주 봐서 좋다고. 우리 학교 다닐 땐 데면데면했잖아. 같은 반을 6년이나 했는데."


"... 그 때 나는 너랑 친해지고 싶었는데."


"그런데 왜 말 안 걸었어? 난 네가 나 별로 안 좋아하는 줄 알았어."


"... 쑥스러워서. 좋아하니까, 실수하고 싶지 않았던 거 같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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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도 엄청 긴장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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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널 좋아해서."







수년동안 간직하고 있던 마음을.









이완미첼너붕붕

2024.09.22 12:4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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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하다ㅠㅜㅜㅠ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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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2 13:01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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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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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2 13:09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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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지말고 결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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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2 13:14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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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좋아요 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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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2 13:30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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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뭐야 미쳤어....... 너무 좋아............... 고백해..... 빨리 사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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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2 13:36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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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다..충치생길거같아 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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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2 13:52
ㅇㅇ
심장제세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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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2 14:2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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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몸 마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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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2 14:58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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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풋풋하고 귀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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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2 17:2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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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에 고함 발사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너무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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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2 18:45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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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아아아아아아아악 센세 억나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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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2 23:47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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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에 ㅠㅠㅠㅠ
[Code: faad]
2024.09.23 02:03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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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센세 좋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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