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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8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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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마 퇴치하는 천사(침향에 나오던가) 지망인 방다병과 떠돌이 의원 하지만 당연히 과거 이상이인 이연화가 센티넬 가이드스러운 관계인거 bgsd..


1편

성곽 밖이 위험하다는 말은 어려서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깊은 숲으로 이어진 중원은 요마의 본거지인 칠곡산 화산암 지대까지 이어졌다. 인간과 요마가 수년간의 전쟁 끝에 휴전 협정을 맺은지도 칠십여년이 지났다. 중원은 인간과 요마가 언제 어디서 맞닥뜨려 무슨 일이 생기건 책임을 묻지 않는 무법지대나 다름없어 알아서 조심해야하는 위험한 곳이었다. 그렇기에 성곽 안의 대희국에서는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요마를 상대하는 천사들을 양성했다. 천사를 많이 배출한 명문 문파는 천기당이었고 천기당 당주의 아들인 방다병은 출중한 무공 실력을 가진 전도유망한 젊은이였다.

방다병은 늘 중원에 나가 요마 무리를 제압하고 사람들을 구하고 싶어했지만 갈 수 있는 구역은 제한되어 있었다. 그래서 오늘도 홀로 중원 초입에서만 서성였다. 초입에는 사람에게 별다른 해를 끼치지 않는 하급 요마나 정령만 있어 방다병이 할 일이 별로 없었다. 방다병은 지루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조금 더 들어간다고 무슨 일이 생기기야 하겠어?"

요 근래 중원에서 별다른 사고도 없었고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형들도 하급 요마 외에는 만나지 못했다지 않나. 방다병은 결심한 듯 발걸음을 옮겼다. 별일 없으리라 여기고 간 것이지만 동시에 사건을 기대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천기당 천사 수련인들 중 가장 강한데도 중원에 들어갈 수가 없다니 이토록 답답한 일이 또 있을까 싶었다. 방다병은 늘 중원 깊이까지 며칠간 야렵을 다녀오는 사형과 사제가 무척 부러웠다. 그가 중원에 갈 수 없는 이유는 그에게 연형제가 없어서였다.

대체 어디에 있길래 나타나질 않는건지.

방다병은 입이 썼다. 석누님은 그가 하도 뛰어나서 다병에게 맞는 연형제가 아직 없는 것이라 위로했지만 자기가 전설의 천사라는 이상이도 아니고 이 나이에 무에 그리 뛰어나다고 꼭 맞을 연형제가 없겠나 싶었다.

방다병은 고개를 붕 저어 번뇌를 떨궈냈다. 아직 연을 못 만난거지 무슨! 괜시리 위축되는 마음을 누르고 방다병은 수풀을 검집으로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와본 적 없는 곳이어서 긴장도 되었지만 아직 중원의 초입일 뿐이었다.

그 때 어디선가 끙끙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다병은 몸을 멈추고 검을 움켜쥐었다. 끙끙 소리가 나는 쪽으로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자 큰 나무 뒤로 비어져 나온 푸른 빛이 도는 회색의 옷자락이 보였다. 방다병은 긴장한 채 검을 반쯤 뽑고 천천히 나무로 다가갔다.

'사람인가? 요마인가? 저 소리는 사람 소리가 아닌데 역시 요마일까.'

그때였다. 갑자기 웡 소리와 함께 희미하고 빠른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기절할 듯 놀란 다병이 겨우 큰 소리 내는 것을 참고 날렵하게 몸을 뒤로 날려 거리를 두었다. 그의 눈 앞에 위풍당당하게 나타난 것은 요마가 아니라 귀엽게 생긴 누런 개였다.

"에?"

방다병이 주변을 두리번댔다. 어딜 봐도 들개같지는 않았다. 사람이 키우는 개다.

"거기 누구요?"

방다병이 옷자락이 비친 나무 뒤를 향해 물었다. 소리에 반응하듯 부스럭대며 형체가 움직였다. 곧 나무 뒤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행객입니다만."

수수한 청회색 장옷을 입고 소박한 나무 장식으로 머리를 묶은 사내가 듣기 좋은 목소리로 답했다. 흰 얼굴은 선이 곱고 눈빛이 총명했다. 사내인데 곱다는 생각이 먼저 들만큼 수려한 미남자였는데 표정에는 천연덕스럽다 해도 좋을 여유가 넘쳐 평범한 사람같지가 않았다.

방다병은 요기를 감지해보려 했지만 곧 포기했다. 인간과 비슷하고 자연스러운 상급 요마일수록 요기를 감추는 일에 능했고 연형제도 없는 그로서는 눈 앞의 남자가 설령 요마라 해도 분간할 재주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요마가 다니는 숲에서 여행이라니 위험합니다."

방다병이 점잖게 말하자 사내가 공손하게 인사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은 숲에서만 나는 약초를 구하러 왔다가 잠시 쉬던 중이었습니다."

"약초요?"

미심쩍어하는 방다병을 눈치 챘는지 사내의 표정이 변했다. 입꼬리를 올리며 부드럽게 미소를 짓고 시선을 잠시 떨구었다 다시 드는데 그 모습이 퍽 매혹적인 구석이 있어 방다병은 그가 요마일 가능성을 머리에서 지우기가 어려웠다.

"공자는 천사 수련생인 것 같은데 마침 잘 되었군요. 천기당 천사들 덕에 근래 요마가 나타나지 않아 중원 숲 초입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늘어났지요. 저 역시 의원이고 약초가 필요해 이리 과감하게 들어왔습니다만 아무래도 불안하던 차에 하늘이 보살폈는지 천사 수련생을 다 만나는군요."

사내의 말에 방다병이 눈을 크게 떴다.

"천기당 소속인걸 어찌 알았습니까?"

사내가 웃으며 눈짓으로 방다병의 허리춤을 가리켰다.

"요마를 가두는 호롱병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공자는 혼자 있으니 연형제가 없는 수련생일테고요. 그럼 호롱병을 쓸 수가 없을텐데 어찌 예까지 들어오셨소?"

연형제 없이 홀로 있다는 말에 방다병은 조금 부끄러운 기분이 되었다. 과년한 처자들이 아직 혼처가 없냐는 말을 들을 때처럼 부끄럽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한게 천사에게 있어서 연형제의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아직 짝이 없는 작은 고모는 평소에 무섭기는 해도 방다병이 모친에게 연형제 일로 잔소리를 들을 때 두둔해주는지도 몰랐다.

"예사 눈썰미가 아니시군요. 저는 방다병, 천기당 수련생입니다."

"아, 차기 천기당 당주를 몰라뵈었습니다 방소협. 저는 이연화입니다. 떠돌이 의원이지요."

"보신대로 아직 연형제가 없지만 이곳은 깊은 숲도 아니니 하급 요마 정도는 문제없습니다. 이선생이 약초를 찾는 동안 같이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방소협."

이연화가 부드럽게 웃었다. 방다병은 잠시 멍해졌다. 머리 속에 이 자가 사람을 홀리는 요마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책에서 어떤 상급 요마는 인간을 홀리는 미혼술을 쓰는데 머리가 멍해지고 잠에 취하게 만들어 정기를 가져간다고 했다. 그러다 불현듯 방다병은 자신이 멍한 상태로 서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방다병은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안개가 낀 듯 시야가 흐렸다. 언제부터 이랬지? 휘청이는 그의 흐린 시야에 손이 불쑥 나타났다. 방다병은 검을 뽑으려던 손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몸이 둔하게 가라앉는 감각에 저항하려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애써 허리를 세우려 하는데 귓가에 찢어지는 듯한 새된 비명이 스쳤다. 고개를 돌릴 새도 없이 누군가의 손에 덜미를 잡혀 방다병은 어딘가에 부드럽게 앉혀졌다. 웅웅대는 소리가 머리 속을 울려댔다.


젠장, 어찌 된 일이지? 역시 이 자가 요마였나.

감각이 흐려진 방다병은 애써 눈을 치떴다. 안개로 부얘진 시야에 펄럭이는 옷자락이 안개를 흩어내는게 보였다. 바닥에 붙어 떨어질 줄 모르는 묵직해진 손에 축축하고 따스한게 느껴졌다. 겨우 쳐다보니 누런 개가 정신 차리라는 듯 핥고 있었다.

이연화는? 요마가 습격한거면 어쩌지?

몸을 일으키려 애쓰던 방다병은 그만 정신줄을 놓고 말았다.




*



부드럽게 코를 찌르는 향에 방다병은 미간을 찌푸렸다. 눈을 뜨자 걱정이 가득한 채 저를 쳐다보는 모친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다병, 정신이 드느냐?"

"어머니? 여긴.."

"중원에 가지 말라 그리 일렀거늘! 어찌 이리 말을 듣지 않는게야. 미혼술을 쓰는 요마는 네가 아직 상대할 수 없는데 운이 좋았어. 여기 이선생이 아니었다면 큰일 날 뻔 했어!"

방다병의 모친인 하당주는 아들이 일어나자마자 속사포같이 쏟아부었다. 연형제만 있었어도 이리 되지 않았을텐데.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선생요?"

방다병은 몸을 일으켰다. 하당주 뒷켠에 이연화가 서있었다. 아무런 해를 입지 않은 듯 멀쩡해 보였다.

"이선생 덕이라고요? 대체 어떻게 된겁니까?"

"인사부터 드려야지."

하당주가 아들의 등짝을 살짝 쳤다. 살짝이라고 해도 내력이 실려 있어 제법 따끔했다. 눈살을 찌푸린 방다병을 보고 살풋 웃은 이연화가 손을 내저었다.

"괜찮습니다, 하당주. 방소협도 경황이 없을테지요. 별것 아닙니다, 방소협. 요마 하나가 미혼술로 독안개를 뿌렸어요. 고급 술법은 아니라 저에게 마침 독을 옅게 해주는 약이 있어 수건에 묻혀 코에 대고 왔을 뿐입니다. 그런데 안개때문에 쓰러진 방소협을 찾기 어려워서 시간이 걸렸지요. 제 개가 찾아주지 않았다면 저도 빨리 소협을 데리고 오지 못했을겁니다. 제가 아까 찾은 약초가 요마의 미혼독을 풀어주는 것이라 지금 향을 피워뒀어요. 지금쯤 말끔히 해독되었을 겁니다."

이연화가 조리있게 있었던 일을 알려주자 방다병은 그제서야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이연화가 요마가 아니라 운좋게 자기를 구한 의원이었다니. 큰 소리치며 옆에 있어주겠다 해놓고 되려 신세를 졌다.

"이선생, 감사합니다. 제가 큰 신세를 졌습니다."

이연화가 괜찮다는 뜻으로 웃어 보였다. 하당주는 이연화에게 원하는만큼 천기산장에 묵어도 좋다며 호의를 베풀었다. 이연화는 감사의 뜻으로 천기당 수련인들에게 도움이 될거라며 해독약에 쓰이는 약초와 달이는 법 및 복용법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하당주는 크게 기뻐하며 최고급 술을 내었으나 이연화는
내일 기쁘게 받겠다며 일찍 자리를 떴다.
방다병은 처소로 향하는 이연화의 뒤를 따라갔다.

"이선생."

이연화가 뒤를 돌아보았다. 방다병은 목숨을 구해준 이에게 느낄 법한 고마움 외의 어떤 감정이 자기를 이끄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이 자에게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의심인지 호감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웠다.

"괜찮으시면 잠시 차라도 하시는게 어떻습니까? 사실 이해가 가지 않는게 있어서요."

이연화는 잠시간 방다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방다병은 가슴 한 켠에 쿵 돌쩌귀가 내려앉는 것 같았다. 대체 왜 이렇게 안절부절 못하는지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미혼독은 다 없어졌다는데 아직도 정신이 몽롱한 것 같았다.

"그러시지요."

"내가 마저 안내할테니 가보아라."

방다병은 처소를 안내하는 하인을 물리고 직접 이연화를 안내했다. 서너걸음 앞장 서서 걷던 방다병은 등줄기에 내달리는 전율같은 감각에 흠칫 놀라 걸음을 멈췄다. 갑작스레 몸을 세운 탓에 뒤따라 오던 이연화가 등에 부딪혔고 무방비 상태의 방다병이 크게 휘청이며 앞으로 넘어졌다. 본능적으로 몸을 돌린 방다병이 한 팔로 넘어지는 이연화를 부둥켜 안은 채 바닥으로 쓰러졌다.

"윽!"

방다병이 신음을 흘렸다. 돌부리에 등 어딘가가 찍혔는지 둔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둔통보다 몸을 절절 끓이는 듯한 감각이 더 커서 방다병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경맥이 뜨거워지며 온몸이 들끓는 것 같았다. 게다가 이연화는 그대로 자기 품에 안겨 있어 더 정신이 없었다.

"방소협, 괜찮습니까?"

이연화가 재빨리 몸을 일으키려 양손으로 방다병의 가슴팍을 밀었다. 방다병은 제 팔이 그런 이연화를 놓기는 커녕 세게 끌어 당겨 다시 품 안에 가두는 모양새를 남의 일 보듯 지켜보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경악했다.

"방소협?"

"이,이건...!"

방다병도 설명할 수 없어 당황스러운건 마찬가지였다. 이연화의 얼굴이 지척에 있었다. 몹시 당황한 자신과 달리 이연화의 얼굴은 약간의 창백함이 떠올랐을 뿐 여전히 여유가 있었다. 이연화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알겠다는 듯 한 팔을 어찌저찌 방다병에게서 빼냈다.

"실례."

혈점을 찍자 방다병의 팔이 스르륵 풀렸다. 방다병은 얼른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제서야 가쁜 숨과 함께 거칠게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여전히 몸 안이 뜨거웠다. 이연화는 일어서서 방다병이 진정되길 기다렸다.

"죄송합니다. 이선생. 어떻게 된 일인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팔이 제멋대로 움직였어요."

솔직함이 담긴 눈망울을 하고 방다병이 이연화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연화의 고운 미간이 살짝 찌푸러져 있었다.

"기분이 많이 상하셨다면 사죄드립니다."

"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 방소협 몸상태가 심상치 않아서요. 경맥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이만큼 참아내는게 대단할 지경인데, 어디 아픈데는 없습니까?"

"아프지는 않고 온 몸이 뜨겁습니다."

열에 달뜬 듯 발그레한 얼굴이 달빛 아래서도 보일 정도였다. 이연화는 방다병을 부축해 방으로 들어갔다. 방다병은 운기조식을 하며 경맥을 다스리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미혼독의 영향일까요?"

이연화는 방다병의 순진한 물음이 담긴 동그란 눈을 보며 당혹감을 감추기 어려웠다. 그가 알기로 이 증상은 천사들만 경험하는 것이었다.

"방소협은 아직 연형제가 없다고 했지요?"

"네."

이연화가 보이지 않게 입술을 잘근 씹었다.
왜 하필. 여기서 이래서는 안되었다. 하필 천기당에서.

요마를 상대하려면 무공만으로는 안되었다. 술법 또한 필요하고 이를 함께 할 타고난 짝인 연형제가 있어야 했다. 연형제끼리는 서로의 공력을 배가시키고 내상을 입으면 나누어 가졌다. 어떤 연형제는 내상을 모두 가지고 가기도 했다. 부상을 치유하는 연형제도 있었다.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협력했으나 둘은 한 몸처럼 움직이고 서로가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라 몹시 각별했다.

연형제끼리는 경맥의 흐름이 아주 유사하거나 반대로 역으로 흘렀다. 요마를 상대하는 술법을 익히기 위해서는 자신의 경맥의 흐름을 통제하는 것 외에도 타인의 경맥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기 위해 감각을 여는 훈련을 했다. 자신의 경맥을 공유할 사람을 만나면 경맥이 이에 반응해 요동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경험하기 전에는 감각을 알 수가 없어 대개는 두 사람이 함께 동화하면서 사후에 증상을 파악하기 마련이었다.

이연화는 방다병이 연형제를 감지했다는 것을 알았다. 곤란하게도 그 상대가 자신이었다.

'골치 아프게 됐군.'

이연화는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제가 방소협의 연형제인가봅니다. "

방다병의 눈이 커드래졌다.









연화루 이연화 방다병 성의 츼츼 증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