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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0 17:59
ㄴㅈㅈㅇ 소설체ㅈㅇ 짤은 모두 핀흐헤흣흐 줍 문제.시 자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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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디 천사의 육체는 쉽게 지치지 않았다.

 
 

  그러나 아지라파엘은 지독한 피로감에 한숨을 내쉬었다. 축복받은 숨결이 먼지를 품은 바람에 휩쓸려갔다. 느리게 깜박이는 눈동자에는 창백한 빛이 비쳐들었다. 그는 죽은 도시의 이름 모를 폐허에 앉아있었다.

 

  아마겟돈, 모든 것의 종말. 결국 유구히 영원할 것은 없음을, 육천년하고도 육천년이 더 흐른 후에야 어리석은 천사는 깨달았다. 그가 지켜낸 인류마저 시간 속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그들을 죽인 건 적그리스도도, 천국도, 지옥도 아니었다. 인류는 스스로의 목을 졸라 스러졌다. 끔찍하게 아름답고 눈부시게 추악한 이들의 말로였다.

 

  아지라파엘은 끝의 끝까지 지상에 남아 모든 것을 보았다. 다시 태어난 전쟁은 화염검을 휘두르며 춤을 추었고, 기근은 여리고 작은 것들의 숨을 삼켰다. 오염은 온 세상을 끌어안고 노래를 불렀으며, 죽음의 그림자가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는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 매순간 놀랐으며 동시에 전혀 놀랍지 않았다. 그저 만 이천년 간의 애정 속에 서글픔을 느꼈을 뿐이었다. 더 이상 사랑할 것조차 남지 않은 후에 천사는 죽은 세상을 애도했다.

 

  인류가 사라진 폐허에는 드디어 예정된 전쟁이 도래했다. 지켜야 할 것이 없는 세계에서 친국과 지옥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아지라파엘 또한 그 예정된 물살에 휘말렸다. 그는 전쟁의 마지막 웃음이 흩어진 곳에서 화염검을 주워들었고, 무기력하게 천사들의 편에 서서 검을 들었다.

 

  그건 결코 아지라파엘의 편은 아니었다. ‘우리의 편이 아니었기에.

 

  아지라파엘은 다시 검을 들고 일어섰다. 만 이천년하고도 만 이천년이 더 흘렀다. 지지부진하고 끔찍하게 긴 이 전쟁 속에, 겨우 권품천사 하나가 실종된다고 한들 유난스러울 것도 없다. 아무리 형체 없이 파괴되었어도 아지라파엘은 천국보다 지상이 더 익숙한 천사였고, 그는 결국 남의 전쟁에서 슬그머니 발을 뺐다.

 

  해인지 달이지 모를 것이 내리쬐는 가운데 그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더 이상 신에게 기도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지독하게 침묵해왔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온전하게 믿는 단 하나의 존재에게 기도했다.

 

 
 

  크롤리, 제발 내 눈 앞에 나타나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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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 뱀이 눈을 떴다.

 
 

  익숙한 어둠 속에서 노란 눈이 깜박였다. 크롤리는 쉭쉭거리며 몸을 뒤틀었다. 벨제붑의 상자 안은 몇 백, 어쩌면 몇 천 년 후에도 여전하게 갑갑했다. 물론 편하다면 벌이 아닐 것이다. 이건 탈영 미수의 대가였다.

 

  크롤리는 벨제붑의, 하스투르의, 아지라파엘의 생각보다 자기객관화에 굉장히 능숙한 편이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꽤 인내심이 약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애초에 천성부터가 뱀처럼 매끄럽게 넘어가는 걸 좋아해서 그는 상황에 대한 수용도, 그에 따른 반응도 다소 빠르고 성급했다. 그래서 처음 다곤과 벨제붑이 망한 세계 속의 자신 앞에 나타나 끌고 내려갔을 때도, 빌어먹을 전쟁에 억지로 참가했을 때도 상황에 대한 수용은 잘 했다. 물론 그에 따라 그의 시선에서 적절한 대응도 빨랐다.

 

  처음 탈영을 시도하다 잡혔을 때는 사실 꽤 유하게 넘어갔다. 당시 벨제붑의 표정은 이 새끼가 감히보단 그럼 그렇지 개새끼야에 더 가까웠었다. 그러나 그 탈영 시도 횟수가 세 자릿수를 넘어갈 때부터 서류로 단련된 그녀의 인내심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마침내 천 번의 시도를 달성했을 때, 벨제붑은 크롤리 때문에 단단히 빡 돈 상태였다. 그 특단의 조치가 바로 감금이었다. 벨제붑의 기적으로 만들어진 상자에 가둬놓기.

 

  처음 잡혔을 때부터 지금까지, 크롤리의 의견은 한결 같았다. 내가 포기하나 봐라, 개자식들아.

 

  먼지 낀 검은 비늘이 단단히 또아리를 틀었다. 크롤리는 그 형언할 수 없는 긴 시간동안 벨제붑의 기적이 조금씩, 조금씩 닳기를 기다렸다. 아무리 지옥의 대공이라도 영원히 말단 악마 하나에게 시선을 쏟아 붓고 있진 않겠지. 지금, 이 감옥이 충분히 약해진 순간, 크롤리는 한층 더 몸을 말았다.

 

  그리고 그는 상상했다. 이 상자는 아주 작고 약하며, 그는 아주 크고 단단했다.

 

  무너진 검은 잔해 사이로 두 다리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아주 오랜만에 보는 빛에 그는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외진 곳에 버려졌기에 그는 이 황무지의 어느 방향으로 갈지 조차 헷갈렸다. 마치 지옥에 처음 떨어졌던 때 같았다. 그러나 그는 그 때와는 달리 신 따위를 찾지 않았다.

 

  크롤리는 휘청이는 발걸음을 옮기며 대신 그가 오직 믿는 이에게 기도했다.

 

 
 

  아지라파엘, 나를 찾아줘.

 

 











아마겟돈, 인류 멸망 이후 전쟁 속 아지라파엘과 크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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