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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3 21:58
차에 기름 넣는 것 깜빡해서 그냥 걸어가기로 함. 거리도 썩 멀지 않으니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행맨도 알겠으니까 빨리 오라고 말하면서 전화 끊음. 비가 많이 와서 루스터 커다란 우산 하나 들고 나오겠지.

우산 위로 토도독 쏟아지는 빗줄기 소리에 맞춰 흥얼거리며 걷고 있는데, 처음 보는 카페가 있음. 오픈 기념으로 치즈 케이크를 1+1에 판매한다고? 선착순 한정판매? 따뜻한 커피랑 함께 먹으면 맛있겠네. 제이크도 좋아하겠지? 루스터 돌아오는 길에 살까 하다가 선착순이라는 말에 일단 카페 들어가서 냉큼 주문하겠지. 마침 몇 개 안 남아서 아슬아슬하게 치즈 케이크 살 수 있었음. 한 손으로 작은 케이크 상자 달랑달랑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우산 들고 있는 루스터. 행맨이 기뻐할 모습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져.

그렇게 걷다 보니 단골 꽃가게 주인이 어닝을 드르륵 펼치고 있는 게 보임. 녹슬어서 레버가 잘 안 돌아가는지 낑낑대고 있길래 루스터가 도와주러 가겠지. 어닝 펼치고 가게 주인이 고맙다고 꽃 몇 송이 줄 테니까 가져가라고 함. 루스터 괜찮다고 사양했지만, 시들어서 버려지는 것보다는 낫다며 장미꽃 몇 송이를 가져와. "요즘 제이크와는 어때? 잘 지내?" 꽃가게 주인의 말에 머쓱하게 웃으며 얼마 전에 약혼했다고 하니까 "세상에! 설마 그때 사간 꽃다발이?"라고 말하며 놀란 표정을 지어와. 그리고 주인은 축하 선물이라며 값비싼 꽃을 더 끼워서 줬지. 우산을 들기가 조금 버겁기는 했지만 여전히 기분은 좋은 루스터.

"미스터 브래드쇼!" 몇 걸음 걷지도 않아 그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면, 타코 트럭에서 한 남자가 손을 흔들고 있어. "와, 오래간만이네요." 루스터 놀라서 눈 휘둥그레 뜨겠지. 루스터랑 행맨이 데이트할 때 자주 갔던 타코 가게가 있는데, 거기서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남자거든. 사업을 하겠다며 일을 그만두고 한동안 안보이더니, 자기만의 타코 트럭을 운영하고 있나 봐. 매주 토요일에 여기 오니까 자주 이용해 달라며 서비스로 타코를 두 개 받았어. 루스터랑 행맨이 좋아하던 메뉴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 소스까지 알아서 착착 뿌려줬지.

제이크가 기뻐하겠다. 그런 생각하면서 타코가 담긴 비닐봉지를 팔에 걸고 걷는데 골목 한구석에서 미약하게 아기 울음소리 같은 게 나는 거야. 이렇게나 비가 많이 쏟아지는데? 아니, 설마 그럴 리가. 루스터 심장 덜컹해서 골목 안쪽 들여다보겠지. 다행히도 진짜 아기는 아니고 작은 아기 고양이가 울고 있는 거였음. 주위를 둘러보니까 어미는 보이지 않고 아기 고양이는 비에 젖어 축축하게 젖은 채 떨고 있었지.


한 편, 30분도 훨씬 지났는데 데리러 오겠다는 루스터는 오지 않아. 집에서 걸어오면 10분 정도밖에 안 될 텐데 어디서 대체 뭘 하는 거야? 느려터진 수탉이라고 그렇게나 욕했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느지막하게 오니까 행맨은 짜증이 나겠지. 전화를 걸어볼까 싶어서 폰 꺼낸 순간에 저쪽에서 "행이!"하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들어보니 어정쩡한 포즈의 루스터가 우산을 든 채 미소를 짓고 있었지. "너 왜 이렇게 늦게 와? 비 와서 추워 죽겠는데 뭐 하다가..." 행맨 거기까지 말하고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겠지. 한 손에는 웬 케이크 상자를 들고 있고, 주머니에서 삐죽 튀어나와 있는 것은 꽃다발이야. 팔에 걸린 봉투는 뭐지? 어? 오늘 무슨 기념일이었나? 행맨 머릿속으로 휘리릭 달력 확인하는데 딱히 떠오르는 건 없어.

그리고 그 순간 "야옹"하고 미약한 울음소리와 함께 루스터의 재킷 품 안에서 작은 아기 고양이가 얼굴을 내밀겠지. 루스터가 "어? 어어, 잠깐. 얌전히 있어. 거기서 움직이면 안 돼."하고 말하는데 행맨 그 광경에 기가 막히겠지. 우산 없으니까 마중 나오라고 했을 뿐인데, 그 10분도 안 되는 거리를 걸어오면서 대체 뭘 한 건가 싶음.

우산 건네받은 행맨이랑 비 오는 길거리 걸으면서 루스터가 설명해 주겠지. 하여간 타고난 친절함인지 오지랖인지 모르겠지만, 도중에 한 눈 팔고 딴짓한 것은 행맨이 생각하기에 조금 괘씸함. 물론 집에 돌아와서 따뜻한 커피에 치즈 케이크와 타코도 먹고 화병에 새로운 꽃도 꽂을 수 있어서 기분은 좋아졌지만 말이야. 아기 고양이 건에 대해서는 한참 이야기가 오갔고 임시보호하는 쪽으로 결정이 났음.

방금 목욕시킨 아기고양이 쓰다듬으며 커피 마시는 행맨 보고 루스터는 괜스레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끼겠지. 자신이 꿈꿔왔던 이상적인 '행복'의 모습에 가까운 풍경이었거든. 벽난로의 타닥거리는 불꽃 소리도 창밖으로 들려오는 빗줄기의 소리도 이렇게까지 평화로울 수 있을까? 루스터는 히죽거리면서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을 홀짝였어.


그리고 또다시 비 오는 어느 날, 창밖을 내다보던 행맨은 한숨을 푹 내쉴 거임. 저 멀리 노란 우비를 입은 채 어기적거리며 걸어오는 루스터가 보였거든. 또 어떤 모험을 즐기고 온 것인지 등에 매고 있는 가방이며 팔에 걸고 있는 비닐봉지며 뭔가 자잘하게 많아. 게다가 작고 새까만 무언가를 소중하게 품 안에 안고 있는데, 행맨은 그게 무엇인지 금방 눈치챘지. "비 오는 날만 되면 뭘 꼭 저렇게 주워오더라. 황새는 아기를 데려오고 수탉은 고양이를 데려오네. 너희 아빠도 참 특이한 사람이야." 행맨 투덜대며 루스터에게 건네줄 커다란 타올 꺼내옴. 그 등뒤로 소파에서 기지개를 켜는 고양이 두 마리가 행맨의 말에 대답하듯 "야옹"소리를 냈고, 곧이어 "자기야, 문 좀 열어줘!"하는 루스터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리겠지.



루스터행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