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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이런 사진을 골랐을까. 너랑 조금도 닮지 않았잖아.”


파이브는 벤 얼굴에 반으로 접은 신문을 들이밀었다. 5년 전, 스패로비트로 승승장구했던 벤 인터뷰가 실린 기사였다. 두꺼운 뿔테안경으로 눈을 가리고 머리를 모두 뒤로 넘긴 벤은 전형적인 사업가처럼 보였다. 오른손을 들어 턱을 괴고 있었는데, 얇은 손목에는 어울리지 않는 투박한 시계를 얹혔다. 재회를 기념하여 cia 사무실에서 가져온 선물이었다.


신문을 내려놓자, 당장이라도 파이브 목을 조를 것처럼 눈을 사납게 뜬 벤의 얼굴이 보였다. 신문에 실린 사진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몰골이었다.


정돈하지 않은 긴머리가 이마와 눈썹을 가렸고, 추위를 막으려고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여러 겹 껴입었다. 옷으로 자신을 한껏 드러냈던 과거와 달리, 지금 벤에게 옷은 추위를 막는 생존 물품에 불과했다.


‘교활한 악마 벤 하그리브스, 선량한 시민들을 파산시키다.’


기사 헤드라인은 뛰어난 사업가인 벤의 몰락을 알리고 있었다. 이 기사 때문에 벤이 수감된 것은 아니나, 벤의 이미지가 끝없이 추락한 기사이기는 했다.


벤은 신문을 눈빛으로만 뚫어버릴 것처럼 노려보았다. 파이브는 그 눈빛 속에 분노만 담겨있지 않다는 걸 알아챘다. 분노는 일부에 불과했다. 벤은 기사 속 자기 모습을 보면서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내가 ‘교활한 악마’라고? 악마라는 단어 속에 교활하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잖아. 악마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었으면 교활하다는 수식어는 포기했어야지.”


벤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감옥에서 4년이 넘는 세월을 보냈으면서도, 남을 지적하는 성격은 고치지 못했구나 싶었다.


벤이 신경질적으로 신문을 낚아챘다. 파이브는 신문을 구겨서 땅바닥에 버릴 거라 예상했다. 벤은 신문을 조심스럽게 두 번 접고는 후드 주머니에 넣었다. 자길 악마라고 칭한 기사였지만, 어찌 되었든 사업가 벤의 화려했던 순간을 담은 기사였다. 벤은 이 신문을 소중하게 보관할 것이다. 그게 자길 욕하는 기사이더라도 말이다.


“5년 전 신문이 썩지도 않고 멀쩡한 상태라니. 지구가 쓰레기로 가득 차지 않게 하려면 이런 신문부터 일주일 만에 썩는 종이로 만들어야 해.”

“괜찮은 아이디어야. 벤.”

“그리고 500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종이로 한정판 신문을 만드는 거야. 빨리 썩는 신문은 값싸게 팔고, 썩지 않는 신문은 소수에게 비싼 값에 파는 거지.”

“정보와 지식을 특권층만 가질 텐데.”

“지금은 아닌 것처럼 말하네. 네가 CIA 요원이라는 건 덩치만 큰 멍청한 넘버원한테 전해 들었어.”


루서는 남매들 사이에서 소식통이었다. 디에고와 라일라가 아이를 또 가졌다는 소식과 클라우스가 앨리슨 지하에 살고 있다는 소식, 빅터가 남매들을 참지 못해 결국은 캐나다로 떠났다는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준 사람이 바로 루서였다.


“CIA가 정보를 수집하는 것과 특정 계급만 정보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건 달라.”

“그러시겠지.”


벤이 코웃음을 쳤다. 벤의 고고한 자존심도 여전히 그대로였다.


벤은 아직도 자기가 너무 똑똑한 탓에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썼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아름다웠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다.




두 사람은 한때 벤이 머물고 있던 펜트하우스 근처 카페에 있었다. 석방되자마자 벤은 연방 정부에게 압류당한 펜트하우스에 들어가려다가 제지당했다. 그 소식은 빠르게 파이브에게 전달되었다.


능력이 있었다면 순식간에 이곳에 올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평범한 파이브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속도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벤이 펜트하우스를 포기하지 못해서 3시간 동안이나 이 근처를 서성대지 않았다면, 파이브는 벤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파이브. 너라면 내 펜트하우스를 돌려받는 방법을 알고 있겠지?”

“그런 방법 모르는데. 그리고 방법을 알아도 널 위해 그런 수고로운 일을 하고픈 생각은 없어.”

“선량한 시민이 정부에게 빼앗긴 물건을 돌려받으려는 것뿐이잖아.”

“넌 선량한 시민이 아니야.”

“난 돌아갈 집이 없어.”

“새로운 거처를 만들어.”

“모아둔 돈도 모두 갈취당했어.”

“갈취가 아니라 적법한 절차에 따라 회수한 거지.“

“가족은 다 죽고, 믿었던 아빠는 나를 배터리 취급하면서 죽이려 했어. 나한테 이제 남은거라고는 내 손으로 얻어낸 그 집밖에 없단 말이야!”


벤이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카페 손님들이 벤과 파이브 쪽을 쳐다봤다. 벤은 양손으로 자기 머리를 헝클었다. 테이블을 치며 소리친 걸 후회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크게 외친 걸 미안해하는 건 아니었다. 파이브에게 자기가 얼마나 취약한 상황인지 보여줬다는 수치심 때문이었다.


“벤, 그 집도 이젠 네 것이 아니야.”

“잊고 있던 사실을 알려줘서 아주 고맙네. 널 따라온 내가 바보였지.”


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머니에 넣어둔 신문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벤이 입은 옷은 상의와 하의를 다 합쳐 주머니가 8개나 되었다. 그중 딱 네 개의 주머니만 내용물을 담고 있었다. 신문을 담아둔 주머니 하나, 벤이 꽁꽁 언 양손을 찔러넣은 주머니 두 개, 그리고 세 번 접은 1달러 지폐 일곱 장이 든 주머니. 그게 벤이 가진 전 재산이었다.


벤이 왼쪽 바지 주머니에 소중하게 간직한 지폐를 꺼내 들었다. 자기가 마신 커피값은 물론이고 팁까지 계산하여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파이브는 벤이 전 재산을 커피 한 잔에 탕진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난 간다. 재수 없는 쥐꼬맹이야.”

“갈 곳도 없잖아. 돈도 없고.”

“미다스의 손을 보고 돈이 없다고 말하는 거야? 내 앞가림은 알아서 하니까 같잖은 걱정하지 마.”

“해외로 빼돌린 돈이 꽤 된다는 소문이 돌던데. 사실인가 보네.”

“글쎄. 그런 소문을 들어본 것도 같네. 하지만 난 모르는 일이야.”


벤이 미소를 지었다. 순진한 벤. 파이브는 속으로 작게 탄식했다.


“그럼 이 소문은 어때? 몰래 빼돌린 비자금을 FBI가 벌써 발견했고, 한푼도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서 회수했다던데.”

“하하하. 그럴 리 없어.”


벤이 과장되게 웃었다. 웃고 또 웃었다. 벤은 막다른 길로 몰리면 과장되게 행동한다. 초조함을 감추고 싶어서였다. 하하. 하하하. 하. 하하. 웃음 사이사이에 짧은 적막이 흘렀다. 다시 카페 안 손님들이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들 중에서 벤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누구보다 빠르게 정상에 올랐다가 한순간에 추락한 인물치고는 너무나 쉽게 잊혔다.


파이브는 모든 걸 잃은 남자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30년 가까이 히어로로 살아왔었다. 자기 얼굴이 찍힌 포스터가 불티나게 팔리고, 아침이면 집 앞에 팬이 구름처럼 몰려오는 삶을 살던 사람이었다.


가족도, 돈도, 명예도 잃었다.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볼만한 외형. 그리고 종말을 함께 경험한 일곱 명의 타인이 전부였다.


“네가 한동안 머물 장소를 구해놨어.”

“거기가 어딘데?”

“내 집.”

“꺼져.”

“직업 구하고 돈 모을 때까지 지내게 해줄게. 물론 넌 돈 한 푼 내지 않아도 괜찮아.”

“차라리 하수구로 기어가서 수백 마리 들쥐랑 지내는 게 낫겠어.”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긴 한데…”


파이브가 벤 얼굴로 무언가를 던졌다. 날아오는 물체에 대처하는 훈련은 스패로우 아카데미 시절에 수만 번 했었다. 벤은 이마로 다가오는 물건을 한 손으로 잡았다. 열쇠였다. 일반적인 열쇠보다 무거운 데다가 끝이 뾰족했다.


“미친놈. 이딴 걸 사람 얼굴에 던져?”

“그것도 못 막을 만큼 멍청하지는 않잖아.”


파이브가 카페 밖으로 나갔다. 벤에게 따라오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파이브 말대로 벤은 멍청하지 않았다. 파이브가 내놓은 먹음직한 제안을 거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손상된 자존심을 챙기느라 투덜거리기는 할 테지만 말이다.










스패로우 아카데미는 도심 한복판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집에서 살았었다. 그들에게 여러 건물을 뭉쳐놓은 집은 과시이자 상징이었다.


거대한 저택에 카메라가 들어와 스패로우 아카데미 일상을 촬영했던 적도 몇 번 있었다. 마커스는 공들여서 꾸민 체력훈련장과 대련실, 옥상 정원을 촬영팀에게 보여줬다.


촬영팀이 떠나고 난 뒤, 벤은 참아왔던 분노를 마커스에게 쏟아냈다.


“집까지 카메라를 끌고 와야겠어? 우린 정의를 지키는 사람들이야. 화면에 나와서 웃음거리가 되는 광대가 아니라고. 시람들이 알폰소가 피자조각을 한입에 먹는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겠어. 비웃기나 하겠지.”


마커스와 벤 옆에서 알폰소는 민망해하며 손에 든 콜라를 식탁에 내려놓았다.


“벤. 우리에겐 그게 필요해. 인간적인 친밀감.”

“친밀감은 쓸모없어.”

“아냐. 히어로에겐 그게 가장 중요해. 시민과 친밀감을 쌓아야만 해. 친밀감이 없다면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이 폭력에 불과해 보일 테니까. 특히 너한테는 친밀감이 아주 많이 필요해.”


마커스 손가락이 정확히 벤의 복부를 가리켰다. 흉측한 촉수가 나오는 곳이었다. 마커스와의 말다툼은 언제가 벤의 패배로 끝났다.


벤은 방으로 돌아가 콘테를 집었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벤은 그림을 그리고는 했다. 사생활마저 계산적으로 공개해야 하는 이 상황이 참을 수 없었다.


벤은 요원이 지내는 비밀스러운 요새를 그리기 시작했다. 창문을 모두 가린 두꺼운 암막커튼, 어두운 실내, 카우치에 앉아 시가를 피우는 고독한 한 남자. 벤은 그림자를 효과적으로 그리기 위해 고심했었다.



“상상과는 다르네.”


벤은 CIA 요원의 집을 둘러보았다. 거대하고 투박한 열쇠를 보고 생겼던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금방이라도 포근한 빵 냄새가 날 것 같은 집이었다. 커다란 창에서 따뜻한 햇빛이 들어왔다. 창밖에서는 잘 가꿔진 정원과 키가 큰 나무가 보였다.


“진짜 여기서 살아?”

“6년 전에 애들이랑 헤어진 직후부터 쭉 여기서 살았어.”

“소름 돋는 집인데.”

“어떤 점에서?”

“중산층 부부가 유치원 다니는 자식 한 명 데리고 살 법한 집이야. 매일 저녁에 식탁에 앉아서 손을 맞잡고는 식전 기도를 올리고, 주말에는 이웃들과 간단한 파티를 벌이는 집.”

”특징이 없는 전형적인 집이기는 하지.”

”그런 집에서 네가 살고 있다는 게 소름 돋는다고.”


파이브가 마치 이 집에 처음 온 것처럼 자기 집을 둘러보았다. 이 집은 파이브가 네 번의 종말을 경험한 뒤에 무엇을 갈망했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바로 지루할 정도로 평범한 일상이었다. 생존을 갈망하며 바퀴벌레를 먹지 않아도 되었고, 종말을 막으려고 도끼를 휘두르며 사람을 죽이지 않으며, 팔 한 쪽이 잘려나가지 않는 삶. 미운 가족들이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소식이나 가끔 전해듣는 삶 말이다.


벤은 2층에 위치한 손님방으로 향했다. 싱글 침대와 협탁, 라디에이터가 전부인 아담한 방이었다. 라디에이터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방 안 공기가 따뜻해지려면 한참이나 기다려야 할 것이다.


“더 필요한 게 있어?”


2층으로 올라온 파이브가 질문했다.


“없어. 어차피 내일 아침까지만 여기에 있을 거야.”

“더 오래 있어도 괜찮아.”

“생각해 볼게.”


벤이 어깨를 으쓱였다. 진심으로 내일 이곳을 떠날 생각이었다면 생각해 보겠다는 얌전한 답을 내놓지 않았을 것이다. 이딴 곳에서 하루도 살 수 없다면 날카로운 반응을 보여줬겠지. 적어도 일주일은 이곳에 머물 생각일 것이다.


벤이 2층 욕실에서 씻는 동안, 파이브는 냉장고를 확인했다. 신선한 채소나 과일이 있을 리가 없었다. 베이컨이나 햄도 없었다. 냉동된 너겟조차 없었다. 냉장고는 불빛을 반짝이며 작은 소음을 내는 차가운 빈 상자에 불과했다. 파이브가 집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경우가 없어서였다.


5년 전만 하더라도 유명하다는 식당에 찾아가서 음식을 먹고 감상평을 남기는 소소한 취미가 있었다. 딱 1년 동안은 재밌는 취미였다. 45년 동안 고생한 일을 보상받는 데에는 1년이면 충분했다.


1년이 지나자 파이브에게 식사는 몸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일에 불과해졌다. 이제 파이브에게는 진귀한 재료와 세심한 조화가 돋보이는 음식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었다.


파이브는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뒀던 수첩을 꺼냈다. 식당 평가를 적은 수첩이었다. 수첩에 기록한 식당 중에서 빠르게 배달이 가능한 식당을 고르기 시작했다.


“5년도 못 버텼다면 좋은 식당이 아니라는 뜻이겠지.”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눌렀다. 촌스럽지만 아기자기한 통화연결음이 들려왔다. 다행스럽게도 파이브가 별 네 개 반을 줬던 퓨전 태국음식점은 망하지 않았다.


벤이 샤워를 마치고 한참이나 지난 뒤에야 파이브가 주문한 음식이 배달왔다. 벤은 피곤해서 잠이나 자겠다고 말했지만, 포장상자에서 흘러나오는 맛있는 냄새가 홀려서 주방으로 들어왔다.


“파인애플볶음밥과 새우팟타이, 이건 만두네.”


벤이 긴 나무젓가락으로 하얀 종이상자 안에 담긴 새우팟타이를 휘저었다. 벤이 입은 옷은 루서가 이곳에 들렸을 때 입었던 옷이었다. 파란 셔츠는 물론이고 검은 트레이닝바지가 벤에게 맞을 리가 없었다. 벤은 셔츠 소매가 음식에 닿지 않도록 팔꿈치까지 접어 올렸다. 드러난 팔목을 보고 파이브가 눈살을 찌푸렸다.


“벤. 그 상처는 뭐야?”


파이브는 벤 왼팔에 길게 새긴 자상을 가리켰다. 스패로우 시절에 얻은 상처는 아니었다. 이 시간선으로 넘어오면서 남매들은 몸에 있던 상처는 모두 사라졌다.


“감옥에서 싸움이 벌어졌어.”

“또 네가 이유 없이 남한테 시비를 걸었겠지.”

“그 새끼가 먼저 시작했어. 나 때문에 모아뒀던 돈을 모두 날렸다면서 칼을 휘둘렀다고. 배짱이 티스푼만 한 녀석이었어. 눈을 감고 칼을 휘둘렀다고. 내가 팔로 막지 않았다면, 일주일 뒤에 출소하는 전직 소매치기의 목을 그을 뻔했다니까.”


영광의 상처야. 벤이 자랑스럽게 상처를 가리켰다.


“그냥 죗값을 받은 거네.”

“난 잘못한 게 없어. 내가 일부러 사람들한테 사기를 치고 다녔다면, 고작 4년 동안 감옥에서 살았겠어? 적어도 10년은 그 쓰레기장에서 갇혀있었겠지.”

“네가 좋은 변호사를 구해서 형량이 줄어든 거야. 그 변호사 덕분에 비교적 평화롭게 윤택한 교도소에서 지낼 수 있었잖아.”


벤에게 유능한 변호사를 구해준 사람이 바로 파이브였다. 의뢰인을 무죄로 풀려나게 하는 변호사는 아니었다. 의뢰인에게 좋은 방향으로 협상하는 걸로 유명한 자였다.


“내가 너한테 고맙다고 감사 인사라도 해야 해? 그 반대지. 그 변호사는 처음부터 나를 무죄로 풀려나게 할 생각이 없었다고.”

“벤. 네가 고의로 사람들을 기만하지 않았다는 건 알아. 네게 죄가 있다면 스패로비트는 과대평가했다는 거야. 그리고 별 볼 일 없는 동업자를 지나치게 신뢰했고.”

“대니 그 겁쟁이 자식. FBI가 우릴 조사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에 자기 몫의 스패로비트를 몽땅 처분하지만 않았어도, 스패로비트 값어치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지 않았어.”


벤은 동업자 대니의 배신이 마치 어제 일어난 일인 것처럼 화를 냈다.


FBI는 벤이 스패로비트를 실체보다 과장되게 표현하여 사람들을 속였다고 판단했다. 벤은 스패로비트가 얼마나 가치 있는 암호화폐인지를 입증하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한번 신뢰를 잃은 스패로비트는 가치를 회복하지 못했다. 벤은 FBI가 수사를 시작하기 전까지 스패로비트가 얼마나 가치 있었는지는 입증하려고 했지만, 그마저 실패했다.


“다들 멍청이야. 무엇이 가치 있는지 전혀 모른다고.”

“내가 볼 땐 너도 마찬가지야. 넌 암호화폐에 열을 올리며 살기에는 아까워.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을 해야지.”

“입 다물어. 꼬맹이 얼굴을 한 할아버지가 하는 설교는 듣고 싶지 않아.”

“알았어. 밥부터 먹자.“


벤이 새우가 끼워진 젓가락을 휘둘렀다. 배가 고팠었는지 벤은 벌써 팟타이를 반이나 해치웠다.


“다 식었는데도 맛있잖아. 면이 딱딱해지지도 않고, 짠맛이 강해지지도 않았어. 놀랍네. 근데 이 먹다 뱉은 것처럼 생긴 만두는 형편없어.”


파이브는 웃음을 터트렸다. 벤 말이 맞았다. 만두는 맛이 끔찍했다. 파이브는 수첩에 만두는 간이 안 맞고 질퍽한 식감을 가졌다는 평가를 남겼다. 악평을 쓰는데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형편없는 음식을 먹고도 웃음이 나온 적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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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파이브벤 종말 없는 시간선에서
한집에 살면서 싸우고 화해하고 또 싸우면서 재밌게 살고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