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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쳐의 시간대보다는 과거고 소서리스 알리사 헨슨이 여성들만 다닐 수 있는 아레투자 마법 학교에서 보낸 학창 시절과 그 이후를 되짚는 이야기이기도 함
더불어 이전 알주르의 여정에서 나왔던 갈란테아가 깜짝 등장함
출처 https://www.playgwent.com/ko/news/39649/adsf
(22초까지만 보면 됨)
마법사의 회고록
Chapter 1
알리사 헨슨
영웅으로 죽거나, 악당이 된 자신의 모습을 볼 정도로 오래 살거나.
전 알리사 헨슨이에요. 소서리스죠.
예의상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사실... 전 저 말고 아무도 이 글을 읽지 않았으면 해요. 하지만 이걸 읽고 계시다면 제가 왜 이 글을 쓰게 됐는지부터 말해야 할 거 같네요.
모든 건 오로라 헨슨, 제 이모님이 저한테 해 주신 말씀에서 시작됐어요.
"인생을 살다 보면, 언젠가는 네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과거를 회상하는 순간이 올 거란다. 우리같이 오래 사는 사람들한테 그런 감정은 당연한 거고 아마 한 번으로 끝나지도 않을 거야. 그러니 살아가면서 기록을 최대한 많이 남기렴. 이 얘기가 너한테 도움이 됐으면 좋겠구나."
하, 그리고 이모님 말씀이 옳았던 거 같아요. 아니면 말이 씨가 된다고, 어릴 때부터 저보다 훨씬 현명한 분에게 그런 얘기를 들어서 진짜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걸지도 모르죠. 제가 그렇게 긴 세월 동안 저한테 있었던 일들을 충실히 기록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과거를 회상하고 싶었을까요? 혹시 그냥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진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이모님에게 감사해야겠네요. 수년간 과거를 되돌아보며 큰 위안을 얻었거든요. 요즘에도 그렇고요.
물론, 다 기록해 놔서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되지만, 그래도 이모님이 저한테 처음 그 말을 해 주던 순간은 아직도 또렷이 기억나요. 저희는 마차에 앉아, 끔찍할 정도로 울퉁불퉁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기나긴 길을 따라 느긋하게 타네드 섬으로 향하고 있었어요. 제가 이모님처럼 아레투자의 소서리스로 다시 태어난 그곳으로요. 가는 길에 제가 얼마나 신났는지 표현할 단어를 찾기도 힘드네요. 굳이 골라야 한다면 '짜릿했다' 라는 표현이 적절할 거 같아요. 전 아주 어릴 때부터 제가 마법사가 되기 위해 태어났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아레투자(혹은 반 아드일 수도 있고요)의 화려한 홀에 발을 들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랑 다르게, 전 마법사가 될 운명이었거든요. 적어도 이모님은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조금 더 거리가 있긴 하지만, 이모님의 친구이자 어린 시절 저한테 이모님이나 다를 바 없었던 아그네스 님도 그렇게 말씀하셨고요. 소서리스가 될 운명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당연히 소서리스가 될 날을 간절히 기다리며 어린 시절을 보낼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전 정말 참을성 없는 아이였고, 그런 저에게 그날을 기다리는 건 진짜 엄청난 시련이자 고통이었어요. 게다가 오로라 이모님은 가끔 이런 말씀까지 하셨죠. "꼬마 아이는 아무리 애원해도 아레투자에 입학할 수 없어요." 뭐, 인제 와서 보면 맞는 말씀이셨죠.
전 어렸을 때 소서리스가 된 제 모습을 수도 없이 상상했어요. 상상 속의 저는 뾰족한 모자를 쓰고 멋진 로브를 길게 늘어뜨린 채, 손을 뻗어 지팡이를 휘두르고 있었죠. 물론 전 어렸을 때부터 소서리스가 이런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오로라 이모님이 고스 벨렌을 떠나 동료와 지인을 만나러 가실 때마다 항상 절 데려가셨거든요. 심지어 전 걷지도 못하고 말도 못 할 때 재능 있는 자와 기교 있는 자의 챕터를 설립한 사람들을 모두 만났죠. 당연한 얘기지만 정말 크나큰 축복이었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힘의 개방'도 그때 처음 겪었어요. 힘의 개방은 어린 아이가 처음으로 마법적 재능을 보이는 순간을 뜻해요.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커가면서 그 얘기를 정말 많이 들었죠. 벌써 몇 년이나 지났지만 허버트 스태멜포드가 망토에 붙은 말똥을 떼어내려고 미친 듯이 날뛰던 모습을 생각하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져요. "으악! 더럽잖아!"라면서 비명을 질렀죠. 물론, 스태멜포드가 그런 어린 소녀한테 그렇게 강력한 염동력 재능이 있다는 걸 믿기 싫어서, 제가 손으로 말똥을 집어던졌다고 말할 때는 기분이 나쁘긴 해요. 그래 놓고 저번에 만났을 때는, 그 일을 완전히 다 까먹은 것처럼 굴면서 정말 그런 일이 있었냐고 묻더라고요. 아직도 부끄럽긴 한가 봐요.
어쨌든, 그 끔찍한 마차를 타고 아레투자로 처음 향했을 때, 전 11살이었어요. 그렇게 어린 나이에 마법 생도가 되려 했다는 사실이 참 자랑스럽네요. (그런데 아직도 왜 포탈을 안 타고 굳이 마차로 이동했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인내심의 중요성이라는 교훈을 주려고 하신 건 아닐까 추측만 할 뿐이죠. 이모님은 교실 밖에서도 뭔가를 가르쳐 주는 걸 좋아하셨거든요.) 사실 학교는 이전에도 많이 봤어요. 멀리서 보긴 했지만요. 그래도 실제로 방문하는 건 그게 처음이었죠. 오로라 이모님이 이것만큼은 절대 굽히지 않으셨거든요. 제가 간곡히 애원해도, 권위적이고 침착한 말투로 "나중에 준비가 되면 가자꾸나"라고만 하셨죠. 그래서 이모님이 수업하시는 동안 이모님과 가까운 고스 벨렌에 머물러야 했지만, 그나마 거기서는 만 너머로 꿈에 그리던 학교를 볼 수 있었어요. 인제 와서 보면, 그건 축복보다는 저주에 더 가까웠을지도 모르겠네요. 저를 달래주기는커녕, 제 조바심에만 불을 붙였으니까요.
오랜 세월이 지나고, 제가 예전에 쓴 글을 보고 있자니 옛 생각에 정말 가슴이 벅차네요. 오로라 이모님의 조언을 듣고 나서 제가 처음 쓴 글이 뭔지 아세요? 마차가 아레투자에 도착했을 때, 남는 양피지에 이렇게 휘갈겨 썼어요.
"마침내, 내가 여기에 왔어!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야!"
마차에서 뛰어내린 다음, 엄청난 경외심에 휩싸여 눈앞에 있는 학교를 바라보던 게 기억나요. 눈이 휘둥그레져서 입을 쩍 벌리고 쳐다봤죠. 그때 전 아레투자의 마법사가 되고 싶다고 확신했어요. 평생 그렇게 확신에 찬 적이 없었죠.
그리고 이렇게 되다니 참 재밌네요.
Chapter 2
혹시 아직도 아레투자와 아레투자가 있는 섬을 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기회가 있을 때 꼭 보라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 안이든 밖이든 정말 아름답거든요. 물론 중요한 볼일이 있거나 지위가 높은 지인이 있는 게 아니라면, 아쉽게도 아레투자의 대부분은 비밀로 남게 되겠지만요. 방문자는 물론이고 손님도 섬의 최하단인 록시아만 둘러볼 수 있거든요. 하지만 고스 벨렌에서 보는 풍경도 꽤 멋지답니다. 특히 날씨가 좋으면, 타네드 섬 전체를 볼 수 있어요. 일단 돌을 깎아 만든 듯한 거대한 석제 벽면의 가스탕 궁과, 가스탕 궁을 덮은 채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황금색 돔 천장이 있죠. '갈매기의 탑'이라 불리며 홀로 하늘 높이 우뚝 솟아 있는 토르 라라의 탑은 구름에 가려 꼭대기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을 정도죠. 물론 아레투자도 있고요. 어때요, 정말 그림 같은 풍경 아닌가요?
아직도 섬을 볼 때면 그 아름다움에 취하곤 해요. 하지만 그땐 엄청난 경외심이 느껴질 뿐이었죠.
그때 적어둔 내용에 따르면, 제가 아레투자에서 보낸 첫날은... 정말 끝내줬어요! 그토록 오랫동안 꿈꿔 왔던 소망이 마침내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으니까요. 입꼬리는 내려올 줄 모르고, 신난 메뚜기처럼 사방팔방 뛰어다녔어요. 질문도 엄청 많이 했죠. 너무 들뜬 아이처럼 보이긴 진짜 싫었지만 자신을 억누를 수가 없었어요. 다행히 다른 아이들은 자기 행동을 신경 쓰느라 바빠서 제 모습을 보지 못한 것 같았어요.
하지만 원래 기대란 게 그렇듯, 제 과도한 열정은 곧 사그라들고 말았어요. 전 성장하면서 마법의 기본과 어느 정도 친숙해질 기회가 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학교의 잘못이라는 건 아니지만 첫 수업은 너무 쉬웠어요. 솔직히 지루하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였죠. 하지만 원래 이렇다는 걸 이해하게 됐어요. 전 어쩔 수 없이 교육 과정을 따라야만 했죠. 이모님이 무슨 일이 있어도 제가 특별 대우를 받지 못하게 미리 손을 써두셨거든요. 다른 아이들이 혈연 때문에 차별받는다고 느낄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저도 그런 차별은 싫었고요.
아레투자 마법 생도
아레투자 마법 생도들은 아레투자에서 공주 대접을 받으며 지낸다. 그곳에는 마법 생도들의 변덕을 받아줄 모든 것이 마련되어 있으며 도시 절반에 해당하는 인력이 그들을 위해 재봉사, 모자 제조사, 과자 제조사, 배달부로 종사하고 있다...
기초 수업은 정말 지루하고 뻔했지만, 그래도 다른 마법 생도들과 함께 마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실제로 마법을 연습해 보는 건 정말 재밌었어요. 아직 마법의 원리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 앞으로 평생 갈고닦아야 할 힘을 보며 놀라는 것도 재밌었고요. 적어도 시험을 통과한 애들은 말이죠...
처음에 '마법의 자질'을 지닌 아이는 저까지 총 7명이었어요. 하지만 그중 한 명은 입학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죠.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예상했던 일이었어요. 힘의 개방을 겪은 사람이 전부 다 마법에 소질이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아직까지도 전 그 입학시험으로 어떻게 저희 자질을 평가했는지 완벽히 이해하진 못하고 있어요. 마법에 관한 지식을 평가하거나 마법을 시전하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시험이 아니었으니까요. 시험은 모형과 패턴, 그리고 다양한 요소를 평가하는 과정이었어요. 이렇듯 조금은 독특한 주제를 무작위로 선정해서 여러 차례에 걸쳐 물어보죠. 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도 입학시험은 여러 번 바뀌었어요. 보통은 새로운 교장이 부임할 때 바뀌었고, 변경을 거듭할수록 점점 더 실용성을 중시하는 시험으로 변해 갔죠. 어쨌든 전 입학 시험에 통과했고, 그땐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했어요(마법에 재능이 있는 특별한 아이인 오로라 헨슨의 조카가 입학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면 얼마나 민망했을까요? 정말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겠죠).
말했다시피 처음에는 마법 생도가 그리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수업을 상급생과 같이 들을 때가 많았죠. 그렇게 같이 수업을 듣다가 정말 착한 소녀를 만나서 나중엔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친해졌어요. 이름은 칼레나였고 당시엔 4학년이었는데, 보자마자 정말 마음에 들었죠. 솔직히 엄청 똑똑하다고 하기엔 부족한 점이 좀 있었지만, 진짜 친절하고 재밌었어요. 게다가 절 어찌나 잘 챙겨 주고 편하게 해 주는지... 딱 그런 친구가 필요했거든요. 칼레나를 알게 된 건 평생 고마워할 거예요.
아레투자 학생
방대한 지식은 소서리스의 가장 큰 보물이다.
어떤 철학자들은 우주가 끊임없이 균형을 유지하려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저한테 친구가 생긴 날 적도 생겼거든요. 이름은 야나였고, 아레투자 1기 학생이었죠. 그니까, 이미 졸업했고 가끔 수업에 참석해서 어린 생도들을 지도하는 걸 보조하는 역할이었어요. 이 글 하나로 제가 야나와 야나의 수업을 얼마나 경멸했는지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정말 끔찍했거든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 야나는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다른 마법 생도들 앞에서 절 비웃고 무시하려 했거든요. 간단한 실수를 하는 건 물론이고 그냥 다른 의견을 제시하기만 해도 제가 무식해서 그런다며 저한테 고함을 치곤 했어요. 심한 날에는 벌을 줄 때도 있었죠. 연구실 청소 같은 벌 말이에요.
전 야나가 정말 싫었어요. 하지만 불행하게도, 어쩔 수 없이 야나의 수업을 견뎌내야 했죠. 그 당시 아레투자에는 공식적인 선생님이나 '여제'가 몇 분 안 계셨거든요. 사실 네 분밖에 없었어요. 각자 물, 공기, 땅, 화염으로 이루어진 네 가지의 주요 원소를 전문으로 하는 분들이셨죠. 예전부터 쭉 그래왔듯이, 어린 마법사는 보통 한 가지 원소만 통달할 수 있어요. 물론, 한 가지 원소에 통달하는 것도 실패한 사람이 많지만요. 지금까지 네 가지 원소에 모두 통달한 마법사는 단 한 명, 얀 베커뿐이에요.
그리고 당시에 저는 어떻게든 네 가지 원소를 모두 다룰 수 있는 두 번째 마법사가 되고 싶었어요.
Chapter 3
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몇 달은 오로라 이모님의 수업을 들었어요. 어린 마법 생도들이 다른 선생님을 보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개별적인 원소를 다루는 방법을 배우는 건 초급자에겐 너무 어려운 과정이었거든요. 제 이모님은 물의 여제셨어요. 물은 가장 안전해서 소서리스라면 누구나 처음으로 배우게 되는 원소죠.
수점부터 정신 조작까지, 저희는 첫 학기의 대부분을 물의 원소에 푹 빠져서 보냈어요. 여러 가지 유용한 활용법을 기록하고 복잡한 이론을 자세히 배워 나갔죠. 예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고통의 연속이었어요. 금방이라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교육 과정이라는 족쇄에 묶여 있었으니까요. 입문 수업 중에 있었던 소소한 일들은 이제 다 흐릿한 기억으로 변했지만, 그래도 첫 실습을 하던 날은 아직도 생생해요.
땅 밑에서 흐르는 수맥에 대해 배운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어요. 수맥은 사실상 어디든 흐르고 있죠. 마법사가 힘을 끌어낼 수 있는 힘의 원천 중 가장 접근하기 쉬운 게 바로 이러한 수맥이 교차하는 곳이에요. 그래서 초급자가 실습을 시작하기에도 알맞은 곳이죠. 첫 번째 실습에서는 각자 아레투자 지하의 동굴 어딘가에 있는 마법 수정을 찾는 과제를 받았어요. 마법 수정은 미로 같은 지하 깊숙한 곳에 숨겨진 채, 주변에서 가장 강력한 힘의 원천 위에 놓여 있었죠. 저희는 가장 강력한 수맥과 그 교차점을 찾은 다음, 비밀 장소까지 따라가야 했어요.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았죠.
그땐 그렇게 생각했어요.
다행히 그 어둡고 축축한 통로에 빈손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었어요. 각자 자신의 과제를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을 하나씩 가져갈 수 있었거든요. 다른 애들은 뭐가 좋을지 잘 모르니까 대부분 물의 지팡이를 가져갔어요. 겉보기엔 당연히 물의 지팡이를 가져가는 게 맞지만, 잠깐만 생각해 봐도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물의 지팡이로는 교차점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그 원천의 힘을 구분할 순 없어요. 다시 말해, 수맥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곳에 가면 물의 지팡이는 무용지물인 셈이죠.
그래서 저는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른 선택을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바로 토실토실한 고양이인 악동을 데려가기로 한 거죠. 악동은 아레투자에 사는 고양이였는데, 누구의 고양이도 아니었어요. 하지만 수명이 다할 때까지(제 기억엔 말도 안 되게 오래 살았어요) 학교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였죠. 대부분의 고양이처럼 악동도 힘의 원천을 감지할 수 있었고, 고양이들은 수맥이 교차하는 곳에서 자는 걸 좋아한다고 해서 악동을 데려가기로 한 거였어요. 어떨 때는 몇 시간도 모자라서 며칠씩 사라졌다가 은은한 오라에 둘러싸여 돌아오곤 했거든요. 전 항상 악동이 어디서 힘을 흡수해 오는 건지 궁금했고, 아마 학교 아래에 있는 교차점에서 쉬고 오는 거라고 추측했어요. 그럼 수정은 당연히 거기 숨겨져 있을 거고요. 추측이긴 하지만 도전해 볼 가치가 있었죠(참고: 고양이가 어떻게, 혹은 왜 마법을 흡수하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마법사들조차 이 의문을 풀지 못했죠. 이젠 우리 시대의 가장 신비로운 일이 돼 버렸네요).
다행히도, 제 계획은 성공했어요.
간신히요...
악동은 특별한 목적지가 없는 것처럼 느긋하게 동굴 속을 걸어다녔어요. 전 그런 고양이를 따라다니느라 몇 시간이나 터덜터덜 걸어야 했죠. 악동은 자주 멈춰섰고, 그럴 때마다 아무 이유 없이 드러눕거나 자신을 핥기도 했어요. 심지어 눈에 보이는 조약돌을 신경질적으로 할퀴어대기도 했죠.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었어요. 제가 왜 그걸 예상하지 못했을까요... 동굴 안에는 쥐가 가득했어요. 그러다 보니 구석에서 쥐가 튀어나올 때마다 악동은 냅다 달려 나가 쫓아다니기 일쑤였죠. 중간에 한 번은 털복숭이 악동이 통통한 쥐를 따라 좁은 구멍 속으로 사라진 다음, 30분이 넘게 돌아오지 않은 적도 있었어요. 그땐 그냥 물의 지팡이를 가져오지 않은 걸 후회하기도 했죠.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악동이 절 비밀의 공간으로 안내했어요. 근데 제가 기대했던 상황하고는 조금 다르더라고요. 남은 수정이 두 개밖에 없었거든요. 즉, 제가 뒤에서 두 번째로 찾아냈다는 뜻이었죠. 정말 기운이 쭉 빠지더라고요. 전 실망한 채로 동굴 밖으로 나왔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제 상황이 그렇게 나쁜 게 아니더라고요. 운이 더 안 좋은 사람도 있었거든요.
마지막 수정을 찾아와야 할 생도가 돌아오지 않았어요.
지하 통로에서 돌아오지 않은 생도는 저희 학년 중에 가장 나이도 많고 똑똑한 학생인 조리이카였어요. 선생님들은 해마다 한두 명 정도는 이런다며, 조금 늦을 뿐이라고 저희를 안심시키셨죠. 하지만 해가 저물 때까지도 조리이카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날 밤, 땅의 여제인 니나 피오라반티 님이 고학년 생도 몇 명을 데리고 수색을 나섰어요. 고학년 생도들은 고고학 수업에서 그 동굴에 관해 배웠기 때문에 다른 생도들보다 동굴을 잘 알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동굴엔 생도들이 모르는 통로가 가득했고 그러한 통로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깊은 곳까지 이어져 있었어요.
12시간에 걸친 노력 끝에 조리이카를 찾았어요. 하지만 조리이카는 다음 날 바로 아레투자를 떠났죠. 영원히요.
칼레나가 말로는 학교를 설립하신 클라라 라리사 드 윈터 교장 선생님이 조리이카를 정문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마차에 태우기 직전에 우연히 조리이카와 마주쳤대요. 칼레나는 조리이카가 평소의 활기찬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했어요. 얼굴은 허옇게 질려 있었고, 눈은 깊은 트랜스 상태에 빠진 것처럼 초점도 없이 공허해 보였다고 하더라고요. 좀 괜찮은지 물어보려고 해도, 조리이카는 들은 척도 안 했대요. 물론 정말 못 들었을 수도 있죠... 칼레나 말로는 조리이카가 겁에 질린 사람처럼 완전히 굳어 있었다고 했으니까요.
전 아직도 가끔 그 동굴을 생각하곤 해요. 아레투자 바로 밑에 있는 어둠 속에서 조리이카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아니면 무엇을 본 걸까요? 제 이모님을 포함해 선생님들은 그 사건에 대해 얘기하길 꺼리셨고, 누가 됐든 그 얘길 꺼내면 바로 야단치셨어요. 그 후로 지금까지 그 사건에 대해 아는 거라곤 딱 하나뿐이에요. 조리이카가 학교를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교장 선생님이 동굴로 가는 문을 모두 봉인하라고 명령을 내리셨다는 거죠. 그리고 다시는 마법 생도들에게 어둠 속에서 수정을 찾아오라는 과제를 주지 않으셨어요.
Chapter 4
제 지인이라면 제가 직접 부딪쳐 보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을 거예요. 이론 공부도 좋고, 관련 분야의 성적도 좋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론은 지식과 재능을 실제로 활용하는 게 아니니까요. 아레투자에서 보낸 시간 동안, 땅의 여제이신 니나 피오라반티 님이 이러한 실용적인 접근법의 중요성에 대해 알려 주셨어요.
땅은 배우기 꽤 까다로운 원소예요. 그래서 땅의 원소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은 여전히 매우 적고, 전 항상 그런 분들에게 존경을 표하죠. 땅의 원소를 배우기 힘든 건 땅의 원소가 비효율적이라서 그래요. 땅의 힘은 땅 자체의 구조와 마찬가지로 내부에 정체돼 있죠. 물, 공기, 불처럼 활발하게 움직이지 않아요. 그렇다 보니 마법의 힘으로 움직이려 해도 쉽게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자리로 옮길 수 없죠. 다시 말해, 힘을 끌어내려면 정말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경험이 적은 생도들에겐 거의 불가능한 일이에요.
공기 수업을 좀 듣고 나머지는 전부 물 수업을 들으며 1년을 보냈어요. 그쯤 되니 이제 저희가 땅의 원소의 기초를 배울 준비가 됐다고 하더라고요. 니나 님은 첫 수업인데도 저희를 데리고 근처 고고학 유적지로 데려가 발굴 보조 역할을 시키셨어요. 교육 과정 때문에 몇 달을 기초 개론 수업만 듣다가 나오니 정말 즐거웠죠. 그렇게 2주도 넘게 야외 수업이 진행됐어요. 가장 특이했던 점은 마법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매일같이 구덩이를 파고, 흙 속을 뒤지고, 찾은 물건을 분류하기만 했죠. 찾아낸 건 대부분 근처 야생동물의 사체에서 나온 작은 뼈였고, 가끔은 동전이나 쓸모없는 장신구도 나왔어요.
몇 년 후, 그 모든 노력이 전혀 의미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말이죠. 니나 님은 아레투자가 마법 생도 교육을 위해 처음 문을 연 그 순간부터, 모든 학급을 역사적 의미라곤 전혀 없는 같은 장소로 데려가셨거든요. 제가 4학년일 때, 사적인 모임에서 니나 님이 직접 말씀해 주셨어요.
첫 발굴 수업부터 니나 님은 제가 마음에 드셨던 모양이더라고요. 땅을 파라고 했을 때, 전 망설이거나 질문을 던지지 않고 바로 맨손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거든요. 다른 여자 아이들은 불평을 늘어놨지만, 전 옷이 끌리고 뭐가 묻어도 아무 말 없이 땅만 팠어요. 니나 님은 그런 제 모습을 기억하고 계셨죠. 그래서 몇 년 후에, 니나 님은 저에게 '정규 교과 외'라고 부르는 과제를 주셨고 다른 아이들에게 비밀로 하라고 하셨어요(그런데 칼레나한테 바로 말했던 것 같긴 하네요... 죄송해요, 니나 님). 물론 저는 우등생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 추가로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었죠(그땐 정말 엄청난 아첨꾼이었네요).
알고 보니 니나 님에겐 흙과 먼지의 원소 말고도 추가로 연구하시는 게 있었어요. 니나 님은 몇 년 동안이나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토르 라라의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고 계셨죠. 탑 정상에 너무나 불안정한 것으로 악명 높은 포탈이 있었거든요. 누구든 이 포탈을 타면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에 거의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죠. 사실 학생들은 아예 탑에 들어갈 수도 없었어요. 포탈이 강력한 마법장을 방출해서 주변 마법을 방해하고 있었거든요. 덕분에 근처에서 아주 간단한 마법만 사용해도 뭔가 불안정하고 위험한 마법으로 변질될 수 있었어요. 그래서 니나 님은 천천히 토르 라라의 토대와 가까운 가스탕 궁에 주변의 모든 마법을 억누를 수 있는 특별한 오라를 불어넣으셨죠. 마법을 시전할 수 없다면 마법이 변질될 일도 없을 테니까요. 사실 이 시도는 당시에 마법 공학적으로 정말 엄청난 업적이었어요
포탈
혹자는 포탈의 유용성을 높게 평가하지만, 포탈을 증오하는 사람도 있다.
제 역할은 전반적인 연구를 돕는 거였어요. 그래서 오라를 불어넣는 과정도 도와드리고, 여제님이 필요하신 것들을 모아 오기도 했죠. '하인'의 역할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신나는 일이라고 할 순 없는 역할이었지만,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과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이 저를 흥분시켰거든요.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고요. 그리고 니나 님의 호감을 얻기에 이보다 좋은 일도 없을 테니까요.
가스탕 궁에서 늦은 저녁 식사를 할 때, 니나 님은 1학년들에게 시키셨던 고고학 발굴 수업이 의미 없는 것이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니나 님은 크게 웃으시며 정말 재밌었다고 말씀하셨죠. 하지만 그와 동시에, 생도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그 발굴 현장에서 절대 값진 걸 찾을 수 없었을 거라며 슬퍼하셨어요. 그래서 전 니나 님께 그 수업에 대해 여쭤봤죠. 니나 님은 그 수업의 진정한 의미를 말씀해 주셨고, 그 말은 지금까지도 저에게 큰 의미가 있답니다.
"충분한 시간과 인내심만 있다면, 느리더라도 누구나 산을 옮길 수 있단다."
그것이 바로 땅의 원소를 다루는 자의 마음가짐이자 니나 님이 어린 생도들에게 가르치고 싶었던 자세였어요. 니나 님은 보물이나 잊힌 비밀을 찾아내라고 발굴 수업을 진행하신 게 아니셨어요. 오히려 그런 걸 찾아냈다면 수업의 의미가 퇴색됐겠죠. 니나 님은 저희가 인내심과 부단한 노력, 의지의 중요성을 느끼길 바라셨던 거예요. 노력해도 얻는 게 매우 적을 수도 있다는 걸요.
"마법사가 자신이 선택한 원소를 연마하려면 백 년이 걸린단다. 그리고 선택한 원소에 통달하려면 또 백 년이 걸리지. 순간의 만족에 취해 발전을 게을리하면 평생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없단다."
전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종종 이 말을 떠올리며 아직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생각하곤 해요.
"니나 님, 위대함도 좋지만 인생엔 다른 것도 많지 않을까요..."
니나 님은 절 비웃으실 거예요. 아니면 그냥 웃으실 수도 있고요.
Chapter 5
제 힘의 개방은 염동력(불쌍한 스태멜포드에게 말똥을 날렸었죠)과 연관이 있었기 때문에, 전 항상 제가 공기에 가장 재능이 있고 공기를 제일 잘 다루게 될 거라 생각했어요.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었죠(물론, 나중엔 다른 원소까지 모두 잘 다루게 되고요!).
그래서 유명한 소서리스인 아그네스 님(공식 명칭으로는 공기의 여제 글랜빌의 아그네스죠) 밑에서 공기의 원소를 배우게 됐을 땐 정말 신났어요. 전 이모님 말고 아그네스 님하고도 꽤 친한 사이였거든요. 제 기억에 아그네스 님은 아주 옛날부터 오로라 이모님을 자주 찾아오셨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어린아이일 때부터 자주 뵙게 됐죠. 이렇게 말하면 저한테 아레투자에 발을 들여놓기 전부터 공식적으로 마법 훈련을 받은 거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아그네스 님과 오로라 이모님에게 받았던 즉흥 교육과 두 분이 들려주셨던 깨달음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전혀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니까요.
저는 꽤 특별한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그건 저도 인정해요. 남들보다 행복하고 건강한 데다, 딱히 바라는 것(아레투자에 입학하는 거 빼고요)도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인제 와서 생각해 보면, 제 어린 시절이 특별했던 이유는 무엇보다 마법사 세계에서도 가장 유명한 두 명의 마법사와 계속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평범한 6살짜리 꼬마라면 절대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만남이죠. 이모님에겐 조금 무례한 발언일 수도 있는데... 오로라 이모님도 유명하고 존경받는 분이긴 했지만, 아그네스 님은 훨씬 더 대단한 존재였어요. 아시다시피, 살아있는 전설이죠.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법사는 전부 남자였어요. 다들 잘 아는 사실이라 별로 놀랍지도 않겠죠. 사실 마법의 힘을 다룰 수 있는 여자도 있었지만, 대부분 '치유사'나 '약초사'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무시당하기 일쑤였어요. 인간 마법사가 된다는 건 특권층이 된다는 의미였고, 선택받은 소수의 (남자) 인간만이 (남자) 동료들에게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때, 아그네스 님이 등장하신 거예요.
아그네스 님은 의도치 않게 맹렬한 돌풍을 소환해서 매우 어린 나이에 힘의 개방을 겪었어요. 소문에 따르면, 그 돌풍은 미친 듯이 몰아치는 폭풍이 되어 작은 해안가 마을을 날려 버렸대요. 전 이 이야기가 조금은 과장된 거라고 믿지만, 그런 생각을 누구한테 말하고 다니진 않을 거예요. 어쨌든, '기적의 아이'가 등장했다는 얘기는 곧 널리 퍼졌고, 지암바티스타(얀 베커, 제프리 몽크와 함께 노비그라드 조합을 만든 건축가 중 한 명이죠)의 귀에도 들어갔어요. 지암바티스타는 마법의 자질(마법사들 말로는 '원천')을 지닌 어린 소녀를 열심히 찾아다녔어요. 그리고 소녀의 어머니에게 두둑한 돈을 주고 아이를 사 온 뒤에, 마법 시험(나중에 반 아드의 입학시험에도 쓰였답니다)을 진행했죠.
시험을 받았던 다른 아이들과 달리, 아그네스 님의 천부적인 재능은 지암바티스타를 놀라게 했어요(이건 확실해요. 지암바티스타가 정말 '깜짝 놀랐다'고 아그네스 님이 여러 번 말씀하셨거든요). 그렇게 소녀는 몽크, 베커, 그리고 지암바티스타의 지도 아래 마법의 기본을 배우기 시작했죠.
얼마 지나지 않아, 몽크는 '선택받은 아이들'이라며 재능 있는 아이들을 모았어요. 그중 여자아이는 아그네스 님뿐이었죠. 몽크는 오늘날 폰타르라 불리는 아본 이 폰트 아르 그웬엘렌에서 출항하여 록 무인으로 향했고, 거기서 엘프 소서리스들을 설득해 어린아이들에게 고대 종족의 마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아그네스 님은 명성을 드높이고 소서리스(아그네스 님은 '마법사'라고 하셨지만요)라는 지위를 얻은 최초의 여성(당시엔 소녀)이 되셨죠.
제가 아는 건 여기까지예요. 아그네스 님한테 푸른 산맥의 현자 얘기 좀 해 달라고 수도 없이 부탁했는데, 아그네스 님은 제가 부탁할 때마다 "다음에 얘기하자"라면서 대답을 피하셨어요. 아그네스 님이 그때의 일을 떠올리는 걸 왜 그렇게 싫어하시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다음에 만나면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얘기를 듣고 말 거예요(술이 좀 들어가면 마음이 변할 수도 있겠죠...?).
그래서 아까도 말했지만, 저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그렇게 대단한 여성(물론 이모님도요!)에게 가르침을 받는다니 당연히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죠. 제가 마법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죠. 오로라 이모님은 종종 이렇게 말씀하셨죠. '네 재능을 썩히는 건 재능이 없는 자들에겐 모욕과도 같은 일이란다. 너에겐 너무나 많은 선택지가 있으니 올바른 것을 고르렴.'
그렇게 저는 끊임없이 제 실력을 갈고닦았어요. 그게 제 의무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뭐, 인제 와서 보면 제가 짊어져야 할 짐이었지만요.
Chapter 6
마법은 잘 사용하면 정말 유용하지만, 그만큼 위험한 것도 사실이에요. 특히 경험이 부족한 마법사가 시전하는 불 마법이라면 더더욱 위험하죠. 불은 가장 예측하기 힘든 혼돈의 원소니까요. 사실, 마법 생도들은 자신과 주변의 안전을 위해 대부분 불의 원소를 잘 사용하지 않아요. 엄청난 고통을 감내할 자신이 없다면, 불의 원소를 다루는 훈련은 최대한 미루는 게 좋을 거예요. 저는 불의 여제이자 아레투자의 선생님이셨던 클라라 라리사 드 윈터 님의 첫 수업을 들으며 이 사실을 알게 됐죠.
클라라 님은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차갑고 무관심한 분이셨어요. 그래서 신입 마법 생도들에게 최대한 적은 시간을 할애하려 하셨죠.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클라라 님이 학생 지도에 소홀하셨다고 오해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건 아니었죠. 놀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드 윈터 님은 학교의 설립자셨고 학교의 평판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셨어요. 또한, 남성과 여성이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하고, 마법적 자질이 있는 남성을 위해 반 아드라는 학교가 있듯이 마법적 자질이 있는 여성에게도 반 아드와 같은 학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셨죠. 그렇게 아레투자가 설립된 거예요.
마침내 클라라 님의 지식을 전수받게 됐을 때, 클라라 님은 유난히 무뚝뚝하셨고 전보다 더욱 냉담한 반응을 보이셨어요. 첫 불의 원소 수업 때, 클라라 님은 평범한 학생들을 가르칠 시간이 없기 때문에 가장 똑똑하고 우수한 학생만 가르치겠다고 말씀하셨죠. "너희 중 한 명..." 클라라 님은 입을 꽉 다문 채 차갑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저희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가셨어요. "너희 중에 딱 한 명만 가르칠 거야."
예상하셨겠지만, 저는 꼭 그 한 명이 돼야겠다고 결심했어요(저 말고 또 누가 있나요?). 드 윈터 여제님은 불의 원소에 대한 환상을 깨뜨리기 위해 이렇게 말씀하시긴 했지만요.
'화상을 입게 될 거야. 수도 없이. 그 고난과 역경을 견뎌 내야 해. 불의 원소를 불러낼 때마다 넌 죽음의 무도를 추게 될 거야. 숙련도에 상관없이, 불은 이미 수많은 마법사의 목숨을 앗아갔으니까. 조심하지 않으면 불이 네 목숨도 앗아가게 될 거야.'
틀린 말씀은 아니었어요. 불의 원소를 불러내는 건 쉬웠지만, 그 힘을 제대로 다루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죠. 불은 원래 불규칙한 원소예요. 그런데도 그 안에 막대한 양의 에너지가 담겨 있다 보니, 자칫하면 에너지가 급격히 증가하거든요. 그렇게 되면 통제할 수가 없어요. 그동안 정말 많은 마법사가 그 힘을 제어하지 못해서 산 채로 화염에 휩싸였죠. 거기서 살아남은 사람 중에는 그 순간이 순수한 쾌감을 느낄 수 있는 혼돈과 파괴의 시간이었다며, 그런 막대한 힘을 다시 느낄 수만 있다면 자신과 타인 목숨 따윈 신경 쓰지 않겠다는 뻔뻔한 말을 내뱉곤 하죠. 역시 강력한 힘이 주어지면 그만큼 타락하기도 쉬워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클라라 님의 이야기를 듣고도, 네 가지의 주요 원소를 모두 잘 다루고 싶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어요. 적어도 클라라 님의 수업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을 알기 전까지는요. 그 순간이 바로 클라라 님이 처음으로 미소를 보여 주셨던 때였어요. 사실, 미소보다는 불길한 웃음에 가깝긴 했죠. 클라라 님은 아주 신중하게 천천히 팔을 뻗더니 손을 펼쳐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게 만드셨어요.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죠.
"누구든 내 손을 잡는다면 제자로 받아 주마."
그 말과 함께, 클라라 님은 기이하게 손가락을 움직이셨어요. 그러자 클라라 님의 손이 붉은색과 주황색으로 밝게 빛나기 시작했죠. 클라라 님의 손은 불타올랐고, 피부엔 물집과 화상 자국이 생기더니 이내 검게 변해서 녹아내렸어요. 하얗고 섬세한 손가락이 있던 자리엔 녹아내린 다섯 손가락이 지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연기를 뿜어대고 있었죠.
클라라 님의 의도는 확실했어요.
"불의 원소를 다루고 싶은 자는 불타오를 각오를 해야 한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어요. 대부분은 몇 초 동안 숨도 못 쉴 정도로 굳어 있었죠. 개론 수업에서 이런 걸 보게 될 거라곤 다들 상상도 못 했을 테니까요.
다른 여자애들이 뭔가 눈속임일 거라고 생각했어도 뭐라고 안 했을 것 같아요. 그 정도로 충격적이었거든요. 하지만 전 눈속임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클라라 님의 눈을 봤거든요. 클라라 님은 정말 진지하게 말씀하고 계셨어요. 적어도 이 정도 결심은 필요하다는 거였죠. 그래서 저도 어쩔 수 없더라고요. 행동으로 보여드려야 했죠. 그래서 잠시 머뭇거리다 앞으로 걸어가서, 클라라 님의 검게 타버린 손을 향해 조심스럽게 천천히 손을 뻗었어요. 사실, 이 정도로 충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드 윈터 여제님께서 제 결심을 보고 만족하시길 바랐죠.
하지만 클라라 님은 움직이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유리같이 차갑고 감정 없는 눈을 움직여 저를 바라보셨죠. 그리고 기다리셨어요...
결국 제가 움직일 수밖에 없었죠...
전 눈을 감고 클라라 님의 손을 꼭 잡았어요. 그리고 비명을 질렀죠.
Chapter 7
네 왕국에는 유명한 마법사 학교가 두 곳 있어요. 반 아드는 케드웬의 마법사를 위한 학교고, 아레투자는 테메리아의 소서리스를 위한 학교죠(언젠가 성별 구분이 없어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성별 구분이 있어요). 인간의 본성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쉽게 추측할 수 있겠지만, 설립 이래로 두 학교의 경쟁 관계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두 학교의 교사들은 정기적으로 만나서 마법과 관련된 중요한 사안이나 마법의 용도에 대해 의견을 나누곤 해요. 북부 왕국의 정치 상황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고요. 하지만 대화의 주제는 대부분 잡담이나 자신의 학교가 이뤄낸 성공을 자랑하는 거예요. 저도 반 아드의 학생을 많이 만나 봤어요. 그래서 겸손함 따위는 집어치우고, 학술적으로 봤을 때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보다 우수한 성적을 거둘 때가 훨씬 많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죠. 하지만 진정한 경쟁 요소는 시험이나 그 결과 같은 게 아니에요. 절대 아니죠. 두 학교의 학생들은 해마다 열리는 혼돈의 충돌(학생들이 붙인 비공식 명칭)에서 승리한 자만이 당당히 자신의 학교를 자랑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반 아드 교사
반 아드 녀석들이 이뤄낸 성과를 아레투자 마법 생도들하고 종종 비교해보는데, 내 보기엔 그 여인들이 더 나은 것 같단 말이지.
반 아드 학생
케드웬 정보부는 반 아드에서 인원을 꽤 많이 모집해. 그래서 퇴학당한 수많은 학생이 비밀 정보부에 빠르게 영입되곤 하지.
두 학교의 학생들은 해마다 학술적, 신체적 기량을 뽐내기 위해(혹은 결판을 짓기 위해) 만남의 자리를 가져요. 전년도 우승자 측이 이 만남을 주관하는 영예를 누리게 되죠. 어느 쪽이 더 많이 이겼는지는 까먹었지만, 이거 하나만은 확실해요. 바로 두 학교의 실력이 매우 비등비등하다는 점이죠. 아레투자의 소녀들은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매우 기뻐하곤 해요. 반 아드의 소년들이 이 경쟁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잘 알고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아레투자의 학생들은 다른 모든 수업보다 혼돈의 충돌을 위한 훈련을 우선시해요. 그래서 아레투자가 더 좋은 결과를 내곤 하는 거죠.
마법을 쓴다는 거 말고는 별로 특별할 거 없는 만남이에요. 세계 어느 곳을 가도 비슷한 행사가 열리고 있으니까요. 선의의 경쟁을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잖아요. 혼돈의 충돌은 3일간 진행돼요. 두 학교의 학생들은 물약 만들기와 문제 풀이부터 장애물 달리기와 결투까지, 다양한 활동과 행사에 참여하게 되죠. 그중에서도 결투는 이 대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가장 유명한 행사랍니다. 그렇게 점수를 계산한 뒤에 승자는 재능 있는 자와 기교 있는 자의 트로피(혹은 '충돌의 트로피')를 받게 되죠. 그러고 나서 배불리 먹고, 춤추고, 뛰놀고, 축하하고, 다독이며 밤을 보내는 거예요. 1년 중에 가장 신나는 기간이라, 제가 학생이었을 때는 행사가 열리기 몇 주 전부터 학교가 시끌벅적했어요. 지금도 그럴 거 같지만요.
서로 힘을 합치는 게 행사의 주요 목적이다 보니 대부분의 학생이 어떤 식으로든 혼돈의 충돌에 참여하지만, 가장 중요한 대결에서는 팀으로 경쟁하지 않아요. 전부터 그래 왔듯이, 일대일로 승부를 가리거든요. 두 학교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이 각각 아레투자의 승자와 반 아드의 승자로 선정되어, 두 마법 생도가 조금은 위험하지만 스릴 넘치는 결투를 펼치죠. 이 최종 결투의 승자는 정말 많은 점수를 받기 때문에,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은 이 결투로 행사의 승자가 정해져요. 그렇기 때문에, 결투자들은 크나큰 부담을 안고 결투에 임하게 되죠.
아레투자에서 3학년이 됐을 때, 드 윈터 여제님은 저를 아레투자를 대표할 결투자로 선정하셨어요. 1학년과 2학년 때는 야나가 아레투자의 승자로 결투에 참여했기 때문에, 야나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야나가 화내는 모습은 평소에도 정말 많이 봤어요. 하지만 제가 토너먼트의 피날레에서 학교를 대표할 학생으로 선정됐을 때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화내는 모습은 처음 봤죠. "쟤가 아레투자를 대표하는 얼굴이라고?! 심지어 예쁘지도 않은데?!"
틀린 말은 아니었어요. 전 예쁘지 않았으니까요. 전 지금도 저를 저답게 만들어주는 여러 결점을 그대로 가지고 있거든요. 학교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전 마법으로 제 외모를 바꾼다는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외모는 건드리지도 않았죠.
하지만 야나는 누구보다 먼저 외모를 고쳤어요. 전 외모를 고치기 전의 야나를 본 적이 없지만, 소문에 따르면 온몸에 반점이 가득하고 뻐드렁니가 삐져나와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야나의 모습을 본다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죠. 지금 야나의 흰 피부는 도자기처럼 곱고, 미소는 초상화처럼 완벽하고, 적갈색의 긴 머리는 야나의 균형 잡힌 아름다운 얼굴이 한층 더 돋보이도록 자연스레 흘러내리거든요. 간단하게 말해서, 결점이라고 생각될 만한 모든 요소를 완전히 제거해 버린 거죠. (그 '마법'이 없다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긴 해요... 뭐, 그래도 예쁘겠죠. 좀 더 자연스럽게 말이에요.)
언제나 제 편이었던 칼레나도 매일같이 저한테 말했어요. "그냥 바꿔 보라니까!" 하지만 전 저라는 사람이 좋았고, 거울을 볼 때마다 거울 속의 제가 저를 바라보는 것도 좋았어요. 웬 낯선 사람이 멋진 얼굴로 제 행동을 흉내 내는 게 아니라요. 그래서 전 외모를 고치지 않았어요(어차피 나중에 마음이 바뀌면 그때 가서 외모를 고쳐도 되니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죠).
어쨌든, 야나가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쳐도 변하는 건 없었어요. 이미 저를 선택하셨고, 클라라 님은 자신의 결정을 그리 쉽게 바꾸는 분이 아니셨거든요. 그것도 견습생의 요청이라면 말 다 했죠. 그러니 이미 결정된 일이었어요. 그렇게 해마다 열리는 혼돈의 충돌 토너먼트에서 제가 반 아드 최고의 학생과 결투를 벌이게 됐어요.
당시의 저는 제 실력을 믿었어요.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죠. 단 한 순간도요.
그게 바로 자만심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Chapter 8
혼돈의 충돌 행사의 대미를 장식했던 결투는 제가 아레투자를 다녔던 기간 중에 제일 창피했던 순간일 거예요(불행하게도 이보다 화나는 순간은 따로 있었어요). 저는 게레온이라는 키 작은 아이와 결투를 하게 됐는데, 정말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녀석이었어요. 얼굴에서 자신감으로 가득한 비웃음이 한순간도 떠나질 않았거든요.
다른 소년도 많은데, 하필 이런 애한테 지다니!
혼돈의 충돌 행사가 몇 주 앞으로 다가오자, 클라라 님이 직접 일대일로 매일같이 훈련을 지도하셨어요. 정규 수업은 수업대로 하고, 훈련은 훈련대로 했죠. 심지어 클라라 님이 다른 일 때문에 바쁘실 땐, 야나가 절 돕겠다며 자원하기도 했고요. 야나는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죠. "아무리 그래도 아레투자의 승자가 학교 이름에 먹칠을 하게 둘 순 없잖아." 기운을 북돋아 주는 친근한 목소리였죠. 야나는 화가 풀린 뒤에(아니면 조금 진정된 뒤에) 저를 정말 많이 도와줬어요. 개인 시간까지 할애하며 제 훈련을 도와줬죠. 하지만 그 모든 조언과 도움도 절 기다리고 있는 결투를 준비하기엔 부족했던 것 같아요.
게레온은 이전 대결에서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마법을 사용했어요. 다들 놀란 듯했죠. 알고 보니 게레온은 환상을 만드는 데 소질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눈속임으로 저를 떨어뜨리려 했죠. 결투가 시작되자마자 수많은(최소 12명은 되는) 게레온의 환상을 상대해야 했는데, 어떤 게 진짜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요. 너무 당황해서 아레투자와 반 아드의 학생들 앞에서 멀뚱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죠. 이리저리 눈을 굴려 봐도, 절 쳐다보고 있는 수많은 얼굴엔 하나같이 자신감으로 가득한 비웃음뿐이었어요. 제 공격이 빗나갈 때마다 사방에서 절 놀려대는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죠.
얼마 지나지 않아, 전 힘을 다 써버렸어요. 상대 앞에서 손쉬운 표적으로 변해 버린 거죠. 진짜 게레온은 강력한 공기를 발사해 절 돌기둥으로 날려 보냈어요. 너무 아파서 소리도 못 내고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었죠. 네, 그냥 그렇게 끝났어요. 게레온의 활약 덕분에, 반 아드가 아주 작은 점수 차이로 혼동의 충돌에서 승리했죠. 그리고 전 엄청난 자기 연민에 빠졌어요. 저 자신이 너무나 초라해진 것 같아서, 너무 부끄럽고 마음이 아팠죠.
"항상 예상치 못한 일에 대비해." 게레온과 제가 주고받은 말은 이것뿐이었어요. 결투가 끝난 뒤 게레온이 저를 일으키며 말했죠. 그것도 한쪽 입술과 눈썹을 삐죽이면서요. 자신감으로 가득한 의기양양한 얼굴이었죠. 당시엔 그 말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어요. 아, 지금도 그래요. 모르는 걸 어떻게 대비할 수 있겠어요? 말이 안 되잖아요! (물론 제가 결투하기 전부터 너무 자신만만하긴 했죠... 그런 태도를 경고하는 말이었을까요? 하지만 게레온의 태도를 봤을 때, 그런 의미로 말한 거라면 정말 아이러니하네요.)
그날 밤, 저는 토너먼트가 끝난 뒤에 열리는 연회에 참석하지 않았어요. 완전 풀이 죽어 있었죠. 그래서 의기소침한 채로 제 방에 숨어 있었어요. 저를 조롱하는 반 아드 소년들로 가득한 연회실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불안하고 짜증이 났거든요. 하지만 그것보다 학교 친구들을 만나야 한다는 건 더 끔찍했어요. 폐회식이 끝나고, 전 오로라 이모님도 피해 다녔어요. 저한테 무슨 말씀을 하실지 정말 상상도 하기 싫었거든요. 아마 이렇게 말씀하실 거라 생각했어요. "알리사, 난 화난 게 아니란다. 그저... 조금 실망했을 뿐이지." 생각만 해도 진짜 죽을 만큼 무서웠어요. (하지만 나중에 실제로 얘기했을 땐, 훨씬 더 위로해 주시는 말투로 말씀해 주셨어요. 그제야 깨달았죠. 혼자 상상하는 것보다 직접 부딪쳐 보는 게 훨씬 좋을 때가 많다는 걸요.)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칼레나는 반 아드 학생 한 명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연회장에 나타나지 않자, 그 학생과 어울리는 게 아니라 기운이 빠져 있는 저를 찾아왔어요. 그리고 저녁 내내 절 위로해 줬죠. 음, 처음엔 그랬어요. 하지만 제가 계속 슬퍼하기만 하니까 칼레나가 진짜 의외의 행동을 했죠. 절 꾸짖더라고요.
"아, 적당히 좀 해, 바보야. 살면서 항상 최고가 될 순 없는 거야. 이모님이 그런 얘기는 안 해 주셨어? 참 나, 하나도 제대로 못 하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넌 네 또래 중에 최고잖아. 나도 인정해. 넌 진짜 똑똑하고 의지도 강하니까. 그리고 세상과 마법에 대해 아는 것도 많지. 근데 솔직히 말할까? 넌 너무 거만해. 충격적인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세상은 널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아. 잠시라도 좋으니, 남들을 놀라게 하려고 하지 말고, 너 자신을 증명하려고도 하지 마. 그냥... 너는 너답게 행동하면 돼. 너 자신을 즐기라고. 네가 행복하지 않다면, 이 세상 모든 칭찬이 무슨 소용이겠어?"
칼레나가 한 말 때문에 그렇게 놀란 건 처음이었어요. 칼레나가 저한테 깨달음을 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정말 한 방 맞은 기분이었죠. 그것도 아주 세게요.
칼레나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빠져 있는데, 칼레나가 같이 홀로 내려가자고 했어요. 홀에서는 아직 연회가 한창이었죠. 평소와 다르게 칼레나가 엄청 완강한 태도여서, 전 두말하지 않고 칼레나를 따라갔어요. 그리고 어떻게 됐을까요? 아무도 절 비웃지 않았어요. 절 탓하지도 않았고요. 화난 사람도 없었죠(물론 저 빼고요). 그리고 기억에 남을 만큼 정말 멋진 밤을 보냈어요.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그때 칼레나와 나눈 대화가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됐어요. 덕분에 다른 사람의 기대에 휘둘리지 않고, 살면서 처음으로 제가 누구고 제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거든요. 그렇게 처음으로 제 '운명'에 대해 고민하게 됐죠.
Chapter 9
제가 아레투자를 다니는 동안 원소의 달인이라 불리는 얀 베커가 몇 번이나 아레투자에 방문하곤 했어요. 물론, 대부분의 경우엔 반 아드의 남자애들을 도와 충돌 컵에 참여하기 위해서였죠. 그러다 아레투자가 압승을 거둔 어느 날, 베커는 떠나지 않고 한 학기 동안 아레투자에서 강의를 열기로 했어요. 첫 강의 시간에, 베커는 충돌 컵에서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소녀들을 봤다고 얘기했어요. 그리고 그 아이들이 '진정한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게' 좋은 강의를 하겠다고 말했죠. 물론 저는 그게 단순한 눈속임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베커는 여제들의 실력을 보기 위해 온 거라 생각했죠. 물론, 다루기 힘든 반 아드의 남자애들하고 정반대인 아레투자의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육성했는지 궁금하기도 했을 거고요(정말 이런 의도도 있었다면, 이건 실패했다고 봐도 되겠지만요).
마스터 베커를 잘 모르시는 분들에겐, 마스터 베커가 첫 수업에서 한 얘기를 전해드리면 될 거 같네요. 마스터 베커의 전체적인 사상과 마법 교육에 대한 접근법을 알 수 있거든요(전체 강의를 다 말씀드리긴 힘들 것 같기도 하고요. 노트 필기를 하느라 양피지를 거의 20장이나 썼거든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하지 않는 학생이라면, 한마디로 재능 있는 자와 기교 있는 자의 챕터의 수치라고 할 수 있다. 실력을 키우고, 더 높은 경지에 이르고, 그것을 다시 뛰어넘으며, 우리의 선대를 넘어서는 새로운 기준을 달성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잊지 말도록. 마법사가 된 이상, 이에 미달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우리 동료들에게 단점이 보이면, 응당 그 점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우리의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더 나은 형태로 바꾸기 위해선 힘을 기반으로 연대하고 결속해야 하며..."
보시다시피 정말 열정적인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베커가 이뤄낸 업적을 보자면 그럴 만도 하죠. 그래도 그때는 베커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어요. 계속 듣고 있자니, 이모님이 가르쳐주신 것들이 자꾸 떠올랐거든요. 지금 돌아보면 정말 한심하고 왜곡된 가치관이 담긴 말인데, 당시엔 그냥 무시하려 해도 제 안의 무언가가 꿈틀거리더라고요. 마스터 베커의 말이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어요. 그리고 전 (멍청하게도) 베커의 조언을 충실히 따라야 하며, 마법사로서 제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제 가장 친한 친구인 칼레나를 찾아가서 칼레나의 '단점'(하, 지금은 이 단어를 적고 있기만 해도 부끄러울 정도네요)에 대해 얘기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렇게 전 칼레나와 나란히 앉아 실력을 더 갈고닦아야 한다고 말했어요. 부족한 면(정말 무례하지만 부족한 게 많다고도 지적했죠)을 개선하려면 더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고, 열심히 해야 한다고요. 아직도 그 말을 들은 칼레나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불쾌하다거나 화난 얼굴이 아니었죠. 사실, 그런 거랑은 아예 다른 표정이었어요. 칼레나는 잘난 척하는 제 헛소리를 의외로 잘 받아들였어요. 칼레나의 표정은... 다른 무엇보다 놀라움에 가까웠어요.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그렇게 거만한 태도로 말을 꺼낼 거라곤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죠(제가 정말 왜 그랬을까요...)
칼레나는 제 말을 받아치지 않고(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만했지만) 이 사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찬찬히 설명해 줬어요.
"난 세상을 여행하고 싶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돕고 싶어. 위대한 업적이나 과학적 한계를 뛰어넘는 발견 같은 거엔 관심이 없어. 그런 야망은 야망가들이 달성할 수 있게 기꺼이 넘겨줄래. 너나, 마스터 베커나, 야나나, 아니면 다른 누구에게라도 말이야. 난 이미 남을 도울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을 갖추고 있어.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됐지. 그러니 그들을 도울 거야. 그렇게 결정했어. 이제 곧 드윔비앤드라가 돼서 세상을 여행할 텐데, 여행하며 만나는 모든 이를 돕고 싶어. 그리고 한마디만 더 하자면... 아마 안 돌아올 수도 있어."
드윔비앤드라
안식처에 머무는 사람도 있지만 떠나는 이도 있다.
운명이란 놈은 가끔 사람의 욕망을 아주 말도 안 되게 잔인한 방법으로 받아들이곤 하죠.
"... 아마 안 돌아올 수도 있어."
아직도 혼자 있을 때면, 그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아요. 옛 생각을 떠올릴 때도 그렇고요. 그리고 계속 생각하게 돼요. 제 멍청하기 짝이 없는 언행 때문에... 칼레나의 말이 가장 끔찍한 방법으로 실현된 건 아닐까 싶어서요.
Chapter 10
"우린 우리의 가장 약한 연결 고리만큼 강할 뿐이다. 그렇기에 우린 우리와 비슷한 기량이나 잠재력을 지닌 자들과 함께해야 한다. 홀로 모든 짐을 안고 날아오를 순 없기 때문이다."
베커의 또 다른 격언이에요. 왜곡된 영광으로 가득한 헛똑똑한 말이죠. 제가 칼레나와의 우정을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절망에 빠뜨린 순간 떠오른 말이기도 하고요.
"미안, 칼레나. 너랑은 이제 친구로 지낼 수 없을 것 같아." 전 정색하고 차갑게 말했어요.
근데 진심은 아니었어요. 정말이에요. 그냥 칼레나한테... 제 말이 자극이 됐으면 했던 거예요(네, 이제는 알아요. 감정적 협박이었죠). 칼레나는 제 불평을 잘 받아줬기 때문에, 전 칼레나가 제 멍청한 말을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일 줄 몰랐어요. 하지만 그다음... 제가 다음에 했던 말이 칼레나한테는 정말 충격이었을 거예요.
"아레투자를 떠나고 싶다고? 그럼 떠나! 뭘 망설이는 건데? 어차피 아레투자에 너 같은 애는 필요 없어!"
다시 말하지만, 정말 진심이 아니었어요. 그냥 저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흥분한 상태였고, 화가 나서 공격적이었던 것뿐이에요(말싸움 중엔 다들 그렇잖아요, 그쵸?). 더 잔인한 말들이 오고 갔지만, 그 얘기는 이쯤 하고 넘어갈게요. 하, 그게 아마 최악의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그나마 상황을 나아지게 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린 거죠. 그리고 그때는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서 지금보다 훨씬 끔찍한 기억이었어요. 하지만 그 대화가 끝나던 순간은 똑똑히 기억해요.
칼레나는 제 차가운 말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눈물을 흘리며 일어나 어딘가로 달려갔어요. 아직도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칼레나는 토르 라라로 향했어요(아마 출입이 금지된 곳이니 거기라면 사람들이 자길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리고 전 마지막 실수를 하고 말았죠...
그냥 내버려 둘 순 없어서 저는 칼레나를 따라갔어요. 그리고 칼레나와 대화하려고 했죠. 아마 그게 칼레나를 궁지에 몰아넣은 것 같아요. 칼레나는 저랑 얘기하기 싫다고 했어요. 혼자 있고 싶다고 했죠. 그리고 저한테서 멀어질 방법은 딱 하나뿐이었어요... 위로 올라가는 거였죠. 그렇게 칼레나는 그 악명 높은 포탈이 있는 탑의 상층부로 올라갔어요. 전 계속 칼레나를 따라갔고, 칼레나를 내버려 두지 않았어요. 제가 직접 저한테서 벗어날 유일한 출구를 알려준 셈이죠...
제가 칼레나를 멈추기도 전에, 칼레나는 포탈에 힘을 불어넣었어요.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왜곡된 빛이 일렁이는 포탈 속으로 발을 디디더니 그 너머에 펼쳐진 광활한 혼돈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죠.
눈이 멀 정도로 밝은 빛이 잠깐 반짝였고, 칼레나는 사라졌어요. 영원히요.
그 버림받은 포탈의 다른 편에선, 어떤 운명이 칼레나를 기다리고 있었을까요? 대부분은 칼레나가 죽었을 거라고 했어요. 수백만 개의 작은 원소로 분해돼서 원소의 영역에 흩뿌려졌을 거라면서요. 사람이 살기 힘든 머나먼 땅에 떨어졌을 거라는 의견도 있었어요. 거기서는 살아남기 힘들 거라면서요. 하지만 정답은 아무도 모르는 거였죠. 누구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고, 따라갈 방법도 없었어요(물론, 드 윈터 님이 승인해 주시지도 않았겠지만, 승인하셨다고 해도 방법이 없었죠). 포탈은 너무나 불안정해서 예측이 불가능했으니까요. 다들 동의할 수 있는 사실은 칼레나가 사라졌다는 것뿐이었어요. 그렇게 며칠이 몇 주가 되고, 몇 달이 되고, 몇 년이 된 후에야 고통스럽지만 다들 슬픈 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요. 칼레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진실을요.
하지만 그 끝없는 슬픔 속에서도 일말의 희망이 모습을 드러냈어요.
멜리텔레의 사원: 신도
이곳 엘란더에서 우리 여신도들의 침묵 서약을 암묵적인 동의로 착각하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칼레나가 뒤틀린 포탈에 들어가고 몇 년 뒤에, 저를 비롯한 아레투자의 상급생 무리가 엘란더의 작은 마을을 방문했어요.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에 멜리텔레의 신전에서 오신 여사제님 몇 분도 함께하셨죠. 마을 사람들은 치명적인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었고, 치료가 불가능한(마법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사람들의 경우엔 마지막 순간만이라도 편하게 보내드려야 했어요.
고통받던 환자 한 분이 저한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여행하는 마법사(저희끼리는 '드윔비앤드라'라고 부르죠)가 작년에 이 마을을 방문했고, 며칠간 머무르면서 작물을 기르고 양털도 깎아주며 마을 사람들의 일을 도와줬다고요. 그러면서 자기가 만났던 사람 중에 제일 친절한 여자였지만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그래도 'ㅋ'으로 시작하는 건 확실하다고 하셨죠(케이든, 케일라, 키나... 뭐 그런 이름이라고 하시더군요).
그거면 충분했어요.
그거면 저한테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죠.
저도 잘 알아요. 그 마법사가 칼레나일 확률은 매우 낮겠죠. 하지만 아예 희망이 없는 것보단 낮은 확률이라도 있는 게 낫잖아요? 그래서 전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었어요. 제 친구가 이 드넓은 세상 어딘가에서 사람들을 돕겠다는 자신의 꿈을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죠. 위대한 업적을 통해서가 아니라, 친절하고 정다운 태도로 느리더라도 계속 남을 도우며 세상을 바꾸는 것... 제 친구 칼레나가 할 법한 일이잖아요.
정말 그렇게 된 거였으면 좋겠어요. 그게 사실이라면 어쩌면... 정말 어쩌면, 언젠가는 저희 운명이 다시 겹치게 될 수도 있잖아요. 그럼 저희 사이를 바로잡고 싶어요.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Chapter 11
저는 생각보다 훨씬 일찍 아레투자를 떠나게 됐어요. 사실 제가 학교를 그만뒀기 때문이죠.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지만, 전 지금까지도 그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해요.)
돌이켜 보면, 오래전부터 그렇게 결정된 거나 다름없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저는 성공이란 달콤한 영광에 눈이 멀었어요. 이모님은 저에게 어떤 사람이 돼야 하는지 말씀하시곤 하셨죠. 그래서 전 이모님이 말씀하신 사람처럼 되려고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몇 년 동안 그렇게 노력하다 보니, 이모님의 말씀은 제 정체성이 되어 있었죠. 그리고 전 그런 생각에서 어느 정도 위안을 얻기도 했어요.
그렇게 저는 청소년 시기부터, 제 인생에서 제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날 즐겁게 하는 건 뭘까? 성취감일까? 살면서 남기고 싶은 건 뭘까? 혼돈의 충돌 기념식이 있던 밤, 칼레나가 제 열정에 의심의 씨앗을 심은 거나 마찬가지였죠. 칼레나의 마지막 말 덕분에, 저는 다시금 저 자신을 돌아보고 결국 새로운 꿈을 꾸게 됐어요. 그리고 드윔비앤드라가 되겠다는 칼레나의 꿈을 곰곰이 생각해 보며 조금씩 흥미가 생겼고, 그러한 목표를 추구하는 게 얼마나 매력적인지 깨닫기 시작했죠. 자유롭게 모험하며 매일 선행을 할 수 있으니까요. 생각하면 할수록 조금 낯설지만 따스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직접 그렇게 살아 보는 것도 정말 괜찮을 것 같았죠.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저는 이 간단명료한 최고의 순간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하지만 그러한 기회는 마지막 학년이 되어서야 찾아왔죠. 그렇게 저는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변화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됐어요. 그리고 정말 상상도 못 한 일이 그 도화선에 불을 붙였죠.
저는 학생 계층(호칭이 조금 애매하지만...)의 상급생이라는 위치에 있었고, 신입 생도 한 명과 짝을 이뤄 한 해 동안 멘토 역할을 해줬어요(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었고, 언젠가 아레투자의 여제가 될 졸업 예정자들에게 미리 연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거였죠). 전 커다란 갈색 눈을 지닌 삐쩍 마른 아이를 담당하게 됐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레투자에 다니면서 제 열정이 얼마나 식었는지 깨닫게 됐죠. 그 아이는 재능 있는 자와 기교 있는 자를 향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고, 마법 기관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여러 교리에 완전히 심취해 있었어요. 게다가 제가 아레투자 안팎에서 만난 소녀 중 가장 제대로 된 아이였죠. 그 아이를 가르칠 때,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제가 마법을 가르쳐주고 있는데, 그 아이가 나지막이 읊조리더라고요. "마법이 혼돈이라면, 마법을 행하는 자들은 질서를 지켜야 하죠. 그래야 혼란을 피할 수 있으니까요."(그 말을 듣자마자 그 아이가 언젠가 아레투자의 여제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니면 선생님이라도요. 그리고 제 생각이 맞았죠.)
그 겸손한 아이가 제 과거의 잔재에 최후의 일격을 날린 거 같아요. 필사적으로 잡고 있었지만, 이미 올이 다 드러난 밧줄 같던 그 과거의 잔재에 말이에요. 그렇게 베일이 벗겨지고 제가 원하는 게 뭔지 분명해지자,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실히 알게 됐어요.
저는 갑작스럽게 오로라 이모님께 떠나겠다고 말했어요. 놀랍게도 오로라 이모님은 제 말을 (생각보다는) 좋게 받아들여 주셨죠.
"경마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자기가 돈을 건 말이 힘내서 달릴 수 있도록 응원할 거란다. 하지만 달릴 힘을 잃은 말에겐 소리치며 응원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없단다. 알겠니? 괜히 헛수고하는 셈이지."
제가 이모님의 비유를 제대로 이해한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특히 경마와 관련된 얘기는요(저한테 돈을 걸었다고요?). 하지만 이모님께 되묻지는 않았어요. 원래 이모님의 격렬한 반대를 예상했는데, 그냥 실망하신 정도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이 시기에 저는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모님도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끼고 제 폭탄선언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계셨던 것 같아요.)
그래도 마지막 학년을 보내는 동안 주변 상황이 얼마나 빠르게 변했는지 생각해 보면, 지금도 좀 놀랍긴 해요. 정말 하룻밤 사이에 촉망받는 제자에서 소외당하는 외톨이가 됐거든요(이 얘기는 안 한 거 같은데... 드 윈터 님께서 이제 아레투자엔 제가 필요하지 않다는 말을 '넌지시' 꺼내기도 하셨어요. 그 얘기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는 게 더 좋을 것 같네요...).
그렇게 전 모두에게 작별 인사를 전하고 얼마 안 되는 짐을 챙겨, 한때 너무도 사랑했던 아레투자를 떠났어요. 그리고 드윔비앤드라가 되어 홀로 이 세상을 여행하기로 했죠.
그리고 그날 이후... 다시는 아레투자로 돌아가지 않았어요.
Chapter 12
연말이 다가오자, 낮은 점점 더 짧아졌고 추워지기 시작했어요. 전 따뜻한 난로 곁에 앉아 실내에서 조금 더 오랜 시간을 보내곤 했죠(물론 그런 사치를 부릴 수 있을 때만요). 다시 말해, 편히 앉아서 예전처럼 일지를 쓸 시간이 생긴 거였어요.
어쩌다 보니 작년에는 일지 쓰는 걸 소홀히 했어요. 일지를 남긴 후에는 금방 또 일관성 없게 행동하곤 했죠. 여행 중에 중요한 사건을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되짚어 보면 된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으면서 말이에요(말이야 쉽죠). 오로라 이모님이라면 제 게으른 태도를 엄청 싫어하셨을 거예요. 이모님은 하기 싫어도(사실, 언제나 하기 싫지만)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셨거든요. 그래서 이런 말까지 하셨죠. "동기 부여만으로 힘든 시기를 버텨낼 수는 없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끊임없이 노력하는 태도란다. 그래야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 어떻게 반박할 수 없는 논리였어요.
하지만 저는 지금 의무가 아니라 동기 때문에 이 글을 적고 있는 거예요.(오로라 이모님께서 대륙 건너편에서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저를 평가하시는 게 느껴지네요). 단순히 제가 처한 상황을 적어 두고 싶어서 기록하는 거죠. 아무래도 중요한 일 같아서요. 그냥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정말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정말 최악의 상황까지도 생각하고 있죠).
마법사를 향한 대중의 태도가 바뀌었어요. 그것도 안 좋은 쪽으로요. 몇 달 전, 아주 무례하고 적대적인 의원이 저를 마을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어요. "우리 마을에 너같이 끔찍한 존재는 들이지 않을 것이다! 꺼져라! 저리 썩 꺼져!" 그렇게 소리친 뒤에 제 쪽으로 걸쭉하게 침까지 뱉더라고요. 아레투자를 떠난 뒤, 그 정도로 적대감을 드러낸 사람은 처음이었어요. 슬프게도, 그게 끝이 아니었죠. 다른 시골 마을도 절 거부하기 시작했거든요. 심지어 예전에 방문해서 좋은 관계를 맺고 우정을 쌓았던 마을에서도 저를 환대하지 않았어요.
뭔가 잘못된 게 분명했어요.
스노우드롭
노래와 춤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겠지. 그럴 거 같기는 해...
그러다 며칠 전, 길에서 길동무를 한 명 만났어요. 젊은 음유 시인이었는데, 자기가 무슨 이상한 주술에 걸렸다고 하더라고요(농담이거나 그냥 절 놀리는 줄로만 알았죠). 그녀는 운율에 따라 노래하지 않는 한, 아무 말도 할 수 없다고 했어요.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자니, 정말 저주에 걸린 것 같더라고요(저주에 걸리지도 않았는데, 누가 귀찮게 그러겠어요).
아무튼 저희는 하루 동안 같이 여행했어요. 그녀는 노래를 불러야 하는 저주를 풀어줄 수 있는 친구를 찾아가는 중이라고 했죠. 그리고 지난주에 주변 마을에서 목격한 사건을 노래해 줬어요.
"마을은 분노했네.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네. 난도질당한 새끼 염소가 우물 위에 매달려 있는 걸 발견했네. 내장이 밖으로 나왔고, 눈알을 도려냈네. 이건 의심의 여지 없이, 악마의 의식이었네. 하지만 다행히도, 곧 해결사들이 마을에 당도했네. '우리는 사악한 범인을 찾아낼 때까지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여기저기 구석구석 수색했다네. 그리고 머지않아 사건의 원인을 찾아냈다네. 해결사들이 찾아낸 마녀는 아주 악한 목적을 지녔다네. 도망갈 곳이 없어지자, 결국 마녀는 자백했다네. 해결사들은 장작더미를 세우고 마녀를 산 채로 태웠다네. 일을 마치고, 보수를 받은 뒤, 그들은 왔을 때처럼 홀연히 떠났다네."
히스테리
누가 우물에 독을 풀었어! 내장이 가득해!
기억나는 대로 쓴 거라(전 시인이 아니니까요) 조금 다를 순 있지만, 대충 저런 내용이었어요. 제가 마법의 힘에 의해 타락한(혹은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마법사들이 부도덕한 행위를 일삼는다는 얘기를 못 들어본 건 아니었어요. 그리고 그런 행위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된다는 얘기도 들어봤죠.
하지만 이건 전혀 다른 얘기였어요.
그 음유 시인은 다른 마녀들의 얘기도 많이 들려줬어요. 그리고 그러한 상황을 완벽한 재앙이라고 묘사하기도 했죠.
물론, 전 하나도 믿지 않았어요(그리고 그녀도 자기 이야기를 믿지 않았죠).
하지만 한 가지 두려운 건, 이 상황이 뭔가 불길하다는 거였어요. 마법사들이 단체로 악한 행위를 벌이다니요? 아니, 애초에 북부 왕국에는 그런 얘기가 널리 퍼질 만큼 마법사가 많지도 않았거든요. 특히 이런 시골에는요.
이건 조사를 해봐야 하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전 조사에 착수했죠.
지금까지는 딱히 찾아낸 게 없어요. 그리고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예상대로 대부분 저한테 비협조적이고요. 그래도 단서를 발견하긴 했어요. 그 음유 시인이 얘기한 이름이 있거든요. 근데 운 좋게 숙소를 잡은 선술집에서도 몇몇 사람이 같은 이름을 말하더라고요.
그 이름을 따라가면 이 이상한 현상의 이유를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찾아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뭘 추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있겠죠.
그래서 쫓기 시작했어요. '헤일'이란 가문을요.
(1분 27초까지만 보면 됨)
옥타비아 헤일
자식들을 다 합쳐도 그 어머니보단 못한 법이지.
파비안 헤일
파비안은 자기 일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피부 위에 새겨진 승리의 흔적을 보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곤 한다.
악당
호리호리하고 인상이 사악한 남자가 어둠 속을 드나든다는 목격담이 들려오고 있다. 마을에 헤일 가문이 당도한 것이다.
이그나티우스 헤일
착한 아이랍니다.
브루트
브루트는 악을 학살하는 자이자, 민중의 구원자이며, 아주 착한 아들이다. 적어도, 브루트의 어머니는 브루트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건 연관 있는 스토리 노드를 가져왔음
마녀 수색자 스토리 노드:
닐프가드 제국 변두리 출신의 헤일 가문은 부와 명예를 찾아 북부 왕국으로 이주했습니다. 둘 다 헤일 가문이 아무리 노력해도 쉽사리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이었지요.
옥타비아 헤일은 외국 세력의 문화와 동화되는 시기를 거치며 성장했기에 편협하지 않은 세계관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노비그라드를 방문했을 때, 옥타비아는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한 박해 현장을 보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지요. 노비그라드의 사람들은 마법사에게 격렬한 적의를 드러내며, 공개 처형을 당하는 마법사들을 향해 분노를 담아 조롱의 말을 내뱉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마음속에 사악한 계획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지요.
다들 자신에게 닥친 불운이나 불행을 탓하기 위해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던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옥타비아와 그녀의 두 아들은 유명한 마녀 수색자가 되어, 북부 왕국의 여러 지방이 간절히 원하는 희생양을 전달하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진짜 마법사들은 정말 위험한 존재입니다. 마법을 억제할 수 있는 디메리티움 같은 게 없다면 더더욱 위험하지요. 게다가 마법사 자체가 그렇게 많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헤일 가문은 더욱 안전하고 생산성 있는 접근법을 취하기로 했지요. 헤일 가문은 대륙을 돌아다니며 사악한 마법의 현장을 꾸며내고, 무고한 마을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고, 아주 관대한 태도로 자신의 마녀사냥 서비스를 권유하며 고립된 사회의 무지함을 이용했습니다. 물론,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고 말이지요...
옥타비아 헤일은 항상 배우가 되길 꿈꿔 왔습니다. 그녀는 화려한 옷으로 치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인격을 연기하는 것과 자신의 예술적 기량을 뽐낼 수 있는 무대에서 관중을 사로잡는 것을 좋아했지요. 하지만 옥타비아는 어린 나이에 아이를 가지게 되었고, 결국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실주의자였던 그녀는 그러한 꿈을 좇아봤자 아들들을 먹여 살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녀는 그 꿈을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두었습니다... 어느 날, 연기를 향한 열정에 다시금 불을 붙이고 자신을 부유하게 만들어 줄 기회를 우연히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옥타비아는 자신을 마녀 수색자라 칭했습니다. 그녀는 화려한 언변과 외모로 누군지도 모르는 관중들을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그릇된 의지를 주입하며 쾌락에 대한 대가를 요구했지요. 하지만 이쯤 되니 옥타비아는 돈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전설이 되어 역사에 남을 만한 업적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옥타비아는 자신이 만들어낸 인물의 모든 것을 자신에게 투영했습니다. 그리고 동이 틀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평생을 마녀 수색자로 살았지요.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더욱 대범하고 뻔뻔하게 행동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진짜 마녀의 시선을 끌고 말았고, 이 모든 연극이 막을 내리게 되었지요.
어둠 속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 수상한 사람이 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수상하다'는 말은 파비안 헤일에게는 너무나 친절한 표현이지요. 옥타비아는 종종 파비안에게 급히 소문을 퍼트리고, 의심의 씨앗을 심고, 범죄 현장을 꾸미는 일을 맡기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 '작은 악당'에게 엄마가 시킨 선에서 멈추는 건 너무 힘든 일이었지요. 만족을 모르는 폭력적인 야망을 달래기 위해, 파비안은 가끔 내면에 잠자고 있는 폭력성을 일깨워 악용하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 유죄 판결을 받은 수많은 '마녀'가 장작더미 위에 올라가기도 전에 영문도 없이 증발해버리곤 했지요. 헤일 형제 중 이렇게 잔학한 행동을 좋아하고 도덕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동생의 악행은 차마 입 밖에 꺼내기 힘들 정도입니다. 파비안의 비열한 악행에 관해 들으면, 누구라도 속이 메스꺼워질 테니 말이지요.
딱 봐도 알 수 있는 이유로 '브루트'라고 불리는 이그니투스는 헤일 가문의 행동 대장이었습니다. 물론, 그 자신은 이그니투스보다 '이기'라고 불리는 걸 더 좋아했지만 말이지요. 그는 부정한 일을 행한 자들을 잡아 마녀 혐의를 묻고, 자백을 받아내고, 장작 위에서 산 채로 불태우는 일에 열중했습니다. 특히 이를 지켜봐 줄 군중이 있다면 더욱 좋아했지요. 하지만, 이그니투스를 그냥 나쁜 사람이라고 속단할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영웅이기도 하니까요. 적어도 이그니투스는 진심으로 자신이 영웅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노새에게 머리를 차인 뒤로, 이그니투스는 매우 우둔하고 조종하기 쉬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그니투스의 어머니는 한없이 선한 이그니투스의 본성을 알아차리고, 사실 헤일 가문은 선량한 시민들이 공포에 시달리지 않도록 진짜 마녀를 찾아내 악을 처벌하는 일을 한다고 세뇌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이 착한 마음을 지닌 순진한 바보가 곧장 자신의 계략을 폭로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이제 글의 초반의 알리사 헨슨의 일러스트를 다시 보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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