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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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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뭐야?”

“단도직입적이네요.”

 

은퇴한 사람을 불쑥 찾아온 불청객을 위한 배려는 없었다. 한 번만 작업하고 눈앞의 상대든, 작업이든 빨리 뭐든지 치워버리고 싶었다.

 

“타겟은 누군데?”

“그저 돈이 수상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 중 하나죠. 개인 수집가를 털거예요. 철통같은 사유지 금고에서 빠져나와 전시 중일때 그 틈에 빼오는거죠.”

“미술품은 남는게 거의 없는데, 취향 한번 고급지네..”

 

생각에 잠긴 휴가 턱을 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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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말아요. 작업 수익과는 상관없이 당신 부르는대로 돈 줄테니까.”

 

그의 머릿속에서는 연습된 듯 계획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장물 처리는?”

“이미 다 연락해뒀어요.”

“운반은?”

“하던대로.”

 

작전을 구상하는데에 놀라울 정도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라이언 근처를 몇번 맴돌자 계획의 마무리가 맺어졌다. 손쉽게 그려지는 동선과 모든 경우의 수에 따른 해결책을 능숙하게 생각하는 자신이 우스워 헛웃음을 흘렸다.

 

수상할 정도로 매끄럽게 준비를 해온 라이언을 올려봤다.

 

“레이놀즈, 왜 굳이 날 찾아왔어?”

“그야, 당신이 최고니까요.”

“비행기 태우지 말고. 네가 준비 다 해왔잖아, 왜 내가 필요한거야?”

 

평소와 달리 휴는 여유와 인내심이 부족했다.

 

“요즘 기술자 인물이 워낙 없어서요.”

 

라이언이 어깨를 으쓱했다.

 

“알잖아요, 작업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골치 아프다는거.”

 

떳떳한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다 알고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작업에 대한 정보는 최소한으로 공유하는게 철칙이다. 아는게 많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정보가 새거나 배신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직종이라, 말단에게는 아무런 정보도 알려주지 않는것조차 흔했다.

 

”예전처럼 사람 많이 끌고 다니는건 딱 질색인데, 소수 정예로만 작업하기에는 많이 불안하잖아요.“

”그래서 은퇴한 영감을 불러내?“

”당신이야 뭐 워낙에 유명했고, 검증된 실력이니까.. 몇명이 쩔쩔매는 일을 혼자 거뜬히 해내잖아요.”

 

휴가 라이언을 못미덥다는듯 노려봤다.

 

“솔직히 말해봐요, 휴. 재미있었잖아요.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을텐데.”

 

조금도 생각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위험한 일만이 줄수있는 스릴, 어긋난 성취감, 자기가 독보적으로 써내려가던 전설.

 

그건 중독과 다를게 없었다.

 

“가족들을 걱정시킬 문제를 만들고 싶지는 않아.”

 

이번 작업이 벌어다 줄 돈은 온전히 가족을 위한것이다. 한번만 일을 돕는다면 그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것처럼 살 계획이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매혹적인 이방인은 그가 애써 가꾼 평온함을 퇴색시켰다.

 

 

 

 

“은퇴하고 나서 옛날 생각 조금도 안났어요?”

“길이나 똑바로 봐, 레이놀즈.”

 

휴가 장치 전선을 만지작거리며 쏘아붙였다. 운전대를 잡은 젊은 남자는 삐진건지 입을 꾹 다물었다.

 

시선 건너에 있는 낯선 이는 기억속의 애송이와는 사뭇 달랐다. 선이 굵어진 얼굴, 건장해진 체격, 희미하게 보이는 새로운 상처들에 많이 변했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은퇴하고 잠적한 시간은 길다면 길었고 짧다면 짧았지만, 시간에 비해 라이언이 비약적인 변화를 겪은건 분명했다.

 

“레이놀즈가 뭐예요? 딱딱하게…”

“우리가 그렇게 친했던 사이는 아니었던걸로 아는데.”

 

그는 라이언과 직접 같이 작업해본적도 없었다. 어렴풋이 분내가 날것만 같은 얼굴 하나만이 흐릿하게 남아있었다.

 

“전에는 라이언이라고 불러줬었잖아요.”

“그랬었나? 글쎄..”

 

은근히 기대하는듯한 눈빛에 휴는 시선을 피했다.

 

변해버린 그의 얼굴 위에 풋풋했던 기억속의 인상이 어설프게 드리워져있었다. 이상한 괴리감과 반가움 덕에 휴가 재차 눈을 깜박였다.

 

“늙으니까 기억이 잘 안나네.”

 

어차피 한건만 성공하면 끝날 단기간 동료 사이였다.

 

아무리 침착하게 보이려 노력해도 현장 근처에 다가가자 휴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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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잠시만.”

 

휴가 전선을 끊어내고 떨리는 손으로 장치를 닫았다.

 

이미 개조가 완료된 손 안의 증폭 장치는 경비 시스템을 교란시킨다. 미술관 한쪽에서 소동이 일어나면 그 혼란을 틈타 그 둘이 그림들을 훔친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시작될 일, 그의 손 끝에 달린 일이었다. 휴는 긴장을 떨쳐내려는듯이 마른 세수를 했다.

 

작업이 시작된다면 그 후부터는 멈출수없다.

 

“정말.. 이번 한번만이야.”

“그럼, 당연하죠.”

 

라이언이 씩 웃어보였다. 떨리는 손을 향했던 라이언의 손이 순간 멈칫하고 휴의 어깨를 다잡았다.

 

“떠난다는 사람 잡는건 지저분하잖아요.”

 

미끈하게 웃는 그를 믿기 어려웠지만 휴는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깊게 숨을 들이마쉰 뒤 버튼을 누르자 건물 건너편에서 경보음이 울려퍼졌다.

 

“15분 안에 끝내자.”

 

둘은 손목시계에 시간을 맞추고 미술관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어두운 미술관 복도 안에서 두 사람의 발소리가 희미하게 울려퍼졌다. 미술관 반대편에서는 경보음이 시끄럽게 울려 두 사람의 기척은 소동의 불협화음에 섞여들어갔다.

 

타겟이 자리한 회랑에 들어가자 휴는 고개를 젖혀 주위를 살폈다. 천장에 붙은 작은 센서는 전시품 앞에 보이지 않는 장막을 만들어둔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손으로 장막을 걷으려한다면 모든 일이 실패로 돌아간다.

 

휴가 간단한 조작으로 누전을 일으키자 타닥하는 조그만 소리가 났다. 외관은 멀쩡해보여도 센서는 이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작품을 만지기 앞서 휴가 조심스럽게 장갑을 끼웠다.

 

사람들이 전세계에서 관람하러 찾아오는 작품이다. 장물을 원하는 수집가에게 팔아넘기면 작품은 이제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다섯명도 안되는 사람들이 처신만 잘한다면 작품의 행방은 아무도 알수없고, 휴는 그 비밀을 아는 극소수 중의 한명이 된다.

 

이 직업만이 줄수있는 일종의 허영이었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미술관 안에서 세계적인 걸작과 가깝게 조우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이 순간을 음미하듯이 장갑낀 휴의 손이 걸작 위를 천천히 어루만졌다.

 

휴가 조심스럽게 진품을 떼내자 라이언이 커다란 천으로 작품을 덮어 고정했다.

 

진품을 훔치고, 그 자리에는 위작을 걸어둔다. 한밤중의 경비들은 작품이 자리에 있다는것만 곁눈질로만 확인한다. 알아차리는건 꽁꽁 숨겨져있는 미술관 안의 사무실을 빠져나와 값싼 대체품을 맞딱드린 불운한 큐레이터의 몫이다.

 

난리가 나고 진위를 알아내려고 하면 도둑들의 자취는 사라진지 오래다.

 

도로 한복판에서 붉은 빛이 일렁이자 라이언이 차를 살짝 세웠다. 아무도 없는 새벽 시간의 도로였지만 옆 차선에 밴 하나가 멈춰섰다. 운전자가 창문을 내리고 뒷문을 살짝 열자 옆의 밴에서 장물아비가 작품을 받아갔다.

 

“잘 부탁드려요.”

 

라이언이 인사하자 장물아비가 고개를 까닥하고 차를 꺾어 사라졌다. 작품을 훔치고 털어내기까지 한시간 이내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운전자가 핸들을 꺾어 길을 바꾸자 조수석에서 휴가 두리번거렸다.

 

“이쪽 길이 아닌데.”

“작업도 이만하면 잘 마무리한건데 한잔 하고 가요. 오랜만인데, 기념으로.”

 

쉽게 끝난 작업에 휴는 들뜬 나머지 조수석에서 쉴새없이 자세를 움직였다. 기술자 인물이 없다는 라이언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었다. 오래 쉬었는데도 불구하고 녹슬지 않았던 능력이 자랑스러웠고, 일이 주는 즐거움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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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만 작업하면 끝날 사이였지만 술 한잔 정도는 마셔줄수있었다.

 

모든게 이상할 정도로 순조로웠다. 술은 쉽게 쉽게 계속 들어갔고, 그렇게 휴의 필름이 끊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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