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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5 17:06
우당탕탕 사계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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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가 사계산장에 해가 된다면 제가 나갈게요.”

뒤늦은 사춘기가 온 것도 아니고. 흐르는 물처럼 이리저리 흐르기만 하던 온객행이 갑자기 왜 이럴까. 보름 전 사계산장을 찾은 두 손님 때문이겠지. 사내는 지금은 깊은 잠에 빠졌고, 이제 막 뒤집는 핏덩이는. ‘사형! 둘째 사형! 아기가 깼어요!’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온객행은 인사도 잊고 밖으로 나감.

“아원. 아원. 우리 아원이 왜 울까.”

아이를 안고 어르는 모습을 보며 주자서는 입안이 말라 다 식은 차를 마셨음. 온객행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야. 피라는 게 무섭지. 자기만 해도 진왕이 부르면 달려가곤 하니까. 허나, 소식 한 번 주고 받은 적 없던 피가 이어졌는지도 모를 그런 아이를 책임지기 위해 산장을 나가겠다니. 그건 용납할 수 없었어. 그렇다고 기산 온씨의 피가 흐르는 아이와 이릉노조라 불리는 이를 사계산장에 둘 수 있을까.

“혼자 세상에 떨어졌을 때를 아니까요. 사형이 제게 손을 내밀어줬을 때를 아니까요. 그래서 이번에는 이 아이에게 사형 같은 사람이 되어보려구요.”

주자서의 고민은 길게 가지 않았지. 저렇게 말하는데 어떻게 나가라고 해? 어떻게 아이를 버리라고 해? 사계산장 둘째에게 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생겼지. 둘째의 곁방에 있는 의식 없는 객은 사계산장 내의 비밀임.





온객행은 약초를 다듬거나 애들 낮잠을 재우는 등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위무선이 있는 방에서 했어. 그야 원래 그런 용도로 사용하는 방이었으니까. 처음엔 언제 일어나질 모르니 걱정된 마음이었고, 지금은

“일어났으면 도와.”
“들켰어? 나 아픈데~”

저를 흘겨보는 온객행에 위무선이 조심스레 일어났어. 온원과 고상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침상을 내려갔지. 풍채 좋은 미남이 온객행에게 달라 붙었어. 이걸 확. 약초를 일정한 간격으로 자르던 온객행은 칼을 놨음.

“아선 내가 칼 들고 있을 때 이러면 돼? 안 돼?”
“돼!”
“네가 몇 살이야? 아원이랑 아상도 안 할 행동을 해?”
“선선이는 세 살이야.”

위무선은 온객행 허벅지에 얼굴을 베고 누워버림. 어휴. 온객행은 깊은 한숨을 쉬고 남은 일은 뒤로 미뤘지. 약재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저건 아이들이 자는 동안 하는 소일거리였으니까. 자느라 엉킨 위무선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겨주며 상태를 살폈어. 어디 아픈 곳은 안 보이고, 잘 잤는지 안색도 좋았지.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찡그린 미간을 펴주며 커다란 손으로 가려줬지.

“히. 선선이가 그렇게 잘 생겼어?”
“응. 잘 생겼어.”
“어, 어?”
“이마도 반듯하고 콧대도 높고 입술은 두껍지도 얇지도 않지. 지금은 건강도 좋아 혈색도 도니 보기 좋아. 마을에만 가면 처자들이 장가 보내 달라고 난리야.”

장난으로 한 말이 진지하게 돌아오자 삐걱거리는 건 위무선 쪽임. 온객행을 따라 마을에 몇 번 내려간 적이 있고, 저를 호감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꾸냥들도 있었지. 그런데 온객행에게 그런 말까지 할 줄은 몰랐어. 위무선은 몸을 돌려 온객행의 허리를 끌어 안았지.

“선선이 아직 세살이고 연이 형아의 보살핌이 필요한데 장가 보낼 거야?”
“밥 안 먹고 술만 마시면 보낼 거야. 아주아주 무서운 낭자에게.”
“아이잉. 그건 장주께서 혼자 마시기 적적하다고 하니까.”
“위공자 지금 내 핑계를 대는거요?”
“사형.”

뜻밖의 손님이 찾아와 온객행이 있는 곳에 들린 주자서는 안에서 들리는 말소리에 피식 웃었어. 일 년 전에는 생각도 못 했지. 섣부른 판단으로 온원과 위무선을 쫓아내고 온객행을 산장 내에 연금했으면 이런 것도 못 봤겠지.

“구소가 돌아왔다. 조카들이 보고 싶다고 난리치는 걸 낮잠 시간이라 말렸으니 너라도 보러가는게 어떻니? 위공자도 함께 가겠소?”
“저야 좋죠!”

진구소는 전대 장주의 유일한 핏줄이자 주자서와 온객행의 사제야. 두 사람은 나이 차이에 비해 십년지기처럼 잘 맞았는데 위무선이 사계산장에 적응하기 쉽게 도와준 사람이었지. 한 달 전 강호를 유람 중인 부모님께 다녀오느라 잠시 산장을 비웠는데 돌아왔나봐.

“준비하고 갈테니 사형께서 아소를 잡아주시겠어요?”
“오냐. 먼저 가서 기다리마. 위공자 함께 가겠소?”
“연(蓮)이랑 함께 갈게요!”
“알겠소.”

아선. 나는 연(蓮)이 아니라 연(衍)이야. 문을 닫고 나오는데 등뒤로 들리는 말소리에 주자서는 웃었지. 연꽃이라. 행복한 기억만 있는 것도 아닌데 그리운 건 고향이라 그런 거겠지.

주자서는 위무선이 잠들어 있는 동안 제자들과 별도로 만든 천장이란 조직을 통해 그의 과거를 조사했어. 연화오 하인 출신의 아버지와 포산산인의 제자 장색산인의 자식. 부모는 어린 나이에 잃었고, 그 뒤 아버지와 연이 있는 연화오에서 살았지. 그곳의 대사형으로 들어간. 재능은 있으나 사모와 후계자의 눈치를 봐야 하는. 차라리 주자서처럼 진구소와 나이 차이가 있다면 눈치를 덜봤겠지만 한 살 차이였지. 무림의 문파와 달리 수진계는 피로 이어졌으니 더더욱 눈치를 봐야 했을 거야.

재능이 출중하니 아까웠지. 연화오가 아니라 사계산장에서 자랐으면 어땠을까. 사부를 닮아 장난끼가 있으나 사모와 온객행의 감시 아래 적당한 선을 지켰겠지. 사형제들과 돈독한 사이였을 거고, 자라서는 주자서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나무 중 하나가 되었을 거야. 

입문을 권유해볼까. 어쩔 수 없이 사특한 기운을 사용했으나 잠들어 있는 동안 온객행이 치료했지. 장명산에 있는 검선과 신의곡 노곡주께 도움까지 요청해 가며. 몸이 완전히 아물고 재활 운동을 하며 수련을 시작하면 금방 사계산장의 무공도 익힐 수 잇을 거야. 근골이 훌륭하거든. 욕심이 났어. 위무선의 됨됨이를 아니 더더욱.

“사형! 우리 조카님들은 언제 오나요?”
“연이가 깨우고 있다.”
“무선 형은요?”
“연이가 옷을 갈아입히고 있을 거다.”

둘째 사형은 벌써 애가 셋이네요. 진구소의 말에 주자서는 웃음을 터뜨렸지.

“셋이 아니라 넷. 둘째의 첫째는 너지. 너 어릴 땐 저것보다 더 했다.”
“진짜요?”
“그래.”

온객행은 어리고 작은 것들에 쉽게 정을 줬어. 그래도 다치지 않게 키운 사람이 진장주였음. 사부의 뜻을 이어 온객행을 지키는 사람이 주자서이고.





저녁을 먹고, 씻은 후 더 놀거라며 잠투정 부리는 온원과 고상을 재운 온객행이 후원으로 갔어. 주거나 받거니 술을 마시는 주자서와 위무선을 보고 있자니 위가 아팠지. 진구소의 자리가 깨끗하게 비어있는 걸 보니 술고래 두 마리를 상대하다 뻗은 게 틀림없지.

“위무선!”
“윽.”
“이런 위공자 보호자가 오셨구려.”
“사형도!”
“제 보호자가 곧 장주님의 보호자 같은데요.”
“나의 내자께서 잔소리가 심하다오.”

하하. 주자서의 말에 위무선은 웃어 넘겼지. 처음 저 말을 들었을 때 두 사람이 단수인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데. 놀란 그를 보고 진구소가 빠르게 이유를 알려줬음. 주자서는 혼례에 뜻이 없었어.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장가를 가야한다고 난리였지. 사계산장의 안살림을 책임질 이가 필요하다며 주자서를 압박했음. 그 때 주자서가 내놓은 방안은 온객행이었어. 혼례에 뜻이 없는 건 그의 사제도 같았거든.

사계산장의 둘째가 곧 안주인이다. 사모님께 배워 살림도 알뜰살뜰 잘 챙기니 걱정은 접으라고. 강호가 술렁거렸으나 온객행에게 입대는 사람은 없었어. 아무렴 악양파의 고숭과 대고산파의 심신, 경호산장의 장옥삼이 비호하는 온객행에게 어느 누가 입을 댈까. 초반에는 권력으로 입을 다물게 하고, 2~3년 뒤에는 실력으로 입을 다물게 했어. 온객행이 어느 안주인 못지 않게 일을 잘 했거든. 혼인 적령기의 딸을 가진 부모는 온객행에게 배움을 청할 정도로.

“또또 그런다, 또! 사형 좋은 분 만나셔야죠. 제가 언제까지 사형 뒤치닥거리만 하나요?”
“부인. 내가 벌써 질린거요?”
“아연은 가락지 하나 선물한 적 없는 부군을 둔 적 없답니다.”
“이크. 그건 장주께서 잘못하셨네요.”
“절혼 당해도 어쩔 수 없겠구려.”

술을 더 내올까 물어보는 시비에게 먼저 들어가 쉬라는 말을 하며 온객행은 위무선의 귀를 잡아 당겼어. “넌 오늘 곁방에서 혼자 자. 술 냄새 풍기며 침상으로 들어오면 쫓아낼 거야.” 온객행의 말에 주자서는 술잔을 놨어. 그간 위무선은 많이 괜찮아졌어. 몸도 마음도. 그러니 슬슬, 

“연아. 내일 날이 밝거든 위공자를 위한 처소를 준비해라.”
“네?”
“장주님 저는 곁방에서 지내는 걸로 충분합니다.”
“그 곁방은 연이가 약초를 다듬거나 약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방이라 좁소. 의식이 없을 때야 걱정돼 그 방에서 머무는 걸 두고 봤어도 의식을 찾은 지금에는 제대로 된 방을 주는 게 맞지.”
“하지만...”
“아선, 사형의 말이 맞아. 곁방에 있는 침상은 네가 쓰기엔 작기도 하고.”
“연이 방 근처로 배정할 터이니 엄마 잃은 아이처럼 굴지 말게.”
“넵. 감사합니다. 저는 객인데 다른 분들만 고생하겠네요.”
“그래서 말인데.”

위공자. 사계산장의 제자로 들어오지 않겠소? 주자서의 질문에 위무선은 시간을 달라했어. 어색한 분위기가 만들어지자 온객행은 술자리를 파했지. 위무선에게 먼저 가서 씻고 기다리라는 말을 한 뒤 주자서를 따라 장주의 방으로 갔지.

“무슨 생각이세요? 아선은 운몽 강씨의 제자입니다.”
“강만음이 파문했으니 현재는 무소속이지.”
“그 애가 연화오를 그리워 하는 걸 아시잖아요. 저를 연(蓮)이라 부르는 것도-”
“네가 연꽃처럼 아름다워 그런 거겠지.”
“사형.”
“마음에 들었다.”

온객행은 한숨을 뱉었어. 장주가 마음에 든다니 뭐 어쩌겠어. 사실 장주 뿐만 아니라 온객행도 위무선이 마음에 들었지. 지기로서 동생으로서. 저에게 그랬듯 위무선에게도 사계산장이 집이 되길 바랐어. 하지만, 하지만 그가 진짜로 그리워 하는 곳이 따로 있음을 알고 있으니까. 저를 제외한 친인척을 전부 잃은 온원이라면 모를까 위무선은 돌아갈 곳이 있음을 아니까.

“장주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가 원한다면 놓아주셔야 합니다.”
“연아.”
“안 따라가니 걱정마셔요. 사형께서 내민 손을 잡은 날부터, 연이는 사형의 것입니다.”

주자서는 웃었어. 기꺼이 제 손에 잡혀주는 사제가 귀여웠거든. 이제 감히 사계산장을 나가겠다는 말은 안 하겠지. 그럼에도 위무선이 사계산장에 남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이름처럼 나그네로 살겠다는 제 사제를 사계산장에 묶어둘 것이 많으면 많을 수록 좋으니까.





“알았어?”
“뭘? 그보다 젖은 머리로 자면 감기 걸리니 이리 와.”

위무선은 의자에 앉아 차를 마셨어. 사실 차가 아니라 술을 마시고 싶었으나 등뒤에서 제 머리를 말려주는 온객행 때문에 참았지. 술을 마셔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지도 않았고.

“사형의 권유라면 몰랐어. 정말이야. 네게 돌아갈 곳이 있는 걸 알고 있는걸.”

돌아갈 곳. 연화오. 위무선은 온객행의 손길에 몸을 맡기며 생각했어. 자신이 연화오로 돌아갈 수 있을까? 눈 가리고 아웅하는 형식이나 이미 파문 당했는데. 아무리 멀다해도 강징이 찾았다면 사계산장에 연통 하나는 보냈겠지. 이리 조용한데. 몸 안의 사기를 전부 거둬내고 금단을 다시 맺을 수 있는 지금까지 저를 찾는 이 한 명 없는데. 돌아간다고 해서 받아줄까.

“아선.”
“응.”
“사형도 지금 당장 답을 달라는 뜻으로 한 말은 아니야. 충분히 생각해 봐.”
“너는 어때?”
“응?”
“너는 내가 갔으면 좋겠어? 아님 여기 남았으면 좋겠어?”

온객행은 입을 다물었음. 그리고 위무선의 머리카락을 말렸지. 향 하나가 타는 시간이 흘렀을까. 나무빗을 꺼내 빗질을 하며 입을 열었어.

“나는 네가 선택하기 전까지 안 알려줄 거야. 네가 외부의 그 어느 것에도 휘둘리지 않고, 마음 가는대로 선택하면 그 때 알려줄 거야.”
“내가 귀찮은 건 아니지?”
“설마. 그랬으면 우리 세살 선선이 머리를 이렇게 말려주고 있을까.”
“맞아. 선선이는 세살이야. 그러니까 방 따로 쓰기 싫어.”
“뭐?”
“내일 장주님한테 말 좀 해줘. 선선이는 세살이니까 같은 방 써야 한다고.”

위무선은 머리 아픈 일은 잠시 접어두기로 함. 그리고 온객행에게 어리광 부렸어. 과거 연화오가 불타기 전 강염리에게 했듯이.

“연아.”
“응?”
“연근갈비탕 먹고 싶어.”
“좋아. 대신 애들도 먹어야 하니까 안 맵게 할거야.”
“엑. 아이잉. 연이 형아 선선이는 매운 연근갈비탕 먹고 싶어~”
“세 살 선선이는 매운 거 먹으면 안 돼.”

투닥투닥 말소리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온객행 방의 초가 꺼지고 네 사람의 고른 숨소리가 퍼짐.





구소정안 , 자헌염리 외의 컾 없음
다 형제애임





산하령 진정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