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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5 01:57
소설체 주의
중간중간 들어간 가사 및 가사 내용 출처는 Eartha Kitt - Santa baby
“-Come and trim my Christmas tree, with some decorations bought at Tiffany,”
달콤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평소처럼 다녀오셨냐는 다정한 인사 대신 나지막한 멜로디를 건넸다. 건넸다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자신의 연인, 반려, 영원한 사랑은 지금 자신이 돌아온 줄도 모르고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모형배 조립에 열심이었으니.
메이저가 모형배를 조립하느라 마크의 퇴근 시간을 깜빡하는 건 가끔 있는 일이기에 마크는 관대히 넘겨 주기로 했다. 자신이 돌아올 시간이라는 것조차 까맣게 잊을 만큼 집중한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는 재미도 있었으니까.
물론 고작 모형배 따위가 그의 주의와 관심을 독차지하는 것에 속이 뒤틀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메이저 메이저 메이저의 고요하고 진지한 얼굴을 가까이서 보기란 은근히 어려운 일이었기에. 특히나 그가 자신을 마주하고 있을 때는 더더욱 그랬다. 이 수줍음 많은 연인은 아직도 찌를 듯한, 혹은 타는 듯한 그의 시선을 받아 내기 버거워 수줍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돌려버리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크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높은 확률로 메이저가 덜 닫아서 열려 있는 것이 분명할 문틈으로 제 연인을 감상했다.
모형배를 만들 때 거슬리지 않도록, 그리고 브랜드와 가격을 아는 사람이 보면 까무라칠 지경으로 아무렇게나 말아 올린 네글리제 소맷자락 아래의 팔은 상아처럼 아름답다. 이 계절에 저런 차림을 해도 춥지 않을 만큼 저택의 난방에 신경을 썼더니 살짝 달아오른 뺨이 장밋빛이었다. 조립에 필요한 부품이나 도구를 찾으러 움직일 때마다 네글리제 자락이 사락이는 소리는 음악 같았다. 하루 종일 이 자리에 서서 보고 있더라도 질리지 않을 듯했다.
다만 예기치 못하게 마크 세러신의 심기를 거스른 것은 그의 사랑이 읊조린 노랫말이었다.
“Santa baby, so hurry down the chimney tonight….”
내 사랑,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지만 다른 남자의 방문을 기다린다고 말해서야 쓰나요.
“아, 마크? 언제 오셨어요?”
부러 소리를 내며 방문을 열자 메이저가 고개를 들었다. 마크를 향한 얼굴에 꽃처럼 웃음이 피었다. 길고 늘씬한 몸에 화사한 얼굴이 꼭 해바라기 같았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된 줄 몰랐어요, 미안해요.…”
미소도 잠시, 메이저는 웅얼웅얼 사과의 말을 늘어놓으며 다시 수선화처럼 고개를 숙였다. 마크는 별일 아니라는 양 만면에 웃음을 그리며 두 팔을 벌렸다. 그대로 성큼성큼 다가가자, 모형배 조각과 핀셋도 내려놓고 마주 안겨드는 메이저의 동작이 자연스러웠다.
“별일 없었나요, 내 사랑?”
고용인들부터 CCTV까지, 메이저를 향하는 눈과 귀는 셀 수도 없었지만-그래서 그에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마크는 굳이 물었다.
“그럼요. 마크는요?”
그야 그런 것들은 이런 달콤한 물음을 되돌려주지 않으니까.
품 안의 연인이 눈을 마주하며 답했다. 신장은 엇비슷했지만 늘 움츠러들고 고개를 숙이며 지냈던 탓일까, 메이저는 항상 올려다보듯 동그랗게 뜬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마크는 그 보드라운 뺨과 눈가를 가만가만 쓰다듬으며 답했다.
“열심히 일했답니다. 메이저가 갖고 싶은 걸 다 선물하려면 돈이 아주 많아야 할 테니까요.”
“네… 네?”
목소리에 밴 웃음기가 짙었지만, 그럼에도 사랑스러운 연인은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다. 커다란 눈이 분주히 깜빡였다. 의아함, 당혹감. 그리고 불안함.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자신이 뭔가 말실수를 하지 않았나 싶고, 그래서 미움받으면 어쩌나 하는. 그 모든 사고와 감정의 흐름이 고스란히 읽히는 푸른 눈동자에 마크는 느긋이 설명을 덧붙였다.
“흑담비 모피, 컨버터블, 요트… 메이저,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고 싶은 게 많은 것 같던데요?”
방금 전까지 흥얼거린 가사를 그대로 읊어 주었는데도 한 번 더 곱씹어 본 뒤에야 생각이 났다는 듯, 커다란 눈이 뒤늦게 더욱 커다래졌다. 마크의 등에 팔을 두르고 있지 않았다면 두 손까지 내저었을 기세로 격렬하게 고개를 저으며 메이저가 말했다.
“그, 그, 그건…! 노, 노래 가사예요! 오늘 모형배 만들 때 듣던 라디오에서 나와서… 곡이 좋아서….”
사실 마크도 몇 번 들어 본 적 있는 노래였다. 그저 내가 없는 사이 다른 남자를 찾다니, 하는 작은 심술이었을 뿐.
그래, 다이아몬드로 꾸민 트리도 그럴싸하겠지. 다만 트리 꼭대기의 별은 사파이어가 좋을 것 같다. 그의 눈동자만큼이나 짙고 푸른 것으로.
그러고 보면 라이트 블루의 컨버터블은 메이저에게 제법 어울릴 것도 같다. 밝은 햇살 아래 보는 그의 눈동자 빛깔을 닮은 차에 그가 타고 있으면 아름답겠지. 물론 메이저는 운전을 할 줄 모르고 자신은 메이저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타인의 눈과 손을 타게 할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쌀쌀한 계절이니 모피를 둘러 주어도 좋겠다. 이 또한 메이저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찬 바람을 맞힐 생각이 없으니 사실상 무용하겠지만 검은 모피라면 하얀 피부와도 잘 어울리리라.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몸에 흑담비 모피를 둘러 주면, 혹은 그 위에 눕히면….
“…….”
마크는 마르는 입을 혀로 축였다.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멀게 들렸지만 반쯤은 못 들은 척했다. ‘작은 심술’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나머지 반은, 그의 머릿속에서 메이저의 목소리를 덧입고 흐르는 노래를 감상 중인 탓이었다.
요트도 제법 괜찮다. 무엇보다 단둘이 탈 수 있다는 점이. 짭짤하고 비릿한 바닷바람, 어두운 밤 실내등 불빛에 비친 당신의 눈동자를 닮은 감색 바다,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과 당신의 웃음. 평지에서도 때로 넘어지곤 하는 당신이라면 흔들리는 배 위는 조금 모험일까. 당신이 넘어지기도 전에 내가 당신을 단단히 안고 있겠지만. ‘메이저, 바닷바람은 습하고 차가워요.’
“마크?”
조용해진 마크의 눈치를 보며, 메이저가 다시금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마크는 머릿속 주크박스의 볼륨을 조금 낮추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메이저의 눈을 마주했다.
“뭐든 말해요. 뭐든 안겨 줄 테니까.”
“네?”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로 뭘 받고 싶은지.”
산타 따위보다 내가 먼저 당신에게 선물하면 그만이니까. 마크는 춤을 추듯 메이저를 안은 채 소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예 자리를 잡고 대화를 나눌 요량이었다.
“노래에 나온 걸 전부 받고 싶다면 그래도 돼요.”
소파는 장정 한 명이 누워도 될 만큼 충분히 길고 넓었지만 두 사람이 차지한 자리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마크는 소파의 한가운데, 메이저는 그런 그의 무릎 위에. 눈높이가 살짝 높아진 연인을 숭배하듯 올려다보며 마크가 답을 종용했다.
“내 사랑, 말해 주지 않으면 나는 또 내가 주고 싶은 걸 주게 될 거예요.”
“어... 상관없는데요? 전 마크가 주시는 거라면 뭐든 기쁠 테니까….”
듣기 좋은 말로 환심을 사겠다는 계산 따윈 없는 맹한 얼굴이 마크를 내려다보았다. 오, 제발. 이런 달콤한 대답을 계속 듣다간 귀가 멀어버릴지도 몰라. 마크는 네글리제 사이로 드러난 메이저의 맨가슴에 얼굴을 묻고 환희에 몸을 떨었다. 그런 그의 뒷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으며 메이저가 말을 이었다.
“그냥… 곁에 있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마크가 고개를 들었다. 지금 그는 제 연인과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멍하니 메이저를 바라보기만 했다.
가까이에서 눈을 마주하자 뒤늦게 수줍어진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메이저가 말을 이었다.
“요즘 연말이라고 마크가 늘 바쁘셨으니까… 바쁘시다는 건 알지만! 제, 제가 또, 처, 철없는 소릴 했지만…! 마크는 지금도 산타 같은걸요.”
제법 그럴싸한 비유를 했다고 생각하는지 메이저가 배시시 웃었다.
세간에서 마크 세러신을 바라보는 시선은 산타보다는 공주를 납치해 감금한 사악한 용에 가깝겠지만, 그들이 어떻게 보든 무슨 상관인가. 애초에 ‘공주’의 진가조차 알지 못한 자들 따위가 대수인가. 메이저 메이저 메이저가 자신을 산타라고 부르는데.
“저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도 늘 저한테 필요한 걸 챙겨 주시고… 부족한 절 이렇게까지 도와주시고…”
“또요?”
“네?”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요. 내가 당신에게 주는 게 그것만 있지는 않잖아요, 내 사랑.”
힌트를 주듯 덧붙인 호칭에 메이저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아아, 여전히 그리고 언제나. 당신은 처음처럼 수줍고 사랑스러워서.
“…사랑해 주셔서… 더 뭔가 필요할 것 같지가 않아요.”
당신이 내게 사랑을 말할 때면, 얼마나 가슴이 벅차는지.
“그럼 마크는요? 마크는 무슨 선물이 받고 싶으세요?”
마크 세러신은 이제야 알았다. 이미 자신은 귀도 멀고 눈도 멀어버려서, 메이저 메이저 메이저가 아니면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는 걸.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듯 메이저를 안은 팔에 힘을 주며 마크가 답했다.
“내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당신의 모습 자체가 선물이랍니다. 내 사랑.”
“그,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메이저가 눈살을 찌푸렸다. 거의 동시에 얇은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토라진 어린애 같은, 그가 아직 군에 적을 두고 있던 시절 종종 볼 수 있었던 얼굴이었다. 하기 싫은 일, 납득할 수 없는 지시를 맞닥뜨렸을 때의 불만스러운 표정. 그 표정이 사랑스러운 것과는 별개로 그 시절을 생각하면 마크는 아직도 눈앞이 까매지는 것만 같았다.
그때야 어찌 됐든, 지금 당신은 내 품 안에 있으니. 마크는 골이 난 그를-그리고 자기 자신을 달래듯, 조금 전의 거친 고갯짓으로 흐트러진 메이저의 머리카락을 가만가만 쓸어 넘겼다.
“당신과 똑같죠. 그나저나 당신 눈에 내가 산타 같다면 이번 크리스마스 이브엔 굴뚝으로 들어와야겠네요.”
“그, 그건 좀 위험하지 않을까요? 전 그런 뜻이 아니라….”
마크는 드물게 그늘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머릿속 메이저의 노랫소리도 덩달아 커졌다.
one little thing, a ring. 흐르는 가사에 맞추어 메이저의 왼손을 잡아 반지 위에 입을 맞추었다. 뚜아 에 무아 스타일의 반지가 긴 약지에서 빛났다. 메이저의 눈을 닮은 사파이어와 자신의 눈을 닮은 에메랄드를 맞물리게 한 형태였다. 언제 어디서든 그를 바라볼 수 있도록.
이건 프로포즈용 반지였으니 웨딩 밴드를 별도로 맞출까, 아니면 비슷한 크기에 다른 디자인을 오른손 약지에도 끼워 줄까….
“참, 식사하셔야죠. 마크?”
Santa cutie, and fill my stocking with…
말과 노래가 겹쳤다. 머릿속 메이저가, 아니, 마크 세러신의 생각이 정지했다.
***
크리스마스 이브, 함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한 뒤 오랜만의 밤 산책까지 즐긴 세러신 부부가 저택에 들어섰다. 기다렸다는 듯 괘종시계가 자정을 알렸다. 크리스마스였다.
“메리 크리스마스, 메이저.”
“메리 크리스마스, 마크.”
집 곳곳에는 겨우살이 다발이 장식되어 있어, 어디든 ‘겨우살이 아래’인 셈이었다. 마크와 메이저는 오늘만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을 크리스마스 인사와 키스를 주고받으며 방으로 향했다.
“그럼 내 사랑, 좀 늦었지만 씻고 올래요? 날이 추웠으니 몸도 덥힐 겸해서.”
“네에….”
어쩐지 대답이 미적지근했다. 그 안에 든 아주 미미한 불순응을 눈치챈 마크가 물었다. 뭐가 문젤까, 뭐가 불만일까. 당신이 내 말을 거부하려 하다니.
“많이 피곤해요? 씻기 싫어요?”
“저, 저 그렇게 더러운 사람 아닌데요…!”
메이저가 궁색하게 항변했다. 그 말에 마크의 굳었던 얼굴도 그만 살짝 풀리고 말았다. 뺨이며 코끝, 귀끝이 아직도 발간데, 역시 밖에 데리고 나가지 말 걸 그랬다. 가만히 두지 못하고 만지작거리고 있는 저 손이야 장갑을 끼우고 내내 맞잡고 있었기에 식지 않았지만….
“…그, 다른 게 아니고… 제가 절대로 해 달라는 게 아니고요….”
“네, 듣고 있어요.”
마크는 아직도 벗지 않은 메이저의 코트를 손수 벗기며 끈기 있게 기다렸다. 고개를 숙인 메이저가 눈만 치켜떠 마크를 올려다보았다.
“…다른 때는, 같이 씻자고 하셨으니까… 아니, 아니! 마크도 피곤하실 테니까, 씻는 건 혼자서도 할 수 있고요! 아니다, 그럼 제가 마크를…? 마크?”
마크는 들고 있던 메이저의 코트에 얼굴을 묻었다. 지금 제 얼굴이 가관도 아닐 것 같아서였다.
그대가 원한다면야 코트만이 아니라 오랜만에 걸친 이 셔츠와 바지도 벗긴 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손으로 씻길 수 있지만. 그랬다간 씻는 걸로만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마크는 심호흡하며 코트에 배어 있는 겨울의 공기와 메이저의 체향을 들이마셨다.
제 사랑은 그날의 대화 그대로 ‘곁에 있어 주는 것’으로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하겠지만, 마크가 오늘을 위해 준비한 것은 따로 있으니까.
“마크?”
걱정스러운 부름과 함께 제 어깨를 잡는 손이 느껴졌다. 마크는 마지막으로 한번 더 깊이 숨을 들이쉰 뒤 표정을 가다듬고 고개를 들었다.
“얼마든지요. 내가 당신을 씻기든, 당신이 나를 씻기든. 그런데 오늘 밤은-”
할 일이 있어서. 걸음을 내디뎌 둘 사이의 거리를 좁힌 마크가 메이저의 귓가에 속삭였다. 더운 숨결이 스친 귓가를 감싸며 메이저가 화다닥 물러났다. 넘어지지 않게 재빨리 허리에 팔을 두른 마크가 덧붙였다.
“이따 침실에서 봐요, 내 사랑.”
***
침실로 들어선 마크가 가장 먼저 본 것은 침대 위에 엎드리다시피 한 뒷모습이었다. 네글리제 차림의 메이저가 침대 위를 정돈하고 있었다. 허리끈을 조여 강조된 날씬한 허리며, 몸을 숙이자 끌려 올라간 네글리제 자락 아래의 희고 긴 다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마크는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었다.
“마크? …어, 우왓?!”
그 소리에 몸을 일으키며 뒤를 돌아보던 메이저가, 그만 균형을 잃고 침대 위로 나동그라졌다. 마크는 메이저의 아무렇게나 내뻗어진 다리와 함께 벌어진 네글리제 자락을 참을성 있게 여며 준 뒤 그를 일으켜 앉혔다. 그런 뒤 제 나이트가운 주머니에 든 것을 꺼내 내밀었다. 어리둥절함과 당황이 섞인 푸른 눈빛이 선물 상자와 마크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선물이… 있었어요?”
“내가 크리스마스를 그냥 지나칠 나쁜 남편 같나요?”
“그, 그런 게 아니고… 저는 그냥 오늘 마크랑 데이트한 그게 그건 줄….”
역시나, 메이저의 대답은 마크의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의 생각도 발언도 행동도 모습도, 전부 제 손 안이라는 사실에 마크는 가히 쾌락에 가까운 충족감을 느꼈다.
배부른 짐승처럼 웃으며 마크가 답했다.
“그것도 이것도 선물이랍니다. 열어 볼래요?”
메이저는 다소 성의 없이-물론 이 상자와 리본의 재질 및 가격을 안다면 할 수 없을 말이지만-리본으로만 뚜껑을 고정한 상자를 받아 들었다. 열린 상자 안에는 곱게 개켜진 실크 스타킹이 담겨 있었다.
“양말 대신 스타킹이에요? 트리에 걸어 둬야 하나….”
메이저는 놀라지도 실망하지도 않고 킥킥 웃으며 스타킹을 꺼내 들고 살폈다. 이게 다가 아닐 거라는 기대나 예상 때문이라기보단 아이나 동물처럼 눈앞의 대상에 호기심을 보이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마크 세러신은 당연히 그 정도로 끝낼 이가 아니었다.
보드라운 스타킹이 안에 든 것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메이저의 손바닥 위에서 미끄러져 톡, 시트 위로 떨어졌다.
“어? 뭐가 들어 있네요?”
“네, 그것까지 꺼내서 열어 보란 뜻이었어요.”
딱 반지 케이스 정도로 조그마한 티파니 블루의 상자가 스타킹 안에 들어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고작 반지가 아니라 가사대로 트리를 다이아몬드로 꾸미고 싶었던 마크였다. 메이저가 자신은 전통적인 오너먼트가 좋다며 기겁해 만류하는 바람에 포기해야 했지만.
메이저는 이번에도 서슴없이 네글리제 소매를 걷어 올리곤 스타킹 안으로 팔을 넣었다. 어, 하는 짧은 탄성이 들렸다. 손을 넣고 보니 생각 이상으로 얇고 올이 고운 스타킹이라, 혹여라도 제 어설픈 손길에 상할까 걱정이었는지 메이저의 손길은 조심스럽고 또 느렸다. 가히 투명하기까지 한 스타킹이 천천히 흰 팔을 감쌌다. 실크 특유의 윤기가 팔을 타고 흘렀다. 마크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반지…케이스예요? 마크, 저 반지는 이미 있는데…”
신중한 손길로 마침내 상자를 꺼내서 개봉하는 데까지 성공한 메이저가 물었다. 그럼요, 잘 알죠. 오늘 하루 종일 그 왼손에서 빛났는데. 마크는 흡족하게 웃으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냥 웨딩 밴드예요. 프로포즈링과 같이 끼면 돼요.”
이리 줘요. 내가 끼워 줄게요. 마크가 나지막하게 덧붙였다. 마치 청혼받던 날처럼 수줍고도 순순히, 메이저가 반지 케이스를 쥔 손을 내밀었다. 그 손에서 케이스를 받아 가는 마크의 가슴속이 만족감으로 가득 찼다.
마크는 우선 메이저가 잠자리에 들 때조차-정확히는 침대에서 마크가 손수 빼 주기 전까지-끼고 있는 에메랄드와 사파이어 반지를 빼냈다. 마른 손가락에 남은 반지 자국을 엄지로 덧그린 마크가 백금과 다이아몬드, 사파이어가 빙 둘러진 웨딩 밴드를 메이저의 왼손 약지에 끼워 주었고, 그 위로 다시 프로포즈링을 끼웠다. 일련의 과정은 신성한 의식처럼 고요했다.
쪽, 마크의 입술이 한 쌍의 반지 위로 내려앉았다. 반지에서 시작해 도드라진 뼈마디를 타고 손등까지 올라온 입술이 중얼거렸다.
“이러니까 다시 청혼하는 것 같네요.”
“아하하….”
열기 어린 숨과 입술이 손등을 간질이자 메이저가 나지막이 웃었다. 그 웃음 앞에서 마크 또한 저항 없이 웃음 지었다.
그리고 오늘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 꼭대기의 별처럼.
여전히 메이저의 손등에 제 입술을 붙인 채, 마크는 제 낯빛이며 목소리에 짙게 밴 기대감과 흥분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 스타킹까지가 선물이에요, 내 사랑. 그러니 오늘 밤 그걸 신어 줄래요?”
그게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이랍니다. 메이저가 절대 거절할 수 없는 말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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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무슨 캐롤 듣다 급발진해서 뇌내무순쓰는 사람 되어버림... 결국 반지랑 실크스타킹만 입은 메이저랑 밤새 잣죽쒔을듯 그나마도 스타킹은 도중에 찢어졌을거같고
자정 넘어갔으니 크리스마스다 맨밥들도 메리크리스마스...!
행맨밥
마크메이저
중간중간 들어간 가사 및 가사 내용 출처는 Eartha Kitt - Santa baby
“-Come and trim my Christmas tree, with some decorations bought at Tiffany,”
달콤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평소처럼 다녀오셨냐는 다정한 인사 대신 나지막한 멜로디를 건넸다. 건넸다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자신의 연인, 반려, 영원한 사랑은 지금 자신이 돌아온 줄도 모르고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모형배 조립에 열심이었으니.
메이저가 모형배를 조립하느라 마크의 퇴근 시간을 깜빡하는 건 가끔 있는 일이기에 마크는 관대히 넘겨 주기로 했다. 자신이 돌아올 시간이라는 것조차 까맣게 잊을 만큼 집중한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는 재미도 있었으니까.
물론 고작 모형배 따위가 그의 주의와 관심을 독차지하는 것에 속이 뒤틀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메이저 메이저 메이저의 고요하고 진지한 얼굴을 가까이서 보기란 은근히 어려운 일이었기에. 특히나 그가 자신을 마주하고 있을 때는 더더욱 그랬다. 이 수줍음 많은 연인은 아직도 찌를 듯한, 혹은 타는 듯한 그의 시선을 받아 내기 버거워 수줍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돌려버리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크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높은 확률로 메이저가 덜 닫아서 열려 있는 것이 분명할 문틈으로 제 연인을 감상했다.
모형배를 만들 때 거슬리지 않도록, 그리고 브랜드와 가격을 아는 사람이 보면 까무라칠 지경으로 아무렇게나 말아 올린 네글리제 소맷자락 아래의 팔은 상아처럼 아름답다. 이 계절에 저런 차림을 해도 춥지 않을 만큼 저택의 난방에 신경을 썼더니 살짝 달아오른 뺨이 장밋빛이었다. 조립에 필요한 부품이나 도구를 찾으러 움직일 때마다 네글리제 자락이 사락이는 소리는 음악 같았다. 하루 종일 이 자리에 서서 보고 있더라도 질리지 않을 듯했다.
다만 예기치 못하게 마크 세러신의 심기를 거스른 것은 그의 사랑이 읊조린 노랫말이었다.
“Santa baby, so hurry down the chimney tonight….”
내 사랑,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지만 다른 남자의 방문을 기다린다고 말해서야 쓰나요.
“아, 마크? 언제 오셨어요?”
부러 소리를 내며 방문을 열자 메이저가 고개를 들었다. 마크를 향한 얼굴에 꽃처럼 웃음이 피었다. 길고 늘씬한 몸에 화사한 얼굴이 꼭 해바라기 같았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된 줄 몰랐어요, 미안해요.…”
미소도 잠시, 메이저는 웅얼웅얼 사과의 말을 늘어놓으며 다시 수선화처럼 고개를 숙였다. 마크는 별일 아니라는 양 만면에 웃음을 그리며 두 팔을 벌렸다. 그대로 성큼성큼 다가가자, 모형배 조각과 핀셋도 내려놓고 마주 안겨드는 메이저의 동작이 자연스러웠다.
“별일 없었나요, 내 사랑?”
고용인들부터 CCTV까지, 메이저를 향하는 눈과 귀는 셀 수도 없었지만-그래서 그에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마크는 굳이 물었다.
“그럼요. 마크는요?”
그야 그런 것들은 이런 달콤한 물음을 되돌려주지 않으니까.
품 안의 연인이 눈을 마주하며 답했다. 신장은 엇비슷했지만 늘 움츠러들고 고개를 숙이며 지냈던 탓일까, 메이저는 항상 올려다보듯 동그랗게 뜬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마크는 그 보드라운 뺨과 눈가를 가만가만 쓰다듬으며 답했다.
“열심히 일했답니다. 메이저가 갖고 싶은 걸 다 선물하려면 돈이 아주 많아야 할 테니까요.”
“네… 네?”
목소리에 밴 웃음기가 짙었지만, 그럼에도 사랑스러운 연인은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다. 커다란 눈이 분주히 깜빡였다. 의아함, 당혹감. 그리고 불안함.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자신이 뭔가 말실수를 하지 않았나 싶고, 그래서 미움받으면 어쩌나 하는. 그 모든 사고와 감정의 흐름이 고스란히 읽히는 푸른 눈동자에 마크는 느긋이 설명을 덧붙였다.
“흑담비 모피, 컨버터블, 요트… 메이저,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고 싶은 게 많은 것 같던데요?”
방금 전까지 흥얼거린 가사를 그대로 읊어 주었는데도 한 번 더 곱씹어 본 뒤에야 생각이 났다는 듯, 커다란 눈이 뒤늦게 더욱 커다래졌다. 마크의 등에 팔을 두르고 있지 않았다면 두 손까지 내저었을 기세로 격렬하게 고개를 저으며 메이저가 말했다.
“그, 그, 그건…! 노, 노래 가사예요! 오늘 모형배 만들 때 듣던 라디오에서 나와서… 곡이 좋아서….”
사실 마크도 몇 번 들어 본 적 있는 노래였다. 그저 내가 없는 사이 다른 남자를 찾다니, 하는 작은 심술이었을 뿐.
그래, 다이아몬드로 꾸민 트리도 그럴싸하겠지. 다만 트리 꼭대기의 별은 사파이어가 좋을 것 같다. 그의 눈동자만큼이나 짙고 푸른 것으로.
그러고 보면 라이트 블루의 컨버터블은 메이저에게 제법 어울릴 것도 같다. 밝은 햇살 아래 보는 그의 눈동자 빛깔을 닮은 차에 그가 타고 있으면 아름답겠지. 물론 메이저는 운전을 할 줄 모르고 자신은 메이저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타인의 눈과 손을 타게 할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쌀쌀한 계절이니 모피를 둘러 주어도 좋겠다. 이 또한 메이저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 찬 바람을 맞힐 생각이 없으니 사실상 무용하겠지만 검은 모피라면 하얀 피부와도 잘 어울리리라.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몸에 흑담비 모피를 둘러 주면, 혹은 그 위에 눕히면….
“…….”
마크는 마르는 입을 혀로 축였다.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멀게 들렸지만 반쯤은 못 들은 척했다. ‘작은 심술’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나머지 반은, 그의 머릿속에서 메이저의 목소리를 덧입고 흐르는 노래를 감상 중인 탓이었다.
요트도 제법 괜찮다. 무엇보다 단둘이 탈 수 있다는 점이. 짭짤하고 비릿한 바닷바람, 어두운 밤 실내등 불빛에 비친 당신의 눈동자를 닮은 감색 바다,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과 당신의 웃음. 평지에서도 때로 넘어지곤 하는 당신이라면 흔들리는 배 위는 조금 모험일까. 당신이 넘어지기도 전에 내가 당신을 단단히 안고 있겠지만. ‘메이저, 바닷바람은 습하고 차가워요.’
“마크?”
조용해진 마크의 눈치를 보며, 메이저가 다시금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마크는 머릿속 주크박스의 볼륨을 조금 낮추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메이저의 눈을 마주했다.
“뭐든 말해요. 뭐든 안겨 줄 테니까.”
“네?”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로 뭘 받고 싶은지.”
산타 따위보다 내가 먼저 당신에게 선물하면 그만이니까. 마크는 춤을 추듯 메이저를 안은 채 소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예 자리를 잡고 대화를 나눌 요량이었다.
“노래에 나온 걸 전부 받고 싶다면 그래도 돼요.”
소파는 장정 한 명이 누워도 될 만큼 충분히 길고 넓었지만 두 사람이 차지한 자리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마크는 소파의 한가운데, 메이저는 그런 그의 무릎 위에. 눈높이가 살짝 높아진 연인을 숭배하듯 올려다보며 마크가 답을 종용했다.
“내 사랑, 말해 주지 않으면 나는 또 내가 주고 싶은 걸 주게 될 거예요.”
“어... 상관없는데요? 전 마크가 주시는 거라면 뭐든 기쁠 테니까….”
듣기 좋은 말로 환심을 사겠다는 계산 따윈 없는 맹한 얼굴이 마크를 내려다보았다. 오, 제발. 이런 달콤한 대답을 계속 듣다간 귀가 멀어버릴지도 몰라. 마크는 네글리제 사이로 드러난 메이저의 맨가슴에 얼굴을 묻고 환희에 몸을 떨었다. 그런 그의 뒷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으며 메이저가 말을 이었다.
“그냥… 곁에 있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마크가 고개를 들었다. 지금 그는 제 연인과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멍하니 메이저를 바라보기만 했다.
가까이에서 눈을 마주하자 뒤늦게 수줍어진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메이저가 말을 이었다.
“요즘 연말이라고 마크가 늘 바쁘셨으니까… 바쁘시다는 건 알지만! 제, 제가 또, 처, 철없는 소릴 했지만…! 마크는 지금도 산타 같은걸요.”
제법 그럴싸한 비유를 했다고 생각하는지 메이저가 배시시 웃었다.
세간에서 마크 세러신을 바라보는 시선은 산타보다는 공주를 납치해 감금한 사악한 용에 가깝겠지만, 그들이 어떻게 보든 무슨 상관인가. 애초에 ‘공주’의 진가조차 알지 못한 자들 따위가 대수인가. 메이저 메이저 메이저가 자신을 산타라고 부르는데.
“저는 아무 말도 안 했는데도 늘 저한테 필요한 걸 챙겨 주시고… 부족한 절 이렇게까지 도와주시고…”
“또요?”
“네?”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요. 내가 당신에게 주는 게 그것만 있지는 않잖아요, 내 사랑.”
힌트를 주듯 덧붙인 호칭에 메이저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아아, 여전히 그리고 언제나. 당신은 처음처럼 수줍고 사랑스러워서.
“…사랑해 주셔서… 더 뭔가 필요할 것 같지가 않아요.”
당신이 내게 사랑을 말할 때면, 얼마나 가슴이 벅차는지.
“그럼 마크는요? 마크는 무슨 선물이 받고 싶으세요?”
마크 세러신은 이제야 알았다. 이미 자신은 귀도 멀고 눈도 멀어버려서, 메이저 메이저 메이저가 아니면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는 걸.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듯 메이저를 안은 팔에 힘을 주며 마크가 답했다.
“내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당신의 모습 자체가 선물이랍니다. 내 사랑.”
“그,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메이저가 눈살을 찌푸렸다. 거의 동시에 얇은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토라진 어린애 같은, 그가 아직 군에 적을 두고 있던 시절 종종 볼 수 있었던 얼굴이었다. 하기 싫은 일, 납득할 수 없는 지시를 맞닥뜨렸을 때의 불만스러운 표정. 그 표정이 사랑스러운 것과는 별개로 그 시절을 생각하면 마크는 아직도 눈앞이 까매지는 것만 같았다.
그때야 어찌 됐든, 지금 당신은 내 품 안에 있으니. 마크는 골이 난 그를-그리고 자기 자신을 달래듯, 조금 전의 거친 고갯짓으로 흐트러진 메이저의 머리카락을 가만가만 쓸어 넘겼다.
“당신과 똑같죠. 그나저나 당신 눈에 내가 산타 같다면 이번 크리스마스 이브엔 굴뚝으로 들어와야겠네요.”
“그, 그건 좀 위험하지 않을까요? 전 그런 뜻이 아니라….”
마크는 드물게 그늘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머릿속 메이저의 노랫소리도 덩달아 커졌다.
one little thing, a ring. 흐르는 가사에 맞추어 메이저의 왼손을 잡아 반지 위에 입을 맞추었다. 뚜아 에 무아 스타일의 반지가 긴 약지에서 빛났다. 메이저의 눈을 닮은 사파이어와 자신의 눈을 닮은 에메랄드를 맞물리게 한 형태였다. 언제 어디서든 그를 바라볼 수 있도록.
이건 프로포즈용 반지였으니 웨딩 밴드를 별도로 맞출까, 아니면 비슷한 크기에 다른 디자인을 오른손 약지에도 끼워 줄까….
“참, 식사하셔야죠. 마크?”
Santa cutie, and fill my stocking with…
말과 노래가 겹쳤다. 머릿속 메이저가, 아니, 마크 세러신의 생각이 정지했다.
***
크리스마스 이브, 함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한 뒤 오랜만의 밤 산책까지 즐긴 세러신 부부가 저택에 들어섰다. 기다렸다는 듯 괘종시계가 자정을 알렸다. 크리스마스였다.
“메리 크리스마스, 메이저.”
“메리 크리스마스, 마크.”
집 곳곳에는 겨우살이 다발이 장식되어 있어, 어디든 ‘겨우살이 아래’인 셈이었다. 마크와 메이저는 오늘만 몇 번째인지 셀 수도 없을 크리스마스 인사와 키스를 주고받으며 방으로 향했다.
“그럼 내 사랑, 좀 늦었지만 씻고 올래요? 날이 추웠으니 몸도 덥힐 겸해서.”
“네에….”
어쩐지 대답이 미적지근했다. 그 안에 든 아주 미미한 불순응을 눈치챈 마크가 물었다. 뭐가 문젤까, 뭐가 불만일까. 당신이 내 말을 거부하려 하다니.
“많이 피곤해요? 씻기 싫어요?”
“저, 저 그렇게 더러운 사람 아닌데요…!”
메이저가 궁색하게 항변했다. 그 말에 마크의 굳었던 얼굴도 그만 살짝 풀리고 말았다. 뺨이며 코끝, 귀끝이 아직도 발간데, 역시 밖에 데리고 나가지 말 걸 그랬다. 가만히 두지 못하고 만지작거리고 있는 저 손이야 장갑을 끼우고 내내 맞잡고 있었기에 식지 않았지만….
“…그, 다른 게 아니고… 제가 절대로 해 달라는 게 아니고요….”
“네, 듣고 있어요.”
마크는 아직도 벗지 않은 메이저의 코트를 손수 벗기며 끈기 있게 기다렸다. 고개를 숙인 메이저가 눈만 치켜떠 마크를 올려다보았다.
“…다른 때는, 같이 씻자고 하셨으니까… 아니, 아니! 마크도 피곤하실 테니까, 씻는 건 혼자서도 할 수 있고요! 아니다, 그럼 제가 마크를…? 마크?”
마크는 들고 있던 메이저의 코트에 얼굴을 묻었다. 지금 제 얼굴이 가관도 아닐 것 같아서였다.
그대가 원한다면야 코트만이 아니라 오랜만에 걸친 이 셔츠와 바지도 벗긴 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손으로 씻길 수 있지만. 그랬다간 씻는 걸로만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마크는 심호흡하며 코트에 배어 있는 겨울의 공기와 메이저의 체향을 들이마셨다.
제 사랑은 그날의 대화 그대로 ‘곁에 있어 주는 것’으로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하겠지만, 마크가 오늘을 위해 준비한 것은 따로 있으니까.
“마크?”
걱정스러운 부름과 함께 제 어깨를 잡는 손이 느껴졌다. 마크는 마지막으로 한번 더 깊이 숨을 들이쉰 뒤 표정을 가다듬고 고개를 들었다.
“얼마든지요. 내가 당신을 씻기든, 당신이 나를 씻기든. 그런데 오늘 밤은-”
할 일이 있어서. 걸음을 내디뎌 둘 사이의 거리를 좁힌 마크가 메이저의 귓가에 속삭였다. 더운 숨결이 스친 귓가를 감싸며 메이저가 화다닥 물러났다. 넘어지지 않게 재빨리 허리에 팔을 두른 마크가 덧붙였다.
“이따 침실에서 봐요, 내 사랑.”
***
침실로 들어선 마크가 가장 먼저 본 것은 침대 위에 엎드리다시피 한 뒷모습이었다. 네글리제 차림의 메이저가 침대 위를 정돈하고 있었다. 허리끈을 조여 강조된 날씬한 허리며, 몸을 숙이자 끌려 올라간 네글리제 자락 아래의 희고 긴 다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마크는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었다.
“마크? …어, 우왓?!”
그 소리에 몸을 일으키며 뒤를 돌아보던 메이저가, 그만 균형을 잃고 침대 위로 나동그라졌다. 마크는 메이저의 아무렇게나 내뻗어진 다리와 함께 벌어진 네글리제 자락을 참을성 있게 여며 준 뒤 그를 일으켜 앉혔다. 그런 뒤 제 나이트가운 주머니에 든 것을 꺼내 내밀었다. 어리둥절함과 당황이 섞인 푸른 눈빛이 선물 상자와 마크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선물이… 있었어요?”
“내가 크리스마스를 그냥 지나칠 나쁜 남편 같나요?”
“그, 그런 게 아니고… 저는 그냥 오늘 마크랑 데이트한 그게 그건 줄….”
역시나, 메이저의 대답은 마크의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의 생각도 발언도 행동도 모습도, 전부 제 손 안이라는 사실에 마크는 가히 쾌락에 가까운 충족감을 느꼈다.
배부른 짐승처럼 웃으며 마크가 답했다.
“그것도 이것도 선물이랍니다. 열어 볼래요?”
메이저는 다소 성의 없이-물론 이 상자와 리본의 재질 및 가격을 안다면 할 수 없을 말이지만-리본으로만 뚜껑을 고정한 상자를 받아 들었다. 열린 상자 안에는 곱게 개켜진 실크 스타킹이 담겨 있었다.
“양말 대신 스타킹이에요? 트리에 걸어 둬야 하나….”
메이저는 놀라지도 실망하지도 않고 킥킥 웃으며 스타킹을 꺼내 들고 살폈다. 이게 다가 아닐 거라는 기대나 예상 때문이라기보단 아이나 동물처럼 눈앞의 대상에 호기심을 보이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마크 세러신은 당연히 그 정도로 끝낼 이가 아니었다.
보드라운 스타킹이 안에 든 것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메이저의 손바닥 위에서 미끄러져 톡, 시트 위로 떨어졌다.
“어? 뭐가 들어 있네요?”
“네, 그것까지 꺼내서 열어 보란 뜻이었어요.”
딱 반지 케이스 정도로 조그마한 티파니 블루의 상자가 스타킹 안에 들어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고작 반지가 아니라 가사대로 트리를 다이아몬드로 꾸미고 싶었던 마크였다. 메이저가 자신은 전통적인 오너먼트가 좋다며 기겁해 만류하는 바람에 포기해야 했지만.
메이저는 이번에도 서슴없이 네글리제 소매를 걷어 올리곤 스타킹 안으로 팔을 넣었다. 어, 하는 짧은 탄성이 들렸다. 손을 넣고 보니 생각 이상으로 얇고 올이 고운 스타킹이라, 혹여라도 제 어설픈 손길에 상할까 걱정이었는지 메이저의 손길은 조심스럽고 또 느렸다. 가히 투명하기까지 한 스타킹이 천천히 흰 팔을 감쌌다. 실크 특유의 윤기가 팔을 타고 흘렀다. 마크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반지…케이스예요? 마크, 저 반지는 이미 있는데…”
신중한 손길로 마침내 상자를 꺼내서 개봉하는 데까지 성공한 메이저가 물었다. 그럼요, 잘 알죠. 오늘 하루 종일 그 왼손에서 빛났는데. 마크는 흡족하게 웃으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냥 웨딩 밴드예요. 프로포즈링과 같이 끼면 돼요.”
이리 줘요. 내가 끼워 줄게요. 마크가 나지막하게 덧붙였다. 마치 청혼받던 날처럼 수줍고도 순순히, 메이저가 반지 케이스를 쥔 손을 내밀었다. 그 손에서 케이스를 받아 가는 마크의 가슴속이 만족감으로 가득 찼다.
마크는 우선 메이저가 잠자리에 들 때조차-정확히는 침대에서 마크가 손수 빼 주기 전까지-끼고 있는 에메랄드와 사파이어 반지를 빼냈다. 마른 손가락에 남은 반지 자국을 엄지로 덧그린 마크가 백금과 다이아몬드, 사파이어가 빙 둘러진 웨딩 밴드를 메이저의 왼손 약지에 끼워 주었고, 그 위로 다시 프로포즈링을 끼웠다. 일련의 과정은 신성한 의식처럼 고요했다.
쪽, 마크의 입술이 한 쌍의 반지 위로 내려앉았다. 반지에서 시작해 도드라진 뼈마디를 타고 손등까지 올라온 입술이 중얼거렸다.
“이러니까 다시 청혼하는 것 같네요.”
“아하하….”
열기 어린 숨과 입술이 손등을 간질이자 메이저가 나지막이 웃었다. 그 웃음 앞에서 마크 또한 저항 없이 웃음 지었다.
그리고 오늘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 꼭대기의 별처럼.
여전히 메이저의 손등에 제 입술을 붙인 채, 마크는 제 낯빛이며 목소리에 짙게 밴 기대감과 흥분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 스타킹까지가 선물이에요, 내 사랑. 그러니 오늘 밤 그걸 신어 줄래요?”
그게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이랍니다. 메이저가 절대 거절할 수 없는 말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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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무슨 캐롤 듣다 급발진해서 뇌내무순쓰는 사람 되어버림... 결국 반지랑 실크스타킹만 입은 메이저랑 밤새 잣죽쒔을듯 그나마도 스타킹은 도중에 찢어졌을거같고
자정 넘어갔으니 크리스마스다 맨밥들도 메리크리스마스...!
행맨밥
마크메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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