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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9 02:07
그것도 이상한 차림새로 칼 차고 쓰러져 있는 사람을.
이건 대체 무슨 옷이야? 어디서 뭐 고장극이라도 찍나?
"어쩐다..."
하루 종일 일하고 이제야 막 퇴근하려는 마당에 이게 뭔 일이람.
그냥 못본 척 지나갈까 잠깐 고민했지만 이내 결연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딱 신고만 해 드릴 겁니다. 아시겠죠? 제가 베풀 수 있는 건 여기까지..."
그 때 죽은 듯 누워 있던 남자가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왁! 미친 깜짝아..! 깨, 깨어있었어요?"
남자는 잠깐 눈살을 찌푸리더니 옆에 웅크려 앉아있는 그를 보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위무선...?"
"예? 저 아세요?"
아닌데, 난 그쪽 모르는데...
당황한 위무선이 엉거주춤 뒤로 물러나려 하자 남자는 다급하게 그의 오른손을 낚아채고는 화들짝 놀란 듯 다시 놓았다.
"정말로... 위무선이라고? 그럴 리가, 너는..."
"아니 저기요. 제 이름이 위무선이 맞긴 한데요, 어디서 보셨다고 남의 이름을 그렇게 막...잠깐, 그거 진짜 칼이에요?"
남자는 어느샌가부터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검집이 바닥에 부딪힐 때마다 묵직한 소리와 함께 미약한 금속음이 나는 것이, 아무래도 가짜가 아닌 듯 싶었다.
위무선은 남자를 경계하며 눈을 게슴츠레 떴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경찰에 신고할겁니다."
위무선이 뒷걸음질치기 시작하자 남자가 다급하게 손을 뻗어 그의 팔목을 붙잡았다.
"어디에...!"
"손 당장 놓으세요. 경고했어요."
"잠깐, 가지 마. 내가..."
"손 놓으라고 했지!"
그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자의 복부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잠시 휘청거리던 남자는 부르르 떨더니 이내 의식을 잃은 듯 위무선에게로 쓰러졌다.
위무선은 몸을 돌려 넘어지는 남자를 가볍게 피했지만 그때까지도 손목이 잡혀 있단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탓에 남자 위로 함께 넘어지고 말았다.
"악!"
남자는 의식을 잃고 바닥에 널부러져서도 위무선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
신경질적으로 손목을 잡아빼려 했지만 어지간히도 강하게 붙들고 있는지 손가락을 푸는 데 한참 애를 먹고 말았다.
"살다 별 미친놈을 다 본다 진짜."
뻐근한 손목을 만지작거리던 위무선은 땅에 떨어진 휴대폰을 주워들었다.
다행히 액정은 멀쩡했다.
한숨을 쉰 위무선은 짜증 섞인 손짓으로 키패드를 소리나게 톡톡 두들겨 경찰신고번호 110을 입력했다.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 그는 잠시 멈칫하고는 뻗어 있는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아무래도 좋을 인간이지만 주먹으로 배를 치고 나서 남자의 몸 위로 떨어진 것이 조금 걸렸다.
갈비뼈라도 부러졌으면 어떡하지?
경찰서에 가서 내가 때렸다고 하면?
한참 고민하던 그는 결국 끄응, 앓는 소리를 내며 손으로 얼굴을 한번 쓸어내린 뒤 화면에 떠 있는 번호 110을 지우고 응급의료센터 번호 120을 입력했다.
"당신 운 좋은 줄 알아."
내가 착한 사람이라 망정이지, 안 그랬음 어?
혼잣말로 잔뜩 생색을 내듯 중얼거린 그는 혀를 한번 쯧, 차고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

꿈을 꾸었다.
보라색 옷을 입은 남자가 절박한 얼굴로 그의 손을 꽉 붙들어 쥐고 있었다.
그는 남자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 손을 뿌리쳤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냥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남자가 손을 놓치자 그는 끝도 없는 어둠 속으로 추락했다.
떨어지면서도 손을 뻗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시끄럽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위무선은 잠에서 깨어났다.
온 몸이 식은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불 꺼진 방안에서 환하게 빚나는 휴대폰 액정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위무선은 축축한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병원 안에 들어서자마자 의료진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보라색 옷의 남자가 보였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남자가 돌아보았고, 위무선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손등에 꽂힌 링거 바늘을 거칠게 잡아뽑더니 그를 향해 빠르게 걸어왔다.
도망칠 새도 없이 코 앞까지 다가온 그는 위무선의 양 팔뚝을 꽉 부여잡고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두고 가지 마."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벌겋게 충혈된 남자의 두 눈을 마주본 위무선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진정령 강징무선