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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15 19:23
(본문과 상관없는 bgsd: https://hygall.com/576158257)
 

뭐가 그리 즐거운지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걸려있었다의식을 잃고 쓰러진 자신을 살려준 사람이 이 자라는 것도, 자신이 머물고 있는 곳의 주인이 그라는 것도 어렴풋이 들어 알고 있다.

조심스러운 시선을 느낀 그가 벙긋 입을 열었다.

 

"그래, 이 선생께서 어떤 이유로 나를 보자고 하셨소?"

"저를 아십니까?"

"알고말고, 한때는 '검신(劍神)'으로 이름을 날렸던 이상이가 아니오? 지금은 이연화로 살아가고 있던 모양이지만."

 

얘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차나 한잔 하시오, 린신이 찻잔을 슬쩍 밀며 권했다.

 

"랑야각이라고 들어봤는지 모르겠군. 세상의 온갖 정보가 모여있는 곳이지."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럴 만도 하지. 이 선생이 이곳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면 진작에 찾아오지 않았겠어?"

""

"나는 랑야각주(閣主) 린신이라 하오. 이곳에 모인 정보는 내 손을 거칠 수밖에 없지. 그러니 내가 선생의 존재도 알고 있는 것이고."

"제가 이상이인 것이 저를 살려주신 이유와 관련이 있습니까?"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지."

 

한없이 가벼운 목소리로 답하는 그의 의도를 알기 어려웠다.

눈꺼풀을 내린 채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긴 연화를 본 린신의 눈동자에 웃음기가 가셨다.

 

"이 선생, 강좌맹에 대해서는 들어봤나?"

"강호 제일의 방파가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맹주와 함께 돌연 행적을 감춰버렸지요."

"이 선생은 내가 아끼는 사람을 많이 닮았어. 그 치도 한때는 이 선생처럼 혈기왕성한 청년이었지.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본인 몸을 중히 여기지 않는 것도 어찌 그리 닮았는지"

"각주께서 말씀하시는 그 분이 혹시 강좌맹주입니까?"

 

강좌맹을 아느냐는 물음 뒤에 자신이 아끼는 사람의 이야기를 꺼내는 걸 보면, 그가 아끼는 자는 강좌맹과 연관되어 있는 사람인 듯 했다. 연화의 질문에 린신이 헛웃음을 지었다.

 

"맞소, 이 선생을 살리고자 한 이도 그이지. 선생의 기억을 살짝 지우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반대하더군."

 

짧은 순간, 연화의 머릿속에 랑야각의 주인이 살짝 미쳐버린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스쳤다.

 

"제 기억은 지워서 뭐하시려고요."

"그럴듯한 거짓말을 좀 꾸며내면 이 선생이 내 말을 잘 따라줄까 싶어서?"

"린신, 장난은 그만하게."

 

각주의 말에 연화는 할 말을 잃은 채 눈만 동그랗게 뜰뿐이었다. 이내 그의 뒤편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들리자, 장난기 가득한 린신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장난이라니, 나는 나름 진심이었다고."

"자네도 이제 철이 들 때도 되지 않았는가? 비류도 나이를 먹는데 자네만 그대로군."

"부군이 젊으면 자네로서는 좋은 일 아닌가?"

"또 쓸데없는 소리."

 

머리를 단정하게 틀어올린 하얀 얼굴의 사내가 린신을 향해 눈을 흘겼지만, 그는 뭐가 그리 좋은지 웃기만 했다. 작게 한숨을 내쉰 사내가 연화와 눈이 마주치자 두 손을 포개며 인사했다.

 

"매장소라고 합니다. 귀한 손님을 모셔두고는 한 번도 찾아뵙지 못했군요."

"아닙니다. 저도 정신을 차린 지 얼마 되지 않았는걸요. 제 목숨을 구해주셨다고 들어 감사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염치는 있는 청년이군, 린신이 추임새를 넣자 매장소가 팔꿈치로 그를 가볍게 밀었다.

 

"지내시는 데 불편함은 없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신경 써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장소, 겉치레는 그만하고 본론을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다탁 위에 팔을 올린 린신이 턱을 괸 채 말했다. 경박하기는, 매장소가 혀를 찼다. 이런 모습도 좋다고 할 때는 언제고, 린신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연화는 어색하고 민망한 표정으로 앉아있을 뿐이었다. 매장소가 짧은 순간에 연화의 표정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이 선생, 정해진 거처가 없으시다면 랑야각에서 지내시겠습니까?"

"아니요, 괜찮습니다. 이미 충분히 신세를 졌으니 몸이 회복되는 대로 떠날 채비를 하려 합니다."

"이 선생, 자네 몸은 이미 나았어. 그 몸에 들어있던 독이 사라졌거든."

 

연화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린신이 입을 열었다. 찻잔을 감싸쥐던 하얗고 가느다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줄곧 잔잔하던 목소리에서도 짜증이 느껴졌다. 반면, 린신은 한껏 억울한 표정이었다.

 

"자네정말 이러기인가?"

"아니, 내가 못할 말을 한 것도 아니고그리고 몸이 나았다는 건 좋은 소식이 아닌가."

"그걸 이런 식으로 알려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가벼운 언쟁을 한 귀로 흘리며 연화가 손을 가볍게 쥐었다 폈다. 이상이였던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을 지라도, 내력이 어딘가에서 막히는 일 없이 돌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무공이야 이제는 큰 의미가 없으니 한증이나 발작만 도지지 않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연화를 발견한 린신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장소, 저 모습 좀 보게. 환자의 저런 표정이야말로 의원의 보람이 아니겠는가."

"자네가 의원으로서 보람을 느껴본 적이나 있었나?"

"섭섭한 말을 하는군, 그러면 내가 지금까지 자네를 보살핀 건 무엇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나?"

"노각주의 지시?"

"자네 정말 너무하는군. 그렇지 않나?"

 

린신이 동의를 구하듯 연화를 향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각주가 자신을 부군이라고 칭하는 걸 보니 연을 맺은 사이인 건가, 자고로 부부 싸움에는 끼어들지 않는 법이지, 연화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벌써부터 눈치를 살피는 건가, 젊은 친구가 영 겁이 많군, 린신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머리와 세 치 혀 밖에 없는 자가 살아남으려면 눈치라도 빨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능청스러운 목소리에 매장소가 살풋 미소를 지었다.

 

"선생께서 본인을 과소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선생의 인품을 높이 사고 있거든요."

"기린지재(麒麟之才)라고 불리셨던 맹주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거 참 겉치레는 그만 하래도, 옆에서 들려오는 불퉁한 목소리에는 관심조차 주지 않은 채 매장소가 말을 이었다.

 

"아까 드리려던 말씀을 다시 해보려 합니다. 이 선생, 랑야각에 머물러주시겠습니까?"

 

"그리고,

저 모자란 이의 뒤를 이어 각주가 되어주시겠습니까"



랑야방 연화루 각주종주
캐붕, 날조ㅈㅇ 문제시 칼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