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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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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비성 은근히ㅋㅋ 주접? 잘 떨듯

하루는 이연화 다리도 뻐근하고 연화루 돌볼 것도 있어서 적비성더러 근처 마을 내려가서 고기랑 이것저것 좀 사오라고 심부름시키는데 적비성이 암만 기다려도 안오는거임 이연화 첨엔 적비성인데 무슨 일이 생기겠어? 하면서 얌전히(?) 기다렸는데 날 어두워질때까지도 안오니까 진짜 뭔 일이 생겼나보다 하고 불여우 데리고 찾으러 갈 준비 마침. 근데 그와중에 적비성이 어둠 속에서 비틀비틀거리며 걸어들어오는거야. 연화가 놀라서 튀어나가 살피니까 적비성 손엔 애초에 보냈던 심부름과 관련없는 쓰잘데기없는 것들이 들려있고, 코가 막혀도 술을 먹었다는 걸 알 수 있을만큼 술냄새가 풀풀 남. 근데 뭘 잘했다고 황당한 표정을 짓는 이연화 얼굴을 보자마자 적비성이 6살짜리 애처럼 환하게 웃으며 반갑다고 연화를 꽉 끌어안아버리는거야.


하...이연화...하하...
너, 너, 이게...무슨...??
...연화...이연화.......


그럼 거하게 취한 적비성이 한껏 기분이 들떠 반쯤 꼬인 혀로 연화를 불러대겠지. 연화는 이제 적비성을 걱정했던 맘이 짜증으로 변해 말끝이 뾰족해졌을거고. 적비성, 미쳤어? 너 무슨 술을 이렇게 많이 마시고 온 거야? 근데 술에 꼴은 적비성이 연화의 기분같은 걸 섬세하게 알아차릴 리가 없잖아. 적비성은 이연화가 술주정뱅이 품에서 빠져나가려고 움찔거리는 걸 무슨 귀여운 장난이라고 생각했는지 이연화를 붙잡고 흔들흔들 몸을 흔들며 흐흐흐 내 마누라..하고 좋아하기나 함. 연화가 너 술 깨고 일어나면 보자. 이를 빠득 갈고 무거운 적비성 침상으로 끌고가서 낑낑거리며 옷 갈아입히는데 적비성은 눈치없이 끝끝내 연화 붙잡고 안놔줘서 연화 신경질 잔뜩오른 상태로 강제취침함ㅋㅋㅋㄱ


이연화는 잠결에 적비성이 자리를 비웠다가 한참만에 다시 돌아와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눕는 걸 어렴풋이 느꼈음. 아마 지가 한 짓이 있으니 새벽같이 씻고 운기조식하며 술기운을 대충 날리고 온 것 같았지. 이연화는 걍 모른척 할까 하다가 미운놈 떡 하나 더 주자는 심정으로 일어나 찬장에 고이 숨겨뒀던 꿀을 퍼 물에 팍팍 개어서 꿀물을 만들었음. 그리고 좀 떨어지라고 밀어냈컨 어제와는 달리 알아서 등을 지고 얌전히 잠든 적비성의 널찍한 등을 짝 소리가 나게 후려갈겼지. 연화가 가끔 도전하는 갈비찜만큼이나 매운 손길에 적비성이 으윽..하고 고통스러운 소리를 냈음. 연화가 자는 척 하는 거 다 알고 있으니까 일어나라며 적비성에게 차갑게 이야기했고 적비성은 잘 조련된 맹수처럼 큰 몸을 느릿하게 일으켜 앉아 마른세수를 했음. 그럼 이연화가 타박하듯이 쯧쯧 소리를 내며 꿀물을 탄 물그릇을 적비성에게 건넸을거임. 그 상황에서 어제보다 제정신이 돌아온 적비성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말없이 그걸 전해받고 꿀꺽꿀꺽 한 방울도 남김없이 마시는것밖엔 방법이 없었음


어제 뭘 하고 돌아다녔던 거야?
......술을 마셨다.
..좋아. 마실 수도 있지. 그럼 미리 말해줄 수도 있는 거 아냐?
..으음....
아니면 적당히나 마시고 오던가! 어제 너가 팔자좋게 술이나 퍼마시고 있을 동안 나는... 혹시 네게 무슨 일이 생긴줄만 알고...


적비성에게 카랑카랑 쏘아붙이던 이연화가 한숨을 내쉬었음. 바가지를 긁는다고 가만히 긁혀줄 놈인가 싶어 연화가 입을 다물고 자리를 피하려고 했지. 그랬더니 적비성이 냉큼 일어나 멀어지려는 연화를 요령좋게 슬쩍 당겨 안았음. 밀어내면 언제든 밀려나줄 것처럼 가깝지만 가벼운 접촉으로 연화의 경계를 누그러뜨리는 적비성이었지. 어젯밤의 독한 술냄새와는 달리 나무냄새를 닮은 적비성의 깨끗한 내음이 훅 끼쳐와 연화의 마음도 한결 차분해졌음. 그러다보니 답답해서 꼴도 보기 싫었던 부군놈이 대체 뭐라고 하는지는 들어보긴 하자로 연화의 마음이 살살 기울어버리는데


미안하다. 내 생각이 짧았어.
...
걱정하게 만들지 않을게.
...어떻게?
앞으로 술은 이연화, 네가 곁에 있을때만 마시겠다.


너 이외엔 함께 마시고픈 놈들도 없으니. 적비성이 연화의 귓가에 소근소근 속삭이자 연화는 저 입발린 말을 믿어줘? 말어? 하다가 고개를 내젓고 말았겠지. 그렇게 극단적일 필요 없다고. 말이나 미리 좀 해달란 말이야! 내가 널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 줄 알아??? 나도 오랜만에 뒷마당에 묻어둔 매실주를 꺼내 너랑 함께 나눠먹고 싶었는데. 그럼 꿍얼거리고 잔소리하는 이연화에게 무조건 미안하다고 굽히고 들어가는 적비성이겠지. 아침나절부터 침의바람으로 토라진 아내 달래느라 진빠지는 적맹주님...







그렇게 불가사의한 적비성의 외출사건(?)이 마무리 된 줄 알았던 이연화였지. 적비성이 시킨 물건을 제대로 사오지 않아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며칠 뒤 함께 마을로 내려가게 되었음. 근데 적비성과 나타난 이연화를 보고 사람들 반응이 아주 묘해지는거지. 과일을 파는 아주머니가 어째서인지 이연화를 알아보고 어휴~ 색시가 곱긴 곱구만 하시면서 홍옥처럼 예쁜 사과 한알 덤으로 주시고 고기사러 들린 푸줏간에선 얘기도 따로 안했는데 적비성에게 포장된 고길 주시면서 부인 많이 먹이시라고 주인이 눈 찡긋거림. 근데 그 외에도 지나가던 찐빵집에서 불러서 찐빵 몇개 쥐어주시고 장신구 가게에서는 두 분의 소원(?)을 들어줄 거라며 홍실로 엮은 소박한 팔찌를 묶어주기도 했음 이연화는 적더라도 바쁘게 물건값을 치르며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머리를 굴리는데 적비성은 모른척 먼 산만 보고 있는거임. 아무래도 적비성이 무슨 짓을 하긴 한 것 같은데 그게 뭔지 감이 잡히지 않아 눈만 뾰족하게 만들고 있는 이연화겠지. 그러다가 어느 음식점 앞을 지나가는데 점원이 이연화와 적비성을 반기면서 막 억지로 끌고들어오고 요란하게 주인장을 불러오는거임. 그러다가 이연화는 보고야 말았겠지. 가게의 벽 한켠에 다른 이들의 이름과 더불어 금색으로 요란하게 적힌 자신의 이름자를 말이야. 정확히는 '이연화의 남편' 이라고 쓰여진..보고있기만 해도 민망한...


...너...너...저게 대체...???
...크흠..









사실 적비성이 처음부터 다른 의도를 가지고 다른 길로 샜던 건 아니겠지. 처음에 이연화가 시킨 심부름을 하려고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렸는데 점포마다 주인장들이 있어야 말이지. 아니 한창 물건 팔 때에 다들 어디갔냐고. 적비성은 날도 더운데 얼른 돌아가 씻고 오랜만에 이연화를 껴안고 느긋하게 낮잠이나 잘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 조금 심기가 불편해진 적비성이 다들 어디갔냐고 지나가던 사람을 붙잡고 반 협박조로 묻자 젊은 청년이 벌벌 떨면서 어떤 유명한 주점앞에 있을거라고했음. 자기도 거기에 구경을 가는 중이라면서. 그래서 적비성은 청년을 앞세우고 문제의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겠지.

죽영루라고 불리는 가게는 음식 맛은 나쁘지 않았으나 가게 대대로 내려오는 술맛과 이따금 구경할 수 있는 볼거리로 더 유명했음 가문의 비법으로 빚는 술도 술이었지만 이 독특한 가게는 술고래들을 부추겨 심심찮게 내기를 붙이곤 했는데 벽면 한쪽을 채우고 있는 이름들이 그 내기의 결과들이었지

'자식이 권세를 누리게 된다'
'아픔이 낫게 된다'
'용기가 생겨 바라던 일을 이룬다'

뭐 이런 허무맹랑한 소원성취류의 일인자를 술로 가리고 주인장은 술값에 얹어 가까운 절에 우승자의 이름으로 불공을 드리도록 하는 방법의 사업을 진행했는데 그게 나름 입소문을 타 쏠쏠한 돈벌이와 명성을 가져다주었던 것임. 대체 술을 처먹는 것과 저것들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냐 할 수 있겠지만 기회만 있으면 술을 달고 사는 술꾼들에게는 그날만큼은 조금 더 당당하고 대의적인 명분으로 술을 먹을 수 있었으니 양쪽에게 좋은 일이었겠지. 그 날의 술내기는 이미 시작이 된지 조금 되었고 다른때보다도 더 빨리 우승자의 윤곽이 좁혀지는 것 같았음. 주변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술 한잔씩을 시켜 바싹 타는 목을 축이며 수근대기 바빴음. 남아있는 자는 셋으로, 한 놈은 거의 술이 떡이 되어 고개를 처박고 있었고 웬 노인과 험악하게 생긴 장정이 술동이를 가져다놓고 꾸역꾸역 술을 퍼먹고 있었지.


아휴, 영감님 적당히 하시지.
속이 오죽 타면 저러겠어?
으이구, 아무리 그래도 낮짝 한 번 두껍구만.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에 적비성도 은근히 호기심이 생겼을거임. 적비성이 불쑥 끼어들어 뭐하는 거냐고 물어봤는데 술이 좀 들어간 사람들이 적비성을 힐끗 보고는 삐딱한 질문에도 너그럽게 대답해줬음. 영감쟁이와 도적놈은 서로 아는 사이로, 도적놈이 생긴 것 답게 할배의 막내딸을 훔치듯이 데려가 억지로 부부의 연을 맺었다는 것, 그마저 한 달을 못 채우고 부인을 때려죽여 상을 치른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는 이야기를 적비성에게 들려줬지. 적비성은 그렇담 할배가 술을 마실 게 아니라 도끼를 갈아 도적놈의 목을 베어버리면 그만 아닌가 의아했지만 음식점 천장에 내걸린 내기 주제를 보고 인상을 콱 찌푸리고 말았음.

'아내와 다음 생에도 백년해로하게 된다'

적비성은 순간 치를 떨며 점원을 불렀음. 보란듯이 술병 반 동이를 그자리에서 비우며 참전의사(?)를 밝히고 의자를 끌어다가 눈이 시뻘개진 할배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지


술도 못마시는 주제에 고집 그만 부려라.
..어린 놈이 싸가지없기는.. 아직 거뜬해!!
이기는 게 중요한가? 난 꼭 내 아내와 백년해로 해야해서 말이야.
떼잉, 너같은 싹퉁바가지도 장가를 들었다니 세상 말세로구나
하하. 그러니 내세에도 내 마누라뿐이지. 노인네는 이만 물러나시게.


그럼 주변 사람들이 적비성과 노인이 있는 자리에 슬금슬금 다가와 술잔을 채워주며 신이나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거임. 내기란 게 빨리 많이 먹는 방식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 안에 술동이를 비우면 되었기에 적비성은 마을사람들이 물어보는 질문을 안주삼아서 술을 마셔나갔겠지. 훤칠해보이는 총각같으면서 이미 장가를 간 지 삼년은 지난 유부남인 것, 아내는 어딨냐기에 예뻐서 지만 볼거라고 받아쳐 핀잔도 들었다가, 다리가 아파 데리고 오지 못했다는 말에 누군가가 안타까워하며 다음에 오면 먹거리를 챙겨주겠다고 했을거야. 아내 어디가 좋아서 결혼했냐는 말에 빙그레 웃기만 해서 주점 사람들 다 야유하고 한바탕 웃고, 한참 뜸을 들이던 적비성이 사랑하고 아껴줄 자신 없었으면 혼인도 안했다고 해서 분위기 좀 쎄해짐. 왜냐면 그거 듣고있던 도적놈(처럼 생긴)이 가게 한쪽을 향해 술동이를 던져 깨버리면서 행패를 부렸거든. 그리고 하는 말이


술 좀 마시러왔더니 씨끄러워서 못 마시겠네.


라서, 적비성은 (이연화가 사람을 죽이는 건 안된다고 했으니) 저놈의 손가락을 부러뜨리는 게 나을까 강냉이를 털어버리는게 나을까 생각하며 세 번째 술동이를 쭈욱 남김없이 들이켰단 말임. 그랬더니 그걸 무슨 대결 신호로 알았는지 감히 적비성을 간크게 째려보며 남자도 술동이를 비웠고 그렇게 다소 미련한.... 술내기 승부가 펼쳐지게 되었음. 적비성이 마시면 남자가 따라 비웠고, 적비성이 또 밑빠진 독처럼 술을 들이 부으면, 도적놈도 술을 들이붓고가 반복되었지. 사람들이 두 사람을 지켜보는 가운데 그런 과정이 몇 번이나 계속되었을까.. 적비성이 술병을 비우고 술기운에 고개를 휘휘 터는데 도적놈은 쿵 소리를 내며 뒤로 나자빠져버렸음. 점원이 정신을 잃은 것 같은 남자의 상태에 고개를 휘휘 젓자 사람들에게서 환호성이 터져나왔음

사람들이 거진 흩어지고 나서도 홀로 술잔을 기울이던 적비성이 길어지는 그림자를 뒤늦게 발견하고 탁자에 대금을 올려놓고 일어섰음. 원래 우승자는 술값을 내지 않는 법이라기에 적비성은 그럼 할배 술값이라고 생각하라며 엎드려 뻗은 노인을 툭툭 쳐 깨웠음. 벽에 적을 이름도 필요하대서 큰 생각 없이 줄곧 보고싶던 이연화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남편이라고 했겠지 뭐. 그리고 노인네 집을 수소문해 데려다주고 연화루로 돌아온 것이었음. 들고들어갔던 물건들은 이곳저곳에서 아내한테 가져다주라며대신 챙겨준 것들이었을테고.









사건의 전말을 들은 이연화는 적비성을 끌고 주인장이 불공을 드려달라 부탁했다는 사찰로 올라왔음. 그리고 스님께 가능하다면 자신들의 복을 비는 게 아니라 죽은 여인의 극락왕생을 빌어주실 수 없냐 부탁했지. 의외로 길길히 날뛸 줄 알았던 적비성도 팔짱을 끼고 물러나 조용히 연화가 바라는대로 하게 놔두었음. 목탁소리, 염불소리가 향냄새와 함께 경내에 잔잔히 울려퍼졌음

예정에 없던 행선지에 들리는 일 때문에 두 사람이 연화루로 돌아오는 꽤 길어졌음. 산 속이라 빠르게 넘어가는 해로 주변은 벌써 꽤 어두워져있었지. 느려지는 귀가에 다리를 툭툭 두드리던 이연화가 결국 도중에 적비성의 등에 업히게 되었음. 처음엔 업히라니까 사양이라도 했던 것 같은데 이젠 냉큼 업혀서 쫑알거리는 게 귀여워 적비성은 피식 웃음이 나왔음.


아비, 내세에도 날 만날 생각을 하다니 아주 깜찍하네?


업혀있던 이연화도 적비성의 귓가에 나긋하게 속삭이며 웃었지. 내세에 또 이런 망나니술주정뱅이를 만나라고? 봐 줘. 응? 이연화, 날 두고 다른 놈을 만나면 그놈 사지를 잘라 땅에 파묻어버릴거다. 어휴, 이것 봐. 마음을 험하게 쓰면 오던 복도 달아나버린다고. 부부가 두런두런 다소 살벌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둑어둑해도 익숙한 풍경인게 연화루 근처에 다다른 것 같지. 멀리서 주인의 기척을 느꼈는지 불여우가 짖으며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음. 반사적으로 걸음을 재촉하려는데 적비성의 뺨으로 부드러운 입술이 닿았음. 적비성이 숨을 멈췄음


난 다음 생도 좋지만, 지금 있는 힘껏 사랑받고 싶은데...


쪽, 쪽 닿는 귓가에 닿는 간지러운 자극에 적비성이 어금니를 깨물고 이연화를 고쳐업었음. 이연화 말이 백번 옳았지. 지금 이순간에도 널 사랑해서, 사랑해주기만도 벅차 온 마음이 다 너로 가득차버리는데 다음까지 생각할 여유가 어딨겠음? 적비성은 일부러 귓바퀴를 살살 깨물고 핥으며 유혹해대는 이연화때문에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붙잡고 연화루로 겨우 돌아왔을 거임.

그리고 뭐..새벽이슬이 내릴때까지 부부가 밤새 한몸처럼 사랑을 나누고 애정을 속삭이고 그랬겠지. 응...

비성연화는 사랑하고있다고....



연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