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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6 04:56
골라든 털실이 하필 무광의 검은색이겠지
우여곡절 끝에 존윅과 나름 간질간질하게 사귀면서 동거하기 시작한 션은, 존이 매일마다 코바늘을 놀려 자아내는 길다랗고 까만 무언가를 볼 때마다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해지는데...
설마 누군가의 수의를 손수 짓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 존윅 리미티드 에디션이라... 제로가 입고 싶어서 환장하겠군), 한편으론 존이 고안한 신종 암살방식인가 싶기도 해서 틈틈이 인터넷을 뒤져본 끝에 한국의 멍석말이를 찾아내고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돌처럼 굳어버릴 듯 (💭: 도대체 대상이... 누구지?)
자신의 손을 힐끗 훔쳐보는 션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던가 말던가 존은 수상한 뜨개질을 계속계속 진행했고, 영 수상쩍은 결과물도 나날이 길어지고 넓어져서 션의 수의x 멍석말이o에 대한 의심도 한층 강화되어 버렸음
속마음은 불안하지만 겉으로는 유래없이 다정하고 달콤한 나날을 보내던 두 사람. 그런데 션이 며칠간 출장을 가느라 존의 곁을 떠났을 땐, 타인은 몰라도 자신에게만큼은 곧잘 다정하게 굴어왔던 존은 왜인지 전화도 유독 짧게 툭툭 끊어서 션을 더욱 불안하게 했음. 당장이라도 얼른 존의 곁으로 날아가고 싶은데 존은 전화도 잘 받지 않고, 출장 현지의 사정 또한 좋지 않아 션은 이중고를 겪겠지.
결국 일이 대차게 꼬여서 불가피하게 길어져 버린 장거리 출장에서 돌아오자 자신의 침대 위에 반듯하게 접혀 있는 올블랙의 커다란 담요... 내지 니트이불... 을 본 션은 급기야 경기를 일으켰음. 존에게 주려고 사온 선물을 바닥에 털썩 떨어트리고서 망연히 담요를 폈다 접었다 하는 션... 과거사는 전부 잊고 새출발 하자더니 속으로는 날 기어이 멍석을 말아버리려고 벼르고 있었구나 싶어서 억울한 마음에 눈물도 찔끔 나는 션... 이미 잔뜩 편향된 추측 때문에 따뜻한 담요 선물같은 말랑한 목적을 갖고 있을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할 듯.
그날 저녁에 로맨틱하게 켜진 촛불과 함께 존이 직접 만든 음식들이 차려진 식탁 앞에 앉은 션은 유독 기운이 없어 보여서 존이 걱정을 많이 하겠지. 출장지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봐도 슬픈 기색으로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션을 본 존은 자신의 포크로 스테이크 한 점을 쿡 찍어서 션의 입가에 가져다 대었음. 내가 만들었지만 꽤 맛있으니까 한번 먹어보라며 쑥스럽게 웃는데, 션은 이게 내 생애 마지막 만찬인가 싶은 울적한 마음으로 기운없이 작게 입을 벌려서 존이 먹여주는 고기를 받아먹음. 힘없이 우물거리면서 그래도 맛있네... 존은 요리도 잘하고 내 마음도 잘 난도질하고, 칼을 참 잘 쓴다니까... 하고 속으로 쓸데없는 감탄을 하는 션... 그런 션을 보면서 걱정이 더욱 깊어지는 존...
이제 잘 시간이 돼서 션이 잠옷으로 갈아입고 나타나는데, 존이 조명 꺼져서 어둑어둑한 침실에 역시 검은색 잠옷을 입고 마치 사신처럼 침대에 앉아 있어서 깜짝 놀란 션이 으악!!! 하고 큰 소릴 지르고야 말겠지. 같이 헉 하고 놀란 존이 곧 어색하게 웃으면서 놀랐구나 션, 미안. 하고 사과하는데 연속된 긴장과 상반되는 존의 다정한 목소리에 그만 눈물샘이 툭 터진 션이
저도 미안해요 존. 여태까지 존한테 해온 모든 일들이 미안해요. 정말 미안하고 죄스러워서 내가 어떻게 그걸 되갚아 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면서 존이 짠 검은색 담요를 펼쳐서 온 몸에 둘둘 말면서 침대 위로 데구르르 구르겠지. 갑작스러운 말에 멍하니 앉아있던 존이 작게 웃으면서
뭐야, 혹시 뒤늦은 자기고백? 성찰? 하고 물어보자 더욱 시무룩해진 션이 풀죽은 목소리로 비장하게 대답했음
전 몸도 마음도 모두 준비됐어요. 이제 화가 풀릴 때까지 저를 매우 쳐도 좋아요, 존... 존이 때리는 곤장이라면 백 대도 맞을 수 있어요.
음... 뭘 생각하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나는 널 때리고 싶지 않아.
은근히 상상력 풍부한 연인이 결연히 내뱉는 말들이 무슨 뜻인지 짐작도 가지 않는 존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자신이 짠 담요를 몸에 감고 있는 션을 팔을 둘러 안아주겠지.
내가 네게 해주고 싶었던 건 다른 게 아니라 이런 거니까.
설마... 직접 짠 담요를 둘러주고, 안아주는 거요...?
왜, 혹시 기분이 별로야?
절대로, 그럴 리가요.
긴장이 확 풀려 존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션이 입술을 달싹이며 망설이다 작게 속삭였음.
난, 존이 날 멍석을 말고 때리려는 건가 싶었어요. 한국에서 과거에 죄인을 다스릴 때 했던 방식처럼.
왜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해. 내가 네게 그럴 리가 없잖아.
존이 애정을 담아 타박했고, 션이 파묻히듯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겠지.
글쎄요... 내가 당신에게 그만큼 자신이 없는 걸지도.
존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마주 껴안은 션의 등을 가만히 토닥여 주었고, 션은 이상스레 차오르는 안정감과 안도 속에서 어느새 잠이 들겠지
사실 존이 션에게 해주고 싶었던 건 행복한 김밥이었고 막판엔 담요를 완성하느라 션이 걸어온 국제전화도 잘 받지 못한 것
존과의 안정적인 관계 속에서 서서히 자신감을 회복한 션은 어느 순간부터 맨몸에 존이 선물한 검은색 담요 두르고서 나 나름 섹시한 김밥 같지 않아요? 하면서 존 유혹할 듯
둘의 과거가 어땠든 서로 꼭 붙어서 행복하게 지내는 션존이 보고 싶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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