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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3:26
나의 남편은... 남편이라고 부르기도 무섭다. 딱히 내게 못되게 행동하거나 무섭게 다그친 적도 없지만 그래도 본능적인 두려움이랄까. 본래 나의 집에서도 자라면서 눈치가 없고 행동 굼뜨다고 구박도 많이 받았었다. 그러다가도 부모님은 곧장 '애는 착하잖아' 하시며 애써 본인들을 위로하기도 했지만 그 말을 듣는 입장에서는 주눅이 안 들 수가 없다. 그래서 남편만큼은 부디 내가 편하게 대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길 간곡하게 바라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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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던 모든 이상형의 반대점을 적으면 아마도 이 왕자님이 아닐까? 나도 분에 넘치는 결혼은 하기 싫었다. 그냥 마음편하게 적당히 게으름 피우면서 살고 싶은 마음이라구. 그렇지만 왕자님이 콕 집어서 나랑 결혼 하고 싶다는데 다른 선택지가 있을리가 없다. 왜 나를 선택했을까? 나는 왕자님에게 딱히 도움이 될 것도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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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시집가자마자 독살당하는건 아니겠지...










의외로 왕자님은 나를 구박하거나 한심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나의 말을 무시하는 법도 없었다. 지나가는 말로 과일차가 마시고 싶다고 중얼거린 걸 용케 기억하시곤 아무렇지 않게 본인과의 티타임 때 내놓는 식이었다. 딱히 생색을 내지도 않았고 내게 별다른 보답을 바라지도 않았다.



날 미워하지는 않는갑다. 왕자님이 사온 귀걸이를 끼고 어색하게 밥을 먹자 왕자님은 나의 귀걸이를 보더니 눈썹만 으쓱하고 딱히 아무 말도 없으셨다. 아주 조금 입꼬리가 올라간 것도 같았지만 기분 탓일지도 아닐지도... 나는 그래서 일생일대의 용기를 내보고자 입을 열었다. 내가 먼저 말을 건네는 것은 아주아주 드문 일이라는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었기에 왕자님은 퍽 놀란 눈치셨다.




"저... 왕자님, 사실 하나만... 제가 여쭤보고 싶은게 있는데, 그게, 기분 나쁘시지 않으시다면 하나만... 시간 많이 안 뺏을게요."




"다른 이도 아니고 내 부인의 말이라면 며칠은 들어줄 수 있지."



왕자님은 먹던 식사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나는 어색하게 귀걸이를 만지작 거리다 다시 입을 열었다.




"제, 제가 계속 궁금했거든요. 저희가.. 결혼식 마치고 처음으로 같이 침실에 들어갔을 때요, 그 때, 음.."




"듣고 있네."




"왜.. 왜 계속 꾸에엑? 꾸엑? 막 그러셨는지..."




내 질문이 끝나자 왕자님은 어울리지 않게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대답 없이 한참 시간이 흐르고, 왕자님은 힘겹게 입을 열어 대답했다.


"부인에겐 미안하지만.. 내가 그런 기괴한 들짐승 소리를 낸 적은 인생을 전부 돌이켜봐도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전해주고 싶군."



"그치만 계속 몇차례나 그러셨는데.. 그래서 뭐라 말을 해야하는지 몰라서 그냥 저는 아무 말 못하고 웃었어서.."



이제는 뭔가 곰곰히 생각하는 표정으로 바뀐 왕자님은 수초 뒤 어처구니 없는 얼굴로 말하셨다.




"...내가 부인에게 전해주려던건 그런 짐승 비명소리가 아니라.. '후회해?' 라는 말이었던 것 같군."



"후, 후회해..?"



"나와의 결혼을 후회하냐고 물어보던 것이었는데. 어쩐지 그때 말도없이 부자연스럽게 웃는다고 했지. 생각해보니 부인은 그 날 과도하게 긴장했었고.. 뭐.. 처음이었으니....."




왕자님은 점차 말을 흐리다가 입을 닫아버리셨고 나의 얼굴은홍차처럼 새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물어보지 말걸. 그냥 평생의 비밀로 간직하고 죽을걸.. 그냥 지금 왕자님께서 내게 인간적인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주셨으면 좋겠다. 정적 속에서 스프를 의미없이 휘젓던 나는 겨우짜낸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저.... 후회하진 않아요..."




왕자님은 그런 날 보시다가 대답했다. 그건 참 다행이군. 다시 말은 끊기고 우린 서로 아무 대화없이 식사를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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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님이 어쩐지 웃음을 참는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기분탓이었을 것이다..








아에몬드너붕붕
하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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