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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미안합니다...
항상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의인화ㅈㅇ + 개연성 없음 ㅈㅇ + 썰체 ㅈㅇ + 노잼 ㅈㅇ + 두서없음 ㅈㅇ 

꿈 속에서 너붕은 끊임없이 어두운 숲 속을 헤매고 있었어. 하지만 어째서인지 지금은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 수 없었고, 아까부터 계속해서 같은 장소를 돌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어. 그런 너붕의 뒤로 카를이 천천히 다가오고 그가 너붕의 어깨에 손을 얹은 직후, 시야가 암전되었어.

그 다음에는 마치 무작위로 영화의 일부분을 끊었다 틀어주는 것처럼 이상한 현상들이 반복되고 있었어. 너붕의 눈 앞에서 완전히 숨이 끊어진 스모크스크린을 붙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실성하기도 하고, 스모크스크린이 마지막으로 너붕에게 무엇인가를 전하려 했지만 결국 말하지 못한 채 눈앞에서 숨이 끊어지는 것을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하기도 했지. 심지어 옵티머스와 메가트론에게 첩자로 몰려 처형대에서 목이 잘려나가는 부분에서는 목 부분에 느껴지던 서늘한 칼날의 감촉이 여전히 남아있는 듯 했어.

그리고 그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끝날 때마다, 여전히 너붕은 어두운 숲 속을 달리고 있었어. 어디로 가야하는지 본능적으로 몸이 기억할 정도로 수도 없이 지나쳐온 길이었지. ...내가 그랬다고? 순간 너붕은 숲 한가운데에 멈춰서 숨을 몰아쉬며 하늘을 바라보았어. 별도 달도 보이지 않는 새까만 공허 뿐인 이 어둠 속에서, 너붕은 무엇인가를 기억해내야만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쳤어. 

하지만 어째서인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어. 그리고 어느 순간, 너붕은 숲속도 아닌 텅 빈 어두운 공간 안에 홀로 서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지. 스스로의 존재마저 부정당하는 이 적막한 공간 안에서, 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 이 공간 속에서 너붕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어. 나는 누구였지?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지? 왜? 이것은 누구의 기억이지? 

기억해 내야 한다는 절박한 위기감과는 달리, 천천히 너붕의 전신을 타고 좀먹는 어둠은 이내 너붕의 전신을 뒤덮었고, 그 감각에 저항하지 못한 채 무력하게 아래로 이끌리는 너붕은 또다시 그 밑으로 천천히 가라앉을 뿐이었어.

 
---***---

낯선 천장이다. 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도대체 얼마나 잠들어 있었던 것인지 목이 막혀서 처음으로 너붕이 내뱉은 것은 마른 기침 뿐이었지. 이제 막 눈꺼풀의 너머로 빛을 받아들인 동공이 천천히 주변의 환경에 적응하며 밝기를 조절해준 덕분에 이내 희뿌연 빛무리들 너머로 너붕은 주위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어. 확실히 너붕의 방 천장은 아니었지만 코 끝에 풍기는 약품들의 냄새와 서늘한 방 내부의 온도, 그리고 무엇보다 너붕의 몸 위로 가지런하게 덮여 있는 새하얗고 빳빳한 이불의 촉감 덕분에 이곳이 병원, 혹은 그에 준하는 처치를 하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을거야.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이 방 안에 있는 것은 너붕 혼자뿐인 모양인지 다른 이들의 숨소리도 들리지 않은 채 고요했지. 방 내부는 곳곳에 있는 램프들이 희미하게 빛을 밝히고 있었고, 창 밖은 여전히 새까만 어둠이 내려앉은 채였어. 일단 천천히 손을 들어 목을 더듬어본 뒤, 목과 몸이 분리되지 않은 것을 확인한 뒤에야 너붕은 마지막으로 자신이 기억하는 부분이 어디까지였는지를 더듬어보기 시작했을거야. 카를인가 뭔가 하는 속 시꺼먼 놈이랑 달밤에 술래잡기를 하다가 스모크스크린을 손에서 튀어나온 파란 불꽃으로 치료해준 것이 기억의 마지막이었지. 그리고 그런 너붕과 스모크스크린을 구하러 메가트론과 옵티머스가 찾아왔었는데...

'...봤을까?'

일단 이곳이 마법이 있는 세계라고는 하지만 그게 개에게 비스킷 던져주는 감각으로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너붕이 모르지는 않았거든. 심지어 거의 죽었던 사람을 살리는 수준이라면 더더욱 그럴테고. 물론 이런 대단한 능력이라니, 당장 마법사로 스카웃! 채용! 월급인상! 이러면 참 좋겠지만 어째서인지 너붕은 이 능력을 다른 사람에게 들켜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 그리고 특히 옵티머스와 메가트론에게는 더더욱. 

꿈자리가 사나웠던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너붕은 이 사실을 최대한의 최대한까지 숨겨야 한다고 다짐을 했어. ...물론 너붕이 스모크스크린을 저 멀리 삼도천에서부터 머리채를 끌어다 잡아둔 것을 봤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최대한 입을 다무는 것이 너붕의 생명줄 연장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라는 확신이 들었을거야. 그리고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너붕은 그제서야 마지막에 스모크스크린이 너붕에게 했던 행동과 말들을 떠올렸지. 그 순간 너붕은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베고 있던 베개를 주먹으로 갈기며 소리를 질렀어.

"아아아아악!!!!! 아니야!!!!!! 아니라고!!!!!"
"으아아아악!!!!!"

그리고 때마침 의사선생님으로 추정되는 분께서 들어오시던 중이었는지 죄없는 베개에게 죗값을 묻고 있는 너붕의 모습을 보고는 그대로 놀라 뒤로 넘어지고 말았어. 그 소리에 놀란 너붕은 그대로 침대에서 내려와 급하게 의사선생님을 부축해드리려 했지만 장시간 침대에 누워있느라 잠시 자신의 역할을 잊어버린 너붕의 다리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덕분에 너붕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어. 그렇게 바닥에 자빠지고 엎어진 두 사람은 잠깐의 침묵 끝에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암묵적인 합의라도 된 것마냥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었어.

"어, 큼. 일어났네. 몸은 좀 괜찮아?"
"아, 네... 아마도요."

대답을 하며 그제서야 너붕은 방 안에 들어온 이의 인상착의를 살펴볼 수 있었어. 제법 어두운 방 안에서도 눈에 띌 정도로 선명한 적발을 깔끔하게 뒤로 넘기고 전체적으로 적색에 가까운 배색의 제복을 차려입은 그는 외관으로만 보았을 때에는 의사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워 보였지. 하지만 이내 능숙하게 몸 이곳저곳을 살피며 상태를 확인하는 모습에 너붕은 이 사람이 이쪽의 의사라고 짐작할 수 있었을거야. 

"아, 그렇지. 이제 막 일어난 환자한테 미안하기는 한데, 나랑 좀 같이 가줘야 할 곳이 있어."
"저 이제 죽나요?"
"살려놓은 보람 없는 소리 할래? 뭐... 그 분위기를 생각하면 나도 죽는게 나을거 같긴 하다."

어딜 데려가길래 그런 소리를 하는거야. 하지만 일단 너붕은 눈앞의 의사가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며, 무엇보다 현재 너붕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가장 먼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유용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잠자코 그의 이야기를 따르기로 했어. ...그리고 분위기를 보아하니 너붕은 여전히 디셉티콘 측의 영지에 있다는 사실도 어렴풋이 눈치챌 수 있었거든. 물론 그런 일이 벌어졌는데 냉큼 우리들을 원래 영지로 보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을테니 어찌보면 당연한 처사이기도 할거야. 

"저기, 제가 얼마나 이러고 있었나요?"
"일주일이라고 하면 믿을거야?"
"...그정도까지는 아니죠?"
"응, 삼일정도. 죽은것처럼 자더라. 하마터면 메가트론 님한테 내 목이 날아갈 뻔했어. 어찌나 무섭게 사람을 갈구시던지."
"그... 선생님은 의사이신거죠?"
"이제 막 자리에서 일어난 환자치고는 눈치가 좀 있는데? 이름도 알려줄까?"

대충 알거같긴한데 예의상 물어봐 드려야지. 너붕이 고개를 조심스럽게 끄덕이자 그는 자신의 이름을 넉아웃이라 소개했어. 메가트론의 주치의라는 부가적인 설명이 따라붙었지. 처음으로 이곳에 와서 상대의 이름을 듣기 전에 맞췄다는 의미 없는 뿌듯함을 느끼며 너붕은 조심스럽게 바닥에 발을 내딛었어. 신발도 없는 맨발로 바닥을 딛으니 발바닥으로 서늘한 타일 바닥의 촉감이 그대로 느껴졌지. 그런 너붕에게 넉아웃은 마치 준비된 것처럼 갈아입을 옷을 자연스럽게 너붕의 품에 안겨주었고, 침대의 밑에 신발이 있으니 그걸 신으라는 이야기를 해주었지. 너붕이 의문을 표하는 듯한 얼굴로 넉아웃을 바라보자 그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어.

"설마 그 모습으로 복도를 걸으려던건 아니겠지? 이런 한밤중에 복도에서 마주치면 유령으로밖에 안보일걸?"

넉아웃의 말을 듣고 이리저리 몸을 더듬어보니 너붕은 지금 하얀색의 환자복과 같은 민무늬 원피스를 입고 있는 것이 옷차림의 전부였어. 오랫동안 자리에 누워있었을테니 머리는 산발일거고, 맨발로 복도를 돌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일테니까. 너붕이 멋쩍게 헝클어진 머리를 애써 손으로 쓸어넘기는 모습을 본 넉아웃은 밖에서 기다릴테니 준비가 되면 나오라는 이야기와 함께 병실을 빠져나갔어. 

넉아웃이 건네준 옷은 너붕이 챙겨온 근무복이나 외출복이 아닌, 딱 봐도 고급진 옷감으로 만들어진 옷이었어. 그나마 색이 너붕이 원래 입던 옷들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하며 너붕은 조심조심, 옷이 구겨지지 않게 몸을 밀어넣으며 침대 밑에 있다던 신발에 발을 구겨넣었지. 검은색의 메리제인 단화나 무릎까지 올라오는 가죽 부츠가 너붕이 이곳에 와서 신던 신발의 전부였는데 오랜만에 굽이 있는 신발을 신으려니 균형이 맞지 않아 이리저리 걸음이 조금 흔들리긴 했지만 곧 적응했을거야. 그리고 방 한켠에 마련된 거울을 보며 대충 흐트러진 머리를 손으로 빗어내린 뒤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어.

"다 됐어?"
"아, 네..."
"그럼 이거 받아. 하녀들이 옷 갈아입히면서 주웠다고 나한테 줬거든. 네거지?"

넉아웃은 너붕에게 무엇인가를 내밀었어. 작은 붉은 보석이 박힌 목걸이였지. ...저 소름끼치는 걸 용케도 잃어버리지 않았군. 뭐, 저것 덕분에 목숨을 구하긴 했으니까 감사하긴 한데... 찜찜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너붕은 그것을 두 손가락 끝으로 최대한 조심해서 집어들고는 주머니에 넣어버렸지. 
 
---***---

넉아웃을 따라가면서 너붕은 이런저런 궁금증을 일부 해소할 수 있었어. 일단 사냥제는 중단되었고, 숲에 남아있던 사용인들과 기사들은 전부 숲의 안쪽에 있던 인공 암반 근처에서 전부 잠든 상태로 발견되었다고 했지. 너붕이 두 번씩이나 머리를 공격한 카를인가 뭔가 하는 흐리멍텅한 서리태를 닮은 남성도 그대로 기절한 채여서 붙잡는 것에 성공은 했는데, 이쪽도 정신지배인가 뭔가 하는 마법에 당해서 이용당했을 뿐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지. ...그럼 나는 진짜 카를 씨의 뚝배기를 두번씩이나 깨버렸다는 소리로군. 하지만 위급상황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는걸! 너붕은 나중에 만나게 되면 사과부터 해야겠다고 속으로 되새기며 혹여나 카를 씨가 자신처럼 기억을 잃게 되지 않기를 기도드릴 뿐이었어.

"아, 그리고 스모크스크린이었나? 걔는..."
"으아아아아악!!!!!!!"

아까 전의 소동으로 간신히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그 이름을 들으니 다시 그 기억이 스물스물 기어올라와서 너붕은 거의 발작하듯이 그대로 복도의 벽에 머리를 박으려고 했을거야. 그런 너붕의 모습에 식겁한 넉아웃은 스모크스크린이 혹여라도 잘못되었을까봐 걱정하는 것으로 착각이라도 한 것인지, 금방 회복해서 오늘 낮에만 하더라도 너붕을 보고 갔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어.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너붕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지. 여기 BL 세계관 아니었어?... 왜 나한테 고백을 하냐고!... 아파서 제정신이 아니었을 때 나를 옵티머스로 착각한거 아니야? 아니, 내 이름까지 불렀잖아!...

그리고 그제서야 퍼뜩, 스모크스크린이 자신을 볼 때마다 얼굴을 붉혔다거나,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질문을 던졌을 때 말을 돌렸다던가 하던 행동들의 원인이 금새 짜맞춰지는 듯 했지. 아니, 아니... 말이 안되잖아, 보통 이런 작품에서 주인공은 너희들인데 왜 나한테... 이러면 마치 내가 주인공인 것 같잖아!... 그건 죽어도 싫어!... 이미 너붕은 이 작품이 로판 + 트랜스포머 + 의인화의 삼위일체로만 이루어진 혼종이 아니라 그 이면의 어두운 면들을 직접 몸으로 겪은 셈이었으니 더 이상 깊게 발을 담그게 되는 것은 사양이었어.

더군다나 조연이 아닌, 작품의 주인공이라면 항상 모든 사건의 중심이 될텐데, 현대도 아니고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마법같은 것들이 존재하는 이 혼란스러운 세계 속에서 너붕은 도무지 살아남을 자신이 없었거든. 하하, 사랑의 큐피드가 아니라 어장사업으로 직종변환이라니, 미친건가? 그리고 이정도까지 왔으면 아무리 둔감한 사람이라도 눈치챌 수밖에 없었을거야. 너붕의 그 능력이 대충 이 세계를 구할 수 있는 무엇인가와 연관이 되어 있고, 너붕은 이 세계의 남정네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서 그들과 함께 세계의 멸망을 막는다는... 정통 클리셰에 가까운 무엇인가를 진행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지.

그리고 그것이 너붕이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터였어. 이 세계에 떨어진지 약 반년이라는 시간 동안 작품의 장르를 착각해서 삽질을 해댄 것도 수치스러워 죽을 지경이었지만 그보다도 너붕을 미치게 하는 것은 플래그 잘못 꼽았다가는 서양사의 원형 왕실 족보보다도 더 난장판이 될것이 분명한 이 세계의 러브라인들 때문이었어. 스모크스크린이야 운이 좋아서 별다른 문제 없이 흘러갔다고 치는데, 이 세계의 멸망을 막으려면 결국 옵티머스랑 메가트론도 공략 대상이라는거겠지? 장난하냐? 이럴거면 뭐 다른 이세계물처럼 상태창이라도 주고 말하던가! 

애초에 저 인간들이 날 연애대상으로 보기나 하겠냐고!! 안쓰러운 동정심이나 애완광대 쯤으로 여기면 그것만이라도 감사하게 여겨야 할 지경인데!... 그렇게 너붕은 벽을 마주본 채 머리를 쥐어싸매다 그대로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아버렸고, 그런 모습을 옆에서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넉아웃은 그녀가 나무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친 적이 있다는 옵티머스의 이야기를 떠올렸어.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한 것 같은데... 이걸 데리고 들어가도 되는 것인지, 저런 모습을 보고도 자신의 주군이 책임을 묻지는 않을지에 대해 넉아웃은 한참을 고민해야 했을거야.
 
---***---

한동안 바닥에 엎드린 채 생각하는 바닥 시간을 가진 너붕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어. 그래, 이렇게 절망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러간다. 좌절하고 있을 시간은 없어. 공략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런거 없어도 충분히 세계의 멸망같은걸 막을 방법이 있다는걸 보여주지. 이상한 행동을 하며 좌절하고 있던 너붕이 갑자기 멀쩡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본 넉아웃은 너붕의 어깨를 붙잡은 채로 제발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입만 다물고 있어도 반은 갈거라며 진지한 얼굴로 너붕에게 조언을 해 주었어.

그렇게 조언해주지 않으셔도 그렇게 할 예정이었답니다. 하지만 감사히 받아들이도록 하죠. 너붕은 결의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어. 왜냐하면 넉아웃의 뒤를 졸졸 따르다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기 때문일거야. 화려하게 세공된 장식들이 붙어있는, 메가트론의 침실에 방문했을 때와 비슷한 디자인의 크고 무거워보이는 문이었어. 다만 다른 점을 굳이 찾아보자면 안으로 들어가면 안될 것 같다는 불길한 느낌이 그때의 한 몇백, 몇천배 정도는 된다는 것이겠지. 너붕의 불안한 표정을 직감한 것인지 넉아웃이 조심스럽게 속삭였어.

"나도 같이 들어가야하니까 불안하게 그런 표정 짓지마."
"함께 목숨을 바칠 수 있어서 영광이에요 선생님."
"나 애인이랑 올해 안으로 결혼식 올리기로 약속했거든? 멋대로 죽이지 말아줄래?"
"미리 축하드릴게요."

이 험한 세상 속에서 다행스럽게도 넌 제 짝이 있구나. 브레이크다운이랑 평생 백년해로하렴. 그때가 되기 전에 나는 제발 원래세계로 돌아갔으면 좋겠구나. 넉아웃은 다행스럽게도 너붕의 미리 축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을 뿐,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어. 그러더니 문을 두드리기 전, 마지막으로 너붕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을거야.

"가만히 있으라는 말, 빈말로 하는거 아니니까 꼭 새겨들어."

그리고 뒤이어 문이 열리고, 문 너머로 펼쳐지는 모습을 확인한 너붕은 지금 당장이라도 이 자리에서 혀를 깨문다던가, 창문을 깨고 뛰어내린다던가 하는 선택지를 고를 수 없음에 절망했을거야. 회의실처럼 크고 넓은 공간의 정 가운데에 놓인 커다란 원탁을 중심으로 그 주위에 옵티머스와 메가트론, 라쳇이 앉아있었어. 그리고 메가트론의 옆자리와 옵티머스와 메가트론을 마주볼 수 있는 자리 두 군데가 비어 있었는데, 넉아웃은 "그녀를 데려왔습니다. 메가트론 님." 이라고 태연자적하게 굴며 메가트론의 옆자리에 앉았기에 남은 한 자리가 너붕의 자리인 것은 누가 보더라도 뻔한 일이었지.

무표정으로 너붕을 바라보는 메가트론과 다소 불안해 보이는 옵티머스와 라쳇, 마지막으로 애써 너붕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한 넉아웃까지. 그리고 천천히 너붕의 뒤에서 닫히는 커다란 문소리와 함께 너붕은 두 눈을 질끈 감았어. 세계의 멸망보다도 우선 지금 이 상황에서 살아남는 것이 먼저일 듯 싶었지. 꼭 원래세계로 돌아가면 작가를 찾아내서 친히 응징을 가해주겠다고 다짐한 너붕은 크게 심호흡을 내뱉으며 깊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올렸어.

트포, 트포너붕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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