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508456844
view 894
2022.11.19 23:09
65C1A2B3-D938-494F-87E4-C700ACA0B57D.jpeg

전편

ㅅㅅㅊㅈㅇ
ㄴㅈㅈㅇ






 

마리아 빅토리아 헤나오는 자신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세상 만물의 사랑과 축복을 받은 아이, 타타.

 

'우리 공주님,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네 것이란다. 네가 원하는 건 뭐든 가질 수 있어.'

 

삐걱이는 낡은 이층 침대 위에서 웅크리고 잠을 청하던 아이를 온기 가득한 집으로 데리고 온 젊은 부부는 그리 말했다. 방금 동화책에서 튀어나온것마냥 어여쁜 한 쌍이었다. 타타가 항상 바라고 기도했던 모습 그대로. 이름조차 없는 시골 마을 한 구석에 위치한 작은 수녀원을 잘도 찾아낸 그들은 원장 수녀의 손을 잡은 장밋빛 뺨의 소피 대신, 구석에 숨어있던 작디작은 아이를 선택했다.

 

'어떻게 날 찾아냈어요?'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처럼 가는 아이의 손을 잡으며 두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마치 하늘의 계시를 받은 것 같았다고. 갑자기 무엇에 홀린 것처럼 알지도 못하는 이곳을 찾아왔고, 수많은 아이들 중에서 너만 보였다고. 네가 아니면 안된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타타가 항상 기도했던 것처럼.

 

'사랑하는 타타, 네가 원하는 건 모두 이루어주마.'

 

그래서 타타는 그리했다. 원하는 것은 뭐든 가질 수 있다기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손을 뻗었다.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감내하는 부모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고, 그녀가 가진 축복의 기도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신실하고 성실한 타타는 그저 간절히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빌기만 하면 됐다.

 

'하나님, 저 인형을 갖고 싶어요. 지금 당장이요.'

 

어떤 사소하고 하찮은 바람이라도 그녀가 원하는 것은 뭐든 이루어졌다. 소중히 들고 있던 인형을 타타에게 안겨주고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길을 걸어가는 저 낯선 아이처럼 말이다. 이웃집 타냐의 엄마가 만든 달콤한 설탕 내를 잔뜩 풍기는 갓 구운 쿠키가 그러했고, 후안이 기르던 초콜릿색 털을 가진 강아지가 그러했다. 타타만의 왕자님이 되어준 호세 또한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타타의 기도는 단 한 번도 외면받지 않았다. 그녀의 기도가 이루어낸 세상은 더없이 충만하고 완벽했으므로 타타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하고 고귀한 존재라는 것에 대해 단 한 번도 의심을 품지 않았다. 절대로.

 

 


 

깨달음이란 것은 아무런 징조 없이 갑작스레 찾아왔다. 어제와 다를 것 하나 없던 어느 초여름날, 평범하다 못해 지루하기까지 했던 날들 중 그 하루가 조금 더 짜증이 났던 건 순전히 발레리 때문이었다. 발레리아 바레즈.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타타의 신경을 긁어대던 계집애.

여느때라면 저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 난 그 같잖은 꼴에 코웃음을 치며 비웃어줬을 테지만, 그날은 조금 사정이 달랐다. 하필이면 타타가 애정해마지않는 문학 시간이 발레리의 트집으로 그야말로 난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도리어 저를 힐난하는 아이들과 선생님의 표정에 서운함과 서러움으로 잔뜩 짓눌린 가슴은 교실 한구석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발레리를 발견한 순간 그만 화르륵 불이 붙었고, 겨우 억눌렀던 분은 파함을 알리는 학교 종 소리와 함께 풍선 터지듯 터져버리고 말았다.

전교생이 건물 밖으로 쏟아져나오는 가운데,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교문을 향해 걸어가는 발레리에게 쏜살같이 달려간 타타는 자신의 분노를 남김없이 토해냈다. 끝없이 터져 나오는 그것들의 끝에 마치 내장까지 매달려있을 정도로. 치밀어 오른 화에 이미 눈앞이 시뻘겋게 되어버린 타타에게 말을 고를 여유 따위는 없었다. 타타는 그 순간 그녀가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악담과 저주를 발레리에게 퍼부었다.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참아왔는지, 자신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오늘은 분명히 알려줘야 했다. 불행하게도-발레리에게 혹은 둘 모두에게- 타타는 그 순간만큼은 그녀의 특별한 기도 능력에 대해 눈곱만큼도 떠올리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응답을 바라는 타타의 특별한 기도가 아니라, 그저 밉살맞은 발레리에게 퍼붓는 일방적인 화풀이 같은 것이었으니까.

 

"이 심술 맞고 짜증만 내는 거짓말쟁이! 꼴도 보기 싫으니까 그냥 죽어버려, 콱 죽어버리라고! 너 같은 건 지금 당장 죽어버려도 아무도 신경 안 쓸걸? 천박하고 하찮은 너 따윈 어차피 아무도 기억 못할 테니까!"

 

비명같은 외침이 넓은 공터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그 순간 타타와 발레리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아이들의 웅성거림이 일제히 멈췄다. 주변의 소음이 일순간 사라지고, 타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던 발레리 역시 움직임을 멎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멈춘 순간이었다. 자신의 벅찬 숨소리만 들려오는 가운데, 싸늘하게 내려앉은 공기가 피부로 느껴졌다. 설명할 순 없지만 무언가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그 기이한 감각에 공포를 느낀 타타는 손 안 가득 부여잡고 있던 발레리의 소매를 놓고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아무리 조심하려고 해도 걸음마다 밟히는 잔디가 바스락거리며 소리를 질렀고, 초점이 풀린 수십 개의 눈동자들이 그 모습을 소리 없이 쫓았다. 타타는 그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게다가 자신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발레리를 발견했을 땐 뒤돌아 달음질치고 싶었지만, 등을 보이는 것이 더 무서웠다. 성큼 걸어온 발레리는 어느새 타타의 코앞까지 와있었다.

 

'망할 계집애!'

 

타타는 덜덜 떨리는 턱을 치켜들고 눈물로 그렁한 눈을 부릅떴다. 부디 이것이 저이에게 조금이라도 위협되게 느껴지길 기대하면서. 목이 아플 정도로 어금니를 깨물며 버텨낸 것이 우습게도, 발레리는 그대로 타타의 곁을 지나쳤다. 사박거리며 걸어간 그녀가 발걸음을 멈춘 것은 학교 앞의 차도 한가운데로 들어선 후였다.

타타는 이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무표정한 얼굴로 저를 바라보며 차도 한가운데에 서 있는 발레리와 저 멀리서 미친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트럭 한 대. 자신을 놀리기 위한 또 다른 장난이라기엔 너무나도 위험한 것이었지만, 발레리에 대한 울분이 채 가시질 않은 타타로선 그녀를 도와야 할지, 아니면 그녀가 만들어낸 또 다른 함정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 모른 척을 해야 할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뒤늦게 발레리를 발견한 운전자는 비명을 질러댔다. 차의 속도는 너무 빨랐고, 지금 당장 브레이크를 밟더라도 사고를 피하기엔 이미 늦은 것처럼 보였다.

 

"멍청아, 거기서 뭘 하는 거야! 치여 죽기라도 할 셈이야?!"

 

타이어가 미끄러지며 만들어낸 날카로운 마찰음과 그 속에 섞인 묵직한 타격음은 끔찍했다. 고철 덩어리는 결국 그녀를 산산조각 내고 말았다. 차체 전면에 얼룩진 붉은 피와 덩어리들을 눈앞에서 목격한 타타는 기절할 것만 같았다.

 

'말도 안 돼, 진짜 죽어버리는 게 어딨어!'

 

더 기절할 것만 같은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타타와 함께 참혹한 현장을 목격한 수많은 아이들이 사고를 기점으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멈춤 버튼을 눌러놓았던 영화가 다시 재생되듯, 여느 하교길과 다름없이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고 시답잖은 장난을 치며 깔깔거리는 아이들.

타타는 속이 메슥거렸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자신과 발레리의 다툼을 목격했고, 그 아이에게 죽어버리라고 악을 쓰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진대. 모두가, 아니 누군가는 나서서 자신을 비난하고 욕을 퍼부으리라 생각했는데. 타타는 결국 자신의 곁을 지나치는 동급생의 팔을 급하게 붙들었다. 아이의 얼굴과 옷엔 발레리의 것이 분명한 핏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왜?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야? 어째서 아무렇지 않은 척 그냥 가버리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타타?"

 

"발레리가 차에 치었잖아. 응? 죽어버렸다고, 바로 우리 눈앞에서!"

 

"무섭게 왜 그래. 차 사고라니, 꿈이라도 꾼 거야?"

 

"... 뭐?"

 

"발레리는 또 누구람. 나 빨리 가봐야 하니까, 내일 다시 얘기하자. 안녕!"

 

아이들의 대답은 마치 미리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똑같았다. 발레리가 누구야? 사고라니, 무슨 사고? 아무 일도 없었는걸. 내일 만나자. 안녕, 타타. 얼이 빠진 얼굴로 서 있는 타타에게 겁에 질린 운전자가 다가왔다. 이 수많은 사람들 중에 그와 타타만이 사고를 본 것만 같았다.

 

"얘, 넌 제대로 봤지? 저 꼬마가 도로로 들어온 거야, 달리는 차로 뛰어든 거라고. 응?"

 

"..."

 

사내는 타타의 어깨를 붙잡고 제멋대로 흔들었다.

 

"이건 절대 내 잘못이 아니야, 그렇지? 맞지?"

 

남자에게 붙들려 이리저리 휘둘리면서도 타타의 머릿속은 한 가지 생각으로 가득 찼다. 발레리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은 둘 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오직 그와 타타만이 목격자였다.

 

"내 말 들었니 꼬마야? 응? 말 좀 해보라고!"

 

"여기선 아무 일도 없었어요, 아저씨."

 

"뭐?"

 

타타는 손을 들어 사내의 얼굴을 자신에게 고정시켰다.

 

"아저씬 아무것도 치지 않았어요. 당신은 그저 당신 조카를 데리러 여기 온 것 뿐이에요."

 

"... 그래그래, 네 말이 맞아. 내 조카가 이 학교에 다닌다고 들었던 것 같다. 고맙구나, 얘야."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곤 환한 얼굴로 학교를 향해 뛰어가는 남자를 보며 타타는 조심스럽게 숨을 내쉬었다. 벌렁거리는 가슴 탓에 숨이 조금씩 끊어졌지만, 그것은 방금 전까지 그녀를 억누르고 있던 공포 때문은 아니었다. 타타는 자신이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볼이 파들거리는 건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참기 위함일까, 아니면 웃음을 참기 위함일까.

모든것이 불분명한 가운데, 세상의 사랑을 독차지한 황홀함이 그녀를 벅차게 만들었다는 것만은 무엇보다 확실했다. 세상의 나의 편. 모든 것은 나의 뜻대로.

 

 


 

 

 

* * * * *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 마리아 빅토리아 헤나오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세상은 참으로 쉽고 만만했다. 그리고 소원을 빌어야 할 대상이 신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그녀의 삶은 한층 더 충만하고 조금은 은밀해졌다. 타타는 이 고귀한 힘을 타인과 나누고 싶지도, 타인을 위해 사용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것은 온전히 자신만의 것,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다.

 

시간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흘렀고, 흥미로운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기이하고 신비로운 힘을 가진 사람들이 세계 각지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능력자들. 타타는 자신처럼 특별한 힘을 가진 이들이 존재하고, 자신과는 다른 성격의 힘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능력자들을 관리하기 위한 정부 기관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지만, 그녀와는 상관없는 얘기였다. 어차피 자신은 그 치들과는 격이 다른 존재였으며, 그들처럼 누군가의 명령을 듣고 관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능력자 색출을 위해 군인들이 도시를 휘젓고 다니기 시작하자, 타타는 결국 자신의 방패가 되어줄 이를 찾기로 했다.

야심으로 가득 찬 밀수꾼을 그녀의 삶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사랑에 눈이 먼 아내와 인자한 엄마를 연기하며, 그의 몸뚱이를 가면으로 쓰고 그의 야욕을 방패 삼아 타타는 서서히 세를 늘려나갔다. 시험 삼아 시작한 마약 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다. 악마의 하얀 가루가 타타의 마을과 도시, 나라와 또 다른 나라들을 좀먹었지만, 타타는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못했다. 그녀에게 이건 일종의 게임 같은 것이었다. 호화로운 저택의 소파에 가만히 앉아 손가락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자신의 힘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지 시험해보기 위한.

 


 

 

전지전능하고 풍족한 삶은 더없이 만족스러워 보였다. 실로 그러했다 적어도 몇 년 동안은.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완벽한 삶의 사이사이마다 하찮은 감정의 조각들이 끼어들었다.

타타는 외로웠다. 그녀가 고른 수많은 사람들 틈에 끼여 살고 있으면서도, 그녀는 매 순간 고독에 몸부림쳤다. 이렇게 따분하고 지루한 세상 어딘가에 나 같은 사람이 하나쯤은 더 있지 않을까. 이 많은 꼭두각시들의 주인이 나라는 걸 알아봐 줄 이가 있지 않을까. 보잘것없는 인형들 대신 내 곁에 있어 줄 이가 존재하지 않을까. 그러다가 결국 발견하고 만 것이다. 동류의 인간을.

 

미국 마약단속국 요원이 정신계 센티넬이라는 정보가 담긴 파일은 그가 메데인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타타의 손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녀는 그의 존재를 직접 확인해야만 했다. 그래서 기꺼이 작은 미끼를 던져주었다. 자신들의 흔적을 찾기에 급급한 경찰들에겐 그걸로 충분했다.

작은 폭발음과 함께 깨진 창문으로 불꽃이 치솟았다. 낡은 나무 문을 박차고 나온 청년은 몸에 붙은 불이 꺼지기도 전에 대기하고 있던 경찰들의 총에 맞고 쓰러졌다. 한 손에는 장전된 총, 다른 손에는 하얀 가루가 든 봉투가 들려 있었다. 청년의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경찰들은 방 안을 수색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한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갈색 머리의 사내는 그제야 현장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사내에게선 붉은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흘러나왔다. 미지근한 열기를 띤 그것은 피 웅덩이에 누워있는 청년의 머리 주변을 감싸듯 맴돌다 다시 사내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셔츠 아래로 팽팽하게 날이 선 팔근육과 감아쥔 주먹이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가 본 기억이 무엇이든 간에 그리 달갑지 않은 것임은 분명했다.

 

타타는 사내를 끌어들이기로 결심했다. 아니, 다른 기회가 있다는 것을 모른 채 기관에 붙잡혀 있는 것이 분명한 그를 해방시켜 주기로 결심했다. 작은 기계 따위에 능력을 억압당하고 타인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장기말 신세라니, 자신의 동료가 될 그가 그런 끔찍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타타는 그에게 자신이 누리는 힘과 자유를 알려주고 싶었다. 자신의 삶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눈다면, 그것은 그여야 했다.

그러기위해선 먼저 그의 곁에 있는 감시역을 제거해야 했다. 타타에겐 그렇게 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이 말 그대로 차고 넘쳤다. 처음에 썼던 방법은 마음이 조급했던 만큼 다소 과격하고 사나웠다. 결과적으로 감시역이 사라지긴 했지만, 바로 옆에서 파트너의 머리가 터지는 것을 목격해야 했던 사내의 경계심과 적개심이 올라간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비에르 페냐의 곁에선 아무도 견뎌내질 못했다. 머리가 터지고, 어깨가 부서지고, 팔다리에 총알구멍이 났다. 죽거나, 도망치거나, 그렇지 않으면 페냐가 직접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결국 혼자가 된 그는 콜롬비아 대령과 함께 묵묵히 카르텔의 뒤를 쫓았다. 타타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어차피 그들은 자신을 잡을 능력이 없는 치들이었고, 타타는 페냐와 이런 줄다리기 게임을 하는 것이 즐거웠다. 자신의 곁에 당장 와준다면 더없이 기뻤을 테지만, 이런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던 찰나, 금발의 그링고가 나타났다. 이전의 파트너들처럼 알아서 튕겨 나갈 거란 예상과는 달리 그는 꽤 끈질겼다. 타타는 페냐를 위해 최대한 점잖은 방법으로 위협을 가했고, 금발 사내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별종처럼 굴기 시작했다. 피와 폭력에 적응한다 싶더니, 금세 이를 드러내고 사방을 향해 미친개처럼 짖어댔다. 페냐의 옆에 꼭 붙은 채로.

문제는 페냐가 그것을 밀어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언제나 홀로 겉돌았기에 괜찮을 줄 알았는데, 언제나 혼자 견뎌내길래 괜찮을 줄 알았는데, 자신처럼 외로워 할 줄 알았는데. 페냐는 마치 더 이상 그러지 않기로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금발 사내와 행동을 같이 했다. 어떻게 당신이 그럴 수가 있어. 당신의 유일한 이해자는 나, 나의 유일한 동지는 당신이어야 하는데, 어떻게 그의 손을 잡을 수가 있어? 타타는 그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절대 거부할 수 없는 함정을 파고 기다렸다. 빠지고 나면 두 번 다시 헤어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크게. 그들이 함정인걸 알아차린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들은 확인하기 위해 이곳에 올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니까 자신은 여기 이렇게 앉아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마치 거대한 거미줄을 치고 기다리는 여왕 거미처럼.

 


 

 

뽀족한 굽이 대리석 바닥과 부딪히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레이스 커튼 사이로 드는 아침 햇살과 집안 가득 장식한 생화가 내뿜는 풋풋한 풀내음이 타타의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또각거리는 발걸음은 새하얀 복도 끝에 위치한 방문 앞에 멈추어 섰다.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돌리는 기분이 어색할 정도로 설렜다. 마치 기다리고 기다리던 선물을 드디어 받게 된 9살짜리 소녀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볕이 가득 찬 커다란 방 가운데 놓인 침대에는 한 남자가 누워있었다. 타타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숨길 생각도 하지 못하고 침대 곁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말라붙은 흙과 땀으로 평소보다 더 초라한 몰골을 하고 있는 사내를 보자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보잘 것 없는 사내가 그리도 간절했다니. 하지만 타타는 그야말로 진실로 자신이 갖고 싶었던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정말 웃기지 않아? 당신이 그렇게나 잡고 싶어 하던 악당의 집에서 이렇게 퍼질러 자고 있는 꼴이라니 말이야. 있지, 살아오면서 내가 갖고 싶었던 건 모두 다 손에 넣었는데, 유일하게 가지지 못하게 있었거든. 그게 고민이었는데, 이젠 다 해결된 것 같아... 그러니까 이제 그만 일어나서 날 좀 봐줘. 내 말을 좀 들어줘."





나르코스 머피페냐
보이드페드로

햎 열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