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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6 19:47
대공께서 북방의 경계를 살피러 떠나신지 열흘 만에 귀환하신다는 전갈이 왔어 메이저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기세였지
“유모 내 털옷 줘! 전하 마중 나갈래.”
“아기씨 진정하세요. 대공 전하께선 오후 늦게서야 당도하실 겁니다.”
그러니 기다리시는 동안 식사도 제대로 하시고 울지 마셔요. 아시겠지요? 작은 손을 꼭 잡고 유모가 말하자 메이저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어 그러면서도 시선은 계속 창밖을 향하였지
대공 전하는 언제 오셔? 아직 멀었대? 왜? 벌써 4시가 넘었는데? 전하랑 같이 저녁 먹을래. 이제 나가면 안 돼?
딱 오후 3시까지가 메이저의 인내심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이었나 봐 그 뒤론 어찌나 주변 사람들을 괴롭혀 대는지 성안에 모든 이들이 메이저를 달래느라 난리였지 유모는 그 모습에 대공의 귀환 소식을 일찍 알려준 걸 후회했어 매일 눈물로 지새우는 아기씨가 가여워 오늘은 제발 안 울길 바라면서 했던 말이 이런 결과를 가져올 줄이야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기세인 메이저를 어르고 달래 겨우 제시간에 맞춰 마중을 나갈 수 있었지 혹여나 아기씨가 감기에 걸릴세라 꽁꽁 싸매는 것도 잊지 않았어
“우.. 이거 불편해 유모.”
“아기씨 열감기 앓으신지 얼마 안 되셨잖아요. 답답해도 참으셔요.”
유모의 말에 삐죽 입술을 내민 메이저는 아닌척하면서 제 몸에 답답하게 감긴 숄을 죽죽 끌어내리다가 저만치서 멀리 북부 대공을 상징하는 깃발과 함께 등장한 귀환 행렬을 보고 다리를 동동 굴렸어
행렬의 선두에 선 대공님은 멀리서 보아도 멋져 보였지 검은 말 위에 검은 망토를 걸친 가장 크고 눈부신 사람
메이저는 그렇게 입을 헤- 벌리고 행렬이 도착하길 기다리다 마침내 말에서 내린 북부 대공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어 느슨하게 묶인 모피 숄이 흘러내린 것도 모른 채 말이야
“전하!”
“메이저, 잘 지냈나요?”
차가운 바람 냄새를 가득 머금고 온 대공의 몸짓은 다정하기 그지없었어 한참 작은 아이를 번쩍 안아들자
메이저는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지 잘 있었냐는 대공의 물음에 아이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크도 알아 털옷에 꽁꽁 싸맸으면서도 이렇게나 가벼운 걸 보면 또 식사는 거르고 징징 울어대며 주변 사람들을 괴롭혔겠지 하지만 굳이 언급하진 않았어
웃는 얼굴만 보기에도 아까운 아이인걸
작고 귀여운 나의 메이저
제국의 황제가 지는 해 라면 북부 대공은 뜨는 해라는 말이 있을 정로도 황제의 위세가 낮아지고 있었어
전통성 말곤 내세울 게 없던 자였으니 제국을 다스리기에 턱없이 부족하였지 그걸 가장 기민하게 알아차린 건 당연히 주변 국가들이라 외세의 압박이 심심찮게 가해지자 황제는 엄한 이들을 반란군으로 몰아세웠어 그중 하나가 메이저의 가문이었고 말이야
남부의 곡창지대를 다스리던 메이저 공작은 지위에 맞지 않게 소박하고 검소하여서 남부 백성들의 칭송이 자자하였는데 그것이 황제의 심기를 상하게 한 것일까
한순간에 반역자로 지목된 메이저 가문은 손쓸새도 없이 황제의 먹잇감이 되어 버렸지 아직 열 살이었던 메이저를 제외하고 모두 역모죄를 빌미로 죽임을 당했어
하루아침에 부모형제를 잃은 메이저가 충격에 빠져있을 틈도 없이 오메가 노예시장에 팔려질 신세가 되어버렸을 때 그 앞에 나타난 자가 바로 마크였지
선대에 맺어둔 정략혼을 명분으로 메이저를 데려가겠다고 하였어 사실 한참 늦게 태어난 메이저라 허울뿐인 약속이었기에 황제도 그 점은 염두에 두지 않았거든 그런데 알아서 북부로 물러간 조카가 친히 수도까지 방문하여 가문끼리의 약속을 지키게 해 달라잖아
부탁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이건 부드러운 명령에 가까웠어 이를 거절한다면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워질 수 있음을 황제 역시 모르지 않아서
결국 메이저를 넘겨줄 수밖에 없었을 거야
그렇게 마크의 자비로 북부 대공의 예비 대공비가 된 메이저였지만 북부에 온 뒤로 메이저는 말을 잃었어
목숨만 겨우 건진 열 살짜리 오메가가 가족을 잃고 낯선 환경에 놓였으니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린 거였지
멍하니 담요를 끌어안고 창밖만 바라보는 게 메이저의 하루 일과였는데 그런 아이 옆에서 마크는 묵묵히 곁을 지켜주었어 과묵한 성격 탓에 살갑게 대하는 법을 몰랐던 그라서 더욱 메이저가 쉽사리 마음을 열지 못하였는데 북부의 어느 추운 겨울날
앓아누운 메이저를 밤새 간호해 주었을 때 처음으로 메이저는 마크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하였지
배가 고프다고 말이야
우습게도 마크는 그 말에 사르르 녹아내렸어
꼬박 곁을 지켜준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도 없이 개미만 한 목소리로 배고파요..라고 했을 뿐인데 마크는 아주 기뻤지 일 년 만에 처음으로 한 말이었거든 메이저가 그것도 저에게 말이야 욕을 했어도 마크는 좋아했을 거야
그날부터였어 화사하게 미소 짓는 대공을 바라보며 메이저가 마음을 내어준 게
너무 많은 마음을 줘버린 걸까 이제 메이저는 마크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했어 이렇게 가끔 며칠씩 성을 비울 때마다 내내 눈물로 지새울 만큼 마크도 그 점이 곤란하였지만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할지 모르겠어 제 앞에서는 이렇게나 방긋 잘 웃는 아이인데 그저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바람을 가지고 있었지
그런 걱정도 모른 채 대공의 귀환으로 여느 때보다 화려한 저녁 만찬에서 메이저는 오랜만에 입안 가득 음식을 넣고 있었어 마크가 없을 땐 새 모이만큼만 먹어서 성의 사람들을 걱정시킬 땐 언제고 이제야 식욕이 돋나봐 못 말린다는 듯 바라보았지만 만찬 음식이 거의 다 메이저가 좋아하는 것들인 걸 보면 그들 역시 예비 대공비를 아끼는 게 보였지
그날 밤 통통하게 부른 배를 두들기면서 침대에 기대 있던 메이저는 불쑥 제방으로 찾아온 마크에 반색을 했어
“전하! 무슨 일이세요?”
“줄 게 있어서요. 메이저.”
선물 이란 말을 듣자마자 폴짝 뛰어와 안기는 메이저를 한 손으로 안아든 마크는 침대 끝으로 가 앉으며 정갈히 포장된 상자를 내밀었어 예쁜 포장지를 고른 보람도 없이 순식간에 파바박 포장지가 갈기갈기 찢어졌지만 마크는 그 모습이 꼭 강아지 같아 귀여웠지 상자 안엔 메이저만큼이나 앙증맞은 토끼 인형이 들어 있었어
“가던 길에 열린 장을 들렸는데 요즘 수도에서 유행하는 것이라 하더군요. 촉감이 부드러워서 메이저가 좋아할 것 같아 사 왔답니다.”
“치이.. 저도 이제 열다섯이라고요. 아기같이 인형을 가지고 놀 나이는 지났단 말이에요."
“.. 이런, 내가 미처 몰랐군요. 그럼 이 인형은 성에 어린아이에게나 줘야겠어요. ”
“으응. 안돼요. 저한테 준 것이잖아요! 가져가지 마세요!”
아기가 아니라며 삐죽거릴 땐 언제고 그럼 다른 이를 주겠다고 하자 잽싸게 인형을 품에 숨긴 메이저가 앙칼진 손길로 마크 손을 쳐냈어 이러니 대공이 보기엔 여전히 열 살짜리 어린애로 보인다는 걸 알까
미안한 척 다음엔 좀 더 어른스러운 선물을 사 오겠다 약속해 주니 메이저는 그제야 만족스레 웃으며 너른 가슴팍에 머리를 기댔지
—
“서부의 붕팔공작이 국경 경비 강화를 위해 군사 지원을 요청해왔습니다. ”
“.. 군사지원은 수도에다 요청할 일이지 북부에 요청을 해?”
“그게.. 수도의 군사들보단 북부 군사들의 전투력이 훨씬 뛰어나다며 간곡히 부탁해왔습니다.”
“참, 입만 살았군그래. 북부의 국경을 경계하기에도 모자란 군사들을 달라? ”
헛웃음을 짓는 대공을 바라보며 기사단장은 죽을 맛이었어 맡은 바 소임으로 협조문을 전달했을 뿐인데 서릿발 같은 대공의 분노를 왜 제가 감당해야 하냔 말이야 이럴 땐 그저 저는 대공 전하의 충직한 수하일 뿐입니다. 라며 바짝 엎드리는 게 답이었지
당장 거절하는 답신을 작성해 올리겠다 말하려던 찰나
대공의 가슴팍에서 불쑥 토끼가 튀어나왔어
아니 정말이야 토끼라니까
“서부...”
“메이저 말소리에 깬 건 가요? 미안해요.”
찬바람이 쌩쌩 불던 대공의 빰에 부드러운 토끼 인형이 스치자 그는 순식간에 상냥한 미소를 지었어
비몽사몽인채로 저를 바라보는 따끈한 아이가 못내 사랑스러웠지
오늘따라 대공 전하의 털 망토가 두둑하더라니 그 안에 예비 대공비께서 잠들어 계셨을 줄 누가 알았겠어
기사단장이 잠자코 아무것도 보지 못한 양 고개를 숙이고 있자 메이저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지
“유모가 서부에 봉봉 초콜릿이 맛있대요.. ”
“아- 그렇군요. 메이저도 먹어보고 싶어요?”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를 보자 마크는 그깟 군사지원쯤 거절할 이유가 사라졌지
살을 애는 추위와 싸우는 북방의 군사들이 잠시나마 서부에 간다면 그것도 일종의 보상이 될 수 있을 거야
가볍게 책상을 손가락으로 몇 번 두들기던 마크는 여전히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서있는 기사단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어
“공을 세운 자들과 어린 기사들 위주로 선발하도록 해. ”
“예. 알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집무실을 벗어나는 기사단장을 가만히 바라보다 둘만 남게 되었을 때 메이저는 와락 마크의 목을 끌어안았어
“또, 또오 서부에 장미수가 유명하다고 했어요. 레이스 숄도.”
“그래요. 잊지 않게 다 적어둬야겠어요.”
말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적어두자 메이저는 마크의 다정함이 좋아서 까르르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렸어
제 말 한마디에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말이야
북부의 기사들이 처음으로 북부에서 벗어나게 된 이유가 고작 예비 대공비의 봉봉 초콜릿 때문이었다는 건 기사단장만이 알고 있는 은밀한 내부 사정이 되었겠지
마크가 처음 메이저를 데려왔을 때만 해도 적당히 키워서 좋은 짝을 찾아주려 했는데 점점 욕심이 나 양심이 아파지는 중이고 메이저는 제가 대공비가 될 거란 건 것에 조금도 의심이 없는 그런거
행맨밥
파월풀먼
“유모 내 털옷 줘! 전하 마중 나갈래.”
“아기씨 진정하세요. 대공 전하께선 오후 늦게서야 당도하실 겁니다.”
그러니 기다리시는 동안 식사도 제대로 하시고 울지 마셔요. 아시겠지요? 작은 손을 꼭 잡고 유모가 말하자 메이저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어 그러면서도 시선은 계속 창밖을 향하였지
대공 전하는 언제 오셔? 아직 멀었대? 왜? 벌써 4시가 넘었는데? 전하랑 같이 저녁 먹을래. 이제 나가면 안 돼?
딱 오후 3시까지가 메이저의 인내심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이었나 봐 그 뒤론 어찌나 주변 사람들을 괴롭혀 대는지 성안에 모든 이들이 메이저를 달래느라 난리였지 유모는 그 모습에 대공의 귀환 소식을 일찍 알려준 걸 후회했어 매일 눈물로 지새우는 아기씨가 가여워 오늘은 제발 안 울길 바라면서 했던 말이 이런 결과를 가져올 줄이야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기세인 메이저를 어르고 달래 겨우 제시간에 맞춰 마중을 나갈 수 있었지 혹여나 아기씨가 감기에 걸릴세라 꽁꽁 싸매는 것도 잊지 않았어
“우.. 이거 불편해 유모.”
“아기씨 열감기 앓으신지 얼마 안 되셨잖아요. 답답해도 참으셔요.”
유모의 말에 삐죽 입술을 내민 메이저는 아닌척하면서 제 몸에 답답하게 감긴 숄을 죽죽 끌어내리다가 저만치서 멀리 북부 대공을 상징하는 깃발과 함께 등장한 귀환 행렬을 보고 다리를 동동 굴렸어
행렬의 선두에 선 대공님은 멀리서 보아도 멋져 보였지 검은 말 위에 검은 망토를 걸친 가장 크고 눈부신 사람
메이저는 그렇게 입을 헤- 벌리고 행렬이 도착하길 기다리다 마침내 말에서 내린 북부 대공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어 느슨하게 묶인 모피 숄이 흘러내린 것도 모른 채 말이야
“전하!”
“메이저, 잘 지냈나요?”
차가운 바람 냄새를 가득 머금고 온 대공의 몸짓은 다정하기 그지없었어 한참 작은 아이를 번쩍 안아들자
메이저는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지 잘 있었냐는 대공의 물음에 아이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크도 알아 털옷에 꽁꽁 싸맸으면서도 이렇게나 가벼운 걸 보면 또 식사는 거르고 징징 울어대며 주변 사람들을 괴롭혔겠지 하지만 굳이 언급하진 않았어
웃는 얼굴만 보기에도 아까운 아이인걸
작고 귀여운 나의 메이저
제국의 황제가 지는 해 라면 북부 대공은 뜨는 해라는 말이 있을 정로도 황제의 위세가 낮아지고 있었어
전통성 말곤 내세울 게 없던 자였으니 제국을 다스리기에 턱없이 부족하였지 그걸 가장 기민하게 알아차린 건 당연히 주변 국가들이라 외세의 압박이 심심찮게 가해지자 황제는 엄한 이들을 반란군으로 몰아세웠어 그중 하나가 메이저의 가문이었고 말이야
남부의 곡창지대를 다스리던 메이저 공작은 지위에 맞지 않게 소박하고 검소하여서 남부 백성들의 칭송이 자자하였는데 그것이 황제의 심기를 상하게 한 것일까
한순간에 반역자로 지목된 메이저 가문은 손쓸새도 없이 황제의 먹잇감이 되어 버렸지 아직 열 살이었던 메이저를 제외하고 모두 역모죄를 빌미로 죽임을 당했어
하루아침에 부모형제를 잃은 메이저가 충격에 빠져있을 틈도 없이 오메가 노예시장에 팔려질 신세가 되어버렸을 때 그 앞에 나타난 자가 바로 마크였지
선대에 맺어둔 정략혼을 명분으로 메이저를 데려가겠다고 하였어 사실 한참 늦게 태어난 메이저라 허울뿐인 약속이었기에 황제도 그 점은 염두에 두지 않았거든 그런데 알아서 북부로 물러간 조카가 친히 수도까지 방문하여 가문끼리의 약속을 지키게 해 달라잖아
부탁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이건 부드러운 명령에 가까웠어 이를 거절한다면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워질 수 있음을 황제 역시 모르지 않아서
결국 메이저를 넘겨줄 수밖에 없었을 거야
그렇게 마크의 자비로 북부 대공의 예비 대공비가 된 메이저였지만 북부에 온 뒤로 메이저는 말을 잃었어
목숨만 겨우 건진 열 살짜리 오메가가 가족을 잃고 낯선 환경에 놓였으니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린 거였지
멍하니 담요를 끌어안고 창밖만 바라보는 게 메이저의 하루 일과였는데 그런 아이 옆에서 마크는 묵묵히 곁을 지켜주었어 과묵한 성격 탓에 살갑게 대하는 법을 몰랐던 그라서 더욱 메이저가 쉽사리 마음을 열지 못하였는데 북부의 어느 추운 겨울날
앓아누운 메이저를 밤새 간호해 주었을 때 처음으로 메이저는 마크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하였지
배가 고프다고 말이야
우습게도 마크는 그 말에 사르르 녹아내렸어
꼬박 곁을 지켜준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도 없이 개미만 한 목소리로 배고파요..라고 했을 뿐인데 마크는 아주 기뻤지 일 년 만에 처음으로 한 말이었거든 메이저가 그것도 저에게 말이야 욕을 했어도 마크는 좋아했을 거야
그날부터였어 화사하게 미소 짓는 대공을 바라보며 메이저가 마음을 내어준 게
너무 많은 마음을 줘버린 걸까 이제 메이저는 마크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했어 이렇게 가끔 며칠씩 성을 비울 때마다 내내 눈물로 지새울 만큼 마크도 그 점이 곤란하였지만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할지 모르겠어 제 앞에서는 이렇게나 방긋 잘 웃는 아이인데 그저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바람을 가지고 있었지
그런 걱정도 모른 채 대공의 귀환으로 여느 때보다 화려한 저녁 만찬에서 메이저는 오랜만에 입안 가득 음식을 넣고 있었어 마크가 없을 땐 새 모이만큼만 먹어서 성의 사람들을 걱정시킬 땐 언제고 이제야 식욕이 돋나봐 못 말린다는 듯 바라보았지만 만찬 음식이 거의 다 메이저가 좋아하는 것들인 걸 보면 그들 역시 예비 대공비를 아끼는 게 보였지
그날 밤 통통하게 부른 배를 두들기면서 침대에 기대 있던 메이저는 불쑥 제방으로 찾아온 마크에 반색을 했어
“전하! 무슨 일이세요?”
“줄 게 있어서요. 메이저.”
선물 이란 말을 듣자마자 폴짝 뛰어와 안기는 메이저를 한 손으로 안아든 마크는 침대 끝으로 가 앉으며 정갈히 포장된 상자를 내밀었어 예쁜 포장지를 고른 보람도 없이 순식간에 파바박 포장지가 갈기갈기 찢어졌지만 마크는 그 모습이 꼭 강아지 같아 귀여웠지 상자 안엔 메이저만큼이나 앙증맞은 토끼 인형이 들어 있었어
“가던 길에 열린 장을 들렸는데 요즘 수도에서 유행하는 것이라 하더군요. 촉감이 부드러워서 메이저가 좋아할 것 같아 사 왔답니다.”
“치이.. 저도 이제 열다섯이라고요. 아기같이 인형을 가지고 놀 나이는 지났단 말이에요."
“.. 이런, 내가 미처 몰랐군요. 그럼 이 인형은 성에 어린아이에게나 줘야겠어요. ”
“으응. 안돼요. 저한테 준 것이잖아요! 가져가지 마세요!”
아기가 아니라며 삐죽거릴 땐 언제고 그럼 다른 이를 주겠다고 하자 잽싸게 인형을 품에 숨긴 메이저가 앙칼진 손길로 마크 손을 쳐냈어 이러니 대공이 보기엔 여전히 열 살짜리 어린애로 보인다는 걸 알까
미안한 척 다음엔 좀 더 어른스러운 선물을 사 오겠다 약속해 주니 메이저는 그제야 만족스레 웃으며 너른 가슴팍에 머리를 기댔지
—
“서부의 붕팔공작이 국경 경비 강화를 위해 군사 지원을 요청해왔습니다. ”
“.. 군사지원은 수도에다 요청할 일이지 북부에 요청을 해?”
“그게.. 수도의 군사들보단 북부 군사들의 전투력이 훨씬 뛰어나다며 간곡히 부탁해왔습니다.”
“참, 입만 살았군그래. 북부의 국경을 경계하기에도 모자란 군사들을 달라? ”
헛웃음을 짓는 대공을 바라보며 기사단장은 죽을 맛이었어 맡은 바 소임으로 협조문을 전달했을 뿐인데 서릿발 같은 대공의 분노를 왜 제가 감당해야 하냔 말이야 이럴 땐 그저 저는 대공 전하의 충직한 수하일 뿐입니다. 라며 바짝 엎드리는 게 답이었지
당장 거절하는 답신을 작성해 올리겠다 말하려던 찰나
대공의 가슴팍에서 불쑥 토끼가 튀어나왔어
아니 정말이야 토끼라니까
“서부...”
“메이저 말소리에 깬 건 가요? 미안해요.”
찬바람이 쌩쌩 불던 대공의 빰에 부드러운 토끼 인형이 스치자 그는 순식간에 상냥한 미소를 지었어
비몽사몽인채로 저를 바라보는 따끈한 아이가 못내 사랑스러웠지
오늘따라 대공 전하의 털 망토가 두둑하더라니 그 안에 예비 대공비께서 잠들어 계셨을 줄 누가 알았겠어
기사단장이 잠자코 아무것도 보지 못한 양 고개를 숙이고 있자 메이저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지
“유모가 서부에 봉봉 초콜릿이 맛있대요.. ”
“아- 그렇군요. 메이저도 먹어보고 싶어요?”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를 보자 마크는 그깟 군사지원쯤 거절할 이유가 사라졌지
살을 애는 추위와 싸우는 북방의 군사들이 잠시나마 서부에 간다면 그것도 일종의 보상이 될 수 있을 거야
가볍게 책상을 손가락으로 몇 번 두들기던 마크는 여전히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서있는 기사단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어
“공을 세운 자들과 어린 기사들 위주로 선발하도록 해. ”
“예. 알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집무실을 벗어나는 기사단장을 가만히 바라보다 둘만 남게 되었을 때 메이저는 와락 마크의 목을 끌어안았어
“또, 또오 서부에 장미수가 유명하다고 했어요. 레이스 숄도.”
“그래요. 잊지 않게 다 적어둬야겠어요.”
말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적어두자 메이저는 마크의 다정함이 좋아서 까르르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렸어
제 말 한마디에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말이야
북부의 기사들이 처음으로 북부에서 벗어나게 된 이유가 고작 예비 대공비의 봉봉 초콜릿 때문이었다는 건 기사단장만이 알고 있는 은밀한 내부 사정이 되었겠지
마크가 처음 메이저를 데려왔을 때만 해도 적당히 키워서 좋은 짝을 찾아주려 했는데 점점 욕심이 나 양심이 아파지는 중이고 메이저는 제가 대공비가 될 거란 건 것에 조금도 의심이 없는 그런거
행맨밥
파월풀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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