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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4 02:07

//아직 전설퀘도 안 하고 스토리도 대충 읽어서 존나 알못임
개붕적으로 알하이탐이 카베한테 품은 마음이 카베가 알하이탐한테 품은 마음보다 훨씬 무겁고 큰 게 존나 너무 좋아서 벽 뿌수고 싶음ㅠ


 

알하이탐이 카베에게 처음 호감을 갖게 된 계기는 단순했겠지. 그냥 걔가 천재라서 그랬을 듯. 범재, 둔재들 사이에서 말이 통하는 상대를 만났으니까 당연히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특히 건축 분야에서는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놀라운 발상을 보일 때가 많아서 더욱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었겠지. 곁에 두고 친하게 지내기엔 너무 멍청한 놈들밖에 없어서 딱히 친구 같은 것도 없이 지내던 알하이탐 인생에 스스로 인정한 첫 친구가 카베였을 듯.

 

그런데 막상 가까이 지내다 보니 카베란 인간은 저랑 정반대의 인간을 일부러 만들어놓은 것처럼 안 맞는다는 걸 금방 깨달았을 듯. 학문에 대한 의견도 그렇고 그냥 사소한 취향 하나까지 다 안 맞아서 서로 일부러 엿 먹이나 싶을 정도로 엇박을 춰댔을 듯. 평소 같았으면 시간낭비라고 바로 손절했을 텐데 그럼에도 알하이탐은 카베를 친구 자리에서 치워내지 못했음. 처음엔 그게 ‘친구’란 존재 자체에 대한 집착이라고 생각했겠지. 할머니가 준 사랑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던 터라 그 이상을 바랐던 적은 없었는데, 저도 인간인지라 어느 정도 말이 통하는 상대 하나쯤은 가까이 두고 싶은가보다 느꼈을 듯.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말이 통하는’ 게 맞기나 한 건지 의문이 들었겠지.

 

카베는 분명 천재적인 건축가였지만 냉정하게 말해 똥멍청이가 따로 없었음.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음에도 멍청한 짓으로 스스로를 갉아먹는 무능한 인간이었음. 알하이탐은 카베가 타인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 강박적으로 애를 쓰다, 결국 빈 깡통처럼 버려져 굴러다니는 꼴이 너무도 보기 싫었음. 그래서 매번 그를 볼 때마다 지적을 해댔겠지. 당연히 둘은 볼 때마다 싸웠음. 입바른 소리도 한두 번이지, 알하이탐처럼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사람을 누가 버텨내겠음. 처음엔 그래, 네 말이 맞아, 좋게 넘어가던 카베도 결국 화를 내며 언성을 높였고 둘 사이는 최악으로 치달아갔음.

 

늘 그렇듯 카베와 말다툼을 하고 돌아온 알하이탐은 깊은 피로감과 좌절감에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단 걸 깨달았음. 내가 왜 멍청이가 멍청해서 제 인생 말아먹는 일에 아까운 시간과 정신력을 소모하고 있는 걸까, 안 그러면 되잖아? 그런 의문을 품는 즉시 깨달았겠지. 안 그러면 되는데, 안 그러기가 싫은 거였음. 어떻게든 쟬 좀 멀쩡하게 만들어서, 쟤가 더 이상 멍청한 짓을 하지 않아야, 그래야 제 심신이 평안을 찾을 수 있는 거였지. 안 보면 그만인데 안 보기가 싫으니까. 곁에 두고 계속 보고 싶은데 그러기에 너무 답답하니까 지금 이러고 있는 거였음.

 

알하이탐은 마침내 깨우쳤겠지. 아, 난 이 멍청한 짓거리를 놓지 못할 만큼 쟤가 마음에 드는 거구나. 난 그냥 쟤를 잃기 싫은 거구나. 그래서 알하이탐은 나름의 타협점을 찾아야 했겠지. 카베가 폭발하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충고와 조언을 건네 그가 조금이나마 덜 멍청하게 행동하도록 하고, 저도 조금이나마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 그를 제 곁에 머물도록 해야만 했음. 그렇게 먼저 자세를 누그러뜨리고 보니 카베란 인간을 좀 더 깊이 파악할 수 있게 되었겠지. 알하이탐은 카베가 ‘집’과 ‘가족’에 대해 품은 갈망을 알아차렸고, 그걸 제가 채워줄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음. 하지만 카베가 그걸 원치 않을 것이란 것도 알았겠지.

 

카베는 다정하고, 외로움을 많이 타고, 가볍게 툭 치기만 해도 너풀거리며 날아가는 바람 슬라임처럼 여렸음. 저는 이미 그 마음에 수없이 상처를 냈고, 그에게 품은 호감을 자각한 지금도 딱히 상냥하고 다정하게 말할 자신은 없었음. 아마 저는 평생을 가도 카베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없겠지. 그래서 알하이탐은 카베에게 제 마음을 고백하지 않았음. 그저 아쉬움만 달랠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그가 스스로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최선이었음. 그러나 이상을 좆아 자기파괴를 지속하는 카베를 보고 있기 힘들어 독설을 퍼부었던 게 화근이 되어 완전히 사이가 틀어졌겠지.

 

그날 알하이탐을 향한 카베의 감정은 극에 달해 있었음. 카베는 분노와 수치심, 원망, 울분 등이 어지러이 뒤섞인 눈으로 알하이탐을 노려보고 있었음. 너는 내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고 내가 그렇게 멍청해 보인다면서 도대체 왜 계속 날 따라다니며 간섭하는 거야? 그냥 남들한테 하는 것처럼 해, 고개 돌리고 헤드폰으로 귀도 틀어막아, 나 같은 거 그냥 무시하고 모른 척 하고 지나가면 되잖아,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악을 쓰듯 화를 내던 카베는 늘 그렇듯 덤덤하기 짝이 없는 얼굴을 바라보다 벼락처럼 깨달았겠지. 알하이탐 같은 인간이 저처럼 멍청한 인간에게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야 뻔했으니까. 저는 그에게 차마 외면할 수 없는 특별한 존재였음을.

 

카베는 눈에 띄게 당황했음. 자긴 알하이탐을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도 없고, 그러기도 싫었음. 사실 싫은 감정이 너무도 컸기 때문에 더욱 당황스러웠겠지. 네가 대체 어떻게 날 좋아할 수가 있어? 도대체 내가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해? 카베는 혼란스러워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음. 알하이탐도 카베가 제 마음을 알아차린 것을 느꼈지만 그가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을 알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음. 카베는 화를 내는 것도 잊은 채 한참을 뻐끔거리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음.

 

“우린, 아니야.”

 

카베는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났음.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았겠지. 누구든 저를 좋아해준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었음. 알하이탐이 싫은 것과는 별개로 그 마음 자체는 참 고마운 거였음. 그러나 고맙다는 이유로 그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음.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카베는 심각할 정도의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음. 그래서 한마디 언질도 없이 그대로 수메르를 떠나버렸겠지.

 

카베가 떠나든 말든 알하이탐에게 큰 변화는 없었음. 물론 그라고 해서 상처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음. 많은 사람들에게 그러했듯, 저는 카베에게도 ‘도저히 못 버텨먹을 인간’이었던 거였음.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상대를 멀리 달아나게 만들 정도라니, 자괴감이 들었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었음. 카베의 기분에 맞춰주기 위해 스스로 변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게 억지로 맞춰주는 것이 진정으로 그를 위하는 일이 아니란 것도 알기에 변해서도 안 되는 거였지. 알하이탐은 후회 없는 선택을 했고, 카베가 없는 일상을 묵묵히 살아갔음.

 

 
 

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알하이탐은 카베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음. 술을 좋아하는 카베답게 술집에서 아주 죽을 치고 살더라고 했겠지. 하루, 이틀,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그러고 있다는 말이 들려오자 알하이탐은 이미 알고 있던 당연한 사실에 확신을 내렸음. 카베에겐 돌아갈 집이 없는 거였음. 휴가를 낸 알하이탐은 꽤 이른 시간에 술집으로 들어섰음. 그 시간에도 손님이 제법 있기는 했지만 진탕 취해 있는 건 카베 한 사람 뿐이었겠지. 내내 술만 마셔댔으니 그 모양일 수밖에, 알하이탐은 작게 혀를 차며 카베가 엎드려 있는 테이블로 걸어갔음.

 

허락도 없이 맞은편에 앉아버린 상대가 알하이탐이라는 건 굳이 고개를 들어 확인하지 않아도 알았겠지. 카베는 엎드린 채 입술만 꾹 깨물었음. 카베는 알하이탐이 올 거란 걸 알고 있었음. 물론 100% 확신하는 건 아니었음. 그렇게 일방적으로 관계를 끊고 떠나버렸으니 정이 뚝 떨어졌을 수밖에. 그래서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음. 그럼에도 올 거라고 믿었던 것은 그저 바람이었을 뿐이겠지. 카베는 알하이탐이 저를 찾아와주기만을 기다렸음. 양심도 없지, 카베는 스스로를 비난하며 고개를 들어 올렸음. 마지막에 보았던 그 무덤덤한 얼굴 그대로였음. 속에서 무언가 울컥 치받는 느낌이 들었겠지. 아직도 날 좋아하는구나.

 

애초에 알하이탐 성격에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를 위해 대낮부터 술집에 와 시간을 낭비할 이유는 없었음. 그래서 더 화가 났겠지. 날 이렇게 좋아하면서 어떻게 그래? 왜 날 붙잡지 않았어? 왜 여태 날 찾지 않았어? 왜 이제야 온 거야? 나 같은 놈 뭐 어디가 좋아서, 대체 왜? 벌떡 몸을 일으킨 카베는 제대로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속에 꾹꾹 담아두었던 온갖 불만들을 토해내기 시작했음. 알하이탐과 관련한 것들부터 그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들까지, 카베는 모든 것이 다 알하이탐의 잘못이라도 되는 양 그에게 대고 투덜거렸음. 알하이탐은 늘 그렇듯 묵묵히 듣고 있다, 카베가 듣기 싫어하는 대답만 골라서 내놓았겠지. 정말이지 하나도 변한 게 없었음.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어, 이 자식은. 틀린 말은 아니라 반박도 못하고 기분만 나쁘게 하는 것도 정말 그대로잖아. 알하이탐의 냉정한 일갈들에 카베는 술을 부으며 입만 삐죽여댔음.

 

그래서 아직도 날 좋아해? 스스로 어느 정도 확신을 하면서도 카베는 끝내 묻지 못했음. 혹시라도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올까 겁이 났기 때문이었음. 씩씩거리며 술만 퍼마시던 카베는 누적된 피로에 금방 뻗어버렸음. 알하이탐은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카베를 어깨에 걸치다시피 해 집으로 데려갔음. 그새 정신을 차린 카베는 알하이탐에게 매달린 채 제멋대로 중얼거렸음. 정말 너답게 정 없는 인테리어야, 여기엔 화분을 두면 예쁠 텐데, 저 공간은 비워놓는 게 시각적으로 더 괜찮은데. 남의 집에 들어오자마자 어딜 어떻게 꾸미면 좋을지부터 떠들어댔지만 알하이탐은 불쾌해하지 않았음. 실컷 떠들던 카베는 문득 머쓱해져서 사과를 했겠지.

 

“미안, 직업병이야.”

“마음대로 해.”

“뭐?”

“어차피 반은 네 거니까.”

 

한때는 제 마음에 드는 형태로 존재했었던 집은 그가 진작 소유권을 포기했던 것이었지. 무례한 주정뱅이를 거실 소파에 눕혀주는 손길이 너무도 다정하고 조심스러워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음. 카베는 입술을 꾹 깨물었음. 그래, 굳이 따지자면 내 몫도 있다고 우길 수 있겠지. 하지만 아무리 밑바닥 인생이라고 해도 그 정도로 양심이 없지는 않았음.

 

“나한테 이 집에 대한 권리는 없어. 온전히 네 집이야.”

“그래, 넌 빚지는 걸 좋아했지.”

“누가 그런 걸 좋아해!”

 

발칵 소리를 지르는 카베에게 알하이탐은 열쇠를 내밀었음.

 

“뭘 하든 상관없지만 잘 시간에 시끄럽게 굴진 마.”

 

카베가 열쇠를 받아들자마자 알하이탐은 곧장 제 방으로 향했음. 카베는 다급히 팔을 뻗어 그의 손을 잡아챘음. 내가 네 집에 있어도 정말 괜찮아? 알하이탐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음. 좋다고 답하면 또 도망가려나. 그때처럼, 싫어 죽겠다는 표정을 하고서. 그렇다고 싫다고 할 수는 없잖아, 지금 당장 나가겠다고 난동을 부릴 테니까. 알하이탐은 그냥 대답하지 않기로 했음. 가볍게 손을 떨치고 돌아서는데 이번엔 말에 발목이 잡혔겠지.

 

“난... 난 네 맘을 이용하는 거야...”

 

그 자조적인 중얼거림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카베는 몰랐겠지. 네 마음을 알고 네 호의도 받겠지만, 그래도 난 널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말하는 거였음. 알하이탐은 상처받았지만 동시에 기뻤음. 누구에게나 호인이 되길 원하고, 그 누구도 상처주지 않으려 애쓰는 카베가 저한테만큼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 꽁꽁 감춰둔 처참한 밑바닥을 제게만큼은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는 것이, 어떤 의미로든 그에게 나름대로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는 점이 알하이탐을 비참할 만큼 기쁘게 만들었겠지. 마음에 없는 말로 속여 등쳐먹어도 그만이지만, 쫓겨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저렇게 말해버리는 것이 제가 아는 카베다워서 한없이 기뻤음. 너라면 얼마든지 이용당해줄 수 있어, 카베가 들었다간 부담스러워서 달아날지도 모를 속마음을 삼켜낸 알하이탐은 끝내 대답 없이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음.

 

카베는 제가 알하이탐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이용해먹는다는 자괴감에 시달렸음. 피폐해진 몸과 마음을 기대고 싶다는 이기적인 마음에 그의 애정을 이용하는 것이 미안하고 죄스러워서, 카베는 어떻게든 물질적인 것으로 갚으려 애를 썼음. 월세를 내고, 그걸로 부족할 땐 잡일이나 잔심부름을 하며 자신이 그에게 빚을 지고 있으며 그걸 갚을 용의가 있음을 충분히 보여주려 했겠지.

 

알하이탐은 그걸 굳이 막지 않았음. 오히려 대놓고 부려먹었음. 카베가 ‘아무리 그래도 램프 끄는 것 정돈 네가 알아서 해!’라며 바락 짜증을 낼 정도였겠지. 알하이탐은 카베의 부채감을 덜어주고 싶었음. 조금이라도 베풀어 주려는 기색을 보이면 미안해서 안절부절못하니까, 호의를 보인 만큼 정당하게 받아먹겠다는 태도를 보여줘야 했음. 알하이탐의 꼬장에 가까운 생색이 지속되자 카베도 차츰 부담감을 내려놓게 되었겠지.

 

카베는 알하이탐이 제게 품은 마음이 꽤나 가벼워진 것 같다고 느꼈음. 보답을 바라지 않고 베푸는 것이 아니라, 베푼 만큼 악착같이 받아내고 싶어 하는 걸 보니 이제 저를 예전과 같이 좋아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았음. 참 다행이었지. 카베는 알하이탐을 상처주지 않게 된 것에 혼자 기뻐했고, 그때부턴 내외라도 하듯 멀리하던 그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게 되었음. 원래부터 남에게 치대는 것을 좋아하던 카베는 알하이탐에게 자연스럽게 엉겨 붙곤 했음. 그리곤 목석처럼 반응이 없거나 귀찮은 기색을 보이는 그에게 만족스럽게 웃어주곤 했겠지. 상처를 주고받을 일 없이, 각자 필요한 것을 취할 수 있는 관계. 이 정도면 저희도 제법 괜찮은 관계라 할 수 있겠다 싶었음. 카베는 그와 저 사이가 지금 이대로 영원할 수 있기를 바랐고, 알하이탐 역시 카베가 원하는 균형을 깰 생각이 없었음.

 

 

 

그러던 어느 날, 카베는 알하이탐이 사이노와 붙어 있는 의외의 광경을 보게 되었겠지. 두 사람은 풀의 신 구출 과정에서 꽤나 가까워졌고, 관점이 비슷한 부분이 있어 심도 있는 대화도 곧잘 하는 편이었음. 카베는 알하이탐을 ‘꽤 괜찮은 녀석’이라 평하는 사이노에게 도대체 저 녀석의 어디가 괜찮은 거냐고 되물었던 적이 있었음. 냉정하게 보이겠지만 결코 틀린 말은 하지 않는 녀석이지, 사이노가 말하는 그의 장점은 카베가 생각하는 알하이탐의 수많은 단점들 중 하나였겠지. 사실을 말한다는 핑계로 쉽게 상처를 주는 게 어떻게 괜찮은 거야, 카베는 알하이탐과의 대화가 꽤나 즐거워 보이는 사이노를 이해할 수가 없었음.

 

“오늘 새삼 느꼈어. 넌 내게 정말 특별해.”

 

도대체 뭐가 그리 재밌어서 저런담, 둘의 대화를 몰래 엿들으려던 카베는 제 귀를 의심해야 했겠지. 분명 잘못 들었을 거라는 그의 확신은 알하이탐의 대답으로 인해 완전히 무너져 내렸음.

 

“그래, 너도 참 특별해.”

 

카베가 아는 알하이탐은 타인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음. 특별하다니, 한때 마음을 품었던 상대에게도 하지 않았던 말이었지. 카베는 옅은 미소를 띤 알하이탐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음. 한 집에 살면서도 카베는 그렇게 웃는 알하이탐을 본 적이 없었음. 그 낯간지러운 대답에 화답이라도 하듯, 피도 눈물도 없다는 대풍기관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번졌음. 사이노는 손에 쥐고 있던 무언가를 수줍게 건넸고, 그를 받아든 알하이탐은 느리게 상체를 숙여 무어라 속삭였음. 사뿐히 들려 올라가는 발뒤꿈치에 카베는 더 이상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가 없었음. 그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입을 콱 틀어막은 채 쫓기듯 그 자리를 벗어났음.

 

카베는 정신없이 달려 집으로 돌아갔음. ‘집’에 돌아왔지만 늘 느끼던 안정감 같은 건 더 이상 찾을 수 없었겠지. 카베의 머릿속엔 사이노와 알하이탐이 단란한 가족이 되고, 불편한 객식구가 되어 눈총을 받다 기어이 쫓겨나게 되는 자신의 미래가 한 편의 영화처럼 재생되고 있었음. 제 욕심 때문에 여기에 있었다간 또 한 가정을 불행하게 만들지도 몰랐지. 당장 여기서 나가야 해, 카베는 허겁지겁 짐을 챙기기 시작했음. 딱히 챙길 짐이랄 것도 없고 마음만 급해서 카베는 결국 메흐락만 들고 집을 나와 술집으로 향했음.

 

반쯤 넋이 나간 카베를 본 술집 주인 람바드는 그가 또 궁지에 몰려 있다는 것을 알아보았고, 집을 구할 때까지 창고에서 지낼 수 있게 해주었음. 카베는 람바드가 내어준 술을 마시며 생각을 정리하려 애썼음. 다행히 빚은 거의 다 갚았음. 방세 낼 능력이 없으면 제가 시키는 일이나 열심히 하라던 알하이탐의 성화에 빚만큼은 착실히 갚아왔던 덕분이었음. 술집에서 조금만 신세를 지며 열심히 돈을 벌면 조만간 허름한 방 하나 정도는 구할 수 있을 터였지. 결국 다 빚이었지만, 그래도 이젠 어떻게든 다 갚아낼 수 있으리란 희망이 보였음. 정말로 혼자 살아내자면 못할 것도 없을 만큼 상황은 괜찮았음. 문제는 제 마음이었지.

 

카베는 심란한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음. 집을 구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구해봤자 그 집에 아무것도 없을 거라는 게 문제였음. 아무도 없는 집이란 건 카베에게 숨 쉬듯 익숙한 공간이었지만, 알하이탐의 집에 얹혀사는 짧은 기간 동안 거짓말처럼 낯설어져 버렸음. 집에 틀어박혀 책이나 읽는 것이 인생의 전부인가 싶은 알하이탐은 카베가 언제 들어오든 항상 먼저 돌아와 있었음. 딱히 반겨준다거나 다정히 인사를 건네는 건 아니었지만, 그저 거기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꽉 채워지는 기분이 들곤 했음. 집이 문제가 아니라 그가 문제였음. 카베는 뜨겁게 달아오르는 눈가를 술의 탓으로 돌리며 울었음. 이제는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 카베는 알하이탐이 없는 집에 살고 싶지 않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