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ygall.com/609491540
view 529
2024.10.27 16:00

14. https://hygall.com/605831665




이연화는 약탕에 들어앉아있으니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어. 몸의 독소를 중화시키고 한기도 낮출겸 해독 작용이 있는 약초를 우린 물안에 있으니 이런저런 약재를 겻들인 탕국이 된것 같아 실없는 생각이나 하면서 긴장을 풀었어. 이연화는 차가운 몸이 된 이후 뜨거운 물로 목욕하는걸 즐겼기에 이런저런 치료중에 약탕은 은근히 반겼어. 적비성과 방다병이 목욕 수발을 들어주겠다고 나서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이연화는 절대로 두 사람에게 몸을 맞기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음인이 된걸 들킨이후 한가지 장점이 있다면 외간 양인에게 알몸을 보일수 없다고 거절하는데 아주 적절한 핑계거리가 됬달까.


붙잡혀올때 적비성이 한번 해준적이 있지만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다 알아버린 상황에 부부도 아닌 양인과 음인은 내외하는게 당연한 법도라며 이연화가 완강히 거부하니 결국 둘다 한발 물러날수밖에 없었어. 예의범절과 교양을 배우며 자란 번듯한 가문의 소공자인 방다병은 얼굴을 붉히며 순순히 물러섰지만 적비성은 뻔뻔하게 굴었고 그걸 방다병이 물귀신처럼 들러붙어 때어냈다는 약간의 소동이 있었지만 말이야. 


방다병이 그 몸으로 혼자 목욕하다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떻하냐고 박박 우겨서 병풍 하나 놓는게 다였지만 잠깐이나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것에 의의를 두었어. 멍하니 몸을 다그고 있다가 그래도 혹시 모른다며 기어코 근처를 서성이는 둘의 존재감에 이연화는 병풍 너머 그림자에 시선을 던졌어. 뭔가 또 안맞는지 행여 자신에게 들릴새라 작게 옥신각신 하는 소리에 이연화는 소리없이 쿡쿡 웃고 말았어. 저렇게 안맞는데 자기때문에 성질을 많이 죽이고 있지.


이연화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옷가지를 걸어둔 옷걸이 옆에 놓인 석경에 봤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너머에 흐릿하게 맺힌 잔상에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겼어. 혼자만의 시간도 원했지만 기실 이연화는 절대로 자신의 몸을 적비성과 방다병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어. 뼈가 뭉툭하게 불거진 마른 몸과 그와 정반대로 바가지를 엎어놓은듯한 둥근 배. 관하몽은 7개월쯤 된 산부의 배치고는 여전히 너무 작다고는 했지만 가느다란 몸뚱이에 볼록 튀어나온 배는 유독 더 커보이는것도 같았어. 마른 꼬챙이에 개구리배 마냥 부풀어있는 것이 꼭 무안대사의 절에서 머물었을때 본 아귀도를 보는것 같았어. 볼품없는것이 너무 흉해보여서.


이상이였을때 옥골선풍의 칭송을 들을정도로 자자한 외모였지만 당시엔 겉모습에 별다른 생각이 없었어. 벽차지독에 중독 되어 다소 떨어지는 외모가 되었어도 여전했지. 이연화는 대체로 자신의 겉모양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지만 지금은 자기도 모르게 왠지 은근히 신경쓰였어. 특히 강건하고 튼튼한 적비성과 방다병을 떠올릴때마다 더욱 움츠러들었어. 이렇게나 어울리지 않는다는데 생각이 미치가다 갑자기 화들짝 놀랐어. 왜 이런 생각이 들지? 어울리다니? 내가?  둘의 향을 좀 받았다고 음인의 본성이 풀어지는가, 은연중 둘과 함께 있는 자신을 상상해보다니 이게 무슨 얼토당토하지도 않은 생각이란 말이가. 뜨거운 물에 너무 오래 앉아있었나보다 머리가 어질어질한것이 이연화는 잡생각을 떨쳐버리겠다는 듯 머리까지 물속에 푹 담가버렸어.


밤에 머리 감으면 감기 걸리기 쉬우니 내일 해 떴을때 감겨주겠다고 하지 않았냐는 방다병의 잔소리를 뒤로 한채 천으로 머리를 닦아주는 손길에 몸을 맞겼어. 


- 방소공자께서 친히 이렇게 보듬고 살펴주시는데 설마 아프겠어?


실없는 농담에 피식 웃으면서도 방다병은 잔소리를 멈추지 않았고 아 귀 따가워 죽겠네, 적맹주 이런 느낌이었어? 화로에 불을 붙이는 적비성에게 동의를 구하니 적비성의 늘상 굳어있는 입매도 부드럽게 풀렸어. 이연화는 이제 둘이 또 설왕설래 하는것에 푸근해지면서도 가슴 한켠이 아릿했어. 



*****


몸이 한결 편해지고 정신이 맑게 깨어있게되니 이연화는 더더욱 마음이 무거워져갔어. 정말 이러다 아이를 낳게 되는걸까? 그럼 그 다음은? 이연화는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어. 화창한 날씨에 정수리를 데우는 햇살은 따사롭기만 한데 속은 말이 아니었어. 태연자약하게 휴식을 취하는것 같지만 맑은 하늘을 바라보는 이연화의 시선은 흐릿했어. 


어떻게 해야할까. 아이는 잘 자라고 있는걸까, 이대로 아이를 낳게 되는걸까, 아이를 낳고나면? 이 어린것에게 독이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자신의 핏줄이란게 세상에 알려지면 어떻게 될지, 자신이 아이를 낳고도 살아있을지, 아니 차라리 자신이 죽어버리면 어미 없는것을 가엽게 여겨주지 않을까, 몸 상태가 좀 괜찮으니 다시 탈출 시도를 해봐도 되지 않을까, 아이를 낳는건 염라대왕앞에 한발 다가가는거나 마찬가지라는데 자신이 죽어버리면? 죽는것은 두렵지 않으나 혼자 남을 아이는 어떻하지? 그러기전에 역시 아이와 함께 저승길을 가야하나... 별의별 생각이 머리속에서 어지럽게 회오리쳤어. 


이연화는 어쩐지 아이를 태어나면 자신은 살지 못할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 적비성과 방다병에게는 미안했지만 자신의 목숨은 자신이 잘 알수 있었어. 죽어가는 육신에 두개의 생명이 깃들었으니 하나가 살려면 하나는 포기해야할거야. 연약하고 작은 생명은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을 치는데 어찌해야할까. 묵직한 배를 쓰다듬으며 이연화는 골몰히 생각에 빠졌어. 잠시 아이를 적비성이나 방다병에게 맞겨볼까도 생각했지만 바로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어. 강호니 은원이니 다 부질 없는것이지. 평범한 촌부의 삶이 가장 안온하리라, 특히 남윤 황실의 핏줄이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태어나야 한다면 말이야. 


이연화는 어떻게든 여기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어. 초야에 묻혀 인정 많은 부부를 찾아 아이를 맞기면 아이는 평온하게 살수 있을거야. 제 어미가 누구인지 알지 모른채. 가슴 한켠에 바늘로 찌른듯한 통증이 찌르르 스쳐갔어. 결코 달갑게 생긴 아이가 아니야. 하지만 뱃속에 품고 있다보니 아비가 누구이던 여전히 반은 자신의 피와 살로 이뤄진 아이라 마음이 가지 않을수가 없었어. 이연화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어. 못난 어미지만 최선을 다하고 싶었어. 


이연화는 차를 마시는척 하면서 곁에 있는 적비성과 방다병을 흘깃 바라봤어. 나무 그늘에 기대 눈을 감고 있는 적비성과 불여우랑 놀아주며 부산 떠는 방다병을 눈에 담으며 머리속으로 이것저것 궁리하기 시작했어. 그러다가 이연화는 문득 저 둘에게 진 빚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번 생에서는 갚지 못할텐데...또 미안할 짓을 하게 될테니 용서를 구하지 않을게.


***


또 밥을 남기는 이연화를 보며 방다병은 속이 탔어. 최근에 곧잘 먹는것 같더니 다시 먹는 양이 줄어들다니. 이런저런 맛난 음식을 가져와도 이연화는 건성으로 젓가락을 놀리다 결국 내려놓고 말았어.  닭고기 완자와 버섯으로 은은하게 끓인 감칠맛 나는 탕, 윤기나는 돼지고기 조림, 마늘과 향을 낸 아삭아삭한 청경채 볶음, 새우살을 다져 부드럽게 찐 계란찜, 생강과 후추를 넣어 매콤하게 맛을 낸 민어 조림, 향긋한 제철 나물 무침, 입맛을 돋아줄 몇가지 종류의 장아찌까지. 보기만 해도 군침 도는 음식이 가득 한상 차려있는데 이연화는 국물 몇모금 마신게 고작이었어. 


- 입맛에 안맞아? 
- 아니야 많이 먹었어.


별일 아니라는듯 구는 이연화에 방다병은 답답해졌어. 

- 이연화 네가 신선이야? 무슨 공기만 먹고 배가 부르데? 


방다병이 성질 내는게 재밌는 농이라도 되는듯 이연화는 작게 하하 웃었어. 방다병이 조르면 미안해서라도 몇입 더 먹곤 했는데 이번에는 이연화는 여전히 미동도 없어 적비성도 한마디 거들었어.


- 입맛에 안맞아도 한술 더 먹어라. 
- 그래, 아니면 혹시 다른게 먹고 싶어? 말만 해, 바로 구해올게.


방다병은 불현듯 예전에 외가쪽 사촌 이모가 임신했을때 유독 한가지 음식만 고집했다는게 떠올랐어. 한겨울에 수박이 먹고 싶다 그랬던것 같은데 그래서 이모부가 발을 동동 구르며 사방팔방 인맥을 동원해 그걸 구하러 다녔던것도 말이야.  아무렇지도 않은척 딴청 부리는 이연화를 보니 정말 그런것도 같아.  그때 사촌 이모도 하필이면 구하기 힘든걸 먹고싶어해서 선뜻 말을 못했다고 했어.


- 이연화 너 뭐 먹고 싶은거 있는거 맞지? 그렇지?


밍기적 거리며 그런거 없다는 대답을 피하는것에 방다병은 확신이 들었어. 계속 다그치니 이연화는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어.


-당부쇄가 먹고 싶어.


방다병은 가슴을 쓸어내렸어. 철에 맞지 않는 과일도 아니고 구하기 어려운 식재료도 아니고 기껏해야 밀가루로 튀긴 설탕 뿌린 과자라니. 머리속에 천기산장과 아는 상단 목록을 주르륵 훑다가 흔히 먹는 튀김 과자 소리를 들으니 겨우 이거 먹고 싶어한게 안쓰럽기도 하고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 방다병은 발딱 일어나 주방으로 달려갔어.


한시진 정도 흘렀나, 방다병은 접시에 수북히 쌓인 당부쇄를 들고왔어. 황금빛으로 노릇노릇하게 튀겨진 동그란 것은 눈이 내린것처럼 설탕이 잔뜩 뿌려져 반짝반짝 윤기나는것이 고소하고 달달한 냄새가 아주 먹음직스러 보였어. 방다병이 데려온 주방장은 할줄 아는것도 많고 솜씨도 뛰어나 이런 간식쯤이야 금방 뚝딱 만들어냈어. 갓 튀긴것이라 바삭바삭하니 설탕이 사각사각 달콤하게 씹히는게 일품이라 방다병은 기대에 차서 이연화에게 접시를 내밀었어.


이연화는 한입 먹어보며 맛있다며 미소를 지었어. 방다병은 함박 웃음을 지었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어. 말한것과 달리 이연화는 겨우 한개 먹고 더이상 손을 대지 않지 뭐야. 


- 맛있다면서, 더 먹어. 왜 그것만 먹어?
- 충분해. 나머지는 나중에 먹을게.


섵탕을 뿌린 튀김 과자라 시간이 지나면  설탕도 다 녹고 눅눅해져 맛이 못해지는지라 방금 만들었을때 더 먹어줬음 했지만 뭘 먹고 싶어하는지 알았으니 먹고싶다면 다시 새로 만들어서 주면 되지. 방다병은 약간 아쉬웠지만 넘어갔어.


하지만 다음 끼니때도 그 다음 끼니때도 매번 새로 만든 당부쇄를 올려도 이연화는 고작 맛만 보고나니 방다병은 이연화가 사실은 정말 원하는게 따로 있는데 거짓말 한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어. 주방장이 만들어준 당부쇄는 정말 맛있단 말이지. 이연화가 남긴 당부쇄를 혹시나 해서 먹어봤지만 입안에 사르르 녹는것이 아무 문제도 없었으니까. 단것을 즐기지 않는 적비성도 하나 맛 보고는 수긍했을정도이니. 방다병은 입가에 묻은 설탕을 소매로 슥슥 닦았어.


- 아무래도 이연화 먹고 싶은게 따로 있는것 같아. 어쩌면 구하기 어려운거라 흔한거 먹고 싶다고 거짓말 한걸까?
- 그럴지도 모르지.


적비성은 자신이나 방다병의 재력이면 황제가 먹는 것도 못구할까, 이연화가 그걸 모르지 않을텐데 약간 의아하긴 했어. 이연화는 어쩌면 또 바른 답을 알려주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방다병은 머리속으로 혼자 끙끙거리느니 그냥 다시 물어보기로 했어. 이제서야 좀 깨달았는데 이연화는 자신이 약한 모습으로 매달리면 마음이 좀 약해지더라고. 이연화앞에서는 어린애처럼 굴고 싶진 않았지만 지금 자기 자존심이 무슨 대수야.


그만 좀 물으라고 정말이라고 미간 골이 깊어지며 짜증을 내는 이연화에게 방다병은 집요하게 달라붙어 어르고 꼬장 부리고 너 밥 안먹으면 나도 안먹겠다며 으름장 부리고 매달렸어. 이연화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우물쭈물했어. 뭐가 있긴 있구나 방다병은 말만 하라고 계속 밀어붙였어. 


-.... 길씨 아주머니댁의 당부쇄가 먹고 싶어.


방다병은 흠칫 입을 다물었어. 양주로 가는 길에 강을 끼고 있는 마을이 하나 있어. 수로로 물품을 옮기는 나루터가 있기에 꽤 북적이는 마을인지라 장터도 꽤나 크게 열리는 곳이야. 온갖 물건을 다 파는데 거기에 간식을 파는 유명한 가판대가 하나 있어. 여러 다른 상점도 많고 평범한 간식 거리를 파는 작은 가판대이지만 여기서 길씨 아주머리나 불리는 주인장의 손맛이 일품이어서 다들 줄을 서고 사가는 곳이야. 


떡이라던가 강정이라던 월병이라던가 그런 종류의 다과는 시간을 두고 먹어도 되는 간식이라 자신이나 적비성이 나가서 사오면 그만이지만 하필이면 당부쇄라니. 튀긴것을 바로 먹어야 맛있는 음식인데 그걸 사온다고 한들 이연화가 그때 먹었던 그 맛이 나기나 하겠어. 난처해하는 이연화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고 그제서야 방다병은 이연화가 왜 망설이는지 이해하게됬어. 


이연화를 밖에 데리고 나간다고? 방다병은 약간 얼이 빠져서 적비성을 쳐다봤고 적비성도 난감함을 감추지 못했어.






연화루 비성연화 다방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