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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01 10:34
노잼주의 경찰모름주의





그 남자, 션이의 사정

“ 한번 더 생각해봐. ”
페이가 사무실을 나가고 나서 션이는 오랜 짝사랑을 떠올렸다.
일그러진 얼굴과 성난 표정, 그와 대비되는 슬픈 눈이 뇌리에 박혔었다.
빨리 그려내라고 소리치는 목소리는 위협적이였지만 떨림이 가득했다.
그래서 이 마음이 시작 되었는지도 모른다.

7년 전, 넌 그림 그리지마라- 는 두청의 말에 한동안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그동안 그렸던 그림도 다 태워버리고 얼마간을 폐인처럼 보냈다.
매일 술에 취해 휘청거리는 나날이였다.
잘생긴 얼굴과 예술가 특유의 매력이 더해져 남자여자 할 것 없이 션이 주변으로 꼬여들었다.
션이도 거절하지 않았다. 매일 다른 여자와 나가 밤을 보냈다. 그러다 어느순간부터 여자가 아닌 남자와 함께 나가기 시작했다.
키가 크고 무뚝뚝하게 생긴 남자.

션이는 자신의 감정을 바로 깨달았다.
한번의 만남에 첫눈에 반했다.
자신의 감정을 깨닫고 나서 두청의 눈빛이 생각났다. 절망과 슬픔이 가득한 눈빛이.
그래서 기필코 레이팀장의 초상화를 의뢰한 여자를 그려내, 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붓을 다시 잡기 시작했고, 범죄미술 자문을 시작으로 경찰에 연을 댔고,경찰 특채로 채용되어 능력을 인정받아 경찰대로 발령이 났다.

가끔씩 신문에 나오는 두청을 보았다. 또 아주 가끔씩은 경찰 행사에서도 그를 보았다.
여전히 위협적인 남자였고, 그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웠지만 또 한편으로는 경찰이 된 자신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와의 관계에 대한 희망과 기대는 없었다. 그 여자를 그려내 그의 소중한 사람을 살해한 범인을 잡아 그가 더이상 슬퍼하지 않길 바랄 뿐이였다.

한참 강의를 하던 어느 날, 경찰학교측에서 전근 신청을 승인하여 베이장 경찰서로 발령이 났다는 서장의 말에 이제 그를 정식으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떴다.
7년 만이였다. 길다면 긴 시간이 흘렀어도 새파란 분노를 터트리는 두청을 보았다.
예상했던 것 보다 더 격렬하고 혐오감 가득한 배척에 슬펐지만 션이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베이장 경찰서의 첫 날, 집 앞 골목 가로등 밑에서 션이는 어두운 하늘과, 주황색 가로등 불빛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두 사람이 함께 사건을 해결하고, 오해가 풀리면서 두청은 더 이상 너를 원망하지 않는다- 라고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차라리 원망하는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션이는 두청의 다정함에 질식해갔다.

가끔은 두청의 다정함에 그도 혹시? 라는 착각을 했으나 우연히 동료들과 질낮은 농담 속에서 이성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션이는 두사람의 관계는 가망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 남자, 두청의 사정

“ 팀장님 몽타주는 언제까지 나올 수 있대요? ”
장펑이 406호에서 돌아나오는 두청에게 말을 걸었다.
“ 몰라. ”
두청의 굳은 표정을 보고 장펑은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리한에게 다가갔다.
“ 둘이 싸웠나? ”
“ 그러게, 사랑 싸움이라도 했나? ”

두청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의자에 눕듯이 앉았다.
‘ 없어요 그런 사람 ’
두청은 션이와 사귀고 있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키스를 하고, 오프를 함께 하고 있으며, 출퇴근도 함께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좋아하고... 서로... ?
두청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션이가 날... 좋아하는 건 맞나?
두청은 그동안의 일들을 떠올렸다.

혼인 빙자 살인 사건의 범인이였던 차오둥에게 납치돼, 물에 빠졌던 사건 이후로 션이가 정말 M에 대해 기억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함께 수사하며 그에 대해 알아가면서 더이상 션이를 원망을 하지 않게 되었다.
원망이 사라지면서 그 자리는 미안함으로 채워졌다.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화가가 자신의 오해와 폭언으로 인생의 경로가 바껴버렸다.
미안함을 만회하고자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신경을 쓰고 조금 더 들여다 보는 날들이 이어졌다.

션이의 경찰대 강의가 있었던 어느 날, 두청은 탐문 수사를 나갔다가 마침 경찰대 근처라 점심이나 사줄까 싶어 경찰대를 향했다.
아직 강의중이라는 션이의 문자에 물어물어 강의실을 찾아갔다.
커다란 강의실에 수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 모습에 자신이 그의 부모라도 된 듯 뿌듯해졌다.
큰 몸을 구부정하게 구기고 강의실로 들어가 맨 뒷자리에서 강의를 들었다.

강의가 끝나고 몇몇 학생들이 션이에게 몰려가 친밀하게 얘기 나누는 모습에 두청은 어쩐지 기분이 나빠 미간이 찌푸려졌다.
한참 웃으며 이야기 나두던 션이가 두청 발견하고는 학생들과 인사를 하고 가볍게 뛰어 두청에게 향했다. 두청을 바라보는 션이의 눈은 반달로 접혀 웃고 있었고, 그 모습에 두청은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 뭐 사주실거예요? 이 근처 맛집 되게 많아요. ”
연신 웃으며 두청을 향해 말을 하는 션이의 눈이 반짝거렸다. 언젠가 누나가 새로 맞춘 반지라며 보여준 다이아몬드처럼 반짝거렸다.
“ 여기 돈까스 맛집도 있고, 볶음밥 진짜 잘하는 곳도 있어요. 좀 더 걸어가면 불고기 파는 곳도 있는데.... ”
연한색의 얇은 머리카락이 걸음걸이에 나풀거리는게 꼭 어린 짐승의 털같아 쓰다듬고 싶어 손을 슬쩍 올렸다가 우물쭈물 내렸다. 다 큰 성인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는 건 좀 그렇지.. 속으로 중얼거리며.

두청은 진한 에스프레소 위에 다 녹아버린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스푼으로 뒤적거리고 있었다.
좀 전에 보고 나온 전시에 대해 누나와 션이가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그는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솔직히 두 사람을 따라다니는 건 재미없고 따분했다. 그러면서도 왜인지 모르게 따라다니고 있었다.
가끔 누나가 바쁜 일이 있다고 사라지면 둘이서 저녁도 먹고 주변 산책도 하며 느긋하게 둘 만의 시간을 보냈다. 남자 둘이 특별한 일 없이 보내는 그 시간이 좋아, 매주 이 만남이 기다려졌다.

레이 팀장의 사건이 마무리되고 나서 부터 두 사람은 함께 퇴근을 하고 있었다
몇 번의 야근이 끝나고 자전거를 타고 어둠 속으로 향하는 션이의 뒷모습이 불안했다.
차만 타면 졸아서 택시를 태워보내기도 걱정이 되어 태워다 주던 게 그새 습관이 되었던지 이제는 퇴근은 물론 출근까지 함께하고 있었다.

졸음을 참느라 흐리멍텅한 눈을 하고 느릿느릿 말하는 션이를 보며 두청은 피식피식 웃었다.
고장난 가로등 밑에 차를 대고 두 사람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퇴근은 정시에 했지만 션이를 집으로 들여보내는 시간은 10시를 넘기기 부지기수였다.
별 시덥지 않은 이야기부터 수사중인 사건 이야기 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화수분 터지듯 나왔다. 션이와 있으면 주절주절 이야기가 터져나왔다.

그러다 션이에 대한 감정을 깨닫는 시건이 생겼다.
대규모 보이스피싱 사건 수사를 위해, 장펑과 리한, 션이 함께 의심가는 건물에 들어갔다가 범인들에게 잡히는 일이 벌어졌다.
세 사람을 구하고 나서 두청은 처음으로 션이에 대한 감정이 그저 동료로, 장평이나 리한처럼 생각하는 건 아님을 알았지만 남자를 연애대상으로 본다는 건 생각치도 않은 일이라 그 감정이 연애 감정임을 바로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엽죄도감 두청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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