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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붕, 날조ㅈㅇ 문제시 칼삭
과거에 방다병이 말하던 삶이 이런 거였을까, 어느 날은 서고에 틀어박혀 책을 읽다가 또 다른 날은 린신과 낚시를 하러 갔다. 연화가 무얼 하든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다. 무공을 하지 못하는 맹주는 주로 방안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가끔은 그와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고, 날이 좋으면 후원을 거닐곤 했다. 다짜고짜 찾아와 산책을 권해도 군말 없이 응하는 매장소를 보며, 연화는 자신이 철없는 공자가 된 느낌이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연못을 하나 만들어야겠구나‥”
매실을 따는 연화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매장소가 낮게 중얼거렸다. 매장소의 처소에는 매화나무가 가득했다. 초여름이면 매실이 탐스럽게 열렸지만, 후원의 주인이 무관심한 탓에 시간이 지나면 열매가 떨어진 채로 썩어버리기 일쑤였다. 그게 안타까웠던 연화가 매실로 술과 차를 만들자고 제안한 것이다.
“갑자기 연못은 무슨 일로요? 혹시 담그고 싶은 사람이 생기셨습니까?”
린 의부께서 속 썩이셨습니까, 그분은 무공이 강하셔서 웬만한 깊이로는 안될텐데요, 연화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은 듯 눈을 빛냈다. 오래전에 성장을 끝낸 청년이지만 가끔은 그 속에 장난꾸러기 소년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네 처소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삭막하지 않니. 공간도 충분하니 연못을 파서 연꽃을 심자꾸나.”
“조금 더 생각해볼게요. 그렇지 않아도 후원에 약재나 채소를 심어볼까 고민 중이었거든요.”
“약재라면 린 각주의 정원에도 쓸만한 게 많을 거야. 실없는 소리를 많이 해 돌팔이 같아 보여도 의술에 정통한 자란다.”
“그럼요, 저도 압니다. 제 독도 해독해주지 않으셨습니까.”
속세로 나갔으면 진작에 신의(神醫)로 이름을 날려 큰돈을 벌었을 테지, 연화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린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이 뒤를 돌아보자 그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걸어와 매장소의 맞은편에 앉았다.
“연화, 너는 진짜 복 받은 줄 알아라. 나를 만난 덕분에 몸도 회복하고 이리 편안하게 지내고 있지 않느냐.”
“네, 제가 평생 받을 복을 다 끌어다가 쓴 것 같습니다-”
차곡차곡 매실을 담던 연화가 익숙하게 대꾸했다. 흥 이제는 마음에 없는 말도 잘 하는구나, 듣기 좋은 말을 해드려도 불만이십니까, 두 사람이 실랑이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꼬맹이들 같았다.
“근데 장소,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더니 올해는 무슨 바람이 불어 매실을 따나?”
“후원에 매화나무가 많기에 허락해주신다면 제가 술을 담그고 싶다 말씀드렸습니다. 매 의부는 술을 못 하시니 차도 만들고요.”
연화가 매실로 채워진 소쿠리를 탁자에 올려놓으며 대신 답했다. 조용하고 냉소적인 줄 알았던 청년은 생각보다 붙임성이 좋고 활달했다. 세상이 저 아이를 그렇게 만들었던 게지, 생각보다 매실이 많다며 뿌듯한 표정을 짓는 연화에게서 제 앞에서만큼은 본심을 감추지 않던 매장소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새로운 사람이 오니 변화도 생기고 좋구먼.”
“의부님도 복 받은 줄 아세요. 저처럼 싹싹하고 총명한 양자가 어디 흔합니까?”
연화가 능청스럽게 받아쳤다. 허 이 녀석 내가 한 말을 그새 되돌려주는구나, 린신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렇다면 연화야, 네 두 의부가 떨어져 지낸다면 너는 누구랑 지내고 싶으냐?”
“예…? 그런 질문은 어린아이한테나 하는 거 아닙니까?”
연화는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제 나이면 가정을 꾸려 자녀가 있을 나이인데요, 아비로서 그 질문을 하지는 못할망정 그런 질문을 받을 나이는 오래전에 지난 것 같습니다, 그 옆에서 매장소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고 있었다.
“선택하거라. 너는 누구와 지내고 싶으냐?”
“…저도 나이가 있고 자립할 능력이 있으니 따로 거처를 마련하여 지내는 것이 맞지 않나 싶으나… 두 분 중 한 분을 선택해야 하는 거라면, 매 의부께서 몸이 좋지 않으시니 제가 살펴드리는 게 도리인 것 같습니다.”
연화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단순히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와 같은 느낌으로 자신의 애정을 확인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정말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건장한 성인 남자 셋이서 ‘누구랑 살 것인가’를 논하는 모습이 꽤 우스워 보인다는 것이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린신은 연화가 자신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듯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마를 짚고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던 매장소가 생각 끝에 입을 열었다.
“내가 잠시 랑야각을 떠날 일이 있단다. 아마 린 각주도 그걸 염두에 두고 너에게 이런 질문을 한 게 아닐까 싶구나.”
“예…?”
“새 부군을 만나러 간다.”
린신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새 부군이라니, 두 분이 잘 지내고 계신 게 아니었나, 어제도 린 각주가 맹주를 위해서 약을 달이는 걸 봤는데, 연화의 눈빛에서 혼란스러움을 읽은 매장소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양나라의 황제와 친분이 있어 6개월 정도 머물다 올 거란다. 상강(霜降/10월 23일 또는 24일경) 무렵에 떠나서 곡우(穀雨/4월 20일경) 전에 돌아올 거야. 린신 자네도 참, 아직 넉 달은 족히 남았는데 벌써 그걸 신경 쓰고 있나?”
“하지만 의부님…”
단순히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부군이라는 말을 사용하실 리 없잖아요, 연화가 하지 못한 말을 삼켰다.
“아직 양나라는 가본 적 없을 테지. 원한다면 황제에게 서신을 보내 네가 머물 곳을 마련해달라고 하마.”
저는 지금 양나라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연화가 속으로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제가 이곳에 온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니 당분간은 랑야각의 분위기와 사람들에게 적응하는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돌아오실 즈음에 기별을 보내 주시면 제가 양나라로 마중하겠습니다.”
“네 뜻이 그렇다면 그렇게 하렴.”
“그런데 의부님, 린 의부께서 ‘새 부군’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로 그렇게 말씀하신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연화의 질문에 매장소의 미간이 깊게 패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가볍게 툭툭 말을 얹던 린신도 이번에는 신중하게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매장소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부군‥이라는 표현이 틀린 건 아니야. 린신과 강호 유람을 떠나자고 약속한 것처럼 그에게도 약속한 게 있으니까. 모든 일이 끝나면 가끔 찾아와 지켜봐 주겠다고 했거든. 그런데 황제로부터 봉호가 내려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내한테 귀비라니 말도 안 되지, 옆에서 린신이 작게 볼멘소리를 했다.
두 사람의 말을 종합하면, 매장소는 양나라 황제와 친분이 있었다. 황제는 매장소가 자신의 곁에 있어주길 바랐지만, 그는 강호에 남아있기를 택했다. 황제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랑야각에 성지를 보내고 매장소를 귀비로 책봉해 일 년의 반은 양나라에서 보내길 명했다.
“본래 강호와 조정은 서로 관여하지 않는 것이 원칙 아닙니까? 한 나라의 황제가 본인 마음대로 강호인을 데려간다는 게 말이나 되나요?”
“저 인간이 정에 약한 게 죄다.”
그까짓 성지 거부하면 그만 아니냐, 근데 저 인간은 그걸 냉큼 받아버렸단 말이지, 깊은 한숨을 쉬는 린신과 고요한 표정의 매장소를 바라보며 연화는 생각했다.
랑야각에서의 시간이 생각보다 평화롭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랑야방 연화루 각주종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