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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3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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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못 ㅈㅇ










스톤 하퍼는 어렸을 때부터 하라는 것만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는 것이 몸에 배인 그런 아이였다. 기억이 나는 순간부터 부모님과 하거나 혼자 하는 모든 일들에 규칙과 순서가 정해져 있었고 그러한 일상적인 루틴을 따르는 것이 마치 숨을 쉬듯 당연했다. 어렸을 적 집에 처음 놀러온 친구가 정리 시간, 씻는 시간, 책 읽는 시간, 밥 먹는 시간, 간식 시간 심지어는 물 먹는 시간까지 모두 정해져 있는 하퍼의 일상을 보고 기겁을 하며 도망치듯 집으로 가고 나서야 하퍼는 자신의 집안 분위기가 엄격하구나 하고 깨달았다. 하지만 어린 하퍼는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그런 일상이 너무나 편하게 느껴졌다. 지금까지도.
 
커가면서 하퍼를 아는 친구들은 입을 모아 "어떻게 그런 숨막히는 집에서 살 수 있어?" 하고 물었지만 하퍼는 오히려 친구들에게 되묻고 싶었다.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게나 살 수 있어?' 청소년기가 되자 하퍼와 친구들의 간극은 조금 더 벌어졌다. 그 나잇대 사내 아이들은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 무슨 숭고한 목표라도 되는듯이 굴었다. 학교의 규칙에 반항하고 숨어서 파티를 즐기며 술을 마시고.. 하면 안 되는 것들을 줄곧 해내는 아이들이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의 아랫도리 사정도 자유분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철없이 성적 판타지를 낄낄거리며 입밖으로 내뱉고 숨쉬듯 성적인 것을 유희거리로 삼으면서도, 정작 마음에 드는 사람 앞에서는 어쩔줄 모르는 풋내기처럼 식은땀을 흘리고 어떻게든 닿아보려고 안달내는 모순을 가졌다. 이성보다는 본능이 우선하는 동물의 왕국. 하퍼는 친구들과 곧잘 어울리며 웃으면서도 그런것들이 왜 좋은지 이해할 수 없었다.

친구들은 하퍼를 조금 유별난 아이로 특별 취급했다. 하퍼를 소개할 때면 수식어구가 따라 붙었다. '법 없이도 살' 스톤 하퍼. 선비같이 고고한 스톤 하퍼. '돌'부처 스톤 하퍼. 그무렵 좋아한다고 고백해오던 아이와 해치우듯 첫키스를 하면서도 맞닿은 입술의 첫 감상은 '축축하다.' 였다. 친구들이 황홀하다는듯이 떠들어대던 미사여구와는 전혀 먼 경험에 하퍼는 다소 실망하였다. 그 이후로도 하퍼는 딱히 오는 사람은 막지 않고 가는 사람은 붙잡지 않았다. 흐르면 흐르는대로 그게 하퍼의 연애 방식이었다.

그때의 하퍼를 알던 친구들이 요즘의 하퍼를 보면 아마 거의 기절할만큼 놀랄 것이다. 그러고는 내가 알던 돌부처 다 어딜갔냐며 짖궂게 농담을 던질 것이다. 가끔은 하퍼 자신조차도 변화에 깜짝깜짝 놀랄때가 있었다. 하퍼는 모든 상황에서 자신의 욕구를 적당하게 다스릴 줄 알았다. 하지만 코너 앞에서만은 어렸을 적 엄격한 집안 분위기와 그 혹독한 장교 훈련을 거쳐 지금껏 쌓아온 스톤 하퍼의 인내심과 자제심이 물 속에 들어간 솜사탕처럼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하퍼의 손이 닿는 대로 발갛게 자국이 나는 아내의 말랑한 피부와 비누 냄새가 나는 목덜미, 핥을수록 반짝이는 코너 손의 붉은 선들. 하퍼는 마치 청소년기로 돌아간듯이 코너의 모든 것에 '꼴렸'다. 코너가 낯선 쾌락에 짜증내고 발버둥치며 엉엉 울수록 정신을 더 다잡기가 힘들었다. 처음엔 옆에서 지쳐 잠든 코너를 보며 '스톤 하퍼 미친건가? 양심이 있으면 이러면 안되지.'하는 반성의 시간도 가졌지만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고 나자 에라 모르겠다 하고 변한 자신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까짓껏 양심 없는 변태 남편하지 뭐. 

















엄격한 하퍼의 집안에서 하퍼에게 유일하게 말랑한 감정을 가르쳐준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할머니였다. 하퍼가 열 살 때였나 할머니의 저택이 큰 공사를 하게 되어 아들인 하퍼의 집에서 여섯 달 정도를 머무르시게 되었다. 옷가지나 개인 짐들은 별 것 없이 단촐하게 가방 하나만을 들고 오셨지만, 주변의 반대에도 부득불 고집을 피우시고는 할머니의 집에 있던 피아노를 옮겨 함께 지낼 하퍼의 방에 놓으셨다. 그전까진 일 년에 몇 번 가족 모임에서만 만나서 하퍼는 할머니가 어떤 분인지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없었다. 그래서 할머니와 함께한 이 반 년은 어린 하퍼에게 낯선 감정들을 복합적으로 불러일으켰다.

하퍼는 그당시 여섯시 반으로 기상 시간이 정해져 있었는데 첫 날부터 시간에 맞춰 눈을 번쩍 뜬 하퍼를 품에 다시 끌어안고는 어렸을 땐 잠을 더 많이 자야한다며 등을 토닥였다. 어린 하퍼는 할머니의 품에서 '이래도 되나?'하고 처음으로 식은땀이 났다. 그 이후로도 계속된 할머니의 기상 방해에 하퍼는 곧 포기하고 할머니의 품에서 10분 동안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심장 소리를 듣다가 할머니의 숨이 고르게 되면 살살 빠져나오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그 후로도 할머니의 자유분방한 방해는 계속되었는데 씻는 시간에 목욕 놀이 용품을 가져와 하퍼를 홀려 목욕 시간을 무려 28분이나 늘어나게 했고, 책 읽는 시간에는 다람쥐가 주인공인 그림책을 읽다가 갑자기 도토리를 주워야 한다면서 하퍼의 손을 이끌고 떡갈나무 아래로 마구 달려갔다. 처음에는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이 너무나 불편했지만, 저질러 놓고 당황하는 어린 하퍼의 얼띤 얼굴을 보며 빵하고 터지는 유쾌한 할머니의 웃음소리를 들으면 어느샌가 하퍼도 할머니와 함께 깔깔거리며 웃게 되었다. 이렇게 규칙을 깨는 경험들을 난생 처음으로 하게 되면서 어린 하퍼는 점점 깨닫게 되었다. '아, 이래도 별 큰 일이 나지 않는구나.' 그리고 이러한 할머니와의 추억들은 하퍼가 무조건 규칙에 따라야 한다는 어떤 강박적인 마음을 조금은 편안하게 해주었다. 








이러한 자유로운 할머니에게도 하루에 정해져 있는 루틴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피아노치기였다. 매일 네시 반이 되면 할머니는 피아노 앞에 앉아 그날 그날의 마음이 담긴 곡들을 연주했다. 어떤 날은 쇼팽 어떤 날은 모차르트 또 어떤 날은 드뷔시. 하퍼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할머니의 연주를 지켜보자 할머니는 하퍼에게도 피아노를 연주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하퍼는 할머니에게 음악의 기초부터 차근 차근 배웠다. 할머니는 정말 좋은 선생님이었는데 하퍼가 어떤걸 물어봐도 척척 대답을 해주었고 물어봤던걸 또 물어봐도 즐겁다는 듯 콧노래를 부르며 다시 설명을 해주었다. 박자, 음표, 음계 등 할머니와 함께 건반을 하나 하나 눌러가며 피아노의 기초를 배운 하퍼는 매일 할머니와 곡들을 연주했다.

하퍼는 유독 하농을 가장 좋아하였는데 메트로눔의 박자에 맞게 규칙적으로 변화하는 음들을 눌러가는게 하퍼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하지만 악곡을 배워 나가며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부분들이 생겨났다. 악곡의 가장 위에 적혀 있는 빠르기를 나타내는 말과 악곡의 분위기를 나타내는 표현들이었다. p는 여리게 f는 세게... 머리로는 외울 수 있었지만 하퍼 스스로 표현하는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뭘 어떻게 '여리게' 치라는 건지 조금 여리게의 '조금'은 어느 정도가 '조금'인건지 하퍼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거기다 '느리게'며 '빠르게'며 이건 다 대체 뭔지 심지어 '걸음걸이 빠르기로' 라는 말도 있었다. 걸음걸이 속도가 어느 정도의 속도라는거야?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건 악곡의 분위기를 나타내는 표현들이었다. 대체 '사랑스럽게'며 '우아하게' '격정적으로' 피아노를 치라는 말이 무슨 말이란 말인가? 심지어는 '날으는듯이'라는 표현도 있었다!

인생 십년차 최대의 혼란을 마주하여 울상이 된 어린 하퍼에게 할머니는 눈을 맞추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야기해 주었다. 언젠가 이러한 감정들을 마음 속 깊이 경험하게 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이게 무언지 저절로 알게 될거라고. 다정한 손길에 눈물은 곧 그쳤지만 하퍼는 할머니의 말이 무슨말인지 또다시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런 사람을 만날때까지 피아노를 간직해 달라고 피아노를 하퍼에게 남기고 떠나셨다. 그렇지만 할머니가 떠나자 하퍼는 곧 피아노치기에 흥미가 떨어졌고, 할머니의 의도와는 달리 가끔씩 일이 안풀릴 때면 종종 하농을 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코너가 처음 하퍼의 집에 들어오게 되던 날, 하퍼조차도 너무나 당연해서 의식하지 못했던 피아노를 코너가 발견하고 눈빛으로 졸라 다소 쑥스럽게 피아노 앞에 앉았던 그날. 건반 앞에 함께 앉아 자신의 손에 코너의 손을 함께 얹고 부드럽게 손가락을 움직이던 그때 하퍼의 머릿속에는 잊고 있었던 할머니의 말씀이 다시 떠올랐다. 어릴때와는 달리 박자도 음정도 다 틀리고 제멋대로 뻗어가는 손길에 엉망진창인 연주였지만 어렸을 적 정말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악곡의 나타냄말들만은 잘 표현해낸 것 같았다. 옆에 앉은 코너의 잔잔한 녹색 눈을 바라보고 입맞추며 '사랑스럽고 우아하게 하늘을 날으는듯이'

















결혼식 전 둘은 세 번 밖에 만나지 않았지만 결혼식 준비로 이것저것 상의할 일이 있었다. 그럴때마다 시간을 맞춰 영상 통화를 몇 번 하곤 했다. 둘 다 큰 욕심이 없어서(시간이 없기도 했고) 결혼식은 대부분 양가 부모님의 뜻대로 진행되었는데 선심쓰듯 어느날 신혼 여행지는 둘이 상의하여 고르라고 해주셨다. 신혼 여행지를 상의하기 위해 한 첫 영상 통화에서 하퍼는 코너가 원하는 곳이 있다면 무조건 따르겠다고 하였지만 코너는 여행이라곤 학교에서 친구들과 잠깐 다녀온 트립이 전부였다고(이 말을 하는 코너의 얼굴이 조명 아래서 유독 말갛게 보여 하퍼는 괜히 손목을 만지작 거리게 되었다.) 자신은 잘 모르니 하퍼가 고르는 곳으로 가겠다고 하였다. 

며칠을 고민하다 하퍼는 신혼 여행지를 하와이로 가는게 어떻겠냐고 코너에게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하퍼에게는 훈련을 받고 정박을 하며 휴가때마다 가는 제 2의 고향 같은 곳이었지만 그렇기에 더 최적이라고 생각했다. 한참이나 어린 아내는 외국으로는 처음 여행을 가본다며 설레어하였는데 하퍼는 그 말에 더더욱 무거운 책임감 같은게 생겼다. 하퍼도 코너도 처음 가는 곳보다는 자신에게라도 익숙한 곳인게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몇 번이나 가보았기 때문에 코너에게 좋은 곳들만 엄선하여 소개시켜 줄 수 있지 않을까? 코너의 첫 해외여행, 그것도 남편과 함께 가는 신혼 여행이 아내에게 좋은 기억들로만 남았으면 했다. 신혼 여행지가 정해지고 하퍼는 매니저에게 호텔부터 식당 레저 유적 산책로까지 자신이 가본 곳 중 가장 예쁘고 좋았던 곳으로만 엄선해서 짠 스케줄을 전달하였다. 여기에는 하퍼뿐 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피 땀 눈물이 들어갔는데, 하퍼는 이주일 내내 쉬는 시간마다 신병들을 달달 볶아서 요즘 애들이 가는 핫한 곳들의 리스트를 받아내었다. 그리고 부함장과는 점심시간마다 심각하게 볼거리, 즐길거리, 유적지와 레저활동을 엄선하는 회의를 가졌다. 이동하기 편한 동선과 가는데 걸리는 시간, 하루에 하나씩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넣는 구성까지 알차게 고려하여 시간별로 완벽한 스케줄을 짠 하퍼는 매니저에게 예약을 다섯번 재확인한 후 신중하게 비행기에 올라 신혼 여행지로 향했다.

이제 막 결혼한 아내와 함께 도착한 하와이는 둘을 반겨주듯 유독 날씨도 좋았고 청량했다. 몇 번을 검토한 보람이 있는지 첫 스케줄부터 착착 진행이 되었는데 첫 날은 짐을 간단하게 풀고 미리 예약해 놓은 분위기 좋은 바에서 칵테일을 즐겼다. 칵테일 한 잔에 약간 얼굴이 달아오른 아내와 숙소로 돌아와 신혼 분위기로 꾸며놓은 침실에서 함께 (하퍼가 미리 요청해놓은 대로) 장미 목욕을 즐겼다. 코너를 끌어안고 행복하게 잠이 든 하퍼는 신혼 여행이 끝날 때까지 자신의 계획대로 잘 진행될 꿈에 부풀었다.

다음날 8시 반까지 아침 조식, 10분 이동 후 10시 12분까지 호텔 앞 바닷가에서 약간의 산책, 20분간 짐을 챙겨 11시 20분부터 맑은 바다에서 스노쿨링.. 다소 부은 얼굴로 하퍼의 계획을 말없이 따르던 아내는 점심을 먹은 후 골목 골목을 다니며 하와이의 역사를 소개하는 단체 투어에서 가이드의 말을 흥미롭게 듣고 있던 하퍼의 옷자락을 끌어당겨 목소리를 낮추곤 귓속말을 하였다. "혀보.. 우리 이거 쨀까요?" 생각지도 못한 아내의 말에 화들짝 놀란 하퍼의 손을 살살 잡아 끌며 코너는 슬금 슬금 뒤쪽으로 자연스럽게 빠지더니(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옆에 있던 골목으로 쏙 들어갔다. 그러고는 하퍼가 말릴 새도 없이 누가 쫓아오는양 갑자기 냅다 골목 끝으로 뛰어갔다. 하퍼는 어릴때의 그 언젠가처럼 식은땀이 났다. 아니 투어 후에 시장을 방문하고 로컬 시장 왼쪽에서 세번째에 있는 푸드 트럭에서 쉬림프 박스를 먹어야 하는데!(하퍼는 심지어 이것마저도 시간에 맞춰 예약해 놓았다.) 그렇지만 달리느라 벅찬 숨을 고르며 환하게 웃는 아내의 얼굴을 마주하자 하퍼는 바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무렴 어떤가 코너가 이렇게 웃는데.

아내는 와본 적도 없는 골목 골목을 지나 발길 닿는대로 씩씩하게 하퍼를 이끌었다. 그덕에 하와이를 여러번 와본 적이 있는 하퍼도 생전 처음 보는 풍경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는 학교를 지나치고 막다른 골목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짖는 강아지에 혼비백산 도망가기도 하고 갑자기 만난 터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하와이에?) 농락당하는 자신을 보며 깔깔대는 코너에 같이 웃음이 터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아저씨가 알려준대로 조금 더 걸어가자 신기하게도 몇 가족만 조용하게 즐기는 한적한 해변가가 나타났다. 수영복을 미처 챙겨오지 못했는데도 코너는 첨벙첨벙 맑은 바닷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옆에 있던 아이와 몇 마디를 나누더니 어느새 아이가 바닷가를 나가며 건네준 분홍 튜브를 타고 동동 떠서 "스톤!"하고 하퍼를 부르는 아내의 천진난만한 얼굴을 바라보며 하퍼는 모든 계획이 어그러진 지금이 무척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코너와 함께라서. 나는 내 인생에 불쑥 나타난 저 사람을 사랑하는구나.





















하퍼는 연말 기념 행사에 코너와 함께 참석해야만 했다. 결혼 후 처음으로 맞는 새해라 하퍼는 아내와 단둘이서만 특별하게 보내고 싶었는데 두 집안이 모두 얽혀 있는 행사라 어쩔수가 없었다. 그래도 새해 카운트 다운이 끝나고 나면 경치가 좋은 라운지 위의 호텔에서 코너와 오붓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특별히 좋은 룸을 예약하며 자신의 마음을 달랬다. 그리고 집에 단 둘이 있을때면 하퍼는 항상 무언가를 하느라 바쁜 아내에게 애절한 눈빛을 보내며 소파에서 코너가 할 일을 마칠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전부라 차라리 사람이 많은 곳으로 나오는게 좋기도 하였다. 코너는 유독 낯선 사람이 가득한 곳에서는 하퍼의 옷자락을 동앗줄처럼 부여잡고는 어미새를 따르는 뱁새처럼 하퍼만을 졸졸 따라 다녔다. 처음에는 화장실도 따라올 것처럼 구는 코너에게 좀 당황하였지만 이제는 아내가 세상 자기밖에 없을것처럼 구는 그 시간이 은근히 기대되기도 하였다. 이럴때면 코너는 하퍼가 등을 토닥이거나 팔을 쓸어내리거나 심지어 자켓 안쪽으로 손을 넣어 손 안에 쏙 들어오는 허리나 말랑한 배를 은근하게 만져도 순하게 다 받아주었기 때문에.

둘이 결혼한 후 열린 큰 규모의 파티였기 때문에 하퍼는 코너와 인사를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대부분 하퍼가 결혼 축하에 감사 인사를 하였고, 코너는 옆에서 언제나처럼 '순한 아내와 결혼하기를 잘했다'는 칭찬을 들으며 수줍게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러다 틈이 나서 둘은 잠시 한 쪽 구석으로 빠질 수 있었다. 하퍼는 신년 샴페인을 마시며 숨을 골랐고, 코너는 이제 막 시작한 관현악단의 연주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입구에서 떠들썩하게 나타난 무리가 있었다. 하퍼와 코너는 자연스럽게 소음을 동반하며 시선을 끄는 무리쪽으로 고개를 돌리게 되었다.

그 중 남들보다도 키가 한마디는 더 커서 눈길을 확 잡아끄는 사람이 있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키 뿐만이 아니라 옷차림도 매우 튀었다. 검은 정장과 얌전한 보타이로 격식 있게 차려입은 무리들 사이에서 무려 황금색 무늬의 정장을 입고는 매우 요상하지만 왠지 비쌀것처럼 보이는 하이탑 운동화를 신은 사람이었다. 훤칠한 외모에 연예인인가? 생각했지만 어딘지 경제면에서 본 듯한 사람이었다. 하퍼가 기억을 더듬어 내고 있던 그때 갑자기 옆에 있던 아내가 숨을 들이키며 하퍼의 손을 꾹 잡아왔다. 놀라서 코너를 내려다보자 자신을 차마 바라보지도 못하고 힐끗 살피며 눈치를 보는.. 처음보는 코너의 모습에 하퍼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새끼구나. 첫사랑.'



그리고 하퍼의 귓가에 어렸을 적 할머니가 해주시던 말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스톤, 아가야, tempestoso(템페스토소)는 격렬하게.. 마치 폭풍우가 치듯이 격정적으로 건반을 만져나간다는 말이란다. 이것도 나중에 온전하게 이해하게 될 날이 올거야." 



































겪을거 다 겪은 어른 중령님이 이제 막 스무살인 코너 만나서 생전 못겪어 본 감정을 처음 느끼게 되는.. 인생의 첫경험들이 코너뿐 만이 아닌 하퍼코너가 너무 좋음.
해피 뉴 이어.






















하퍼코너
루카스
슼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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