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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21:06
https://hygall.com/602674105 <이 때로 시간 되돌리는 법 아는 사람?
https://hygall.com/604470262 <확실히 제정신아님
맨정신인데 진짜 옆집남자 집까지 기어코 들어갔냐고?
그러게. 내가 왜 그랬지. 맨정신이긴 했는데 제정신은 아니었나봄.
정작 옆집남자는 사람 보고 들어오라고 하더니 들어가자마자 또 아는 척도 안 하더라. 물론 들어오라고 한 게 아니고 들어올 거냐고 물어보긴 했지.
하여튼 초대한 건 본인 아님?
사람은 돌아보지도 않고 휘적휘적 걸어가서 겉옷부터 벗더니 소파에,
“ㄷ, 다친 게 손이에요!!?“
옆집남자가 겉옷 벗으면서 처음으로 주머니에서 손을 뺐음. 근데 손 전체가 피로 뒤덮인 거야.
아무래도 다친 게 몸이 아니라 손이었나봄. 주머니에서 손 빼자마자 피가 뚝뚝 떨어질 정도였음. 대체 뭘 하고 다니길래 저 정도로 손을 다치는 걸까?
나도 한동안 회사 갈 때마다 사람들이 손은 왜 다쳤냐고 물어봐서 곤란했는데. 대충 뭐 해먹다가 식칼에 다쳤다고 둘러댔거든.
옆집남자는......
요리같은 걸 할 것 같지 않음. 물론 나도 안 하긴 함. 근데 저 인간은 정말 안 할 것 같음. 물론 나도 정말 안 하긴 함. 근데 그래도 옆집남자는... 적어도 저걸 요리하다 다쳤다고 둘러댈 수는 없을 거란 말이지.
“이 정도면 병원을 가야지, 왜 집으로 와??”
나도 모르게 다가갔는데, 가까이에서 보니까 더 심각하더라. 손바닥 안 쪽이.. 으. 징그러워서 처음엔 똑바로 보기도 어려울 정도였음. 내 손에 났던 상처는 비교도 안 됨.
상처는 안 쪽에 났는데 손 전체에 피가 묻어날 정도면 대체, 어디서부터 저러고 왔다는 거임?
상처며 피며 다 나은 내 손바닥이 아플 정도였는데 정작 당사자는 한결같이 시큰둥한 표정이 다였음. 저 정도면 너무 다쳐서 감각을 못 느끼는 게 아닐까?
“병원 안 가요? 꿰매야 할 것 같은데.“
”안 가.“
“가요.“
”안 가.“
“가.”
“안 ㄱ,“
”가라니까?“
“이제 안 무서워?”
아 맞다. 나 옆집남자랑 대화 중이었지. 손 보고 대화하니까 상처만 보여서 잠깐 잊었나봄. 피가 저렇게 나는데 병원을 안 간다잖아. 나도 모르게 너무 답답했나 봐.
다친게 몸이 아니라 다행이긴 했지만. 아무리 손이라고 해도 저 정도로 다치면 위험한 거잖아. 덩치가 얼마나 크든 문신이 얼마나 많든 목숨은 똑같이 하나일 거 아님?
물론 그렇게 따지지는 않았음. 당연히 눈 마주치자마자 개쫄아서 바로 물러남. 이 집에 들어온 시점에 썩 제정신은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겁도 없어질 만큼 미치진 않았음.
“아니 상처가 너무.. 깊어 보이길래...“
슬쩍 물러나서 변명까지 했더니 한 번 봐주기로 한 것 같음. 아니면 내가 뭐라고 하든 별로 신경을 안 쓰는 것 같기도 하고. 별 말 없이 다시 옷 벗기 시작하더라.
...보통 본인이 집에서 옷을 벗고 살아도 사람이 있으면 입고 있지 않아? 갈아 입을 거면 방에 들어가서 갈아입고 나오거나.
지레 겁 먹어서 주춤거리면서 물러났는데 옆집남자는 그대로 상의까지 겉옷 위에 벗어두더니 또 혼자 걸어가더라.
나도 모르게 시선으로 따라가다 보니까 욕실이었음. 멍하니 닫힌 욕실 문 보고 있으니까 금방 물소리도 들림.
어째 옆집남자는 속시원한 게 하나도 없냐. 시원한 건 맨날 벗고 있는 상의밖에 없음. 처음엔 어디 다쳤다는 것도 말 안 하더니 다짜고짜 들어올 거냐고 하지를 않나. 들어온 사람은 본체 만체, 옷이나 훌렁훌렁 벗어두고 씻으러 들어가지를 않나.
그 중 제일 의문인 건 그래서 난 왜 이 집에 굳이 따라 들어와서 이렇게 의문에 빠져있냐는 거임.
지금이라도 나가면 되지. 라고 생각하면서 소파에 털썩 앉았음.
술 취했을 때 앉았던 그 자리였는데.. 테이블 위 옆집남자가 벗어둔 옷들 옆에 그 칼이 아직도 있더라.
나한테 줄 때 품에서 꺼냈던 거 생각하면 원래 본인이 갖고 다니던 거 아닌가? 당연하지만 내가 바닥에 흘렸던 피는 자국도 안 남아 있었음.
그나저나 피 묻은 옷은 어쩌려고 저대로 테이블 위에 두는 거란 말임? 그냥 두면 핏물 들어서 안 빠질 텐데. 버릴 건가.
“안 갔네.”
“!!!”
잠깐 다른 생각 하는데 갑자기 목소리 들려서 혀 깨묾. 이 집에 들어온 내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는 나머지 혀라도 깨물어서 해결해야겠다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너무 놀라서 깨물었음.
입 틀어막고 곁눈질로 확인하니까 옆집남자는 벌써 씻고 나왔는지 익숙한 바지 차림으로 서있었음. 핸드폰 보다가 의아했는지 고개 돌리고 보더라.
근데 진짜 세게 깨물었다고. 피맛도 났다니까?
“으.. 흐늘 그흐그 흐으..?”
“뭐라는 거야.”
아직도 혀가 얼얼해서 다시 말하지는 못 했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왜 손을 그러고 다녀요? 였음.
내가 옆집에 들어와서 혀 깨물고 눈물 고여서 말도 똑바로 못 하고 있는 게 너무 황당하긴 한데, 그 와중에 옆집남자도 만만치 않았거든.
아니 손에서 피를 아직도 흘리고 있잖아. 헨젤과 그레텔이야? 왜 본인 집에서 피로 길을 만들고 다니는 거임? 병원은 왜 안 가고, 무슨 피는 아무렇지도 않게 흘리고 다녀?
하나는 혀 깨물어서 피 맛 보고, 하나는 상처난 그대로 씻고 나와서 걸음마다 피나 뚝뚝 흘리고 다니고. 이게 뭔 짓인지 모르겠다.
정황상으로나 시간상으로나 꿈을 꾸고 있다는 게 더 말이 될 것 같음.
“왜 손을.. 그러고 다니냐구요...“
입 틀어막고 조금 더 앓은 후에야 간신히 손 떼고 똑바로 말할 수 있었음.
근데 늦은 시간에 들어오란다고 남의 집에 따라 들어와서 혀 깨물고 있는 사람이 이상하냐, 손에 상처 달고 피까지 흘리면서 핸드폰이나 보고 있는 사람이 이상하냐. 어째 마주칠 때마다 핸드폰 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저 정도면 핸드폰 중독 아님?
“연락이 먼저라.”
“병원도 안 간다면서 지혈도 안 하고, 아프지도 않아요?“
“왜 안 갔어.“
생각해보면 이 사람 참 한결같이 남의 말 안 듣는 것 같음. 지 하고 싶은 말만 해. 그것도 사람 곤란한 말만.
”..그 상처 신경쓰여서요.“
근데 말은 시켜놓고 대답해도 딱히 듣지도 않음. 핸드폰은 그만 보고 주머니에 넣나 했더니 그 주머니에서 그대로 담배 꺼내더라. 행동 순서가 저게 맞음?
“담배가 아니라, 바로 병원 안 갈 거면 응급처치부터 해요.“
거의 반사적으로 튀어나가서 불 붙이려는 라이터부터 붙잡았음. 담배 끝에 불 붙이려고 고개 숙였다가 눈만 올려서 보는데..
무섭더라. 응. 무서운 건 적응이 안 됨. 그래서 라이터 붙잡은 것도 놔드렸음. 다시 불 붙이지는 않고 들고만 있더라.
”엄청 아플 텐데 그 와중에 담배 생각이 나요..?“
”아프니까 담배 생각이 나지.“
”도와줄테니까 그 상처부터 해결해요.“
”지혈만 해두면 알아서 나아.”
“구급상자 어디 있어요? 그 때 내 손에 붕대도 감아줬던 거 보면 뭐라도 있는 것 같은데.“
”집에 안 가?“
”그 날 일은 답례 하라면서. 그거 갚으려고 이 시간에 여기 와서 치료까지 도와준다잖아요.“
”그 날 일은 답례 안 한다며.“
”오늘 하려고요.“
”하지 마.“
”할 거예요.“
”안 한다며.“
”할 거라니까?“
“뭘.”
“ㅁ, 답례 한다고요. 내 손 치료해줬던 거 이번엔 내가 치료해주는 걸로 갚으면 되잖아.“
”왜?“
“당장 지금도 피 흘리고 있으면서 왜라는 말이 나와!?”
왜.. 왜 다친 사람보다 내 마음이 더 급해지냐고. 뭐가 저렇게 태평함? 본인 손에서 피가 흐르는데 왜라는 말이 어떻ㄱ, 잠깐. 나 방금 뭐라고 말한 거지.
갑자기 정신 돌아와서 입 다물고 올려다 보니까 옆집남자는 아직도 불 안 붙은 담배 물고 내려다 보더라.
”...뭐라고 하려던 게 아니라, 듣다 보니까 말투가 옮아서 그래요.“
바로 눈 깔고 내가 생각해도 얼토당토 않은 변명 하니까 코웃음 치더라.
그러더니 별안간 한 손으로 내 아랫입술 잡아 벌림.
???
손 치울 생각도 못하고 황당하게 올려다 보니까 가만히 보는 것 같더니 금방 놓더라.
인간이 너무 황당하면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상황 파악이 안 되더라고?
“피 나는데.“
”아까부터 그렇다고 말했잖아요?“
”나 말고.“
”아, 이건.. 아까 갑자기 말 거니까 놀라서 혀 깨물어서 그래요.”
놀란 게 누구 때문인데. 또 코웃음 치더라.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긴 한데 그래도 원인 제공자가 비웃는 건 좀 아니지 않아?
“내 혀는 됐으니까 손부터 치료해요. 구급함 같은 거 따로 없어요?“
”있는데.“
”어디 있는데요?“
비웃는 것도 기분 이상하지만 역시나 웃는 건 더 불안하단 말이지. 난 웃길 말을 안 한 것 같은데. 담배 물고 있는 입꼬리가 또 슬금슬금 당겨 올라가는 거임.
그리고 느리게 고개 돌려서 턱짓 하더라.
”침실에.“
나도 얼떨결에 그 방향 따라갔는데 낯 익은 방 위치였음. 문은 닫혀있지만 저 안에 되게 크고 푹신한 침대가 있다는 건 알지. 내가 누워봤으니까.
불안하게 다시 고개 돌려서 올려다 보니까 물고 있던 담배까지 빼서 손에 들더라.
“들어갈래?”
그리고 어김없이 들어갈 거냐고 물어봄. 생각해보면 옆집남자가 날 강제로 어디에 들인 적은 한 번도 없었음.
들어올래? 들어갈래? 매번 묻는단 말이지. 들어가고 나면 난 내가 선택했으니까 불평할 수가 없게 되는 거잖음?
“..구급함이 왜 침실에 있어요.“
”전에 누가 내 침실에서 손 아프다고 보채서.“
심지어 구급함이 침실에 있는 이유에도 할 말이 없음. 한 달 사이에 나 말고 누가 이 집 침실에 가서 손 아프다고 보챈 적은 없을 거 아니야.
“그럼 가서 갖고 와요.“
”내가?“
”어디 있는지 말해주면 내가 가져와도 되고.“
”굳이.“
”아무래도... 거실에서 치료하는 게 편하잖아요?“
”왜?“
옆집남자 말을 잘 안 하는 것 같은데 은근히 말을 잘 한단 말이지. 듣다 보면 묘하게 말리는 것 같달까. 하여튼 변명이나 거짓말은 별로 소용이 없는 것 같았음.
“침실은, 침실은... 마음이 불편해서요.“
”그럼 집에 가.“
또 본인 할 말만 하고 방으로 걸어가버림. 난 멍하니 서있는데 심지어 닫힌 문 열고 들어가서 망설임도 없이 닫더라.
황당하긴 한데 맞는 말이긴 하지. 저 정도면 멀쩡해보이는데 굳이 내가 저 방까지 따라 들어가서 처치를 도와줄 필요가 있을까?
그렇긴 한데, 아무리 봐도 혼자 응급처치를 할 것 같지는 않음. 침실에서 담배나 피우다가 피도 안 멈춘 손 그대로 하얀 침대 시트 다 물들여놓고 잘 것 같다고. 물론 그래도 내 알 바는 아니긴 해. 근데 만약...
내일 아침 내 옆집에서 과다출혈로 인한 변사체가 발견되면 어캄?
손도 잘못 다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거잖아. 피도 안 멈췄는데? 병원도 안 가는데?
결국 잠깐 망설이다가 방 문 열고 들어가니까 옆집남자가 침대에 앉아서 돌아보더라. 손에 담배 들고 있는 거 보니까 들고 있던 거 다시 피울 생각이었나봄.
나 보더니 라이터랑 같이 근처에 던져두더라. 뭐라고 말은 안 했지만 그 표정과 몸짓이 마치.. 진짜 가지가지 한다고 온몸으로 말하는 것 같았음.
“치료만 도와주고 바로 갈 거예요.”
“먼 길 오셨네. 집도 멀텐데.“
안 다친 손으로 침대 짚고 기대 앉기까지 하면서 비꼬는 거 보니까 상처가 보기보다 멀쩡하긴 한가봄. 약간 짜증이 나는 것 같았지만 침착하게 방 문은 열어두기로 함.
”그거 열어두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여차하면 도망치려고요.“
”세 걸음이 내 한 걸음 정도 되는 것 같은데.“
”그 정도는 아니거든요. 구급함은 어디 있어요?“
이상하다. 옆집남자가 무섭긴 여전히 무섭거든. 근데 이게 옆집남자한테 적응해서 안 무서워지는 게 아니라, 무서운 거에 적응하는 것 같음.
무서운 건 무서운 거고, 무서우니까 얼른 할 일을 하자 뭐 그런 느낌?
이게 다 옆집남자 때문임. 이 봐, 구급함 어디 있냐니까 또 턱짓이긴 했지만 알려주잖아. 구급함이 침실에 있던 것도 사실이었고.
구급함 가져와서 옆에 앉으니까 얌전히 손도 내밀더라.
근데 피부터 닦아내야 할 것 같아서 주변 둘러보니까 방 안에도 문이 하나 있었음. 그 때는 미처 못 봤는데 욕실인 것 같아서 저거 욕실이냐고 물어봄. 그렇대.
수건 가져다 피 닦아도 되냐니까 마음대로 하래.
결국 욕실 들어가서 수건 가져다가 따뜻한 물 묻혀서 침대로 돌아옴. 내민 손 가져다가 피까지 닦아ㅈ, 생각해보니까 피 닦는 건 본인이 해도 되는 거 아님?
깨달았을 땐 이미 피가 다 닦인 후였음.
진짜 내가 생각해도 이 정도 정성이면 도움 두 번 받은 거랑 퉁칠 만 하다. 이제 발 뻗고 잘 수 있겠음.
그보다 피 닦아내고 나니까 생각보다는 상태가 괜찮더라. 상처는 살벌하긴 한데 피칠갑 돼있을 때보다는 나아 보였음. 그새 피도 거의 멎었나봄.
어쩐지 너무 태연하다 싶더니, 죽을 상처까지는 아니라는 건 알았다 이거지.
“소독 먼저 할게요.“
”아야.“
”?? 아직 닿지도 않았어요.“
”살살해.“
방금 전까지 응급처치 할 생각도 없더니 뭐임. 손만 보고 있다가 어이 없어서 고개 드니까 살짝 웃고 있더라. 장난 친 건가. 또 나만 믿었지.
막상 소독 시작하니까 손도 안 움직이고 아무 말 없이 잘 참더ㄹ,
“아픈데.”
“당연히 아프겠죠. 난 그 때 그 작은 칼에 베었는데도 한참 아팠는데.“
정정함. 잘 참긴 하는데 아무 말 없는 건 아니었음.
“어차피 내가 하는 것도 아닌데 담배는 피워도,”
“안 돼요.”
“내 집인데.“
”담배 피우면 상처 회복도 느리고 덧날 수도 있어요.“
”내 손인데.“
”병원도 안 간다면서. 오늘만이 아니라 며칠이라도 좀 참아요. 근데 이거 진짜 병원 안 가도 되나.. 꿰매야 하는 거 아니야..?”
의학지식이라고는 없어도 상식이라는 게 있잖아. 상식적으로 그게 진짜 집에서 치료할 만한 상처가 아닐 텐데.
내가 해준다고 하긴 했지만, 내가 해줘서 오히려 덧나면 어캄? 억지로 병원에 보냈어야 하는 건데 내가 얼레벌레 치료해줘서 더 문제라도 생기면 어카냐고.
심각하게 보는데 묶여있던 머리카락이 흘러내려서 고개 흔들었거든. 손에는 약이랑 피 묻어서 바로 못 넘겼는데 옆집남자가 잡아줌.
반대 쪽 손으로 머리카락 잡아서 귀에 꽂아놓고 멀어졌는데, 그거 의식 안 하는 척 하느라 혼났음.
별로 티나게 한 행동도 아니고 생색 낼 생각도 없는 것 같은데 그냥 신경쓰여.
뭐가 이렇게 신경쓰이는 게 많냐.
”우선 붕대 감아두긴 할 건데 내일 아침에 덧나는 것 같거나 또 피나거나, 아프면 바로 병원 가요.“
”아침에 직접 확인해.“
”...출근해야 해서요.“
”여기서 자고 일어나면 되는데.“
”붕대 감아주고 갈게요. 어차피 상처 덧나도 손해보는 사람이 나는 아니거든요.”
“나도 딱히.”
“?? 당사자는 손해 보는 거지.”
진짜 뭐라는 거지.
붕대나 꺼내는데 방해도 함. 붕대 들고 있는 쪽 손 뒤집더니 손가락도 펼치는 건지 눌러서 붕대도 떨어트림. 그러고 있는 것도 다친 손이라 아플까 봐 바로 빼내지도 못했음.
대체 뭐하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다시 올려다 봤는데 옆집남자는 내 손 보고 있더라.
아니, 내 손바닥에 남은 상처 보는 건가?
“손 잡으면 닿겠네.”
무슨 소리인지 바로 못 알아듣고 따라 고개 내리니까, 내 손바닥 위로 본인 손 겹쳐보더라. 닿은 건 아닌데.. 닿을 것처럼 가깝긴 했음.
크기 차이 때문에 내 눈에 보이는 건 옆집남자 손등밖에 없긴 했지만 그 정도로 가까우면 손에 느껴지잖아.
그래서 약간 긴장했던 것 같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피하지도 않고 가만히 있으니까 다시 손 거둬가더라.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손 내밀어 보여줌. 붕대나 감아라 이거지.
“아무튼 내일 아침에는 꼭..”
“아. 나도 혀 깨물면 혀도 같은 자리에 상처 생기겠다.“
”...그거 놀리는 거죠.“
”조롱한 건데.“
”그 쪽 때문에 놀란 거라니까요? 놀라서 혀 좀 깨문 게 뭐가 놀림거리라고. 놀라면 자기도 모르게 그럴 수도 있는 거라고요.“
”난 그런 적 없는데.“
”그게 오늘 당장 손에 이만한 상처 달고 온 사람이 할 말이에요?“
”혀를 깨물지는 않았잖아.“
내가 어쩌다 이 집에 들어와서 옆집남자랑 말씨름을 하고 있는 거지. 진짜 이해가 안 가는데 하여튼 묘하게 대화가 계속 이어지기는 했음. 술김에 했던 대화도 대화라고 거리감이 좀 덜해진 건가 싶기도 함.
여전히 간간이 굳거나 겁을 먹긴 했지. 그럴 때마다 워낙 옆집남자가 내 태도에는 아무 반응을 안 하니까 그것도 잠깐이었음.
그러다 보니 어느새 붕대까지 깔끔하게 잘 감아줌.
“끝났어요. 구급함은 원래 있던 자리에 두고 갈 테니까 시간 나면 붕대라도 갈아요.”
“자고 가.“
”이만 가볼게요.“
”집도 멀잖아.“
”머니까 빨리 출발해야지.“
나름 마무리 하려고 한 말이었는데. 옆집남자가 웃는 거 보니까 왠지 또 말려든 것 같음.
늘 그랬듯이 일어나면 붙잡지는 않았음. 들어오라고는 해도 막상 들어오면 시큰둥 한 것처럼.
일어나서 구급함 원래 있던 자리에 두고 열어둔 방 문 앞에 가서 한 번 돌아보기는 했음. 인사 비슷한 걸 하긴 했지만 다짜고짜 나가는 것도 이상하잖아. 옆집남자는 그런 이상한 짓도 아무렇지 않게 하지만.
내가 문으로 걸어가는 동안에는 피곤한지 고개 들고 있던 남자도 내가 돌아보니까 내 쪽으로 고개 돌리더라. 막상 돌아보니까 또 딱히 할 말은 없음.
그래서 그냥.. 나가기 전에 눈 한 번 마주친 사람 됨. 일종의 눈인사라고 쳐도 되나?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이번에도 그 집에서 무사히 나왔다는 거지.
지난 일의 빚 청산도 한 셈이고.
집에 돌아가서 자고, 다음날 아침엔 그냥 꿈 꾼 것 같았음.
왜 사람이 밤 늦게까지 못 자면 정신이 몽롱해지잖아. 그런 상태라 할 수 있었던 말과 행동들이었던 것 같기도 함.
정신 없이 출근 준비하면서 아주 잠깐, 손은 괜찮았으려나. 생각하긴 했는데 그것도 진짜 잠깐이었음.
문 열고 나와서 괜히 옆집 문도 한 번 쳐다봤지만 당연히 타이밍 좋게 마주칠 리는 없겠지.
굳이 내가 또 스스로 다시 그 집 문을 두드릴 생각이 있을 리도 없었고.
건장하다 못해 무섭게 생긴 성인 남성인데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심각하다 싶으면 병원이라도 가지 않겠음?
또 오다가다 마주칠 일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다시 서로 아는 체도 안 하게 되지 않을까?
그게 아쉽지는 않았고 그냥, 기분이 이상하긴 했음.
내 인생은 약간 아등바등 살아온 것만 빼면 무난한 편이었는데. 뜬금없이 그런, 아마도 내가 평생 길게 대화해볼 일도 없었을 것 같은 사람이랑 몇 번이나 부딪혔다는 게 기분 이상하더라고.
뭐 이런 것도 잠시뿐이겠지. 앞으로도 기껏해야 달에 두어 번 정도 마주치게 될 텐데.
앞으로 내가 취하지 않으면 집을 착각할 일도 없을 거고, 남자가 그렇게 크게 다쳤을 때 심지어 마침 나랑 마주치게 될 일도 아마 앞으로는 없겠지.
음악 소리 좀 시끄럽다고 그 집 문을 두드리거나, 좋은 말씀을 드리겠다고 둘러댈 일도 없을 거임.
그럼 이제 마주칠 일도 없겠지. 왠지 시원섭섭한 기분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런 판단을 내리기에는 너무 일렀던 것임. 내가 조심하면 되겠지, 하고 섣불리 판단했던 지난 날을 반성한다.
인간은 실수를 저지르기 마련이지. 나도 몇 번이나 저질렀고, 거기서 다시는 실수하지 말자는 깨달음을 얻었잖음.
내가 차는 없지만 면허는 있거든? 말하자면 차사고를 내본 운전자가 더 안전운전을 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거지.
근데 운전이라는 게, 나만 조심하면 되는 게 아니잖아.
난 정말 안전운전을 했는데 말이지.
“이제 와?”
“........왜 남의 집 문에 기대 계세요?”
“늦었네.”
난 진짜 가만히 있었는데 다른 운전자가 와서 치면 어캄?
“설마 취했어요?”
“응.”
“혹시 헷갈리는 거면 본인 집은 그 옆 문이에요. 바로 옆에.”
”열쇠를 잃어버려서.“
”...주머니 잘 뒤져봤어요? 취해서 착각하는 거 아니고?“
”들여보내주라.“
”어, 어딜 들여보내.“
”하루만 재워줘.“
”갚을게.”
........
겨우 나흘만에 다시 부딪힌 옆집남자를,
1.그냥 복도에 버려두고 들어가버린다.
2.경찰을 부른다.
3.집을 버리고 도망친다.
4.지금이라도 복도 난간으로 퇴장한다.
5.위협한다.
6...........속절없이 집에 들인다.
“뭐야, 안 들어온다면서요!!!”
“실례합니다.”
“실례인 거 알면 들어오지 말라고요..!“
”좋은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
“무, 뭐?“
🙋♂️맥카이너붕붕🤦♀️
https://hygall.com/606231409 < 이번엔 진짜 내 잘못은 없.. 없... 아무튼 후기
https://hygall.com/604470262 <확실히 제정신아님
맨정신인데 진짜 옆집남자 집까지 기어코 들어갔냐고?
그러게. 내가 왜 그랬지. 맨정신이긴 했는데 제정신은 아니었나봄.
정작 옆집남자는 사람 보고 들어오라고 하더니 들어가자마자 또 아는 척도 안 하더라. 물론 들어오라고 한 게 아니고 들어올 거냐고 물어보긴 했지.
하여튼 초대한 건 본인 아님?
사람은 돌아보지도 않고 휘적휘적 걸어가서 겉옷부터 벗더니 소파에,
“ㄷ, 다친 게 손이에요!!?“
옆집남자가 겉옷 벗으면서 처음으로 주머니에서 손을 뺐음. 근데 손 전체가 피로 뒤덮인 거야.
아무래도 다친 게 몸이 아니라 손이었나봄. 주머니에서 손 빼자마자 피가 뚝뚝 떨어질 정도였음. 대체 뭘 하고 다니길래 저 정도로 손을 다치는 걸까?
나도 한동안 회사 갈 때마다 사람들이 손은 왜 다쳤냐고 물어봐서 곤란했는데. 대충 뭐 해먹다가 식칼에 다쳤다고 둘러댔거든.
옆집남자는......
요리같은 걸 할 것 같지 않음. 물론 나도 안 하긴 함. 근데 저 인간은 정말 안 할 것 같음. 물론 나도 정말 안 하긴 함. 근데 그래도 옆집남자는... 적어도 저걸 요리하다 다쳤다고 둘러댈 수는 없을 거란 말이지.
“이 정도면 병원을 가야지, 왜 집으로 와??”
나도 모르게 다가갔는데, 가까이에서 보니까 더 심각하더라. 손바닥 안 쪽이.. 으. 징그러워서 처음엔 똑바로 보기도 어려울 정도였음. 내 손에 났던 상처는 비교도 안 됨.
상처는 안 쪽에 났는데 손 전체에 피가 묻어날 정도면 대체, 어디서부터 저러고 왔다는 거임?
상처며 피며 다 나은 내 손바닥이 아플 정도였는데 정작 당사자는 한결같이 시큰둥한 표정이 다였음. 저 정도면 너무 다쳐서 감각을 못 느끼는 게 아닐까?
“병원 안 가요? 꿰매야 할 것 같은데.“
”안 가.“
“가요.“
”안 가.“
“가.”
“안 ㄱ,“
”가라니까?“
“이제 안 무서워?”
아 맞다. 나 옆집남자랑 대화 중이었지. 손 보고 대화하니까 상처만 보여서 잠깐 잊었나봄. 피가 저렇게 나는데 병원을 안 간다잖아. 나도 모르게 너무 답답했나 봐.
다친게 몸이 아니라 다행이긴 했지만. 아무리 손이라고 해도 저 정도로 다치면 위험한 거잖아. 덩치가 얼마나 크든 문신이 얼마나 많든 목숨은 똑같이 하나일 거 아님?
물론 그렇게 따지지는 않았음. 당연히 눈 마주치자마자 개쫄아서 바로 물러남. 이 집에 들어온 시점에 썩 제정신은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겁도 없어질 만큼 미치진 않았음.
“아니 상처가 너무.. 깊어 보이길래...“
슬쩍 물러나서 변명까지 했더니 한 번 봐주기로 한 것 같음. 아니면 내가 뭐라고 하든 별로 신경을 안 쓰는 것 같기도 하고. 별 말 없이 다시 옷 벗기 시작하더라.
...보통 본인이 집에서 옷을 벗고 살아도 사람이 있으면 입고 있지 않아? 갈아 입을 거면 방에 들어가서 갈아입고 나오거나.
지레 겁 먹어서 주춤거리면서 물러났는데 옆집남자는 그대로 상의까지 겉옷 위에 벗어두더니 또 혼자 걸어가더라.
나도 모르게 시선으로 따라가다 보니까 욕실이었음. 멍하니 닫힌 욕실 문 보고 있으니까 금방 물소리도 들림.
어째 옆집남자는 속시원한 게 하나도 없냐. 시원한 건 맨날 벗고 있는 상의밖에 없음. 처음엔 어디 다쳤다는 것도 말 안 하더니 다짜고짜 들어올 거냐고 하지를 않나. 들어온 사람은 본체 만체, 옷이나 훌렁훌렁 벗어두고 씻으러 들어가지를 않나.
그 중 제일 의문인 건 그래서 난 왜 이 집에 굳이 따라 들어와서 이렇게 의문에 빠져있냐는 거임.
지금이라도 나가면 되지. 라고 생각하면서 소파에 털썩 앉았음.
술 취했을 때 앉았던 그 자리였는데.. 테이블 위 옆집남자가 벗어둔 옷들 옆에 그 칼이 아직도 있더라.
나한테 줄 때 품에서 꺼냈던 거 생각하면 원래 본인이 갖고 다니던 거 아닌가? 당연하지만 내가 바닥에 흘렸던 피는 자국도 안 남아 있었음.
그나저나 피 묻은 옷은 어쩌려고 저대로 테이블 위에 두는 거란 말임? 그냥 두면 핏물 들어서 안 빠질 텐데. 버릴 건가.
“안 갔네.”
“!!!”
잠깐 다른 생각 하는데 갑자기 목소리 들려서 혀 깨묾. 이 집에 들어온 내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는 나머지 혀라도 깨물어서 해결해야겠다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너무 놀라서 깨물었음.
입 틀어막고 곁눈질로 확인하니까 옆집남자는 벌써 씻고 나왔는지 익숙한 바지 차림으로 서있었음. 핸드폰 보다가 의아했는지 고개 돌리고 보더라.
근데 진짜 세게 깨물었다고. 피맛도 났다니까?
“으.. 흐늘 그흐그 흐으..?”
“뭐라는 거야.”
아직도 혀가 얼얼해서 다시 말하지는 못 했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왜 손을 그러고 다녀요? 였음.
내가 옆집에 들어와서 혀 깨물고 눈물 고여서 말도 똑바로 못 하고 있는 게 너무 황당하긴 한데, 그 와중에 옆집남자도 만만치 않았거든.
아니 손에서 피를 아직도 흘리고 있잖아. 헨젤과 그레텔이야? 왜 본인 집에서 피로 길을 만들고 다니는 거임? 병원은 왜 안 가고, 무슨 피는 아무렇지도 않게 흘리고 다녀?
하나는 혀 깨물어서 피 맛 보고, 하나는 상처난 그대로 씻고 나와서 걸음마다 피나 뚝뚝 흘리고 다니고. 이게 뭔 짓인지 모르겠다.
정황상으로나 시간상으로나 꿈을 꾸고 있다는 게 더 말이 될 것 같음.
“왜 손을.. 그러고 다니냐구요...“
입 틀어막고 조금 더 앓은 후에야 간신히 손 떼고 똑바로 말할 수 있었음.
근데 늦은 시간에 들어오란다고 남의 집에 따라 들어와서 혀 깨물고 있는 사람이 이상하냐, 손에 상처 달고 피까지 흘리면서 핸드폰이나 보고 있는 사람이 이상하냐. 어째 마주칠 때마다 핸드폰 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저 정도면 핸드폰 중독 아님?
“연락이 먼저라.”
“병원도 안 간다면서 지혈도 안 하고, 아프지도 않아요?“
“왜 안 갔어.“
생각해보면 이 사람 참 한결같이 남의 말 안 듣는 것 같음. 지 하고 싶은 말만 해. 그것도 사람 곤란한 말만.
”..그 상처 신경쓰여서요.“
근데 말은 시켜놓고 대답해도 딱히 듣지도 않음. 핸드폰은 그만 보고 주머니에 넣나 했더니 그 주머니에서 그대로 담배 꺼내더라. 행동 순서가 저게 맞음?
“담배가 아니라, 바로 병원 안 갈 거면 응급처치부터 해요.“
거의 반사적으로 튀어나가서 불 붙이려는 라이터부터 붙잡았음. 담배 끝에 불 붙이려고 고개 숙였다가 눈만 올려서 보는데..
무섭더라. 응. 무서운 건 적응이 안 됨. 그래서 라이터 붙잡은 것도 놔드렸음. 다시 불 붙이지는 않고 들고만 있더라.
”엄청 아플 텐데 그 와중에 담배 생각이 나요..?“
”아프니까 담배 생각이 나지.“
”도와줄테니까 그 상처부터 해결해요.“
”지혈만 해두면 알아서 나아.”
“구급상자 어디 있어요? 그 때 내 손에 붕대도 감아줬던 거 보면 뭐라도 있는 것 같은데.“
”집에 안 가?“
”그 날 일은 답례 하라면서. 그거 갚으려고 이 시간에 여기 와서 치료까지 도와준다잖아요.“
”그 날 일은 답례 안 한다며.“
”오늘 하려고요.“
”하지 마.“
”할 거예요.“
”안 한다며.“
”할 거라니까?“
“뭘.”
“ㅁ, 답례 한다고요. 내 손 치료해줬던 거 이번엔 내가 치료해주는 걸로 갚으면 되잖아.“
”왜?“
“당장 지금도 피 흘리고 있으면서 왜라는 말이 나와!?”
왜.. 왜 다친 사람보다 내 마음이 더 급해지냐고. 뭐가 저렇게 태평함? 본인 손에서 피가 흐르는데 왜라는 말이 어떻ㄱ, 잠깐. 나 방금 뭐라고 말한 거지.
갑자기 정신 돌아와서 입 다물고 올려다 보니까 옆집남자는 아직도 불 안 붙은 담배 물고 내려다 보더라.
”...뭐라고 하려던 게 아니라, 듣다 보니까 말투가 옮아서 그래요.“
바로 눈 깔고 내가 생각해도 얼토당토 않은 변명 하니까 코웃음 치더라.
그러더니 별안간 한 손으로 내 아랫입술 잡아 벌림.
???
손 치울 생각도 못하고 황당하게 올려다 보니까 가만히 보는 것 같더니 금방 놓더라.
인간이 너무 황당하면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상황 파악이 안 되더라고?
“피 나는데.“
”아까부터 그렇다고 말했잖아요?“
”나 말고.“
”아, 이건.. 아까 갑자기 말 거니까 놀라서 혀 깨물어서 그래요.”
놀란 게 누구 때문인데. 또 코웃음 치더라.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긴 한데 그래도 원인 제공자가 비웃는 건 좀 아니지 않아?
“내 혀는 됐으니까 손부터 치료해요. 구급함 같은 거 따로 없어요?“
”있는데.“
”어디 있는데요?“
비웃는 것도 기분 이상하지만 역시나 웃는 건 더 불안하단 말이지. 난 웃길 말을 안 한 것 같은데. 담배 물고 있는 입꼬리가 또 슬금슬금 당겨 올라가는 거임.
그리고 느리게 고개 돌려서 턱짓 하더라.
”침실에.“
나도 얼떨결에 그 방향 따라갔는데 낯 익은 방 위치였음. 문은 닫혀있지만 저 안에 되게 크고 푹신한 침대가 있다는 건 알지. 내가 누워봤으니까.
불안하게 다시 고개 돌려서 올려다 보니까 물고 있던 담배까지 빼서 손에 들더라.
“들어갈래?”
그리고 어김없이 들어갈 거냐고 물어봄. 생각해보면 옆집남자가 날 강제로 어디에 들인 적은 한 번도 없었음.
들어올래? 들어갈래? 매번 묻는단 말이지. 들어가고 나면 난 내가 선택했으니까 불평할 수가 없게 되는 거잖음?
“..구급함이 왜 침실에 있어요.“
”전에 누가 내 침실에서 손 아프다고 보채서.“
심지어 구급함이 침실에 있는 이유에도 할 말이 없음. 한 달 사이에 나 말고 누가 이 집 침실에 가서 손 아프다고 보챈 적은 없을 거 아니야.
“그럼 가서 갖고 와요.“
”내가?“
”어디 있는지 말해주면 내가 가져와도 되고.“
”굳이.“
”아무래도... 거실에서 치료하는 게 편하잖아요?“
”왜?“
옆집남자 말을 잘 안 하는 것 같은데 은근히 말을 잘 한단 말이지. 듣다 보면 묘하게 말리는 것 같달까. 하여튼 변명이나 거짓말은 별로 소용이 없는 것 같았음.
“침실은, 침실은... 마음이 불편해서요.“
”그럼 집에 가.“
또 본인 할 말만 하고 방으로 걸어가버림. 난 멍하니 서있는데 심지어 닫힌 문 열고 들어가서 망설임도 없이 닫더라.
황당하긴 한데 맞는 말이긴 하지. 저 정도면 멀쩡해보이는데 굳이 내가 저 방까지 따라 들어가서 처치를 도와줄 필요가 있을까?
그렇긴 한데, 아무리 봐도 혼자 응급처치를 할 것 같지는 않음. 침실에서 담배나 피우다가 피도 안 멈춘 손 그대로 하얀 침대 시트 다 물들여놓고 잘 것 같다고. 물론 그래도 내 알 바는 아니긴 해. 근데 만약...
내일 아침 내 옆집에서 과다출혈로 인한 변사체가 발견되면 어캄?
손도 잘못 다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거잖아. 피도 안 멈췄는데? 병원도 안 가는데?
결국 잠깐 망설이다가 방 문 열고 들어가니까 옆집남자가 침대에 앉아서 돌아보더라. 손에 담배 들고 있는 거 보니까 들고 있던 거 다시 피울 생각이었나봄.
나 보더니 라이터랑 같이 근처에 던져두더라. 뭐라고 말은 안 했지만 그 표정과 몸짓이 마치.. 진짜 가지가지 한다고 온몸으로 말하는 것 같았음.
“치료만 도와주고 바로 갈 거예요.”
“먼 길 오셨네. 집도 멀텐데.“
안 다친 손으로 침대 짚고 기대 앉기까지 하면서 비꼬는 거 보니까 상처가 보기보다 멀쩡하긴 한가봄. 약간 짜증이 나는 것 같았지만 침착하게 방 문은 열어두기로 함.
”그거 열어두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여차하면 도망치려고요.“
”세 걸음이 내 한 걸음 정도 되는 것 같은데.“
”그 정도는 아니거든요. 구급함은 어디 있어요?“
이상하다. 옆집남자가 무섭긴 여전히 무섭거든. 근데 이게 옆집남자한테 적응해서 안 무서워지는 게 아니라, 무서운 거에 적응하는 것 같음.
무서운 건 무서운 거고, 무서우니까 얼른 할 일을 하자 뭐 그런 느낌?
이게 다 옆집남자 때문임. 이 봐, 구급함 어디 있냐니까 또 턱짓이긴 했지만 알려주잖아. 구급함이 침실에 있던 것도 사실이었고.
구급함 가져와서 옆에 앉으니까 얌전히 손도 내밀더라.
근데 피부터 닦아내야 할 것 같아서 주변 둘러보니까 방 안에도 문이 하나 있었음. 그 때는 미처 못 봤는데 욕실인 것 같아서 저거 욕실이냐고 물어봄. 그렇대.
수건 가져다 피 닦아도 되냐니까 마음대로 하래.
결국 욕실 들어가서 수건 가져다가 따뜻한 물 묻혀서 침대로 돌아옴. 내민 손 가져다가 피까지 닦아ㅈ, 생각해보니까 피 닦는 건 본인이 해도 되는 거 아님?
깨달았을 땐 이미 피가 다 닦인 후였음.
진짜 내가 생각해도 이 정도 정성이면 도움 두 번 받은 거랑 퉁칠 만 하다. 이제 발 뻗고 잘 수 있겠음.
그보다 피 닦아내고 나니까 생각보다는 상태가 괜찮더라. 상처는 살벌하긴 한데 피칠갑 돼있을 때보다는 나아 보였음. 그새 피도 거의 멎었나봄.
어쩐지 너무 태연하다 싶더니, 죽을 상처까지는 아니라는 건 알았다 이거지.
“소독 먼저 할게요.“
”아야.“
”?? 아직 닿지도 않았어요.“
”살살해.“
방금 전까지 응급처치 할 생각도 없더니 뭐임. 손만 보고 있다가 어이 없어서 고개 드니까 살짝 웃고 있더라. 장난 친 건가. 또 나만 믿었지.
막상 소독 시작하니까 손도 안 움직이고 아무 말 없이 잘 참더ㄹ,
“아픈데.”
“당연히 아프겠죠. 난 그 때 그 작은 칼에 베었는데도 한참 아팠는데.“
정정함. 잘 참긴 하는데 아무 말 없는 건 아니었음.
“어차피 내가 하는 것도 아닌데 담배는 피워도,”
“안 돼요.”
“내 집인데.“
”담배 피우면 상처 회복도 느리고 덧날 수도 있어요.“
”내 손인데.“
”병원도 안 간다면서. 오늘만이 아니라 며칠이라도 좀 참아요. 근데 이거 진짜 병원 안 가도 되나.. 꿰매야 하는 거 아니야..?”
의학지식이라고는 없어도 상식이라는 게 있잖아. 상식적으로 그게 진짜 집에서 치료할 만한 상처가 아닐 텐데.
내가 해준다고 하긴 했지만, 내가 해줘서 오히려 덧나면 어캄? 억지로 병원에 보냈어야 하는 건데 내가 얼레벌레 치료해줘서 더 문제라도 생기면 어카냐고.
심각하게 보는데 묶여있던 머리카락이 흘러내려서 고개 흔들었거든. 손에는 약이랑 피 묻어서 바로 못 넘겼는데 옆집남자가 잡아줌.
반대 쪽 손으로 머리카락 잡아서 귀에 꽂아놓고 멀어졌는데, 그거 의식 안 하는 척 하느라 혼났음.
별로 티나게 한 행동도 아니고 생색 낼 생각도 없는 것 같은데 그냥 신경쓰여.
뭐가 이렇게 신경쓰이는 게 많냐.
”우선 붕대 감아두긴 할 건데 내일 아침에 덧나는 것 같거나 또 피나거나, 아프면 바로 병원 가요.“
”아침에 직접 확인해.“
”...출근해야 해서요.“
”여기서 자고 일어나면 되는데.“
”붕대 감아주고 갈게요. 어차피 상처 덧나도 손해보는 사람이 나는 아니거든요.”
“나도 딱히.”
“?? 당사자는 손해 보는 거지.”
진짜 뭐라는 거지.
붕대나 꺼내는데 방해도 함. 붕대 들고 있는 쪽 손 뒤집더니 손가락도 펼치는 건지 눌러서 붕대도 떨어트림. 그러고 있는 것도 다친 손이라 아플까 봐 바로 빼내지도 못했음.
대체 뭐하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다시 올려다 봤는데 옆집남자는 내 손 보고 있더라.
아니, 내 손바닥에 남은 상처 보는 건가?
“손 잡으면 닿겠네.”
무슨 소리인지 바로 못 알아듣고 따라 고개 내리니까, 내 손바닥 위로 본인 손 겹쳐보더라. 닿은 건 아닌데.. 닿을 것처럼 가깝긴 했음.
크기 차이 때문에 내 눈에 보이는 건 옆집남자 손등밖에 없긴 했지만 그 정도로 가까우면 손에 느껴지잖아.
그래서 약간 긴장했던 것 같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피하지도 않고 가만히 있으니까 다시 손 거둬가더라.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손 내밀어 보여줌. 붕대나 감아라 이거지.
“아무튼 내일 아침에는 꼭..”
“아. 나도 혀 깨물면 혀도 같은 자리에 상처 생기겠다.“
”...그거 놀리는 거죠.“
”조롱한 건데.“
”그 쪽 때문에 놀란 거라니까요? 놀라서 혀 좀 깨문 게 뭐가 놀림거리라고. 놀라면 자기도 모르게 그럴 수도 있는 거라고요.“
”난 그런 적 없는데.“
”그게 오늘 당장 손에 이만한 상처 달고 온 사람이 할 말이에요?“
”혀를 깨물지는 않았잖아.“
내가 어쩌다 이 집에 들어와서 옆집남자랑 말씨름을 하고 있는 거지. 진짜 이해가 안 가는데 하여튼 묘하게 대화가 계속 이어지기는 했음. 술김에 했던 대화도 대화라고 거리감이 좀 덜해진 건가 싶기도 함.
여전히 간간이 굳거나 겁을 먹긴 했지. 그럴 때마다 워낙 옆집남자가 내 태도에는 아무 반응을 안 하니까 그것도 잠깐이었음.
그러다 보니 어느새 붕대까지 깔끔하게 잘 감아줌.
“끝났어요. 구급함은 원래 있던 자리에 두고 갈 테니까 시간 나면 붕대라도 갈아요.”
“자고 가.“
”이만 가볼게요.“
”집도 멀잖아.“
”머니까 빨리 출발해야지.“
나름 마무리 하려고 한 말이었는데. 옆집남자가 웃는 거 보니까 왠지 또 말려든 것 같음.
늘 그랬듯이 일어나면 붙잡지는 않았음. 들어오라고는 해도 막상 들어오면 시큰둥 한 것처럼.
일어나서 구급함 원래 있던 자리에 두고 열어둔 방 문 앞에 가서 한 번 돌아보기는 했음. 인사 비슷한 걸 하긴 했지만 다짜고짜 나가는 것도 이상하잖아. 옆집남자는 그런 이상한 짓도 아무렇지 않게 하지만.
내가 문으로 걸어가는 동안에는 피곤한지 고개 들고 있던 남자도 내가 돌아보니까 내 쪽으로 고개 돌리더라. 막상 돌아보니까 또 딱히 할 말은 없음.
그래서 그냥.. 나가기 전에 눈 한 번 마주친 사람 됨. 일종의 눈인사라고 쳐도 되나?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이번에도 그 집에서 무사히 나왔다는 거지.
지난 일의 빚 청산도 한 셈이고.
집에 돌아가서 자고, 다음날 아침엔 그냥 꿈 꾼 것 같았음.
왜 사람이 밤 늦게까지 못 자면 정신이 몽롱해지잖아. 그런 상태라 할 수 있었던 말과 행동들이었던 것 같기도 함.
정신 없이 출근 준비하면서 아주 잠깐, 손은 괜찮았으려나. 생각하긴 했는데 그것도 진짜 잠깐이었음.
문 열고 나와서 괜히 옆집 문도 한 번 쳐다봤지만 당연히 타이밍 좋게 마주칠 리는 없겠지.
굳이 내가 또 스스로 다시 그 집 문을 두드릴 생각이 있을 리도 없었고.
건장하다 못해 무섭게 생긴 성인 남성인데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심각하다 싶으면 병원이라도 가지 않겠음?
또 오다가다 마주칠 일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다시 서로 아는 체도 안 하게 되지 않을까?
그게 아쉽지는 않았고 그냥, 기분이 이상하긴 했음.
내 인생은 약간 아등바등 살아온 것만 빼면 무난한 편이었는데. 뜬금없이 그런, 아마도 내가 평생 길게 대화해볼 일도 없었을 것 같은 사람이랑 몇 번이나 부딪혔다는 게 기분 이상하더라고.
뭐 이런 것도 잠시뿐이겠지. 앞으로도 기껏해야 달에 두어 번 정도 마주치게 될 텐데.
앞으로 내가 취하지 않으면 집을 착각할 일도 없을 거고, 남자가 그렇게 크게 다쳤을 때 심지어 마침 나랑 마주치게 될 일도 아마 앞으로는 없겠지.
음악 소리 좀 시끄럽다고 그 집 문을 두드리거나, 좋은 말씀을 드리겠다고 둘러댈 일도 없을 거임.
그럼 이제 마주칠 일도 없겠지. 왠지 시원섭섭한 기분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런 판단을 내리기에는 너무 일렀던 것임. 내가 조심하면 되겠지, 하고 섣불리 판단했던 지난 날을 반성한다.
인간은 실수를 저지르기 마련이지. 나도 몇 번이나 저질렀고, 거기서 다시는 실수하지 말자는 깨달음을 얻었잖음.
내가 차는 없지만 면허는 있거든? 말하자면 차사고를 내본 운전자가 더 안전운전을 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거지.
근데 운전이라는 게, 나만 조심하면 되는 게 아니잖아.
난 정말 안전운전을 했는데 말이지.
“이제 와?”
“........왜 남의 집 문에 기대 계세요?”
“늦었네.”
난 진짜 가만히 있었는데 다른 운전자가 와서 치면 어캄?
“설마 취했어요?”
“응.”
“혹시 헷갈리는 거면 본인 집은 그 옆 문이에요. 바로 옆에.”
”열쇠를 잃어버려서.“
”...주머니 잘 뒤져봤어요? 취해서 착각하는 거 아니고?“
”들여보내주라.“
”어, 어딜 들여보내.“
”하루만 재워줘.“
”갚을게.”
........
겨우 나흘만에 다시 부딪힌 옆집남자를,
1.그냥 복도에 버려두고 들어가버린다.
2.경찰을 부른다.
3.집을 버리고 도망친다.
4.지금이라도 복도 난간으로 퇴장한다.
5.위협한다.
6...........속절없이 집에 들인다.
“뭐야, 안 들어온다면서요!!!”
“실례합니다.”
“실례인 거 알면 들어오지 말라고요..!“
”좋은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
“무, 뭐?“
🙋♂️맥카이너붕붕🤦♀️
https://hygall.com/606231409 < 이번엔 진짜 내 잘못은 없.. 없... 아무튼 후기
[Code: d35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