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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5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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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윈란은 침상에 비스듬히 누워 오른팔로 머리를 받치고 등잔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음
열어놓은 창문틈 사이로 파고드는 바람을 따라 일렁이는 등불에 자오윈란의 얼굴이 반씩 드러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음 빛이 닿은 그의 한쪽 얼굴은 선녀처럼 고왔지만 어둠에 숨겨진 반대편 얼굴은 악귀같았음 그리고그리 머지않은 곳에, 그의 얼굴을 응시하는 한 쌍의 안광이 있었음
자오윈란은 그의 저택에, 침소까지 숨어든 그를 죽이고 싶기도 했음 그만 아니었어도 자신이 오늘 황제의 앞에서 참을 이유가 없었음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음 자오윈란은 등잔불을 보며 그날을 회상했음



그러니까 전 황제는, 실은 자신의 형이었음 물론 형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음 나이차가 꽤 나는 데다가 아버지가 달랐고, 함께 유년을 보내지도 않았기 때문임
자신의 어머니는 평녕후의 외동딸로 원래는 강왕과 정략혼을 한 사이였고 그 사이에서 전 황제와 그의 누이동생을 낳았음 그러나 왕부 내의 암투로 딸이 살해당하자 왕비 자리를 내려놓고 이혼했음 그리고는 평녕후의 가신이었던 아버지와 재혼했던 것이었음
자오윈란이 10살이 되던 해, 전 황제, 당시 강왕의 작위를 물려받은 그가 어머니를 찾아왔음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 자신의 앞에서 말했음
강왕부와 평녕후의 세력이 결합해 지나치게 강대해지는 걸 원치 않았던 당시의 황제가 둘 사이를 이간질하고자 딸아이를 죽이도록 사주한 것이었다고, 자신은 황제를 용납할 수 없으니 어머니의 힘을 빌려 달라고 했음
그리고는 아버지에게 말했음 거사가 성공하면 자신이 어머니를 태후로 모셔가진 못하더라도 윈란만큼은 반드시 황자와 같이 고귀하게 키우고 앞길을 다져주겠다고


그리하여 윈란은 11살이 되던 해에, 황궁에 들어가 살게 되었음

황제는 약속을 충실히 지켰음 자신에게 제왕의 학문을 가르치고 최고의 무인들과 학자들을 제 스승으로 붙여주었으며 관례를 치른 후에는 정사에 관여토록 관직을 제수하기도 했음
윈란은 뛰어난 자질, 좋은 교육과 황제의 강력한 지원을 바탕으로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조당에서 두각을 드러냈음
하지만 황제는 윈란이 누구인지, 황제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끝내 공적으로 밝히지 않았음 윈란은 아마도 제 어머니의 딸, 그러니까 이부누이가 비명에 간 일이 마음속 깊이 그에게 상처와 두려움을 남긴 탓이겠거니 하고 짐작했음 그러나 황제의 이런 모호한 태도가 많은 이들의 억측을 야기한 것도 사실이었음 그리고 그런 자들 중 가장 더러운 내용과 방식으로 저를 괴롭힌 사람은 황후였음

황후는 황제가 즉위한 후, 새로 맞이한 이웃 나라의 공주였음 황제는 정변 이후 내치에 집중하기 위해 변방이 안정되기를 바라 여러 나라의 공주들을 후궁으로 맞아들였음 그리고 황제의 아이들, 그러니까 현 황제와 지금 저를 보쳐 숨어든 아이를 낳다가 죽은 선황후의 자리를 이어 계황후가 된 그녀는 자오윈란을 늘 견제했음
친모가 죽은 후 남겨진 쌍둥이 황자들을 키우며 그녀 자신이 친모인 것처럼 행세하는 것은 아무래도 좋았으나, 어떻게든 다른 후궁들의 회임을 방해했고 자신을 비롯해 후궁들이 후사를 보지 못하는 이유는 다 자오윈란 때문이라고, 자오윈란이 황제를 홀려 남색에 빠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소문을 퍼뜨렸음 게다가 그녀 밑에서 자란, 쌍둥이 황자들이 그것을 기정사실인 것처럼 여기게 만들었음
하지만 황자들은 계황후의 실체를 모르고 자랐음 그래서 아직도 그녀를 폐위시킨 선황과 저를 원망하는 황제의 눈초리란..

자오윈란은 거기까지 회상하고 낮에 황제의 어전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자 피가 거꾸로 도는 것 같았음 자신이 바라보던 등잔불이 제 몸을 활활 태우는 것만 같았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집어들고는 어둠 속 안광의 주인을 향해 다가갔음 야차같은 기세로 다가오는 자오윈란을 향해 2황자는 예를 갖추어 읍했음


- 황자 션웨이, 태위를 뵙습니다.



자오윈란의 칼 끝이 션웨이의 어깨에 닿았음


- 야심한 시각에 어찌 양상군자 같은 행색으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까?


자오윈란의 목소리는 매우 차가웠음 이에 션웨이는 귀끝을 붉히며 대답했음


- 걱정이 됐습니다 그대가, 그리고 궁금했습니다. 제가 없었던 사이에 폐하께서,


입다물어. 네 허무맹랑한 헛소리에 귀를 더럽히고 싶지 않다.


션웨이는 무표정한, 도자기 같은 얼굴로 자오윈란을 마주했음 여전히 귀끝은 불타는 채로, 시선은 그를 집어삼킬 듯이 바라보며 붉고 얇은 입술을 다시 열었음


- 당신을 안고 싶어. 이 말이 그렇게도 충격적이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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