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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9 01:19
으음, 아무래도 오늘은 이런 풀떼기 말고 좀 색다른 걸 먹고싶은 것 같은데... 불여우야, 네 생각은 어때?
이연화는 하루종일 자신을 신경쓰이게 만들던 불만족스러운 느낌을 곱씹으며 착하게 배를 깔고 엎드린 불여우에게 넋두리를 하고 있었어. 은근하면서 근질근질한, 그렇지만 본질을 정확히 짚어내기 어려운 공허한 느낌이 연화에게 뭐라뭐라 요구를 해오긴 하는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 뭐지, 왜이러지 진짜? 몸이 허해졌나, 오랜만에 고기라도 먹어줘야하나.
그치만 배가 고프진 않았고... 으음.... 뭔가, 그런 쪽보다는...
......단 게... 땡기나...?
상상속의 단 맛을 생각하자마자 머릿속에 환한 불이 켜진듯하니 아무래도 정답인 것 같아. 그러고보니 요새 간간히 꺼내먹던 사탕이 떨어져 한동안 참고 있긴 했지. 단 맛을 떠올리니 입 안에 빠르게 침이 고였어. 모를 땐 그냥저냥 넘어갈 수 있었지만 취하고 싶은 것이 선명해지며 몸이 바라는 것도 자세하고 분명해졌어. 연화는 사탕 대신 결핍을 채워줄만한 대체재를 찾아 주변을 어슬렁거렸어. 그런데 암만 뒤져도 뭐 이거다 할 만한게 보이지 않아 짜증이 나려던 참이었거든.
.......?
그 때 무해한 표정의 방다병과 눈이 마주치게 된 연화야. 이연화는 순간 자제하기 힘들 정도로 달았던 방다병의 기운을 기억해내고는 옳다구나 눈을 빛냈겠지. 그래, 사탕이 떨어져도 당을 섭취할 수 있는 길은 열려있었구나...! 연화가 맹하니 자길 바라보는 방다병이 기특해 사르르 눈을 접으며 웃어줬어. 그러자 이연화의 검은 속내같은 건 짐작도 하지 못하는 불쌍한 방다병만 양 볼을 발갛게 물들이며 설레어했고...
......방공자. 차 한잔 하세요.
이연화는 지난번 소량의 미약에는 끄떡없던 방다병을 떠올리며 300년의 경험을 듬뿍 담은 특제 가루를 방다병 몰래 차에 풀어넣었어. 대단히 뻔뻔하고 염치없는 짓이었지만 이연화는 눈하나 깜빡않고 꿀꺽꿀꺽 차를 마시는 방다병을 즐겁게 감상하기까지 했지. 슬슬 약기운이 도는 방다병이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하고 밤이 깊었으니 먼저 자러 들어간다고 인사 할 때까지 말이야.
그리고 얼마 뒤, 방다병의 처소로 몰래 쳐들어온 연화는 생긴 것처럼 반듯하게 누워 잠이 든 방다병을 보고 조금 피식 웃고 말았어. 몸이 점점 나른해지며 아래가 당겨왔을텐데도 참은 것인지, 아니면 몸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한 것인지 아랫도리 사정은 신경쓰지 않고 꿋꿋히 잠이 든 게 좀 그 답기도 해서 말이야. 방다병의 곁에 조용히 침범해 자리잡은 연화가 그의 얼굴을 쓰다듬다가 잘생긴 이마에 눈을 감고 조심스럽게 입술을 내렸어. 그 다음은 단정히 감은 눈 옆에, 귓가에, 턱선을 따라 천천히 살살 입맞춰가다 굳게 다물린 입술로 찾아들어 포개어졌지. 가깝게 밀착해있어 느낄 수 있는 뜨끈하게 높은 방다병의 체온과 부드러운 입술이 무척 기분 좋았어. 연화가 가볍게 입술을 비비고 아프지 않게 물으니 자연스레 그의 입술이 벌어져. 연화는 방다병에게서 전해져 넘어오는 달콤한 기운에 그가 참을 수 없이 사랑스러워서 입술을 맞대고 소리없이 웃었어. 아무래도 우리 고상하고 점잖은 방공자가 남몰래 아주 좋은 꿈을 꾸고 있었던 모양이지. 귀여워. 아닌 척 해도 꾹 참고 잠든 쪽이었나봐. 아, 진짜 너무 귀엽네.
잔뜩 괴롭혀서 기어코 울망울망해진 모습을 보고싶게.
연화의 손이 슬금슬금 방다병의 옷깃 위를 배회하다 안쪽으로 파고들었어. 그러자 과연, 성실한 무인답게 단단히 단련된 몸이 연화를 반겨 방다병을 더듬던 연화도 덩달아 흥분하기 시작했어. 입맞춤은 점점 더 깊어지고 방다병의 기운도 한층 더 짙어져 연화에게서 나른한 신음이 흘러나왔어. 교차하는 더운 숨결과, 다정하고 느릿해도 일방적으로 침입해 입 안을 휘젓고 맛보는 혀의 감촉과, 맞닿은 입술을 타고 전해지는 간지러운 진동에 이윽고 잠들었던 방다병이 혼곤한 표정으로 눈을 뜨게 되었지. 연화가 그 기척을 느끼고 쪽 소리를 내며 잠에서 깬 방다병에게서 떨어져나왔어. 방다병이 멍한 표정으로 연화를 올려다봤어.
흐응, 일어났어요?
눈을 뜨자마자 마주한 연화 때문에 방다병은 몽롱한 상태에서도 반사적으로 얼굴을 붉혔어. 연화는 방다병에게 꿈 속의 자신이 뭘 했는지 물어보고 싶었던 걸 꾹 참고 대신 소년같은 방다병의 뺨에 한 번 더 입맞춰줬어. 방다병은 훅 가까워지는 연화의 체취나 무게같은 낯뜨거운 단서들로 그제서야 이게 꿈이 아니라는 걸 한 박자 늦게 깨닫고야 말지. 방다병이 당황하여 눈을 크게 뜨고 꿈뻑거렸어.
이연화..이게...무슨...
아. 그대가 꿈 속에서 하도 절 찾으시기에...어때요? 머리가 아프거나 토할 것 같진 않으신가요?
예? 아니, 그건 괜찮은데...
역시 건강하시네요. 앗, 여기도 건강해지셨군요.
윽, 잠깐만요, 손...그 손 떼요!
방다병이 제 다리 사이를 가볍게 움켜쥐는 이연화에게 놀라 기겁하며 소리쳤어. 태연한 척 하는 이연화도 내심 놀라긴 했지. 워, 요즘 젊은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단한 걸 숨기고 다니네. 연화가 손 안에 들어차는 묵직한 양감에 놀라워하며(그러면서도 파렴치하게 주물럭거리는 손길은 절대 멈추지 않으며) 입맛을 다셨어. 방다병은 이제 새하얗게 질려있었어.
이렇게 착실히 반응해주셔서 기뻐요, 방공자. 당신이 이번에도 멀쩡했다면 도대체 약을 얼마나 타야 하나 고민했을거랍니다.
....윽, 약을..약을..???
마음의 거리낌을 조금 낮춰주는 약을 썼지요. 음, 이를 어쩌나, 아래가 무척 답답해 보이시네요. 어서 편안하게 해드려야...
아, 그만! 이연화, 그만둬요!
이연화가 방다병의 옷자락을 걷어내고 하의를 고정한 매듭에 손을 가져다대자 방다병이 빼액 소리를 질렀어. 이연화는 목청까지 마비시키는 약을 먹였어야하나 잠시 곱게 미간을 찌푸렸다가 일말의 자비 없이 꽉 묶어둔 끈을 툭 풀러내렸지. 옷 위로 만져지는 위용이 대단했기에 어디, 실물은 얼마나 크고 잘생겼나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분명 얌전히 누워있어야 할 방다병이 연화의 손목을 낚아채 강한 힘으로 쥐어잡았어. 연화가 놀라는 사이 손목이 차례로 홱 들리고 한순간 시야가 빙글 돌며 침상위에 내동댕이쳐지듯 눕혀지고야 말았어. 방다병이 연화의 양 손목을 잡고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결박하며 짓눌러. 거친 숨소리로 숨을 몰아쉬는 방다병이 이연화를 매섭게 노려봤어. 몸을 꿈틀거려도 옴짝달싹 할 수 없고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힘에 연화는 방다병을 만나고 처음으로 그가 만만치 않은 놈이라는 걸 인정했어. 아니 약을... 이긴다고..? 뭐 이런 놈이 다있지??? 저지른 놈은 연화인데 억울한 놈도 연화로 만드는 방다병이었어.
방다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백마디의 말보다 그게 더 연화를 긴장하게 만들었어. 연화가 눈치를 보다 조금 억울하게 항변했어.
...하지만 당신이 줄곧 외로워하는 절 모른척하셨잖아요.
그럼 이때까지 한 번도 본적 없는 차갑고 단호한 태도의 방다병이 연화의 쫑알거림을 듣고 한숨을 내쉴거야.
모른척 하는 쪽은 오히려 이연화 당신이잖아.
대꾸하는 방다병의 목소리에 괴로움과 쓸쓸함이 묻어났을테고
그래. 그냥 이대로 당신과 밤을 보낼수도 있겠지.
자조하는 목소리에도, 딱딱한 방다병의 표정에도 점점 옅은 물기가 어렸어.
하지만 그 때부터 당신이 더 이상 날 궁금해하거나 바라지 않을 거란 걸 알아요. 나는 매일매일이 지날수록 이연화 그대에게 마음이 깊어져만 가는데 당신은...아직 나와 같지 않잖아요. 여전히 내 진심을 외면하는 중이고요.
어쩐지 이연화는 여기서 아주 조금만 더 방다병을 건드리면 그 큰 눈에서 뚝뚝 눈물을 떨구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그렇지만 연화도 간만에 양심이 따끔거려왔기 때문에 일부러 방다병의 아픈 곳을 쿡쿡 쑤셔대진 않았지. 그래도 좀 억울하긴 한데. 진짜 일부러 상처 줄 생각은 없었다고! 그저 자신은... 기나긴 세월동안 남들에게 그래왔듯 익숙한 방법으로 적당하고 편리하게 방다병을 대해왔을 뿐인데...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언젠가 반드시 당신이 날 좋아하도록 만들테니깐. 다만.. 그때까지 당신에게 약속했던 말들을 지키고 싶을 뿐이에요.
방다병이 용케 울지 않고 마지막에 입꼬리를 당겨 희미하게 웃었어.
아....어쩌다 이렇게 바르게 잘 자란 청년이 저같이 방탕한 여우요괴에게 걸려 인생을 허비하게 됐는지. 연화는 방다병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없이 그를 유혹해 인연을 만들었던 지난날을 짧게나마 반성했어. 300년을 한결같이 보고 겪고 배우며 인간을 흉내내봐도 인간은 현명하게 대하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도 했지. 요괴의 본성이 끝내 이해를 거부하는 방다병같은 인간에게는 더더욱. 연화는 왠지 지금 한껏 풀이 죽은 방다병을 꽉 껴안아주고 싶다는 뜨거운 충동과 그렇지만 그 행동이 방다병에게 돌려줄만큼 진실된 감정에 기인한 것이냐는 냉철한 판단의 기로에 서서 갈팡질팡했어. 지혜롭고 총명한 여우요괴에게 난데없이 닥친 난관이 아닐 수 없었어. 아니, 진짜 이해를 할 수 없네! 좋아한다면서 대체 왜 참는다는 건데? 연화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가슴과 머리가 따로 놀며 멍청해지는 기분에 입을 삐죽 내밀었어.
...저, 손..을...
헉, 아프게 해서 미안합니다..! 괜찮아요?
연화가 손을 꼼지락거리자 방다병이 뒤늦게 붙잡고 있던 연화의 손목을 놓아주며 부산을 떨었어. 연화의 흰 손목에 방다병의 손자국이 그대로 남아 상당히 민망한 꼴이 되었어. 이연화는 뻐근한 손목을 매만지다 어쩔줄 모르는 방다병을 보고 몸을 일으켰지. 그리고 방다병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탁자로 가 차를 한 잔 따라왔어.
자, 여기. 들어요.
그럼 방다병이 내심 목이 탔는지 이연화에게 찻잔을 건네받고 일단 입부터 대고 볼거야. ???? 방다병의 배움이라고는 모르는 순진하고 무방비한 태도에 어이가 없어진 이연화가 참지 못하고 한소리 했어.
아니, 그게 뭔 줄 알고 넙죽 마셔요? 아까 그렇게 당해놓고, 거기에 내가 또 뭘 탔을 줄 알고?
(꿀꺽) 당신이 준 거잖아요.
...그래도 의심은 하란 말이에요.
이연화는 괜한 타박에도 고개를 숙이고 웃는 방다병한테 이유없이 심사가 뒤틀렸어. 진짜 뭐래. 아래는 불룩하게 잔뜩 세워놓고, 뭐가 좋다고 웃긴 웃는지. 결국 이대로 두면 처량하게 혼자 빼야 할 거면서.
...뭐, 그럼 잘 자던가요.
연화가 먼저 방다병에게 건성으로 밤인사를 건넸어. 방다병도 연화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해주려고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어 연화를 바라봤지. 그런데 무심히 방다병을 스쳐 걸어가던 연화가 돌연 예고도 없이 몸을 돌려 방다병에게 뛰어드는 것처럼 빠르게 가까워졌어.
그러더니 짧지만 혼이 나갈만큼 짙은 입맞춤을 제멋대로 퍼붓고는..
온 몸을 시뻘겋게 달구고 어버버 얼어버린 방다병을 그대로 두고 조금 상쾌해진 기분으로 그의 처소를 빠져나왔을거야.
저를 떠올리며 수음할 방다병을 상상하니 드물게도 스스로를 달래고 싶어진 연화가 주는 일종의 작은 선물이자, 변덕스런 복수를 남기고 말이지.
연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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